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이 창업하고. 오르한.이 니카이아 니코메데이아 점령하고 비잔틴내전을 기회로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너 발칸에 발을 담가. 무라드1세. 가 세르비아 불가리아.를 속주화해. 

 

바예지드1세.가 니코폴리스 십자군 전쟁을 이겨. 1395년. 불가리아.의 마지막 두 황제. 쉬쉬만.과 스트랏쉬미르.가 둘다 죽는겨 저 직후에. 이때 불가리아.와 옆의 세르비아 일부는 오스만 지배가 확실히 되는겨

 

 

투르크.가 비잔틴의 발칸땅에서 처음 전투.가 갈리폴리 전투. 1312년. 이건 오스만과 상관이 없어. 이땐 오스만 재임.이야. 이건 투르크폴리. 라는 비잔틴이 고용한 투르크족 궁수들이야. 이들을 비잔틴과 제노바가 진압한겨.

 

페리테리온 전투. 1345.는 오스만 베일리크.가 아냐. 비잔틴 내전때 칸타쿠제노스쪽이 부른 아이딘 베일리크.의 우무르.가 쳐들어온겨. 로도피.의 불가리아 영주 몸칠.이 이걸 막아. 

 

데모티카 전투. 1352년.은 칸타쿠제노스.가 부른 오스만 베일리크.의 오르한.을 팔라이올로고스.와 연합한 세르비아.가 막으려는겨. 오르한이 이기고 칸타쿠제노스.가 공동황제에 오르는겨. 이때 오르한.이 갈리폴리.에 발을 담궈 발칸땅에. 

 

투르크.가 발칸을 침범한 시작은 서기 1345년.이야. 불가리아가 막는. 헌데 이건 오스만이 아니라 나중 오스만에 귀속되는 아이딘.이니까. 오스만이 들어온 시작은 서기 1352년. 데모티카 전투. 부터 보는게 타당해. 이때 상대는 세르비아. 비잔틴 내전으로 들어온거야. 

 

오스만 불가리아 전쟁.을 해서 서기 1345년.으로 보는 입장이 있고. 불가리아 알렉산더가 전쟁 준비하다 죽은 서기 1371년 이후 부터 보는 입장이 있는데. 서기 1345년.으로 보자고. 어차피 불가리아.가 나중 오스만 편입되는 아이든.을 막은거니까. 

 

저 전투들이. 콘스탄티노플 아래 주변이야. 마릿사 강 흐르는 에디르네 고. 1364년 전투도 마릿사 강 주면이고. 2차 마릿사 전투도 저기서고. 이게 세르비아.가 오스만제국을 막는거야. 

 

퉁 쳐서. 서기 1350년 부터. 불가리아.와 세르비아.가 오스만을 대적을 한거야.

 

불가리아.는 니코폴리스 전투. 1395년.으로 완전히 끝난겨. 45년 동안 전쟁한겨 이들이. 

 

세르비아.는 1499년 에 끝나 완전히. 이들은 150년 간 오스만에 대든거야. 

 

 

 

 

알바니아.는 서기 1200년 전후에. 고대 일뤼리안이 세운 다르다니아. 아르디아이. 킹덤들로 살아본 이후. 저때 알렉산드로스랑도 싸워보고. 고대로마랑도 싸우다가. 기원 직전에 프로빈키아.가 되면서 자기나라를 못가졌걸랑.

 

1200년 만에. 서기 1200년 직전에 아르바논. 알바논.이란 영지.로 60여년을 자체적으로 처음 살아본거야. 그리곤 나폴리 앙주와 세르비아에 먹히다가. 백년 후 다시 자잘한 자치국가를 세워.

 

During that time, several Albanian principalities were created, most notable amongst them the Balsha, Thopia, Kastrioti, Muzaka and Arianiti. In the first half of the 14th century, the Ottoman Empire invaded most of Albania and the League of Lezhë was held under Skanderbeg as a ruler, who became the national hero of the Albanian medieval history.

 

알바니안 귀족들이 각각 자치조직을 갖은겨 세르비아 제국 만든 스테판 두샨.이 죽고. 저때 오스만이 동쪽에서 여기 왼쪽 알바니아 까지 오는거야. 저들이 동맹을 맺어서리 오스만에 대항을 하는겨. 국가 수준이 못되는겨 이게.

 

세르비아.가 계속 쫓기면서 위로 올라가고. 오스만이 잠식을 하고. 여기 알바니아 까지 오스만에 들어온게 서기 1400년 직후야. 바예지드1세가 니코폴리스 십자군 물리치면서 여기도 오스만 지배가 된거야. 

The Sanjak of Albania (Turkishsancak-i Arvanid, Arvanid-ili sancağı) was a second-level administrative unit (sanjak) of the Ottoman Empire, located in what is today central and southern Albania. Its territory stretched between Krujë in the north and Kalamas river in the south. It was established in 1415–17, and was disestablished in 1466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Sanjak of Elbasan.

 

알바니아 산자크. 가 생긴게 서기 1415년 이야. 즉 이때에야 오스만이 여길 지배한거야. 불가리아 보다 늦을 수 밖에 없어. 세르비아가 오른쪽서 버텨줬고. 50년 후에 알바니아 지역을 서너개로 더 쪼개. 그래서 알바니아 산자크.는 사라진겨. 일부러 쪼갠거야 얘들이. 저 세력들을 분리하려고. 
지금 터키의 행정구역.은 

Turkey is divided into 81 provinces (Turkishil). Each province is divided into a number of different districts (ilçe). 

 

첫 단위. 주.에 해당하는게. 일. il 이고. 일.을 일체. ilce 로 나눠. 산자크.가 지금의 일체. ilce 인거야.
일. 이란게. 단지 영어 주. 라는 윗 행정단위 라 번역하지만. 저게 일칸국. 의 그 일과 상통해. 일칸국.이란건. 훌라구가 저걸 세울때. 형 쿠빌라이 칸.이 훌라구에게 준 정식 호칭이야. 쿠빌라이.는 칸. 이고. 넌 일칸. 이란겨. 일이란게 스텝애들에게 그 다음의. 뒤의 말에 종속하는. 의 뜻이야. 자기바로 아래의 칸. 이라는 의미여 일칸.은. 
나라.다음의 단위가. 일. 인거고. 그 다음이 일체. 인거야. il ilce.

Eyalets (Ottoman Turkishایالت‎, 

pronounced 

[ejaːˈlet], English: State), also known as beylerbeyliks or pashaliks, were a primary administrative division of the Ottoman Empire.

 

오스만 제국 때는. 에얄레트. 보다는 흔한 말 베일러베이리크. 파샤리크. 로 더 잘 불렸어. 산자크.는 에얄레트.의 아랫단위야. 
셀주크 투르크.가 시작이. 셀주크.가 베이. 였걸랑. 얘들은 스텝이라 자기들 우두머리.를 베이. 그 땅을 베일리크. 하는겨. 베이.베그. 같은 말이야. 이들이. 오스만이 땅이 커졌걸랑. 베이.는 작은 말인거야 옛날의. 베일러.가 그 위.의 말이야. 베이들의 베이. 해서 베일러베이.하면 총 사령관.이야. 이걸. 뒤의 리크. 땅 해서 첫 행정단위로 갖고 와.
파샤. 란 말도 군대용어여. 사령관이야 이게. 이 파샤.가 땅을 갖고 있으면 파샬리크.가 되는거야. 파샤.나 베일러베이.나 사령관급. 공후백 작급 의 영주야 유럽의. 
그랜드 비지어. 라는 건. 저 모든 베이들을 다 관할하는겨. 얜 일종의 수상.이야. 술탄 대리야 얜. 행정부의.

.

알바니아.가 서기 1415년 부터. 산자크.에 편입이 되서 오스만 통치를 받는데. 이들이 간단치가 않걸랑. 

 

Ottoman provinces (eyalets, later vilayets) were divided into sanjaks (also called livas) governed by sanjakbeys (also called Mutesarriff) and were further subdivided into timars (fiefs held by timariots), kadiluks (the area of responsibility of a judge, or Kadı)[3] and zeamets (also ziam; larger timars).

 

산자크.의 짱이 산자크베이.이고 이 산자크.의 하부단위가 티마르. timar 야. 티마르.짱이 티마리오트. 큰 티마르.를 지암 ziam 이라 하고. 카디루크.는 사법 관할이야. 얘들은 이슬람법.이걸랑. 티마르.와 카디루크.가 일치하지 않는거지. 

티마르.라는 영지.로 나누고. 영주.라는 티마리오트.를 두는데. 해서 이 티마르 단위로 세금을 걷는거야. 

As part of the Timar system the local feudal lords were largely replaced with Ottomans from Anatolia.[1] The cadastral survey (defter) of 1431–1432 indicates that about 75% to 80% of the timars were granted to Ottoman Muslim spahis (feudal cavalry), while the remainder and especially remote areas, which were not under full Ottoman control, were granted to Albanian spahis, both Christian and Muslim. The replacement of the existing nobility with the timar system led to conflicts, as a result of which many rural areas were not under complete Ottoman rule.[1]

 

여기 영주들이 대부분 오스만 투르크 애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세금을 더 올리는거지. 얘들은 계속 전쟁중이니까. 

 

 

Under the previous taxation code, farmers were required to pay a tenth of their seasonal agricultural output, 1 ducat and 4 groshe (two-ninths of a ducat) to their lords.[2] The Ottoman system aimed towards revenue increase to support military expenses, thus new taxes were imposed and existing ones were altered. In addition to 1/10 of agrarian production Muslim convert families were required to pay 22 akçe (~0.6 ducats) to the timar holders, while non-Muslim families had to pay 25 akçe (~0.7 ducats).[2][3] Both groups were subject to additional taxes including the avarız, an annual cash tax that affected households registered to the cadasters. Non-Muslims were also required to pay 45 akçe (~1.3 ducats) as part of the jizya and had to supply regularly the Ottoman state with young recruits in accordance with the devşirme, which required the enlistment of young males in the Ottoman army and their conversion to Islam.[2][3]

 

세금은 저때 중세 말이어도 말야. 십분의 일이야. 여기에 세목을 신설해서 걷고. 기존 세금율도 올리고. 이전 이슬람 세목 얼핏 봤지만. 지즈야 명목으로 또 걷고. 

 

세금이 현대처럼 많이 걷는 건 인류사 8천년동안 없었어. 고대 로마때도 끽해야 십퍼에 오퍼야. 

 

현대사회의 문제는 가장 큰게 이 세금이야. 유럽이 지금 허덕이는게 또한 이 세금이야. 높은겨 이게. 북유럽 애들이 지금 자기들 나라를 떠나. 일을 하면 반이 세금이야. 일할 의욕이 안생기는겨. 트럼프.는 저걸 정확히 짚은거야. 기업 세금을 낮출수록 오히려 빈부격차가 줄어들어. 레미제라블들이 더 살만해져. 이걸 인정을 못하는거지 문명이 낮은 애들은. 이런건 나중에 썰하고.

 

 

알바니안 입장에선. 허섭한 문명애들한테 먹힌거걸랑. 

 

오스만 투르크.는 서기 1299년에 시작한겨. 그 이전에 익힌건 이 조상들의 저 카스피해 오른쪽 스텝이야. 여기에 스민건 고대 페르시아가 좀 스몄을까. 이슬람도 시작한지 6백년이야. 얘들은 야만이여 저 발칸인들 입장에선.

 

 

알바니아는 고대 일뤼리아.이름으로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랑 놀고 고대 로마랑 놀던 이들이야. 그러다가 고대 로마.에 편입이 되서 로마를 배운 이들이야. 그러다가 비잔틴에 들어가서리 느슨하게 지내던 이들이걸랑. 투르크라는 애들과는 차원이 달라 이게.

 

 

세르비아 불가리아.는 쟤들보다 먼저 카르파티아 산맥이나 스텝에서 예전 로마 냄새 나는 곳에 온 이들이걸랑. 비잔틴이 허섭하지만 그 옆에서 비잔틴을 배운 이들이야. 이들 시선에서도 오스만애들은 유치한겨 이게.

 

 

못참는거야. 

 

알바니아.는 오스만이 오기전의 귀족들.이 다시 뭉치는겨.

 

The League of Lezhë (AlbanianBesëlidhja e Lezhës) was a military alliance of Albanian feudal lords forged in Lezhë on 2 March 1444, with Skanderbeg as leader of the regional Albanian and Serbian chieftains united against the Ottoman Empire.[1]

The main members of the league were the ArianitiBalšićZahariaMuzakaSpaniThopia and Crnojevići.

 

레저 동맹. 레저. 가 알바니아 북부 해변지역이야. 여기서 기존 귀족가문들.인 아리아니티. 발지치, 자하리아. 무자카. 스파니. 토피아. 크르노예비치. 들이 뭉친게 서기 1444년. 인데. 

 

The Albanian revolt of 1432–36 was a series of conflicts between Albanian rebels and the Ottoman Empireduring the early period of Ottoman rule in the region. Prompted by the replacement of large parts of the local nobility with Ottoman landowners, centralized governance and the Ottoman taxation system, the population and the nobles, led principally by Gjergj Arianiti, revolted against the Ottomans.

 

이전에 이미 각 지역에서 들고 일어선거야. 서기 1432-36년. 5년간. 전 지역이 들고 일어선겨. 여기서 중심은

Gjergj Arianiti or George Aryaniti (1383–1462) was an Albanian lord who led several campaigns against the Ottoman Empire

 

George Castriot (AlbanianGjergj Kastrioti, 6 May 1405 – 17 January 1468), known as Skanderbeg (AlbanianSkënderbej or Skënderbeu from Ottoman Turkishاسکندر بگ‎, 

translit. 

İskender Beğ), was an Albanian nobleman and military commander, who served the Ottoman Empire in 1423–43, the Republic of Venice in 1443–47, and lastly the Kingdom of Naples until his death. 

 

아리아니티.의 조지.와 카스트리오트 가문의 조지. 두 조지야. 저들이 오스만의 티마리오트들. 영주들을 많이 죽이거나 쫓아내. 

 

 In the winter of 1432, Sultan Murat II gathered around 10.000 troops under Ali Bey, who marched along the Via Egnatia and reached the central valley of Shkumbin, where he was ambushed and defeated by forces under Gjergj Arianiti.[7]

 

알바니아 중부에서 시작이 되었어. 토피아 가문.이 오스만 병력을 물리치면서. 이해 겨울에. 무라드 2세. 메메드2세의 아빠.가 병력 1만을 보낸겨. 이들이 슈쿰빈 계곡.에서 아리아니티의 조지.에게 대패해. 슈쿰빈 강이 알바니아 중부를 가르는 강이야.

 

저건 전쟁을 한겨 5년을. 그리고 패한후에. 저들이 동맹을 맺은거야. 그게 레저 동맹이야. 레저 에서 모인겨. 이때 카스트리오트.의 조지.는 빠져. 아리아니티.와 안좋아 이 가문이. 

 

알바니아. 바로 위에가. 베네치아가 점령한 해변이야. 몬테네그로 해변이 당시. 그 위가 라구사 공화국이고. 바다 맞은편은 나폴리 킹덤이야. 

 

나폴리.는 카페 앙주 샤를이 와서 알바니아를 점령해서 킹덤을 세웠어 이전에. 해서 알바니아에는 친 나폴리 반 나폴리.가 역시 있는거고. 친 베네치아 반 베니치아. 가 있는겨. 이 사이에서 내분이 생기는거지. 이 알바니아 레저 동맹은 베네치아랑도 전쟁을 해.

 

저 레저 동맹.은 1444-50. 육칠년 유지가 되는거고. 카스트리오트 가문의 조지. 스칸더베이.로 더 알려진. 이 사람은 따로 독립전쟁하는거고. 

 

 Independence for most of the Albanian regions was maintained during 1443-1479, with the uprising under the lead of Skanderbeg

 

저들이 1432년 이후 봉기부터 자치적으로 자기들 자치체에서 싸운겨. 봉기 이후 삼사십년이지만. 1432년 부터 1479년 까지 50년을 전쟁을 한겨 알바니아가. 오스만이랑.

 

 

1443–1468
Torvioll 1st Mokra Otonetë 1st Oranik Svetigrad 1st Krujë Modrič 1st Meçad Polog Berat 2nd Oranik Albulena 2nd Mokra Macedonia Ohrid 1st Vaikal 2nd Meçad 2nd Vaikal Kashari 2nd Krujë 3rd KrujëPost-1468
4th Krujë 1st Shkodra 2nd Shkodra

The last towns captured by the Ottomans were Shkodër in 1479 and Durrës in 1501.

 

저게 모든 도시들을 오스만이 돌면서 재점령을 하는거야. 봉기 이후 삼사십년을. 마지막이 1479년의 슈코더. 여긴 북쪽끝. 그리고 1501년.의 두러스. 여긴 중부 해변. 이 두러스.라는 지역이 유명한 곳이야.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 치러 그리스에 상륙할때 처음 붙는 곳이 이 두러스.야.

The Albanian–Venetian War of 1447–48 was waged between Venetian and Ottoman forces against the Albanians under George Kastrioti Skanderbeg. The war was the result of a dispute between the Republic and the Dukagjini family over the possession of the Dagnum fortress

 

레저 동맹의 레저 지역이 바로 위가 베네치아 땅이야. 다그눔 요새.는 베네치아 소유란 거야 여길 레저동맹이 갖으려는 거고. 베네치아.는 알바니아 편이야. 오스만과 베네치아.는 3백년을 전쟁해. 베네치아와 알바니아는 화해하고 다시 오스만에 같이 싸우는겨 이후로.

그러다가

 A period of the semi independence started in 1750s with the Independent Albanian Pashas

 

250년 지나고. 알바니안 출신 파샤.들이 또 독립운동 시작하는겨. 얘들은 이때부터 150년 동안 수시로 반란이야

 

The Albani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lbanian: Shpallja e Pavarësisë, or Deklarata e Pavarësisë) was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Albania from the Ottoman Empire. Independent Albania was proclaimed in Vlorë on 28 November 1912

 

서기 1912년.에 독립 선언을 한겨. 

 

Vlorë (

Albanian pronunciation: 

[ˈvlɔːɾə]) is the third most populous city of the Republic of Albania. It is the capital of the surrounding Vlorë County.

 

블로러. 남부해변이야. 여기서 헌법에 의회구성하면서 시작한거야. 
세르비아.는 이보다 앞선 백년전에 세우고. 불가리아.가 4월봉기로 그 다음이고. 알바니아.가 좀 늦게 슨거지.


쟤들과 말야. 조선왕조 오백년.때 임란 병란 당하는 거하며 구한말때 처먹히는 걸 비교를...할 수가 없어.
쟤들은 오십년에 백오십년 전쟁하면서 항복 선언하고 남의 지배 받는거걸랑. 
임란 병란때 한달도 안되서 토껴 리더 들이. 임란은 일본들이. 조선은 관시미가 없어. 명나라 가는게 관심이야. 일년도 안되서 평양성에서 포르투갈대포 끌고 온 명나라애들에게 막히고는 걍 히데요시 눈치보느라고 죽치고 앉아있던게 임진란이야. 얘들은 이때 조선을 멍는다는건 관시미가 없는겨 이게. 그리곤 히데요시 죽고 바로 걍 들어온겨 눈치볼 인간 없어서리. 이 임란은 코메디야 이게. 일본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이때 조선 치자들 보면 정말 욕이 티나와 이건.
하물며 병란 . 저건 그야말로 천하의 개들이야. 남한산성 정말 개 픽션이야 그건. 
저 슬라브 애들과 비교를 할 수가 없는겨. 이 조선 들이 말야 이땅 문명이 어드래 저 슬라브애들과 비교를 할수가 있냐. 헌데 저런 슬라브 애들의 발톱 먼지도 안될 수준으로 조선 오백년간 인간들을 노예화하고 바보로 만들고 완전 개멍충이 들로 만든겨 저 조선 오뱅년 저 개들이 말야.

하물며 말야. 쟤들 독립전쟁과 또 비교를 해봐.






부끄러운거야 부끄러운거. 쟤들은 당당하게 스스로 전쟁하면서 자기들이 쟁취한 겨 저건.

이 땅의 역사는. 부끄러운겨 이건. 이 원흉은 말야. 지폐와 동전으로 모시는 저 따위 개 들의 덩어리 상징. 저 조선오백년이라는 조선.과 유교.야

이 두개를 그대로 유지하고 떠받드는 들이 북조선이야 저게.

북조선.을 보면. 조선왕조 오백년을 보는겨 그게. 현대판 조선왕조 오백년이야 저 북조선이. 그래서 이땅바닥 들이 북조선에 환장하는 들이 있는겨. 조선 오백년 핏줄에 유교 만세 . 아 저 예의 바른 북조선. 우리 조선왕조 오백년의 그 조선.


참 똥떵어리 구데기 들의 나라 . 반성없이 벌레오백년을 찬양하는 나라. 

 

참 싕기한겨. 인류 유사이래. 이런 인종이 없었어 이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