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anius Dioscorides (GreekΠεδάνιος Διοσκουρίδης Pedanios Dioskouridēs

c.

 40 – 90 AD) was a Greek physician, pharmacologist, botanist, and author of De Materia Medica (Ancient GreekΠερὶ ὕλης ἰατρικῆς, On Medical Material) —a 5-volume Greek encyclopedia about herbal medicine and related medicinal substances (a pharmacopeia), that was widely read for more than 1,500 years. He was employed as a medic in the Roman army.

 

페다니오스 디오스코리데스. 서기 40년에서 90년 사람. 파머칼러지스트. 바터니스트. 

 

Origin

Early 17th century: modern Latin, from Greek pharmakopoiia ‘art of preparing drugs’, based on pharmakon ‘drug’ + -poios ‘making’.

 

pharmacopoeia. 파머코피어. 가 약전. 藥典 이라해. 약에 대한 전범. 교범이야. 파르마콘.이 약. 이고. 드러그.는 게르만이 만든말이고. 바터니.는 식물 플랜트.고 다 그리스어야. 

 

이사람이 쓴 책이. 데 마테리아 메디카. 란 책이야. 메디신. 메디칼.이 병 치료하는 거야. 저걸 영어로. 메디컬 머티리얼.에 대하여. 로 번역한거지만. 저 책이 근대 약전.의 선생님이야. 

 

 

 

 

Between AD 50 and 70 [6] Dioscorides wrote a five-volume book in his native Greek, Περὶ ὕλης ἰατρικῆς (Peri hules iatrikēs), known in Western Europe more often by its Latin title De Materia Medica ("On Medical Material"), which became the precursor to all modern pharmacopeias.[7]

 

약학하는 애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겨. 동의보감 그따위 한무당 책말고. 다 그런게 오행에 음양.을 공리로 두고. 세상 모든 식물 약초를 그 자라나는 환경에 따라서리 지들 멋대로 겐또로 비전으로 내려왔담시 음양오행으로 나눠서리 하는겨. 저건 말야. 과학이 아냐 저건. 저건 페이건.이여. 저따위는 취미도 멋도 아녀. 저긴 문명이 없어. 먼놈의 발전이 없어. 어드래하면. 누가 만든지도 모르는 황제내경에 상한론에 더 맞는가. 누가 저 알 수도 없는 걍 꿈에 보인 글자의 뜻에 더 닥아가나.가 쟤들 이 연구하는겨. 아무런 과학적 논증이 안돼 저게. 공리 자체가 하늘에서 떨어진거야. 신놀이 하면서리 신앙생활하는거랑 다를바가 없어 저게. 

 

 

 

이전에. 이데아 에이도스. 퓌시스 휠레.를 지미 말쌈하셨지만. 지믜 모든 말싸믄 현대 최첨단의 사유걸랑 저게. 저런 글들의 무게를 네덜이 알 턱이 없는데. 움베르토 에코의 할배가 와도 짐한텐 안될텐데. 하튼 말야. 세상 바닥의 설계도.가 이데아.에 퓌시스.고 그걸 구현한 건축물이 에이도스.에 휠레.인거야. 저건 걍 무조껀 외워. 이데아 에이도스. 퓌시스 휠레. 이 퓌시스.가 물리학이야. 물리학은 기본으로 다들 공부를 해야하는겨 문꽈던 이꽈던. 저 물리학.은 세상의 설계도를 찾는겨. 겉의 모습을 공부하는 휠레.가 아냐. 에이도스가 아냐 이건. 그 바닥을 디비파는겨. 이게 진짜 철학이야 이 물리학이. 이땅바닥엔 물리학과 철학의 격차가 하늘과 땅인거야. 이꽈애들이 과학적 사고로 재들껄 원문으로 파고드는 이데아 휘시스.를 디비 파면서 뻬낄때. 문꽈들은 망상 공상 놀이에 조선 유교에 민족 이념 놀이에만 미쳐서리. 다 대갈빡이 개머저리가 된거걸랑 이 문꽈들이. 해서 대가리가 깨져도 머시기 대는걸 자랑스러워 하는겨. 일단 대갈빡은 깨졌어 대갈빡에 든게 없어서. 텅텅벼서 걍 툭 건드려도 깨지는 대갈들인겨. 그걸 자랑스러워 하는겨 지들이. 대깨머시기를 지들 스스로 밀어. 세상에 저따위 벌레들이 어딘냐. 

 

이 문꽈가 야 이땅바닥이. 철학자가 없는거야 이게. 이꽈는 휠레.에 퓌시스.로 파들어가면서 세상 설계도.를 찾아와서리 문명을 저리 그나마 조선 빠닥에 올려놓았는데 

 

다른 한 축인 이 문꽈 들은. 에이도스.를 파서리 이데아를 써야 하걸랑 같은 수준으로. 헌데 이런 들이 조선건국이래 7백년 째. 단 . 하. 나. 한. 도 없는겨 . 이땅은 전적으로 이꽈들때메 그나마 우리네가 이리 살아가는겨 다른 모든 식민지에 문명 갓 시작한 애들보다 월등히. 이꽈애들에게 고맙게 생각해야해 이땅바닥은. 

 

정말 문꽈들은 야 . 이 문꽈 지식인 들. 지금도 여전히 그 같잖은 허섭한 이야기로 사람들 이념놀이로 분노질 시키면서 지들 배떼기 채우는 저 그야말로 지렁이 구데기 들.

 

 

이데아 에이도스. 를 더 파고들은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야. 이 둘이 만든 사유가 퓌시스 휠레.야 같어 저게 맥락이. 이걸 라틴어.로 옮긴게 네이쳐 매터. 인겨. 

 

매터.란게 머티리얼. matter. material. 같은 어원이야 마테리아. materia. 이건 라틴어야 로마애들이 쓰던. 디오스코리데스.는 그리스가 이미 한니발 전쟁다음에 로마에 처먹히기 시작해서 완전 로마의 속주가 된겨. 킬리키아. 에서 태어났어 고대 해적 본거지. 터키 저 오른쪽 아래 해변 구석. 그리스 해변도시들이야 저기가. 그리스인이지만 로마 문명속에서 살아. 로마군단의 군의관이야. 약전을 쓰는데. 에이도스. 휠레. 라고 안쓰고 마테리아. 라는 로마 라틴어를쓴겨 그래서. 이미 그리스의 말들이 라틴어로 대체가 되는겨.

 

설계도 그 자체. 근본 원리 그자체.를 고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치료하는 겉 껍질들인 물질 사물들.이야. 번역굳이 하면. 치료하는 사물들. 약들. 약재들. 이리 걍 번역하면 돼 저걸. 

 

저걸 저당시 다섯권으로 썼는데. 저건 아마 파피루스.로 썼을꺼야 저사람이. 저건 르네상스.때 안나왔어 원자료가. 원본을 몰라. 저게 1500년 이상 읽힌겨 르네상스까지. 초창기 오백년은 원본이 살아있다가. 후기 천년은 다를게 저걸 대체해. 이게 말이지.

 

The Vienna Dioscurides or Vienna Dioscorides is an early 6th-century Byzantine Greek illuminated manuscript of De Materia Medica (Περὶ ὕλης ἰατρικῆς in the original Greek) by Dioscorides in uncial script. It is an important and rare example of a late antique scientific text. The 491 vellum folios measure 37 by 30 cm and contain more than 400 pictures of animals and plants, most done in a naturalistic style.

 

The manuscript was created in about 515 AD in the Byzantine (Eastern Roman) Empire's capital, Constantinople, for a resident byzantine imperial princess, Anicia Juliana, the daughter of Anicius Olybrius, who had been one of the last of the Western Roman Emperors. The manuscript is accordingly now called the Juliana Anicia Codex by scholars.

 

비엔나 디오스코리데스. 서기 515년.에 만든거야. 비잔틴 콘스탄티노플.에서. 저자가 아니키아 율리아나. 여자야. 서로마 황제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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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망할때를 간략히 보면. 

 

Diocletian (/ˌd.əˈklʃən/Latin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Augustus), born Diocles (22 December 244 – 3 December 311),

 

위기의 3세기.를 마무리하고 통일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를 두개. 다음에 네개.로 나눠. 아우구스투스. 자리가 공동황제. 아래가 카이사르.라는 부황제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하고. 싸워. 넷이. 막시미아누스.도 욕심부리다가 짜지고.

 

Constantine the Great (Latin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 AugustusGreekΚωνσταντῖνος ὁ Μέγας; 27 February 

c.

 272 AD[1] – 22 May 337 AD), also known as Constantine I, was a Roman Emperor who ruled between 306 and 337 AD.

 

저 넷을 통일한게 콘스탄티누스 대제. 아빠가 콘스탄티우스1세. 서쪽의 카이사르. 즉 주니어 였어 아빠가. 서쪽에서 아우구스투스.가 되고. 재임기간에 동쪽 로마를 다 합치는거야. 그리고 죽어. 서기 337년. 죽고나서 바로 로마는 다시 찢어져.

 

Julian (LatinFlavius Claudius Iulianus Augustus;[a] GreekΦλάβιος Κλαύδιος Ἰουλιανὸς Αὔγουστος; 331/332[1] – 26 June 363), also known as Julian the Apostate, was Roman Emperor from 361 to 363, as well as a notable philosopher and author in Greek.[2]

 

 

30년 안되서. 다시 반짝 동서 합치는게 율리아누스. 서로마 황제.로 재임하다가 361년.에 동로마랑 합쳐서 3년 반짝 통일한거야. 

 

여기까지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버지 콘스탄티우스1세부터의 콘스탄티누스 다이너스티.인거야. 율리아누스가 자식이 없어. 이때 오른쪽에 사산이 선지 백년 지난겨 파르티아 다음에. 사산.이랑 전투하다 죽어.

 

Jovian (LatinFlavius Jovianus Augustus;[1] GreekἸοβιανός; 331 – 17 February 364) was Roman Emperor from 363 to 364. Upon the death of emperor Julian the Apostate during his campaign against the Sassanid Empire, Jovian was hastily declared emperor by his soldiers. He sought peace with the Persians on humiliating terms and reestablished Christianityas the state church. His reign lasted only eight months.

 

요비아누스. 근위대장 자식이야. 황제가 전장에서 죽었어. 근위대에서 추대를 하는거지. 안티오케이아 까지 내려가서 전투하다가. 코트.를 비우고 밖에서 추대되어봤자 수도 안에서 새 킹 추대하면 끝이여. 비일비재여 이런게. 얜 근위대 핏줄이고. 아차 하고 바로 콘스탄티노플로 빠꾸하는겨. 가는길에 텐트에서 죽었어. 독살인지 음식문젠지. 몰라. 알길없어. 

Valentinian I (LatinFlavius Valentinianus Augustus;[1] GreekΟὐαλεντινιανός; 3 July 321 – 17 November 375), also known as Valentinian the Great,[2][3][4][5] was Roman emperor from 364 to 375. Upon becoming emperor he made his brother Valens his co-emperor, giving him rule of the eastern provinces while Valentinian retained the west.

 

요비아누스. 다음이 발렌티아누스1세. 얘도 이전 군단 사령관 자식들이야. 권력 잡고. 이복동생.이랑 나누는거야. 그러면서 발렌티아누스 조.를 만들어가는겨. 동생이 발렌스 Valens. 

 

 

점점 더 게르만들 더 처들어오고. 오른쪽에선 사산.에 페르시안 다른 스텝애들 더 들어오고 할때야. 동로마 발렌스.는 게르만 고쓰족 반란군 막다가 죽어. 자식이 일찍 죽었어. 여긴 발렌티아누스. 조.를 못만들고 끊긴거야 바로. 서로마.는 자식까진 간거고.

 

Theodosius I (LatinFlavius Theodosius Augustus;[1] GreekΘεοδόσιος Αʹ; 11 January 347 – 17 January 395), also known as Theodosius the Great, was a Roman Emperor from 379 to 395, and the last emperor to rule over both the Eastern and the Western halves of the Roman Empire

 

동로마.의 황제로 테오도시우스1세.가 올라. 한 지역 총독이었어. 핏줄이 달라 서로마랑. 해서 테오도시우스.는 자기 큰아들을 공동황제.로 동로마에서 미리 올려놓다가. 서로마에 저 발렌티아누스 자식이 자살을 해. 아마 아래것이 죽인듯. 여길 테오도시우스.가 접수를 하고. 서기 392년.에 다시 묶인겨 동서.가 그리고 어린 작은 아들을 서로마 황제.시키는겨. 큰아들이 아르카디우스. 작은 아들 서로마가 호노리우스. 아주 둘다 문제가 많어. 이미 주변은 이민족들 버글버글에 아틸라까지 쳐들어오는데.

 

쟤들이 환관과 대신에 각각 놀아나걸랑 두 황제 들이.

 

Flavius Stilicho (/ˈstɪlɪk/; occasionally written as Stilico; c. 359 – 22 August 408) was a high-ranking general (magister militum)

 

이때 등장하는 이가. 최후의 로마인. 반달족 출신 스틸리코. 테오도시우스의 조카와 결혼한 장군이야. 모함으로 죽는겨 서로마 가서. 동로마 아르카디우스. 형이 죽어. 스틸리코.가 동로마황제에 서로마도 먹을끼다.란 얍삽이 말에 가족포함 다 죽여. 게르만 동맹군들 가족들도 다 죽여. 저해야 서기 408년. 아르카디우스. 죽고 스틸리코 죽는. 그리고 바로 터지는게 게르만이 열받아서 내려간 로마약탈. 에 호노리우스.한테 로마가 죽었슈 하니 자기 기르는 닭 로마가 죽은 줄 알고 울다가 도시로마네 해서 웃었다던.

 

Valentinian III (LatinFlavius Placidius Valentinianus Augustus;[1] 2 July 419 – 16 March 455) was Western Roman Emperor from 425 to 455. His reign was marked by the ongoing dismemberment of the Western Empire

 

Petronius Maximus[1] (LatinFlavius Anicius Petronius Maximus Augustus)[2] (c. 396 – 31 May 455[3][4]) was Western Roman Emperor for two and a half months in 455. A wealthy senator and a prominent aristocrat, he was instrumental in the murders of the Western Roman magister militumFlavius Aëtius, and the Western Roman EmperorValentinian III.

 

Marcus Maecilius Flavius Eparchius Avitus[i] c. 380/395[1] – after 17 October 456 or in 457) was Western Roman Emperor from 8 or 9 July 455 to 17 October 456. He was a senator and a high-ranking officer both in the civil and military administration, as well as Bishop of Piacenza.

 

Flavius Julius Valerius Majorianus (c. AD 420 – August 7, 461), usually known simply as Majorian, was the Western Roman Emperor from 457 to 461.

 
Libius Severus (LatinFlavius Libius Severus Serpentius Augustus[1][2]) (Lucania, c. 420 – 15 August 465), also Severus III,[3] was Western Roman Emperor from November 19, 461 to his death.
 
Anthemius[2] (/ænˈθɛmiəs/LatinProcopius Anthemius Augustus; c. 420 – 11 July 472) was Western Roman Emperorfrom 467 to 472
 
Olybrius (LatinAnicius Olybrius Augustus)[1] (died October 22 or November 2, 472) was Western Roman Emperor from April or May 472 until his death; his rule was not recognised as legitimate by the Eastern Roman Empire. He was in reality a puppet ruler put on the throne by Ricimer, a Roman general of Germanic descent, and was mainly interested in religion, while the actual power was held by Ricimer and his nephew Gundobad.
 
 
테오도시우스1세의 작은 아들 서로마 호노리우스.가 서기 425년에 죽고. 자식이 없어. 이때부터 군단장 했던애들. 원로원 의원들 등등이 하는겨. 직후는 30년 했지만. 서기 455년 부터. 472년까지. 17년동안 서로마 황제가. 6명이야. 걍 개판인겨 저기는. 
 
저때 끝. 올뤼브리우스. 의 딸이. 아니키아 율리아나. 이고. 이여자가 쓴 책이. 비엔나 디오스코리데스. 라는 그림책.이야. 역시나 황제되는 올뤼브리우스.란 아빠는 플레비언.이여. 파트리쿠스가 아냐. 헌데 부인이 동로마 황제핏줄이걸랑. 이 딸이 동로마.로 가서리 저 책을 쓰고. 저 책이 콘스탄티노플.에 천년간 있는거야. 메메드2세가 쳐들어오면서. 저게 신성로마황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옮긴거고. 디오스코리데스.의 약전. 이전 오백년 전에 쓴 책을. 이여자가 그림책으로 다시 쓴게 비엔나.에 있다고 해서 비엔나 디오스코리데스. 라고 해.
 
 
 
Flavius Ricimer[1] (/ˈrɪsɪmər/Classical Latin: [ˈrɪkɪmɛr]; c. 405 – August 18, 472) was a Romanized Germanic general who effectively ruled the remaining territory of the Western Roman Empire from 461 until his death in 472, with a brief interlude in which he contested power with Anthemius. Deriving his power from his position as magister militum of the Western Empire, Ricimer exercised political control through a series of puppet emperors.
 
저들 황제들이 다 퍼핏 황제들이야. 아무런 힘이없어. 이때 실세가 리시머. 리키메르.라는 게르만 출신 장군이야. 얘 조카가 군도바드. 군도바두스. 하는 당시 부르고뉴족 킹덤의 킹이었고. 서로마가 얘들 수중에 있는겨. 

 

 

Glycerius (Latin: Flavius Glycerius Augustus) (Unknown – after 474 AD) was Western Roman Emperor from 473 to 474. He served as comes domesticorum (commander of the palace guard) during the reign of Olybrius, until Olybrius died on 2 November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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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us Nepos[1] (LatinFlavius Julius Nepos Augustus

c.

 430 – 480) was Western Roman Emperor de facto from 474 to 475 and de jure until his death in 480. 

 

Flavius Romulus Augustus (c. AD 460 – after AD 476; possibly still alive as late as AD 507),[3] known derisively and historiographically as Romulus Augustulus, was the Roman emperor who ruled the Western Roman Empire from 31 October 475 until 4 September 476. He is often described as the "last Western Roman emperor", though some historians consider this to be Julius Nepos

 

 

 

올뤼브리우스.가 죽고. 다음 서로마 황제가 글뤼케리우스. 바로 다음이 율리우스 네포스.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서로마.가 서기 476년 망. 하면서 오도아케르.가 아래땅 줄때 너 라벤나에서 나가 할때. 이 사람을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로 봐. 해서 이 인간이 서로마 마지막 황제다. 아니다 율리우스 네포스.다. 는 말들이 있는거고.

걍 로물루스.로 봐. 로마.를 로물루스 가 건립했잖냐. 로물루스.란 이름으로 마지막 하는게 멋지잖냐. 먼가 있어보이고.

아 서로마 이야길 왜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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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allery of birds from folio 483v of the Vienna Dioscorides

 

 

 

European Bramble

 

 

디오스코리데스.가 약학자에 식물학자에 의사인데. 저기에 저 당시 새그림.에 각각 식물들 그림이 저리 있는거야. 그에 대한 상세 설명도. 

 

저런걸 말야.

 

An illuminated manuscript is a manuscript in which the text is supplemented with such decoration as initials, borders (marginalia) and miniature illustrations. In the strictest definition, the term refers only to manuscripts decorated with either gold or silver; but in both common usage and modern scholarship, the term refers to any decorated or illustrated manuscript from Western traditions. Comparable Far Eastern and Mesoamerican works are described as painted. Islamicmanuscripts may be referred to as illuminated, illustrated or painted, though using essentially the same techniques as Western works.

 

일루미네이티드 매뉴스크립트. 번역을 채식본. 하걸랑. 

彩飾本
채. 라는글자는 빛이 나는거야. 식. 이란건 장식하는겨. 옷은 겉에 포장하는 장식이야. 분식회계할때 분식.이란게 영어로 드레씽 dressing. 음식위에 장식하는겨. 가리면서. 분식.의 분도 화장할때 가루 분.이야. 덮는겨 가짜로.

Origin

Late Middle English: from Latin illuminat- ‘illuminated’, from the verb illuminare, from in- ‘upon’ + lumen, lumin- ‘light’.

 

일루미네이트.가 루멘 루민. 이게 빛.이야. 저게 그림책이 아니라. 그림도 빛이 나는 재료로 그린거야 원래는. 해서 저기 정의를 보면. 골드.또는 실버. 금이나 은으로 그림재료를 쓰면서 빛을 내는겨 저게. 

 

얘들의 저 채식본.이라는 책이. 이 경지가 음청난겨. 동양빠닥에서 넘볼수 없어 저걸. 

 

 

지믜 세계사.는 일이관지한겨. 사유야 사유. 이 생각. 사유.의 증거. 그 자료들은. 책이야 책. 책을 어떻게 남겼느냐. 글을 어드래 남겨서 어드래 전했느냐 그 사람들의 생각 사유를 어드래 전해주었느냐. 책.으로. 

 

저 책에 대한 유럽애들의 시선은. 고귀한겨 그래서. 그 시작은. 그리스도야 저게. 중세 천년의 책들은 특히나. 중세 천년의 책이 이전 그리스 로마 와 다른건 저런 장식이야. 장식을 통해서 책을 귀중하게 생각하는거야. 그게 엘리자베쓰의 북 커버야. 영국이 저게 제일 유행한겨 북 커버에 수를 놓는게. 영국이 문명을 선도한 이유야 이게. 

 

저 채식본.이 

 

The earliest extant substantive illuminated manuscripts are from the period 400 to 600, produced in the Kingdom of the Ostrogoths and the Eastern Roman Empire. 

 

초기 서기 4백년에서 6백년.부터 보이는겨. 동고쓰족과 서로마제국시대. 즉 서로마 망하기 직전후부터 저게 나타나. 저게 중세 지날수록. 그 수준이 어마무시한겨. 그 책 자체가 보물덩어리야. 특히나 성서.를 저렇게 만드는겨. 

 

The Ostrogothic Kingdom, officially the Kingdom of Italy (Latin: Regnum Italiae),[5] was established by the Ostrogothsin Italy and neighbouring areas from 493 to 553.

 

동고쓰족.이.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망.시키고 이탈리아킹. 하면서 서로마는 없어지고. 얘가 바로 암살당해. 다 게르만이야 게르만 군단보조병들이야 쟤들이. 로마 시민이 되면서 그리스도가 되는겨 쟤들이. 오도아케르.를 죽이고 세운 이탈리아에서의 킹덤이 오스트로고쓰 라는 동고쓰족 킹덤이야. 60년 서다가. 비잔틴이 와서 쟤들을 내쫓다가 비잔틴 용병인 롱고바르디 란 게르만이 킹덤 세우고 소피핀 샤를마뉴올때까지 버티는건데.

 

즉 중세 천년이 시작하면서 등장하는게 저 채식본.이라는 일루미네이티드 매뉴스크립트.야. 저것을 대표하는 초기 작품이 비엔나 디오스코리데스. 
비엔나. 라고 쓰면 비엔나 라고 읽고. Wien 이라는 독일철자를 쓰면 빈.으로 읽어..

 A very few illuminated fragments survive on papyrus, which does not last nearly as long as vellum or parchment. Most medieval manuscripts, illuminated or not, were written on parchment (most commonly of calf, sheep, or goat skin), but most manuscripts important enough to illuminate were written on the best quality of parchment, called vellum.

 

저건 그래서. 파피루스.에 쓰는 게 아냐. 거의 없어 파피루스에 채식으로 그린건. 이건 약하걸랑 재질이. 해서. 벨룸. 또는 파치먼트.에 그리는겨. 이건 코덱스야. 현대 책처럼 끊어서 제본하는.

벨룸. 파치먼트. 엄격히 구분하면 달라. 같은 가죽 피지 이지만. 즉 동물 가죽을 가공해서 만든건데. 

 

벨룸. 은 어원이. 소야. 저건 소가죽이야. 송아지 갓 뱃속에 있다 나온 것의 가죽.이고

 

파치먼트.라는건 양가죽.이 많고 염소가죽.도 있어. 

 

In Europe, from Roman times, the term "vellum" was used for the best quality of prepared skin, regardless of the animal from which the hide was obtained, calf, sheep, and goat all being commonly used (other animals, including pig, deer, donkey, horse, or camel have been used). Although the term derives from the French for "calf", animal vellum can include hide from virtually any other mammal. The best quality, "uterine vellum",[9] was said to be made from the skins of stillborn or unborn animals,

 

Origin

Middle English: from Old French parchemin, from a blend of late Latin pergamina ‘writing material from Pergamum’ and Parthica pellis ‘Parthian skin’ (a kind of scarlet leather).

이 파치먼트 라는건. 퍼가뭄. 과 파르티아 가죽. 에서 나온 말인데

 

A city in ancient Mysia, in western Asia Minor, situated to the north of Izmir on a rocky hill close to the Aegean coast. The capital in the 3rd and 2nd centuries BC of the Attalid dynasty, it was one of the greatest and most beautiful of the Hellenistic cities and was famed for its cultural institutions, especially its library, which was second only to that at Alexandria

 

퍼가뭄. 이란건 고대 뮈시아. 이즈미르 북쪽. 이 이즈미르.가 이오니아. 고대그리스 도시들 중 핵심이야. 여기 북쪽이 뮈시아.이고 그 윗쪽 접한곳이 오스만의 비튀니아. 야. 즉 여기서 쓰던 가죽용품인겨. 헌데 저건 가만 보니 파르티아 제국 애들이 쓰던걸 얘들이 쓰는겨. 파르티아 라는 페르시아애들이 양가죽 염소가죽을 가공해서 쓰던걸 얘들이 눈치채고 갖고 와서 만든거야. 파피루스.는 이집트 나일강 상류에서만 구할수 있어 이게. 대체제를 찾은거지.

 

The Gospels of Henry the Lion were intended by Henry the LionDuke of Saxony, for the altar of the Virgin Mary in the church of St. Blaise's Abbey, Brunswick, better known as Brunswick Cathedral. The volume is considered a masterpiece of Romanesque book illumination of the 12th century.[1]

 

작센의 사자공 하인리히.의 가스펠. 저게 그 절정이야. 채식본의. 사자공이 왜 호헨슈타우펜 가문에 밀려서리 나중 괼피 기벨리니.에서 괼피에 붙어서리 호헨슈타우펜이랑 싸운다 했잖오.


The gospel book was made for the duke on commission at the Benedictine Helmarshausen Abbey. As for its date, the church in Brunswick was built in 1173, and the altar of the Virgin Mary was dedicated in 1188. The creation of the gospel book was formerly placed by most authorities at about 1175 ("early dating") but today the balance of opinion puts it at about 1188 ("late dating").



서기 1188년 정도로 봐 늦어도. 음청난겨 저 수준이. 
저걸. 조선시대의 책 장식.과 비교를 해보면. 부끄런겨. 끽해야 책함 이야. 책들 걍 제본한거 처 넣은 나무상자. 
저게 신.이라는 것에 대한 태도의 차이야. 신에서 자유.라는 무한함의 터가 나오걸랑. 루멘 이란 빛이 강하게 나오고. 
걍 그런줄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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