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 Verloren Zoon in het bordeel, 1536, Brussel, Koninklijke Musea voor Schone Kunsten van België.

 

저게 덧치어로. 더 벌로렌 존 인 헷 볼데일. 벨로렌이 로스트 존 이 썬. 아들. 잃어버린 아들. 볼데일.이 프로뜰 brothel. 여기가 여자가 술팔면서 몸파는 곳이야. 

 

저게 우리말로. 사창가의 잃어버렸던 아들. 이야. 저가 저 여자의 아들이야. 뒤에 뺀드가 있는거고. 저 뒤에 남자손님들이 오는겨. 

 

Jan Sanders van Hemessen (c. 1500 – c. 1566) was a leading Flemish Renaissance painter, belonging to the group of Italianizing Flemish painters 

 

얀 샌더스 판 헤이메슨. 플랑드르.에 살던 화가야. 이탈리아 다녀오고 서리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간인거야. 

 

네덜란드어 발음이. 저 van 할때. 저게 판.이냐 반.이냐. 

Generally, the southern varieties preserve the /f//v/, /x//ɣ/ and /s//z/ contrasts.[1][2] Southern /x/, /ɣ/may be also somewhat more front, i.e. post-palatal.[2] In the north, these are far less stable: most speakers merge /x/ and /ɣ/ into a post-velar [x̠] or uvular [χ];[1][2] most Netherlandic Standard Dutch speakers lack a consistent /f//v/ contrast.[2] In some accents, e.g. Amsterdam, /s/and /z/ are also not distinguished.[2] /ʒ/ often joins this neutralization by merging with /ʃ/. In some accents, /ɦ/ is also devoiced to [h]. See also Hard and soft G in Dutch.

 

V 를 프. 브. 두개를 혼용해. 저걸 판.도 하고 반.도 해. 딱히 표준화된게 없어. 

 

헤메슨.이 아냐. 헤이메슨.이야. 덧치의 e 가 ee 두개 장음은 에이. 로 읽고 하나의 e가 장음으로 읽힐때가 있어 저건 헤이메슨.이야. 

 

저 플랑드르 지역이. 덧치 라는 네덜란드어의 가장 끝 지역이야. 해서 플레미쉬 덧치. 라고 구분을 따로 하는데. 덧치 쓰는 사람들과 플랑드르 덧치 사람들이 대화하는게 서로 의사소통이 처음엔 어려워. 유튜브에 보믄 그딴 대화 서로 하는게 나와 웃겨. 

 

지금 벨기에 가. 브뤼셀이 가운데고. 바로 위가 플레미쉬어라는 덧치를 쓰고 바로 아래는 프랑스어족이야. 두개 어족이 북남으로 나뉜겨. 네덜란드 덧치.는 저기 위야. 

 

이 플랑드르.를 정리해보믄 다시.

.

 

 

저걸 영어로 옮길때 영역으로  The Prodigal Son 프로디걸 썬. 해서 우리말로 탕자. 라 하걸랑 방탕한 아들. 영어가 주작이니 당근 우리도 주작된 한글로 저걸 보는거지. 머 아는 이도 없지만.

 

 

 

프로디걸 썬.이라는 탕자.는 누가복음에서 나오는 말이야. 

 

 

이전에 피터 아릇슨.의 마르타와 마리의 집에서의 예수. 그림에서도 언급했지만. 저 성경이란게 말야. 가만 디다보믄 이야기가 재밌어 저게. 생각할 꺼리가 생기는겨. 저게 단지 예수 이야기라서 사람들이 복원을 하는게 아냐 그림들과 음악으로. 저게 먼가 미스테릭한 생각들을 막 해주는겨. 다른 것보다 훨씬.

 

저 탕자 라 번역하는 프로디걸 썬.이 또한 누가에서 나오는거걸랑. 부잣집에 아들 둘이 있어. 헌데 작은아들이 내 유산 달라 하고 서리 혼자 돈을 다 쓰면서 지 인생 즐겨. 거지가 되서리 돼지가 먹는 걸 먹어 일하믄서. 집에 돌아와서리 아부지 죄송해유. 하니까니 아부지가 송아지 잡아서리 잘 왓다 하니까니 큰아들이 내헌테는 고기 한점 먹는것도 야박하게 해쓰면서 저에겐 좋은 옷 다시 입히고 송아지도 잡고 이게 먼이야 . 하니 아비가 넌 원래 내께 니꺼였고. 쟨 죽다 살아왔고 되찾았고 기뻐해라.

 

 

.

플랑드르의 얀 샌더스.가 걍 단지 술집 가보니까 마담언니 자식가 저기 있었던겨. 사연을 물어보니 옌날 집나간 자식가 돌아와서리 저럼둥. 한겨. 그거 보고 그린겨. 저 그림 이면에 예수 이야기 누가가 기억이 나서 그린건지는 저 화가 전기를 안읽어봐서 몰겄다. 저걸 영어 주작 번역하면서 예수 이야기의 제목을 단겨 저건.

 

 

저당시 애들 술집이 저런겨 옷이 저렇고. 뺀드가 저리 있었고. 저 창문 밖에 저 건물 봐라. 저게 걍 쟤들 살던 모습인거야.

 

 

 

탕자. 탕이란 말이 머냐 이건.

 

 

shāng),既是声旁也是形旁,表示水波翻腾,水势盛大。金文

艸,水草

湯,水势盛大),表示长草的水泽。造字本义:名词,长草的湖或较大水域

 

 

샹. 수초. 더하기 수세성대. 물가에 풀들에. 물이 많고 물살 흐름이 쎈겨. 수세성대하니 플도 길고 많은 풀이란거지. 

 

해서 저건 걍 풀어진겨. 막막 흘러가면서. 그 크기가 어마무시한겨.

 

저게 호탕 하다 할때 탕 하는겨. 호.가 이전 썰했듯이 짐승 돼지 털이 빳빳이 선겨. 호 탕 이 같은 말이야. 호탕 한 는 결국 방탕 하게 되는겨. 탕자.가 저리 걍 막막 자기껄 써댄겨. 거지가 된게 그래서 프로디걸 썬. 방탕한 아들 탕자가 돼.

 

저게 순자에 탕 이란 글자가 나와

 

君子知夫不全不粹之不足以為美也,故誦數以貫之,思索以通之,為其人以處之,除其害者以持養之。使目非是無欲見也,使耳非是無欲聞也,使口非是無欲言也,使心非是無欲慮也。及至其致好之也,目好之五色,耳好之五聲,口好之五味,心利之有天下。是故權利不能傾也,群眾不能移也,天下不能蕩也。生乎由是,死乎由是,夫是之謂德操。德操然後能定,能定然後能應。能定能應,夫是之謂成人。天見其明,地見其光,君子貴其全也。

 

 

순자 권학편. 아 괜히 눈에띄어서 말야. 저것도 번역된 거 보믄. 애들이 시중에 번역된 걸 빼낀건데. 이땅바닥은 모든게 걸랑. 그 지쩍 수준이 말야. 한문 문명속에 살은 들이 정작 한문 번역 된거 보믄 정말 저것도 개그지 번역이야. 무식한겨 저 한문 실력도

 

 

해서 말야. 조선 통신사애들이 일본네 가믄. 이들이 가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에도때 간 들 글이 남았어. 똑같은 이야기를 조선 통신사 랑 일본 랑 쓴 이야기가 웃겨. 조선 는 지들 쪽 다 깐 이야기를 간단히 언급해. 일본가 그걸 상세하게 적어. 저 들 가믄 말야. 벼라별 개 을 다 하걸랑. 이 들이 조선 바닥에서 하던 그대로를 일본동네가서 하는겨. 거 일하는 사람들 패고. 술처먹고 깽판 놓고. 일본들이 어이어없어하는겨.

 

거서 한문실력을 언급해 일본가. 아 일단 전엔. 유럽의 이야기를 해. 일본은 저때 다지마섬으로 네덜란드가 들어오걸랑. 이전엔 전국시대에는 포르투갈 스페인 애들이 먼저 들어왓고. 저 다지마로 오는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독립전쟁 80년 하고의 네덜란드 황금시기의 네덜란드가 들어오는겨. 저때 네덜란드가 유럽 넘버 원.이야. 저걸 일본들이 받은겨. 그게 나중 메이지 유신의 힘이 된건데.

 

 

일단 저 조선 통신사 들은. 세상을 몰라. 유럽의 이야기를 하면. 저게 당췌 먼 이야긴지 못알아들어 처먹어. 그래서 일본가 그럼 유교경전을 언급해. 조오오온나게 무식해. 일본들이 쇼군에 가서 그러는겨 저따위 통신사 들을 우리가 계속 대접 접대해야 하냐고. 저들은 아직도 우리를 왜 왜 왜놈 합니다래. 대체 저따위 들을 우리가 배울게 없는데 왜 이 해야함둥.

 

 

.

 

저러고선 조선와선 일본 왜놈 왜왜 이 계속 하는겨 저 개들이.

 

 

저거도 해석보믄. 애들이 번역하는게 말야. 저게 배울 학을 열심히 하거라. 걸랑. 학. 지극하다보면.

 

목호지오색 이호지오성 구오지호미 심리지유천하. 이것도 오색오성오미을 좋아하는 것보다 눈귀입이 더 좋아하게 된다. 완전히 주작이야. 저건 번역이 아냐. 어디에 비교급이 대체 어딨어. 갈 지가 비교야? ㅋㅋㅋ . 저 갈 지.는 계속 가는겨 아이엔지.야. 눈은 계속 좋아하게 된다 오색을 귀는 계속 좋아하게 된다 오성을. 계속 좋아함이 끊기지 않고 좋아하게 된다는겨. 멀 오색보다 더 좋아하긴 멀.

 

해서. 심리지. 그러면 마음이. 리지. 앞에랑 댓구야. 호지 리지. 계속 이로와 지는겨. 그러면서. 유 천하. 천하를 갖게 된다. 

 

저걸 마음에선 천하를 소유한 것보다 더 이롭게 여긴다. 완전히 개판 번역인겨. 저걸 한문 전공 하는 들이 저따위 번역질을 하는겨.

 

 

저런 게 이땅바닥 시중에 있는 모든 논어 맹자 중용 번역이야. 조오오온나게 후져 저 번역 수준이. 

 

 

저기에 천하불능탕야. 가 나와.

 

저리 학이 지극해지면. 눈 귀 입 이 제대로 오색오성오미.를 찾게되고. 그러면서 마음이 이로와지면서. 천하를 갖게 돼. 

 

그래서. 권리는 불능경야. 군중블능이야. 천하불능탕야.

 

倾、移、荡:使动用法,使…屈服、改变、动摇。 意思就是说:权力利益不能使他屈服,群众不能改变他的志向,天下事不能动摇他的心神,活着的时候是这样,死了以后还是这样,这就叫做德操。

 

경 이 탕. 다 굴복해 하고 개변 하게 하고 동요하게 하다. 저가 번역 잘 한거지. 

 

천하.도 탕 시킬수 없는겨. 저 학의 지극함을 이룬 이는. 저기서 의 탕.은 저 수세성장.의 탕이야.

 

 

얘가 순자. 걸랑. 얘는 기원전 2백년 이전의 인간이야. 유자야. 유자들은 탕.을 싫어해. 특히나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가 않아. 그래서 예를 더 갖추어야 해. 즉 탕은 야만이야. 절제해야해. 그래야 인의예지를 계속 호지. 하면서 제대로 된. 시. 를 보는겨. 시 

 

生乎由是(생호유시) 死乎由是(사호유시)

살더라도 이 배운 것을 따르고 죽더라도 배운 것을 따르니

夫是之謂德操(부시지위덕조) 

이것을 덕행(德行)의 지조(志操)라고 이르는 것이다. 

생호유시 사호유시. 삶도 시.에서 나오고 죽음도 시.에서 나오는겨. 먼 저따위 해석이니. 

 

 

순자. 의 글도. 갑골문으로 해석을 해야해. 

 

시. 라는건. 

 

,金文

(日,太阳)

(又,手)

(止,即“趾”,脚),表示太阳直射,时至夏至,人们手脚并用进入夏季农忙。造字本义:夏至,太阳当头,适宜农务

저걸 막 쓰는게 아냐. 시. 라는건 태양 아래에 손과 발이야. 해가 뜨면 일 하라는겨. 저게 . 태양.이 리앨리티.야. 손 과 발.이 리앨리티.에 부응하는겨. 해서 나중에 파생되는게 옳다. 시. 하는겨. 

 

생도 사도 저따위 시. 라는 진짜 리앨리티.에 부응하는 손발의 움직임.에서 나오는겨. 라고 순자.가 말을 하는겨.

 

그 시. 라는 추상의 푼것을. 그 위 구절로 말한겨. 순자.가 말하는 시.라는건. 더 풀면. 저 학이 지극해서리 오색성미.를 좋아하게되서리 마음이 이로와져서리 천하 그자체를 걍 갖게 되는거다. 라는게 순자가 말하는 시. 야. 자기만의 항진명제야. 

 

생도 사도 저기서 나오고. 이 시.라는 걸 그래서 덕조.라고 지는 말한다. 덕조 란건 머고 조 란건 머냐.

 

 

 

라고 하민서리 풀면. 정력낭비고.

 

중국이 이야기. 특히나 저따위 유자들 이야기는. 야 . 저따위 이야기로 이천년을 살아서 지금 중국이 어글리 차이나가 된거고. 이땅바닥 조선 스레기가 된겨

 

 

할일없지 저따위 이야기 듣보는게.

 

 

해서 플랑드르. 를 보면

 

 

 

De vier elementen: Lucht

 

 

De vier elementen: Vuur

 

 

De vier elementen: Water

 

 

De vier elementen: Aarde

 

Joachim Beuckelaer (c. 1533 – c. 1570/4) was a Flemish painter specialising in market and kitchen scenes with elaborate displays of food and household equipment. 

요아킴 뷰클라르. 

 

 

 

Aarde Water Vuur Lucht .피어 에일리멘튼. four elements 아르데.가 땅. 바터.가 물. 뷔르.가 불. 루흐트.가 하늘. 땅에서 나는 야채파는 가게. 물에서 나는 생선 파는 가게. 하늘나는 조류 파는 가게. 를 키친에서 불로 요리하는겨.
아 그림 죽이지 않냐. 저게 플랑드르야. 저 16세기의. 종교전쟁으로 대륙이 달궈지고. 곧 이땅은 80년 독립전쟁을 시작하는 땅의 사람들이야.
.저 시장에서 말야. 가판대에 음식을 올리고 팔잖냐.

조선 세종때냐. 일본 구경했던 가 보고를 해. 일본들 시장가보니까 파는 것들을 가판대에다가 올려서 팝디다. 헌데 우리네 시장은 길바닥에다가 걍 부려놓고 파는데. 비교가 너무 됩디다. 우리네 시장도 일본처럼 만듭세다 가판세우고 그 위에다 팔거 올려놓으라고.

구한말 그림 봐라. 여전히 길바닥에 부려 놓고 판다. 그게 시장이라. 세종 때 실록 이전 썰. 어디 있냐 그게 찾아보기 구찮다. 시장을 더 열게 합세다. 하니까 세종이 하는말. 야 이것덜이 농사 열심히 짓고 부지런히 살생각 안함시 장터에서 물건이나 파는 짓들을 하다니. 을마나 게으르면 저을 하냐. 그래도 지방에 필요하다니 세우게 하던말던 .

참 골때리는 들인데.
더 골때리는건 저런 애들이 위민의 상징이야.

참 끔찍한겨. 이 조선민국의 역사 해석은. 
거 반계수록 유형원. 이 언제냐. 더하여 거 정약용의 목민심서니 걔 글에도 여전한겨. 
이들이 말야. 태종 성종 실록에 있어 또한 똑같은 글이. 찾아보기 구찮아. 이들이 할일이 없으니까. 민들이 키우는 나무들을 일일이 가서리. 열매 열리기 전에. 이 나무는 열매 몇개. 그걸 그 나무 둥치에 새겨. 그리고 거기서 열매를 따가. 열리면. 열매가 제대로 안열리거나 숫자가 안되면 다른 재산을 뺏아가는거지. 제주도 감귤이 그래서 싸그리 없앤겨 민들이.

민들이 그래서 아예 나무란 나무는 싸그리 죽여. 저 나무가. 관리들이 자기들 재산과 노역을 뺏고 부리는 꺼리 구실이 돼. 
그걸 정약용이가 언제쩍 인간이야. 그걸 그때까지 고대로 하는겨. 
저건 일부가 아니라 조선 팔도가 저런겨. 그걸 유형원이가 처음 끄집어내는거고. 
헌데 정약용의 문제는 결국 머냐 얘도. 얘가 하는 짓이 말야. 말년에.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란게 머냐면. 경세유표. 라는게. 이게 원래 제목이 머냐.....

방례초본(邦禮草本. 방. 이란게 나라전역이야. 주례의 례를 초본으로 삼아 쓴겨. 방례.가 주례의 이땅에 적용한 말이야. 저게 곧 머냐면. 이땅바닥 조선의 제도를 자기가 애들이랑 모여서리 다시 짠겨. 이호예병형공 부터 그 산하기관 각각 20개씩 해서리. 이건 기관을 이런일을 시켜야 함둥. 하는 알앤알. 정부 조직도를 그린겨 얘가 ㅋㅋㅋ

 

 

웃긴겨 저게. 

 

그러면서 자기 솔루션 조직도와 알앤알과. 지금 현 왕조의 조직도와 일과 규범.을 비교하면서 현재 이게 문제니 자기가 만든 조직으로 통폐합을 이런식으로 하라. 란 망상도야 저게.
일표이서.란게 해서. 저걸 짜고. 나서리 목민심서 흠흠신서 를 만든겨. 그 행정부사법부입법부와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 들의 행동강령이 목민심서.에 저대로 안하면 조패겠다는게 흠흠신서.야



참 할일 없는겨 저게.
왜냐면 말야. 쟤의 저 바닥이. 그래서 이전에 하던 짓이 머냐. 책 낸게




 

  •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 정약용이 회갑을 맞던 해 자신이 직접 쓴 자신의 일대기이다.
  • 《맹자요의》
  • 《춘추고징》
  • 《상서고훈》
  • 《매씨서평》
  • 《주역사전》
  • 《역학서언》
  • 《대학공의》
  • 《대학강의》
  • 《중용자잠》
  • 《중용강의》
  • 《아언각비․이담속찬》
  • 《문헌비고간오》
  • 《소학주관》
  • 《소학기언》
  • 《심경밀험》
  • 《상례사전》
  • 《상례외편》
  • 《상의절요》
  • 《제례고정》
  • 《의례문답》
  • 《상례작의》
  • 《악서고존》
  • 《시경강의》
  •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 《대동수경》
  • 《풍수집의》
  • 마과회통
  • 《삼미자집(三眉子集)》 : 정약용이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았다가 나았는데, 그때 오른쪽 눈썹에 그 자국이 남아 눈썹이 셋으로 나뉘어 삼미(三眉)라 불렸다. 이 《삼미자집》은 정약용이 10세 이전에 지은 글을 모은 문집이다.
 
유교경전을 자기가 해석을 한거야. 지금 조선의 문제가. 유교경전을 제대로 다시 깊게 안봐서 생긴 문제란거야 그 마음 바닥이. 주례의 이야기들과 사서오경의 이야기를 내가 해석하는대로 좀 깊게 디다봐라.
 
하고 나서 만든게 일표이서.야. 즉 쟤의 투비모델.의 그 바닥이. 또옥같은 유학의 그 싸이키. 사유에서 절대로 못벗어나는겨. 
 
 
한심한겨. 
 
 
.
이 얘길 왜 하냐.
.
 

 

Self portrait, 1548. This self-portrait may be the first self-portrait of an artist at work at the easel, regardless of gender

 
Caterina, or Catharina van Hemessen (1528 – after 1565) was a FlemishRenaissance painter
 
카타리나 판 헤이메슨. 여자 플레미쉬 화가. 1548년에 자기 초상화를 그려. 자기 초상화를 그린 최초야. 저 그림이. 남녀를 불문하고.
 
 
 
Sofonisba Anguissola (c. 1532 – 16 November 1625). 소포니스바 안귀쏠라. 스페인의 여류화가 의 이전 그 초상화는 저 그림 다음이야. 
 

 

Portrait of a Lady, c. 1551. Bowes MuseumDurham

 
카타리나.가 그린 어떤 레이디의 초상화. 
 
.
 
 
The Franco-Flemish War (French: Guerre de Flandre; Dutch: Frans-Vlaamse Oorlog; also called Flanders’ War of Liberation) was a conflict between the Kingdom of France and the County of Flandersbetween 1297 and 1305.
 
이 플랑드르.가 서프랑키아 대머리 샤를 땅이걸랑. 프랑스꺼야 원래. 백년전쟁 전에 독립전쟁이야. 이때 루이6세야. 이 전쟁 때 나온게 
 
The Battle of the Golden Spurs (DutchGuldensporenslagFrenchBataille des éperons d'or), also known as the Battle of Courtrai, was fought between the Kingdom of France and the County of Flandersat Kortrijk (Courtrai in French) in modern-day Belgium on 11 July 1302.
 
이던 썰한 골든 스퍼 전투야. 이게 벨기에 독립 기념일 비슷하게 기념하는겨 지금. 
 
골든 스퍼.는 플랑드르가 이겨도. 최종 전쟁은 프랑스가 이겨. 그 변경땅 세 도시.가 프랑스로 넘어와. 그리고 플랑드르에는 친 프랑스 정권이 서.
 
The Battle of Montlhéry was fought between Louis XI and the League of the Public Weal[1] on 16 July 1465 in the vicinity of Longpont-sur-Orge. It had no clear winner[2] and therefore did not decide the war.[3]
 
 
 
The Burgundian Wars (1474–1477) were a conflict between the Dukes of Burgundy and the Old Swiss Confederacy and its allies. Open war broke out in 1474, and in the following years the Duke of BurgundyCharles the Bold, was defeated three times on the battlefield and killed in the Battle of Nancy in 1477. The Duchy of Burgundy and several other Burgundian lands then became part of France, while the Burgundian Netherlands and the Franche-Comtéwere inherited by Charles's daughter Mary of Burgundy, and eventually passed to the House of Habsburg upon her death because of her marriage to Maximilian I, Holy Roman Emperor.
 
 
그리고. 저 로타르땅을. 부르고뉴가 대부분 가져가. 독일 저지대 플랑드르까지 부르고뉴 집안꺼야. 부르고뉴의 현명공 필리프.가 백년전쟁때 샤를 7세 프랑스 왕정과 손잡으면서 맺은 약조가. 자기는 프랑스 킹에 하미지.homage 를 안하겠다는겨. 이건 곧 부르고뉴가 킹덤의 위치란거걸랑. 하미지도 안하고 앞으론 세금도 안 바치겠단겨 이건. 그리고 아들 용감공 샤를까지 간겨. 이때 플랑드르도 부르고뉴 땅이야.
 
저러면서 저지대 땅들이 부르고뉴 가문의 현명공과 용감공 상대로 또한 기존 땅빼앗긴 귀족들이 부르고뉴 상대로 전쟁한겨. 대표적인게 헨트전쟁 리에주전쟁이야. 
 
그러면서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왕정 코트도. 부르고뉴를 상대할 수 밖에 없어. 부르고뉴의 용감공 샤를은 자기의 퍼블릭 윌.이란 동맹을 구성하고 루이11세랑 싸우는겨. 그게 몽데리 전투. 이겨 부르고뉴가. 
 
그리고 나서. 이 부르고뉴의 용감공 샤를.이 로렌 땅에서 싸우는겨. 이 로렌은 스위스를 부르고 배후엔 루이11세가 있는거고. 이때 낭시전투에서 죽는겨 부르고뉴 샤를.이
 
이때 부르고뉴의 땅들을 프랑스가 많이 갖고 와. 하미지를 받는 땅이야. 작위는 여전히 마리.이름이야. 
 

Burgundian territories (orange/yellow) and limits of France (red) after the Burgundian War.

저 그림을 보면. 가운데 부르고뉴 부터 쭉 위로 네덜란드 저지대까지 노란 색은 부르고뉴의 마리.이름의 땅이지만. 빨간색으로 나뉘어진건. 그 땅의 임대인 주인은 프랑스 인거야. 저 부르고뉴 전쟁 막판 낭시전쟁으로 부르고뉴 샤를이 죽으면서. 
 
저 그림상 원래 부르고뉴 위에 로런 더치. 바 더치. 저 가운데가 다 마리 아빠 샤를 꺼였어. 낭시전투에서 죽으면서 완전히 원래 공작애들꺼로 돌아간겨. 
 
그리고. 여전히 저기 북쪽 저지대 플랑드르.는 프랑스 꺼야. 그 옆 아르트와 피카르디.도 부르고뉴 꺼지만 하미지 진짜 주인은 프랑스 라는거야. 그리고 저 지도상 보듯이. 로렌.도 원래는 그래서 독일 땅이야. 이건 황제령이야. 그 아래 부르고뉴 카운티.는 역시 신성로마 황제령.이야
 
 
부르고뉴 덧치.는 대머리샤를때부터 프랑스꺼고. 오른쪽 카운티 부르고뉴는 신성로마꺼야. 
 
지금 프랑스 레종.으로 행정개편을 13개주로 최근 해서리. 저 덧치 부르고뉴와 카운티 부르고뉴가 지금 부르고뉴 레종.이 된거야. 원래 이전엔 저 카운티 부르고뉴.는 
 
Franche-Comté (French pronunciation: ​[fʁɑ̃ʃ kɔ̃te]; literally "Free County", Frainc-ComtouFraintche-ComtèArpitanFranche-ComtâtGermanFreigrafschaftSpanishFranco Condado)
 
프랑슈 콩테. 로 이름이 바뀌어서리 한 레종.이었다가 최근에 옆 부르고뉴랑 합쳐서 부르고뉴 레종이 된겨 이게. 저 프랑슈 콩테.가 부르고뉴 백작령 이야. 원래 저건 독일땅이야. 로렌도 독일땅. 원래 그래서 알사스.도 독일땅이야. 이걸 2차대전때 독일 이 지면서 뺏긴겨. 해서 지금 독일땅이 짝아 프랑스에 비하면. 프랑스 들은 걍 주워 먹은겨 저땅은.
 
 
.
 
 
저 상황에서. 마리.가 막시밀리언과 결혼하면서 합스부르크 것으로 가는겨. 
 
루이11세는. 마리가 갖고 있는 땅 그 자체를 다 뺏으려 한게 목적이었어. 마리를 자기 며느리 삼는 다우리로 저땅 다 달라는 걸 마리가 거부하면서 막시밀리언으로 간거걸랑. 
 
해서. 이탈리아 전쟁 전에. 이 부르고뉴 땅문제로. 루이11세는 막시밀리언이랑 싸우는겨. 
 
 
The First Battle of Guinegate took place on August 7, 1479. French troops of King Louis XI were defeated by the Burgundians led by Archduke (later to be Emperor) Maximilian of Habsburg. This battle was the first in which the innovative Swiss pike square formation was first employed by a power that was not natively Swiss
 
이게 기느게이트 전투였던겨. 막시밀리언이 이겨. 그래도 저 지도는 안변해. 
 
This large Duchy passed in 1477 to the Habsburg dynasty, and in 1556 to the kings of Spain. Western and southern districts of Flanders were confirmed under French rule under successive treaties of 1659 (Artois), 1668, and 1678.

 

1477년.에 마리 아빠 샤를 이 죽고. 이해에 바로 막시밀리언에게 시집가면서. 이 플랑드르.는 특히나 진짜 주인이 합스부르크냐 프랑스냐 논쟁꺼리가 되는겨. 여기 포함. 이 플랑드르 왼쪽의 아르트와 피카르디. 역시나 밀땅을 했걸랑. 헌데 저 기느게이트 전투에서. 막시밀리언이 이겼지만. 아르트와땅은 프랑스에게 줬어. 그 하미지 권한 원래 주인 이름은. 

 

Despite his victory, Maximilian was forced to cede Artois and Burgundy itself to Louis XI according to the Treaty of Arras (1482), after Mary of Burgundy had died from a riding accident.

 

즉 아르트와.랑 부르고뉴 덧치땅은 프랑스에게 줬어. 그리고 자기들은 플랑드르.는 이제 원주인이 자기네 합스부르크 란 거야. 

 

House of Habsburg[edit]

아르트와.의 백작들을 보면. 잠시 프랑스가 가져갔지만. 백작은 스페인 킹들이 백작인겨 이것만 예를 들어 보면. 이땅의 주인은 프랑스야. 이땅의 백작은 스페인킹이지만 프랑스 킹이 임대해준겨 여전히. 저런 상황은 끝까지 가는거야.
 
 
헌데 말이지. 플랑드르는 달라. 이것도 여전히 프랑스꺼여야 하걸랑. 헌데 이건 저때 합스부르크가 원주인은 자기꺼란겨. 
 
해서 특히나 말이지. 이 후. 이탈리아전쟁을 하면서. 프랑스의 공격 지점이. 저 플랑드르가 되는거고. 신성로마입장에선 이 플랑드르에서 반대로 프랑스 땅으로 넘어오면서 파리 위를 쳐들어가는거야. 이 프랑스와 플랑드르 접경이 전장의 중심이었어 이탈리아 전쟁 당시.
 
 
물론. 또한 스페인과 프랑스를 가르는 피레네산맥 경계의 나바르.가 전장의 중심이 되었고.
 
 
The Battle of the Spurs, or Battle of Guinegate, took place on 16 August 1513. It formed a part of the War of the League of Cambrai, during the ongoing Italian WarsHenry VIII and Maximilian I were besieging the town of Thérouanne in Artois (now Pas-de-Calais). Henry's camp was at Guinegate, now called Enguinegatte.[1] 
 
또다른 스퍼들의 전투. 기느게이트 2차 전투.가 아르트와.야. 플랑드르 왼쪽이야. 이탈리아 전쟁때 헨리8세가 신성로마 편들어서 쳐들어온겨. 프랑스가 져 이건.
 
 

The Italian War of 1521–26, sometimes known as the Four Years' War,

 

이탈리아 전쟁을 8시기로 나눌때 후반전 시작해서 다음해 로마약탈.로 끝나는 네번째 전쟁 4년간.

The war broke out across Western Europe late in 1521, when a French–Navarrese expedition attempted to reconquer Navarre while a French army invaded the Low Countries. 



프랑수아가 나바라.의 앙리2세를 지원하면서 피레네 넘어서 나바라 재공격하고. 프랑스 군대는 저지대 플랑드르 쪽으로 동시에 치고 들어가는거야. 그러면서 프랑수아1세 자신은 밀라노.로 가. 그리고 밀라노 근처 파비아 전투에서 카를에게 포로로 잡혀서리. 나중 킹되는 프랑스앙리 2세. 꼬마를 볼모로 잡히고 풀려나는겨.
이 이전엔 이탈리아 전쟁이 이탈리아를 벗어난건. 

The naval Battle of Saint-Mathieu took place on 10 August 1512

 

프랑스 왼쪽 끝 생 매튜. 브리타니 끝이야. 헨리8세 군대가 쳐들어가. 그리고 저 기느게이트2차 전투. 잉글랜드도 같이 껴. 

 

 

The Battle of Flodden, Flodden Field, or occasionally Branxton (Brainston Moor[4]) was a military combat in the War of the League of Cambrai between the Kingdom of England and the Kingdom of Scotland, resulting in an English victory. The battle was fought in Branxton in the county of Northumberland in northern England on 9 September 1513, 

 

플로덴 전투. 스콧 제임스4세가 죽어. 이때 잉글랜드의 아라곤 캐서린.이 사령부를 맡아. 남편은 프랑스에서 이탈리아전쟁하고. 카를이랑 사이좋을때야 헨리가.

 

 

끽해야 저거 세개야. 그러다 후반전때부터는. 스페인땅 나바라 킹덤과. 프랑스와 플랑드르 접한 북동쪽이 전장이 확대되는겨 이 이탈리아전쟁이. 그리고 더하여 프랑스 남쪽 사보이 왼쪽 옆에 마르세유까지.

 

The War of the League of Cognac (1526–30) was fought between the Habsburg dominions of Charles V—primarily the Holy Roman Empire and Habsburg Spain—and the League of Cognac, an alliance including France, Pope Clement VII, the Republic of Venice, the Kingdom of England, the Duchy of Milanand Republic of Florence.

 

프랑수아1세 풀려나고. 로마 약탈 당하고. 교황이 카를 반대 코냑 동맹을 맺어. 다섯번째 전쟁. 이탈리아에서 벌어져. 완전히 카를의 수중으로 들어와 이탈리아는.

 

저 코냑 동맹 전쟁때. 중요한 장면이. 사보이.가 카를의 합스부르크로 돌아선겨. 밀라노 왼쪽의.
이 사보이.가 이탈리아 전쟁 시작했던 샤를8세 킹 남매의 엄마걸랑. 루이11세가 이탈리아 먹을라고 이 사보이 여자랑 결혼하고서리 부르고뉴 샤를이랑 싸우느라 못 쳐들어갔걸랑. 
이 사보이는 이전 아를킹덤. 즉 부르고뉴 공작령 오른쪽의 프로방스와 위 고지대 부르고뉴. 나중 카운트로 분할되는. 그걸 합친 킹덤이 4백년을 가걸랑 1300년대까지. 여기서 카운트로 시작한 사보이야. 이 사보이.는 수도가 밀라노 왼쪽 토리노 이지만. 원래는 시작이. 

 

Chambéry (

French pronunciation: ​

[ʃɑ̃beʁi]; Arpitan: Chambèri, Italian: Sciamberì, and in Latin: Camberia) is a city in the department of Savoie, located in the Auvergne-Rhône-Alpes region in eastern France.

 

샹베히.야 내륙이야. 리옹 제네바 그 아래야. 여기서 지금 토리노 까지 간겨. 로타르의 그 가운데 땅의 제일 아래 남쪽이야. 이도 저도 아닌 땅. 이지만. 위는 부르고뉴고. 애매한 지역이야. 북쪽 저지대랑 똑같은 고시야 입장이. 이곳이. 

헌데. 아를킹덤.이라는 프로방스와 고지대부르고뉴.는 신성로마.의 영지였어 이게. 여기도 결국 보믄 지금 프랑스가 가져간겨.

이들이 루이11세랑 결혼하면서 프랑스쪽이었다가. 저 코냑동맹때 카를이 이기고. 사보이도 두려운겨 카를이. 당근 이쪽에 붙는거야. 

프랑수아1세의 프랑스 입장에선 나폴리에 밀라노 먹을라다가. 둘 다 뺏기고. 이젠 사보이까지 뺏기게 된겨.

The Italian war of 1536-38 was a conflict between King Francis I of France and Charles V, King of Spain and Holy Roman Emperor. The objective was to achieve control over territories in Northern Italy, in particular the Duchy of Milan. 

 

해서 바로 여섯번째 시작한게. 밀라노.라도 다시 찾자. 하면서. 먼저 치고 들어간 곳이. 바로 사보이야. 저기가 전초기지걸랑. 이전엔 결혼으로 우리편 했던 곳이. 카를 편으로 돌아섰어. 여길 쳐 들어가는거야.

 

 

Piedmont (/ˈpdmɒnt/ PEED-mont; Italian: Piemonte, 

pronounced 

[pjeˈmonte]

 

해서. 밀라노는 못 갖고 오고. 사보이땅을 갖고와. 이 사보이땅이 피예몬테.야 

 

저때 카를은 마르세유를 치는거고.

 

 

The Italian War of 1542–46 was a conflict late in the Italian Wars, pitting Francis I of France and Suleiman Iof the Ottoman Empire against the Holy Roman Emperor Charles V and Henry VIII of England.

 

 

여전히 밀라노에 미련이 있는겨. 그동안 50년을 했는데 밀라노라도. 하는겨 프랑스는. 다섯번째 쳐 들어가는겨.

 

 The course of the war saw extensive fighting in Italy, France, and the Low Countries, as well as attempted invasions of Spain and England. The conflict was inconclusive and ruinously expensive for the major participants.

 

이때 특히나. 이탈리아를 넘어서리. 독일 저지대땅. 즉 플랑드르가 주요 전장터야. 그리고 그 경계선인 프랑스 북부. 그리고 아래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니스. 

 

 

Fighting began at once throughout the Low Countries; the following year saw the Franco-Ottoman alliance's attack on Nice

 

오스만과 프랑스는 저지대를 공격하고 다음엔 니스.를 공격하고. 니스.가 완전 이탈리아 경계 남부야. 즉 저때도 저기가 딱히 프랑스꺼냐 아니냐 

 

오스만은 프랑수아1세가 잡히고나서리. 이때부터 둘이 친구야.

 

 

 

Charles and Henry then proceeded to invade France, but the long sieges of Boulogne-sur-Mer and Saint-Dizier prevented a decisive offensive against the French.

 

불로뉴 쉬르메르. 생디지애. 프랑스 북쪽이야. 프랑스가 당해.

 

 

The Italian War of 1551 (1551–59), sometimes known as the Habsburg–Valois War and the Last Italian War, began when Henry II of France, who had succeeded Francis I to the throne, declared war against Holy Roman Emperor Charles V with the intent of recapturing Italy and ensuring French, rather than Habsburg, domination of European affairs.

 

 

그리고 마지막 여덟번째.를. 프랑수아1세 죽고. 둘째 아들 앙리2세가 하는겨. 이때 카를5세도 늙어서리 마지막 하는거고. 카를은 통풍이 쎄게 와서 말년 고생 음청하고 저걸 뒤에 펠리페2세에게 물려주면서 은퇴하고 죽어. 

 

 

On the Continental front, Henry II allied with German Protestant princes at the Treaty of Chambord in 1552. An early offensive into Lorraine was successful, with Henry capturing the three episcopal cities of Metz, Toul, and Verdun, and securing them by defeating the invading Habsburg army at the Battle of Renty in 1554.

 

저것도 전쟁터가 보면 말야. 로렌. 메쓰. 뚤. 베르됭. 파리에 인접한 프랑스 동북쪽이야. 저기가 저당시 저게 프랑스꺼냐 신성로마꺼냐 아직 애매한거야 저기 조차. 

 

 

오스만이 끼는 해전은 나중에 몰아서 보고 말야.

 

 

특히나 후반전은 그래서 플랑드르 와 그 인접한 프랑스 북동이 특히나 전장터가 돼 이탈리아 전쟁 65년에서. 

 

 

사보이.가 말야

 

Emmanuel Philibert(in Italian: Emanuele Filiberto; also known as Testa di ferro, Piemontese: Testa 'd fer, "Ironhead", because of his military career; 8 July 1528 – 30 August 1580) was Duke of Savoy from 1553 to 1580, KG .

 

엠마뉴엘 필리버트. 이 사람 아빠 공작이. 프랑수아가 쳐들어모면서 도망가고. 이 아들이 공작에 오르고 서리. 저 이탈리아 전쟁 마지막에 카를5세 쪽에 들어가면서 전쟁을 하는겨. 

 

 

 

프랑스는. 저 전쟁의 결과로. 저기 고지대 로렌땅의 주교령. 메쓰. 뚤. 베르됭. 저 세개를 확실히 프랑스 꺼다. 라는게 굳이 저 65년간 전쟁의 소득이면 소득이랄까. 
그리고 백년전쟁때 유일하게 잉글랜드가 갖아 간. 칼레. 를 갖고와. 잉글랜드 피의 마리.가 죽기 전에 가장 애통해 하는게 칼레.야. 자기 가슴엔 칼레가 있담시. 이것도 다음 종교전쟁 막판에 스페인에 빼앗기다가 되찾지만.

저때 사보이 공작이. 프랑스 앙리2세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다시 화해를 해. 하지만 이미 그 세력은 카를의 합스부르크 가 된거야. 이 사보이가. 합스부르크랑 적극적으로 손잡으면서. 나중에 스페인 후계자전쟁 1700에 태양왕 루이에 맞서서 이기고 시칠리아섬.을 받으면서. 그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사르디나섬과 맞교환 하면서. 사르디나 킹덤이 되고 이탈리아 통일을 이 사보이가 하게 돼.
.
오스만과 베네치아와 병원기사단과 노예 이야기는 다음에 보자. 일단 이들이 개괄로 이해가 되어야 80년 종교전쟁부터가 좀 제대로 이해가 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