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위도를 보면 48도야. 몽고 울란바토르가 43도야. 바이칼호가 53야. 저 위 삐죽 티나온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55도야. 저기 유럽은 기본적으로 아주 위쪽 땅이야. 추워 기본으로 날씨가. 이걸 항상 인지하도록 해. 저  추운 곳에서 애들이 문명을 개척한겨 유럽애들이. 물론 해발고도는 낮고 바다 영향으로 어느정도 상쇄하지만. 기본적으로  추운 곳에서 살아온 이들이야. 해서 쎈겨 인간들이. 이걸 항상 인지해야해. 쟤덜이 게르만이야. 

 

켈트는 저기보다 낮은 지역 프랑스 남부에서 퍼지는 걸로 봐. 갈루아. 라고 해. 켈트. 갈리아 다 같은말이아. 이들이 이베리아 내려가면 셀티베리안. 하는거고. 얘들이 북쪽으로 가서 바다건너 잉글랜드 아일랜드 가서 게일. 하는거고. 얘들은 기본적으로 게르만 보다는 아늑한 곳에서 퍼진겨.

 

 

게르만은 추위를 타고 나는거지. 쟤덜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아래 주트랜드(덴마크)반도 에서 왼쪽과 아래고 막막 퍼지는겨. 그게 바이킹. 데인족. 주트족. 프랑크족. 동고트 서고트 나중 롱고바르디. 사는 지명과 특성에 따라서 이름을 달리하며 자기들 나름의 인퓨즈 더 믹스쳐 오브 블러드. 피를 그 지역의 특성과 섞는겨. 한무당애들 말대로는 땅의 기와 교감질 하는거지만 아 한무당.

 

 

저 노르망디.에 저 바이킹들인 게르만들이 또한 이주해. 스칸디나비아 지금 노르웨이 하는 그 노르.야. 얘들이 주로 잉글랜드 저 브리튼 갔다가 저기서 앵글족 색슨족 이란 또다른 게르만애들한테 쫓기잖냐. 이들이 또한 많아 이들이 이 프랑스 북부에 자리잡아. 프랑스 북부에 자리잡은 노르인들 해서 저 땅을 노르망디. 하기도 하고 노쓰맨. 북쪽 사람들 해서 노르망디 하기도 하고. 

 

Norsemen are a group of Germanic people who inhabited Scandinavia and spoke what is now called the Old Norse language between 

c.

 800 AD and c. 1300 AD. The language belongs to the North Germanic branch of the Indo-European languagesand is the predecessor of the modern Germanic languages of Scandinavia.

 

 

Normandy (/ˈnɔːrməndi/; French: Normandie, 

pronounced 

[nɔʁmɑ̃di]

 (About this sound listen)

, Norman: Normaundie, from Old French Normanz, plural of Normant, originally from the word for "northman" in several Scandinavian languages)[2] is one of the 18 regions of France, roughly corresponding to the historical Duchy of Normandy

 

그 정복왕 윌리엄. 이 이 노르스멘. 노르족이야. 게르만이야. 얘가 도버해협 넘어서리 브리튼을 먹는겨. 헤이스팅스 전투. 1066 외워 이딴 숫자는. 그해 크리스마스에 즉위해. 이민족이 브리튼 땅에 침범해 치른 전투는 저게 마지막이야. 

 

.

이탈리아에 이 애들이 오는겨 저때 직전에. 노르만디 노르망 공작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처먹을때. 그래서 오히려 잉글랜드 입장에선 노르망디 땅도 잉글랜드 땅이 된겨.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본격적으로 힘을 갖게 하는거야. 이게 둠스데이 북. 그리고 솔즈베리 서약.

 

At Christmas 1085, William ordered the compilation of a survey of the landholdings held by himself and by his vassals throughout the kingdom, organised by counties. It resulted in a work now known as the Domesday Book.

 

토지조사를 문서로 다 하고 세금 기반을 제대로 서베이를 해서 맹글어. 

 

Domesday Book (/ˈdmzd/ or US: /ˈdmzd/;[1][2] Latin: Liber de Wintonia"Book of Winchester") is a manuscript record of the "Great Survey" of much of England and parts of Wales completed in 1086 by order of King William the Conqueror. The Anglo-Saxon Chronicle states

 

명령하고 다음해 1086년. 잉글랜드 왕이 되고 20년 만에 둠스데이 북.을 정리해. 그리고 서약을 받는겨. 맹세의 서약

The Oath of Salisbury refers to an event in August 1086 when William I of England summoned his tenants-in-chief and "landowning men of any account to William I, 'The Conqueror'" to Old Sarum where they swore allegiance to him and to be faithful against all other men. The oath was demanded at a time of crisis when 'The Conqueror' was facing revolt and invasion. There seems little doubt that it was intended as a practical assurance and reminder rather than as a constitutional statement

 

일명 솔즈베리 서약. 둠스데이 북. 만들고 그 의례를 저걸로 하는거야. 저걸 잘 모르는데 사람들이 저러한 의미를. 저건 머 계약서 그따위가 아니라. 
영주들에게 그야말로 복종심을 무의식에 확 박는거걸랑. 이 땅의 모든 영주들은 나의 뜻을 따라라 다른 누구들 보다 앞에 둬라 나를. 
저런건  쎈겨. 저런건  장엄 경건 하게 해. 그럼 사람들이 반항을 잘 못해. 저게 최면 거는겨  쎄게. 저것도 일종의 신앙행위야. 사이비교주들이 잘 써먹는 수법이걸랑. 신도들에게 마음의 벽을 딱 세우는겨 말뚝을 딱 박는겨. 이런게 골때리는겨. 넘어가고.
저때부터 잉글랜드는 봉건제가 자리를 확. 잡는겨. 그리고 잉글랜드가 힘을 확 모으면서 강해지는겨.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저리 잉글랜드를 처먹을때. 직전에 또한 이 노르망디의 노르족인 게르만이 이탈리아를 가는겨 이탈리아 남부를. 

The earliest reported date of the arrival of Norman knights in southern Italy is 999, although it may be assumed that they had visited before then. In that year, according to several sources, Norman pilgrims returning from the Holy Sepulchre in Jerusalem via Apulia stayed with Prince Guaimar III in Salerno. The city and its environs were attacked by Saracens from Africa demanding payment of an overdue annual tribute

 

999년이야. 천년 지나기 직전. 윌리엄이 잉글랜드 가기 전. 
저 노르망디의 노르족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순례를 하고 거 예루살렘 성벽 안에 거룩한 무덤성당. 등의 이름으로 불린 예수 그리스도의 묘.가 있다는 교회.를 다녀오다가 배를 타고 이탈리아의 아풀리아. 그 장화 뒷굽지역 이야 남동부. 여기서 부터 걸어서 노르망디를 갈려 했던거지 다시. 여기서 이탈리아 사람들을 만난겨. 
사라센의 해적질이 극성을 부릴때걸랑. 특히 저 남부. 시칠리아 섬은 이미 무슬림이 점령해서 무슬림 땅이 되었고 거길 항공모함으로 해서 연일 이탈리아 남부와 해변을 약탈하는겨. 그게 왜구애들 수준이 아냐. 왜구는 여기서 코딱지도 먼 튕길 수준이야

저당시 지도를 보면


걍 이탈리아는 걍 주인없는 땅이여. 어찌보면 고대 로마 망하고 이탈리아 킹덤 세워 통일하는 19세기까지 저런겨. 1500년을. 저기서 저들 각각이 피터지게 살아남은겨. 그 중심에 베네치아 라는  위대한 애들이 그야말로 공화국 그야말로 코무네 그야말로 카먼웰스.를 이루며 천년 공화국을 한겨. 베네치아 위대한 나라야. 베네치아는 세계 역사에서 지금까지 나라들 중에 제일 위대해. 이 베네치아를 우리네는 몰라 아무도 그 가치를. 시오노 나나미가 베네치아 해서 짐이 베네치아 하는게 아니라. 걍 진짜로 저 베네치아는 대단한거야. 
베네치아 사람들이 군주론의 마키아벨리. 보믄 머 대단 감동 할리. 가 없걸랑. 그건 삶의 기본이걸랑. 베네치아 치자들 리더들이 다 마키아벨리즘은 기본으로 깔았걸랑. 저기에 눈물을 얹은 이들이 베네치아야. 마키아벨리가 그러는겨. 야 이따위 환상질 망상질 하는 인민정부니 헛소리 하네. 사보나롤라의 개혁 하민서리 청렴 깨끗 해대다가 저 사람들 굶어죽는 거 봐라 저거. 그렇다고 메디치의 멍청이 자식 피에로는 머 저딴 애가 다 있나. 베네치아 애들 좀 배워라. 차가운듯 한 사람 체사레 보르자 좀 배워라 . 어찌 리더란 애들이 인의도덕이란 허상으로다가 사람들 굶주리지 않나 성인군자인척 정작 현실은 전혀 모르지 않나. 사람들은 개멍청해서 저따위 들을 주여 주여 해대고 찬양질 하지 않나. 대체 피렌체가 왜 이따우로 된건가?

그게 군주론이야

베네치아의 도제. 두체. 대통령이 말야. 직접 사령관이 되서리 십자군 원정을 가. 비잔틴으로 가서 그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점령해. 자세한 건 나중에. 그리고 에게해의 주요 물류 거점들을 베네치아가 차지하게 되는데. 이 대통령이 말야 비잔틴에서 죽어 사후관리하다가. 무덤을 세워. 묘비명이 먼지 아냐? 걍  이름 하나야.


엔리쿠스 단돌로. 

Enrico Dandolo (anglicised as Henry Dandolo and Latinized as Henricus Dandulus; 

c.

 1107 – May 1205) was the 41st Doge of Venice from 1192 until his death. 

 

 

 

 

할아부지가 말야. 직접 가서 지휘하고. 끝나고 전쟁. 이기고. 죽고. 저 지금 터키땅에 저리 묻어달라하는겨. 내이름 하나. 엔리쿠스 단돌로. 이것만 박아달라.

 

 

 

 

 

 

허섭하게 살아온 이들이 말이지 무덤에다가 별별 개 치장을 해대민서리. 우리 죽은 애비 묘비에 쓸 글좀 부탁해유 해대민서리 장황하게 

 

인의도덕이 뛰어나시고 덕이  높으셨고 마을에서 민심이 드높았었고 성품이 온후에 글은 어쩌고시며 해서리 모든 인민들을 개돼지로 맹그신 위대하신 선생님 누구누구.

 

 

저기에 먼 도제. 두체 니 하는 직위가 있니. 

 

거 프랭클린 봐 미쿡의 독립혁명의. 걍 인쇄업자 프랭클린.

 

 

 

개 병딱 위선에만 쩔은 애들이  치장 하는거지.

 

 

아 저 할배 존경스러.

 

또 셋네 이거. 

 

쉼. 

 

 

이땅바닥의 지금 지식인자연하는 들이 참  드러운게 말이지.

 

 

동양사 보다가 말야 쟤덜 이야기를 가만히 보믄. 이건  차원이 달라 차원이.

 

 

그 이야기들 역동성과 처절함은 또한 차원이 다르고. 머 그타고 쟤덜이 그 비참질 당한걸 지금에와서 사과해유 사과해유 하니. 우리네가 당한건 당한것도 아냐 쟤덜에 비하믄. 우리네가 당한건 우리네가 모시는 그들이 몬테주마식으로 우리네를 죽였고 우리네는 우리네를 죽여온 것들을 

 

찬양을 해요 ㅋㅋㅋ. 골때리는데 이게. 해서 인간들이 다 정신병자걸랑. 지금 정치가 개판이고 저건 중부아프리카 수준이고 저따위껄 또 정의게 섰네 민주가 섰네 일본아 부럽지? 하는데 웃기지.

 

 

 

쪽바리들이 노부나가. 히데요시. 료마.를 좋아하는건 소하치. 료타로 라는 사가들이 주작해서 만든 이야기 대망 이랑 료마가 간다 언덕위의 구름 나는듯이 따위 개편협한 이야기들을 주작해서 심은거 때메 좋아하는 거다 ㅋㅋㅋ. 일본들 걍 칼잡이에 미친것들일 뿐입니다요. 하민서리 글써대고 돈벌이하고 그걸 좋다고 읽어대고

 

 

끔찍한건데. 넘어가고.

 

.

왜 이땅바닥엔 저따위 쓰레기 들 밖에 없을까? 저따위 쓰레기 구데기들을 띄워주면 니덜 열등감이 해소가 되니? ㅋㅋㅋ

 

 

코리안 이 되어라. 조센징이 되지 말고.

 

.

 

얼마나 유리하냐 코리안의 입장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모아서 제대로 볼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이 코리안이란다. 일본을 중국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이들은 코리안이야. 일단 당사자들은 자기들을 제대로 못봐 밖의 사람처럼. 서양애들이 그래서 그나마 저 짱께이덜 저 쪽바리들을 제대로 보거든. 헌데 저 서양애들보다 더 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코리안이야.

 

저 서양애들이 자기들 쓴 이야기들을 더 넓은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이들이 동양인들이야. 훨 바깥 사람들이 더 넓은 시선으로. 이해관계가 전혀 없어서리. 더 잘 봐. 

 

일본들이 서양을 더 잘봐. 일본들은 자기들을 자기 밖의 사람들보다 못봐. 내면작업이 힘들어 원래.

 

그런 일본을 서양애들 보다 훨 잘 볼 수 있는 애들이 코리안이야. 왜? 말이 비슷하걸랑. 어족이 비슷해. 물론 같은 어족으론 지금은 안치지만. 중국들은 일본어 어려워해. 일본어를 쉽게 익힐 수 있는 인간들은 세계에서 우리 코리안이 최고야. 

 

그런 일본의 이해의 시선을 갖아서리 확장된 시선으로 역시 서양사를 보는겨. 일본애들보다 훨 더 깊게 볼 수 있어. 

 

 

저걸 인퓨즈 더 믹스처 오브 코리언 하면 어마어마한 홀니시스.의 인간들이 나올 수 가 있어. 

 

 

아이들은 절대로다가 이땅바닥 나이 사십이상 처먹은 애들 말글은 듣보지 말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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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노르망디의 노르족들이. 이탈리아를 지나면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권유를 받는겨. 저 지도 보믄 난잡 그 자체걸랑. 

 

 

특히 아래. 시칠리아는 에미레이트. emir. 칼리프 가 교황이고 술탄이 황제야. 똑같아 프레임이. 술탄의 밑에 영지들의 대빵이 에미르.야. 저기서 애드머럴 하는 제독 이란 말이 나와. 아랍어야 어원이.

 

지금 UAE 해대는 유나이티드 아랍스 오브 에미레이트스. 라는 나라가. 저 에미르 애들이 다스리는 영지들.이 합해진 아랍땅. 이란 의미야 나라 이름이.

 

 

쟤들이 저기서 이탈리아 본토를 약탈하는겨. 남부 장화 앞굽 뒷굽은 비잔틴제국 땅. 바로 위 살레르노. 베네벤토.는 롱고바르디 애들이 샤를 마뉴한테 쫓겨서리 내려와서 일군 땅. 얘덜이 해적들을 쫓을 힘이 없어 전혀.

 

노르망디 기사들이여. 당신들이 노르망디 가시면. 사람들 모아 불러서리 해적 좀 쫓아주쇼. 저 허울뿐인 비잔틴 애들 롱고바르디 애들 몰아내고 당신들이 지배를 하던말던. 제발 저 무슬림 해적좀 어드래 해주교.

 

 

이들이 노르망디를 가서 기사들과 보병들을 데려오는겨. 

 

In 1024, Norman mercenaries under Ranulf Drengot were in the service of Guaimar III when he and Pandulf IV besieged Pandulf V in Capua. In 1026

 

메르세너리. 용병이야. 유럽은 용병의 시대야 또한. 노르만들이 와서리 저들을 몰아내고자 하는겨. 

 

Conquest of Naples, 1077–1139Kingdom of Sicily, 1130–1198
이탈리아 남부는 나폴리를 최종 접수하면서 롱고바르디.와 비잔틴을 내쫓고 이 노르망디.가 접수를 해. 
시칠리아는 1100년 지나면서 다 몰아내서 접수하고. 즉 저때부터. 서기 천년 부터해서 백년이 걸려. 나폴리 중심으로 남부 점령 통일하고 시칠리아는 그 다음에 무슬림 다 몰아내고.
저 백년동안 비잔틴. 롱고바르디. 무슬림. 을 몰아낼 동안에 같은 노르망디의 윌리엄은 잉글랜드 점령해서 지배하는거고.
1100년 전후부터 이태리 남부는 나폴리. 시칠리아. 두개로 뭉쳐진겨. 이걸 다스리는건 노르망디 사람들이야. 즉 프랑스.
저기 왕조는 노르망디에서 파견된 용병 기사들의 중심인 사람이 가문을 저때 일으켜서 왕조를 세운겨 독고다이로 결국. 헌데 이사람들이 무슬림들이랑 같이 더불어서 살았어. 
저 분위기 속에 프리드리히2세가 자란거고.

The Hauteville family, also called the Hauteville dynasty or House of Hauteville (FrenchMaison de HautevilleItalianCasa d'Altavilla), was a Norman family originally of seigneurial rank from the Cotentin

 

저 가문이 오트빌 가문. 오트빌 왕조. 저들이 직접 다스리는거지. 그러다가 이들이 대가 역시 끊기는겨 백년이 되어가면서. 마지막에 남은 후계자가 딸이야.

 

이 딸이

 

Constance (2 November 1154 – 27 November 1198) was Queen regnant of Sicily in 1194–98, 

 

시칠리아의 여왕 콘스탄체. 고 이 여자가 프리드리히2세의 엄마야. 이여자가 죽고서 아들이 이 시칠리아의 왕이 되는거지. 
이때부터 이탈리아 남부는 노르망디의 오트빌 가문이 끊긴겨. 쟤 부계인 호헨스타우펜 독일땅 가문이 드러나는거지. 얘 아부지가 황제 하인리히 6세. 할아버지가 황제 붉은수염 프리드리히1세걸랑. 할아버지는 십자군 가다가 터키땅에서 횡사하고 심장마비로. 


문제는 이 프리드리히2세가. 죽는 때야

Frederick II (26 December 1194 – 13 December 1250; SicilianFidiricuItalianFedericoGermanFriedrich)

 

1250년에 죽걸랑. 

 

 

이때부터 소위 궬프 기벨리니 란 파당이 토스카니를 중심으로 형성되서 내분이 생기는건데. 왜냐면 여기가 로마로 가는 중심이걸랑. 이 피렌체가 특히.

 

 

 

쉼.

 

忠臣蔵(ちゅうしんぐら)は、 人形浄瑠璃文楽)および歌舞伎の演目のひとつで、1748年に大阪で初演された『仮名手本忠臣蔵』の通称。また歌舞伎や演劇映画の分野で、江戸時代元禄期に起きた赤穂事件を基にした創作作品。

 

충신장. 추신구라. 일명 47인의 사무라이. 죽인다 죽여. 이 이야기.

 

 

이것도 제대로 번역된게 2000년 지나서 나왔다 한글로.  한심한거다 이땅바닥 수준이. 저걸 러일전쟁때 말이지. 그 미국 루스벨트.가 중재하면서 일본을 편들걸랑. 일본애가 나중에 인사를 해 고맙다고. 그때 루스벨트가 잠깐만요 하면서 꺼내든 책이 두권이야 하나가 무사도. 하나가 저 추신구라. 다 영역된거지. 

 

일본애들이 자기들꺼 알릴라고 저때 지들이야길 영역  해. 이땅바닥 조선들은 당시 영역해서 멀 알렸냐. 그 지쩍인 수준 그 열림의 차이가 지금과 다를게 전혀 없는데.

 

루스벨트가 그러는겨. 내 당신들 이야기.  감동했수다래. 당신들이 러시아를 이길 수 밖에 없는거요. 당신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네는 일본탓 할때 쟤덜은 저러걸랑. 

 

 

저것도 펴낸애들 그 머릿말 보믄  웃겨. 우리네는 일본을 알아야 하므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고전드를 번역하므니다. 일본의 추신구라. 독자 여러분. 그래도 우리에겐 추신구라와 버금가는 이야기가 이쓰므니다.
바로 춘향전! 그럼 춘향전과 추신구라는 어드래 비교가 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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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나 할말이 없스므니다래.


소하치의 대망. 거 세명의 이야기. 저 일본이 얼마나 잔인 허섭한 애들을 얼마나 띄워주는지 함 보까요? ㅋㅋㅋㅋ 연재를 시작하므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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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 부러워 저리해서 돈벌미 사는게.
프리드리히 2세가 죽어. 교황은 이 프리드리히 2세를  싫어해. 감히 무슬림과 예루살렘을 나누고. 시칠리아 섬에선 무슬림들이 예배를 하지 않나. 
프리드리히 2세의 자식들 중에 중요한 사람을 고르면. 하인리히. 콘라트. 만프레디.

Henry (VII) (1211 – 12 February ? 1242), a member of the Hohenstaufen dynasty, was King of Sicily from 1212 until 1217 and King of Germany (formally Rex Romanorum) from 1220 until 1235, 

Henry was born in Sicily, the only son of King Frederick II and his first wife, Constance of Aragon

 

Conrad (25 April 1228 – 21 May 1254), a member of the Hohenstaufen dynasty, was the only son of Emperor Frederick IIfrom his second marriage with Queen Isabella II of Jerusalem. 

 

Manfred (Sicilian: Manfredi di Sicilia; 1232 – 26 February 1266) was the King of Sicily from 1258 to 1266. He was an illegitimate son of the emperor Frederick II of Hohenstaufen

 

프리드리히가 정식부인이 세명이야. 에스파냐 아라곤의 콘스탄체. 예루살렘의 이사벨라 2세. 잉글랜드의 이사벨라. 

 

그리고 만프레디.는 

 

Bianca Lancia d'Agliano (also called Beatrice and Blanca; c. 1210 – c. 1246) was an Italian noblewoman.[1] She was the mistress and later the last wife of the Hohenstaufen emperor Frederick II.[1] The marriage was conducted while she was on her deathbed, therefore it was considered non-canonical.

 

비안카 란차. 라는 여자에게서 낳는데. 애인이엇걸랑. 헌데 결혼 서약을 안한겨. 이여자가 죽을 때 프리드리히가 그 죽는 침상에서 결혼서약을 해. 그래서 정식부인으로 안치는거지.

 

헌데 만프레드.에게 시칠리아를 준겨 프리드리히가. 얘를 아꼈걸랑. 프리드리히.는 여자를 좋아했어. 연애의 끝판왕이야. 헌데 외모는 정작 별로야 무슬림 사람이 묘사한거 보믄. 리차드가 짱이야.

 

저 자식들이 다 배다른 애들이야. 헌데 문제는 저리 보듯이 하인리히랑 콘라트도 일찍 죽어. 만프레디가 제일 어리고. 
만프레디.가 정통성이 약하기도 하고. 죽은 배다른 형 콘라트.의 아들을 올리고 섭정을 하는거지. 얘가 교황이랑 맞서는겨. 
이때 교황을 지지하는 궬프파와 황제의 자식들 지지하는 기벨리니파.로 본격적으로 내분이 나는거고. 

Guelph (often spelled Guelf; in Italian Guelfo, plural Guelfi) is an Italian form of the name of the House of Welf, the family of the dukes of Bavaria (including the namesake Welf II, Duke of Bavaria, as well as Henry the Lion). The Welfs were said to have used the name as a rallying cry during the Siege of Weinsberg in 1140, in which the rival Hohenstaufens of Swabia (led by Conrad III of Germany) used "Wibellingen", the name of a castle today known as Waiblingen, as their cry; "Wibellingen" subsequently became Ghibellino in Italian

 

궬프.는 독일땅 바바리아(바이에른)의 벨프 가문. Welf 의 이태리어. 

 

기벨리니.는 호엔슈타우펜 가문. 프리드리히 집안. 독일어로 이들을 비벨링겐. 성에 살았다 해서리 비벨링겐. 했다는거지 사람들이. 이게 이태리어로 기벨리노. 여서리 기벨리니. 하는거고

 

 

교황이 저 기벨리니인 호엔슈타우펜의 자식. 승인되지도 않은 에미의 자식.에 맞서기 위해서 프랑스애들을 불러 들이는거야.

 

 The pope first tried to sell the Kingdom of Sicily to Richard of Cornwall and his son, but in vain. In 1263 he was most successful with Charles, the Count of Anjou, a brother of the French King Louis IX, who accepted the investiture of the kingdom of Sicily at his hands. 

 

시칠리아 킹덤이 결국 나폴리 까지 영향력 있는거고. 시칠리아 킹덤을 파는겨 교황이. 만프레드의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너무 싫어. 이태리 북부의 사람들도 싫어해 왜냐믄 프리드리히가 통일할라고 다 먹을라 했걸랑. 해서 랑고바르디 연맹도 맹글어 대항한거고. 
잉글랜드의 리차드 한테 문의 해. 거절했어. 프랑스 앙주백작 샤를 한테 찝쩍대. 샤를은 성루이 9세의 동생이야. 막내걸랑. 얘가 시칠리아 먹겠다고 한겨.
저 잉글랜드의 리차드나 앙주의 샤를 이나 결국 노르망디 애들이걸랑. 교황이 걍 보기엔. 즉 저 시칠리아의 원 주인은 저 호엔슈타우펜 독일 애들이 아니라 니덜 노르당디 애들이 백년 싸워서리 이후 백년 지배한거 원래 니덜꺼다 갖고 가라 하는거지.
이걸 앙주백작 샤를 이 콜을 받은겨. 
샤를 이나 이 형 성루이9세는 루이8세 아들이고 할아버진 필리프2세걸랑. 이 필리프 존엄왕 딱지붙은애가 리차드가 살라딘이랑 겨룰때 같이 갔다가 지 혼자 돌아와서리 리차드 막내 동생 존 꼬셔서리 프랑스의 노르망디 앙주 등 아키탄 땅을 먹걸랑. 그거땜에 리차드는 화급히 빠꾸해서리 다시 재정벌 하다가 죽고. 그 존 이 왕 되고 지가 복구할라다가 쫓기나고 실지왕 래크랜드 딱지 붙고. 그리고 엄마 엘레노어 죽어서리 저 프랑스에 있던 잉글랜드 땅 이 다 이 카페왕조 애들 땅이 된거걸랑. 아  이 기회에 샤를 동생아 닌 이탈리아 먹어라 하는거지 이 힘으로다가. 교황이랑 이탈리아애들이 먹어달라고 하는데 아쉬울게 없걸랑

Charles' army, some 30,000 strong, entered Italy from the Col de Tende in late 1265. He soon reduced numerous Ghibelline strongholds in northern Italy and was crowned in Rome in January 1266

 

얘가 알프스를 넘는겨 1265년에. 로마 교황이 환대하는거지. 

 

 After some minor clashes, the rival armies met at the Battle of Benevento on 26 February 1266, and Manfred's army was defeated.[9] The king himself, refusing to flee, rushed into the midst of his enemies and was killed.

 

베네벤토. 이태리 중남부에서 만프레디.를 죽이는겨. 시체는 교황이 강에 뿌렸대. 

 

이 프랑스 앙주 애들이 먹은겨. 이탈리아 남부를. 시칠리아 포함해서.

 

그리고 그 문명의 공존. 무슬림들도 같이 예배하던 시칠리아.에서 무슬림을 다 내 쫓는거지.

 

 

프랑스.는 현실감이 없걸랑 그리스도에 대해선. 이전에 썰했듯이.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걸랑. 이따위 야만문명이 어찌 있다니 같이. 거기 교회들이 이슬람이랑 그리스도랑 양식이 짬뽕이걸랑. 웬만한건 다 깨부스는거지

 

 

시칠리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거야.

The Sicilian Vespers (Italian: Vespri siciliani; Sicilian: Vespiri siciliani) is the name given to the successful rebellion on the island of Sicily that broke out at Easter, 1282 against the rule of the French-born king Charles I, who had ruled the Kingdom of Sicily since 1266. Within six weeks, three thousand French men and women were slain by the rebels, and the government of King Charles lost control of the island. It was the beginning of the War of the Sicilian Vespers.


시칠리아의 만종. 베스퍼즈. 저녁기도. 1282년. 프랑스애들을 내쫓는거지. 여기에 뒤에서 에스파냐 아라곤이랑 비잔틴이랑 지원하는거고. 아라곤의 콘스탄차 가 프리드리히의 부인이었걸랑. 그리고 이베리아반도 레콩퀴스타 가 점점 마무리 국면이걸랑. 에스파냐의 아라곤이 힘이 있어 1200년도를 넘어오면서. 레콩퀴스타 끝내고는 에스파냐가 유럽을 먹는거고

The resulting War of the Sicilian Vesperslasted until the Peace of Caltabellotta in 1302, dividing the old Kingdom of Sicily in two. The island of Sicily, called the "Kingdom of Sicily beyond the Lighthouse" or the Kingdom of Trinacria, went to Frederick III of the house of Aragon, who had been ruling it. The peninsular territories (the Mezzogiorno), contemporaneously called Kingdom of Sicily but called Kingdom of Naples by modern scholarship, went to Charles II of the house of Anjou, who had likewise been ruling it. 

 

그리고 나서 이탈리아 남부는 두개로 나뉘는겨. 시칠리아 섬은 에스파냐 아라곤 가문이. 반도의 남부는 나폴리 왕국.이라고 현대 사가들이 이때 네이밍을 처음 하는겨. 이 나폴리 왕국은 프랑스 앙주 가문의 저 샤를.이 갖기로.

즉 정리하면. 프랑스의 샤를이 1268년에 이탈리아 남부를 다 먹었는데. 20년 후에 깝깝함 열받은 시칠리아 사람들이 폭동 일으키고 쫓겨나서 섬 빼고 반도의 남부만 지배를 하고 이걸 나폴리왕국 시작했다는거지 1300년 시작하면서.

다시 정리하면 말야
서기 1000년에 반도 남부와 시칠리아섬에 노르망디의 노르만들이 콜을 받아서 백년을 싸워. 각개전투로. 1100년 전후에 반도의 남부 점령하고 시칠리아 점령하고 노르망디  땅이 돼.
백년 가다가 1200년 전후에 대가 끊겨서리 이게 딸의 아들인 프리드리히2세 호엔슈타우펜 독일에 넘어가. 허나 그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가는거지.
1250년에 죽어. 중요한 연도야. 막내 만프레디가 버텨. 프랑스의 샤를 백작이 점령해. 곧 폭동이 나. 쫓겨나. 시칠리아는 프리드리히 부인 아라곤 땅이 되고. 반도 남부는 샤를 프랑스 땅이 돼.  1300년.

1000년에서 1100년은 전쟁. 1100년에서 1250년은 노르만과 프리드리히. 1300년까진 프랑스 앙주. 
1300년 부터 프랑스 대 에스파냐. 즉 앙주 대 아라곤.

저 이후론 쫓겨난 앙주의 나폴리는 저 시칠리아는 우리꺼다 아라곤은 나가라 하는거지 계속. 해서 앙주와 아라곤은 툭하면 싸우는거지 백년을. 그러다가 역시 대가 끊겨.
저당시 알프스 위쪽은 백년전쟁이야 잉글랜드와 프랑스. 잉글랜드는 자기들은 빼앗긴 땅인겨 병딱이 존 래크랜드때메 프랑스 땅 반을 다 뺏긴거걸랑. 리차드 죽고 동생 존.이 가져올라다가 패하고. 엄마 엘레노어도 죽고. 이를가는거지. 백년동안. 준비하고 바다건넌게 백년 후인거야. 백년 전쟁을 해. 프랑스는 처음에 다 뺏겨. 
에스파냐는 점점 무슬림 쫓아내는 막바지야. 
1400년이 지나가는겨.

The Hundred Years' War was a long-running struggle from 1337 to 1453

 

The Fall of Constantinople (Greek: Ἅλωσις τῆς Κωνσταντινουπόλεως, Halōsis tēs Kōnstantinoupoleōs; Turkish: İstanbul'un FethiConquest of Istanbul) was the capture of the capital of the Byzantine Empire by an invading army of the Ottoman Empire on 29 May 1453. 

 

The Reconquista[a] (Spanish and Portuguese for the "reconquest") is a name used to describe the period in the history of the Iberian Peninsula of about 780 years between the Umayyad conquest of Hispania in 711 and the fall of the Nasrid kingdom of Granada to the expanding Christian kingdoms in 1492.

 

1453년에 백년전쟁. 프랑스가 이겨. 5월에 콘스탄티노플이 메메드2세에게 함락

 

1492년. 에스파냐.가 레콩퀴스타를 끝내.

 

 

저 두 숫자는 외워. 연도.

 

 

프랑스 랑 에스파냐 가 붙는겨. 이제. 그 가운데에 저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는 프랑스. 시칠리아는 에스파냐.

 

 

Queen Joan I also played a part in the ultimate demise of the first Kingdom of Naples. As she was childless, she adopted Louis I, Duke of Anjou, as her heir, in spite of the claims of her cousin, the Prince of Durazzo, effectively setting up a junior Angevin line in competition with the senior line. This led to Joan I's murder at the hands of the Prince of Durazzo in 1382, and his seizing the throne as Charles III of Naples.

 

프랑스 샤를의 앙주가문이. 조안1세 여왕이야 나폴리의. 자식이 없어. 앙주 공작 루이1세를 후계자로 지정해. 조안의 사촌인 두라초의 왕자가 반기를 들어. 여왕을 얘가 죽여. 그리고 왕위에 올라.

 

 

The two competing Angevin lines contested each other for the possession of the Kingdom of Naples over the following decades. Charles III's daughter Joan II (r. 1414–1435) adopted Alfonso V of Aragon (whom she later repudiated) and Louis III of Anjou as heirs alternately, finally settling succession on Louis' brother René of Anjou of the junior Angevin line, and he succeeded her in 1435.

 

쟤가 아들이 없어. 딸 조안2세가 힘이 없으니 눈치보다가. 후계자 후보를 둘을 고른거지. 아라곤의 알폰소. 앙주의 루이. 완전 적대적인 가문들인데 말야. 그리곤 둘을 버리고 걍 앙주의 르네.를 후계자로 정하고 1435년에 얘가 승계한겨.

René of Anjou temporarily united the claims of junior and senior Angevin lines. In 1442, however, Alfonso Vconquered the Kingdom of Naples and unified Sicily and Naples once again as dependencies of Aragon. At his death in 1458, the kingdom was again separated and Naples was inherited by Ferrante, Alfonso's illegitimate son.

 

시칠리아의 군주 집안인 알폰소.가 열받은거지. 나폴리를 먹어. 그리고 죽고는 나폴리는 아라곤의 알폰소의 자식에게 넘어가는거지. 저때가 백년전쟁 끝나고 이베리아 레콩퀴스타 끝 갈때고.

Ferdinand I (2 June 1423 – 25 January 1494), also called Ferrante, was the King of Naples from 1458 to 1494

 

저 아라곤의 페란트.가 나폴리 왕이 죽었어. 1494년.

 

 

1494년. 백년전쟁 이미 끝났고. 2년전에 레콩퀴스타 끝났고. 우리네는 연산군 즉위고.


.
프랑스가 저 나폴리 우리꺼 하는거지.

Ludovico Sforza of Milan, seeking an ally against the Republic of Venice, encouraged Charles VIII of France to invade Italy, using the Angevin claim to the throne of Naples as a pretext. When Ferdinand I of Naples died in 1494, Charles VIII invaded the peninsula with a French Army[3] of twenty-five thousand men (including 8,000 Swiss mercenaries), possibly hoping to use Naples as a base for a crusade against the Ottoman Turks.

 

밀라노의 스포르차 이야긴 넘어가고. 샤를8세가 이탈리아를 쳐들어가는겨. 알프스를 넘는겨. 2만5천 병력을 갖고. 명분은 오스만이 점령한 콘스탄티노플 되찾겠단거고 그 전초기지로 나폴리를 쓰겠다는 거걸랑. 속내는 나폴리 원래 우리꺼 하는거지. 십자군 관시미는 없어 전혀. 십자군은 성루이 죽고 끝난겨. 헌데 저놈의 십자군이란 성전. 성스런 전쟁은 여전한거지.

 

 

 

저 샤를 8세가 넘어올때인 1494년의 지도.

 

 

The arrival of Charles's army outside Florence in mid-November 1494[6] created fears of rape and pillage. The Florentines were led to exile Piero de' Medici and to establish a republican government. Bernardo Rucellai and other members of the Florentine oligarchy then acted as ambassadors to negotiate a peaceful accord with Charles.

 

저 샤를 군대가 피렌체 입구에 들어온게 1494년 11월 중순. 위대한 로렌초.의 장남 피에로는 토껴. 그리고 인민정부가 들어서. 샤를을 달래서리 지나가게 해. 

 

저때 제일 신난게 사보나롤라.인겨

 

Girolamo Savonarola (

Italian: 

[dʒiˈrɔːlamo savonaˈrɔːla]; 21 September 1452 – 23 May 1498) 

 

 

 

야 이 드뎌 기독의 왕 프랑스께서 오싰다!! 저 부정 부패 적폐 들 다 죽여라! 

 

이땅은 썩고 썩었다. 교황은 돈만 밝히고 인간들도 돈만 밝히고. 현세에 매달리고. 피렌체가 정화가 되는 때이니라! 프랑스 만세!

 

 

저 샤를 군대가 들어오는건 2백년 전에 샤를 백작이 들어오는것과 전혀 달라. 앙주의 샤를 백작이 들어온건 교황이 부른거걸랑. 이태리 북부사람들도 부른거걸랑. 환영한겨. 그리고 저 아래의 노르망디 이은 프리드리히 황제애들 쫓아내시고 저땅 가지쇼 한거걸랑.

 

 

헌데 저건 교황이 부른게 아녀. 밀라노의 스포르차가 불렀지만 일 개인의 문제고. 얘도 나중 반성  하고. 

 

저 군대가 들어오는걸 마키아벨리.가 보는겨. 그리고 체사레 보르자. 가 보는거고

 

 

 

2백년전의 그때도 생각이 나는겨.

 

 

대체 우리네는 무엇인건가. 우리들은 고대 로마때 이탈리아라는 하나의 정체성이 있었잖은가? 헌데 그 이탈리아 라는 정체성이 어디간건가. 저리 외국 애들이 저리 쉽게 넘어와서리 이땅바닥을 군화발로 밟는게 맞나? 2백년전에도 그렇고. 대체 이게 뭔짓인가?

 

 

 

저때 사람들이. 고대 로마 이후 1천년 지나서 처음으로다가. 각성을 한겨. 그 중심에 두 인간이 마키아벨리와 체사레 보르자. 인거야.

 

체사레 보르자.는 이탈리아를 다 점령할려 한거였어. 마키아벨리는 뿅 간거였고. 저 체사레 에게 붙는 사유가 붙는 거대한 문명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야. 체사레 보다 스무살정도 많아. 체사레가 레오나르도에게 도시설계를 맡겨. 나중에. 

 

레오나르도.는 체사레 죽고. 자기 생각 활용할 군주 없어서리 프랑스 가서 여생 보내는겨. 프랑수아에게 고맙다고 모나리자는 프랑스에 주는거고.

 

 

The French finally reached the city of Naples in February 1495, capturing it without a siege or a pitched battle. Charles stayed in Naples for a number of weeks, but on 20 May 1495, with the newly formed anti-French League of Venice threatening to cut off his return through northern Italy, Charles left Naples to return to France.

 

11월에 피렌체 들어가고. 로마 에 가서 교황 만나고. 교황 아들 체사레 보르자 인질로 잡고 나폴리로 가다가 체사레 토끼고. 나폴리에 간게 다음해 2월.

 

이때 베네치아 중심으로 열받아서리 이탈리아가 뭉치는겨. 샤를 8세가 도망가. 

 

 

 

Formation
20 January 1479
23 January 1516
• De jure
9 June 1715

 

스페인. 에 대한 공식이름이 언제부터인가.인데. 스페니쉬로 에스파냐. 이까 에스파냐.로 쓰면

 

 

The Islamic Almohad dynasty and surrounding states, including the Christian Kingdoms of PortugalLeónCastileNavarre, and the Crown of Aragon, c. 1200.

 

 

1200년 즈음의 저 에스파냐.를 보면. 포르투갈 레온 카스티야 아라곤 나바르. 다섯 왕국이걸랑.

 

저기 다섯에서. 저 제일 큰 카스티야 와 레온. 을 이사벨라 여왕이 받어. 그리고 아라곤의 페르디난도2세와 결혼을 해.

 

They were married immediately upon reuniting, on 19 October 1469, in the Palacio de los Vivero in the city of Valladolid.

 

저 둘이 결혼 스토리도 오십부작이니까 넘어가고. 1469년도야 결혼이.

 

저 페르디난도.는 시칠리아 왕이었다가. 아라곤을 나중에 물려받는겨. 그 해가 저기 써있는 1479년이야.

 

 

해서 저 1479년. 결혼하고 십년 후. 에. 아라곤 이란 말은 안쓰고 잘. 역사가들에 의해서. 저때부터 에스파냐. 스페인. 하는겨.

 

저 1479년에 이베리아 반도 안에 저 포르투갈 애들과 싸우는겨 또. 저때 포르투갈이랑 돈 주고 받고 협약맺으면서 이후 승계권 간섭. 제해권 다 정리하는거고. 같은 해에.

 

 

1479년에 두 부부가 나눠서리 관리하지만 저때부터 에스파냐.

 

실질적인건 1516년이야. 왜냐

 

이사벨라 여왕이 죽어. 1504년. 엄마의 땅을 조안나 가 물려받아. 아버지 페르디난도가 1516년에 죽어. 이 아라곤 땅을 물려받을 이가 역시 없어. 이땅도 물려받아.

 

즉 저 부부가 다 죽고나서 조안나에게 승계되는 해가 1516년 이야.

 

이 아들이 카를 5세(카를로스)야. 

 

아버지가 합스부르크 가문이걸랑. 이때도 별로야 걍 신흥가문 정도. 이전 막시밀리언 이 황제였지만.

 

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미남왕 펠리페.가 걍 공작이었다가 부인 조안나가 물려받으면서리 에스파냐 왕이 되면서리 이 합스부르크 가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거걸랑.

 

이 카를 5세가 할아버지를 이어서리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고 동시에 에스파냐 왕이된거걸랑. 

 

Charles V (Spanish: Carlos; German: Karl; Italian: Carlo; Latin: Carolus; Dutch: Karel; French: Charles, [a] 24 February 1500 – 21 September 1558) 

 

1500년 부터 60년 가까이 살은겨 얘가. 이때 프랑스는 프랑수와 1세. 저 비잔틴 오스만제국은 바예지드 2세. 아주 제대로 붙는건데.

 

쟤부터는 황제 는 에스파냐 야. 합스부르크. 이고. 동의 이음어들이야.

 

.

 

샤를 8세가 저 1494년에 이탈리아를 침범했다가 튀나오고. 그리고 이때부터 이탈리아는 심심하믄 넘어오는 땅이 된겨. 
프랑스 와 합스부르크의 에스파냐. 
백년전쟁 이긴 힘. 무슬림 몰아내고 합친 힘.
샤를 8세 나가고 계속 불안해. 프랑스 루이 또 넘어오고 황제 막시밀리언도 넘어오고. 이탈리아는 지들끼리 내전하고.

그러다가 루터 면죄부 게시판 거는게 1517년이야. 

영국은 짜졌어. 전쟁 지고 지들끼리 내전해야해. 책임공방해야하니까. 장미전쟁도 하고 장미나눠주민서리
프랑스가 못봐주는거고 에스파냐 황제의 합스부르크.를 이 합스부르크의 패권은 나폴레옹까지 가는겨 이 힘을 지우는 시간은.
저 사이에서 이탈리아가 피터지는거고. 로마의 약탈인거고. 루터애들이 신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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