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뽀인트 지역이 저 취리히 베른 제네바 를 잇는 지대야.
저기를
The Swiss Plateau or Central Plateau (German: Schweizer Mittelland; French: plateau suisse; Italian: altopiano svizzero) is one of the three major landscapes in Switzerland alongside the Jura Mountains and the Swiss Alps.
스위스 플래토우. 스위스 고원지대.라 하지만 저기가 제일 살기 좋은지대야. 아래 하얀 산맥이 4천미터 이상의 알프스산맥이고. 그 위에 프랑스랑 접하는 지애데 주라 산맥이 있어. 이게 1700미터 정도 돼. 그 사이에 낀 지대야. 해발이 사오백미터지만 따뜻한겨 위 아래 병풍을 쳐주걸랑.
저긴 기본적으로 산악지대야. 사람들이 먹고살게 없어. 땅크기 4만제곱키로 쫌 넘어. 남한이 10만제곱.
저기가 시계가 유명하잖아. 물건 사고팔기엔 무거운걸 못 움직이는겨. 해서 짝은거 멀까 하다가 티나온게 시계야.
스위스 용병. 최고야 중세에. 먹고살게 없으니 용병으로 돈 벌어오는겨. 나중 이 용병으로 키운 힘으로 독일애들 이기고 합스부르크 이기고 왼쪽 프랑스 막아서리 중립을 지키는겨.
스위스랑 접하는 프랑스의 동남부.는 부르고뉴 가문땅. 스위스의 윗쪽 접하는 독일의 서남부는 스웨비안땅. 저 오른쪽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땅. 애들을 스위스 애들이 다 물리치는겨. 음청나 .
Around 260 AD, the fall of the Agri Decumates territory north of the Rhine transformed today's Switzerland into a frontier land of the Empire. Repeated raids by the Alamanni tribes provoked the ruin of the Roman towns and economy, forcing the population to find shelter near Roman fortresses, like the Castrum Rauracense near Augusta Raurica. The Empire built another line of defence at the north border (the so-called Donau-Iller-Rhine-Limes), but at the end of the fourth century the increased Germanic pressure forced the Romans to abandon the linear defence concept, and the Swiss plateau was finally open to the settlement of Germanic tribes.
저 땅은 초창기엔 켈트인들이었잖아. 그리고 게르만들이 오는거야. 저기에 정착한 게르만을 알라만니. alamanni. 라고 해. 이들이 결국 카이사르의 그 로마를 나중에 몰아내는겨. 해서 이들이 저 취리히에서 제네바까지의 알짜 고원에 정착을 해. 그리고 왼쪽 프랑스땅 갔다가 깨갱하고 다시 와.
Throughout the rest of the 6th, 7th and 8th centuries the Swiss regions continued under Frankish hegemony (Merovingian and Carolingiandynasties). But after its extension under Charlemagne, the Frankish Empire was divided by the Treaty of Verdun in 843.[24] The territories of present-day Switzerland became divided into Middle Francia and East Francia until they were reunified under the Holy Roman Empire around 1000 AD.[24]
프랑크의 클로비스1세때부터 통일하면서 얘들도 그 영향권에 있다가. 샤를마뉴의 세 아들이 쌈질하면서 여기도 땅이 나뉘었어. 그러다가 오토1세 이후에 재통일 하면서 묶인거지.
By 1200, the Swiss plateau comprised the dominions of the houses of Savoy, Zähringer, Habsburg, and Kyburg.[24] Some regions (Uri, Schwyz, Unterwalden, later known as Waldstätten) were accorded the Imperial immediacy to grant the empire direct control over the mountain passes. With the extinction of its male line in 1263 the Kyburg dynasty fell in AD 1264; then the Habsburgs under King Rudolph I (Holy Roman Emperor in 1273) laid claim to the Kyburg lands and annexed them extending their territory to the eastern Swiss plateau
이들은 1200년까지는 사보이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등 네가문이 나눠서 가졌는데. 나중엔 왼쪽 리옹에 있는 사보이 가문이 좀 영향력 갖고. 대게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를 했다.
합스부르크.
The House takes its name from Habsburg Castle, a fortress built in the 1020s in present-day Switzerland
합스부르크 가문은 11세기에 티나온걸로 봐. 합스부르크 성이 저 취리히의 서북쪽에 있어. 합스부르크가문이 여기서 시작했다가 나중에
By 1276, Count Radbot's seventh generation descendant Rudolph of Habsburg had moved the family's power base from Habsburg Castle to the Duchy of Austria.
합스부르크.의 루돌프.가 아우스트리아 공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기반을 다진겨. 즉 루돌프.가 합스부르크의 본격적 시작이야.
In 1440, Frederick III was chosen by the electoral college to succeed Albert II as the king. Several Habsburg kings had attempted to gain the imperial throne over the years, but success finally arrived on 19 March 1452, when Pope Nicholas V crowned Frederick III as the Holy Roman Emperor in a grand ceremony held in Rome. In Frederick III, the Pope found an important political ally with whose help he was able to counter the conciliar movement.
이 합스부르크.의 프리드리히 3세가 선제후로 뽑혀. 그리고 교황 니콜라스 5세가 이사람을 황제로 미는겨. 왜냐믄 저 콘실리아. 즉 공의회 로 교황 압박하는 걸 이사람을 통해 방어 할라고 햇걸랑. 아직 신흥세력이라 힘이 없다 판단한거지.
이사람이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고. 문제는 이사람 아들이 다음 황제 막시밀리언 인데
On the external front, one of Frederick's main achievements was the Siege of Neuss (1474–75), in which he forced Charles the Bold of Burgundy to give his daughter Mary of Burgundy as wife to Frederick's son Maximilian.[8]
이 프리드리히 3세 황제가 노이스 전쟁에서 부르고뉴 용감공 샤를을 이기고. 이 샤를에게 니딸 메리.를 자기아들 막시밀리언 에게 달라하는겨.
당시 부르고뉴 가문이 프랑스 동남부랑 독일 저지대 대부분 땅을 지배하고 있었걸랑. 저 부르고뉴의 메리.가 최고의 신부감이었어. 모두가 눈독을 들였걸랑. 더구나 당시 부르고뉴 공작 용감공 샤를은 아들도 없어.
Territories of the house of Valois-Burgundy during the reign of Charles the Bold.
저게 다 딸 메리.에게 가는겨. 저여자 갖고 오는 집안이 째지는거지
저걸 저 합스부르크.의 프리드리히 3세 황제가 갖고오는겨 자기 아들 막시밀리언.의 며느리 선물로.
저때부터 합스부르크 가 시작되는겨 그야말로 합스부르크. 막시밀리언. 얘가 다음 황제가 돼.
얘 아들이 에스파냐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과 아라곤의 왕의 딸 미친년 조안나 하는 요안나 공주에게 시집가는 미남공 필리프.고 이 아들이 바로 막시밀리언의 손자인 카를 5세. (까를로스 1세)여. 해서 이 카를 5세가 저 할머니가 갖고 온 부르고뉴 땅이랑 엄마가 받은 스페인땅과 스페인의 식민지를 얘가 다 먹는겨.
세계 최고의 유산을 받은거지.
그 합스부르크.의 시작이 저 스위스.야. 취리히의 옆.
그 루돌프.가 저 독일지역의 아우스트리아 공국. 즉 여긴 독일 고지대 바바리아 후작령.이야 후작령이라 하믄 이전 아주 이전에 썰했던 변방지역. 울타리 번국.이걸랑. 외국에 대비하는.
저 아우스트리아.를 기반으로 하다가 부르고뉴의 유럽땅들 다 먹고 스페인 까지 먹은거걸랑. 결혼이란 도구로.
그리고 저 아우스트리아. 가 나중 오스트리아. 가 되는거야.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이 만든거야 결국. 저 합스부르크 가문이 계속 황제를 3백년 이상을 하다가 나폴레옹이 저 신성로마제국을 해체를 하는겨. 그리고 나폴레옹이 자기가 자기 머리위에 황제관을 쓰고 황제 하고. 해서 프랑스 제국이 되는거고. 합스부르크 가문은 자기들이 쓰던 관을 나폴레옹에게 안 줘. 자기들이 저 오른쪽으로 갖고가 끝으머리 비엔나로. 그리고 자기들이 황제하는겨 관이 자기들한테 있으니. 이때 오스트리아.라는 이름을 정식 쓰는거지.
스위스는.
The 26 cantons of Switzerland (German: Kanton, French: canton, Italian: cantone, Romansh: chantun) are the member states of the Swiss Confederation. The nucleus of the Swiss Confederacy in the form of the first three confederate allies used to be referred to as the Waldstätte. Two further major steps in the development of the Swiss cantonal system are referred to by the terms Acht Alten Orte ("confederation of eight";[1] between 1353 and 1481) and Dreizehn Alten Orte ("Thirteen-Canton Confederation",[1] during 1513–1798); they were important intermediate periods of the Ancient Swiss Confederacy.
캔톤. canton. 이란 이름의 자치구들이 26개 였어. 그 중심은 저 스위스 고원벨트겠지. 이들이 저 가문들 틈에서 살다가 연합체.를 만든거야. 1400년 전후에.
By 1460, the confederates controlled most of the territory south and west of the Rhine to the Alps and the Jura mountains, particularly after victories against the Habsburgs (Battle of Sempach, Battle of Näfels), over Charles the Bold of Burgundy during the 1470s, and the success of the Swiss mercenaries. The Swiss victory in the Swabian War against the Swabian League of Emperor Maximilian I in 1499 amounted to de facto independence within the Holy Roman Empire.[29]
그리고 합스부르크랑 싸워서 이기고 이들을 오른쪽으로 몰아내고. 왼쪽으론 부르고뉴의 용감공 샤를.을 이기고 몰아내고. 저 위쪽의 독일 서남부 스웨이비언. 이란 게르만들이랑 전쟁해서 이기고 몰아내고. 해서리 1499년에 사실상 독립을 한겨.
음청난겨 이들.
The Old Swiss Confederacy had acquired a reputation of invincibility during these earlier wars, but expansion of the confederation suffered a setback in 1515 with the Swiss defeat in the Battle of Marignano. This ended the so-called "heroic" epoch of Swiss history.[29] The success of Zwingli's Reformation in some cantons led to inter-cantonal religious conflicts in 1529 and 1531 (Wars of Kappel). It was not until more than one hundred years after these internal wars that, in 1648, under the Peace of Westphalia, European countries recognised Switzerland's independence from the Holy Roman Empire and its neutrality.[26][27]
그리곤 다음으로. 아래 이탈리아 있잖아? 알프스 이남. 여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교황과 프랑스 연합을 마리냐노.에서 또 이겨.
아 아무도 못건드는겨. 80년 전쟁과 30년 전쟁이 동시에 끝나는 베스트팔렌 조약 때 정식으로 독립 승인받고. 중립 인정받아.
중립은 저따위 힘있는 들이나 외칠수 있는 단어지
Official languages in Switzerland (2017):
Romansh (0.5%)
쓰는 언어. 독일 접하는 북부 중심 대부분은 독일어. 왼쪽은 프랑스어. 아래는 이탈리아어. 극히 소수는 로망슈. 이건 라틴어야. 이탈리아어에 속해.
짐이 좋아하는 칼융 할배는 저기 동북부 끝 호수 에 접한 케쓰윌. kesswil 이란 아주 촌동네에서 태어났어. 지금도 몇천명이야 인구가. 그리고 좀 내려와서리 취리히 에서 돌아가싰어.
스위스 인간 독어 불어 이탈리아어 영어 쓰는거 봤냐? 아 짐은 봤다. 먼 쇼하는것도 아니고. 감탄사만 연발.
어이구 우리 아이들 영어 교육 안되유 외쿡어 공부시키지 마유 어릴땐 놀게해줘야되유 스틀레쓸 받아유.
정말 개미친 들이지. 저따위 을 법으로 또 정해서리 못하게 해야해유 돈버는 인간들이 앞서는 나라는 안되유. 자사고 외고 다 없애야 되유. 다들 평등하게 바닥에서 잘 살아유. 용은 안나유 우리모두 깨구락지로 살아유.
들을 하는거지 쌩들을.
During the Early Modern period of Swiss history, the growing authoritarianism of the patriciate families combined with a financial crisis in the wake of the Thirty Years' War led to the Swiss peasant war of 1653. In the background to this struggle, the conflict between Catholic and Protestant cantons persisted, erupting in further violence at the First War of Villmergen, in 1656, and the Toggenburg War (or Second War of Villmergen), in 1712.[29]
여기가 프로테스탄들의 피난처야 또한. 독일 저지대와 같이. 자유로운곳이야. 칼뱅이 이 스위스로 도망와. 헌데 여기에 예수회 애들 중심으로 로마카톨릭을 또 심으려 하는겨. 얘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전쟁이 30년 전쟁 후에 스위스 농민전쟁이야. 그리고 로마 카톨릭을 금지하다가 20세기 들어와서 허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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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헝가리는. 마자르. 란 말이 헝가리.야. 마자르족. 우랄족의 가지야. 얘들이 동쪽에 자리잡아서리 킹덤 하면서 그리스도 갖고 와. 신성로마제국엔 편입을 안하지만 관계를 갖는거지. 이들이 몽골애들 그냥 와서리 조지고 죽고. 몽골애들 여 왜 왔나 몰라. 걍 죽이고 가. 그리고 여기에 또한 합스부르크가문이 핏줄로 승계하는겨 결혼으로. 즉 오스트리아 것이 되다가 그 오른쪽의 메메드2세의 후손들 셀렘 슐레이만 해서 콘스탄티노플 함락 1453년. 이후에 2백년 이상을 저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랑 싸우는겨
얘들이 서유럽의 방패막이를 한겨 육상에서. 해상에선 베네치아애들이 방패막이 한거고.
저 콘스탄티노플 요새.를 깨부슨 대포.를 개발해서 바친 인간이 헝가리 인간이고 그걸 초이스 한 인간이 메메드2세란 인간이고.
The Ottoman–Habsburg wars were fought from the 16th through the 18th centuries between the Ottoman Empire and the Habsburg (later Austrian) Empire, which was at times supported by the Holy Roman Empire, Kingdom of Hungary,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and Habsburg Spain. The wars were dominated by land campaigns in Hungary (including Transylvania (modern-day Romania) and Vojvodina (modern-day Serbia), Croatia and central Serbia.
저 헝가리와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이 18세기까지 계속 되다가.
The Battle of Zenta or Battle of Senta, fought on 11 September 1697 just south of Zenta (Serbian: Senta; then part of the Ottoman Empire; today in Serbia), on the east side of the Tisa river, was a major engagement in the Great Turkish War (1683–1699) and one of the most decisive defeats in Ottoman history.
젠타 전투. 젠타.라는 지역이. 우크라이나에서 발원하는 티사.tisa 강 물줄기가 루마니아 주변을 돌아서리 헝가리 남부를 지나서 다뉴브강이랑 만나는데. 저 지점이 헝가리 밑에 세르비아 북부 지역이야. 여기서 헝가리 연합군이. 사보이 공작의 탁월한 전술로 투르크군을 전멸을 시켜. 사보이 공작은 프랑스 인간이야. 헝가리는 이미 이 전쟁 이전에 인물들은 다 죽었어. 남의 힘으로 이긴거야.
저 전쟁이 투르크와의 250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거야. 즉 이 전쟁이 어찌보면 십자군 전쟁의 그야말로 마지막인거지.
그리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예전 지배했다는 걸 핑게로 영향력 있다가
나폴레옹 티나오고 신성로마제국 해체되고 독일땅은 나폴레옹이 프로텍터 보호자 하며 라인동맹할때. 오스트리아는 자기들이 쓰던 황제관 들고 옆의 찌끄레기 슬라브족들 체코랑 다른 슬라브 땅들이랑 우랄족 헝가리랑 등 합해서리 오스트리아 제국. 하다가
The Austrian Empire (Austrian German: Kaiserthum Oesterreich, modern spelling Kaisertum Österreich) was a Central European multinational great power from 1804 to 1919 (losing Hungary in 1867) created by proclamation out of the realms of the Habsburgs.
이게
1804–1867
체코 등 떨어져 나가고
Austria-Hungary, often referred to as the Austro-Hungarian Empire or the Dual Monarchy in English-language sources, was a constitutional union of the Austrian Empire (the Kingdoms and Lands Represented in the Imperial Council, or Cisleithania) and the Kingdom of Hungary (Lands of the Crown of Saint Stephen or Transleithania) that existed from 1867 to 1918,
오스트리아 헝가리 하다가. 저기서 그 처음에 썰 했던 사라예보에서 가브릴로 프린치프.로 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후계자 죽으면서 해체되고 전쟁 끝나고 헝가리 하는거고.
저 스웨덴 노르웨이도 말야.
결국 그리스도 받기 전엔 걍 바이킹이야. 그러다가 그리스도화 되고.
얘들은 한자동맹.이 얘들을 일깨운겨 더군다나. 원래 코디드웨어.라는 청동기 문명이 앞선게 잇었으며 사가 라는 글자들로 자기들 신화를 또한 갖고 있엇지만
해적질 하다가. 그 대륙 발트해 맞은편의 저지대 독일이랑 무역하는거 얘들이 배우면서 깨친겨. 이게 얼마 안되는거지.
스웨덴이 역사에 티나오는건 저 80년 전쟁 할때야. 얘들은 이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하나하나 독립해나간거걸랑 서로들.
저 한자동맹의 상업 사슬에서 그리스도 와 함께 문명화된거야.
유럽의 르네상스는 아래 이탈리아와 함께 이 독일 저지대걸랑. 이 저지대애들 해적질 하면서 얘들이 그 문명을 흡수를 한겨.
거기에 저 스칸디나비아 두 나라는 말야. 그야말로 자원으로 먹고 사는겨. 철광석. 원유. 가스. 풍부해. 그리고 hnm 같은 패션회사는 그 뿌리가. 이 노르족들 스웨디시들 머리스타일이 최고야 고대부터. 헤어스타일을 오히려 얘들한테 배워 유럽이. 꾸미는게 최고야.
그 바탕에 역시 바이킹의 힘. 중립 하면 함부로 못해 쟤덜.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의 울타리안에서 찐하게 문명화된거고. 헝가리는 야만이였고 상대적으로. 우랄이 넘어와서리 그리스도화 되고 옆의 유럽 르네상스 익힌거고. 헌데 그걸 흡수할때 그 킹이 힘이 약했어. 더군다나 오른쪽의 투르크 쎘어 저때.
유럽의 문명은 그리스도.가 만든겨.
저기에 저 그리스도.를 신학으로 파들어가. 그 신학의 바탕은 고대 그리스고. 고대 로마고. 여기에 이슬람황금문명일때의 바그다드가 또 이리 와.
여기에 더하여 스피노자를 시작으로 신을 좀 멀리 보내. 현실감을 얘부터 갖고와. 해서 스피노자 부터 진짜 철학이다 라고들 하지만
저 속에서 이전의 데카르트에서 이데아.라는 사유의 터가 아주 깊게 넓게 다듬어지고. 여기 터를 바탕으로 경험주의 라는게 태동이 되는거야. 이 경험주의.는 이 전의 저 사유의 확장이 그리스도를 미끼로 없었으면 나오지 못해.
저 섞임에서 산업혁명이 티나온거지.
완전히 교과서야.
쟤들이 말이지 우리네 삼국시대일때 저 알프스 북쪽은 문명이 없었어. 특히 동유럽과 저 짝 북유럽과 오른쪽 러시아는 서기 천년 지나면서 역사야 걍.
헌데 완전히 이들보다 우리네가 1천년 이상을 뒤진거야 지금 현재. 일단 이말이 인정이 안되겠지? 왜 뒤진건데? ㅋㅋㅋ. 머 우리네 유교문명이 얼마나 대단한겨 하는겨?
이땅바닥은 후져. .
유럽은 자유야. 자유. 저 과정에서 절실히 익힌 것. 자유. 리버티. 프리덤.
헌데 저 프리덤. 에 치인 애들이 있어. 프리덤 리버티의 그림자에 휩쓸린 애들
걔들이 니체. 이고 마르크스.야 얘들 또한 대명사일뿐. 저 시대의 그림자 처리를 못해서 티나온게 결국 나찌즘 파시즘에 코뮤니즘에 세계대전인거야.
칼융은 저걸 안거야. 칼융의 관점으로 보면 해석이 잘 돼.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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