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0th-13th centuries, agriculture expanded into the wilderness, in what has been termed the "great clearances".[4] During the High Middle Ages, many forests and marshes were cleared and cultivated.[4] At the same time, during the Ostsiedlung, Germans resettled east of the Elbe and Saale rivers, in regions previously only sparsely populated by Polabian Slavs.[4] Crusaders expanded to the Crusader states, parts of the Iberian Peninsula were reconquered from the Moors, and the Normans colonized England and southern Italy.[4] These movements and conquests are part of a larger pattern of population expansion and resettlement that occurred in Europe at this time.
10세기를 전후로 잉글랜드는 바이킹들과 싸우고 내전하면서 앵글로 색슨 통일하고. 대륙은 서기 800년 샤를 마뉴 황제등극 까지 통일하고 다시 삼형제 줄기로 분열하다가 백년 지나 오토1세에서 안정 찾기 시작하고. 스페인은 무슬림이 차지한 황금시대.라 하기도 하는 때걸랑.
해서 10세기에서 13세기. 즉 900년대에서 1200년대. 저때 막막 중세가 자리잡는겨. 농업이 확장되고. 황무지가 개간되고. 이때 숲들이랑 습지들이 개간이 된겨. 독일땅은 이전엔 라인강과 엘베강 사이에 주 거주지였걸랑. 사람들이 엘레강 동쪽으로 본격적으로 진출해. 여긴 슬라브들이 분산되어 있었었는데.
그러면서 도시들이 생겨나고 부르조아들이 생겨나. 교회들 더 높이 올라가고. 인구가 증가를 하는겨. 맨날 전쟁질 하던 기사들이 또한 남아도는겨. 상대적 빈곤자들도 또한 늘어나는겨. 이들이 십자군 원정가는겨. 더하여 에스파냐 반도에 무슬림들 들어오고 이탈리아에 노르만들 들어가서리 무슬림이랑 싸우지만 이러면서 유럽에 인구가 막막 증가를 해.
Reasons for this expansion and colonization include an improving climate known as the Medieval warm period, which resulted in longer and more productive growing seasons; the end of the raids by Vikings, Arabs, and Magyars, resulting in greater political stability; advancements in medieval technology allowing more land to be farmed; 11th century reforms of the Church that further increased social stability; and the rise of Feudalism, which also brought a measure of social stability.[1] Towns and trade revived, and the rise of a money economy began to weaken the bonds of serfdom that tied peasants to the land.[1] Land was at first plentiful while labour to clear and work the land was scarce; lords who owned the land found new ways to attract and keep labour.[1]Urban centres were able to attract serfs with the promise of freedom.[1] As new regions were settle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population naturally increased.[1]
타운들이 생기고 무역이 살아나는겨. 사회는 상대적으로 안정이 되어가 특히 알프스 이북은. 봉건제도가 더 확장이 돼. 즉 이전엔 봉건제가 되는 곳도 있고 걍 부락처럼 살던 곳도 있었걸랑. 배런 이란 남작이 그런 거고 당시. 얘들이 또한 큰애들에게 들어가면서 봉건제가 정착되고 킹덤이 세팅되면서 경제가 일어나기 시작해. 화폐경제가 막막 터지는겨. 상업이걸랑. 도시걸랑.
영지를 가진 영주들이 땅은 있는데 노동력이 공급이 못따라와. 도시로 상업으로 막막 빠지걸랑 또한. 땅도 개간이 막막 되어 노는 땅이 막막 생겨 경제적 땅들이. 꼬셔야 해 사람들을. 농노.라는 계약관계가 약해지는겨. 농민들에게 자유가 더 보장되어 가는거고.
인구가 막막 늘어.
Overall, the population of Europe is estimated to have reached a peak of as many as 100 million.[1]
- England – The population of England, around 1.5 million or more in 1086,[5] is estimated to have grown to somewhere between 3.7 million[6] and 5–7 million,[1] although the 14th-century estimates derive from sources after the first plague epidemics, and the estimates for pre-plague population depends on assumed plague mortality, the proportion of children and the rate of omissions in returns of taxable population.[6]
- Italy – Italy's population around 1300 has been variously estimated at between 10 and 13 million.
- France – In 1328, France is believed to have supported between 13.4 million people (in a smaller geographical area than today's)[7] and 18 to 20 million people (in the present-day area), the latter not reached again until the early modern period.[1]
교황은 원래 군대가 없걸랑. 힘이 없어. 신의 이름을 빌리는 것뿐. 십자군 발기로 시선 받았지만 여전히 위태위태 하걸랑. 아 그러다 저 프리드리히가 죽은겨. 이때부터 황제 자리에 공석이 자주생겨. 즉 교황이 승인도 안해주는거고. 선제후들의 영향력도 흩어진 거야.
저 황제가 공석인 시기를. Interregnum 인터 레그눔. 레그눔.이 다스림 왕국. 이니 치자 없는 그 사이. 우리말로 대공위 시대. 하걸랑. 빈 공.
황제 대리와 교황이 붙는거지. 황제 대리가 저 중북부를 먹을려 하는거고. 헌데 여기서 또다른 세력이 등장하걸랑. 에스파냐쪽이야. 레콩퀴스타 하면서리 무어인들 무슬림들을 그라나다 까지 몰아냈걸랑. 물론 그라나다 에서 다 몰아내기까지 저때부터 2백년이 걸렸지만 말이지.
이 에스파냐 이베리아반도에서 유럽에 시선을 돌리는거야. 아 지금까지 안에서만 놀았는데 어느정도 다 했고. 우리네도 본토로 진출좀 해보자우 할거걸랑. 그러자면 그 중심은 교황있는 이탈리아라.
이탈리아 가. 교황 과 스페인 과 신성로마황제 와 프랑스 사이에 놓여진겨.
저때 저 중북부는 그래서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리니.파.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파 로 초기엔 나뉘어. 교황은 저 독일땅 황제에 맞서기 위해서 딴나라를 끌어들이는거지. 왜냐믄 다들 코무네야. 안돼. 지들만 잘났어 이거. 프랑스를 끌어들여. 그러다 스페인 아라곤도 끌어들여.
교황을 지지하는 파는 그러면 또 나뉘는거야. 스페인이 더 낫다. 프랑스가 더 낫다.
이 궬피.파가 백색 궬피. 흑색 괼피.로 그래서 또 나뉘어. 그럼 또 상대가 맘에 안드는 외국 지지하믄 반 교황으로 맞서는거고.
저 틈바구니에 단테.형이 있었던겨. 단테형이 백색 궬피였걸랑. 저때 백색 궬피가 지고 단테는 망명을 하고. 그 망명지에서 신곡.을 쓴겨. 그거 칠팔년 쓰고 끝내고 죽었던 건데. 해서 심리적으로 답답 허무 위기 생존 의 바닥 감정에서 절대적 신앙심에 의해 그걸 쓴거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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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프리드리히 2세.는 이태리 태생이걸랑. 아랍어 까지 하고. 그러면서 시칠리아랑 나폴리 킹덤의 킹에 황제인데.
이전에 저 이탈리아 남부는. 노르만 인들 기사들 불러들여서리 남부 롱고바르디란 게르만을 몰아낸거걸랑. 해적 처리 못하는 세력이라. 여기에 남아있는 비잔틴도 몰아내고. 여기에 시칠리아섬에서 백년 점령했던 무슬림을 이들 노르만인들이 몰아내. 윌리엄 정복왕께서 잉글랜드 점령 직전에 들어와서리 이게 백년이 걸려.
Conquest of Sicily, 1061–1091. 시칠리아섬 정복
Conquest of Amalfi and Salerno, 1073–1077. 아말피. 살레르노.는 남부야.
Byzantine–Norman wars, 1059–1085. 비잔틴 몰아내는 전쟁.
Conquest of Naples, 1077–1139. 나폴리도 점령
그리고. 이 노르만들.이 이 이탈리아 남부를 킹덤으로 쓰는거지. 카운트.나
이들이 저러고 이탈리아 남부. 즉 나폴리 킹덤이랑 시칠리아킹덤.을 서기 1천년 직후부터 진출해서리 점령하는데 거의 백년. 걸리고 유지하는데 백년을 못갔어. 대가 끊긴겨.
프리드리히2세의 엄마가 저 노르만들 핏줄이걸랑. 이걸 그대로 이은겨 재수좋게.
저들이 무슬림 안죽이고 잘 살았걸랑 더불어서리. 그 분위기에서 프리드리히 2세가 어릴때 부터 컸어. 아랍어 까지 해. 완전히 열린 인간이야. 그래서 살라딘 조카 하고 쌈질 안하고 조약하고 왔고.
즉 프리드리히 2세는 호헨슈타우펜 가문이지만. 이탈리아 남부의 분위기는 노르만들이 만든 분위기를 이었을 뿐이야 사람들에겐. 이 사람이 죽은겨. 1250년에.
이탈리아 남부는 서기 천년부터 100년에서 250년간은 좀 자유로운거 였걸랑.
이때부터 개입을 하는거지 이 공백을.
저 아들 역시 아부지랑 냄새가 같걸랑. 교황이 프리드리히 싫어했걸랑. 파문에 파문에.
프랑스를 끌어들여. 교황과 지지파 궬피.가 이탈리아를 먹으라 해. 저 죽은 황제의 자식 만프레드.를 죽이고. 걍 주워 먹는겨.
With Papal and Guelph support Charles descended into Italy and defeated Manfred at the battle of Benevento in 1266 and in 1268 Conradin at the battle of Taglicozzo.
중부 베네벤토.와 타글리코쪼에서 에서 프리드리히 죽은 황제 아들 만프레드랑 독일 애들이랑 황제 지지하는 기벨리니. 물리치고. 프랑스가 먹어 이탈리아 남부를. 원래 프리드리히2세의 킹덤들을 먹은거지. 교황파는 신이 났을라나
아 이제 여기에 눈돌린 에스파냐.가 들어오는거야. 반란세력을 지원해 남부 시칠리아.에. 옛날 쫓겨난 비잔틴도 찝적대지만 이미 비잔틴은 주저앉는 애들이고.
The resulting War of the Sicilian Vespers lasted until the Peace of Caltabellotta in 1302, dividing the old Kingdom of Sicily in two
1300년 넘으면서. 나폴리 왕국.의 이탈리아 남부는 프랑스 앙주가문이 먹고. 시칠리아 섬은 스페인 아라곤이 먹어. 그리고 스페인이 무슬림 다 내쫓고는 힘 더 생기니 저 나폴리 왕국이란 이탈리아 남부 전체를 먹는거지.
즉 이탈리아 남부는 1100년 즈음에 노르만즈. 라는 노르망디 가 먹었지만 그래도 좀 자유로왔걸랑. 코무네들 수준은 안되어도. 프리드리히 죽기전인 1250년. 즉 150년 간은.
그러다가 깝깝한 앙주가문 그야말로 프랑스 애들이 있다가. 백여년을.
더 깝깝한 스페인애들이 점령을 한겨. 이게 나폴레옹 형 오실때까지 이래야만 했어.
Charles V (Spanish: Carlos; German: Karl; Italian: Carlo; Latin: Carolus; Dutch: Karel; French: Charles, [a] 24 February 1500 – 21 September 1558)
이 합스부르크 가문이 최고 패권을 누리기 시작하는게 이 카를 5세(카를로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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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na (6 November 1479 – 12 April 1555), known historically as Joanna the Mad(Spanish: Juana la Loca), was Queen of Castile from 1504, and of Aragon from 1516. Modern Spain evolved from the union of these two crowns. Joanna was married by arrangement to Philip the Handsome, Archduke of the House of Habsburg, on 20 October 1496
그 유메이나한 이사벨라 여왕님 딸이야. 아버지 페르디난도 보다 더 유명한. 레콩퀴스타 하신 분들이야.
미친년 조안나.란 억울 닉넴 붙은. 조안나가. 합스부르크 의 미남왕 펠리페.와 결혼을 해.
. Following the deaths of her brother, Don Juan in 1497, her elder sister Isabella in 1498, and her nephew Miguel in 1500, Joanna became the heir presumptive to the crowns of Castile and Aragon.
결혼하고 조안나 오빠랑 큰언니랑 조카랑 막막 죽어. 카스티야 랑 아라곤 을 물려받을 사람이 없는겨. 큰언니 남편의 씨를 다시 받으믄 되겄지 하는데 이사람도 후손없이 죽어. 그런상태에서 아버지가 죽은겨. 이사벨라 여왕은 먼저 죽고. 받을 사람이 없어. 조안나가 스페인의 최고땅 카스티야.와 다음인 아라곤 을 다 먹게된겨.
이 아들이 카를 5세여. 합스부르크.가 유럽을 다 먹은겨 걍 갑자기. 시안하게.
얘가 신성로마 황제 이면서 스페인 왕이야. 유럽을 얘가 지배를 해.
제일 시샘하는 애가 프랑스야. 견제할 애는 프랑스야. 영국이랑 백년전쟁이기고 뿌듯 해.할 때야.
이탈리아는. 그리고 유럽은. 이때부터는 프랑스 대 스페인이야. 합스부르크 가문이 이때부터 끝까지 얽히는겨.
A 14th Century conflict between the militias of the Guelph and Ghibelline factions in the comune of Bologna, from the Croniche of Giovanni Sercambi of Lu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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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지나면서 농경지 확장. 농업 확대. 도시들 출현. 상공업. 무역. 화폐경제 활발.에서 부르조아. 교회. 대학.
기사들과 상대적 빈곤감.
교황 대 황제 의 사이에서 십자군 레반트 원정.
지중해 무슬림 해적과의 전쟁.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 왕가들 무슬림 몰아내는 힘.
교황 대 황제 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 의 죽음 이후의 공백. 궬프파오 기벨리니.파. 교황당 대 황제당. 프랑스 냐 스페인 이냐.
스페인 개입. 이탈리아를 프랑스 와 양분.
프랑스와 잉글랜드 백년전쟁. 합스부르크의 스페인과 신성로마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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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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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구엘프. 기벨린. 하는데 영어발음 따서리. 이태리말로 쓰자 궬피 기벨리니.로. 가급적 용어는 그리스 이야기 할때는 그리스어로. 로마 이야기 할때는 로마어로. 그나라 언어 표기로 하고자 했는데 써보이 잘 안되네. 눈에 띄는거 바꾸지만 하튼 걍 그런줄 알아라.
마호메트. 해야 하는데 얜 걍 무함마드.라 계속 하자. 걍 그리 왔으니까.
글고. 처음 정리하다보이까는. 자꾸 각론으로 빠져서리 이거. 하튼 걍 막막 그러다 보믄 나중 정리가 자연스레 될테니 걍 그런줄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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