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가 티나오기전에도 루터 이전에 숱하게 티나와.
루터가 이전의 사람들보다 달리 점을 찍는 건 성경 번역이야. 보다 쉽게 전했다는거지.
어차피 번역본이 나올때였어.
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 (
c.
1400[2] – February 3, 1468)
구텐베르크가 1400년생으로 보는데.
Until at least 1444 Gutenberg lived in Strasbourg, most likely in the St. Arbogast parish. It was in Strasbourg in 1440 that he is said to have perfected and unveiled the secret of printing based on his research,
44살 때가진 스트라스부르. 지금은 프랑스땅인데. 독일 접경지. 여기서 경제적으로 대량생산하는 인쇄기술을 서치해서 파악한것으로 알려지고. 자기고향 마인츠. 중지대 서쪽이야. 여기 간게 48살때고
By 1450, the press was in operation, and a German poem had been printed, possibly the first item to be printed there.
50살때 인쇄기를 시험 운영해본거지. 게르만 시. 그리고 사채업자한테 돈을 빌려.
There is also some speculation that there may have been two presses, one for the pedestrian texts, and one for the Bible. One of the profit-making enterprises of the new press was the printing of thousands of indulgences for the church, documented from 1454 to 1455.[21]
그리고 찍어대는 거지. 돈 벌어어야 하걸랑. 라틴 문법책도 찍고. 저때 가장 돈이 되는게 면죄부 인쇄물인거지. 2년간 수천장을 찍은거지.
면죄부.
In the teaching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an indulgence (Latin: indulgentia, from *dulgeō, "persist") is "a way to reduce the amount of punishment one has to undergo for sins."[1] It may reduce the "temporal punishment for sin" after death (as opposed to the eternal punishment merited by mortal sin), in the state or process of purification called Purgatory.
인덜전스. 우리말로 면벌. 죄를 벗는다. 하는데. 이 인덜전스.란 면죄부는 지옥에 갈 죄를 면해주는게 아냐. 퍼거토리. 소위 연옥. 이란 개념이 11세기에 나오고. 이전 설명 넘어가고. 이 연옥에서 죄를 씻으면 천국엘 가는 거걸랑. 지옥은 영원히 지옥이야.
다른 인덜전스.는 고해성사고 소위.
이 인덜전스.란 개념은 솔직히 애매해. 연옥이란 개념은 11세기에 정립이 된거고. 헌데 이 인덜전스.란 면죄 면벌은 그 훨 이전애도 있었걸랑. 이게 지옥가는 걸 면죄다 라고도 안하는거고 단지 몇년 감형 어쩌고 다들 말마다 다른거지 이게
이게 그러다가 연옥 개념이 정립되면서 그리고 단테 신곡 나오고 퍼게토리 란 연옥 유행하고 하면서 이 면죄부는요 연옥의 기간 줄이는거요 하고 개념 정립이 되걸랑 이게. 물론 민들에겐 정확히 설명을 잘 안하겠지. 지옥은 안됨둥? 할때 지옥은 영원한 지옥이다 해서 안된다. 하며 안 팔수 는 없걸랑.
저 면죄부 종이가 돈벌이가 돼 구텐베르크 한텐. 교회에서 이걸 대량 발주를 하는거지.
저 면죄부를 나중에 레오10세 가 아주 제대로 장사를 하는겨 저걸.
레오 10세 교황 좋아하는데 짐은. 남들은 욕질 퍼붓지만. 그거 지대로 모르고 하는소리야. 레오 10세 짱 이야 짱. ㅋㅋㅋ.
이 교황할배가 피렌체의 위대한 로렌초.의 아들 삼형제 중 둘째걸랑. 제일 똑똑했어. 아 헌데 로렌초때 집안이 망한겨 그 은행이. 돈이 없잖어 교회에
이 교황할배가 씀씀이가 좋아. 길만 나가믄 돈을 뿌려대. 금화 은화를 막막 가난한 사람들이 뎀빌꺼 아녀. 그사람들한테 돈을 막막 줘. 당시 인기 짱이야.
헌데 저 돈을 왜 주냐면. 사람들이 자기를 막막 만지걸랑. 한무당짓인거지. 저 그리스도의 대리인을 만지면 복이 오는겨. 해서 막막 악수를 하는겨 거 교황만 보믄 지금도. 보는 것 만으로도 축복이걸랑. 하물며 손만 닿아봐. 아 천국행은 보장이 된겨.
그래서리 또한 피부병이 생겨.
이 할배가 머리가 좋은겨. 복도 쌓을겸 만짐질 안당할겸. 하튼 이 할배 짱이야 진짜. 이 할배는 진짜 열린 사람이야.
헌데 이 할배가 집안 은행이 망했걸랑. 교황청 금고였걸랑 특히나 저 피렌체의 메디치 자기 집안 은행이. 아 돈이 없어. 아! 면죄부 가 있었지? 베드로 성당 재건축 한단 명목으로 면죄부 찍는거지.
아 헌데 루터 이 씨박가. 그걸 본거 아녀? 아 레오 할배가 좀 걷었으믄 말도 안해. 1517년 당해에 한겨 저걸.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저 해에 걸린겨 거 대자보가.
아 뻘쭘한거지 우리 레오 교황 할배.
루터의 종교개혁의 시작이 어찌보면 저 구텐베르크 땜에 그런겨 그래서. 저 인쇄기만 안 만들었으면 면죄부 대량으로 찍을 생각도 안했을꺼걸랑 우리 레오 교황 할배. 그럼 루터도 안 티나왓을끼고 세상이 햄뽁았을....라나?
1517 Nuremberg printing of the Ninety-five Theses as a placard, now in the Berlin State Library
루터가 붙인 95개조 논제.
헌데 이 루터 이전에도 똑같은 말들이 있엇어..
The Fourth Lateran Council (1215) suppressed some abuses connected with indulgences, spelling out, for example, that only a one-year indulgence would be granted for the consecration of churches and no more than a 40-days indulgence for other occasions. The Council also stated that "Catholics who have girded themselves with the cross for the extermination of the heretics, shall enjoy the indulgences and privileges granted to those who go in defense of the Holy Land."[51]
1215년의 공의회에서 교회에 봉헌하는건 1년짜리 면죄. 대부분 40일 이상 면죄다는 건 없기. 막막 규정하는거지. 그리고 이전에 저 십자군 홀리랜드 레반트 원정 가면 면죄. 원정길 돈 주면 면죄. 막막 한거지 역시.
이런 면죄부 에 대해 교황이 먼저 문제제기를 해. 루터 이전에도
Pope Boniface IX wrote to the Bishop of Ferrara condemning the practice of certain members of religious orders who falsely claimed that they were authorized by the pope to forgive all sorts of sins, and obtained money from the simple-minded faithfuls by promising them perpetual happiness in this world and eternal glory in the next.
루터 나오기 100년 전에. 교황 보니파체가. 머 면죄된다고 별 시안한 짓들 하는데 저거 다 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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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 레오10세 할배가 저 루터랑 엮여서리 아 모땐 교황 낙인 찍힌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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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튼 저 구텐베르크.는 저 면죄부 외에. 그 유명한 구텐베르크 성경 을 찍어.
In 1455 Gutenberg completed his 42-line Bible, known as the Gutenberg Bible. About 180 copies were printed, most on paper and some on vellum.
발명 하고 5년 후. 180 카피를 찍었데. 종이. 그리고 몇개는 가죽피지.에
A vellum copy of the Gutenberg Bible owned by the U.S. Library of Congress
가죽피지.들에 찍은 구텐베르크 성경.
Since its publication, 49 copies (or substantial portions of copies) have survived, and they are considered to be among the most valuable books in the world even though no complete copy has been sold since 1978
저 180개 중에 지금 남아있는게 49개.
저땐 루터 티나오기 전이걸랑. 라틴어로 된 불가타 성경을 찍은거지. 걍 장식품이야 저건. 글고 쎈 부적인거야 소장자에겐. 성경을 갖고 있으면 걍 천국 가는거야. 귀하게 다뤘을거야. 함부로 막막 피지도 않았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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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종교개혁 대지만. 루터 이전에 그 스키즘 이란 교회분리도 일종의 개혁이야 그게 굳이 개혁딱지 붙이자면.
Paulicians (Old Armenian: Պաւղիկեաններ, Pawłikeanner; Greek: Παυλικιανοί;[1] Arabsources: Baylakānī, al Bayālika)[2] were a Christian sect, accused by medieval sources of being Adoptionist, Gnostic, and quasi-Manichaean. They flourished between 650 and 872 in Armenia and the eastern themata of the Byzantine Empire. According to medieval Byzantine sources, the group's name was derived from the 3rd century Bishop of Antioch, Paul of Samosata.[3][4]
The development of Paulicianism
바오로파. 하는데 폴리시어니즘. 이단으로 욕처먹지만. 이들도 나름 수수한 그리스도로 돌아가잔 거걸랑. 그 중심은 사도 바울이란 거지. 이들이 아르메니안들 중심으로 7세기에 퍼져서 나중 유럽을 휩쓰는거야 저렇게. 저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아니다 하는게 루터 이전의 카타르파 발도파 알비파 하는거야. 기존 교회 조직 자체에 반기를 든거야.
Peter of Bruys (also known as Pierre De Bruys or Peter de Bruis; fl. 1117 – c.1131) was a popular French religious teacher, who is called a heresiarch (leader of a heretical movement) by the Roman Catholic Church because he criticized infant baptism, opposed the erecting of churches and the veneration of crosses, opposed the doctrine of transubstantiation, and denied the efficacy of prayers for the dead.[1][2] An angry mob killed him in or around the year 1131. Information concerning Peter of Bruys is derived from two extant sources, the treatise of Peter the Venerableagainst his followers and from a passage written by Peter Abelard
피터 오브 부뤼. 피에르 드 부뤼. 이 사람 멋져. 아기들 세례 왜 시키냐는거지. 아이들이 대체 멀 안다고 하얀 백지에 도배를 미리 해버리냐는거지. 아이가 자라서 스스로 깨우쳐서 그리스도가 되어야지 왜 어릴때 부터 세뇌된 맹목적 아이를 만드냐는거야. 십자가 그게 왜 성체냐 하는거고. 십자가를 태웠어. 그리고 transubstantiation 트랜서브스텐시에이션. 서브스턴스.가 현상이란 허상 그 바닥에 있는 실재 진짜 걸랑. 그걸 트랜스 바꾸는겨. 저걸 실체변화. 화체설. 어쩌고 번역 하는데. 즉 사제가 주는 빵과 포도주는 겉은 음식으로 보이나 사제가 주는 순간 이건 그리스도의 살과 피니라 하면서 축복받는짓 그건 사기다 하는겨. 그리고 죽은자를 위해 기도하는 짓거리는 아무 효용도 없는 짓이고.
이사람도 독실한 그리스도야. 사람들이 저 이야길 듣고 죽여서리 태웠어. 헌데 저 사람 말이 그리 틀린 말인가? 저런 말 할 수도 있걸랑.
저 사람이 설교를 저리 막막 하고다녔걸랑. 저사람을 비판한 사람 중에 한명이 Peter Abelard 피에르 아벨라르. 이사람이 소위 긍정과 부정.을 쓴 사람이야. 얘들 신에 대한 사유를 저따위 논리적으로 나름 풀을려는건 어마어마한건데. 넘어가고.
Catharism (/ˈkæθərɪzəm/; from the Greek: καθαροί, katharoi, "the pure [ones]")[2][3] was a Christiandualist or Gnostic revival[4] movement that thrived in some areas of Southern Europe, particularly northern Italy and what is now southern France, between the 12th and 14th centuries. The followers were known as Cathars and are now mainly remembered for a prolonged period of persecution by the Catholic Church which did not recognise their belief as truly Christian. Catharism appeared in Europe in the Languedoc region of France in the 11th century and this is when the name first appears. The adherents were also sometimes known as Albigensians after the city Albi in southern France where the movement first took hold. The beliefs are believed to have been brought from Persia or the Byzantine Empire.
카타르파와 알비파 가 또한 저 피에르 드 부뤼. 다음에 12세기부터 퍼지는겨. 독실하게 생활을해. 이걸 이단시 하는거지. 교황이 얘들 치는것도 십자군운동으로 쳐 넓은 의미론.
The Waldensians (also known variously as Waldenses (/wɔːlˈdɛnsiːz, wɒl-/), Vallenses, Valdesior Vaudois) are a pre-Protestant Christian movement founded by Peter Waldo in Lyon around 1173.
발도파. 월덴시즈. 리옹. 프랑스 동남부에서 나중이게 스위스쪽으로 퍼져. 이사람에겐 프로테스탄트 이전. 이란 딱지 붙여주고.
Czech:
( 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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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1369 – 6 July 1415[2]), sometimes Anglicized as John Hus or John Huss, also referred to in historical texts as Iohannes Hus or Johannes Huss) was a Czech theologian, Roman Catholic priest, philosopher, master, dean and rector[3] of the Charles University in Prague, church reformer, inspirator of Hussitism, a key predecessor to Protestantismand a seminal figure in the Bohemian Reformation.
얀 후스. 루터 나오기 1백년에 이미 얀 후스.라는 체코 보헤미아 사람이 있었어.
이사람은 보헤미안. 즉 독일땅 바바리아에서 넘어온 게르만이야. 헌데 체코어로 번역도 해. 보헤미안이면서 체크.라는 슬라브 정체성을 녹인겨. 교회의 부패. 교회조직이 잘못된 걸 막막 지적하는거지. 태워죽였어. 이사람 따르는 이들을 후싸이트. 라해. 후쓰파. 저 사람이 죽고 바로 티나오는 사건이 프라하 창문 투척사건이야. 후쓰파들이 자기들 동료 석방하라고 프라하 시의원들을 시청사 건물 밖으로 던져 버리는거지. 2백년 후에 또 해. 합스부르크애가 와서리 후스들 몰라보고 로마 카톨릭을 다시 심걸랑. 던져 버려 .
루터의 종교개혁. 에서 루터. 라는 이름은 단지 저들 수많은 이들 중에서 티나온 이름일 뿐이고
루터는 작센 선제후가 쉴드를 쳐주었걸랑. 여기의 프리드리히. 현명함 딱지붙는이가. 당시 제일 잘나가는 황제 카를 5세에 맞설 애걸랑. 더하여 카를 5세는 교황까지 먹을라 하는 인간이걸랑. 루터가 이래저래 이용하기 좋은겨.
루터.는 당시 중세인들의 터진 마음에 단지 이름 하나 얹은겨. 그래도 성서 번역은 무시못해.
The Counter-Reformation (Latin: Contrareformatio), also called the Catholic Reformation (Latin: Reformatio Catholica) or the Catholic Revival,[1] was the period of Catholic resurgence initiated in response to the Protestant Reformation, beginning with the Council of Trent (1545–1563) and ending at the close of the Thirty Years' War (1648). Initiated to preserve the power, influence and material wealth enjoyed by the Catholic Church and to present a theological and material challenge to Reformation, the Counter-Reformation was a comprehensive effort composed of five major elements:
루터가 티나오고. 카운터 리포메이션. 저 루터의 개혁에 맞서는 반루터. 반종교개혁이 로마 카톨릭에서 나오는겨. 아 루터가 개혁하재? 니가 하자고 하는 개혁은 그건 말도 안되는거고. 그래 우리 자체적으로 개혁은 해보께 하는게 카톨릭 개혁. 하는 반종교개혁이야.
그러니까 얘들은. 루터보다 더 쎄게 해야하는거야.
이게 1545년부터 시작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시작해서리 유럽의 80년 전쟁 하면서 독일저지대의 네덜란드 부근 17개 지역이 독립하고 리퍼블릭 하고 동시에 후반에 터진 30년 전쟁에 극을 이루는거야.
니가 개혁 니덜이 개혁 하는데. 그래 이게 개혁이다 하민서리. 마녀사냥 하는겨 종교재판 하는거고. 이단 이단 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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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iliarism was a reform movement in the 14th-, 15th- and 16th-century Catholic Church which held that supreme authority in the Church resided with an Ecumenical council, apart from, or even against, the pope. The movement emerged in response to the Western Schismbetween rival popes in Rome and Avignon. The schism inspired the summoning of the Council of Pisa (1409), which failed to end the schism, and the Council of Constance (1414–1418), which succeeded and proclaimed its own superiority over the Pope. Conciliarism reached its apex with the Council of Basel (1431–1449), which ultimately fell apart. The eventual victor in the conflict was the institution of the Papacy, confirmed by the condemnation of conciliarism at the Fifth Lateran Council, 1512–17.[1] The final gesture however, the doctrine of Papal Infallibility, was not promulgated until the First Vatican Council of 1870.
십자군 레반트 홀리랜드 원정이 2백년 만에 참패하고 1차에 그 레반트 땅에 만들었던 십자군 국가들 다 뺏기고 끝났걸랑.
교황이 황제한테 카놋사의 굴욕으로 한번 위세는 떨쳤지만. 교황은 힘이 없었걸랑. 오히려 무릎한번 꿇렸다가 로마에서 잠도 못자고 떠돌며 다니다가 꺼내든 카드가 십자군 전쟁이걸랑. 이때 부추김질 당한건 프랑스고. 기독의 왕. 칭호로 으쓱하면서.
1차의 프랑스 왕의 형제와 귀족들 그리고 이탈리아 남부귀족과 주축이 되어서리 레반트를 먹었고 나중엔 어쩔수 없이 황제도 참전할 수밖에 없고 분위기상. 해서 붉은수염 황제는 죽기도 하고 가다가. 그리고 리차드도 가고 북유럽 애들도 독자적 조직해서 가고 했지만 그 중심은 프랑스였어.
프랑스가 루이9세 죽고. 교황이 성루이 딱지 붙여줬지만 열 받걸랑. 해서 아비뇽의 유수.여 너 이 덜 앞으로 우리네 프랑스 안에서 움직이라우 한거걸랑. 교황 7대까지 아비뇽에 있어야 했어. 그러다 백년전쟁 터지고 저길 벗어난겨 교황이.
교황이 이제는 신성로마황제에도 쌩까이고 프랑스 왕에도 쌩까이는겨. 그 지점이. 백년전쟁 이긴 샤를 8세 프랑스 왕이 이탈리아 무혈입성하며 넘어온거고 얘들이 프랑스 병을 이탈리아에 퍼뜨려. 이게 매독이야. 그리고 그 절정이 카를 5세가 한 로마약탈 사코 디 로마.야
이제 교황은 힘이 없어. 완전히. 황제가 카를 5세 다음으로 대관식 하러 로마에 안가. 지들이 써.
그리고 교황에게 힘을 뺏을려 하는겨. 그게 저 콘실리어리즘. 공의회수위설. 공의회.를 제일 대가리 수.의 자리 위.에 놓겠다는겨. 즉 교황 멋대로 머든 하지 말고 앞으론 여럿 모인 공의회.의 결정에만 따르란 거지. 공의회 소집건도 황제나 군주에게 주고 막막 교황자리도 군주들이 영향을 막막 하겠단 거고. 서임권도 막막 갖고 오겠단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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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튼 종교개혁이든 반종교개혁이든.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는 쉬운 질문이 아냐.
루터는 아이 야. 레오 10세 는 이것저것 다 경험하고 겪은 노회한 할배야.
하튼 저때부터 로마.와 이탈리아.는 피바람이 불어. 이탈리아의 그 즐거운 축제들은 이제 사라진거야. 반종교개혁의 개혁이란 이름으로. 이제 신들은 유일신이어야만 하는거야. 디오니소스 는 사라졌어.
저 이후 나온게 파시즘이야. 이탈리아에서.
독일에서 티나온게 나치즘이야.
저때 사유를 깔아주는 인간들이 있어. 그중 하나가 니체.야
칼융은 예언을 한겨 그래서. 아 큰 전쟁이. 여기 독일에서 터지겟구나.
니체.는 왜 저따위 니체가 된걸까?
다 그게 이유가 있는겨.
칼 마르크스.는 왜 저따위 칼 마르크스가 된걸까?
다 그게 이유가 있는겨
왜 인간들은 니체에 열광했을까?
왜 인간들은 카를 마르크스에 열광했을까?
저 부분이 재밌는거야. 저걸 보면 이땅바닥이 왜 지금 유치한 수준인가를 역시 이해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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