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가 가나안.땅이야. 가나안이 기원전 2천년 전에 있었어. 레반트. 같은 말이야. 기원전 1천년 전에 나오는 단어야. 페니키아.는 저 위에 있어 지금 레바논. 저 티레. tyre 부터 위에는 페니키아야. 

 

본격적인 도시들은 저때 보여 기원전 1천년 전후. 구약에 근거 하고. 네 개의 고대 스틸리.라는 판떼기들에 유다 등의 말들이 나와

 

The United Monarchy (Hebrew: המלוכה המאוחדת‬) is the name given to the Israelite[note 1] kingdom of Israel and Judah,[2][3][4] during the reigns of Saul, David and Solomon, as depicted in the Hebrew Bible. 

 

사울에서 다윗 솔로몬 까지야. 이전 썰. 저 위의 아르미안. 아래 아몬. 아래 모아브. 아래 에돔. 다 셈족이야. 저 파란땅들은 이스라엘라이트.라는 이스라엘 씨족들이야. 이스마엘. 없어. 구약에 근거를 하지만 어쨌거나 아랍의 조상들인 이스마엘.은 저기에 지분이 없어. 이스마엘들은 pure arab 이라는 순수 아랍인의 고대 조상들은 지금 예멘이야. 그리고 그 위의 아라비아 반도 중부로 옮기고 홍해 접한 메카 메디나 가 주거주지야. 그리고 저 레반트의 남부야. 저 지도에 안보여. 

 

저기서의 필리스티아 philistia . 를 팔레스타인.으로 겐또쳐서 작명한겨. 팔레스타인 이란 이름은 기원전 1천년에 이집트 신성문자에서 처음 보이는 단어일뿐 어딘지 몰라. 걍 저기로 겐또친겨.

 

저 레반트.는 위의 레바논 포함해서리. 고대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세력 사이에서 낑긴 애들이야. 힘이 없어. 저 사울.이전에 모세가 델꼬 오기 이전에. 모세.는 이집트에서 파라오 자식이니 썰이 많고. 넘어가고 이건 딴 주제니. 말 길어지고. 구약은 모세 이전에 이미 저땅에 있었었다 하는겨 그게 히브리인.이라는거고 아브라함은 그래서 히브리인 인거고. 

 

저기서 아몬.이 지금 암만. 요르단이고. 

 

고대 이집트는 히타이트가 유프라테스 상류 위에 들어설때 저 지역을 완충지대로 싸우는거고. 히타이트 전에는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랑 저기를 중간에 두고 싸우는거고. 해서리 저 레반트는 위와 아래의 거대 제국 사이에서 걍 낑겨 살은겨. 알렉산드로스 형 오기 전에도 그랬고 다음에 디아도코이 후계자들 간 싸움에서도 저기가 전쟁터여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오른쪽의 셀레우코스 위의 안티고노스와 뤼시마코스와 캇산드라 애들 간의. 

 

나중에 로마가 와서 정리를 하고. 오른쪽에 파르티아 사산 왕조 의 페르시아가 또 쳐들어오고.

 

그걸 나중에 무함마드가 잠시 정리를 하는겨 다시. 

 

저기서 그나마 세력을 이룬건. 이스라엘라이트.의 후예들 유대인들이라는 쥬스야 jews.

 

아랍족은 저 땅에 지분 없어. 무함마드 전에는.
지금 이집션.이라는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이집트의 아랍인. 

Egyptian Arabic, 이걸랑. 얘들은 고대 이집트인과 상관이노 없어. 얘들은 무함마드 이후에 넘어와서리 저땅을 슬람화 한거일 뿐이야. 

 

저 지도 기원전 1천년에서 백년간. 의 땅에서 요단강 오른쪽의 땅 뺀 지역이 지금 이스라엘이야. 저기에 아래 시나이반도로 좀 더해졌을 뿐이야. 

 

원래 유대인애들은 저 땅 위쪽에서 좀 모여서 살라고 한겨. 

 

그것도 싫다민서리 아랍 무슬림 들이. 고기 모이는 유대들 노무노무노무 시로. 해서리 뎀비다가 지금 이지경이 된 거일뿐이걸랑. 

 

 

저 들은 무함마드 이후. 야 무함마드 다음에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은 재밌기나 하지. 우스만은 다들 포용해서 살았어. 그이후 이 들이 말야 지들 경제 이익 해친다고 암살하고 서리 1500년을 지중해 약탈 해적질만 하고. 오스만 이후도 전쟁만 하고. 지들만의 하렘과 유너크 두면서 기집질 하다가

 

걍 야만인들로 천년 이상 살다가. 

 

 

유럽들이 착한척 민족 자결주의 해댐시. 땅 니네 주께. 하니. 그땅 보다 원래 저땅도 무함마드 의 알라의 땅이여 저거까지 다 내땅이여

 

 

유치하고 편협하고 남탓 만 해대는 들이여 저게.

 

 

자기들이 제일 잘났어
자기들이 제일 위대해
자기들 신앙이 제일 최고야
자기들 이념이 제일 최고야


양키 개개끼. 일본 개개끼. 때문이야.


저게 말야. 똑같애 똑같애 저 들의 자폐질이. 저게 무슬림  들 인도  들 중국이 개무식한 들. 그리고 세상바닥에서 제일 개무식하고 제일 자폐인 이 조선왕조 건국이래 육백년 넘어 칠백년 접어들면서리 이념놀이에 반미 반일 대는 정의의 사도 들

똑같애 똑같애 .

저들이 우리의 동포유. 받아줘유. 인꿘이유 인꿘. 다문화유. 
지들이 앞선 척 선진적인 척 하는 거걸랑 저게. 더하여 저 집단무의식의 공통분모여 저게. 똑같은 자폐들의 동정질이걸랑 저게.
저거에 반대하니. 아 촛불이 감정질에만 더하여 파쇼 파시즘이 되는구나. 상대를 적이요 아 파시스트 양산한 촛불. 

ㅋㅋㅋㅋ. 야 . 니가 니가 저따위 파시스트.의 선두에 섰던 놈이여. 저 난민 안받겠다고 하니까 파시스트래. 깨인야. ㅋㅋㅋ. 지가 상대를 적폐유 부패유 하는건 정의고 파시즘이 아닌거야. 
저게 똑같은 조선 내셔널 소셜리스트.들이야. 저걸 조치즘.이라고 짐이 작명해주는겨.

조치즘이 분열이 된겨. ㅋㅋㅋ. 난민 찬성 조치즘 난민 반대 조치즘. 
난민 반대 조치즘.은 유교 조선의 자식들이걸랑 구한말의 이음인. 걍 다 싫어. 다 개개끼야. 조선왕조를 이은 우리노 위대한 민족이무니다. 난민 싫스므니다.
난민 찬성 조치즘. 우리 조선이 위대한 민족이라니까능. 사람이 먼저랑께. 저들도 사람이랑께. 우리네는 게르만 보다 위대한 인간들인데 게르만들이 저 난민 포용하는거 보소. 우리도 저따위 위대한 역사의 사람들이랑께. 난민 받아줍세. 민주의 세상의 민들이 인터네셔널로 연대해야 된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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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애들끼리 노는겨.

저때 저 필리스타아.의 팔레스타인.이라는 좁은 땅에. 기원전 1천년 전후에. 도시들이 큰게 다섯개가 보이는겨. 

Deuteronomist sources describe the "Five Lords of the Philistines"[5] as based in five city-states of the southwestern LevantGazaAshkelonAshdodEkron, and Gath,


가자. 아슈켈론. 아슈드. 는 지금도 같은 지명을 써. 에크론. 가쓰.는 대략 저 내륙으로 겐또치는겨. 
저들은 이스라엘씨족들과 대립한걸로 봐. 쟤들이 그렇다고 아랍인. 이라고 하지는 않아. 몰라. 걍 떠돌이 노마드 들이 정착하거나. 셈족의 다른 애들인겨. 저 지역이 가자.의 그 가자지구 크기야. 가자 포함해서리 저 다섯개는 좀 위에 있지만. 지금 가자지구는 가자.가 맨 위고 아래땅에 있는거고.

저게 다야. 
팔레스타인. 하면 말야. 지금 팔레스타인. 이라는 땅에. 팔레스타인. 이라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는 줄 착각하는데. 전혀 상관이노 없는 땅과 이름이야. 팔레스타인족이란 건 없어.

팔레스타인.은 원래 저기 저 후미진. 지금 가자 지구 크기일 뿐이고. 저기 땅에 지금의 팔레스타인들이 살았던게 아녀 . 

나중 로마가 그은 팔레스타인.이 저 유다왕국과 이스라엘을 합한 지금 이스라엘땅 이야. 저기엔 유대인들이 훨 많이 있었어. 아랍들은 로마때도 지분이 전혀 없어. 
로마때 팔레스타인.의 팔레스타인들은 유대인들이야. 저걸 한글로 쓰니까 헷갈린거야.

아랍인들은 노마드 야. 떠돌이들. 베두인 들 약탈만 하는 거고. 이 베두인은 고대 이집트부터 찍히는 애들이야. 이 베두인이 이집트 동쪽 이집트 서쪽에서 떠돌면서 약탈만 해. 이 짓을 근대까지 해 이 베두인들은. 베두인들의 자유. 헛소리하는거지.

저 해적짓을 또한 무함마드 이후. 샤를마뉴 뒈지고 서기 8백년 이후 부터 천년을 해 천년을. 노예장사.를 유럽들만 한줄 아니? 무슬림들이 더 악랄하게 더 지독하게 한게 저따위 노예장사야.


이들은 아무것도 안했어. 지들의 하렘에서 놀고 처먹기만 한겨
그 술탄들의 하렘이. 각 집에서 똑같이 이어지는 구조인거야. 똑같이 일부다처제 하면서리. 들만 까는거야.

저 이 동쪽에서도 똑같은 거야.
인도들도 하렘 두고. 무슬림 지배 또 받고. 가정에서도 똑같이 첩질 두면서리 들만 까대는거야.

이슬람 황금시대. 인도 황금시대. 는 지들만의 하렘에서의 놀이 였을 뿐이고.

저따위 똑같은 프레임이 중국이 왕조고 조선왕조다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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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들은 안그랬어 . 그리스도 가 어설프게나마 있잖냐. 초야권 그따위 개소리 다 개거짓말이여. 초야권 없었어. 없는 열폭질 들이 어느 한두사례 끄집어내서리 양키 켈틱 게르만 개개끼 하는겨 일반화시킴서리.

 

 

한심한겨. 

 

 

솔로몬 다음에 12지파가 분리되서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두개지파.로 예루살렘 중심 유대 왕국. 반란일으킨 여로보암이 열개지파로 사마리아에 이스라엘왕국.

 

기원전 9백년 전후에서. 북이스라엘왕국은 앗시리아에 망하고. 전720년. 남유다왕국은 바빌로니아에게 망하고. 전586년. 저때 디아스포라 되면서리 흩어지고 바빌로니아 노예되다가. 

 

키루스.의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먹은게 전 539년. 유다왕국은 50년 만에 되돌아온겨. 키루스.가 솔로몬 사원 세워주게 하는거고. 

 

저 지도상에서. 아랍 부족은. 저 땅에 지분없어. 가자 넘어서리 시나이반도의 부락들이야. 나바투 트라이브. 부락도 아랍의 조상이야. 동쪽 멀리 있어. 에돔 모아브 아몬 아람다마스쿠스 라는 킹덤들이 오른쪽에 있어. 얘들은 아랍족 아냐. 걍 또다른 셈족이야. 그외 다른 아람인들이 부락이뤄 오른쪽 멀리서 산거고. 

 

 

저때도 저 지금 팔레스타인 땅의 주류는 유대인들이야.

 

저 다섯도시의 해변 필리스타인 도시국가들도. 저기 인간들은 아랍인들이 아냐. 걍 모르는 셈족이야. 

 

 

아랍과는 말야. 전혀 상관이노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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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요즘 캬자님이 슬프고 공허해.

 

저 이스라엘 유대인들과 아랍들의 전후 과정해서리 전쟁질 하는거 보믄. 웃겨 유치하고. 유대인들이 이기서리 욕 처먹는 거일 뿐인거고. 

 

무슬림들은 정말 한심한 들이여 이게. 아 조선민국이랑 똑같...지는 않고. 무슬림들이 조선민국애들보다는 그래도 낫지 . 
이 조선민국이 얼마나 개유치 한 애들 천지인데..
저 이스라엘 의 땅 나뉘는 1차대전이후의 과정과. 더하여 저 지도 다음의 저 팔레스타인땅의 이야기. 
이따가 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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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왕국 땅과 남유다왕국 땅을 보면. 예루살렘 바로 아레 베들레헴. 이 지역을 유대. 그 위를 사마리아. samaria 그 위가 갈릴리. 야. 갈릴리 위에가 지금 레바논이고. 갈릴리 끝에 접하는 갈릴리 호수의 동북에 걸친 곳이 골란 고원이야.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망해 전720년. 여기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시리아인들이 쫓아내. 

According to 2 Kings[40] and Josephus,[41] the people of Israel were removed by the king of the Assyrians (Sargon II)[42] to Halah, to Gozan on the Khabur River and to the towns of the Medes. 

 

할라. 고잔. 카부르강의 상류에 있어. 이 강은 유프라테스 오른쪽 강이야. 흘러서 접해. 즉 시리아 북동쪽이야.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두강 사이의 사람들을 이주시켜 저 사마리아 땅으로. 남은 유대인들과 서로 피를 섞여 결혼시키민서리.

 

유대인들은 저때 사마리아 에 들어온 이들이 사마리안. 하는 거고. 사마리안.samartian 들은 아니다 우리는 12지파의 가지다 하고.

 

 

150여년 지나서리 아래 남유다왕국이 망해. 바빌로니아.에게. 

Yehud had been a province of the Neo-Babylonian Empire since the suppression of the Judean rebellion in 585/6 BCE

The province was absorbed into the Achaemenid Empirewith the collapse of the Neo-Babylonian Empire in 539 BCE.

 

반란 가끔 해주고. 50여년 바빌로니아 아래 있는겨. 페르시아 애들에게 들어가. 예후드. 지금 도시 이름이 예후드 가 있어 이스라엘에. 유대 예후드. 바빌로니아 당시 저 지역 이름이야. 유다왕국 땅이었던.

 

 

페르시아 때는 예후드 메디나타. 라고 불렀어.

 

 

Yehud Medinata (Aramaic for "the province of Judah"), or simply Yehud, was an autonomous province of the Persian Achaemenid Empire, roughly equivalent to the older kingdom of Judah but covering a smaller area, within the satrapy of Eber-Nari.

 

예후드.가 아람어라는 거지. 바빌로니아랑 페르시아 지배때는 예후드. 였어 저 남유대땅이.
에베르나리.의 사트라피. 

 

에베르 나리. eber-nari. 지금 시리아땅. 아케메네스의 페르시아.가 . 아래 바빌로니아 먹고. 유대인 노예 풀어주고. 다음 위의 메데 왕국을 먹어. 시리아 땅을 다 먹고. 이 시리아 땅에 총독을 세우는겨. 여기 지명을 에베르 나리. 라고 해.  알레포 다마스쿠스 포함한. 아람 aram. 아람. 과 같이 쓰는 지역명이야. 가나안. 은 높은 지역이고 아람. 은 낮은 지역.이야.

 

아람족 할때 아람.이야. 아람.은 노아의 아들 솀.의 아들. 이야. 즉 아람족은 셈족 다음에 나온 말이야.

 

 

satrap. 페르시아제국 때부터 쓰인 말이야. 점령한 땅의 거버너.를 세우는겨. 동양바닥 말로 총독. 이겄지. 페르시아어야 시작이. 이걸 그리스 어로 사트랍. 하는겨. 그리스어에서 가져다 써. 

 

에베르 나리.의 사트라프.가 아래 예후드.인 유대땅 까지 지배하게 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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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오기까지. 전539 에서 전332까지. 2백년동안 페르시아.에 속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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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북이스라엘왕국. 사마리아 땅의 유대인은 이미 150년전에 앗시리아에 망해서리 시리아 북동쪽으로 강제이주당하고.

 

아래 남유다왕국은. 다음에 바빌로니아 에 점령당해서리 바빌론으로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해. 솔로몬템플을 파괴해. 

세번을 이주당해 바빌론.으로 반란을 막막 일으키걸랑 유대땅 예후드.에서. 

 

페르시아.의 키루스.가 바빌론의 노예 유대인들을 풀어줘. 전539년. 솔로몬 2차 템플도 세워주게 해. 떠났던 유대인들이 돌아와. 펀드 모금해서리 2차 템플을 세워. 전 520년- 전515년. 

 

알렉산드로스.가 헬레스폰트 건너서리 이수스전투 이기고서리 내려와서리 지중해 동부 도시들을 막막 먹어. 

 

The Siege of Tyre was orchestrated by Alexander the Greatin 332 BC during his campaigns against the Persians

 

레바논 남부 티레. 함락이 전 332년이야. 이게 제일 피곤한 거였어. 이때부터 이집트 가는길은 쉬웠걸랑. 

 

알렉산드로스.가 점점 이수스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의 대군을 물리치고. 팔랑크스 phanax 전법과 기마병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면서. 그리고 내려가는겨. 티레(튀레)성 함락하고 가자 함락하고 이집트 가고 다시 돌아서 메소포타미아 가면서 동진하는겨.

 

페르시아의 서쪽이 다 먹혔어. 즉 기존 에베르 나리. 가 알렉산드로스 수중인겨. 죽고 후계자들의 수중 가운데 있는겨. 셀레우코스 와 프톨레마이오스 그 접경지가 돼 여기가.

 

이때 즈음 나오는 이름이. 잊혀진 앗시리아.에서의 시리아. 야

 

 

 

 

저리 누가 겐또를 쳐서 막 그린건데. 저게 딱 맞지는 않아

During this period, the term "Coele Syria and Phoenicia" or "Coele Syria" was also used in a narrower sense to refer to the former Ptolemaic territory which the Seleucids now controlled, being the area south of the river Eleutherus. This usage was adopted by Strabo and the Books of the Maccabees.[9][10] 


코일레. 라는 말은 모두. 또는 낮은. 넘어가고. 하튼 유프라테스 중류에서 페니키아에 걸친 지역. 그 위가 시리아.고. 코일레 시리아 와 페니키아. 란 말이 저때 보인다 이거지. 스트라본.은 이걸 서술하는거고. 

However, Greek writers such as Agatharchides[11] and Polemon of Athens[12] used the term Palestine to refer to the region during this period, which was a term originally given circa 450 BCE by Herodotus. Later during the Roman Period c.350 CE, Eunapius wrote that the capital of Coele-Syria was the Seleucid city of Antioch, north of the Eleutherus.[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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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몇몇 고대 학자들은. 저 코일레 시리아.가 팔레스타인. 이다 하는거고. 서기 350년에는 코일레 시리아.의 수도는 안티오키아. 라 했다. 안티오키아.는 저기 시리아 위쪽이걸랑. 

 

잘 모른다 이거지. 걍 저 그림은 걍 겐또 치고 막 그린거란 거야.

 

어쨌거나 코일레 시리아. 시기가 있었고. 팔레스타인과 코일레시리아.라는 지명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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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드 하다가 코일레시리아 또는 팔레스타인. 하다가.

 

알렉산드로스 죽고. 디아도코이. 후계자들 싸우면서. 이집트 거점의 프톨레마이오스. 바빌론 크테시폰의 근처 셀레우키아. 즉 저 메소포타미아 중하류 거점인 셀레우코스. 저 위의 소아시아 안티고노스. 의 중간이 저기 유대인들의 땅 지중해 동쪽이걸랑.
안티고노스.는 디아도코이 1세대 전투 네번 전쟁의 마지막 입소스 전투에서 죽어. 남은 두 세력이 셀레우코스 와 프톨레마이오스.야

The Syrian Wars were a series of six wars between the Seleucid Empireand the Ptolemaic Kingdom of Egypt, successor states to Alexander the Great's empire, during the 3rd and 2nd centuries BC over the region then called Coele-Syria, one of the few avenues into Egypt.

 

얘들이 저 중간지대에서 싸우는게 시리아 전쟁. 하는겨. 둘이 싸우민서리 마케도니아 출신들이라 마케도니아도 신경쓰고. 하다가 로마에 먹히는겨.

 

저 틈새에서 유대인들. 

 

헬레니즘 되는 시기걸랑. 그리스인들 과 유대인들의 다툼은 이때부터야. 나중 유대 로마전쟁의 시작은 그리스 상인들과 유대상인들 쌈질이걸랑. 

 

 

헬레니즘 받아들이는 유대인 거부하는 유대인.

셀레우코스 편. 프톨레마이오스 편. 독립편. 

 

피곤해지는거지.

 

The Maccabean Revolt (Hebrew: מרד החשמונאים‎) was a Jewish rebellion, lasting from 167 to 160 BC, led by the Maccabees against the Seleucid Empire and the Hellenistic influence on Jewish life.

 

마카비 반란. 셀레우코스가 동화되지 않는 유대인에 열받아서리. 예루살렘 신전에 제우스상을 올려놔. 저 템플 신전에는 아무것도 올리면 안되걸랑. 

 

저게 똑같이 말야. 나중 로마때 생기는겨. 이집트에 있는 유대인들 시나고그 회당에 그리스인들이 막막 다른 상들을 올려놓걸랑. 유대인들의 뻣댐에 열받은 칼리굴라.가 시리아 총독에게 시켜. 템플 신전에 자기 조각상 올려놓으라고. 아 저때 올려놓았으믄 재미졌을 텐데. 총독이 일년을 끙끙 앓아. 

 

유대종교 의식 금지하고 그리스 신들을 모셔라. 하는 칙령에. 마카비.들이 반란을 일으킨겨

The Maccabees (/ˈmækəˌbz/), also spelled Machabees (Hebrew: מכבים‬ or מקבים‬, Maqabim; Latin: Machabaei or Maccabaei; Greek: Μακκαβαῖοι, Makkabaioi), were a group of Jewish rebel warriors who took control of Judea, which at the time was part of the Seleucid Empire.[1][2] They founded the Hasmonean dynasty

 

매커비즈. 히브리어 마가빔. 라틴 마카바이이. 그리스어 막카바이오이. 당췌 왜 저걸 마카베오. 라고 번역했는지 알길이 없는데.

 

저들이 저당시 유대땅의 반란군 전사들. 이들이 세운 왕조가 하스몬 왕조야.



The Hasmonean dynasty[4] (/ˌhæzməˈnən/ 

(audio)

; Hebrew: חַשְׁמוֹנַּאִים‬, Ḥašmōna'īm) was a ruling dynasty of Judea and surrounding regions during classical antiquity. 

 

저 틈에서. 반기를 들고 왕조를 세우는겨.

 

하스몬 왕조. 

Seleucid Empire vassal (140–110 BCE)

Independent kingdom (110–63 BCE)
Client state of the 

Roman Republic

 (63–40 BCE)
Client state of the 

Parthian Empire

 (40-37 BCE)

[1][2]
초창기엔 셀레우코스 영지.로 있다가 나중 독립하는거지. 그러다 폼페이우스.에게 먹히는겨. 폼페이우스.가 또 저 신전엘 막막 들어가. 유대인들 열받아 또. 구경하곤. 머 아무것도 없구만. 하고 나와. 웃겨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리. 나중 독립되어서리 폼페이우스에게 먹힐때 까지 저 이전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왕국땅을 다 회복한겨. 사해 동부땅도 먹어.



아 드뎌 폼페이우스 왔네.

폼페이우스.가 저기 시리아 가기 까지.의 이야기는 복기해라덜. 
참. 복기할때. 고때 빠진 키워드 하나 더 넣으면. 
갈리아애들이 로마를 전390년에 약탈하고. 로마 정신차리고. 성벽 처음 세우고. 로마 근처 라틴동맹 다시 맺고. 이때부터 동맹 시스템을 바꿔. 갈리아 애들이 쳐들어왔을때는 동맹들이 지들끼리 연락주고 받으민서 안움직여. 서로간 연락망을 끊고 로마 중심으로 네트웍을 다시 짜. 하튼 로마인들 대단한데.
그리고 아래 삼니움족과 전쟁하며 합치고. 그리스 남단 발 뒷굽에 까지 가다가 그리스인들과 전쟁하고 피로스가 그리스 본토에서 넘어오걸랑 디아도코이 후계자 전쟁에서 뤼시마코스(뤼시마쿠스)랑 붙어서리 인티고노스의 자식들을 마케도니아에서 내쫓고.
그리스.는 여전히 디아도코이 전쟁이야.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 마케도니아 와 스파르타 외에는 군사력이 다 소진했어 저 당시엔. 
피로스.가 5년 시칠리아 이탈리아 있다가 그리스 넘어가서리 에피로스 왕에 마케도니아 왕까지 다시 올라서리. 바로 죽고.
시칠리아에 카르타고 다시 와서리 그리스땅 동쪽 도시들 먹는거에 그리스인들이 로마를 불러들여서리 카르타고가 내쫓겨. 1차 포에니 전쟁.
아들 한니발이 2차 포에니전쟁. 넘어와. 

The Battle of the Trebia (or Trebbia) was the first major battle of the Second Punic War, fought between the Carthaginian forces of Hannibal and the Roman Republic in December of 218 BC

 

In 203 BC, after nearly fifteen years of fighting in Italy, and with the military fortunes of Carthage rapidly declining, Hannibal was recalled to Carthage to direct the defense of his native country against a Roman invasion under Scipio Africanus.

 

한니발이 카르타헤나.라는 스페인땅에서 기원전218년 봄에 출발해서 당해 알프스를 넘어서리 이탈리아 북부에서 처음 전투하는게 트레비아 전투야. 
한니발이 카르타고 구원가야되서리 이탈리아 남부에서 배타고 떠나는게 기원전 203년. 
15년간 저 이탈리아.는 한니발 땅이었어. 걍 이탈리아 반도 전체가 한니발 군바리들 군화발에 있던겨. 
헌데. 로마의 동화정책으로 이탈리아 동맹국들이 등을 안돌렸걸랑. 한니발이 이것에 놀랐걸랑. 이게 패인이었걸랑. 

로마의 동맹국들. 소키이 socii 들이. 당당하게 요구하는겨. 로마야. 니가 우리네 주축이었는데. 대체 머한거냐. 15년간 한니발에 당하기만 하고. 대체 머냐 너희들. 우리도 열심히 했잖냐. 
이제 소키.에서 우리 모두에게 로마 시민권을 달라. 

저 로마 시민권.을 달라는겨. 독립하겠다는게 아냐 ㅋㅋㅋㅋ. 이게 동양빠닥 조선에서는 당췌 먼말이냐 할텐데 말야.

갈리아 인들도. 독립하겠다고 안해 나중에. 우리네도 로마인 되게 해주세요. 야 


쟤들이 그래서 지금 세상을 움직이는겨. 쟤들은 자기들 주제를 알걸랑. 

세상에 주제 모르는 들이. 이슬람 따르는 무슬림들이고. 인도 들이고 중국들에 이 조선왕조 건국 이래 육백년 지나 칠백년 접어드는 이땅 들이걸랑.


지들이 잘난줄 알아.

쟤들은 자기들이 후진걸 인정을 해. 배워. 상대보다 더 문명화가 돼. 

반미 반일. 위대한줄 알아. 민주. 정의.  

자폐들. 이건 야만이야. 

그래서 티나오는게 소키들의 전쟁이야.

The Social War (from socii ("allies"), thus in LatinBellum Sociale;[4] also called the Italian War, the War of the Alliesor the Marsic War) was a war waged from 91 to 88 BC 

 

소셜 워. 이게 뭔 사회전쟁 이 아냐. 쏘키.들이 반란한겨. 시민권 달라고. 기원전 91년에서 전88년.

 

이탈리아 반도 전체와 로마와의 싸움이야.

 

 

이탈리아 라는 정체성이 처음 터지는겨 저게. 

 

 

아주 중요해. 


저 이탈리아 전체의 내전이. 저 이후 1800년 이후에야 나오는겨. 
중세 이탈리아의 내전은 외부세력에 의한 전쟁이었고. 나폴레옹이 점령해서리 다 합한듯 보인거고. 그이후 통일해서 나폴레옹 애들 몰아내고 이탈리아 만들자.가 거의 2천년 지나서 생기는겨.
자기들끼리 저리 싸운건 없었어. 로마 제국.은 이탈리아 정체성이 약해. 로마. 이지 이탈리아 가 아냐. 이탈리아.는 라티니 와 소키 들로 나뉜거야. 로마의 그냥 다른 동맹맺은 도시국가들 뿐이야.

저 이탈리아. 라는 정체성을 1500년 만에 처음 자각한게 체사레 보르자.야. 이 위대한 야. 얘를 본게 마키아벨리.이고.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를 보고 만든게 군주론이야.


군주론 썰 어쩌고 저쩌고 하는 들 아가리를 . 다 조져쓰면 조커써..
헌데 저들 역사를 이 고대사부터 근세까지 쫘아아아악 꿰고 있어야 제대로 보이는겨. 


저걸 유럽애들 그리고 일본의 지식인 애들은 다 저리 볼 줄을 알아.


다른 애들은 다른 지역 애들은 못 봐.
특히나 이 조선민국.애들의 무식은 개끔찍한겨.
.
저 소키들의 전쟁. 이후에 바로. 로마 내전이 일어나는거야. 
소키들의 내전은 이탈리아 내전.이고
술라와 마리우스.의 내전.은 로마 내전.이야

술라와 마리우스.는 서로 다투다가도. 소키들이 반란일으킬때는 같이 뭉쳐서들 싸웠어.
.소키들 진압하고. 집정관 콘술이 술라.야 동쪽에 아르메니아 킹덤 옆 폰투스 에서 그리스 침범하는겨. 군단을 소집해. 그리스로 건너기 직전에 그 군단병들로 로마로 뒤로 돌아 빠꾸하는겨. 마리우스파 내쫓고. 그리고 그제서야 다시 건너가고. 고 사이 도망갔던 마리우스 다시 정권 잡고 늙어서 죽고. 폰투스 의 미트리다테스.는 자기 부하 루쿨루스.에게 맡기고 다시 로마 와서리 죽이는거걸랑. 다시 원로원 공화정체제 돌려놓고 독재관 내려놓고 은퇴해서리 죽어.

루쿨루스.가 저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를 쫓는데. 군단병들이 투쟁 투쟁 파업을 해. 루쿨루스가 인덕이 없어. 불러들이고 나서리 폼페이우스.를 사령관으로 보내는겨.
이 폼페이우스.가 마무리를 하는겨. 루쿨루스에게 병권을 뺏어.
폰투스의 미트리다데스.는 옆의 같은 킹덤 아르메니아.를 부추겨. 그리고 떠오른 동쪽의 실세 파르티아.도 부추겨. 결국 폼페이우스에게 지고 북해 끝에까지 도망갔다가. 죽어. 독약을 먹었는데 면역력 좋아서리 안죽어서리 경호원에게 칼주고 죽여달라해. 폼페이우스가 그 시체를 조상묘에 묻게 해줘.
소아시아 다 정리되고. 아래로 내려가는겨 시리아땅으로 그리고 유대땅으로. 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으로

시리아를 지배하던 셀레우코스 제국.

동쪽에서 파르티아가 서. 기원전 247년. 이들은 첫 시작이 지금 아프가니스탄이야. 저 코카서스땅에서 온 인간들이야. 여기땅 사트랍.이 반기를 들어 셀레우코스에. 그러면서 얘들이 서진을 하는거야. 셀레우코스는 점점 쫓기는거고. 그러다 저 유대땅 매카비 반란도 진압을 못해. 쇠락해지는겨.  위에서는 아르메니아 킹덤이 시리아를 침범해. 

폼페이우스.가 미트리다데스.를 쫓아보내고. 여기 정세를 보니. 불안한겨. 즉 시리아 지역이 점점 파르티아 들이 들어오고 아르메니아 킹덤도 나대고. 저들을 못 막으면 저 세력이 결국은 다시 소아시아 아나톨리아 반도로 넘어와서리 그리스 넘어오고 로마 처들어오는거걸랑. 오백년전의 페르시아 애들 막막 떠오르걸랑.

저 시리아 땅으로 내려가기로 한겨. 유프라테스 상류를 경계로. 다마스 쿠스 먹고. 페니키아 땅 먹고. 유대땅 가는겨.
이때 유대의 매카비들이 만든 하스몬 왕조는 왕위 계승으로 형제들이 막막 싸우걸랑.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 점령하면서 승계 작업 정리를 해. 
그리곤 유대땅은 로마 것이 되는겨. 클라이언트 스테이트. 로마가 파트로누스 가 된겨. 그래도 자기들 풍습 그대로 살게 해.
그리고 로마 가서 개선식을 하고. 콘술 하고 나서 스페인땅 총독하는겨. 카이사르랑 나중에 싸우는건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 함락한게 기원전 63년.
.
폼페이우스.는 조각상 보면. 걍 아무생각없는 맘씨좋은 할배여. 말을 못해. 어눌해. 사람들을 못 휘어잡아. 헌데 시안한게 전쟁만 잘해. 잘해. 루쿨루스랑 비슷해. 
저때 하스몬 왕조 두 형제 왕위 세울때도 서로 로비 해. 뇌물 많이 주는 애인 동생 편을 들어. 헌데 얘들이 폼페이우스 사위를 고소해 고문했다고. 그래서 다시 맘 돌려서리 형한테 왕자리를 줘. 형이 왕하고 동생이 다음왕 하고. 다음왕 마티티아스.가 마지막 왕이야 이 왕조의.
하스몬 왕조 끝나고 다음 왕조가 헤롯 이야. 헤롯왕조.
.로마 원로원에서 카이사르의 갈리아 총독 임기 끝났다고 군대 해산하고 로마 들어오라고 해. 자기 숙청할라는걸 알아. 이때부터 또 내전이야. 이때 카이사르 와 폼페이우스.가 지중해 전역을 돌면서 싸워. 
그 중심지역이 또한 그리스야. 그리스가 전쟁터가 돼. 이후 카이사르 암살 다음에도 브루투스 랑 싸움터도 그리스. 다음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전투도 그리스. 
힘이 없으면 자기 땅이 남들의 전쟁터가 돼.
폼페이우스가 이집트 가서리 환관 내시한테 목짤려 죽어 허무해. 그리고 걍 카이사르는 이집트를 무혈입성하고. 클레오파트라 남매들 싸우는데 끼어서 죽을 지경에 처해. 그때 병력 파견해서 도와주는게 저 헤롯왕조 시작인 헤롯 왕의 아부지야.

Antipater I the Idumaean[a] (died 43 BC) was the founder of the Herodian Dynasty and father of Herod the Great. According to Josephus, he was the son of Antipas[b] and had formerly held that name.[1]

 

안티파테르. 헤롯왕조 창시자. 이들은 핏줄이 유대인이 아냐. 에돔 땅이야. 유대의 아래. 이사람 백여년전에 유대교로 개종한겨. 안티페테르.는 저 하스몬 왕조의 공무원이야. 카이사르에 지원병력 보내고. 카이사르에게 이쁨 받아서리. 로마 시민권을 받고. 세금면제권도 받아. procurator 에 임명이 돼. 자기 아들들이 유대땅들의 지방 짱이 되게 하고. 그중 하나가 헤롯이고.

 

프로큐라토르. 그 지역의 재무관이야. 세금 걷는겨. 독살당해서 죽어.

 

마지막 하스몬 왕.이 파르티아애들 도움으로 삼촌을 쫓아내고 유대왕이 돼. 그리고선 헤롯.이 로마로 도망가. 로마에서 이전 유대왕을 복위시킬라고 로비하는데. 오히려 원로원에서 이 헤롯.을 유대왕.으로 임명해. 그리곤 로마세에 힘입어 3년 전쟁후에 하스몬왕조를 엎어버리는겨.

 

 

헤롯 왕은 에돔땅 핏줄이야. 약해. 하스몬을 세운 매카비는 귀족들이었어. 해서 헤롯은 하스몬왕조의 공주랑 결혼을 했걸랑. 헌데 헤롯왕조를 세우고 오히려 장모가 반기를 드는겨. 이때부터 헤롯이 특히 잔인해져.  넘어가고.

 

Under the Republic and the early Empire, however, a governor also commanded military forces in his province. Republican governors were all men who had served in senior magistracies (the consulate or praetorship) in Rome in the previous year, and carried related titles as governor (proconsul or propraetor).

 

로마때 총독.을 임명할때. 로마어로는 다들 달라. 콘술 과 프라이토르. 를 지냈던 사람이 거버너. 총독으로 임명이 돼. 프라이토르.는 법무관. 으로 통일하라 해라 정무관은 무슨 .

 

The term magistrate is used in a variety of systems of governments and laws to refer to a civilian officer who administers the law. In ancient Rome, a magistratus was one of the highest ranking government officers, and possessed both judicial and executivepowers. 

 

마기스트라투스. 라는 말도 자주 나오는데. 이건 직위가 아니라. 사법권력 행정권력이 있는 자리.야. 마스타. master. 

 

Pontius Pilate (/ˈpɒnʃəs ˈplət, -əs, -tiəs/;[2][3][4] Latin: Pontius Pīlātus, Greek: Πόντιος Πιλάτος, Pontios Pilatos) was the fifth prefectof the Roman province of Judaea, serving under Emperor Tiberiusfrom AD 26 to 36.[1][5] He is best known today for the trial and crucifixion of Jesus.

 

빌라도 총독.이라는 폰티우스 필라테. 는 총독이 아냐. 이사람은 프레펙트. 야. 유대땅 프레펙트.

 

프레펙트. 저 세금쟁이 프로큐라토르.는 마기스트라투스. 라는 힘이 없어. 군권이 없어. 당시 이땅의 총독이란 프로콘술 또는 프로프라이토르.는 시리아야. 

 

Pontius Pilate's title was traditionally thought to have been procurator, since Tacitus speaks of him as such. However, the inscription on the so-called Pilate Stone refers to Pilate as "Prefect of Judaea".[9]

 

필라테.는 사가들 때문에 프로큐라토르.로 알았걸랑. 헌데 돌이 발견된겨. 저기에 프레펙트.라고 아예 찍혔어. 

 

하튼 그렇고.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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