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bellion of the Remences or War of the Remences was a popular revolt in late medieval Europe against seignorial pressures that began in Catalonia in 1462 and ended a decade later without definitive result. Ferdinand II of Aragon finally resolved the conflict with the Sentencia Arbitral de Guadalupe in 1486.
레멘사. 들의 반란.
The Catalan Civil War, also called the Catalonian Civil War or the War against John II, was a civil war in the Principality of Catalonia, then belonging to the Crown of Aragon, between 1462 and 1472.
카탈로나아 내전. 과 같이 일어난 거야. 카탈로니아. 서기 1100년대에 결혼으로 아라곤에 편입이 되었어. 여기 중심은 바르셀로나 가문이야.
카탈로니아 내전.은 이전 조안2세.라는 나바르 킹에 아라곤 킹과 그 팽당한 전처사이와의 아들 카를로스. 와의 내전의 연장선이야. 이때 카탈로니아에서 레멘사. 반란이 터지면서 동시에 왕에 반대하는 애들이 내전하는거지.
레멘사.
Remensa (Catalan: Remença) was a Catalan mode of serfdom. Those who were serfs under this mode are properly pagesos de remença (pagesos meaning "peasants"); they are often (though not quite correctly) referred to simply as remences (singular remença)
카탈라니아.의 농노제도의 농노.를 레멘사. 농노 란 서프. 이들은 노예가 아냐. 단지 페전트.야 영지에서 농사나 일하는 사람들이야. 헌데 노예취급을 당하게 되는겨 결국 빚에 걸리고 계약에 걸려서리.
이들은 노예가 아냐. 헌데 점점 노예화가 되는것.에 반기를 드는겨.
Evil customs (Catalan: mals usos, lit. "bad uses") were a set of specific Medieval feudal customs, generally levies, which peasants were subjected to by their feudal lords in the Kingdom of Aragon and in other European countries. These obligations are related to the Ius Maletractandi, a right approved by the Catalan Court of 1358 in 1202, which empowered the feudal lords to mistreat, imprison and dispossess peasants of their property.[1]
말수소스. 악습. 중세 이들 카탈란 농노들에게 점점 노예비슷한 행태를 영주들이 하는겨.
- Intestia: a noble right that penalized peasants who died without making a will. The penalty consisted in the confiscation of a portion of the farmer's property, generally a third. Pella and Forgas said that this misuse was used "almost in general" in the diocese of Girona.[3] Here, the "young man" (the farmer who had no farm) who died intestate and without children, had his property divided into three parts: one for the family, one for the clergy (to pray for the soul of the deceased), and one to distribute among the poor.[4]
- Eixorquia: law by which the feudal lord received one-third of the inheritance of the peasant who had no descendants.[5]
- Cugucia: If the peasant's wife was found guilty of adultery, the feudal lord received half of the goods if the woman had the consent of her husband, or the whole of the goods if the woman did not.[6]
- Arsia: indemnification of the peasant had to pay the feudal lord in case of accidental fire of his belongings.[7]
- Ferma of forced plunder: the extraction of a part of the goods of the peasants when they guaranteed the dowry of the woman with the farm of their feudal lord, after the marriage of his vassals. The peasant had the useful domain and the feudal lord had the direct dominion.
- Personal freedom: the peasants, subject to servitude, could not leave the farm they worked without having been redeemed by their feudal lord. Emancipation did not only affect the peasant, but also his wife and, above all, his children. The price of freedom varied greatly over time and were in line with the valuation of the farm. The incorruptible maidens were redeemed by paying their feudal lord a fixed amount. In the diocese of Gerona, there were two salaries and eight monies.
In addition to these evil customs, other manorial customs existed, including:
- Forge of distress: the peasant had the obligation to repair his tools of work in the forge of the feudal lord. It was the noble monopoly of blacksmithing.[8]
- Obligation of the mill: the peasant had the obligation to grind the corn in the mill belonging to the feudal lord.
- Obligation of the furnace: the peasant had the obligation to cook the bread in the oven belonging to the feudal lord, especially on lands with a concentrated population.
- Obligation of the yoke: the peasant had the obligation to work with a yoke of animals in the lands of the feudal lord during certain determined days of the year.[9]
- Obligation of manipulation: the peasant had the obligation to manipulate corn or any other product belonging to the feudal lord.
The Battle of Gallipoli occurred on 29 May 1416 between a squadron of the Venetian navy and the fleet of the Ottoman Empire off the Ottoman naval base of Gallipoli.
갈리폴리 전투.가 1416년 이야.
The Seventh Ottoman–Venetian War was fought between the Republic of Venice and the Ottoman Empire between 1714 and 1718. It was the last conflict between the two powers, and ended with an Ottoman victory and the loss of Venice's major possession in the Greek peninsula, the Peloponnese (Morea).
마지막 7차 전쟁이 1718년에 끝나. 3백년 간의 전쟁이야.
the Most Serene Republic of Venice (Italian: 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
最も高貴な共和国ヴェネツィア(もっともこうきなきょうわこく ヴェネツィア、ヴェネト語: Serenìsima Repùblica de Venexia(Venessia)、イタリア語: 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
못토모 코우키나 쿄우와코쿠. 가장 고귀한 공화국 베네치아. 라고 일본애들이 칭해.
써린. serene 은 고귀한 이 아냐. 조용하고 평화롭고 간섭없고 조용한.
Calm, peaceful, and untroubled; tranquil.
헌데 쟤들은. 가장 고귀한. 제일 귀한 공화국. 이라고 한겨. 아 일본애들의 시선은 이 시대 최고야.
먼말이냐면 말야.
저 모스트 서린. 이라는 단어는 베네치아.에만 쓰는 단어가 아냐. 사가들이 붙여준 말이야. 저 닉네임을 받는 나라가 네 개 나라야.
Most Serene Republic (Serenissima Respublica in Latin) is a title attached to a number of Europeanstates through history. By custom, the appellation "Most Serene" is an indicator of sovereignty (see also Serene Highness or Most Serene Highness for a sovereign prince); consequently "Most Serene Republic" emphasizes the sovereignty of the republic.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루카 공화국. 폴란드 리투아니아 카먼웰쓰.
헌데 일본애들은. 베네치아.만을 따로 저 애칭을 준겨. 못토모 고우키나. 라고.
ジェノヴァ共和国(ジェノヴァきょうわこく、伊: Repubblica di Genova、リグーリア語: Repúbrica de Zêna, 羅: Respublica Ianuensis, 別称: Serenissima Repubblica di Genova)は、ジェノヴァを中心にして1005年から1797年まで存在した都市領邦。
제노바 공화국을 언급할때도. 저 고귀한. 이란 말을 얘들은 안붙여. ㅋㅋㅋ.
베네치아. 위대한 나라야 여기가.
지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야.
697–1797
1100년의 공화국. 하면서 서기 697년 시작 하는데. 공화국 전에 5세기에 말야. 서로마 방위선이 무너지고 게르만 애들 훈족애들 쳐 내려올때. 저 구석탱이 바다 위에서 만든겨. 전설같은건 넘어가고. 재밌는데 이런게 이런거 썰하다간 한도 끝도 없고.
짐이 삼수중이라. 재수시절이었으믄 일일이 다 썰할낀데. 걍 대충 맥락만 쓰고 말자우.
저 1100년의 공화국을 마무리 하는 사람은 나폴레옹 이야 역시. 이 인간은 안끼는데가 없어. 나폴레옹이 이태리 캠페인 하면서리. 걍 힘 다 빠진 베니치아. 항복하고 프랑스 군에 권력을 넘기면서리. 끝난겨.
아 증말 눈물이 곡롬이 될 정도야 저 베네치아 이야긴.
By 1490, the population of Venice had risen to about 180,000 people.
1490년 인구가 많이 올라봤자. 저 쪼그만 구석탱이에서. 18만명이야. 저 18만명이 1100년을 버틴겨. 그것도 가만히 앉아서리 숨죽인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저 인간들의 처참한 정글속에서 피티기며 참여하면서 저 1100년을 버틴 나라야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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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어라. 앞으로도 가만히 있어라. 경쟁 말거라. 레닌나 일성이나 모택동이 가 인민 우리네 계획경제 . 상공업자들 가만 납두면 조땐다 상공업은 시장은 우리네가 지도할꺼다 . 니덜은 가만히 있음서 평등하게 살거라 그렇게 해줄팅께. 아 저 을 또 보는 세상이 되어쓰이. 이동양바닥은 은제 문명이 서는거냐.
The Order of Knights of the Hospital of Saint John of Jerusalem (Latin: Ordo Fratrum Hospitalis Sancti Ioannis Hierosolymitani), also known as the Order of Saint John, Order of Hospitallers, Knights Hospitaller, Knights Hospitalier or Hospitallers, is a medieval Catholic military order. It was headquartered in the Kingdom of Jerusalem, on the island of Rhodes, in Malta and St Petersburg.
병원 기사단. 이전 잠깐 언급. Active c. 1099–present . 이 기사단은 수도회에서 시작한겨.
In 603, Pope Gregory I commissioned the Ravennate Abbot Probus, who was previously Gregory's emissary at the Lombard court, to build a hospital in Jerusalem to treat and care for Christian pilgrims to the Holy Land
서기 603년이야. 애봇. 수도회 짱이 명을 받고 예루살렘에 수도회를 설립한겨 교황의 이름으로. 저 예루살렘 성지에 오는 그리스도인들을 병치료해주라고. 이들이 레반트 십자군 때 기사들이 된겨. 템플기사단 보다 얘들이 먼저야. 굳이 누가 먼저냐 묻는다면.
똑같이 아코 함락 되면서. 튜튼 기사단 포함 세개의 기사단이 설 곳을 잃어. 템플은 클레멘스5세냐 4세냐. 필리프 4세에 빌붙어서리 아비뇽에 처박히면서 템플 짱 자크드모레 화형시키면서 없애고. 튜튼은 저 폴란드 위 프러시아 땅으로 가고. 병원기사단은 섬으로 떠도는겨 지중해의.
- The Crusades
- Siege of Ascalon (1153)
- Battle of Arsuf (1191)
- Siege of Acre (1291)
- Siege of Rhodes (1480)
- Siege of Rhodes (1522)
- Battle of Preveza (1538)
- Invasion of Gozo (1551)
- Siege of Tripoli (1551)
- Battle of Djerba (1560)
- Great Siege of Malta (1565)
- Battle of Lepanto (1571)
- Barbary pirates (1607)
- Siege of Candia (1668)
Other service in European navies.
이들 병원기사단의 주요 전쟁들. 아코함락 1291년 이후로. 바로 바다건너 키프러스(사이프러스) 섬으로 옮겨. 여기 킹이 막막 빌어 좀 나가달라고. 술탄애들이 니덜때메 쳐들어오믄 어째 무셔. 제발 나가유....
바로 옆 로도스 섬으로 가는겨. 저 로도스섬을 아예 뺏아 비잔틴으로 부터. 어차피 병원기사단은 로마 카톨릭이야. 비잔틴은 오소독시야. 비잔틴 들은 십자군 부르더만 머 하나 해준것도 없어. 로도스섬을 뺏는겨 이들이. 그리고 나서리 말야. 바로 티나오는게 오스만이야. 1300년.
오스만은 스텝 유목이야. 물길은 몰라. 땅바닥에 발이 붙어야해. 그러다가 바다를 익히는겨. 이전 아랍애들 이란애들인 무슬림들이 바다에서 해적질 하는 걸 봐. 같은 무슬림이야. 그래 니덜이 해적질 하는것도 알라의 뜻이라. 얘들이 오스만의 해군이 되는겨. 해적두목이 오스만 해군 제독에 사령관 딱지 주는그야. 배만들라고 돈도 줘. 그리고 바다를 점령하기 시작하는거야. 위로는 발칸을 넘고. 바다에선 얘들을 써먹으면서 서진에 북진을 하는거야. 얘들의 상대가 이 병원기사단이야.
베네치아 나 제노바.는 저기에 끼려 하질 않아 처음엔. 자기들은 걍 상인들 이걸랑. 오스만 애들과도 협정맺으면서 무역하는 중이야. 오스만을 상대로 싸우기 싫은겨. 먹고 사는거지 머 전쟁은 무슨.
아 헌데 더이상은 서로 인정이 안되는거야. 상황이.
저 처음이 갈리폴리 전투. 여기가 차나칼레. 트로이전쟁 박물관 있고. 바로 아래 히살리크.가 트로이 유적있는. 그 차나칼레 지역이야. 다르다넬레스 해협(헬레스폰트). 여기가 흑해로 가는 베네치아의 해상 거점이야. 오스만이 여길 처들어오는겨. 오스만 서고 백년이 지났어. 이제 얘들이 해전에 눈을 뜬겨.
그러면서. 저 상대는 이제부터. 베네치아와 병원기사단이 바다에서 오스만을 상대하는거야 삼백년을.
저당시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무적함대가 아냐. 스페인은 배만 제공하는 애들이야. 해전 경험이 없어 저때는. 바다를 몰라 얘들은. 신대륙을 발견한 이들도 콜럼버스 존캐벗 베라차노 다 이탈리아야. 쟤들이 물량대고 소프트웨어는. 진짜 해전은 이탈리아가 치루는겨. 그중에서도 베네치아. 여기에 낑긴 애들이 병원기사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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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쪼끄만 인간들이 말야. 저 거대한 제국의 애들을. 이들이 다 막다가. 걍 끝난겨.
몰타 로 옮긴 몰타 기사단을 몰타에서 해체한건. 또한 나폴레옹이야 ㅋㅋㅋ. 아 이놈의 나폴레옹.은 증말 안끼는 데가 없어. 가보니 고리타분한겨. 시대가 근대인데 여긴 여전히 그 중세의 기사단인거야. 몰타를 기점으로 이집트를 처들어 가는데 협상이 안돼. 전쟁선언하니 거기 있던 기사들. 대부분 프랑스 애들이걸랑. 왜 자기가 프랑스랑 싸워. 걍 떠나. 하루만에 함락되고 몰타 기사단은 없어지는겨.
할때의 병원기사단과 저 베네치아.
시작은 갈리폴리 전투. 아래 해협의 발칸땅이야 여긴. 이걸 이겨 베네치아가.
The siege of Thessalonica between 1422 and 1430 saw the Ottoman Empire under Sultan Murad II capture the city of Thessalonica.
다음 텟살로니카 함락. 무라드 2세. 메메드2세의 아빠야. 텟살로니카. 성경에 나와. 저 그리스 북쪽 쑥들어간 만 해변이야. 무라드2세 쎄. 바르나 십자군을 이긴 것도 이 무라드2세야. 베네치아가 져. 그러면서 점점 얘들이 아래로 내려가는겨. 여긴 십자군 4차 왔던 프랑크 애들이 영지로 나눠갖았던 곳이잖오. 해변과 섬은 베네치아가 주인이고. 저 이오니아 해변의 레스보스. 키오스 만 제노바꺼야.
Mehmed II (Ottoman Turkish: محمد ثانى, Meḥmed-i sānī; Modern Turkish: II. Mehmet
Turkish pronunciation:
[ˈikind͡ʒi meh.met]; 30 March 1432 – 3 May 1481), commonly known as Mehmed the Conqueror (Turkish: Fatih Sultan Mehmet), was an Ottoman Sultan who ruled first for a short time from August 1444 to September 1446, and later from February 1451 to May 1481.
메메드2세. 이슬람 만든 인간인 마호메트.는 아랍어. 무함마드.는 영어. 메메드.는 투르크어. 메흐메드 라 쓰는데 걍 메메드 해. 즉 무함마드야.
얘가 12살때 술탄이 돼. 1444년은 바르나 전투야. 그 알베르트. 보헤미아킹 헝가리킹에 신성로마황제관쓰려다가 죽은 바르나십자군때 죽어. 여기의 오스만 술탄이 무라드2세. 쟤 아빠야.
오스만제국은 무라드2세. 저 아들 메메드2세. 가 만든겨. 그리고 저 바로 아들들이 셀림. 술레이만 다 엄청난 애들이야. 이게 오스만 제국 6백년 토대가 돼. 여기 인물들이 쎈겨.
저때 쟤들 상대가. 카를 5세고 프랑수아.야. 이 또 얍삽이 프랑수아.냐 프랑스와 냐 .
얘들도 걍 깡패가 아녀. 무라드 2세도 세자 교육 받는겨. 얘도 세자교육을 시켜. 이도 세상의 책들을 찐하게 봤어. 돌아다니면서 옛날 애들이 하던 짓을 다 해. 카이사르가 하던짓 알렉산드로스가 하던짓. 트로이도 가서리 트로이 인들이여 니덜 복수를 내가 해줬다 함시롱.
음청난 인간들이야.
콘스탄티노플 점령하고. 오른쪽 흑해변 시노페.를 점령하러 직접 가. 절벽을 오르는겨 험한. 애들이랑 같이. 그걸 말려. 당신이 왜 그런 고생 사서하냐고. 애들 걍 시키라고. 해서 속주가 자기 엄마를 보내 왜 이런 고생 하십니까요
Mother, in my hand is the sword of Islam, without this hardship I should not deserve the name of ghazi, and today and tomorrow I should have to cover my face in shame before Allah
오마이. 내손엔 이슬람의 칼이 있소. 이런 고생없이는 나는 가지. 이슬람 전사가 될 자격이 없다우. 그냥 편히 앉아있으믄 나는 알라 앞에서 오늘도 내일도 부끄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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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라나 전투. 불가리아. 에서 이기고 애비 무라드.가 12살 아들에게 술탄자리를 줘. 그리고 자긴 은퇴한겨. 헌데 세르비아쪽 알바니아쪽도 저항이 만만치 않아. 아들이 힘들다고 징징거려. 어린마음인지. 그러다 다시 복귀하는거야 무라드2세가. 얘니세리. 그 어릴때 귀화시키서리 에이아이용병으로 만든 근위대 특전사 애들이 반란을 해. 이걸 진압하면서 이 멍청한 아들새꺄 하면서 5년을 다시 술탄 하고 알바니아에서 전투하다가 죽어. 다시 술탄 된게 19세야.
얘가 인정못받고 쫓겨났을때. 완전히 타락을 해. 남색 밝히고 술에 쩔어 살어. 헌데. 시안한게 말이지. 술탄자리에 다시 오르고서리. 인간이 싸악 변한겨.
얘를 본 베네치아 사신이. 보고서를 써. 메메드 란 19세 술탄과 대화를 해보고는. 이 인간의 인문학 수준에 감탄을 해. 남색에 술에 쩐 인간이란 소문이 거짓이다. 저거 엄청난 인간이다. 아 베네치아여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인간이 저 메메드2세 라니.
즉위에 오르고 나서리. 2년 후에 터진게 콘스탄티노플 함락이야. 1453년.
아 누구가 옆에서 불만 붙여주고 손가락만 입에 좀 대 주고 처먹을거만 넣어주믄 타이핑질만 해대민서리 빨랑 끝낼텐데 말야. 로봇이 빨랑 개발되이대 그래서.
The Fall of Constantinople (Greek: Ἅλωσις τῆς Κωνσταντινουπόλεως, Halōsis tēs Kōnstantinoupoleōs; Turkish: İstanbul'un FethiConquest of Istanbul) was the capture of the capital of the Byzantine Empire by an invading Ottoman army on 29 May 1453.
6 April – 29 May 1453 (53 days)
폴 오브 콘스탄티노플. 콘퀘스트. 정식명칭은 폴. 이야. 주저앉음. 저걸 대개 함락. 이라 하는겨. 포위해서 떨어뜨린거지.
siege. 아코 함락. 할땐 씨즈. 를 써. 씨즈.는 게르만어야. 폴도 게르만어고. 저 씨즈.는 포위한겨. 포위해서 보급끊고 항복하게 만드는겨.
사코 디 로마. 할땐 sack. 영어 쌕. 이야. 이게 가방. 이걸랑. 더 가서리. 가방에 막막 넣는겨. 약탈이야. 해서 약탈하고 막 파괴한 정도가 심했을땐 이 sack 을 쓴겨.
Rumeli Hisari Fortress, Bosphorus, Istanbul, Turkey
루멜리 히사리. 히사리가 요새. 얘가 술탄에 다시 오르자 마자 이걸 세워. 보스포로스 해협 건너편에.
이 맞은편에 저것과 같은 요새.가 이미 있었어. 메메드2세의 할아버지 술탄이 세운게.
Anadoluhisarı as seen from the local quay.
아나돌루 히사리. 아나돌루 요새. 60년 전에 세운겨. 저 바다가 폭이 좁아.
The Byzantine Empire in the first half of the 15th century. Thessaloniki was captured by the Ottomans in 1430. A few islands in the Aegean and the Propontis remained under Byzantine rule until 1453 (not shown on the map).
갈리폴리. 텟살로니카. 다 오스만에 들어왔어. 비잔틴 땅은 콘스탄티노플.과 아래 모레아. 에우보니아 크레테 섬들과 낙소스 공작령도 베네치아 꺼야. 제노바는 저 터키깡 옆 해변에 위부터 레스보스섬. 키오스섬. 아래가 사모스섬. 그 아래 파란색 제일 큰 섬이 로도스섬이야. 저기는 병원기사단 섬들.
이스탄불. 이 콘스탄티노플 성벽안이고. 저 위가 루멜리 요새.야 얘가 즉위하자 세운. 고 맞은편이 할배 술탄이 세운 아나돌루. 아나톨리안 히사리. 저 해협이 보스포로스 해협.
저기서 얘가. 흑해에서 넘어오는 지원군을 끊는겨. 저 양쪽에서 포를 쏘면 대개 다 맞아 지나가는 배가. 저 흑해 주변이 이탈리아 상인들 도시야 또한. 베네치아 제노바가 저길 통과해서리 흑해 아래 시노프. 저 위에 크림반도까지 가는겨.
원래는 저기 이스탄불.은 150년 동안 안건드리고 또한 못건드렸어. 성벽이 삼중벽에 쑤실 틈도 없거니와 저 해변은 상인 루트.로 인정을 하고 또한 오스만과 유럽 애들의 교역질을 인정을 해서리 이스탄불은 그냥 둔겨. 저 해변이랑.
헌데 얘가. 저 지역까지 다 처먹기로 한겨 이걸. 자기 지배 하에 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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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저 해협을 지나가는 배들은 오스만에 와서리 신고를 하고 통과하라고 해. 이걸 무시해. 통과하다가 저기서 폰 대포로 선단이 파손되고. 헤엄쳐 나온 이들은 다 죽여. 선장만 빼고. 이사람을 죽여서 걸어놔. 본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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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 난겨. 이거 드뎌 콘스탄.을 치는구나. 교황도 나서. 헌데 이전 바르나 전투로 헝가리 폴란드는 병력이 없어. 백년전쟁 막바지야. 잉글랜드 프랑스도 못가. 에스파냐도 레콩퀴스타 막바지야 바쁘대.
비잔틴 잔여병력.
The army defending Constantinople was relatively small, totaling about 7,000 men, 2,000 of whom were foreigners.[nb 2] At the onset of the siege, probably fewer than 50,000 people were living within the walls, including the refugees from the surrounding area
전부 7천명. 2천명은 외국인들. 성안에 5만명 주민들.
The Ottomans had a much larger force. Recent studies and Ottoman archival data state that there were about 50,000–80,000 Ottoman soldiers including between 5,000 and 10,000 Janissaries,[22][page needed] *70 cannons an elite infantry corps, and thousands of Christian troops, notably 1,500 Serbian cavalry
오스만.은 징집이야 강제적으로. 정예부대 얘니세리들 1만명 내외. 대포 70개. 오스만 병력 오만에서 팔만. 여기에 세르비아에서 멋모르고 온 기마병들 1500명. 얘들은 오소독시.
저것도 적게 잡은거고 이십만에서 삼십만명이 맞아 저게.
the Florentine merchant Jacopo Tedaldi[26]and the Great Logothete George Sphrantzes:[27][page needed] 200,000; the Cardinal Isidore of Kiev[28] and the Archbishop of Mytilene Leonardo di Chio:[29] 300,000).[30]
당시 피렌체 상인. 추기경 누구. 대주교 누구 에 의하면 20만 에서 30만.의 오스만 병력.
저게 맞아. 오스만 애들이 계속 점령하면서 그 땅의 사람들도 전부 강제 징집을 하걸랑. 오스만이 제국을 만든 힘이야. 이게 이전의 몽골애들이 또한 점령질 한 전략이야. 얘들이 소위 식민지의 사람들을 앞에세우고 인해전술로 뎀비는겨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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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애들은 강제 징집이 없어. 용병이야. 또는 기사들이야. 얘들은 그리스도 세례받고 영주에게 하미지를 하는 애들이야. 바르나 전투.도 그 기사들이 가서 싸운겨. 이것도 진건 인해전술로 진거야.
공포야 공포. 상대가 안되는거지.
The Dardanelles Gun, cast in 1464 and based on the Orban bombardthat was used by the Ottoman besiegers of Constantinople in 1453 (British Royal Armouries collection).
다르다넬레스 포. 슈퍼 건이야.
The Dardanelles Gun[3] or Great Turkish Bombard[2] (Turkish: Şahi topu or simply Şahi) is a 15th-century siege cannon, specifically a super-sized bombard, which saw action in the 1807 Dardanelles Operation.[4] It was designed and built in 1464 by Turkish military engineer Munir Ali.
저게 무니르 알리. 라는 투르크 엔지니어가 1464년에 만들었따.는 거걸랑. 저건 십년전의 포를 모방해서 만든겨.
Orban, also known as Urban (died 1453), was an iron founder and engineer from Brassó, Transylvania, in the Kingdom of Hungary(today Brașov, Romania), who cast superguns for the Ottoman siege of Constantinople in 1453.
진짜 설계자.는 오르반. 이라는 트랜실베니아. 당시 헝가리 킹덤 사람이야. 누군 게르만 이다 해. 이 사람이 메메드2세에게 간겨. 내가 만들어 줄팅께 돈대라고.
저게 이전의 그 헨트 반란때 나온 뒬레 흐릿. 매드 메그 란 멍청한 미친년 그레첸. 메그. 보고 만든겨. 몽스 메그 는 몽스 란 벨기에땅의 메그. 여자란 포야. 이게 독일 저지대에서 티나온겨 저런 대포가. 저걸 헝가리애가 보고 가서 메메드 2세에게 줘.
저걸로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걍 집중 쏘는겨. 오십여일을
Scheme of the Theodosian Walls
저게 밖에서 안까지 삼중벽이야. 맨 밖엔 호를 해자를 파고.
Restored section of the Theodosian Walls at the Selymbria Gate. The Outer Wall and the wall of the moat are visible, with a tower of the Inner Wall in the background.
저걸 복구해봤다는 건데. 하튼 저래.
대개 성벽 길이가 십여키로야. 한양성 사대문 걸치는 길이가 몇키로냐.
저걸 뚫기가 어려워. 헌데 저 원래 모델이 말야.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성을 불태울때 저 카르타고 가 저런 디자인...일꺼야 아마.
이전에 저길 십자군 4차 가 갈때 점령했걸랑. 그건 내부의 스파이 도움도 있고. 저 정문 성벽을 공략한게 아냐 그땐
저기가 콘스탄티노플. 성벽안 이야. 저 왼쪽에 흙선 보이는 삼각형 모양. 도로변 까지가 성벽이야. 삼각형 모양이야 성벽이. 헌데 십자군 4차 엔리코 할배가 올땐 저 안쪽 바다. 저길 골든 혼. 황금 뿔. 이라해. 저기로 들어가서 성벽을 넘어. 저기는 으외로 성벽이 단순했걸랑 바다라.
해서 저 길목 도 베네치아 사람들이 철선으로 다 막는겨 배를 못 들어가게. 지금은 저게 다리로 연결되었지만. 해서 메메드 애들이 저길 배로 못 들어가니까. 배를 저 건너 육지에서 아래 통나무를 깔고 말야 배를 바다에서 육지로 다시 바다로 떨어뜨리는겨. 음청나 .
Meanwhile, despite some probing attacks, the Ottoman fleet under Suleiman Baltoghlu could not enter the Golden Horn due to the chain the Byzantines had previously stretched across the entrance
Mehmed ordered the construction of a road of greased logs across Galata on the north side of the Golden Horn, and dragged his ships over the hill, directly into the Golden Horn on 22 April, bypassing the chain bar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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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yzantines intercepted the first Serbian tunnel on the night of 16 May. Subsequent tunnels were interrupted on 21, 23, and 25 May, and destroyed with Greek fire and vigorous combat
아래에 터널을 뚫고 들어와. 그리스 불. 이건 화염방사기야. 비잔틴 애들이 개발한겨. 저게 이미 앗시리아 등 고대에 중동에서 쓴겨 저 무기를. 저 중동에 원유가 많잖아. 불붙는걸 미리 본겨. 저걸 무기로 쓰고 십자군때도 저게 무기 중 하나야.
Mehmed II had promised to his soldiers three days to plunder the city, to which they were entitled.[18]:145[43] Soldiers fought over the possession of some of the spoils of war
결국 함락이 돼. 다들 장렬히 죽어. 황제도 죽어. 저 골든 혼. 맞은편이 제노바 자치땅이야. 얘들은 오스만애들이랑 협정을 맺어서리 안도아줘. 저 맞은편 지옥을 보면서 안절부절 한겨. 베네치아 애들이 치를 떠는거지. 결국 제노바.도 처먹힌겨. 약속을 믿다니. 저때 남은 이들이 탈출해서리 이탈리아로 간거고.
메메드가 삼일동안의 약탈을 인정해. 얘들은 약탈이야. 그래야 징집의 명분이 서걸랑. 이게 결국 유럽애들에게 진 이유야. 이게 유럽애들과 동양빠닥애들의 차이야.
유럽은 징집을. 시티즌. 이라는 명분을 세우고 한겨. 그게 근대야. 징집에는 명분이 서야해. 그 정당성을 군인에게 부여해 줘야해 그 사명감을. 동양빠닥의 왕조가 매번 갈린 이유야 그게. 조선왕조가 전쟁만. 없는 전쟁도 줘 터지는 이유고. 군역이 의미없는겨 명분없는 징집이란.
해서리 지금 애들이. 군대 안 갈라고. 뛰는겨. ㅋㅋㅋ. 저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야. . 군대를 왜 가. 군대를 왜. 나라가 머야. 이념이 최고야? ㅋㅋㅋ.
아무리 무기가 좋고 양키들 무기여도. 남과 북 전쟁 나면. 백퍼 백퍼 져.
쟤들은 세뇌가 된 애들이야. 게 쎄 그 세뇌의 오십년이. 이땅바닥은. 이건 웃긴겨. 지들 역사를 부정해. 잃어버린 육칠십년이래 ㅋㅋㅋ. 적폐의 역사는 지들 역사가 아냐 ㅋㅋㅋ. 이게 무슨 나라야 이게. 지들 이념만의 나라. 저들은 이명박근혜 보면 눈에 불꽃 인상 쓰고. 김정은 만 보면 방긋 방긋 우리민족. 야 정말 어찌 저럴수가 있지?
김정일 보면서 기생인듯 불러서리 장구치며 놀고.
박정희 이명박 어쩌고 는 온갖 욕질 적폐질 사탄질.
저게 골때리는겨 지금 이나라가.
저 김정일만 해도. 그 심화조니 머니 얼마나 잔인하게 숙청질 했냐. 저 김정은이가 그 심화조의 대리인 지 고모부 포함 또 숙청질 얼매나 잔인하게 하냐. 헌데 저런 애들에겐 말야. 예의가 넘쳐유 우리민족이유 화해 유 통일 이유 헤헤헤
박근혜 이명박 박정희 리 다 적폐. 정말 분노가 치밀어유 저따위는유. 우리는 잃어버린 육칠십년이유. 적폐들 때메.
저거 골때리는겨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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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래 저럴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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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렇킨 위선에 무식에 들이니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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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저렇게 약탈 하게 두는겨. 그러면서 징집 계속 하면서 전쟁하는겨. 저게 오스만이야 저게 투르크고 저게 동양빠닥 들의 구조야 저게.
저 유럽들은 그짓을 안했어. 로마가 그리 안해. 고대 그리스도 그리 안해. 시민권있는 애들만 군인을 할 수가 있어. 노블리스 오블리제 란 말은 로마때 나온겨. 신성한겨 시민권은. 군인이란건. 그 명분이 사라진게 로마가 없어진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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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명분 사명감 갖은 기사들 중심으로 전쟁을 해. 그리고 돈. 그 기사단 아래에 오직 돈. 용병을 쓰는 거야. 핵심은 돈이야. 그걸 쟤들이 꿰뚫어. 저기에 먼 약탈이야.
헌데 저 관념이 또 무너져. 저게 그 80년 전쟁에 이은 30년 전쟁이야. 이때 용병들의 약탈이 극에달해. 그러면서 저런 용병조차 없애는겨 저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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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튼 넘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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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걍 제목만 할랐더만 저 얘긴 왜해서리.
쉼.
저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엄청난 충격이야. 저 기세로 메메드2세는 자기 아부지 죽은 알바니아의 성까지 함락을 해. 그리고 아래 모레아.까지 가고. 얘가 결국 다 정리를 하는겨. 터키땅까지 얘가 통일을 하는겨.
그리고 저 삼백년간. 저 지중해 섬들 전쟁을 또한 하는겨. 베네치아랑. 18만 총인구 밖에 없는 베네치아가 쟤들을 3백년을 상대해. 안에서는 이탈리아전쟁 하면서. 여기도 주인공은 베네치아야. 안에서 싸우고 밖에서 싸우고. 아 음청나 이 베네치아. 헌데 저렇게 천년을 공화국으로 버틴 나라야.
쟤들은 저리 전쟁하면서 말야. 자기 국민들이 죽잖아? 다 연금을 줘. 연금을 일률적으로 안줘. 재산 가진 귀족에겐 연금 안줘. 가장 잃은 가족에게만 연금을 줘 그 재산상황을 보고.
지금 유럽의 역사를 제일 제대로 보게 해 주는 정보의 바다는 저 베네치아 도서관이야. 얘들이 저기서 살아남기위해서 온갖 정보망을 꾸린겨. 얘들이 시아이에이 원조야.
그 정점이 1571년 레판토 해전이야. 이 해전도 엄청난겨. 여기의 중심. 핵심도 베네치아야. 스페인은 걍 배만 댄겨. 헌데 베니치아 애들 말을 안들어. 오스만 애들을 이겼지만 유럽의 피해도 심각했어. 저때 베네치아는 걍 기운겨. 그래도 이후 2백년을 지중해에서 버텨.
저 삼백년동안 해서리 저 섬들을 다 뺏긴겨 결국. 헌데 다시보면 3백년동안 버틴겨 저 지중해 섬들에서. 저기서 몰려쫓겨서리 몰타에 자리잡은게 병원기사단이고.
저 지중해 무슬림 천년 해적을 상대하는 것도 저 베네치아고. 저때의 병원기사단이야. 엄청나 이 중세 무슬림 해적은. 이 을 지금도 하는겨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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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982 Goffredo Parise, a writer and journalist, wrote: "Veneto is my fatherland. [...] Even if a Republic of Italy exists, this abstract idea is not my Fatherland [...]. We Venetians have travelled throughout the world, but our Fatherland, that for which we would fight if it were necessary to fight, is Veneto. [...] When I see "River sacred to the Fatherland" written on the bridges spanning the Piave, I am moved, not because I think of Italy, but rather because I think of Veneto
조프레도 페리제.
베네치아는 나의 조상들땅. 이탈리아 공화국이 지금 있지만, 이 이탈리아란 추상 상징은 나의 조국이 아니다. 우리 베네치아인들은 세상을 다 돌아다녔다. 헌데 우리 조국은. 싸워야 했기 때문에 헤쳐왔던. 베네치아야. "조국에겐 신성한 강" 이라고 피아베강의 다리들에 쓰여진 글을 봤을때 말야. 나는 뭉클했어. 이탈리아를 생각해서가 아냐. 베네치아가 떠올라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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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인은 저런 자부심을 갖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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