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라 쓰여진 글자의 초록색이 카르파티아산백이야. 저게 휙돌아서 헝가리 위 슬로바키아를 차지하고. 슬로바키아는 이걸 경계로 폴란드랑 나뉘는거고. 이 루마니아의 산맥 안쪽이 트랜실베니아.라고 해. 헝가리의 속주였어. 

 

루마니아.가 24만 제곱이야. 한반도 보다 쫌 크고. 아래 불가리아.가 11만 제곱. 남한 크기여. 세르비아.가 8만8천. 이 안에 코소보가 1만제곱 좀 넘고. 보스니아.가 5만 제곱이고 크로아티아는 5.5만제곱이야. 다들 남한땅도 안되는겨 저게. 한국이나. 북좃선 포함 한반도는 세계사에서 보면 큰땅이야. 이 큰땅에 말이지. 인물이 하나도 없는거지. 좃선이라는 오백년은 참 끔찍한건데. 해서 이들의 이 말야. 이 여뀌잎 크기 손바닥만한 땅에서 어쩌고 저쩌고 핑게를 대는겨. 이들은 남탓 아니면 땅크기 주작 탓. 참 골때리는 인종인데. 

 

별 같잖은거 같고 자랑스러운 역사에 요즘 보믄 참 저따위 주작질도 저게 보통 주작질이 아니걸랑. 저 미개한 슬라브들 이야기의 터럭 수준도 안되는 걸 들이밀고 저항의 역사 개 하는거 보믄. 기가차지도 않지.

 

그렇다고 저애들이 자기들이 숱하게 저항한 걸로다가 저따위 자랑 어쩌고는 안하걸랑 쟤들 조차도. 

 

헌데 이땅바닥에선, 이야기가 원체 없으니, 그런 이야기 조차 확대 포장해서 억지로다가 정체성을 주작질 할 수 밖에 없는거야. 이땅은 정체성.이란게 없걸랑 이게. 걍 좃선 이야 좃선. 민족 대지만. 친일청산을 하면 정의가 선대. 청산할 먼지를 지우면 그 아래 있는건 좃선이걸랑. 위대한 좃선. 아 끔찍한거지. 고려가 울지. 

 

세르비아.의 서쪽 경계가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에 아래 알바니아.여. 남쪽 경계가 마케도니아. 

 

세르비아.는 세등분해서 코소보 포함 아래를 남부. 그 위 베오그라드 까지를 중부 세르비아. 그리고 북부. 이리 나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하는데. 줄여서 걍 보스니아.라고 불러 이나라는. 이 나라는 지역을 크게 두개로 나눠.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헤르체고비나 지역은 사라예보.의 남부지방으로 몬테네그로.를 접한 삼각뿔 지역이야. 사라예보 포함 북부는 다 보스니아야.야. 

 

오스만이 여길 점령할때. 행정단위의 첫단위 에얄레트.라는 파샬리크.는 보스니아. 였어. 여기에 속하는 아래 단위 산자크. 중에 하나가 저 남부 헤르체고비나. 였어. 이게 굳어져서 지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된거야. 

 

훈족과 게르만이 이동하고 그 직후인 6세기에 슬라브와 아바르.가 들어오걸랑. 왼쪽으로 오는 애들은 저 해변 끝까지 들어가는겨. 알프스 끝에까지. 그리스땅 아래로 내려간 애들은. 스텝인 불가르애들이 일치감치 짜르 선언하고. 불가리아 왼쪽은 늦어 다들. 

 

세르비아.는 서기 천년 직후에 비잔틴의 테마.로 들어갔다가 독립하면서 정체성을 갖게 돼. 서기 1071년. 그리고 서기 1217년에야 킹덤이 서. 

 

왼쪽으로 들어간 슬라브들은 아바르.랑 전쟁을 해. 서기 6백년 전후 비잔틴과 아바르족 전쟁에서 이 슬라브들이 비잔틴 편을 들어서 아바르.를 이기고. 비잔틴의 허락하에 저 끝에를 정착을 하는거야. 로마.는 십자군 전쟁 시작하는 서기 1100년 이전엔 아무것도 아냐. 이전엔 비잔틴 오소독시.가 실세야. 저 가운데 지역은. 

 

그러다가 클로비스의 프랑크.가 점점 확장하다가. 샤를마뉴 이후 카롤라인, 카롤링거들이 알프스를 넘는거야. 

 

 

서기 972년.의 오토1세 때의 지도야. 빨간점선은 서기 1035년.

 

파란색은 튜튼족. 독일땅 게르만인거고. 파란 빗금은 튜튼의 Mark 마크. 후작령이야. 변경 지키는겨. 아래 옅은 초록색.은 사라센. 마우리족. 아랍족.의 지배란 거고.

 

HZT. 가 Herzogtum. 헤르조그툼. duchy 더치 공작령인거고. 저당시 보헤미아.는 공작령이야. 보헤미아 킹덤은 시칠리이 캉 프리드리히2세 황제때 되는겨 서기 1200년 직전에. 

 

튜튼땅 남부가. 슈바벤(스와비아). 바라리아.에서 이 알프스 넘은 빗금친 선이지금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걸치는거걸랑. 저기가 다 튜튼 신성로마제국을 막는 번국인거야. 마크. 맨 아래부터 Istrien . Krain. Karnten. 비엔나 있는 Ost. 저때 여긴 후작령이었다는거지. 이게 더치. 공작령이 되는겨. 

 

카른텐 Karnten. 가운데 지역이. 서기 천년 전에 바로 카린티아 carinthia 공작령이 돼. 서기 976. 여기 동쪽이 스튀리아 styria 마크.로 떨어져 나가서 얘가 또 더치.가 되는겨. 서기 1180

 

아래 Krain 크라인. 이 carniola 카르니올라.야 여기가 가장 늦어 더치가. 서기 1364년. 

 

비엔나의 Ost. 오스트리아 마크.가 더치. 되는건 서기 1156년. 

 

오스트리아 더치.는 대공국이 되었다가 20세기에 오스트리아 제국을 하는거고. 저 변경의 카린티아. 스튀리아. 카르니올라. 는 20세기 초까지 있다가 이게 쪼개지는겨 지금 나라들로.

 

할때 말야. 저 접한 마크 땅들은. 오스트리아 마크.는 게르만이 주류가 된거고. 그 아래의 카린티아. 스튀리아. 카르니올라.는 슬라브가 여기를 쑤셔 들어간겨. 나중 이들 때문에 저기가 지금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로 떨어져 나가는거야. 

 

저 외 크로아티아 땅에는 슬라브들이 아바르.를 이기고 비잔틴 허가하에 정착하면서 하미지 하다가. 프랑크애들이 저리 넘어 내려오걸랑. 그러면서 이젠 크로아티아 슬라브들이 프랑크 애들인 카롤링거들에게 하미지를 하는거야. 얘들은 이때 더치.라는 공작령으로 봐. 7세기 부터 정착해서 8세기 정도에 비잔틴에 하미지 하는 공작령에 다음 프랑크에 하미지 하는 공작령이 된겨. 그러다가 킹덤이 돼. 서기 925년. 보스니아땅도 얘들 땅으로 보는거야. 

 

The Battle of Gvozd Mountain took place in the year 1097 and was fought between the army of Petar Svačić and King Coloman I of Hungary. It was a decisive Hungarian victory.

 

1097년 그보즈드 산 전투. 크로아티아.가 시작한 다이너스티. 조. 가 200년도 안되서리 끊기고 내분중에. 헝가리 킹이 쳐들어가는거야. 저긴 자그레브 아래. 완전히 중심이야. 여기서 헝가리가 이기면서. 이때부터 크로아티아.는 헝가리.의 속국이 되는겨. 유니온 체제.란건. 귀족들은 토백이 들이 하는거고 킹.자리를 같이 취하는거야. 슬라브 귀족들은 자기 영지들을 다스리는거야.

 

저때부터 크로아티아.는 헝가리 에 삼백년. 다음 합스부르크에 들어갔다가 19세기 말에 독립하는겨. 이들은 오스만과 끝까지 전쟁을 해. 안 들어갔어 여긴 오스만에. 

 

 

헝가리.는 서기 895년에 마갸르 애들이 온거걸랑. 카스피해 바로 위. 우랄산맥 아래에서 온겨. 우랄이 카스피해 북쪽 위에서 끊기는거야. 여기 왼쪽에서 흘러서리 카스피해 정수리 꼭대기로 흐르는 강이 우랄 강. 이야. 마갸르 애들이 여기서 온거야.

 

얘들이 온지 백년 안되서 군주.하고 서기 972년. 이때 시작이 아르파드 가문.이걸랑. 이들이 바로 서기 천년.에 킹.을 하고 대가 끊겨서리 카페 앙주 올때까지 이 아르파드 조.가 지배를 정체성을 만든거야. 해서 막 강성할때 아래 크로아티아.도 먹은 거고. 

 

 

세르비아.는 서기 천년 전후에 비잔틴의 테마.로도 들어가서리 11세기 전에 독립하면서 정체성을 갖기라도 하지. 왼쪽 보스니아.는 이것도 없어. 이들은 세르비아라는 슬라브. 크로아트 라는 슬라브. 사이에서 깨갱하면서 산겨.

 

 

The Banate of Bosnia (BosnianBanovina Bosna / Бановина Босна), or Bosnian Banate (Bosanska banovina / Босанска бановина), was a medieval state based in what is today Bosnia and Herzegovina. Although it was a part of the Hungarian Crown Lands, the Banate of Bosnia was a de facto independent state

 

보스니아.는 시작이. 서기 1154년. 보스니아 바네이트. 반.이 다스리는 체제. 

 

반. Ban 이란 건.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 이쪽 슬라브.의 귀족.을 반. 이라 해. 동쪽 슬라브의 보이보드. 보야르. 같은겨. 크로아티아 에서 처음 등장하는 단어야. 스텝애들 칸. 얘들은 반. 이 보스니아.는 헝가리가 크로아티아 이기고 나서 생긴거야 즉 하미지를 헝가리에 하는듯 하다가도 위 헝가리 오른쪽 세르비아랑 전쟁하는겨 항상. 

 

여기서 떨어져 나간 애들이 라구사 공화국.이야 

 

The Republic of Ragusa (CroatianDubrovačka Republika) was a aristocratic maritime republic centered on the city of Dubrovnik(Ragusa in ItalianGerman and LatinRaguse in French) in Dalmatia (today in southernmost Croatia) that carried that name from 1358 until 1808.

 

 

그리고 저들도 킹덤.을 갖어 이어서.

 

The Kingdom of Bosnia (BosnianKraljevina Bosna / Краљевина Босна), or Bosnian Kingdom (Bosansko kraljevstvo / Босанско краљевство), was a South Slavic medieval Kingdom that evolved from the Banate of Bosnia (1154–1377). Bosnia experienced de facto independence in the 13th and 14th centuries despite being a part of the Hungarian Crown Lands.

 

1377–1463
킹덤 세우고. 백년 안되서 오스만에게 먹힌거지만. 세르비아는 보스니아보다 비잔틴 테마 에 들어가면서 150년을 문명을 먼저 익힌겨 보스니아보다. 식민지.란건 야만애들한테는 좋은거야. 갈리아애들이 로마 식민지 였던 것처럼. 게르만이 귀화해서 로마 군단 보조병으로 배우는 것처럼. 
저기서 가장 늦은 곳이 그래서 보스니아.야 크로아티아는 일찍 와서 바로 비잔틴에 프랑크에 걍 수그리 들어가서리 공작령에 킹하다가 헝가리에 들어갔지만. 이 보스니아는 가운데에서 3백년 자기들이 해보다가 바로 먹힌겨 오스만애들에게. 세르비아는 이보다 150년 먼저 비잔틴 드가서, 먼저 독립해서 정체성 갖고서리. 짜르 라도 해보면서 그리스본토까지 먹어봤걸랑. 막 힘 터질때 짜르 주고 자식 약해서 흩어지면서 오스만에 먹혔지만 이 힘이 상대적으로 드센거야. 나중 유고슬라비아.의 중심을 얘들이 갖는거야. 몬테네그로.는 이 세르비아에서 나온 일부일 뿐인거고. 마케도니아.는 고대그리스의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이름만 빌린 슬라브애들일 뿐인거고. 제일 떨거지 문제아들이 이 마케도니아야 이게. 이들 나라이름 바꾸라니까 여전히 안바꾸는겨 그리스애들 시선에선. 
할때 말야. 오스만애들이 어드래 들어오는거냐 이거.

Stephen Tomašević or Stephen II (Serbo-Croatian: Stjepan/Stefan Tomašević, Стјепан/Стефан Томашевић; died on 25 May 1463) was the last sovereign from the Bosnian Kotromanić dynasty, reigning as Despot of Serbia briefly in 1459 and as King of Bosnia from 1461 until 1463.

 

보스니아.가 킹덤하고 마지막 킹이 스티븐2세. 백년 안되서 오스만에 먹히는건데. 이때 세르비아도 분열되서 각개로 싸울때고 거의 먹혔고. 해서 세르비아의 데스포트.라는 구역에 자기가 군주행세도 잠시 하지만. 

 

By the spring of 1462, it was known that Mehmed had decided to conquer Bosnia.

 

Matthias, Skenderbeg and the Ragusans all failed to carry out their promises.[20]

 

In the spring of 1463, Mehmed gathered an army of 150,000 men in Adrianople and prepared to march towards Bosnia.[24] In his despair, Stephen Tomašević turned to the Sultan himself and tried at the last moment to procure a 15-year-long truce with him. 

 

서기 1462년에 메메드2세가 보스니아를 쳐들어온다는걸 알게 돼. 헌데 이 해.에 오스만애들은 루마니아.에 드라큘라 백작 모티브가 되는 블라드3세 임페일러를 잡으러 가걸랑. 불가리아의 투르크 사람들 2만명 다 죽인걸 알게 된 메메드2세가 루마니아를 치러가는겨. 여기서 타르고비슈테 야습 사건 겪고 2만여명 임페일러 당한걸 다 보게 되고서 몰도바로 꺾고는 아래 항구 점령하고만 오고 그해에 블라드3세.는 동족에게 쫓겨나서 헝가리 마티아스에게 갔다가 투옥되고 나중 죽는데.

 

블라드3세.가 잔인하다고 하지만, 루마니아 입장에선, 쟨 영웅이야. 투르크 애들을 조진애야. 잔인 따지면 투르크들은 별다르니. 로도스섬 병원기사단 전쟁할때는 이기고 그 사람들 내장을 드러내고 지푸라기 흙 을 가죽에 집어넣어서 허수아비 놀이 한 들이 투르크야. 아르메니아 학살 150만명 죽인 들이 투르크야. 머 별다르니 저들은. 몽골 들이 쳐들어와서 민간인 잔인하게 죽이고. 바그다드 함락하고 역시 사람 몸으로 공놀이 하고. 이 스텝 들의 잔인함은 더 끔찍해 이게.

 

 

왜 저들은 사과를 안하나 몰라. 왜 몽골 투르크 들에겐 사과하라 요구를 안하나 몰라. 왜 저따위 들은 우리네 형제유 가서 웃으며 악수하는지 몰라 . 몽골 들이 이땅에 와서 얼마나 학살을 하고 죽였는지는 왜 사과 요구 안하나 몰라. 아 참 그건 좃선 이 아니라 고려지. 지들 민족은 좃선 뿐이지 참. 당근 사과하라 안하는거지. 참 좃선이 청나라 들에게 당한건 그럼 왜 사과 하라 중국들에게 안할까. 아 중국는 우리네 주인님들이지. 중국몽을 함께 해야지. 

 

먼 이 들은 말야. 먼 논리가 없어 이게.

 

 

메메드2세.가 루마니아 갔다가 몰도바 갔다가. 이 다음해인 1463년도에 보스니아로 가는거야. 15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헝가리 마티아스.도 교황도, 아래 알바니아의 스캔더 베이라는 카스트리오트 의 조지.도 아래 라구사 공화국도. 지원군을 보내주겠단 약속을 못지켜. 여력이 안되는거야. 

 

도망가다가 잡혀서리 킹이 죽으면서. 오스만에 들어간거야 보스니아.는. 오스만의 직접 지배로 가.

 

The Ottoman–Hungarian Wars were a series of battles between the Ottoman Empire and the medieval Kingdom of Hungary1366–1526

 

오스만 헝가리 전쟁들.은 1366-1526년 260년 간으로 잡는데. 저건 아닌거 같고.

 

In the spring of 1365, Louis headed a campaign against the Bulgarian Tsardom of Vidin and its ruler Ivan Sratsimir. He seized the city of Vidin on 2 May 1365; the region was under Hungarian rule until 1369.[7]

In 1366 Byzantine Emperor John V visited Hungary to beg for help against the Ottoman Turks, who were in increasing conflict with the Balkan vassal states.

The Battle of Nicopolis (25 September 1396) is thought to be the first encounter between Hungary and the Ottoman Empire, where a broad alliance of Christian monarchs and the Knights Hospitaller were crushed by a numerically superior Turkish army under their 4th Sultan Bayazid I.[citation needed]

 

헝가리의 카페앙주 루이.가 불가리아 서쪽끝 스트랏시미르.의 당 비딘.을 점령하고 여긴 헝가리의 바쌀이 돼. 서기 1365-69년. 그러다가 다시 독립한거고. 서기 1396년. 니코폴리스 전투.가 시작으로 봐야지. 

저때는 잉글랜드 프랑스 백년전쟁 한창 할때야. 잉글랜드 리차드2세랑 프랑스 미친딱지 샤를6세.랑 휴전을 하고. 여기에 동참을 하는겨. 이때 헝가리 킹은 신성로마황제이자 보헤미아킹인 지기스문트야. 당근 헝가리도 여기 끼는거고. 바예지드1세가 이겨. 불가리아.는 오스만께 되고. 이제 접경 헝가리가 바로야 여긴. 왼쪽으로는 세르비아에 보스니아 점령하고 쳐 올라오는거고.

 

다음 가장큰 전투가. 바르나 십자군 전투 1444년.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 3세. 야기에워 요가일로.의 아들이야. 헝가리 킹이 갓난애야. 얘가 킹을 겸하고 주도해서리 무라드2세.랑 싸우는겨. 

 

다음 코소보 전투 1448년. 이전 1389년 코소보 전투는 세르비아.가 이긴거고 막판에 암살 비슷한 걸로 무라드1세를 죽였지만 세르비아 병력도 거의 전멸했고. 50년 만의 이 코소보.는 헝가리의 훈야디. 마티아스 아빠가 가서 술탄 복귀한 무라드2세.랑 전쟁하는겨. 오스만이 이겨.

 

The Siege of Belgrade, Battle of Belgrade or Siege of Nándorfehérvár was a military blockade of Belgrade that occurred from July 4–22, 1456.

 

1456년 베오그라드 전투. 메메드2세가 콘스탄티노플 함락하고. 올라오는거야. 베오그라드 수비를 세르비아가 하고 헝가리 훈야디가 도와주러와. 이걸 버티고 오스만은 철수해 잠시.

 

헝가리 마티아스.가 1458년 나이 15세에 킹에 올라. 

 

메메드2세.가 왼쪽너머는 베오그라드.에서 막히고. 불가리아에서 루마니아 넘어가는건 드라큘라 백작 블라드 3세.가 이후 막는겨 얘를. 오른쪽 몰도바의 스티븐 대제.도 한몫하고. 

 

마티아스.가 어릴때 오히려 상황이 헝가리가 안나서도 되는 분위긴거야. 

 

그리고, 마티아스.는 오스만이랑 가급적 전쟁을 피하고, 오히려 보헤미아 킹 자리를 노리는겨. 당시 보헤미아.도 섭정이 킹을 하걸랑 자기 장인. 어린 마누라 가 죽고 아예 장인을 치러 가서 보헤미아랑 십년 전쟁을 하다가. 다시 옆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점령도 하는겨. 이때 블라드3세 루마니아 애를 풀어줘서 오스만애들 막으러 보내는거고.

 

마티아스.는 위로 가고. 아래 루마니아 왈라키아.에 자기병력 파견해서 저들이 막는거고.

 

The Battle of Breadfield (Hungarian: Kenyérmezei csata, Romanian: Bătălia de la Câmpul Pâinii, Turkish: Ekmek Otlak Savaşı) was the most tremendous conflict fought in Transylvania up to that time in the Ottoman–Hungarian Wars taking place on October 13, 1479, on the Breadfield Zsibód (Şibot) near the Mureş River. The Hungarian army was led by Pál Kinizsi, István Báthory, Vuk Branković, and Basarab Laiotă cel Bătrân.

 

1479년 브레드필드 전투. 오스만이 트렌실베니아.로 들어오는거야. 카르파티아산맥 안쪽. 이걸 세르비아와 헝가리가 이기는겨. 

 

헝가리는 이 마티아스.가 죽고. 끝난거야 이게. 헝가리 인간중에 가장 아쉬운 인간은 이 마티아스.

 

헝가리 귀족들이 야기에워의 브와디스와프 2세.에게 킹자릴 줘. 마티아스의 흔적을 다 지워. 마티아스는 적페야. 이 브와디스와프2세는 요가일로의 손자야. 얜 보헤미아 킹에 헝가리 킹.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킹은 동생이 하고.

 

얘때 게오르게 도자 의 반란 있는거고. 도자를 잔인하게 죽이는거고.

 

얘 아들 딸이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언의 손자 손녀. 즉 후안나의 자식들과 꼬마때 합동결혼하는거고. 이걸 끈으로 헝가리에 보헤미아까지 합스부르크께 되는거고.

 

The Battle of Mohács (

Hungarian: 

[ˈmohaːt͡ʃ]; Hungarian: Mohácsi csata, Turkish: Mohaç Meydan Muharebesi) was one of the most consequential battles in Central European history. It was fought on 29 August 1526 near Mohács, Kingdom of Hungary, between the forces of the Kingdom of Hungary, led by Louis II, and those of the Ottoman Empire, led by Suleiman the Magnificent.

 

모하츠 전투 1526. 후안나 딸이랑 결혼한 야기에워의 루이.가 위대한 술레이만이랑 붙는거야. 여기서 루이가 죽어. 오스만이 이기고. 헝가리 남부 가운데야. 이러면서 야기에워 핏줄 끊기고. 헝가리는 루이 누나랑 결혼한. 카를5세의 동생 페르디난트1세 황제.에게 넘어가면서 합스부르크 이름으로 오스만을 상대하게 돼.

The Hundred Years' Croatian–Ottoman War (Croatian: Stogodišnji hrvatsko-turski rat,[1][2] Stogodišnji rat protiv Turaka,[3][4] Stogodišnji rat s Osmanlijama[5]) is the name for a sequence of conflicts, mostly of relatively low-intensity, ("Small War", Croatian: Mali rat[2]) between the Ottoman Empire and the medieval Kingdom of Croatia (ruled by the Jagiellon and Zápolya dynasties), and the later Habsburg Kingdom of Croatia.

 

1493 to 1593 (100 years)
세르비아.가 공식적 망.한건 서기 1499년.이야. 이미 베오그라드.도 먹히고. 막판엔 아래서 게긴겨. 위는 이미 뚤렸어. 크로아티아.가 백년을 싸워 오스만이랑. 많은 땅이 점령되지만 그래도 끝까지 버티고 자기들 땅을 유지하고 버티다가 밀어낸거야 크로아티아는. 1593년에 점령을 다 못하고 멈추고 다음 반격을 당하는거야. 

The Battle of Sisak (Croatian: Bitka kod Siska; Slovene: Bitka pri Sisku; German: Schlacht bei Sissek; Turkish: Kulpa Bozgunu) was fought on 22 June 1593 between Ottoman regional forces of Telli Hasan Pasha, a notable commander (Beglerbeg) of the Eyalet of Bosnia, and a combined Christian army from the Habsburg lands, mainly Kingdom of Croatiaand Inner Austria. The battle took place at Sisak, central Croatia, at the confluence of the rivers Sava and Kupa.

 

1593년 시삭 전투. 크로아티아 프라퍼. 자그레브 바로 아래야. 보스니아 접경. 여기서 크로아티아 동맹군이 이겨 오스만을.

 

이전에 봤던 즈링스키.의 시게트바 전투. 1566.에서 슐레이만이 죽는건 시삭전투 전.이고. 즈링스키.도 반. Ban 이야. 크로아티아족의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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