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い靴 はいてた 女の子

異人さんに つれられて 行っちゃった

 

横浜の 埠頭から 船に乗って

異人さんに つれられて 行っちゃった

 

今では 青い目に なっちゃって

異人さんのお国に いるんだろ

 

赤い靴 見るたび 考える

異人さんに逢うたび 考える

 

아카이쿠쓰. 빨간 구두. 

 

빨간구두 신은 여자아이

외국사람이 데리고서 떠나가버렸다.

요코하마의 부두에서 배에 타고는

외국사람이 데리고서 떠나가버렸다

지금은 파란눈이 되어버려서

외국인의 나라에 살고있겠지

빨간구두 볼때마다 생각난다네

외국인을 볼때마다 생각난다네.

 

 

.졸 음산한 동요인데. 저게 이전 그림형제와 안데르센 썰했듯이. 저게 안데르센 동화여. 저 게르만들 동화가 무서버. 

 

안데르센.의 빨간구두. 를 일본애들이 자기들 식으로 각색을 한겨. 저 노래가 1922년 노래야

 

赤い靴』(あかいくつ)は、1922年大正11年)、野口雨情作詞・本居長世作曲で発表された童謡である。

 

일본애들이 다 아는노래여 이게. 

 

"The Red Shoes" (Danish: De røde sko) is a fairy tale by Danish poet and author Hans Christian Andersen first published by C.A. Reitzel in Copenhagen 7 April 1845 in New Fairy Tales. First Volume. Third Collection. 1845. (Nye Eventyr. Første Bind. Tredie Samling. 1845.).

 

안데르센.이 1845년에 발표한 동화. 이거 잔인해. 카렌. 이라는 시골여자아이가 엄마가 죽고 부잣집에 입양이 되었는데, 애가 어른말 안듣고 대든다 이거여. 입양전에는 다 낡은 빨간신발이었는데 새엄마를 쫄라서리 공주가 신는 이쁜 빨간신발을 산거야. 교회에 갈때는 검은 신발 신어야 하는데 얜 이게 너무 좋아. 사제말 안듣고 교회에 또 신고 가. 그러다 붉은 수염의 늙은 병사를 만나. 이 병사가 얘 빨간 신발을 보더니, 춤추기엔 딱 좋은 신발이네, 너가 춤출때 절대 벗기지 말아라. 라고 구두에게 마치 생명이 있는듯이 구두랑 대화를 하고 가는거야. 

 

그러다 교회다녀오고, 카렌이 춤을 추고 싶어서 춤을 춰 놀러가서. 그리곤 신을 벗을 수 있었는데 이때는.,

 

새엄마가 아파서 누워있는데, 또 춤이 추고 싶어서리 놀러가서 춤을 추는거야. 헌데, 신발이 안벗겨지는겨. 계속 춤을 춰 낮이고 밤이고, 비가오고 눈이와도, 그와중에 새엄마가 죽어. 장례식도 못가고 계속 춤춰. 막 빌어 제발 좀 멈추게 해달라고. 천사가 나타났어. 빌어 제발 좀..하다가 신발이 막 춤추면서 천사도 못만나게 해. 

 

얘가 두 발목을 짜르는겨. 그리고 의족이랑 목발을 짚는거고. 교회가서 기도하려 해. 헌데 저 짤린 구두가, 카렌의 발에 신긴체. 이 계속 춤추는겨. 카렌이 교회가는 것도 못가게 막아 길 앞에서. 다음 일요일에도 가려해 교회를. 아 내가 저 교회가는 사람보다 그리 못된건가. 나도 저 사람들만큼 선한 아이라 생각하는데. 신발이 카렌 짤린 발에 신긴 체 춤추면서 못가게 해.

 

그러다 카렌이 교회에 부엌데기로 일하는겨. 그러다 기도하니 하늘이 들어줘서 천당가는 거걸랑. 빨간 구두는 어디 간줄 몰라.


.
저걸 각색을 한겨 일본식으로. 저 빨간구두 논쟁.이 있는데. 넘어가고..
아 졸 잔인 . 저 안데르센 변태 저거. 저거 진짜 변태여 저거. 잰 정신병리학적으로 문제많은 야 저게.
.
오스만이 처음 부딪치는 건. 비잔틴이야.

The Byzantine–Ottoman wars were a series of decisive conflicts between the Ottoman Turks and Byzantines that led to the final destruction of the Byzantine Empire and the rise of the Ottoman Empire.

 


.비잔틴과 오스만.의 전쟁은 오스만이 서기 1299년에 서고. 콘스탄티노플 함락 1453년.까지 150년간이야. 완벽한 오스만의 압승.

비잔틴.이 57년만인 1261년.에 콘스탄티노플.을 다시 점령해 십자군들로 부터. 비잔틴은 아나톨리아의 니카이아.에 서쪽 해변 일부와. 그리스땅 북부를 차지한거야. 얘들 바로 위가. 불가리아.에 그 옆 세르비아.야. 이전에는 저들이 비잔틴의 바쌀들이었걸랑. 헌데 이미 저당시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는 1240년대부터 위에서 일칸국의 몽골애들이 훑고 1241-43년.을 아예 쑥대밭 맹그는겨. 특히 가까운 불가리아는 몽골의 바쌀이 되기로 해. 조공을 바치는거야.  

Grand Principality 1071–1217
Kingdom of Serbia 1217–1346

세르비아.는 처음 그랜드 프린시펠리티. 하는데. 저건 비잔틴에서 준거야. 킹덤은 안되고, 그아래 자치적 수준으로 인정을 해준거고. 그러다가 140년 지나서 1217년.에 로마 로 부터 킹.을 인정받는거야. 저때 비잔틴은 바다건너 니카이아.에 갔으니 힘이 없어 쫓겨나서. 
즉 말야. 세르비아.와 비잔틴은 사이가 안좋아 이게. 비잔틴이 복귀하고는, 세르비아가 오히려 비잔틴을 위협하는거야. 저거 로마 십자군애들에게 쫓겨난 것들. 우습게 보이는겨 비잔틴이 세르비아에겐. 세르비아와 서로 적대적이 돼 비잔틴이 복귀한 시점부터는.


바로 위. 불가리아는. 투르크들의 불가리아 3백년 후에, 비잔틴의 불가리아 170년간 인거야. 그러다가 안센 피터 형제들의 봉기로 2차 불가리아가 서. 십자군 오기 직전에. 
즉 불가리아도 말야. 비잔틴 속국이었다가 독립했지만, 쟤들은 슬라브 애들이야. 세르비아 하고는 약간 달라 성질이. 세르비아는 기존 가문이 이어가면서 저 비잔틴 저거 머여. 하는거고. 불가리아는 슬라브 애들이 서고, 대관 받는겨 촌놈들이라. 비잔틴에게 잘 보여야해. 이전에도 다들 비잔틴 정교회였어 민들이. 그러다가 비잔틴이 쫓겨나고. 다시 왔어. 적대적이진 않지만, 쫌 우스운 시선으론 봤겠지 비잔틴을. 
헌데, 비잔틴이 콘스탄틴 다시 점령하기 직전인 1240년대 초에. 몽골애들이 쳐내려오는겨 위에서 동유럽을 훑고. 이게 세르비아나 불가리아에겐 치명적이었어. 몽골애들은, 민들을 걍 싸그리 죽여. 약탈이고. 
이 몽골들은 말야. 정말 사람들 죽였어. 유럽애들은 저런식의 전쟁을 하지 않았어. 저런 무자비한 애들은 처음 보는겨. 저건  쎈 게 아니라, 아무 힘없는 사람들을 걍 칼질 한겨. 처음엔 공포였다가, 가만 보니 실력 없는 들이 아무 힘없는 민들을 죽이면서 기를 죽인거야 저게.

요즘 말야. 사과하라 사과하라 개 대지만 말야. 유럽에게 사과하라. 일본에게 사과하라.
참 싕기한건 말야. 왜 대체, 몽골들에겐 사과하라 란 말은 절대 하지 않는건지 말야. 저들이 얼마나 얼마나 우리네를 죽였는 지 아냐. 저들이 저당시 중동과 유럽을 걸쳐서 얼마나 민들을 학살을 햇는지 아냐. 대체 왜 그런거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하고. 몽골 가면 우리 형제. 수교 어쩌고. 친교 어쩌고.

터키 들이. 사람들을 얼마나 죽였는지 아냐. 저 6백년간. 저들이 처 들어간거 아니냐? 저들의 터키땅은 서기 1299년 부터야 저게. 터키땅의 원래 주인이 쟤들이 아냐. 쟤들이 주인된건 7백년이야 끽해야. 아르메니아인을 150만명을 학살했어 저 들이. 저런 들 땅에 또 가서는. 터키는 우리와 형제여. 개 . 

한국 전쟁때 터키 들이. 투르크족을 파병을 했겠니. 쟤들 이민족인 쿠르드다 쿠르드. 쿠르드.는 투르크와 전혀 상관이 없는 페르시안 계열이여 살라딘의 쿠르드는. 

전쟁 살인범 그야말로 들은 형제여. 동맹이여. 중국가 을매나 우리를 죽였냐 병란때. 포로를 20만이니 노예로 잡아가서 을매나 고생을 시켰냐. 그거 사과하라 안하냐?
인민군 들이. 을매나 죽였냐 한국전쟁때 양민들을 을매나 을매나 죽였냐 인민재판 놀이 함시롱. 그건 사과하라 안하냐?

오직 일본. 오직 친일 적폐. 저건 병이야 병. 뭔 전염병도 아니고. 아니 저건 전염병 수준이야. 저건 먼 돌림병인가 저건 학계에 보고를 해야해. 
일본에게 사과하란 것과 같은 시선으로. 보편적으로 말야. 몽골 들에게도 사과하라고 해. 우리네 한테 한 짓과 더하여. 세계인들을 조오오온나리 죽인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해 라 좀. 터키 들이 아르메니안인들 150만 학살 시킨것도 사과하라고 해봐 좀. 북조선 들이 수많은 양민들 학살 한 것도 사과하라고 좀 해. 

이 조선 이란 오백년의 왕조.의 아이들이. 이게 참 싀안한겨. 고려사람들을 그리 이십여년 아주 조오오오온나게 죽이고 말야 왕씨들의 싹을 아예 짤라내면서 조오오오온나게 죽이다가. 조선이란 두글자가 서고. 고구려 광개토태왕비.도 오백년 내내 쌩깐겨 쟤들이. 저걸 이성계 부터 봤어 저 비를. 오백년 내내 방치를 해. 고구려 뿐이니. 삼국 시대 유물들 다 방치를 해 쟤들이. 오직 조선 조선. 헌데 어느새부턴가, 독립투사야. 항일 투사고. 아, 일본 만 들이대면, 정의의 사도가 되는겨 이게. 지금까지. 저런건 나중에 정리해보고. 

참 구역질 나는 땅바닥이야 이게. 

비잔틴이 다시 오기전에. 위의 불가리아.는 몽골에 조공을 바치는 바쌀이 되고. 킵차크칸국이지. 세르비아.는 떨어져있걸랑 불가리아에 붙어서. 여긴 걍 초토화가 되고 멍해버린겨.
그 와중에. 비잔틴이 온거야. 세르비아나 불가리아나 비잔틴이 관심밖이지만, 세르비아는 더 적대적인겨. 
이 상황에서. 오스만이 오는거야.
오스만의 아나톨리아.의 서부땅은. 오스만이 하미지 하는 동쪽에 룸 셀주크.가 그 오른쪽의 일칸국의 바쌀이걸랑. 일칸국은 더이상 안 나대. 걍 짱박히다가 사라져. 오스만의 비튀니아 땅이 전혀 몽골애들의 영향을 안 받는거야. 이 아나톨리아는 걍 베일리크들의 베이들이. 룸 셀주크에 하미지 하는 듯 하면서 자기들 힘 키우는 형세걸랑. 그러다가 오스만이 서쪽으로 가는거고.
할때. 비잔틴이 연합세력이어야 할 이웃 나라들인 불가리아 세르비아.는 몽골애들에 초토화되고, 말도 잘 안듣는거야. 오히려 쟤들이 처들어 올라고 해 비잔틴으로. 가장 문제는 몽골애들이 치고 떠난 그 후유증이야.

 

Ivaylo, also spelled Ivailo, (BulgarianИвайло), nicknamed Bardokva ("radish" or "lettuce" in Bulgarian) or Lakhanas (Λαχανᾶς, "cabbage") in Greek, was a rebel leader and emperor (Tsar) of Bulgaria.[1] In 1277, he spearheaded a peasant uprising and forced the nobles to accept him as emperor. He reigned as emperor from 1278 to 1279, scoring victories against the Byzantines and the Mongols


불가리아.에서 이때 티나오는 인간이. 그 유명한 이바일로.야 이전 썰한. 얘가 안센 피터.의 불가리아.를 엎어서리 얘가 군주가 된겨 짧게. 불가리아가 몽골을 배신하고 그 위의 헝가리에 하미지를 하고. 이걸 빌미로 골든호르드 몽골애들이 다시 수시로 쳐들어오는겨. 이걸 막은게 이바일로.야. 이 이바일로가 몽골애들 막고. 얘가 군주를 해. 비잔틴 입장에선 이바일로.는 적이야. 안센 피터애들이 친구야 쟨 듣보잡이야. 이런 비잔틴도 이바일로.가 이겨. 아주 굵고 짤게 살었어 이 이바일로.는

저런 와중에. 오스만애들이 오는겨 이게. 

 

 

the Turks under Osman I began their raids into Byzantine Anatolia; Söğüt and Eskişehir were taken in 1265 and 1289 respectively

 

서기 1265년.은 오스만의 아버지 에르투룰.이 쇠위트.를 점령한 해야. 오스만이 1280년에 베이.가 된걸로 봐. 아래 에스키셰히.르를 점령한 해가 1289년. 다음에 

 

 This allowed the Ottomans to lay siege to Nicaea in 1301. A further defeat on Andronicus' son Michael IX and the Byzantine general George Mouzalon occurred at Magnesia and Bapheus in 1302.[10]

 

니카이아 포위 하고. 그러다가 바페우스. 전투가 1302년. 이야. 오스만1세가 역사서에 제대로 등장하는 전투야. 이겨. 그래도 니카이아 니케메데이아.는 여전히 아직 비잔틴꺼야. 이 상황에서 카탈란 용병들 부르는거고. 이들이 터키땅 서쪽 해안을 쳐 내려가는겨. 오스만은 저기서 걍 사카리아강 따라서 위로 가는겨 흑해쪽 닿을라고.

 

카탈란 컴퍼니가 2년여 연승을 하는걸 겁먹고 비잔틴애들이 오히려. 자기들 권력 위협할까봐. 용병대장과 병사들 기병 백명에 보병 천명을 콘스탄틴으로 초대해서 학살을 하고 서기 1305년. 잔여병력들이 비잔틴을 공격하면서 내려가서리 아테네 덧치에서 자리잡고. 비잔틴은 공동황제 체제걸랑. 로마 후기 처럼. 나눠서 막는겨 변경을. 즉 아나톨리아 담당하는 황제가 저 배신을 한거걸랑 자기 입지 때문에. 카탈란들 가고, 얘들끼리 내전을 하는겨. 이 비잔틴은 결국 내전으로 망한거야. 

 

This culminated in the Byzantine civil war of 1321–1328, in which Serbia backed Andronicus II and the Bulgarians backed his grandson. Eventually Andronicus III emerged triumphant on May 23, 1328. As Andronicus III consolidated his hold on Byzantium, the Ottomans succeeded in taking Bursa from the Byzantines in 1326.[2]

 

저때 같이 힘 합쳐야할 불가리아 세르비아.는. 이제 몽골애들은 안오고. 공동황제들 각각으로 편갈라서리 서로들 싸우는겨. 

 

 

쟤들은. 오스만들이 오른쪽에서 건너 오려는 와중에. 황제들끼리 내전하면서 세월 다 보낸겨 저 중요한 시기에. 저기에 불가리아 세르비아.도 갈려서 끼는거고. 얘들은 안망할래야 안 망할수가 없어. 더하여 세르비아 불가리아.도 그냥 먹히는겨 저게. 이전 몽골에 쎄게 치이고. 거기에 비잔틴 내전에 껴들다가. 오스만들이 걍 저걸 주은겨.

 

 

Orhan Gazi (Ottoman Turkish: اورخان غازی، اورخان بن عثمان بن ارطغرل‎; Turkish: Orhan Gazi) (c. 1281 – March 1362) was the second bey of the nascent Ottoman Sultanate (then known as the Ottoman Beylik or Emirate) from 1323/4 to 1362. He was born in Söğüt, as the son of Osman Gazi and Malhun Hatun. His grandfather was Ertuğrul.

 

 

오스만 설립자.는 오스만의 꿈.에 바페우스 전투. 이게 다야. 본격적인건 아들 오르한. 이야. 1323/4 년. 에서 30년을 술탄을 해. 이사람 엄마.가 오스만이 쫓아다니며 꿈 꿔서 수피즘 사제 장인한테 얻은 말훈 하툰. 이야. Hatun. 이 우리네 여사. 부인. 이야. 술탄 마누라들은 다 하툰.이야. 마치 성 처럼 써 저걸. 본처의 자식이야 오르한.

Alaeddin Bey, or Alaeddin Pasha (Alâeddin Paşa; Söğüt, 1280/1282 – Bursa, 1331), was the half-brother of Orhan I, who succeeded their father, Osman I Ghazi, in the leadership of the Ottoman Empire.

 

오르한.의 형인지 동생인지.가 알라딘.이야. 베이. 인겨. 땅이 있어. 둘이 오스만 제국을 만든거야. 이 알라딘.이 로마 이후 최초의 상비군을 만들어. standing army. 유럽의 최초의 상비군.은 프랑스 샤를 7세여. 이전썰. 백년전쟁을 프랑스가 이기고. 잉글랜드와 반대로 중앙집중적이 돼. 프랑스라는 정체성이 생기면서 왕정을 강화해. 해서 두는게 상비군이야. 헌데 말야. 이건 돈이 드는겨. 이게 쉬운게 아냐. 아들 루이 11세.가 이 제도를 다시 없애는겨. 마키아벨리.는 이걸 비판을 해. 루이11세가 저 아비의 상비군을 유지했다면 천하무적이었을꺼라. 하지만 말야. 얜 그 비용적 측면을 못본겨 마키아벨리는. 유럽애들의 중세 전쟁은. 이겨서 약탈하는게 아냐 이게. 고대의 전쟁과 전혀 달러. 고대는 걍 떼거지로 가서리 약탈하고 나눠주는겨. 이 명분으로 대군을 움직인거야. 유럽 중세는 이따위가 아냐. 이게 가장 큰 차이야 이전과. 그리고 동양빠닥과.

 

 

알라딘.이 최초로 상비군을 둬. 얘들은 말야, 그 명분을 어디로 두겠어. 약탈이야 약탈. 약탈해서 너가 가져라. 애들 약탈을 시켜서리 그 이익을 상비군들에게 포상으로 주면서 이걸 운영을 한거야 6백년을 이 들이. 초기엔 잘 먹힌겨 이게. 그러다가 결국 지금 개 쓰레기 터키.가 된거야. 이게 아주 결정적이야 이 군대 시스템이. 전쟁을 하는 목적. 얘들이 오스만의 꿈을 빙자해서리 유럽을 쳐들어가는건 오직 약탈이야. 전쟁으로 상비군을 유지하는거고. 그 부.를 걍 나눠갖는것. 이건 고대와 전혀 차이가 없는거야. 이따위 시대는 수천년 이 해봤자 문명을 고도화 시키지 못한거야. 근대.를 유럽 온니 유럽만 근대를 만든 이유야. 동양빠닥이 근대를 못만든 이유고. 전쟁하면서 문명을 파괴하는거야 저따위 은. 그러면서 자기들 문명을 만들 생각 조차 안하는겨. 걍 전쟁해서 빼앗아 오자. 이 개념 밖에 없었던겨. 투르크. 아랍. 페르시안. 인도. 중국. 조선. 일본. 다~~ 똑같아 이게. 유럽 중세 천년이 이전의 시대 와 다르고 동시대 다른 애들과 다른게 이거야.

 

 

 

알라딘.이 상비군.을 만들고. 이걸 술탄 체제에서. 예니체리.라는 이교도 꼬마들을 어릴때부터 세뇌시켜서리 에이아이용병으로 만든게 오르한.의 자식 무라드 1세.

 

얘들은 말야. 오스만 시작부터. 오스만은 24,5년 베이 한거고. 오르한에 무라드1세. 다 삼십년 정도씩 해 술탄을. 다음이 바예지드1세. 메메드1세. 고 바로 메메드2세의 애비 무라드2세.야. 메메드2세 이후로 손자 위대한 술레이만까지. 아주 짱짱한겨 인물들이. 

 

 

룸 셀주크.는 이미 오스만 시작때 몽골에 들어가서리 하미지 하면서. 실질은 끝난겨. 1308.년에 룸 셀주크의 마지막 술탄이 암살당해. 그 핏줄들이 걍 힘없이 잇는거야. 아들 오르한때 셀주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거야. 자기들 화폐에 셀주크애들 이미지를 안박아 이제. 룸 셀주크의 마지막핏줄은 20년 후에 베이들한테 죽어. 

 

그러면서 오르한과 알라딘.이 니카이아 니코메데이아.를 완전히 점령하고. 부르사.도 점령하고 비잔틴을 완전히 내모는거야 아나톨리아 북서쪽에서. 그리고 이 부르사. 에 오스만과 오르한 부자 술탄들의 무덤이 있는겨. 메메드2세가 콘스탄티노플 점령 전에는 부르사.에서 소위 얘들 대관식을 하는겨 술탄들이. 얘들은 관 쓰는게 아니라. 칼.이야. 오스만의 칼.을 받는겨. 

 

 

Osman's sword on display

 

시조 오스만.의 칼.이야. 술탄.은 저 칼을 두르는겨. 유럽애들 대관식 이 얘들은 저 오스만의 칼.을 허리에 두르는거지. 오스만에게는 장인이 저걸 두르게 해준거야. 부르사.에서 하다가. 메메드2세부턴 무덤도 콘스탄틴이고 여기서 술탄 즉위식을 저 칼로 하는거야.

 

A series of civil wars surrounding the ascension of the nine-year-old Byzantine emperor John V Palaiologos greatly benefited Orhan.[citation needed] In the Byzantine civil war of 1341–1347, the regent John VI Kantakouzenos married his daughter Theodora to Orhan and employed Ottoman warriors against the rival forces of the empress dowager, allowing them to loot Thrace. In the Byzantine civil war of 1352–1357, Kantakouzenos used Ottoman forces against John V, granting them the use of a European fortress at Çimpe around 1352.[4][5] A major earthquake devastated Gallipoli (modern Gelibolu) two years later, after which Orhan's son, Süleyman Pasha, occupied the town, giving the Ottomans a strong bridgehead into mainland Europe.

 

오르한.이 아래 해협 다르다넬레스.해협을 건너서 거기 땅도 취하면서 물려줘. 여기 거점이 갈리폴리. 지금 겔리볼루. 여기가 차나칼레.라는 트로이박물관 있는 마주보는 해변이야. 원래 트로이유적은 히살리크 라는 훨 아래 있는거고. 
저것도 말이야. 비잔틴애들이. 황제와 귀족들이 내전하면서. 이 들이 오르한.에 지원요청을 하는겨. 상대 세력 없애달라고. 해서리. 황제쪽이 자기 딸까지 주는겨 오르한.에게. 해서 비잔틴 황제의 딸이 오르한의 다섯번째 마누라.야

Nilüfer Hatun
Asporça Hatun
Theodora Hatun
Eftandise Hatun
Bayalun Hatun
Maria Hatun



1대 오스만.은 역사적으로 팩트가 애매한데. 이 오르한부터 마누라이름들에 자식들이 확실히 찍히는겨. 이름있는 마누라 하툰들만 6명이야. 저기에 테오도라 하툰.이 비잔틴 황제의 딸이야. 다 중혼이야. 이들이 지금 개 쓰레기인 이유 중의 하나. 저 하렘에 유너크라는 환관놀이. 

유럽애들은 저 개 개인 창녀촌을 안 만들었어. 저 개인 창녀촌을 운영하기 위한 환관을 두지 않았어. 아주 명확한 가장 큰 차이야 이게. 자기 여자들 딴가 건드릴까봐 환관이란 거세당한 이들로 울타리를 치는겨.

명성황후 라는 민비.욕을 구한말에 하면서리. 그 민비 백만냥 대고. 서유견문 쓴 그 이 조차 민비 어쩌고 하지만 말야. 정작 말이지. 민비 얼굴 본 사람들이 전혀 없어. 어드래 킹의 여자.를 볼 수가 있겄니. 외국 여자들만 본겨. 상투의 나라 쓴 언더우드 누님 정도만. 이 누님은 두번인가 봐. 직접. 
민비 욕 다 개 소리에 다 개 소설이야. 조선 개 한남 벌레들이 모든건 일본탓. 양키탓.에 여자탓. 하는겨. 정말 말야 세상 인종에 이따위 개 잡들이없어. 지금 현재. 현재도. 여전해 이게. 헌데 정작 말야. 저 오백년 이상을 저리 유교와 조선에 당했으면서. 저걸 추대하는 당파.를 지지하는건. 또 페미라는 족속들이야. 
참 코메디도 이따위 코메디가 없어. 이땅바닥 가만 보믄. 조오오온나게 웃겨 진짜 ㅋㅋㅋ.

비잔틴.이 자기 황제 딸을 오르한에게 주고. 갈리폴리.란 땅도 주는겨. 발칸 반도에. 여기가 발칸반도를 쳐 먹는 거점이 되는겨. 이걸 비잔틴애들이 내전에 상대 적폐 이길라고 스스로 바친거야. 
저때부터. 무라드1세. 

바예지드1세. 메메드1세. 무라드2세. 메메드2세. 이 다섯 술탄 거치면서. 콘스탄티노플 최종 먹히면서 비잔틴 천년 제국은 걍 사라진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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