베네치아.가 오스만과 전쟁하는건. 1396-1718. 3백년 이상을 하는건데. 베네치아.는 십자군 4차 서기 1200년 직후에 가면서 아드리아 해변에 모레아섬 에우보이아 섬 해변에, 애개해 섬들에 나중 카테리나 코르나로.에게서 키프러스섬도 받걸랑. 이걸 다 뺏기는겨 오스만애들에게. 
 
Corfu or Kerkyra (/kɔːrˈf-fj/GreekΚέρκυραtranslit. Kérkyra[ˈcercira]Ancient GreekΚόρκυραtranslit. Kórkyra[kórkyra]LatinCorcyraItalianCorfù) is a Greek island in the Ionian Sea.
 
헌데 이 코르프섬. 케르키라. 600제곱키로 크기 섬.이야. 알바니아 아래 맞은편 섬. 여기는 베네치아.가 끝까지 버틴거야. 아래 에피로스의 해변요새 와 함께. 나폴레옹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건 지금 그리스 땅이야.
 
코르프.는 아드리아해 나와서 이오니아해.에 있는겨. 코르프 아래에 이오니아 섬들 가장 큰 케팔로니아 Cephallonia 가 있어. 이게 800 제곱이 좀 안되고. 이 섬에 마주한 짝은 섬이 이타카 섬이야. Ithaka, Ithaca, Ithaki. 이타카 섬이.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 고향이야. 오뒷세우스.가 고생하고 돌아와서 여기서 구혼자들을 다 죽이는거야. 헌데 저 위 코르프섬.이 일리아스.의 이타케란 설이 또한 있어. 여하튼 베네치아는 여기까지는 버틴겨 오스만애들에게. 음청나 이 베네치아란 나라는.
 
코르프.는 베네치아가 해상으로 드나드는 길목이야.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 코린토스 코르프.가 3대 해양국가 였대. 고대로마때는 바로 맞은편 구에피루스.라는 프로빈키아.의 관할이었다가. 게르만애들도 여기 약탈하고 지나가고 슬라브에 아바르 애들이 발칸을 점령하고서리. 비잔틴이 서기 700년 직전에야 정신들면서 테마.들이란 테마타.로 행정구역 서기 시작하면서 이민족들 내몰때 여긴 9세기 초에야 비잔틴의 테마.가 되는겨. 케팔로니아 이타카 코르프 등 이오니아섬들이 케팔로니아 테마. 로 한 덩치가 돼. 이 맞은편 에피로스가 니코폴리스 테마.인거고 아테나이쪽이 헬라스 테마.야.
 
이오니아섬들은 비잔틴 입장에서 중요한게. 이전 알바니아 처럼. 바다건너 이탈리아 뒷굽과 시칠리아가 비잔틴꺼야. 저길 지키는 전초기지야 이 섬들이. 또한 무슬림 해적들의 타겟이 되는거고. 여길 베네치아.가 오스만 전쟁 발발 직전인 서기 1386년에 직접 수중에 넣고 오스만에 삼백년 이상을 버틴거야 여기서. 
 
3백년 전쟁의 시작이 불가리아 북쪽 니코폴리스 십자군에 참여한것 부터야. 서기 1396년
 
 
본격적으로 둘이 붙는건 1416년 갈리폴리 전투.
 

Map of the southern Balkans and western Anatolia in 1410, during the later phase of the Ottoman Interregnum

바예지드1세.가 니코폴리스 십자군 이기고 1396. 오른쪽에서 오는 티무르.랑 전쟁을 해. 앙카라 전투. 1402. 여기서 패하고 티무르에 포로가 되서리 끌려가서 죽어. 1403. 오스만이 십년 내전을 해. 메메드1세 가 술탄에 올라 1413년. 
 
1410년.의 지도야 애개해 주면의. 
 
세르비아.는 데스포테이트.가 이전 짜르를 잇는거고. 구석 제타.에 작은 세르비아.가 또한 있고. 제타 Zeta 아래 다그눔 Dagnum 요새와 해변. 그 아래 두러스. Durazzo 아래 코르푸섬 Corfu. 은 같은색.인 베네치아야. 나중 저 다그눔 때문에 베네치아와 알바니아.가 오스만와중에 전쟁하는 빌미지역이야. 알바니아.는 저 직후 오스만에 에얄레트와 산자크.로 들어가는거고 바로 독립 귀족들이 각 지역에서 반란하고 전쟁들 하는거고.
 
보이오티아 Boeotia 아테네 Athens 는 아테네 더치. 모레아 왼쪽의 아카이아 Achaea 와 그 주변은 각 영지. 이들은 십자군 4차에 따라온 라틴제국에 속하던 프랑크 애들이야. 
 
팔라이올로고스.의 비잔틴.은 콘스탄티노플. 칼키디키 Chalcidice. (할키디키) 삼지창 반도. 안쪽 해변도시 테살로니카. Tessalonica . 반도 오른쪽 섬들이 타소스 Thasos 렘노스 Lemnos 임브로스 Imbros. 위에 섬들은 아직 비잔틴 꺼야.
 
터키땅은 오스만의 북서쪽 외엔 다들 다른 베이들의 베일리크.들이야. 
 
이 해변에 부채살 모양 큰 섬이 레스보스 Lesbos. 아래 키오스 Chios . 아래 사모스 Samos .여긴 제노바 공화국의 섬들이야.
 
이 아래 큰섬 로도스 Rhodes 섬있는 붉은 섬들은 병원기사단들 섬이야. 
 
이 외에의 애개해 가운데 섬들은 모두 베네치아 꺼야. 에우보이아 앗티카의 아테네 덧치.위의 에우보이아 Euboea 의 네그로폰테 킹덤 Negroponte 도 베네치아 꺼야. 더하여 모레아 의 드문드문 해변지역.에피루스의 해변지역.도 베네치아 공화국꺼야. 크레테 섬도 베네치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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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내전 10년 전쟁을 마무리하고 메메드 1세.가. 그러면서 아나톨리아땅 다지다가. 베네치아에서 협정을 마무리 하려해. 자기들은 중립이니까 우리의 무역로를 막지 말고 니랑 나 에프티에이 하자고. 이전에 협약이 되었는데 니가 이행을 하라. 
 
메메드1세.가 이거에 빈정이 상해. 오히려 저 애개해 섬들을 점령을 하려는거지. 얜 내전 직후야. 바다는 경험이 약해. 헌데 아나톨리아에 접한 레스보스  키오스 사모스.의 제노바.는 술탄에 고개숙여. 로도스의 병원기사단도 안대들어. 
 
메메드1세가. 저 가운데 섬들을 누비면서 베네치아 섬들을 약탈하는겨. 민들을 잡아 노예로 부리고. 에우보이아 섬까지 가서 포격하고 약탈을 해.
 
이걸 베네치아.가 복수를 하는거야. 이게 1416년 갈리폴리 전투. 여긴 오르한.이 발칸에 발담굴때 시작이야. 오스만애들 거점이야. 흑해로 들어가는 입구고. 여길 12척의 갤리선들로 세배 이상의 쟤들 배들을 쳐부스고 반을 약탈하고. 포로가 되었던 그리스도 사람들을 꺼내와. 투르크 인들도 포로로 잡고. 그리스도 사람들중에 갤리선 노예들은 풀어줘. 투르크 용병으로 들어간 사람은 죽여. 나중에 포로교환을 해.
 
메메드1세.가 이 전투로 베네치아에 겁을 먹는겨. 해상력이 아닌겨 아직 얘들은. 얘들은 케말 리스. Kemal Reis (c. 1451 – 1511). 그리고 하이레든 바바로싸.의 4형제들. Hayreddin Barbarossa  (TurkishHızır; c. 1478 – 4 July 1546) 나올때인 서기 1500년 대에나 베네치아를 바다에서 상대할 수가 있어. 케말 리스.가 갈리폴리 전투의 갈리폴리 태생이고. 붉은수염 하이레든. 히지르.가 레스보스 섬 태생이야. 
 
 
베네치아.가 저때부터 오스만의 해전력을 우습게 여겨. 오스만도 해전이 안된다는걸 느껴. 헌데 베네치아가 저때부터 오히려 방심을 하는거야.
 
 
1410년 지도에서 삼지창 칼리킬리 반도에 텟살로니카에 그리스 해변들이 비잔틴꺼로 되어있는데. 이건 이미 무라드1세와 바예지드1세 때에 다 오스만땅이 되었던거야. 10년 내전때 다시 비잔틴이 회복을 한겨. 이 비잔틴이 내전때 메메드1세.를 지원하걸랑. 해서 메메드1세.가 비잔틴이랑은 사이가 좋아. 저길 인정해 줘. 그러다가 아들 무라드2세 때에. 비잔틴이 인정을 안하고 자기가 술탄이다 하고, 쟤 삼촌 핏줄 무스타파.를 옹립을 하걸랑. 해서 얘가 아나톨리아 까지 가서 날뛰는걸 무라드2세가 교수형으로 죽이고는 비잔틴이 적이 되는거야.
 
이전 오스만이 갖았던 땅을 다시 갖고 오려는거야. 저기서 중심지역이 텟살로니카. 인거야. 여길 얘가 봉쇄를 하는겨. 서기 1422년부터 저게 8년 간이야 
 
Unable to provide manpower or resources for the city's defense, its ruler, Andronikos Palaiologos, handed it over to the Republic of Venice in September 1423.
 
 
비잔틴.이 일년 버티다가. 저길 베네치아.에게 넘겨. 1423년 9월에. 베네치아.는 술탄에게 우리땅이니 오지말라는거고. 술탄은 원래 무라드1세 할배가 갖고온땅을 왜 니덜이 중간에 쌔벼갔냐 하는거고. 베네치아가 나머지 7년을 버틴겨 이걸. 그러다 넘긴게 텟살로니카 함락.이야. 1430
 
무라드2세.가 텟살로니카.를 함락하고 1430. 바르나 십자군 전투를 이기는게 1444. 열두살 꼬마에게 물려주고 담시 은퇴하다 복귀해서 코소보.가서 헝가리 훈야디 물리치고 1448. 알바니아 전투하다 병걸려 죽고. 다시 복귀한 19세 짜리 아들 술탄 메메드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해 1453. 비잔틴은 역사에서 사라져.
 
그리고는 애개해 섬들과 해변을 정리를 시작하는겨 메메드2세가. 얘가 19세에 다시 오르고. 30년을 술탄을 해. 1451-1481.
 
먼저 세르비아 쪽으로 가. 코소보는 아빠가 먹었어. 그 위 베오그라드 전투. 1456. 헝가리 훈야디. 마티아스 아빠가 버텨서 못뺏어. 베오그라드는 증손자 위대한 술레이만 때 점령돼. 1521
 
He sent his army, which captured Smederevo in June 1459, ending the existence of the Serbian Despotate.[23]
 
내려와서. 스메데레보. 세르비아 짜르를 이었다는 데스포테이트.야. 여길 함락하면서 세르비아의 큰 가지가 지워져 역사에서. 세르비아의 마지막.은 제타 Zeta 야. 1499. 이전에 브래드필드 전투.도 세르비아가 헝가리에 지원해서 이긴거고. 세르비아는 공식적으로 1499년.에 오스만에 들어간거야. 불가리아보다 백년이상을 버틴겨.
 
Conquest of Morea (1458–1460)
 

 

세르비아 큰거 하나 정리하고. 다음이 아래 펠로폰네소스 라는 모레아. 여긴 콘스 점령 전에 먼저 정리하려다가, 여기 군주가 팔라이올로고스 조. 마지막 비잔틴황제의 동생 둘.이야. 여기 민들이 알바니인들 중심으로 반란을 해. 군주가 메메드2세에 하미지를 해서 일차 진압이 돼. 민들은 기존 군주가 싫어서 차라리 오스만 술탄을 더 좋아하는거지. 이 상태에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을 하고. 세르비아 갔다가. 여길 직접 수중에 넣은거야. 동생은 술탄 밑으로 들어와서 나중 수도사가 되고. 형은 망명해서 임시정부 차리고. 
 
 
임시정부.라는 건 말야. 조오오온나게 흔한겨 저게. 
 
 
전 세계사에서. 임시정부 몇주년 해  대는 나라 임시정부를 휴일 기념일 하는 나라.가 대체 어딜까?
 
 
역사가 있잖니 우리네가. 먼가 드러내고 자랑할게 없걸랑 이게. 그러니 저런 거라도 해야지.
 
독립 유공자니 무슨 유공자니. 흔해 빠진게 또한 어딜까. 그 유공자들에게 돈 세금 퍼날르고. 유공자의 자식에 자식에. 
 
전 세계사에서 저런 경우가 어딜까 저게. 

 

 

 

베네치아는 모든 시민들이 그럼 유공자들이고 유공자 자식들이고 모두 연금 줘야지. 
 
프랑스 들은 다 프랑스 폭동이라는 혁명의 유공자 자식들 수십 수백만이겄네. 
 

 

 
이땅은 말야. 역사가 없어 조선건국이래 7백년째. 고려. 코리아가 죽고. 조선이 고려를 씨를 말리고는. 그때부터 이땅바닥 역사는 개 쓰레기가 된겨 이게. 하늘의 고려 사람들이 조선 민족들의 짓들을 보면 원통할껴. 이 조선 이란 들은 정말 인류사에서, 과거나 지금이나, 이따위로 포장질 해대는. 이따위 이야긴 없어.
 
쟤들 하는거 보면. 저 동유럽 애들 집안은 모~~두 유공자여. 서유럽 애들도 모~~두 유공자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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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ani Peninsula, on the Morea's south end, resisted under a loose coalition of local clans, and the area then came under the rule of Venice
 
모레아.에서 남서끝 반도인 마니반도지역은 베네치아 꺼야 아직.
 
Conquests on the Black Sea coast (1460–1461)
 
그리고선 일단 애게해의 베네치아 섬들을 뒤로하고. 흑해 남부해변의 트레비존드 제국.으로 향해. 여긴 십자군 4차 직전에 비잔틴애들이 와서 독립 제국 선언하고 4반세기가 지난겨. 이때 직접 메메드2세가 암벽 타고 올라가는 행군하는거고, 속지의 영주가 엄마시켜서 술탄이 왜 직접 이리 고생하냐 하니까, 머더시여, 이런 고행없이 내일을 맞이하면 나는 이슬람 가지.전사 가 아니요. 부끄러워서 얼굴빨개져요. 했던거고.
 
Submission of Wallachia (1459–1462)
 
그다음이 왈라키아.가는거야. 여기서 드라큘라 백작 캐릭 블라드3세.가 2만명 이상 사람들 임페일러로 죽은 시체를 보게 되는거고. 몰도바 아래 해변 점령하고 오고.
 
Conquest of Bosnia (1463)
 
보스니아를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 보스니아 킹덤의 킹은 베네치아.에 지원요청하고, 베네치아는 다음 타깃이야. 여력이 없어.
 
 
Ottoman-Venetian War (1463–1479)
 
그리고는 베네치아.와 전쟁이야. 13년간. 갈리폴리 1416.에 텟살로니카 함락 1430. 다음에 30여년 후에 붙은겨. 베네치아는 모레아 해변에 에우보이아 섬에 크레타섬에 위 자잘한 섬들 이걸랑. 
 
Campaigns in the Morea and the Aegean, 1463–1466
 
The war in Albania, 1466–1467
Final Albanian campaigns, 1474–1479
 
모레아 와 애개해 섬들에서 삼사년간 전쟁하는겨. 섬들을 뺏기고 빼앗고, 이전 비잔틴 섬들인 위의 타소스 임브로스 사모트라키 섬들도 베네치아가 재점령하기도 해. 이미 레스보스 라는 제노바 공화국의 섬들은 술탄에 하미지를 했어. 저기도 베네치아가 쳐들어가. 
 
로도스 섬의 병원기사단은 버텨. 베네치아.는 이집트 맘룩애들이랑 장사하는 장사꾼들이야. 병원기사단이 베네치아와 거래하는 맘룩애들 배들을 납치해. 베네치아가 로도스에 쳐들어가서 병원기사단과 싸울뻔도 해. 
 
모레아.는 이전에 베네치아가 비잔틴껄 갖고오면서 해변을 넓혀. 술탄이 딴데 신경쓰는 기간에. 그리고 치열하게 버티다가 결국 오스만 것이 대부분 돼.  에우보이아 큰 섬도 3년 후인 1469년에 오스만 것이 돼. 
 
그래도 모레아의 마니반도의 요새는 베네치아가 버티고 갖고 가.
 
아직 바다는 오스만이 약해. 이 상태에서 얘들은 알바니아 로 가는겨. 알바니아는 여전히 반란이야. 여기에 베네치아가 지원하는거야.
 
베네치아 입장에선 아드리아해 나오고 이오니아해변이 자기들 길목이야. 이들은 뱃길을 뺏기면 죽는겨. 무역으로 먹고사는 이들이라. 
 
알바니아.가 1432년부터 봉기해서 1479년까지 50년을 싸워. 각 귀족들이 레저동맹도 이루고, 각 지역에서 자치구를 두면서. 여길 베네치아.가 같이 싸우는거야 알바니아와 손잡고.
 
The Siege of Shkodra of 1478–79 was a confrontation between the Ottoman Empire and the Albanians[7][8][9] and Venetians at Shkodra (Scutari in Italian) and its Rozafa Castle during the First Ottoman-Venetian War (1463–79).
 
슈코더 전투. 1479년에 끝난 만 2년 걸린 전투야. 슈코더.가 알바니아 북쪽 끝 꺾인 곳이여. 여기에 세르비아 제타.가 있어. 이 부근은 역시 베네치아의 해변이고. 세르비아 제타.와 알바니아와 베네치아.가 오스만을 상대하는겨. 오스만이 이겨. 저걸로 알바니아지역은 거의 오스만이 다시 진압한거고, 뒤에 두러스 전투로 마무리하고. 오스만은 알바니아를 아주 조각조각 산자크들로 나누는거야. 두러스.는 베네치아꺼였어.
 
Conquest of Karaman and conflict with the Akkoyunlu (1464–1473)
War with Moldavia (1475–1476)
Conquest of Genoese Crimea and alliance with Crimean Khanate (1475)
Expedition to Italy (1480)
 
메메드 2세. 정복자.가 베네치아 랑 전투하면서 동시에 말야. 아나톨리아를 재통일하고. 몰도바도 다시 재점령하고 제노바의 영지였던 크림반도도 점령하고. 다음 이탈리아 원정을 가는겨. 
 
12세때 술탄해서 2년후 14세에 아빠한테 실망감 주고 쫓겨나서 5년간 술에 쩔고 남색만 즐긴거로 소문난 인간이. 음청난 인간이 되서 돌아온거야 19세에. 그리고 30년을 한거야. 오스만제국은 이인간이 만든겨 이게. 베네치차 사신이 얠 처음 보고 대화해보곤 공포에 떨걸랑. 웬만한 언어를 다 하고, 모르는 이야기가 없어. 인문학 쌓은 지식이 엄청나. 이걸 본국에 알려. 그리고 당한게 콘스탄티노플 함락이야. 걍 칼잡이가 아냐 쟤들이.
 
아나톨리아 땅은 이전 바예지드1세때 통일을 한번 했어 느슨하게. 티무르때문에 죽고 다시 분열한걸 60년만에 얘가 한겨.
 
The Battle of Otlukbeli or Otluk Beli was a battle between Ak Koyunlu and the Ottoman Empire that was fought on August 11, 1473.
 
오트룩벨리 전투. 1473년. 아나톨리아 동쪽 가운데지역이야. 오스만 제국이랑 아크 코윤루. 의 전쟁. 이건 각각 십만대군 끼리 전쟁하는겨. 대전이야 그야말로. 메메드2세가 직접 참전해. 
 
The Aq Qoyunlu or Ak Koyunlu, also called the White Sheep Turkomans (Persianآق‌ قویونلو‎ Āq QuyūnlūAzerbaijaniAğqoyunlular/آغ‌قویونلولارTurkishAk Koyunlu), was a Persianate[3][4] Sunni[2] Oghuz Turkic tribal confederation that ruled parts of present-day Eastern Turkey from 1378 to 1501, and in their last decades also ruled ArmeniaAzerbaijan, most part of Iran, and Iraq.[5]
 
The Kara Koyunlu or Qara Qoyunlu, also called the Black Sheep Turkomans (Persianقره قویونلو‎), were a Muslim Oghuz Turkicmonarchy that ruled over the territory comprising present-day AzerbaijanGeorgiaArmenia, northwestern Iran, eastern Turkey, and northeastern Iraq from about 1374 to 1468.[2][3]
 
코윤류.가 sheep 양. 이고. 아크.가 하양. 카라 가 검정. 저들은 트르코맨. 투르크맨 turkmen 이야. 투르크.의 가지 민족이야. 이들 땅이 지금 투르크메니스탄. 이고. 여기 위가 우즈베키스탄 이 길게 접하고 이 위가 카자흐스탄.이야.
 
아크 코윤루.는 터키땅 동남부. 시리아 접경에서 세운겨. 카라.는 먼저 세워. 얘들은 파키스탄 서북부에서 시작해. 나중 백양이 흑양을 이기고. 이 백양이 오스만의 메메드2세랑 전쟁을 한거야 십만대군끼리. 
 
몽골 일칸국.이 사라지고. 난립할때 먼저 등장한게 몽골핏줄 티무르.야 1370년. 흑양이 1374에. 백양이 1378에 시작해. 티무르.가 앙카라 전투.로 바예지드1세 포로로 잡고 죽고. 나서 다음에 저 땅에서 실세가 된 애들이 아크 코윤루.라는 백양 투르크맨.들이야. 이걸 메메드2세.가 승리 하는거야. 그리고 나서 곧 20년 후에 사파비.가 들어서는겨. 사파비.는 메메드2세 덕에 들어선거지. 
 
베네치아를 모레아 섬에서 대부분 몰아내고, 에우보이아 섬도 차지하고. 알바니아도 진압하다가 터키땅 본토를 다 통일을 해. 그리곤 흑해 건너 크림반도.도 점령하고 여기 스텝 타타르들은 하미지하고.
 
The Ottoman invasion of Otranto occurred between 1480 and 1481 at the Italian city of Otranto in Apulia, southernItaly. Forces of the Ottoman Empire invaded and laid siege to the city and its citadel
 
그리곤 이탈리아의 오트란토 침입. 오트란토.는 뒷굽.이 셀란토.selanto 란 지역이고. 무릎뒷까지를 아풀리아 apulia 지역 하는거고. 여 발꿈치 자리가 오트란토. otranto 야. 발굽 안쪽이 타란토 taranto 이고. 여기 요새를 점령하는건데. 알바니아 해변을 점령하고 맞은편 여기를 점령해서 바다 병참길 확보에 전초기지로 삼는거지.
 
St. Antonio Primaldo and his companion martyrs (ItalianI Santi Antonio Primaldo e compagni martiri), also known as the Martyrs of Otranto, were 813 inhabitants of the Salentine city of Otranto in southern Italy who were killed on 14 August 1480. The mass execution is often explained as taking place after the Otrantins refused to convert to Islam when the city fell to an Ottoman force under Gedik Ahmed Pasha.
 
저기를 점령을 하고, 여기 거주민 813명을 죽여. 1480년 8월 14일.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했는데 거부를 한거야. 오트란토.의 순교자들. 이라고 해. 하튼 이슬람은 쓰레긴데 이 개들은. 쟤들이야 그리스도 싫으면 나가. 한거지 스페인에서는. 이들은. 죽여. 노예로 끌려잡아서 노꾼으로 써 발목 수갑채우고. 배가 빠지면 다 죽는겨. 베네치아가 갈리폴리 전투할때 이십여척의 오스만 갤리선들이 침몰해. 저 안에 노꾼들 각각 수십명이 있걸랑. 다 죽는겨 그냥. 베네치아는 노꾼을 노예를 쓰질 않아.
 
 
메메드2세.는 저까지 하고. 1481년.에 죽어. 얜 엄청난 였어.
 
 
 
 
 
 
이게 저까지의 내용이고.
 
 
헤럴드경제
[적산건축 100년] 친일잔재 지워가는 도로명…“주민설득이 관건”
인촌로→고려대로, 백일로→학생독립로 
주민·사업자 50% 이상 동의해야 
“공과 따져봐야” 반발도 적지 않아
기사입력 2019-02-28 10:04
 
이름 바꾸면 친일잔재가 없어지고 친일청산이 되서리 정의가 서는건가. 고려대를 없애 아예. 서울대도 일본이 만든거니 없애고. 미 제국주의 잔재도 없애. 대학교를 다 없애라 ㅋㅋㅋ.
 
참 한심한건데 말야. 참 이상한 땅이야 여기가. 친일잔재가 지워지면. 위대한 조선 잔재가 남는거고 그 이름은 정의여? ㅋㅋㅋ.
 
 
알바니아. 보스니아.가 말이지. 절반이 이슬람이야. 지금현재. 투르크 잔재 청산 을 왜 쟤드른 안하냐 그래. 정의가 설틴데.
 
 
적폐. 잔재. 청산. 재미께들 산다.
 
중국 청산은 없냐? 한문을 없애. 아 참 그래서 한글전용 떠드는 거지 참.
 
중국몽을 함께해유! 는 그럼 머냐. 일본몽은 함께 안하냐? 
 
중국에 대한 향수는 로마에 대한 켈트 게르만애들 향수랑 같은거냐. 쟤들은 로마 식민지 겪고서도 로마청산이니 로마 잔재니 그따위 은 안하걸랑. 중국이 로만가 . 하기사 사마천이 헤로도토스 보다 위대한 역사가 해대니. 
 
참 한심한 땅이야 여기가.
 
 
 
 
오스만 베네치아의 본격 1차 전쟁들은 해전이 아냐. 해변에서 베네치아가 수성전. 농성전을 하다가 모레아에서 나간거고 에우보이아섬을 뺏긴거야. 애개해섬들은 그래도 갖고 있는거야. 오스만이 해전에는 약해 아직. 
 
헌데 드뎌 등장한게 카멜 리스. 라는 갈리폴리 태생 해군제독인겨. 그리고 다음 술탄 바예지드2세. 1481-1512. 이인간도 30년 술탄이야. 30대 중반에 술탄에 올라. 저때 스페인 레콩퀴스타 끝하면서 알함브라 칙령으로 이교도들 내쫓을때 얼씨구나 하고 유대인들을 실어날은 술탄에 해군제독인겨. 오스만 제국은 이인간이 정신문명을 만든거야. 업적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실재 배후는 바예지드2세야.
 
 
Kemal Reis (c. 1451 – 1511) was an Ottoman privateer and admiral. He was also the paternal uncle of the famous Ottoman admiral and cartographer Piri Reis, who accompanied him in most of his important naval expeditions.
 
케말 리스.가 술탄이랑 비슷한 연배여. 삼촌이 역시 지도제작자.에 일명 제독이야. 바다를 태생적으로 잘 알수밖에 없어. 
 
The naval Battle of Zonchio (TurkishSapienza Deniz Muharebesi, also known as the Battle of Sapienza or the First Battle of Lepanto) took place on four separate days: 12, 20, 22 and 25 August 1499
 
존키오 전투. 지금 Pylos 퓔로스. 모레아 섬의 서남쪽 해변이야. 
 

Assyrian warship, a bireme with pointed bow, 700 BC

 

기원전 700년.의 앗시리아 전함.

 

bireme is an ancient oared warship (galley) with two decks of oars, invented and used by Greeks even before the 6th century BC

 

바이.림. 이라고 읽는데. 바이.가 둘. 이라는게 양쪽해서 둘.이 아니라. 한쪽이 2층이란거야. 저 그림상 배위에서 젓는 노. 아래 구멍을 뚫고 젓는 노. 해서 세로줄.이 두개란 거야.  림. reme 이 노. oar 야. 저 단어가

 

 

trireme (/ˈtrrm/; derived from Latin: trirēmis[1] "with three banks of oars"; Ancient Greekτριήρης triērēs,[2] literally "three-rower") was an ancient vessel and a type of galley that was used by the ancient maritime civilizations of the Mediterranean, especially the Phoeniciansancient Greeks and Romans.[3][4]


트라이 림. 이건 세로줄에 노가 세개야. 저 그림상 노가 한 횡에 30개인데. 3층이야. 한쪽에 노가 90개가 있고 반대에 90개 총 180개에 노꾼이 180명인겨. 
 
As a ship it was fast and agile, and it was the dominant warship in the Mediterranean during the 7th to 4th centuries BC, after which it was largely superseded by the larger quadriremes and quinqueremes. Triremes played a vital role in the Persian Wars, the creation of the Athenian maritime empire, and its downfall in the Peloponnesian War.
 
기원전 7세기에서 4세기.는 전함이 저 트라이림. 이 압도적이란거지. 페르시아전쟁 때 쓰이던 배가 저런 배야.
 
The Battle of Salamis (/ˈsæləmɪs/Ancient GreekΝαυμαχία τῆς ΣαλαμῖνοςNaumachia tēs Salaminos) was a naval battlefought between an alliance of Greek city-states under Themistocles and the Persian Empire under King Xerxes in 480 BC which resulted in a decisive victory for the outnumbered Greeks. The battle was fought in the straits between the mainland and Salamis, an island in the Saronic Gulf near Athens, and marked the high-point of the second Persian invasion of Greece.
 
살라미스 해전.이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가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하고. 다리우스1세 죽고. 크레르크세스.가 다시 쳐들어올때 아테네 위 살라미스 섬 이 있는 사로니코스 만.이야. 코린토스지협으로 둘러쌓인곳이고. 여기서 아테네가 300 척의 배로 두세배의 페르시아 전함들을 이기는거야. 이때의 배.가 저 트라이림.이야. 아테네가 압도적으로 이겨. 페르시아애들이 망한건 감히 스텝들 주제에 배로 덤벼서 망한겨 이 멍청한 들이. 
 
The Battle of Actium was the decisive confrontation of the Final War of the Roman Republic, a naval engagement between Octavian and the combined forces of Mark Antony and Cleopatra on 2 September 31 BC, on the Ionian Seanear the promontory of Actium, in the Roman province of Epirus Vetus in Greece.
 
악티움 해전. 기원전 31년.에 아우구스투스.가 되는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리파.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랑 싸우는거야. 클레오파트라. 이 미친년이 이집트에서 배타고 직접 와 여길. 이때 등장하는 배가.
 
The hexareme or sexireme (LatinhexērisGreekἑξήρηςhexērēs) is affirmed by the ancient historians Pliny the Elder and Aelian to have been invented in Syracuse.[42]"Sixes" were certainly present in the fleet of Dionysius II of Syracuse (r. 367–357 and 346–344 BC),
 
헥사림. 세로줄 하나에 노가 여섯개여. 기원전 4세기에 있었어. 이걸 클레오파트라.가 타고온겨. 데크. 갑판이 높은겨 이건. 엄청난 배야.
 
Like the septireme, the deceres (Greekδεκήρηςdekērēs) is attributed by Pliny to Alexander the Great,[45] and they are present alongside "nines" in the fleet of Antigonus Monophthalmus in 315 BC. Indeed, it is most likely that the "ten" was derived from adding another oarsman to the "nine". A "ten" is mentioned as Philip V's flagship at Chios in 201 BC, and their last appearance was at Actium, where they constituted Antony's heaviest ships.[50]
 
데케레스. 10 층짜리 노.도 있었어. 알렉산드로스 대제때. 
 
The tendency to build ever bigger ships that appeared in the last decades of the 4th century did not stop at the "ten". Demetrius Poliorcetes built "elevens", "thirteens", "fourteens", "fifteens" and "sixteens", and his son, Antigonus II Gonatas had an "eighteen", while Ptolemy II's navy fielded 14 "elevens", 2 "twelves", 4 "thirteens", and even one "twenty" and two "thirties".[9][50]Eventually, Ptolemy IV built a "forty" (tessarakonteres) that was 130m long, required 4,000 rowers and 400 other crew, and could support a force of 2,850 marines on its decks.[51] However, "tens" seem to be the largest to have been used in battle
 
아이 . 한줄에 40개 짜리 배도 있어 닝길. 만들었대 이걸. 미친거지. 큰겨. 전함으론 못쓰고. 전함으론 10 줄 노가 최대치인거고.
 
 

 

Venetian great galley with three sails taking pilgrims to Jerusalem (Conrad Grünenberg 1486/7).

 

서기 1486년. 예루살렘에 순례가는. 돛이 세개인 베네치아 갤리선. 중세에는 걍 저리 단층이야. 노가 한면에 삼사십개 있고. 

 

 

A model of a Maltese design typical of the 16th century, the last great era of the war galley
병원기사단이 16세기에 쓰던 겔리선. 지중해 배가 북유럽 배들과 또한 달라. 바람변화가 심한게 이유고. 데크가 낮아. 돛을 같이 활용하면서 기민하고 빠르게 움직이는겨. 지중해의 배 기술이 가장 압도적인거야 이게. 이것과 다른 문명애들 배와는 비교를 할 수가 없어. 그 수준이. 
 
저기에다가 15세기 중반 넘어서면서. 대포를 올리기 시작하는거야. 해서 한 갤리선에 200명 정도로 봐. 백명이 노꾼이고. 백명이 전투병력이야. 베네치아.는 노꾼이 전투병을 병행해. 무슬림애들은 노꾼을 족쇄로 묶인 그리스도 노예들로 써. 해전에서 배 침몰하면 노예들은 다 죽어. 어차피 노예사냥 하면 되니 관시미 없고. 이 무슬림애들의 노예장사.는 또한 역사가 눈을 감는거지.
 
세계사를 말야. 지금 유럽들이 이겼다고, 모든 그림자는 유럽애들 탓 하는데, 그러면서 정작 패한 문명의 들의 그 어마어마한 드러운 짓은 싸악 가려지는겨. 아주 대표적인게 이 조선 문명이고. 저 무슬림들의 개쓰레기짓들은 정말 음청난겨. 헌데 이들 역시 말이지. 자기들 잘못은 단 하나 인식안하고 지들 못사는건 서양들 탓이고 테러 해대면서 민족 민족 대면서 민족 자립 개 하는거지.
 
 
똑같아 저 구조가.
 
 
오잉. 트럼프랑 파토났네. 참 협박할게 없어서 핵으로 협박질 해대는 나. 저따위 개 쓰레기 살인집단 들이 우리네 동포요 도와줍세다 퍼줍세다 인민 평등 한민족임둥 개.
 
 
창피한거야 저 수준이.
 
 
In January 1499 Kemal Reis set sail from Constantinople with a force of 10 galleys and 4 other types of ships, and in July 1499 met with the huge Ottoman fleet which was sent to him by Davud Pasha and took over its command in order to wage a large scale war against the Republic of Venice. The Ottoman fleet consisted of 67 galleys, 20 galliots and about 200 smaller vessels.
 
 
존키오 전투에서. 케말리스.가 갖고가는 전단이 67 갤리선. 20 갤리옷. 그외 200여개 소형선. 
 
갤리선 하면 200명 안쪽이고, 갤리옷.은 150명 내외로 봐. 짝은 갤리선이야. 해병애들이 삼사만명이 간겨 저게. 어마어마한 전투야
 
베네치아.가 병력이 저것보다 쪼금 떨어져. 저걸 오스만이 이기는겨. 얘들이 본격적인 해전승리 첫 베네치아와의 시작이 저거야.
 
In December 1499, the Venetians attacked Lepanto with the hope of regaining their lost territories in the Ionian Sea. Kemal Reis set sail from Cefalonia and re-took Lepanto from the Venetians. He stayed in Lepanto between April and May 1500, where his ships were repaired by an army of 15,000 Ottoman craftsmen brought from the area. From there, Kemal Reis set sail and bombarded the Venetian ports on the island of Corfu, and in August 1500 he once again defeated the Venetian fleet at the Battle of Modon. Kemal Reis bombarded the fortress of Modon from the sea and captured the town.
 
그리고 바로. 베네치아는 레판토를 공격해. 여긴 코린토스 해협 입구야. 나중 레판토해전의 전초전. 케말리스.가 다시 점령하고 코르푸 섬을 포격하고. 다시 모레야로 내려와서. 베네치아가 끝까지 있던 마니 반도 끝에 모돈.과 코론. Modon Coron 을 점령을 해. 
 
 In 1501 Feriz Beg captured Durazzo in Venetian Albania.
 
그리고. 두러스. 알바니아 중부 해변. 이 도시는 베네치아꺼였어. 여기도 뺏는겨 오스만이.
 
By the end of 1502, Venice and the Ottoman Empire agreed on an armistice.[1] On 31 January 1503, Venice signed another treaty with Vladislaus II, having already paid 124,000 ducats through the previous treaty, to pay 30,000 ducats a year for the same purpose.[1]
 
이제 오스만이 아드리아해로 쳐들어올 기세야. 저 해변은 크로아티아.고 곧 헝가리야. 헝가리 브와디스와프 2세. 보헤미아킹 겸임하는 야기에워. 마티아스 죽고 킹된 인간.이 교황과 함께 베네치아에 124000 두카트.를 주고. 더하여 매년 2만 두카트를 줘. 오스만 막아달라고. 베네치아가 전쟁 장사를 하는거지. 얘들은 돈 되는거면 다해. 더구나 곧 자기들을 수비하는 것이지만.
 
하튼 케말 리스.의 등장으로 해상 전투력이 확 생긴겨 이 오스만이. 바예지드2세때에 드디어.
 
  • The Third Ottoman–Venetian War (1537–1540), resulting in the capture of the Cyclades except Tinos, the Sporades and the last Venetian strongholds in the Morea (Peloponnese) by the Ottomans
 
 
그리고 삼사십년이 흘러. 바예지드2세는 영토 확장을 자제하고 유대인들 받으면서 내부를 다지는겨. 이 다음이 셀림1세. 1512-20. 압바스가 공식적으로 망.하고 이 칼리프.를 술탄이 병행해. 이 이슬람 들의 시작도 무함마드.가 칼을 쥐면서 술탄과 칼리프.가 하나가 된 거로 시작한거걸랑. 정교일치.는 자기땅 인간들과 남의땅 인간들을 학살을 해. 유교도 마찬가지야 이게. 조선이 개쓰레기가 된 이유가 종교와 정치를 일치를 시킨거걸랑.  가짢은 이념을 정치놀이로 써먹으면 그 땅은 똥떵어리가 되는겨. 이슬람 들은 저리 남들 죽이면서 망한 개쓰레기가 된거고. 이 조선 유교 정교일치는 지들 땅 사람들을 오백년동안 똥떵어리로 만든거고. 지금도 저딴 짓을 그대로 숭배질 찬양질 이음질을 하는거고.
 
셀림1세.는 레반트에 이집트로 향해. 유럽은 그래서 잠시 살만해진겨. 
 
The Battle of Chaldiran (Persian: جنگ چالدران‎; Turkish: Çaldıran Muharebesi) took place on 23 August 1514 and ended with a decisive victory for the Ottoman Empire over the Safavid Empire
 
칼디란 전투. 사파비.가 서기 1500년 직후에 들어섰어. 티무르와 백양 흑향 투르크멘들 등 스텝들 다 조진겨 얘들이. 그리고는 서진하는걸. 셀림1세가 페르시아 접경 서북부에서 막아. 각각 십만 대군들이야. 얘들은 전쟁규모가 엄청나. 이걸 이겨. 
 
The Ottoman–Mamluk War of 1516–1517 was the second major conflict between the Egypt-based Mamluk Sultanateand the Ottoman Empire, which led to the fall of the Mamluk Sultanate and the incorporation of the Levant, Egypt and the Hejaz as provinces of the Ottoman Empire.
 
오스만 맘룩 전쟁. 1516-7. 칼키돈 전투 다음해부터 2년간. 이걸 이기고 레반트. 이집트. 헤자즈. 아라비아반도의 홍해변.을 셀림1세가 먹는거야. 그러면서 말야. 칼리프도 되고. 이 소식을 북아프리카 해적애들이 들어. 해적애들이 칼리프에 들어가는겨. 해적 소굴이 정식 하미지 받은 영지가 되고 해적들이 해군 제독에 영주.가 되는겨 공식적인.
 
이 대표적인 인간이 붉은수염 하이드린. 하이레든 바바로싸. 이전 썰. 4형제.
 
Following the brutal five-month Siege of Rhodes (1522), Rhodes capitulated and Suleiman allowed the Knights of Rhodes to depart.[22] The conquest of the island cost the Ottomans 50,000[23][24] to 60,000[24] dead from battle and sickness (Christian claims went as high as 64,000 Ottoman battle deaths and 50,000 disease deaths).[24]
 
베네치아랑 전쟁하기 전에, 술레이만이 이집트를 먹고. 해전이 로도스 섬 전투야. 
 
26 June – 22 December 1522
 
6개월간 전쟁인데. 오스만 병력이 20만이고. 이걸 막는 병원십자군 연합이 6703명. 병원기사들이 703명에 6천명은 유럽에서 자발적으로 온 기사들이야. 이 20대 1의 싸움에서 오스만이 10만명이 죽었다는 설이 있고. 6만명이 죽었다고도 하고, 병원쪽은 5천명이 죽어. 협상을 하고
 
On 1 January 1523, the remaining knights and soldiers marched out of the town, with banners flying, drums beating and in battle armour. They boarded the 50 ships which had been made available to them and sailed to Crete (a Venetian possession), accompanied by several thousand civilians.
 
협상을 하고, 남은 병력이 로도스섬을 떠나면서 끈나는거야. 50척 배를 타고 크레테 섬으로 가. 이때 여긴 베네치아야. 그리고 이들이 몰타.로 가는겨. 
 
이 몰타섬 대포위전 1565년. 40년 만이야. 기사들 6천명에 시민군 9천명.이 4만명의 오스만을 막아서 버티고 오스만이 돌아가. 이 다음에 술레이만은 시게트바 전투에서 막사 생활하다 죽는거고.
 
저 병원기사단.은 엄청난 사람들이야. 더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한 기사애들.
 
 
 
쟤들은 먼가 달라. 저 유럽 들. 저 게르만 갈리아 들은.
.
 
이 다음이 오스만 베네치아 세번째 전쟁이야. 1537-40. 
 
이때 등장하는 인간이 하이레든 바바로싸.
 
오스만이 로도스 섬 전쟁은. 섬을 뺏았지만 이긴게 아냐. 완전히 대패한 전쟁이야.
 
진짜 승리는 붉은수염 하이레든이 하는겨.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스페인 제노바 시칠리아 나폴리 몰타 연합이지만. 오스만이 이겨. 당시 이탈리아 전쟁기간이야. 프랑수아랑 술레이만이랑 손잡았어 또한. 
 
베네치아가 지면서 키클라데스 섬들이 티노스.섬 하나 빼고 다 오스만 수중에 들어가. 하이레든 이 엄청난 인간이야
 
 
 
 
그리고 몰타 대포위전. 하고. 병원기사단이랑 싸우다 물러나고. 베네치아와 네번째 전쟁이 1570-73. 여기서 베네치아가 키프러스 섬을 빼앗기는겨. 코로나로 퀸에게 받은 섬을. 레판토 해전은 베네치아 스페인 연합군이 이기지만 손실도 컸어. 
 
  • The Fifth Ottoman–Venetian War or the Cretan War (1645–1669), resulting in the capture of Crete by the Ottomans
  • The Sixth Ottoman–Venetian War or the Morean War (1684–1699), resulting in the capture of the Morea (Peloponnese), Lefkada, Aigina and parts of Dalmatia by Venice and the end of Ottoman dominance in the eastern Mediterranean Sea
  • The Seventh and last Ottoman–Venetian War (1714–1718) (also called the Second Morean War), resulting in the recapture of the Morea (Peloponnese) and of Tinos and Aigina, the last Venetian holdings in the Aegean, by the Ottomans
 
백년 후 크레타 전쟁에서 베네치아가 크레타섬을 뺏기고. 다음엔 다시 모레아에 쳐들어가서 해변 갖고 오고 달마시아 지역도 다시 갖고오고 해서 오스만은 점점 바다에선 기울지만. 다시 7번째이자 마지막 전쟁은 오스만이 이겨. 오스만이 강한거 보다는 베네치아가 이제 힘이 다한거야.
 
 
베네치아. 는 위대한 공화국이었어.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쟤들 이야기 보다가. 요즘 삼일 위대한 민족지도자 어쩌고  . 아 증말 말야. 창피해도 너무너무너무 창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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