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시 1세(헝가리어: I. Mátyás, 1443년 2월 23일 ~ 1490년 4월 6일)는 헝가리 크로아티아의 국왕(재위: 1458년 ~ 1490년)이다. 후녀디 마차시(헝가리어: Hunyadi Mátyás) 또는 마티아스 코르비누스(라틴어: Matthias Corvinus, 독일어: Matthias Corvinus, 루마니아어:Matei Corvin 

마테이 코르빈[*]

, 체코어: Matyáš Korvín 

마티아시 코르빈[*]

, 슬로바키아어: Matej Korvín 

마테이 코르빈

, 크로아티아어: Matija Korvin 

마티야 코르빈

)라고 부르기도 한다

 

 

Matthias Corvinus, also called Matthias I (Hungarian: Hunyadi Mátyás, Croatian: Matija Korvin, Romanian: Matei Corvin, Slovak: Matej Korvín, Czech: Matyáš Korvín; 23 February 1443 – 6 April 1490)

 

마티아스 코르비누스.를 한글 검색 쳐도 안나와 한번 쳐보니. 해서 보니까 말야. 마차시. 래. ㅋㅋㅋ.

 

 

마티아스 쳐보니 하나 뜨는거

마티아스(독일어: Mattias, 체코어: Matyáš 

마티아시[*]

, 헝가리어: Mátyás 

마차시[*]

, 슬로바키아어:Matej 

마테이

, 크로아티아어: Matija 

마티야

, 1557년 2월 24일 ~ 1619년 3월 20일)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헝가리 크로아티아의 왕, 보헤미아의 왕, 오스트리아의 대공이다. 보헤미아의 국왕 마티아시(체코어: Matyáš),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 마차시 2세(헝가리어: II. Mátyás, 슬로바키아어: Matej II. 

마테이 2세

, 크로아티아어: Matija II. 

마티야 2세

)에 해당한다.

 

이 마티아스.는 카를5세의 동생 페르디난트1세의 손자야. 얘 다음이 30년 전쟁 시작의 페르디난트2세야. 이 2세는 마티아스.가 자식이 없어. 페르디난트1세의 다른 아들의 자식이 황제가 된게 페르디난트2세야. 
저게 헝가리어로 마차시. 라는거지. 
해서 헝가리의 마차시 1세. 
옘병하는건데 정말.
I. Mátyás magyar király . 

Hunyadi Mátyás'

 

헝가리어로. 일. 마티아스 마갸르 키라이. 훈야디 마티아스. 

 

쟤들 말로도 마티아스.야. 

マーチャーシュ1世ハンガリー語: I. Mátyás, 1443年2月23日 - 1490年4月6日

 

일본애들이. 마-챠-슈 하걸랑. ㅋㅋㅋ. 마차슈 고대로 갖고 오기 쪽팔리니 마차시 하는거지. ㅋㅋㅋ. 

 

우리네가 헝가리를 마자르 족 하걸랑. 저건 헝가리 발음도 마갸르. 영어도 마걀 이야. 저걸 유독 왜 마자르 할까

マジャル人[18](マジャルじん、ハンガリー語: Magyarok)は、国家としてのハンガリーと歴史的に結びついた民族マジャール人(Magyár)とも呼ばれる。

 

일본들이 마쟈르진. 하걸랑. ㅋㅋㅋ. 




이땅바닥은 말야. 일본들이 번역하고 해석한. 백년 전에. 그걸 고대~~~로 뻬끼고 갈키는겨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모~든 역사.를 일본가 가타가나 로 번역한 글자를 고대~~~로 뻬낀겨. 

역사 뿐이니. 수학 생리 물리 철학 음악 미술 모~~든게 모~~든게 다 일본가 만들어준걸 고대로 받아쓰기 한겨. 지금도 여전히 고대로 쓰는겨. 


고마운줄 알어 일본덜한테. 

쟤들이 급히 저 작업을 했걸랑. 해서 지들 뽕 들어가면서 또한 자기들만의 얄팍한 뽕질이 가미된 시선으로 쟤들 역사 이야기를 특히나 지들 관점에서 이해되는 것만 위주로 번역을 햇걸랑. 그 이야길 그대로 한글화 해서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배운겨. 

우리네 세계사는 일본들이 백년전에 번역한걸 고대로 배운겨. 일본들이 백년전에 번역하며 본 이야기는. 유럽애들이 로마와 중세를 그림자로만 도배된 텍스트.를 본겨. 테오도어 몸젠 의 이전 이야기만 본겨. 쟤들은 지금 그 텍스트를 다시 썼어 일본애들은.

우리네는 일본가. 삼사백년전의 영어로 쓰여진 걸 백년전에 일어로 번역한 걸. 지금 21세기에 보는겨. 단지 일본 글자.를 한글화 한것은 어쩌면 사소한겨. 헌데 저 당시 급히 본 자료가 수준이 떨어지걸랑. 그 저급한 텍스트에 더하여 저급한 번역의 관점으로 된 일본글을. 지금 한글러들에게 고대로 일본어를 구글 번역해서 한글로 이해하고 있는거야

일본애들은 그러고나서. 다시썼어 유럽의 텍스트들을.

헌데. 이땅바닥은. 처음부터 스스로 해보질 않은 들이야. 해본 적이 없어서. 모태. 몰래몰래 일본가 옌날에 번역한 걸 저리들 쓰는거야 계속. 그러면서 일본 개개끼 반일 위대한 민족 . 


참 중에 개 가 이 조선 민족 해대는 천하의 개 구데기 들이야 이건. 일본 하기 전에. 니덜 자신을 되돌아봐 이 들아.

저따위 이야기나 제대로 번역을 해대고서리 남을 욕하던가 이 들아.

아, 참 남의 이야기를 볼 필요가 없지. 니덜의 조선이 위대한데 왜 남의 이야기를 보나. 남들이 조선을 배우진 못할 망정. ㅋㅋㅋ.

정권 차원에서 일본 반일 감정 조장하고 말야. 중국이 들한테가서는 말야. 인민 위대함둥. 시진핑이 중국이덜에겐 복덩어리. 중국몽에 우리네도 끼워주심둥. 
중국이 들에게 여자들 바치면서 지들 권력 유지한 조선왕조 오백년.의 그 피가 고대로 인겨 . 명나라 명나라 명나라가 하나님이고 공자님의 땅이 하나님이고. 공자님의 땅에서의 기자가 내려오서리 만드신 기자조선의 동방예의 지국. 이 구한말 안효제가 유생을 대표해서리 왜 도포자락 못입게 함둥 우리네 기자조선 의 주나라.의 공자님의 이상향.인 명나라가 망했는데 이제 소중화 인 이 조선의 위대한 예의 나라가 어쩌고 저쩌고. 


끔찍한 들이야.
.

The Black Army (Hungarian: Fekete sereg, pronounced 

[ˈfɛkɛtɛ ˈʃɛrɛɡ]), also called the Black Legion/Regiment – possibly after their black armor panoply – is a common name given to the military forces serving under the reign of King Matthias Corvinusof Hungary. The ancestor and core of this early standing mercenary army appeared in the era of his father John Hunyadiin the early 1440s. The idea of the professional standing mercenary army came from Matthias' juvenile readings about the life of Julius Caesar.[2]

 

저 마티아스가 말야. 헝가리 마티아스. 헝가리에서 제일 최고 인물이야. 오스만이 150년간 점령 하지 못한 비엔나.도 가볍게 먹었던 인간. 그리고 그 저지대 오스트리아 핵심도 다 먹은 인간이 이 마티아스야. 그리고 나서리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어. 뜨내기 야기에워를 헝가리 들이 델꼬오면서 막시밀리언의 손자손녀를 야기에워의 브와디스와프2세의 두 자식 남매와 묶으면서 합스부르크로 가면서 쟤들은 망한겨 저건.

 

저때 마티아스 가 만든게. 유럽 최초의 상비군을 만든겨. 블랙아미. 페케테 셰레그. 검은 군단. 

 

레지먼트.가 연대. 단순 번역 하는 그따위게 아냐. 저 사단이니 연대니 라는 번역도 다 일본덜 번역을 걍 그대로 쓰는겨. 

 

레지먼트.는 킹을 대리하는 제너럴 뉴트넌트가. 상시적으로 대리고 다니는 부대야. 쎈겨 그 지위가. 임시가 아냐. 항상 상존하는 부대야. 이걸 마티아스가 만든겨. 1440년대 초에. 이 부대를 만들고서리 비엔나를 먹은겨. 

 

 

카이사르를 읽고 만든겨.

 

 

 

고대 로마가 망하기 전의 잘나갈때의 로마 군단은 로마 시민권 가진 시민만이 할 수 가있어. 귀족계급인 원로원 층이나 아래 기사층은 돈이 있으니까 말을 어릴때 부터 타고 익혀. 또한 중무장을 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출 수 있어. 

 

 

내나라 로마.는 나다. 라는 정체성이 찐한 사람들이야. 그 기여도 에 따라서 투표권의 무게가 달라. 이걸 그대로 복사한게 미국의 간선제야.

 

 

 

콘술 이란건. 전쟁 사령관이야.

 

 

 

나라 라는건 말야. 국가 지도자 란건. 외적을 막고 치는 역할 이상은 없어. 

 

그리고 치안과 사법시스템만 돌아가게 하면. 그게 제일 좋은 나라야.

 

 

중세때도 말야. 걍 킹들이나 영주들이나 자리 비우고 전쟁질만 하러 간겨. 그래도 잘 굴러가 그 땅은.

 

 

 

할 일 없는 조선 왕조나. 명나라님들이 조선 여자들 받으면서 조공질 받은 댓가질로 방패 역할 해주니 할 일이 없으니 코트 안에서 국무회의 하면서 저 소인배유 저 적폐유 정의놀이로 오백년간 서로 죽이고 죽이고 한 것 뿐이야 그 실록 오백년 기록은. 

 

 

할일이 없는겨. 그 실록을 보면. 저따위 이야기는 쟤들 중세사에 그건 역사 이야기에 필요도 없거니와 쓸 일도 없거니와 걍 노블들 이 가쉽꺼리로 적어서 남길까? 저따위 의 이야기가 이땅바닥 조선 5백년의 정사야. 

 

 

할 일 이 없걸랑. 할 일이. 

 

 

아~~무것도 안하는겨 정의놀이 이념놀이 유교놀이 하면서.

 

 

왜냐믄. 상업 공업 조차 못하게 했걸랑 저 개들이. 더하여. 멀 생각도 못하게 했걸랑 저 개 들이. 워낙에 할 일이 없으니까. 유교 책들 아니면 태우고 공자님 이야기 아니면 죽이고. 주자님 해석 아니면 줘패고. 그 글들에 벗어나는 말 행동 하면 적폐 놀이 하는거야 저것들이. 그 코트에서. 그러면서 지들은 기생집이나 자기들만의 하렘인 지들 첩들 모은 방에가서 개들 하면서 풍류 하는거고.

 

 

 

 

 

도 도 저따위 들이 없어. 남들은 이민족을 노예로나 부리지. 저 들은 지들 민족을 노비로 부리는 개들. 구한말엔 반도 인간들이 다 노비야. 

 

 

 

세상 문명사에 저따위 구데기 집단이 없어.

.

 

In the beginnings, the core of the army consisted of 6–8,000 mercenaries.[7][8] In the 1480s, the number was between 15,000 and 20,000, however the figures in the great Viennese military parade reached to 28,000 men (20,000 horsemen, 8,000 infantry) in 1485.[9] The soldiers were mainly Bohemians, Germans, Serbs, Poles[10] and, from 1480, Hungarians. Thus the Black Army was far larger than the army of Louis XI of France, the only other existing permanent professional European army in the era.[11]

 

저 블랙 아미. 흑 군단.이 처음엔 팔천명 내외였다가. 만명 넘고 이만명 가는겨. 

 

 

문제는 말야. 돈이야 돈. 저 부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결국 세금을 더 걷어야 해. 이때 마티아스.가 귀족애들을 조진겨. 귀족애들 세금을 올려. 저 부대를 운용하기 위해서. 귀족애들이 이에 반기를 든겨. 마티아스가 갑자기 죽고서리. 촌놈의 야기에워 핏줄 지들이 앉히고 저 블랙 아미.를 해체를 하고. 지들에게 물리던 세금을 없앤겨. 햄뽁은거지. 그래서 망한겨 헝가리가. 그게 지금 의 헝가리야. 민족 대민서. 쟤들은 지들이 자초한겨 지들 역사의 후짐을.

 

 

Beatrice of Naples (16 November 1457 – 23 September 1508), also known as Beatrice of Aragon (Hungarian: Aragóniai Beatrix; Italian: Beatrice d'Aragona), was twice Queen of Hungary and of Bohemia by marriage to Matthias Corvinus and Vladislaus II.[1] She was the daughter of Ferdinand I of Naples and Isabella of Clermont.

 

이 헝가리 마티아스.의 부인이 나폴리의 베아트리체. 마티아스가 이전 부인이. 이전 썰한 그 보헤미아의 자기와 같은 지위의 섭정이었던 후사이트 나중 보헤미아 킹이 되는. 사람의 외동딸이였걸랑. 얘가 일찍 죽어. 이전의 첫 결혼 약속했던 꼬마여자도 죽고. 해서 결혼한 여자가 나폴리의 베아트리체. 
헝가리는 이전에 나폴리의 앙주 루이.가 대제.가 되면서 헝가리를 일으키면서 나폴리랑 친하걸랑 원래. 이때 나폴리는 조안나 1세 2세 다 죽고. 장2세 킹의 차남 루이의 아들 르네.가 왔다가 옆 시칠리아의 아라곤에 쫓겨나서리 아라곤 땅이 되었걸랑. 그 핏줄이야 이여자가. 엄마는 클레르몽 이사벨라.는 타란토 여자야. 저 장화굽 지역. 여기는 고대 로마보다 더 오래된 고대그리스 땅이었어. 나폴리에 안뒤져. 이 베아트리체.가 헝가리 마티아스에게 오면서. 헝가리 르네상스를. 이탈리아 넘어서리 처음 소개시킨 여자야. 여기가 프랑스 네덜란드 의 르네상스 보다 제일 빨랐어 원래.

She also had a cultural importance by introducing the Italian renaissance into the court of Hungary, an interest she shared with Matthias: she encouraged his work with the Bibliotheca Corviniana, built the palace Visegrád as a residence for the court, and created an Academy. She wished to participate in policy: in 1477, she accompanied Matthias during the invasion of Austria, and in 1479, she was present during the peace treaty between Matthias and Vladislaus II.

 

이여자가 헝가리 코트에 이탈리아 인간들을 부르는겨. 

Bibliotheca 비블리오테카. 왕립 도서관을 세워. 

Matthias was the first non-Italian monarch promoting the spread of Renaissance style in his realm.[5][6] His marriage to Beatrice of Naples strengthened the influence of contemporaneous Italian art and scholarship,[220] and it was under his reign that Hungary became the first land outside Italy to embrace the Renaissance

 

마티아스.가 제일 먼저 깨인 인간이야. 이탈리아 외의 땅에선. 저걸 헝가리 노블들이 죽인겨 저 힘을.

 

 

유럽의 르네상스는. 이탈리아를 넘을때. 그 핵심은 그래서 또한 시집가는 여자들이야.  폴란드 지기스문트1세에 시집가는 밀라노의 독살당한 듯 한 잔 스포르차의 부인의 딸. 프랑스 퀸이 되는 메디치의 카테리나. 

 

 

.

 

저 상비군을 둔다는게 쉬운게 아냐. 이전 글에서 임프레스먼트.와 콘스크립션.을 언급했지만. 

 

 

 

예니체리.

The Janissaries (Ottoman Turkish: يڭيچرى yeñiçeri 

[jeniˈt͡ʃeɾi], meaning "new soldier") were elite infantry units that formed the Ottoman Sultan's household troops, bodyguards and the first modern standing army in Europe.[3][4] The corps was most likely established during the reign of Murad I (1362–89).[5]

 

투르크어로 예니체리. 새로운 군인. 이전 썰했듯이. 오스만은 이걸로 결국 망한겨. 또한.  무라드1세 가 저걸 만들고 150년 후에 그 메메드2세때도 반란으로 아비가 은퇴하고 다시 복귀하는것도 저 예니체리걸랑. 세금은 없고 월급이 쎈겨. 나중엔 이놈저놈 다 저기엘 들어가는겨. 저걸 유지하려면 결국 약탈이야. 

 

 

Pospolite ruszenie (

Polish pronunciation: 

[pɔspɔˈlitɛ ruˈʂɛɲɛ], lit. mass mobilization; "Noble Host",[1] Latin: motio belli,[2] the French term levée en masse is also used[3]) is a name for the mobilisation of armed forcesduring the period of the Kingdom of Poland and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The tradition of wartime mobilisation of part of the population existed from before the 13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In the later era, pospolite ruszenie units were formed from the szlachta (Polish "nobility"). The pospolite ruszenie was eventually outclassed by professional forces.

 

폴란드.가 나름 황금시대를 열었걸랑. 폴란드리투아니아 해서 폴리. 얘들이 땅이 러시아 이반3세 티나오기 전에는 동유럽은 얘들 땅이었어. 폴란드 황금시대

The Polish Golden Age refers to the period from the late 15th century Jagiellon Poland to the death of the last of the Jagiellons, Sigismund August in 1572. Some historians claim that the Golden Age lasted until the mid-17th century

 

적어도 15세기 후반에서 지기스문트3세 가 티나오기 전인 1572년. 이 3세가 암살당하는앤데. 스웨덴에서 야기에워 여자 핏줄로 오면서 이때부터 폴리가 끝의 시작을 가. 

 

저 폴란드가 허섭한 슬라브애들이. 잘나갔어 리투아니아랑. 저때 그 바닥이 말야. 

 

포스폴리테 루셰녜. 발음 어려운데. 포스폴리테. 가 라틴어 로마를 spqr 할때 세나투스 포풀루스. 할때 포풀라레스.야 . 머의 상대어라했냐. 기엉날리가 없지. 옵티마테스.의 상대어가 이 포풀라레스.야. 이게 카먼.이고 피플이야 나중에. 루셰녜.가 기동하는 부대야. 상비군으로 운영되면서 전쟁터지는 곳에 가서 싸우는 부대야 저게.

 

노블들이 주축이야. 영지를 가진 귀족들이. 의무를 지고 전투하는겨. 처음 만들땐 킹이. 이때 피아스트 왕조가 사오백년 하고 끝물이야. 해서 귀족들을 조지면서 재산 몰수 하면서. 이 재산 줄테니 그 댓가로 니가 전쟁 터지는 곳에서 니가 사람들 조직해서 막아라. 한 거걸랑. 이게 점점 귀족들이 중심이 되서 의무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겨.

 

 

어줍짢게도. 저게 고대 로마.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간겨. 고대로마의 군단은. 전쟁이 터질때만 한시적으로 동원을 해. 임기는 일년 이야. 그 각 로마 지구별로. 로테이션 돌면서 투표하면서. 전쟁만 터지면 동원되서 전쟁하러 가는거걸랑. 

 

 

저들이 저 포스폴리테 루셰녜.를 저런 비스무리하게 적용을 한겨. 고대 로마를 배웠음이 분명해.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저 군대시스템이 가장 커. 황금시기를 만든 그 바닥은.

헌데 점점. 역시나. 저 정체성이 사라져. 귀족들이 점점 저 정신이 사라지면서. 내 땅 내가 지키는게 아니라. 귀찮은 일이고 손해가 되는겨 오히려. 자기들이 전쟁에 갈 수록 자기 재산만 거덜나고 자기만 손해다 라는 의식이 팽배해 지면서.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나라가 세분할 되면서 사라진거야 역사에서. 


.저걸 스웨덴이 다시 한겨. 그리고 종교전쟁때 이념으로 또한 콘스크립션을 하는겨.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 무기를 드는거야. 이건 용병이 아냐. 프로테스탄트의 팔리어먼트 아미라는 의회군도 일종의 콘스크립션이야. 저 부대가 내전으로 킹덤의 왕군을 물리친겨 저게. 저러면서 점점 말야. 용병이 점점 없어지면서. 상비군이 막막 등장하는겨. 이건 정체성이 스며야해. 그 절정이 프랑스 혁명군인거야.


이땅바닥은 언제 정체성이 생겨서 언제 군인의 자부심과 언제 군인을 우대했던가.

일단 말이지. ㅋㅋㅋ. 군인은 악마인거지. 군인은 일제 잔재야. ㅋㅋㅋ. 군인은 자기들 민들을 죽이는데 쓴거란거지. 그럼 인민군은 위대한거냐 ㅋㅋㅋ. 국방군은 자기들 민들 죽인 악마고 인민군은 그럼 머냐. 인민군은 양민 안죽였냐? 누가 더 많이 죽였을까 그런 잣대면.

쟤들 묘사 서술하는거보면. 국방군은 당시. 민들을 죽인 악마중에 악마야. 

인민군은 그럼 어드랬는데?


아 몰랑. 

야 요즘 말야. 김정은이 위대한 지도자. 어쩌고 저쩌고 란 말들 나오는거 보믄 끔찍한거야 저건.

어떤 는. 책팔이 하면서 정의노리 하면서리 쓰잘데기없는 사전 어쩌고 테레비 나오민서 대는 가 말야. 사람들앞에서 김정으니가 계몽군주래 ㅋㅋㅋ. 


그래 니덜이 그럼. 제대로 된 군대를 만들어. 니덜만의 정체성을 창조해서. 

헤럴드리를 만들어 다시. 조선 선비들이랑 조선 킹들이랑 조선 도포자락으로 도배를 하던가. 유교 사회주의 ㅋㅋㅋ.





끔찍한 거야. 이땅바닥은. 쟤들 이야기를 들여다 보다가 다시 보믄. 

A knight from the Black Army

 

Józef Brandt, Pospolite Ruszenie at a River Ford,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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