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한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이 가장 크다.

 

한글은 한문을 이해한 바탕으로 독자적이고 위대한 문명을 만들라는 대의가 또한 숨다.

 

한글은 굴리고 바꾸고 요리조리 무한으로 활용하여 무한의 상상력을 퍼날르라는, 슬픈 벅차오름의 세종의 외침이 또한 있다.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한 갑골문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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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자를 모르면 수준 높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없나?

A. 한자를 몰라도 얼마든지 수준 높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독서를 많이 하면 누구든 훌륭한 한국어를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습니다. 한자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한자를 배워도 좋고, 한자보다 다른 데 관심이 있다면 다른 것을 더 공부하면 됩니다.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하는 것이 지식을 효과적으로 더 많이 얻는 방법이고 거기에서 얻은 지식으로도 우리말을 풍부하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http://topa.co.kr/archives/198

과연 한자를 몰라도 얼마든지 수준 높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대게 한문을 별개로 생각하는 한글을 사랑하는 이들의 주장인듯하여 인용하였다.

 

세종이 좋아하실까?

 

실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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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경술 2번째기사 1443년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于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二終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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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이란 네 글자가 처음 등장한다. 세상에. 1443년. 12월 30일. 마지막날. 실록 102권의 마지막 기사. 종 終. 뭔가 느낌이 남다르다. 경술년 마지막 날. 마지막 기사. 에 등장한 훈민정음.
한글번역은 현대에 번역된 기사. 한문을 보면. 상, 실록에서 사관이 임금을 서술할 때 上이라 함. 언문 諺文. 언. 이란 글자는 고대에 언덕이나 바위에 새긴 문자나 그림이다. 상대적으로 구미에 맞고 편한 일상어로 격을 좀 낮춘 감이 있다. 이는 명나라와의 관계에 따른 낮춘 표현으로 보인다. 그래서 스스로 언문. 이라 비칭했다 세종은. 훈민의 훈, 이란 글자도 원래 뜻은 그냥 막막 쉴틈없이 쪼아대며 꾸짖고 명령하는 의미이다(모든 한문 어원은 본인이 풀은 갑골문 형상사전 한글풀이 참조). 훈민정음의 훈민 이나 언문 이란 단어들이 한글 자체의 수준이 아래다 하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슬픈 세종의 마음이 담겨있다. 세종은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조선의 처지를 알고있지만, 독자적인 제도로 그만의 단독적인 아름다운 왕조를 만들고자 하는 꿈이 그에겐 있었다. 세종대왕이 칭송되는 위대한 이유다. 그는 그 꿈을 또한 실현하고자 했다. 실록을 보면 그 마음이 절절하다.

其字倣古篆, 훈민정음이란 그 문자들은 본떴다 고전, 고대의 전문, 전서를. 전서는 내가 첨부한 중국 갑골문 우리말 풀이에 시기별 문자를 별도 정리한 그것을 보면, 갑골문과 금문에 보이는 대전체, 그리고 진시황때 널리 쓰였다는 소전체를 말하나 주로 대전체로 나는 추정한다. 옛 고 古. 자세힌 안봤다 씌바. 걍 감이다. 

凡于文字及本國俚語, 문자 부터 본국 이어까지 쓸 수있다는 건데. 저기서 문자 文字는 한문이겠다. 훈민정음은 그 시대 문자. 라는 두글자에 포함되지 않을 듯싶다. 그냥 정음. 바른 소리다. 문자 라는 두 글자는 무게감이 다르다. 그러한 고급진 한문이란 문자, 중국말 부터, 본국이어, 본국은 조선, 이어, 는 이언과 같다. 이 俚는 아주깡촌의 허섭한 민. 의 의미다. 속되다 촌스럽다 속요 할때 이다. 즉 본국이어 라 하면 조선의 구어들을 매우 낮춘 말이다. 세종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기 왕조의 말을 이어, 라고 쓸 수 밖에 없는, 세종의 마음, 그리고 어떤 마음일지 모를 사관의 서술. 사관은 당연히 자기나라 말은 이어, 속된 말로 여겼을까? 전환이 무궁무진한 기능을 갖고 있는다 하여 훈민정음 이라 지었다. 고 썼다. 어째 앞말과 그 귀결의 네 글자 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런 개그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왕조 조선.

정음의 音, 은 예기 악기편의 소리 성, 소리 음, 소리 악, 을 나눌때 나름 성과 음과 악을 정의하지만, 음 이란 단어는 그나마 가운데 위치하는 정도의 단어다. 아 이 예기 악기편을 한번 해석해보고 싶지만 구찮다. 여하튼 이것도 고문을 보면 음 音이란 것도 그냥 구어다, 마음속에서 나오는 속내를 그냥 내뱉는 언어다. 날소리의 소리 성 보다 조금 격이 위에 설 뿐. 

훈민정음. 이란 네글자. 언문이라고도 별칭하는, 자기비하 할 수 밖에 없는, 업신여김을 당할수 밖에 없는 저 네글자는, 그러나 그 가치는, 속에 품은 세종의 위대함은 따로 있었다.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네덜 명나라 리덜의 그래 고급진 문자라 하자, 그따위 니들 문자도, 그리고 니덜이 보기엔, 아니, 내 왕조 조선이 속국이라 차마 제대로된 자리의 표현을 못해서리 본국이어 라고 쓸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이 글자(자 字 란 단어로 눈치슬쩍 보며 한글자 겨우 넣어준다)는 말이다 네덜이 보기엔 손나리 간단하고 없이보여도, 한문이란 문짜와 우리 이어를 다 깨우치고 배울 수 있고 쓸수도 있어! 그리고 전환이 무궁무진해! 초성 중성 종성 막막 바꾸고 굴려보고 제멋대로 돌리고 자음 모음 지멋대로 막막 맘대로 활용해도 표현 못할게 없는 끝이 없는 도구야! 네덜이 알어?! 이게 얼마나 위대 衛大한 "문자 文字" 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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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실록, 경술년 마지막날 마지막 기사엔, 세종의 서글품 속의 희열 기쁨 눈물 자랑스러움 복받침의 역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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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짧게 정리하고 정작 3년 후의 기사를 본문으로 쓰려 했건만. 이따위 느낌이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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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9월 29일 갑오 4번째기사 1446년 
○是月, 訓民正音成。 御製曰: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昜)〔易〕 習, 便於日用耳。 ...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에,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漢字)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
세종이 직접 언문 28자를 짓고 그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했다는 1443년 세종 25년 마지막날, 그 후 3년이 채 안되는 1446년 세종 28년 9월 또 마지막날. 공식적으로 반포한다. 왜 대체 초하루 좋은 날 두고 항상 그믐에 다 지는 날 이런 좋은 위대한 작업을 알릴까? 속국의 심정과 처지의 한스러움일까. 이날 길게 세종은 친히 어제, 왕이 직접 작성한 글을 올린다. 길게. 더하여 정인지가 서문을 쓴다. 
세종의 앞 말만 인용하자. 여문자불상소통 할때의 문자文字는 중국 한자 이다. 이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조선의 말은 어음. 語와 音 이다. 우민, 어리석을 우는 그 속뜻 情을 알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리석다 보다는 어찌할 수 없는 우의 의미가 보태져야 한다. 뒤의 그 뜻을 다 펴지 못한다의 뜻 정情도 이런 속내의 서로 맞는 마음의 고어를 내포한다. 愚는 부지정 不知情者자라 했다. 여하튼 넘어가고, 나 세종은 민연, 고심하여 불쌍히 여겨, 새로이 제 制하였다 28자를. 욕사인 편어일용이. 사람들로 하여금 일용 日用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도록 하기위함 이다. 여기서 民민, 이라는 단어를 안쓰고 인 人이라 썼다 세종은. 처음은 우민. 이라 했다가 이제 인 人 민과 자신포함 조선사람 전체 이나라 전체의 사람들! 이 이걸 다 쓰라는 거다. 그렇지 않은가?
언문이니 정음이니, 지금은 명나라 중국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나, 언제까지 속국을 할 것인가? 하는 세종의 내심이 드러나는 단어이다. 너무 과장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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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를 인용한 목적은 과연 한글을 만든 목적이, 무엇이냐 인가를 저 실록을 보며 드러나는 세종의 의도이다. 
저기에서 보이듯이. 중국의 한자와 통하기 위해서다. 한문과 별개의 말이 절대 아니다 한글이. 한문을 더 자세히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이 한문을 이해하라고 만든 목적이 크다.

저 어제 아래부분을 보자

"...무릇 글자는 반드시 합하여 음을 이루게 되니, 왼쪽에 1점을 가하면 거성(去聲)이 되고, 2점을 가하면 상성(上聲)이 되고, 점이 없으면 평성(平聲)이 되고, 입성(入聲)은 점을 가하는 것은 같은데 촉급(促急)하게 된다."
이날 세종이 직접지은 어제는 이걸로 맺는다. 중국의 4성조를 한글로 써서 옆에 점을 찍는 방법으로 그리고 촉급, 빠르고 급히 발음하며 입성을 대신한다 등 중국말을 한글로 대신했을 뿐이다. 훈민정음 언해의 그 점들 하나 둘은 중국성조를 소리로 발음하기 쉽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체, 한글을 한문과 분리해서 말하는 따위들의 말들이 대체 왜 한글을 아끼는 잉간들의 대갈빡에서 나오는 그 얄팍함을 내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한글을 알려면 한문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갑골문을 역시 알아야 한다. 한문을 모르는 한글은 전혀 애초의 창제목적과 손나리 다르다, 그 깊이 있는 한글을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그 한글에 이땅의 수쳔년의 애환과 즐거움의 무의식이 담겨있다. 어찌 한문을 한글과 달리하여 말하나? 그리고, 어찌 갑골문이 한글과 다르다고 할 수 있나? 대체 저따위 말들이 일개 범부들도 아니고 말이다 어찌 학계에서 전문가랍시고들 떠드는가? 어찌 저리 얄팍한가? 이땅이 지금 식자층이 손나리 무지하고 무식하고 정치사회문화가 가 된 이유다. 어찌 저들만의 문제일까

한글은, 우선 말이다. 한자 를 보다 더 깊이 더 많은 이들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라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그 아래 정인지의 서문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저기 위 처음에 세종은 3년전 그믐달 그믐날에 말한다. 전환무궁이라, 그 활용법이 끝이 없다는 거다. 한문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의 감히 끝이 없는 무궁무진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 고 그것을 위해 나는 세종은 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후세 조선사람들아! 인간 안에 무궁한 상상력을 드러낼려면 언어! 라는 도구는 필수적이란다! 미래에 양자역학이란 것도 나오겠지만, 그런 양자역학을 왜 이해를 못하는 줄 아느냐! 바로 그런 뜻밖의 것에 대한 언어! 가 없어서 그렇단다. 한글을 쓰는 사람은 다르다! 한글은 표현 못할 어떤것도 개념화 못할 어떤 것도 없단다! 

머라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깨부스며 쓴다고 울거라고? 표준어가 머 어째? 외계어로 그 귀한 세종대왕님이 맹그신 자음모음을 막막 바꿔 놀이하면 세종이 지하에서 운다고??? 대체 니덜이 세종이 우는 걸 봤어? 세종의 저 한글이란 걸, 제대로 된 문자 文字 두 글자로 공포도 못하고 언문이니 정음이니 하는 저따위 저급한 단어를 흐느끼며 쓴 그 속내를 네덜이 알어?? 이 세종이 머라했어? 경술년 마지막달 마지막날에, 간단하고 허술해보이지만, 그 전환이 무궁이라 했단 그 말씀이 먼 의민지 몰라? 정인지도 어제御製 올라간 그 밑의 글에서 같은 말을 하는걸 보긴 봤어? 

누가 그따위 표준말 맹글어서 그따위 말 외엔 쓰지 말라느니, 마니, 하니?

이 한글이 얼마나 변화무쌍한 표현의 방법으로 온갖 상상력을 드러내고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무의식의 우주같은 무의식의 발현 그 자체인데

대체 네더리 머라고 그따위 전환의 무궁 무극에 벽을 치고 이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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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 막 빠게 쓰라우

모음 막 빠게 쓰라우

세종대왕이 그래야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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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 에 합하여 삼극(三極)의 뜻과 이기(二氣)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가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세종 어제 아래의 정인지의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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