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에 그 유명한 무항산 무항심 無恒産 無恒心

 

 

曰 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 爲能  若民則無恒産이면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辟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是 罔民也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편 상(上)-7
 

“일정한 생업(生業)[恒産]이 없으면서도 떳떳한 마음[恒心]을 간직하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의 경우에는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떳떳한 마음도 따라서 없어집니다. 만일 떳떳한 마음이 없어지게 되면 방탕하고 사치한 짓[放辟邪侈]을 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백성이 죄에 빠지기를 기다린 뒤에 좇아가서 그들을 벌준다면 이는 백성을 그물질하는[罔民] 것입니다.
 

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mId=m02&bnCode=jti_1h0601&titleId=C2
동양고전종합DB

 

번역 귀찮아서 저기꺼 그대로 옮겼어. 항심의 항을 떳떳함 으로 번역했는데 보니까, 갑골문 찾아 확인하기 구찮으니 걍 저대로 해. 항상스런 마음 떳떳한 마음

 

먹을거리가 없으면 죄를 짓는 거지 민 이란 족속은. 그 화살찔린 애꾸눈 민. 서민의 민. 그래요와 졸 욕질하면서 씨바 졸 뒤져보게 된 저 민. 

 

맹자는 선비 사는 무항산이라도 항심. 돈이 없어도 항심이 된다고 하지만, 뻥치지 마, 권력을 쥘 수록 항산 이면 무항심이야, 재산 더 갖고 쥘 수록 죄는 더 짓게되는게 인간들 군상이야.

 

선비 군자든 민이든 무항산 무항심이지. 일단 먹고사는게 제일 중요해

 

 

 

 

정치경제였지 정치 따로 경제 따로 아니었잖아?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B9%98%EA%B2%BD%EC%A0%9C%ED%95%99
정치경제학 위키
 

18세기엔 정치경제학, 19세기말에야 정치경제가 분리되서 경제학이 등장한다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이지 마르크스 경제가 아니야

 

 

정치는 경제와 분리될수 없어. 경제가 정치야  경제가 정치의 대부분이라 해도 그리 과언은 아닐 수도 있어. 과장하면.

 

 

 

 

화이트헤드 이성의 기능에 생물이 진화되서 살아남은 이들을 보면 첫단계가 TO LIVE. 살아남는거야.

 

 

입에 쳐넣는 거 못하는 종들은 다 도태된거지. 

 

살아남을려면 먹어야해. 

 

다음 단계가 TO live well.  더 잘 살아온 종들이 도태되지 않고, 즉, to live에만 머무른 종들은 저라다가 도태되어 멸종된거지. 멸종 안되기 위해선 well 잘 살아야 하고, 여기 머물다가 안주하다가 또 멸종되는 거지, 더 진화한 종은 to live better 더 잘 살아온거지. 그게 지금 살아남은 생물종들이란거지

 

 

저기 살아남고 잘 살아남고 더 잘 살아남기위한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항산. 恒産 이야. 경제고 그것이. 이건 참 어려운 문제야

 

 

 

 

 

저기 1900년 세계 주요도시 들 보면, 유럽은 너무나 화려하지. 저 도시의 모습은 단지 자연과학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생각해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총체가, 저 도시의 모습이야. 저 건물과 도로 그리고 그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 사람들의 의복들.

 

저건 단지 산업혁명만의 산물이 아니야. 정신문명을 배제하고 물질에만  몰두해서 응축된 구조물이 아니지. 저 구조물의 배후엔 인간의 정신, 사상이 내재된거야. 라고 생각해 갠적으론

 

 

 

 

미국의 제헌헌법자들은 위대한거지. 살떨리는 일이었을거야. 자기들의 세상을 만드는 거거든, 최초로 설계하는거거든. 유럽의 시행착오를 다 겪고 완전한 신세계를 맨땅에 설계하는거야. 그 추상명사대로 이룩한게 미국의 모습이야

 

 

 

1912년 뉴욕 맨하탄 스카이라인

 

 

 

 

저 유럽문명이 스민 미국, 저걸 일찍 흡수한 일본. 

 

당시 소위 지식계층이랍시고 일본을 경험한 이들의 그 감정을 추측해봐. 저 모습이 일본 도쿄에 있는거야 카피가 되서

 

 

 

당시 조선의 모습은

 

 

1906년 출판된 책에 저 작가가 이리 쓰지 저 사진에

 

"The broad streets seem an immense cemetery, and the mean little flat-roofed houses graves"
 

저 큰길가들은 마치 공동묘지같더라, 저 낮은 지붕들의 집들은 무덤들 같더라.

 

 

 

 

저 표현은 단지 모양을 말한게 아니야, 저걸 찍으면서 느낀 느낌이야 감정에 와 닿은. 그게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CALM이고

 

 

새마을 운동이 1970년대 시작을 해.

 

1960년 농촌사진들

 

 

 

 

 

 

 

가을 농촌풍경 및 장날전경(1960, CET0043660)
http://theme.archives.go.kr/next/photo/gallery.do?high_menu_id=9380000000&menu_id=undefined#gallery-current-4
 

 

 

 

서울 외엔 여전한거야 사는 모습이. 저걸 다 뒤집은게 새마을 운동이야. 

 

 

 

 

 

http://english.seoul.go.kr/seoul-city-hosts-2015-seoul-mice-week/

 

100년 전의 모습에서 저 모습을 일궈낸 소위 산업화. 라는 추상명사를 제대로 평가해 줘야해.

 

 

산업화에 맞서는 추상명사가 민주화야. 

 

 

유럽과 미국은 그 산업화 란 것 뒤에 역시 반민주 가 당연히 있었어. 다른 나라들 다른 인종들을 상대로. 그들만의 민주지. 

 

 

 

산업화 한 쪽은 저 산업화란 이름으로 국가를 건설한거야. 

 

유럽과 미국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같이 공존한 걸까? 아니지 당근, 자기들만의 민주지 다른 국가들은 식민의 대상이고 자원일 뿐이었지. 헌데 또한 자원일 뿐은 아니라고 그들은 주장하는거지.

 

 

 

3백년 식민지 겪은 중남미 국가들은 해방 후에 산업화와 민주화가 같이 갔나? 걔들 역사를 각각을 대충 봐. 갈 수가 없어. 

 

4백년 겪은 필리핀의 지금, 3백년 식민지 겪은 인도네시아, 등등 다 똑같지, 식민의 기간이 지랄같이 긴 국가들은 민주화도 그만큼 그 압력에 더 험난한거지. 모든 식민겪은 국가들은 해방후 군부독재의 연속이야 누가  권력 확 쥐고 조지는거지 난리통에. 인간들이 합의가 되지 않는거지.

 

 

독재를 찬양하는게 아니라, 역사가 그런거야 보니까 인간들의 세계 모든 근현대사 식민지 겪은 국가들이.

 

 

 

 

산업화 민주화는 저들에겐 그 국가안에서 화해할 수 없는 추상들이었던거야. 

 

 

 

 

한국은 독특한거야. 백년 전에 저 고요 라는 땅이 어떻게 지금 저런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냐는 거지. 다른 식민지 국가들을 압도하고 말야. 

 

 

 

물론 산업화 뒤의 허상이 있지. 인문학의 터 사상의 터는 그만큼 병행하지 않았어.

 

 

 

산업화한 쪽은 왜 인정을 안하느냐 하는거지 왜 욕질만 처먹어야 하는가 하는거지.

 

노인들이 그걸 아는거야. 자기들 어릴때 삶의 모습. 저 1900년의 사진과 한국전쟁전후, 그 모습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아. 

 

 

 

그게 박근혜를 만든거야. 이전 어디기사에 누구가 아버지 말씀, 아! 당시엔 박정희가 옳았다! 하는 말은 깊은 말이라고 생각해.

 

 

박정희를 욕해봐야, 다까끼 마사오 해봐야, 그 세대에 도덕을 요구 할 수 없어. 자식 키우는 사람들은 알겠지, 세상에 깨끗한 돈이 어디 있냐.

 

 

 

저 정치권력에, 한국만의 재벌 시스템이 붙어서, 저 산업화란걸 한거야. 그게 중남미, 동남아 등 다른 식민지 국가와의 차이야.

 

재벌 1세대들은 욕만 처먹어선 안돼. 지금 후세들이 어찌하는거 관심없다.

 

 

 

헌데 저기에 유교가 있는거야. 유교.

 

 

주자의 사서집주만 적용한 저놈의 유교가. 리더들에 따라서 똘똘 뭉쳐서 이뤄낸거야.

 

 

그 새마음 운동 이란거. 거기 구호가 충 효 예. 란게 충효절 이야. 철저한 계급문화. 

 

 

 

 

저 산업화 세력에 더한 저 배후의 유교가 지금의 한국 문명을 만드는데 많은 기여를 했어. 투 리브. 투 리브 웰인지 베터까지 갔는지는 몰르겠다. 

 

 

 

예전 누가 삼성 비판글 거 보면, 결국 왕가의 모습이란건 저 유교를 카피한 것일뿐. 재벌들이 그 안에서 왕조와 신하의 관계야. 조선실록의 그것. 

 

 

 

민주화는 산업화를 인정 안해. 산업화는 민주화를 인정 안해. 서로 치를 떨지.

 

 

산업화 에게는 민주화 컴플렉스가 있어. 민주화 세력에겐 산업화 컴플렉스가 있어 

 

 

산업화 에게는 저 그림자를 덮고 싶은거지. 민주화 들은 산업화의 공을 주저 앉혀야하지.

 

 

이게 지금 소위 진보와 보수의 모습이야. 그리고 자기들만의 정의놀이를 하는거지. 

 

 

문제는말이지 저기에 가식 허식이 끼는거야 시야에. 즉 상황을 제대로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거지. 서로들. 

 

 

 

 

 

 

산업화가 어느정도 이루고, 또 다른 산업화로 가야지. 그 더 윗단계의 산업화를 위해선 이제 그 배후, 그 원동력은 민주화 여야해. 

 

 

유교와 높임말. 

 

 

난 높임말은 버리고 반말하자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하지. 

 

 

 

그러면 반말을 없애야해. 모두 높임말 써야지. 

 

한쪽만 굽신하면 안돼. 서로 인사해야 하는 문화로 가야지 그게 민주화로 갈 수 있어. 지금 진보의 행동양식은, 말로는 민주를 외치나 행동양식은 완전한 보수야. 

 

 

 

 

 

난 노무현 이란 사람을 이런면에서 인정해 좋아하고. 

 

디제이에겐 저런 모습이 없어. 당연한거야 그 시대의 사람들은. 

 

 

노무현의 목적 바람은 권력 내려놓기였고, 그 바탕은 서로 존중하잔거지. 진짜 민주지. 말로만 민주가 아니였지. 

 

물론 과도 많지. 허나 역시 참정의 공과도 제대로 정리된게 없어. 없어. 

 

우리는 조선시대도 제대로 보지 않아. 덮지. 그 시선으로 근현대사를 보니 역시 허식 가식이 눈앞에 가리어져 제대로 인식을 하기가 힘들어.

 

 

 

 

 

서로들 컴플렉스를 벗어. 분노질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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