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年2月20日、共産青年同盟中央委員会に潜入していた特高警察のスパイ三船留吉からの提案により、赤坂の連絡場所で三船と落ち合う予定で、共産青年同盟の詩人今村恒夫とともに訪れた。その待ち合わせ場所には、三船からの連絡により張り込んでいた特高警察が待機していた。小林はそこから逃走を図ったが、逮捕された。同日築地警察署内においての取調べについては、今村から話を聞いた江口渙が戦後発表した「作家小林多喜二の死」という文章を、手塚英孝が『小林多喜二』で紹介している。それによると、警視庁特高係長中川成夫(警部。のちに滝野川区長、東映取締役)の指揮の下に、小林を寒中丸裸にして、まず須田と山口が握り太のステッキで打ってかかった[7]とある。その後、警察署から築地署裏の前田病院に搬送され、19時45分に死亡が確認・記録された。

 

1933년 저 날에, 일본 특고등경찰.이 공산당청년동맹위원회.에 몰래 잠입해서리 거기서 저 고바야시 다키지.를 체포하걸랑. 저날 당일에 

築地. 도쿄의 쓰키지 경찰서.에서 옷을 다 벗기고, 존나 굵은 방망이로 줘팼는데 죽었다. 하는 거걸랑. 

고바야시 다키지. 小林 多喜二(こばやし たきじ、1903年明治36年)12月1日 - 1933年昭和8年)2月20日

 

 

게공선. 의 작가로 알려진 이인데. 게공선  듣보잡 많거찌 또. 보던말던 하고.

 

일본의 공산당 하믄 저 고바야시 다키지를 빼놓을 수가 읎다. 나이 30에 죽다. 
일본을 우습게 보는데 말야.  아 이땅바닥 증말 이상한 분들이 미디어를 학계를 장악하신건데 이거

.


저 고바야시 다키지. 가 당시 깜방 자주 드나들었걸랑. 저 당시 검거 전에도 잡혀가서리 깜빵생활을 한적이 있어. 한 이년전인가

저때 저 고바야시.가 감빵 투쟁을 해. 소장을 만나게 해달라!! 

왜?

눈깔사탕이 점점 크기가 작아진다. 이거 먼 간수들의 부정부패가 이쓰므니다 이거.
소장 왈. 그게 그리 중요하냐?
고바야시 왈. 우리에겐 이 눈깔사탕이 너무나 중요하다. ㅋㅋㅋ





고바야시.가 저런걸로 독방에서 나올때마다 소리를 질러. 나는 눈깔사탕 문제로 소장에게 말하러 간다! 하니까니 
그담부터는 그 죄수들이 말야. 나도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휴지 없다 모포가 닳았다 어쩌고 저쩌고


자기 옆방에 조선인이 있었대. 그래도 자기네는 면회오는 이들 돈받아서리 눈깔사탕 먹지마는 저인간은 보이 존나 외롭고 찾는이도 없고 나름 걱정 비슷생각하는데 어느날 간수랑 이야길 하는거 같더래 가만히 벽에 귀를 대고 들었대


아 이 방의 이불도 낮에 햇빛을 쬐는데, 나도 햇빛좀 쬐게 해달라!!

고바야시가 그걸 듣고는. 옳다구나! 나의 눈깔사탕 투쟁이 이따위로 번지는구나. 하민서리 너무좋아서리 마루바닥을 누워서리 쾅쾅쾅쾅 두드리때 응원하는 소리루!
어이 조선인아! 더 크게 주장하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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