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mbroidered front cover of The Miroir or Glasse of the Synneful Soul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쓰 1세.가 11세때 만든 수 놓은 책 커버.의 앞면.이야.
책 옆과 뒤가 다 수가 놓아져 있는겨.
꼬마 여자애가 열한 살.인데. 저 수만 놓은게 아니라. 저 책. 이 지금 영어로 더 미러 오브 더 씬풀 쏠. the mirror of the sinful soul 죄로 가득한 영혼의 거울. 죄 지은 영혼을 그대로 보여주는 형상이란거지. 저 원래 제목. the miroir or glasse of the synneful soul 은 엘리자베쓰.의 작명이야. 저 당시 영어를 그대로 보여준거야. 미러.라는 거울은 미롸르.에서 온거고. 저건 프랜치.야 라틴어 미라레. 보다. 에서 프랜치 갈리아의 갈리아와 게르만이 쓴걸 바다건너 잉글리쉬가 mirror 로 받은겨. 글라쓰 라는 유리.도 같은 의미로 쓴거고 엘리자베쓰가.
열한살 짜리 꼬마 여자애 엘리자베쓰가. 프랑스어로 된 저 책을. 영어로 번역해서리. 자기가 제본을 해서. 직접 색실로 태피스트리. 수를 놓아서. 당시 새엄마 캐서린 파. 여왕에게 준거야 선물로.
열한살 짜리 여자애가.
음청난거야 쟤들 귀족이란 수준이 저당시. 엘리자베쓰.하면 말야. 저 임브로이더드 북 커버.와 저 책 번역한거야. 열한살 때.
Embroidered back cover of the trilingual translation by Elizabeth I. Parr's monogram is in the centre.
Psalms or Prayers was published anonymously in 1544 by Parr, the sixth wife of Henry VIII.[2] She went on to publish Prayers or Meditations in 1545 and The Lamentation of a Sinner in 1548.
헨리8세의 여섯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이 캐서린 파. 인데. 이여자도 세번째 결혼이고. 족보가 대단치는 않아. 아빠는 걍 기사에서 시작해서리 작은땅 영지야. 헨리한테 눈도장 찍혀서리 팔자가 좀 핀거야. 엄마도 걍 낮은 귀족이야. 헌데 이 캐서린 파의 엄마.가 이전 아라곤의 캐서린.의 말동무 레이디였어. 둘이 친했어. 해서 캐서린 파.의 이름 캐서린.을 엄마가 아라곤의 캐서린.을 따서 줬다는게 정설이야. 이 엄마가 교육을 잘 받았어. 해서 이 엄마영향으로 또한 캐서린 파.가 고급진거야 여자가.
이 여자가. 익명으로 기도서.를 출판을 해. 서기 1544년. 기도문을 자기가 직접 쓴거야. 60여 페이지를. 영어로.
캐서린 파.가 헨리와 결혼하고, 마리와 엘리자베쓰.를 복원을 해줘. 법적으로 정식 왕권 승계자 라인에 올린거야 물론 에드워드 다음이지만. 헨리를 쫄라서리. 이여자 마음이 좋은겨. 이 후에 엘리자베쓰가 저 죄많은 영혼의 거울. 이란 프랑스어로 된걸 영어로 번역해서 커버를 수를 놓아서 새엄마 캐서린 파.에게 준거야. 크리스마스 선물로.
저게 열한살 짜리야. 책도 하필이면 죄많은 영혼이야. 즉 말야. 열한 살 짜리.가 자기가 죄많은 영혼. 이란거야 저게. 엄마 앤불린.의 이야기를 얘가 다 알면서, 새엄마가 자기를 법적으로 복원해준걸 고맙게 여기면서, 죄많은 자신이 감사합니다. 하고 새엄마에게 선물을 한거야 자기가 영어로 번역해서.
그리고, 일년이 지났어. 캐서린 파.가 저 책을 익명으로 출판한 걸 알아. 크리스마스 가 왔어. 아빠 헨리8세를 쪼르는거야. 나 이번 크리스마스. 새해 선물은 새엄마가 쓴 영어로 된 책을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로 번역해서 책으로 만들어서 선물하겠다고. 허락해 달라민서 머 재료좀 구해달라했겄지.
Her stepdaughter Elizabeth translated it into Latin, French and Italian as a New Year's gift to Henry VIII.[6]
그게 저 책이고. 저 책의 북커버.를 역시. 이제 열 두살.이 된 엘리자베쓰1세가. 캐서린 파에게 선물을 한겨.
저 수준이 말야. 저게 말야. 저게 열한살 열두살 때 작품이야. 번역을 자유자재로 해. 프랑스어를 영어로. 영어를 라틴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로.
저게 영국의 힘인겨.
저 첫 작품의 죄많은 영혼의 거울. 이란 원 저자가 르네상스 여인들의 대모님이셔. 체사레 보르자 가 그리 하체만 가려진체 죽어 버려진 직후 의 이야기가 연결이 되는거야 저기서.
Marguerite de Navarre (French: Marguerite d'Angoulême, Marguerite d'Alençon; 11 April 1492 – 21 December 1549), also known as Marguerite of Angoulême and Margaret of Navarre, was the princess of France, Queen of Navarre, and Duchess of Alençon and Berry.[1] She was married to Henry II of Navarre. Her brother became King of France, as Francis I, and the two siblings were responsible for the celebrated intellectual and cultural court and salons of their day in France.
저 책의 원 제목이 프랑스어로 된. Miroir de l'âme pécheresse 미화 드 람 피셰헤쓰. 암. 이 영혼이고 피셰흐.가 죄인.이야.
나바라의 마그리트. 마가렛.이 쓴겨. 르네상스의 여인들.해서 시오노 나나미가 루크레치아 보르자, 이사벨라 데스테, 카테리나 스포르차, 카테리나 코르나로. 라 명명했지만. 르네상스의 진짜 여인.은 저 나바라의 마그리트. 마가렛.이야.
베네치아의 카테리나 코르나로.는 이 다음 세대여자고, 나머지 저 넷은 동시대 여자들이야. 그 중의 핵심은 나바라의 마가렛.
이여자는 프랑수아1세 의 두살많은 누나야.
프랑수아1세와 누나 마가렛.은 앙굴렘 백작.의 자식이야. 프랑수아1세는 발루아 앙굴렘 가문.이야. 이전 루이12세가 아들없이 죽어. 얜 오를레앙.이야.
백년전쟁 때 프랑스 두 가문이 부르고뉴.와 오를레앙.
프랑스킹 장2세.의 아버지 필리프6세.에서 발루아가 시작해서 백년전쟁 하는거고. 아들 장2세.가 패해서리 잉글랜드까지 포로신세되는거고. 할때 이 장2세의 자식들이 첫째가 다음 킹인 샤를5세. 둘째가 앙주.의 루이. 셋째가 부르고뉴를 다시 여는 용감공 필리프.
둘째 앙주.의 루이.가 얘부터 발루아 앙주의 시작인겨 이전엔 카페앙주 였다가 결혼으로 카페에서 발루아 앙주로 넘어와서리 얘가 나폴리의 카페앙주의 조안나1세한테 나폴리 받기로 한거고, 이걸 아래지역 카페앙주네 한테 뺏기고 여기서 나온 나폴리 조안나2세가 저 발루아 앙주 루이1세의 자식 루이2세.의 자식 르네.에게 나폴리 주겠다 해서리 이게 아라곤의 알폰소5세가 십년 가까이 전쟁해서 아라곤께 될때 그 발루아 앙주의 시작이 장2세의 차남 루이고 장2세가 포로로 잡힐때 대신 볼모로 루이를 저당잡히고 왔다가 저가 도망가서리, 신의를 저버렸네 해서리 장2세가 지 스스로 잉글랜드 드가서리 환영을 받고 거서 죽는 코메디 연출하는거고. 이 발루아 앙주부터 앙주는 카운트가 아니라 덧치. 공작령이야.
셋째가. 아빠랑 같이 잉글랜드 포로생활했던 꼬마 용감공 필립.이 부르고뉴를 재건립해서리. 이게 무섭공 현명공 용감공샤를 까지 가서리 마리.가 합스부르크에 주는거고.
오를레앙.은 장남 샤를 5세의 차남이야. 첫째가 샤를 6세 킹을 하고. 차남 루이가 오를레앙.을 시작하는겨.
해서 백년전쟁 초반에, 부르고뉴 재 시작인 용감공 필리프.가 저지대를 먹기 시작하면서 영향력 확장할때. 프랑스 킹이 오히려 위축이 되면서 킹덤을 대변하는게 오를레앙의 루이.가 되는거야. 이 루이.는 용감공 필리프 의 조카야. 삼촌과 조카의 싸움이야.
부르고뉴 용감공 필리프가 죽어. 이 아들이 무섭공 필리프야. 저 오를레앙 루이와는 사촌형제가 되는겨. 부르고뉴의 무섭공이 오를레앙 루이.를 암살하면서 프랑스는 백년전쟁 와중에 내전이 극에 달하는거고.
그러면서 발루아.는 샤를 5세 다음에 샤를 6세, 7세. 에서 백년전쟁 승리하고. 다음 루이11세 다음 샤를8세.에서 이탈리아 전쟁 시작하고. 이 발루아 직계가 끊겨. 이걸 받는게. 장2세의 아들 샤를5세.의 차남 오를레앙 루이.의 손자인 루이12세.가 되는거야. 해서 얘를 발루아 오를레앙. 해. 이건 루이12세 혼자야. 바로 끊겨.
프랑수아1세.가 받아. 이 프랑수아1세의 아버지는 앙굴렘 백작. 저 오를레앙 시작 루이. 암살당한. 의 셋째 아들이야. 첫째가 오를레앙 받고 얘가 루이12세를 낳은거고. 셋째아들이 앙굴렘을 받아서리. 이 손자가 프랑수아1세야. 해서 이때부터는 발루아 앙굴렘.이야 부르봉의 앙리4세까지. 앙굴렘도 오를레앙의 방계인겨.
이 프랑수아1세의 누나가 저 앙굴렘 가문의 여자야.
루이12세.가 1499년에 이탈리아 다시 먹으러 갔다가. 1503년에 체사레 디비 눕고 볼짱 다 보고. 나폴리 다시 뺏기고 밀라노공작 자리만 유지한체 1504년에 2차원정이 끝난겨. 이때가 42세야. 그리고 바로 앓아누워.
저때 이탈리아전쟁은 프랑스랑 나폴리간의 전쟁이고, 여기에 아라곤의 적통 페르디난도2세가 낀 거걸랑.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언은 아직 황제가 아냐. 얘가 대관식 받으러 오면서 캉브해 동맹 으로 3차가 터지는거고. 저때 페르리난도2세와 이사벨라의 딸 미친년 후아나.랑 막시밀리언 아직 황제아닌.의 아들 미남왕 펠리페.가 결혼해서 플랑드르에서 살때걸랑. 카를5세를 낳아서 얜 네살이 된거고 저땅에서.
루이12세가 원래 자기 딸 클로드.를 저 갓난 꼬마애 카를5세와 언약식을 한겨. 그러면서 자기 마누라 땅 브리타니.는 이게 프랑크 킹께 아냐 이 브리타니는. 마누라꺼야. 이걸 마누라가 딸 클로드.에게 줘. 딸 클로드.가 시집갈때 브리타니땅이 다우리로 함께 가.
헌데 루이가 앓아눕고 곰곰히 보니까 말야. 이사벨라가 저해 죽어. 신랑 아라곤의 페르디난도가 대행을 했는데 저때 카스티야는 미친년딱지 후아나.에게 온겨. 핏줄이 끊기고 끊기서리 아들도 죽어 포르투갈로 시집간 딸들 아들도 죽어. 오잉 후아나.에게 가서리. 저게 카를 5세에게 가게 생긴겨. 거기에 자기딸 보내믄. 이거 브리타니 걍 쟤한테 주고 이거 프랑스도 카를께 되능겨? 조오온나리 시껍한거야 루이12세가.
카를5세가 스페인을 가져가는건 완전히 얻어걸린겨. 로또야. 특히나 저땐 어마어마한 신대륙에 아시아까지 받는거걸랑.
루이12세가 카를5세와의 결혼을 접고서리. 자기 오를레앙 방계인 앙굴렘. 조카인 프랑수아1세에게 딸 클로드.를 시집보낸거야 그래서. 그리고 이 클로드.의 코트에서 클로드랑 노는 사람이 잉글랜드 앤불린 인거고. 앤불린.은 루이12세 말년에 시집가는 헨리8세 동생 마리. 따라가다가 루이12세 죽고 마리는 돌아가도 계속 남아서 클로드랑 노는거고.
할때 저 결심을 하고. 프랑수아1세 를 자기 딸 클로드랑 결혼시키기로 하고. 이 루이12세가 자기 방계 집안인 앙굴렘에 개입을 하는겨. 프랑수아1세.를 뒤를 봐줄 집안을 얘 누나 마가렛.의 결혼에 개입을 하는겨.
해서 저때. 프랑수아 1세의 누나 마가렛.의 상대를 찾은게.
Charles IV of Alençon (1489 in Alençon – 1525 in Lyon) was the son of René of Alençon and Margaret of Vaudémont.
He succeeded his father in 1492 as Duke of Alençon and Count of Perche, and was also Count of Armagnac, Fézensac, Viscount of Rodez, Count of Fezensaguet, l'Isle-Jourdain, and Perdiac.
알랑송.의 샤를4세. 알랑송 공작. 페르셰 백작. 보드몽 후작. 아르마냑. 피젠삭. 로데즈. 페젠사게. 일리주르당. 페리드악.
노르망디에서 그랑데스트. 가스코뉴 아키탄. 머 프랑스 전역이 쟤땅이야. 루이12세는 4년후에 다시 이탈리아 전쟁을 해.
체사레 보르자 눕고. 감금하고. 죽고. 율리우스2세 교황이. 교황령을 다시 찾는데 이때 교황령은 이전 체사레의 부하애들이 각각 쥐고 있는거야. 이걸 자기가 어찌 못해. 해서 베네치아.를 부르는겨 저거 좀 찾아달라고. 베네치아가 이걸 해결해서 찾아주는데 율리우스2세가 거저 공짜로 받으려 하는겨 베네치아가 이게 먼 경우가 이따우여 하며 안줘. 해서 율리우스2세가 반 베네치아 동맹을 맺는겨 이게 캉브헤 동맹이야. 프랑스 루이12세가 이때 들어와 베네치아 좀 몰아내줘유 하는 교황의 부탁으로.
저 프랑스와 교황 의 사이가 웃긴겨 저게. 아비뇽때 잠깐 프랑스가 늙은 교황 줘패고. 아비뇽으로 자발적으로 갔지만. 교황령의 시작도 프랑스야. 교황은 신성로마황제와 안친해 대게. 카놋사 굴욕에 이어 하인리히4세의 로마약탈도 있고. 쟤들 길들이려고 십자군도 발기했지만. 대게 교황은 프랑스랑 친했어. 어려울때 찾는건 또 프랑스였어.
저 알랑송 가문이 저당시 드넓은 영지들에 군사력이 있는거야. 여기에 마가렛을 시집을 보내. 나이 17세에. 이게 1509년. 즉 이탈리아 3차 전쟁 시작하고서야 저게.
The Battle of Marignano was fought during the phase of the Italian Wars (1494–1559) called the War of the League of Cambrai, between France and the Old Swiss Confederacy. It took place on 13–14 September 1515 near the town today called Melegnano, 16 km southeast of Milan. It resulted in a victory for the Frenchforces.
이탈리아 3차전쟁.은 결정적 장면이 마리냐노 전투야. 밀라노 아래서. 프랑스 프랑수아1세가 저지대 독일 용병들 데리고 베네치아도 손잡아서리 밀라노.를 스위스애들과 스포르차에게서 완전히 빼앗아 오면서 이 3차를 마무리해.
루이12세가 신나게 베네치아 쫓아내고 교황말 무시하고 다 먹으려 하다가 또 오바해서 밀라노도 뺏기걸랑.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 가문이 스위스용병을 불러서리 쫓겨나듯 다시 가. 그리곤 루이12세가 죽고 프랑수아1세.가 즉위하고 그 해 벌어진게 저 마리냐노 전투야. 스위스 용병을 몰아낸겨 저지대 용병을 고용해서. 그러면서 밀라노를 다시 갖고와 프랑스가.
저러면서 이탈리아전쟁 전반전이 끝나. 그리고 카를 5세가 스페인 킹이 되고. 선거전을 프랑수아1세랑 하면서 신성로마황제가 되고. 프랑수아1세 삐치고. 이때부터 이탈리아전쟁이 국제전이 되는거야. 프랑수아1세가 나바라 킹덤을 지원해서 이베리아반도를 치고. 합스부르크의 저지대 반란을 도와주고. 카를은 밀라노의 프랑스세력을 쫓아내고 프랑스와 저지대 변경을 넘어 프랑스로 쳐들어가는게. 후반전인 1521년 부터야.
여기서 프랑수아1세가 포로가 돼. 아주 결정적인 전투가 파비아전투야.
The Battle of Pavia, fought on the morning of 24 February 1525, was the decisive engagement of the Italian War of 1521–26.
저기서 프랑스가 대패하면서 프랑수아1세가 스페인으로 잡혀가고. 굴욕적 협상맺고. 이때부터 프랑스는 오스만 술레이만을 불러들이는데.
이 전쟁의 책임을 프랑스.가. 희생양으로 올린게 저. 자기누나가 시집간 알랑송 공작 샤를인거야. 얘가 자기 처남이자 킹인 프랑수아1세를 제대로 안 지키고 포로가 되게 했다는거지. 바로 죽어. 죽었는지 죽였는지.
마가렛.이 1509년 나이 17세에 시집가서. 저사건이 1525년. 33세에. 과부가 되면서 저 죽은 신랑땅을 다 받는거야.
그리곤. 저 땅을 들고서리. 재혼하러 간 곳이. 나바라의 킹 앙리2세야. 이때 나바라는 완전 그지가 된 상태야. 얘 아부지가 나바라의 장3세. 알브레 가문으로 퐈가문이 된 캐서린.에 장가가서리. 쇼생크탈출의 체사레 보르자.매제.가 와서리 체사레가 삼개월후 어이없이 죽고 나서. 여긴 아라곤의 페르디난도2세가 먹는겨 나바라를. 나바라의 장3세는 이때 피레네 산맥을 넘어. 여기가 lower navarre 저지대 나라바 킹덤이야. 여긴 프랑스 땅이야 지금. 가스코뉴야. 여기서 프랑스에 빌풑으면서 레콩퀴스타를 하는겨 나바라는 체사레 죽고 나서. 장3세 죽고. 아들 나바라의 앙리2세.가 프랑스에 기대면서 뒷날을 도모하는거고. 해서 얘가 프랑스의 이탈리아 전쟁에 같이 끼는겨. 나중에 병력 받을라고. 파비아 전투도 참여해서 도망다니고.
마가렛이 이 앙리2세와 재혼을 하는거야. 나바라의 앙리2세는 나이가 10살 어려. 더군다나 초혼이야. 아 손해보는 듯 하지만 마가렛의 후광이 장난이 아닌겨 이게. 전남편의 땅들에 프랑스 킹의 유일한 여자형제 누나야.
여기서 나온 핏줄이 나바라의 잔.이란 딸이고. 이 딸의 아들이 프랑스 부르봉 왕조를 여는 프랑스 킹 앙리4세야.
이 나바라의 마가렛.의 인문학적 소양이 엄청난겨. 오를레앙의 방계 앙굴렘에서 프랑스 코트의 문화가 절절하게 저 여자에게 스민거야.
Marguerite was forced to marry a generally kind, but practically-illiterate man for political expediency—"the radiant young princess of the violet-blue eyes... had become the bride of a laggard and a dolt".
첫결혼한 저 희생양된 알랑송의 샤를은 전쟁만 할줄 알지 무식했나봐. 마가렛은 게으르고 멍청한 인간의 신부가 되었다.
Following the example set by her mother, Marguerite became the most influential woman in France during her lifetime when her brother acceded to the crown as Francis I in 1515. Her salon, known as the "New Parnassus", became famous internationally.
처음 결혼하고, 5년 후에 동생이 루이12세의 딸 클로드.랑 결혼을 해. 그리고 이 해에 루이가 죽어. 다음해에 바로 즉위를 한거야. 유일한 형제인 마가렛.의 살롱은 뉴 파르나수스. 파르나소스 산이 아폴론이랑 신들이 회의하며 놀던 장소야. 문명의 중심이 된겨 이 여자 쌀롱이. 그리고선 남편이 죽고 나바라 촌동네로 간겨 열살 아래 신랑한테.
이 나바라의 마가렛.이 나중 앙리4세의 엄마되는 잔.을 낳고. 1528년. 나이 36세에 처음 낳아. 첫결혼은 자식이 없어. 그리고 2년후에 아들을 낳아. 헌데 얘가 죽어. 이때 쓴 걸로 봐. 엘리자베쓰가 번역한 죄많은 영혼의 거울. 이란 글을. 이것도 60여페이지가 돼.
이 나바라의 마가렛.이 저것보다 더 알려진건.
The Heptaméron is a collection of 72 short stories written in French by Marguerite of Navarre (1492–1549), published posthumously in 1558. It has the form of a frame narrative and was inspired by The Decameron of Giovanni Boccaccio. It was originally intended to contain one hundred stories covering ten days just as The Decameron does, but at Marguerite’s death it was only completed as far as the second story of the eighth day. Many of the stories deal with love, lust, infidelity, and other romantic and sexual matters. One was based on the life of Marguerite de La Rocque, a French noblewoman who was punished by being abandoned with her lover on an island off Quebec.
헵타메론. 이란 책이야.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힌트를 얻어서 이여자가 직접 쓴겨. 데카메론의 데카.는 십. 메론.이 데이. 날. 십일간 사람들이 피해서리 자기들 이야기들을 옴니버스로 모은 백가지 이야기.가 데카메론이야. 마가렛이 데카메론처럼 똑같이 심일간 백가지 이야기를 쓰겠다고 서문에 썼는데. 이야기가 팔일날 두번째에서 멈춰. 즉 이전 7일간 이야기 해서 헵타메론.이야.
사랑. 욕망. 배덕. 로망. 섹슈얼 이야기 등등. 저기서 라로크의 마가렛 이야기는. 사실에 기초하다 란 건. 저때가 탐험의 시대잖아. 귀족가 여자 재산 뺏을라고 저 퀴벡가는길에 저 여자를 섬에 두고 온겨. 이여자가 아마 친척인듯 한데 동행때 이여자가 딴남자랑 애정교환에 맘도 상하고. 헌데 이여자가 살아돌아와. 유럽에서 이슈가 된거지.
나바라의 마가렛.이 프랑수아1세의 부인 클로드.랑 같이 코트에 있었을때 앤불린도 같이 있었을거란 거지. 그리고. 프랑수아가 말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데려오걸랑. 다빈치에게 제공하는 성이 앙부와즈 성이야. 그 침실 대자보 칼뱅이름 티나오는. 프랑수아가 태어난 성. 이게 엄마 사보이 여자명의인데. 다빈치가 여기 머물다가 삼년후 죽는거고 이때 말상대를 마가렛.이 해주는거야.
칼뱅을 윌리엄 파렐이 협박해서리 제네바로 캐스팅할때, 이 칼뱅과 윌리엄파렐을 변호하며 서신교환하는 여자가 이 나바라의 마가렛이야. 해서리 딸 나바라의 잔이 프로테스탄트가 된거고 아들 앙리4세가 프로테스탄트 위그노일 수밖에 없었던거야.
저 유럽의 여자들 보면. 저 수준이. 엄청난거지. 헌데 말야. 저런 여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유의 세계였걸랑 유럽이.
조선왕조오백년은 저런 여자들이 나올 수가 없는거야. 남자가 없는데 여자가 어디 있어 이 조선왕조 오백년에.
이 조선은. 인물이 없어 인물이. 끔찍한 땅이야 이게.
저 열한살짜리 여자아이의 번역실력에 저 책을 제본해서 혼자 수를 저리 놓는겨 열한살에.
프랑스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로 자기말을 번역을하고. 프랑스말을 자기말로 번역을 해 열한살에. 자기 새엄마에게 선물할라고.
참. 헨리8세는 기분이 나빳대. 샹년 꼬마년이. 자기 아빠 책은 번역하나 해서 선물한적도 없음서. 저 새엄마에겐 저따위선물질이라니.
하튼 헨리 이앤. 걍 . 아이 .
저 헵타메론이 전체가 다섯권이야 양이 데카메론보다 방대해 저게.
저 책 번역이 올해 나왔는데. 그것도 저 72편에서 달랑 한편 치장해서 애들용으로 나온건지 장식용으로 걍 일부만 나온겨 달랑 한개 이야기만.
이게 이땅바닥 수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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