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zej Tadeusz Bonawentura Kościuszko (English: Andrew Thaddeus Bonaventure Kosciuszko;[note 1] 4 or 12 February 1746 – 15 October 1817) was a Polish military engineer, statesman, and military leader who became a national hero in Poland, Lithuania, Belarus, and the United States.[3][4] He fought in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s struggles against Russia and Prussia, and on the US side in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As Supreme Commander of the Polish National Armed Forces, he led the 1794 Kościuszko Uprising.   

 

안드레이 타데우쓰 보나벤투라 코슈치우쓰코, 영어 앤드류 코지어쓰코, 1746-1817. 폴란드 3분할 때 마지막 분할 의 당사자 인데. 폴란드 3분할의 단초인 폴란드 봉기 중 두 사람이, 미국독립전쟁 의 영웅들 중에 폴란드 사람이 두명이야. 코슈치우쓰코 와  Pułaski 푸와쓰키. 푸와스키 가 한살 많아. 

 

코슈치우쓰코 는 지금 벨라루씨 의 남부 태생이고, 당시 리투아니아 의 귀족 이야. 

 

지금 역사 에선, 이 사람은, 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라루씨 세 나라에서 각각 자기들 내셔널리티 의 인물로 다룰 수 밖에 없는건데. 

 

이 당시엔, 폴란드-리투아니아 카먼웰쓰 라는 내셔널리티 거든. 이걸 위해 이사람은 싸운거고 말년엔. 

 

Tadeusz was baptized in the Catholic church, thereby receiving the names Andrzej, Tadeusz, and Bonawentura.[15][16][17][18] His paternal family was ethnically Lithuanian–Ruthenian[13] and traced their ancestry to Konstanty Fiodorowicz Kostiuszko, a courtier of Polish King and Grand Duke of Lithuania Sigismund I the Old.[19] Kościuszko's maternal family, the Ratomskis, were also Ruthenian   

 

Modern Belarusian writers interpret his Ruthenian or Lithuanian heritage as Belarusian.[21] He once described himself as a Litvin,[20] a term that denoted inhabitants of the Grand Duchy of Lithuania, within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Modern Belarusian Litvinist writers interpret Litvin as designating a Belarusian, before the word "Belarusian" had come into use.  

 

카톨릭 세례 받은거고 이때 이름을 앤드류 타데우쓰 보나벤투라 받은건데, 타데우스 는 십이사도 유다 타데오 이고, 브레이브 하트 인거고, 보나벤투라 는 프란체스코 수도사 이고 굿포츈. 부모가 모두 루떼니안 핏줄이야. 루띠니안. 이사람이 서명을 한번은 리트빈, 이라고 했다는거고, 벨라루씨 들은 이전엔 리트빈 이라고 했다는거지. 

 

벨라루씨 라는건, 화이트 루씨 야. 벨라루씨 의 수도가 민스크 인데 여긴 가운데 도시고, 여기 강이 아래로 내려가서 니스터 강으로 가고, 지금 벨라루씨 민스크포함 동쪽 을 하양 루씨 라고 한겨. 서쪽 지역을 블랙루씨 라고 해. 하양 루씨 란건 그리스도 를 일찍 받은 루씨 란거고, 왼쪽 애들은 페이건 블랙 루씨 라는거야. 

 

벨라루씨 아래 가 우크라이나 의 서북부 야. 이 지역을, 루떼니아 라고 해. Ruthenia, 여기사람들을 루떼니안 들이라고 해. 

 

루씨 나 루떼니아 나 이게 모두 Rus 루씨 라는 러시안 들이고, 키예프 루씨 라는, 노브고로드 에서 내려온 류릭 들이야. 이들이 키예프 로 와서 이 가지들이 서쪽으로 가서 만든게 지금의 벨라루씨 이고, 우크라이나 도 이 루씨 들이고 그래서 러시아 가 당연히 자기들거 취급 하는거야. 저 두 나라는 시작이 류릭 루씨 들이 만든겨 저게. 저걸 단지 폴란드 가 갖아갔을 뿐인거고 러시아 입장에서는. 

 

코브린, 핀스크, 투로프, 지금 모두 벨라루씨 의 남부 지역이고, 프리피야트 강은 벨라루씨 에 있고, 저 프리피야트 이름 써진 같은 도시이름은 우크라이나 여 국경지역의. 체르노빌 이란 도시가 바로 아래 있고, 지금 프리피야트 도시는 유령 도시야. 프리피야트 강 이 내려가서 니퍼 강이 되는거고

 

루씨 들이 키예프 와서 서쪽에 세운게 볼리니 와 할리치 야. 볼리니 가 지금 볼로디미르 , 할리치 그대로 지금 우크라이나 도시 이름들이야. 여긴 지금 우크라이나 야 서북쪽 끝의. 볼리니 는 부그 강 상류로 이 부그 강은 위로 가서 바르샤바 로 가서 비스와 강에 흐르는거고, 할리치 에 위 리비우 가 있어, 여기 강은 니스터 강 상류 줄기야.

 

볼리니 할리치 지역을, 루떼니아 라고 한거야 원래. 이 위가 그로드나, 지금 벨라루씨 의 서쪽끝 도시고, 블랙루씨 야 당연히.

 

이 아래인 루떼니아 를, 레드루씨 라고 한겨. 

 

그래서, 흑양적 루씨 들이 원래 하나의 정체성이여야 해. 그런데, 벨라루씨 로 하양루씨 란 나라만 세워주고, 블랙이 여기로 가고, 빨강 루씨 인 루떼니아 는 우크라이나 로 들어간거야 지금

 

루떼니아 라는건 그래서, 저 아래가 카르파티아 산맥 북쪽 기슭이고, 로마니아 접경에 왼쪽은 슬로바키아 야. 이쪽 걸쳐있는 지역이 루떼니아 이고, 할리치 와 볼리니 란 이름으로 시작해서, 이게 13세기에는 킹덤 으로 불려, 몽골에 바쌀인. 

 

이때 킹덤은, 할리치 볼리니 킹덤 이 아니고, 칼리시아 볼리니 킹덤 이라고 해. 할리치 가 라틴어 소리로 가서 갈리시아 가 된겨. 포르투갈 북쪽 지역의 같은 갈리시아 이름이 여기에 있어. 

 

이 지역은 정체성이 나름 쎄서, 1차대전 직후엔 여긴 따로 독립국으로 서다가, 우크라이나로 편입이 된거야. 

 

우크라이나 라는 나라가, 코사크 가 대표적인 정체지만, 이쪽은 루씨 들의 빨강 루씨 인 슬라브야. 국기에 빨강 을 안 넣는 이유야 일부러. 

 

벨라루씨 라는 나라 자체가 그래서 또한 애매한겨. 원래 흑백적 루씨들 합인 루떼니아 라는 나라이름이 딱 좋아 제대로 국가 세우긴. 그게 안된거고. 

 

The Bar Confederation (Polish: Konfederacja barska; 1768–1772) was an association of Polish nobles (szlachta) formed at the fortress of Bar in Podolia (now part of Ukraine) in 1768 to defend the internal and external independence of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against Russian influence and against King Stanislaus II Augustus with Polish reformers, who were attempting to limit the power of the Commonwealth's wealthy magnates.   

 

1768-72년 콘페데라챠 바르스카, 우크라이나 바르 에서 연합 해서 폴란드 킹에 맞선거야. 새로 즉위한 폴란드 킹은 예카테리나 2세 가 뽑은 거야. 7년전쟁을 프러시아 프리드리히2세 와 마무리하면서, 프리드리히2세 입장에선 예카테리나한테 잘 보여야 해. 얘는 죽다가 살아난겨 표트르3세 의 뻘짓으로. 예카테리나 가 이전 남편 뻘짓을 그냥 마무리하면서, 실레시아 챙겨주는거고, 오히려 입김은 쎈겨 예카테리나 가. 

 

Stanisław II August[a] (born Stanisław Antoni Poniatowski,[b] 17 January 1732 – 12 February 1798), known also by his regal Latin name Stanislaus II Augustus, was King of Poland and Grand Duke of Lithuania from 1764 to 1795, and the last monarch of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스타인스와프 포니아토프스키, 예카테리나 보다 세살 어려. 러시아에 외교사절로 있으면서 둘이 친해. 작센의 아우구스트 정력왕 부자 가 억지로 두번 연속 폴란드 킹하고, 러시아여자 가 포니아토프스키 를 내정을 해. 머 애인 이란 소문도 있지만, 이사람은 늦게 등장했지만 그래도 폴란드 외곽 귀족가문이야. 이 사람은 자기나라를 잘 해보려고 한거고, 가장 문제가, 슐라흐타 라는 이 귀족 애들의 셰임 이란거거든. 민주주의 어쩌고 하면서 최고의 모델 이 폴란드 셰임 하면서 떠드는 애들은 듣기 싫겠지만. 

 

폴란드 라는 나라는 저놈의 자유선거 로 망한겨 저게. 이 여파가 지금인거고. 의회 가 너무 강력해서, 아무것도 못하는겨 이게. 

 

Golden Liberty (Latin: Aurea Libertas; Polish: Złota Wolność, Lithuanian: Auksinė laisvė), sometimes referred to as Golden Freedoms, Nobles' Democracy or Nobles' Commonwealth (Polish: Rzeczpospolita Szlachecka or Złota wolność szlachecka) was a political system in the Kingdom of Poland and, after the Union of Lublin (1569), in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골든 리버티, 황금같은 자유. 말이야 좋지. 이게 

 

  • rokosz (insurrection), the right of szlachta to form a legal rebellion against a king who violated their guaranteed freedoms;
  • religious freedom guaranteed by Warsaw Confederation Act 1573,[3]
  • liberum veto (Latin), the right of an individual land envoy to oppose a decision by the majority in a Sejm session; the voicing of such a "free veto" nullified all the legislation that had been passed at that session; during the crisis of the second half of the 17th century, Polish nobles could also use the liberum veto in provincial sejmiks;  

 

킹이 자유를 침해하면 반란도 합법이야 슐라흐타의 권리고, 종교 자유 좋다 이거야. 킹 도 선거해서 뽑아 귀족들이. 대단한듯 하지만, 외국애들도 다 참여해. 작센 부작 두번 킹도 해. 선거는 로비 이고. 돈많이 쓰면 이기는겨. 표 적어도 군대 동원해서 코트장악하면 킹이야 작센 애들처럼. 외국 군대들 끼는거고. 

 

리베룸 베토. 거부권. 귀족 한놈이라도 거부하면 법안 통과 못해. 참 끔찍한 나라가 된겨 이게. 황금의 자유라며 자랑하는 단어가 1573년 등장한거고. 

 

이 폴란드 현대 사가들도, 너무나 후진거고. 얀 자모이스키 를 내리고 별 허섭애들을 그리워하고 예술작품 그림도 애틋해하는거보면 지금, 코메디야 이게. 조선사가들 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포니아토프스키 가 저걸 개혁하려는겨. 의회권력을 죽이던가, 투표권을 더 확대하던가. 기존 슐라흐트 란 귀족애들은 너무나 싫어하는거고, 포니아토프스키 가 킹 선거 될때는 러시아에서 돈 풀고, 러시아군대가 대기해. 러시아 의 퍼핏 이라 이거지. 정작 포니아토프스키 는 킹이 되고, 자기나라를 위해 일해. 러시아 가 오히려 킹 반대에 서서 슐라흐타 의 황금의 자유 를 보장해주겠다 며 부추겨. 외국 에게는 저런인간들의 자유 가 자기들에겐 이익이 되니까 .

 

애국자 들에겐 킹 이 카더라통신 으로 악마가 되는거고, 이게 바르 연합 전쟁 이야. 

 

웃긴게, 키예프 주교 와 바르샤바 주교 가 뭉쳐. 가장 보수적 인간들의 권리가 빼앗기는거지. 바르 란 곳은 포돌리아 지역 에 있어. 

 

저때 군권을 쥔 반란군의 헤트만 이 포돌리아 의 사령인거야. 또한 두 주교 의 가운데 지역이고 아주 안성마춤인겨.

 

포돌리아 는, 저 루떼니아 라는 할리치 볼리니 적색루씨 지역의 오른쪽 을 포돌리아 라고 해. 니퍼 강 왼쪽 이고, 라이트 뱅크 지역인겨. 

 

원래 킹 포니아토프스키 는 예카테리나 의 후원으로 자리에 올랐지만, 뜯어 고치려고 한거고, 셰임 이 가장 큰 문제야. 그런데, 이걸 오히려 러시아 가 못하게 해. 그리고는 러시아 가 원하는 법안을 통과를 시켜. 킹 은 아무런 힘이 없어. 폴란드 귀족들이 킹을 비난해. 포니아토프스키 는, 어쩔수 없다 우리 폴란드는 러시아의 퍼핏 일 뿐. 그렇다고 니덜이 스스로 권력 포기하는것도 아니고. 얘들은 셰임 의회의 자유 를 건드리는 것에 아주 민감해. 러시아는 당연히, 니덜의 황금의 자유 라는건 확실히 보장한다. 

 

Kazimierz Michał Władysław Wiktor Pułaski of Ślepowron (Polish pronunciation: [kaˈʑimjɛʐ puˈwaskʲi] (

listen); Casimir Pulaski /ˈkæ.zɪ.ˌmɪər pəˈlæ.sk/; March 4 or March 6, 1745[1]  – October 11, 1779) was a Polish nobleman,[b] soldier and military commander who has been called, together with his counterpart Michael Kovats de Fabriczy, "the father of the American cavalry."  

 

여기 사령의 한명이, 당시 23세 의 푸와스키. 영어 캐지미어 펄래쓰키, 왜냐면 미국 독립전쟁 영웅이 되거든. 아주 젊은데 저 바르 연합 전쟁때 가장 왕성한 인간은 푸와스키 야. 얘들이 러시아 퍼핏이라며 러시아 에 대들고, 폴란드 킹도 납치를 해. 이게 4년 간인거고, 푸와스키 는 저거 끝나고, 러시아 투르크 전쟁 의 크림반도 갖고 가는 거기에 투르크 를 지원하려다가 이미 파하는 분위기라 안가고. 

 

폴란드 킹은 푸와스키 의 모든 지위를 박탈하고, 떠나라 하고, 가는 곳이 프랑스 마르세이유 이고, 마침 터진게 말이지, 미국 독립 전쟁 이야. 

 

푸와스키 는 이미 유명한겨 저 바르 전쟁으로, 라파예트 가 얘를 벤자민 프랭클린 에게 추천하고, 프랭클린 이 조지 와싱턴 에 강력 추천하는겨. 얘 최고다, 우리 미국 군에 적극적으로 쓰자. 

 

저때가 독립선언하고, 아주 초반기야. 자기를 기병단의 수장 자리를 달라는건, 영관급인거거든. 조지와싱턴 이 못주는겨 시바 아무리 유명하고 추천받은 인간이라지만. 그러다가

 

The Battle of Brandywine, also known as the Battle of Brandywine Creek, was fought between the American Continental Army of General George Washington and the British Army of General Sir William Howe on September 11, 1777  

 

브랜디와인 전투. 푸와스키 가 1777년 7월 에 미국에 도착을 해서, 자리 못받고 기웃대다가, 여기가 뉴저지 에 접한 필라델피아 지역인데. 콘티넨탈 아미 라는게 미국독립전쟁의 미국전체군대 라는거고, 여기 사령관이 조지와싱턴이고, 이건 전쟁 선포 하고 바로 만든겨, 이 다음해 독립선언하고. 바로 두달 후에 벌어진 전투에서 조지와싱턴 이, 패배해서 죽을뻔 했어. 이때 흩어진 부대를 규합해서 조지와싱턴 을 살린 사람이 푸와스키 야. 비록 패한 전투지만. 이때 부터 바로, 시바 브리게이더 의 제너럴 이면, 사단급 여단장 을 주는겨 ㅋㅋㅋ.  

 

The siege of Savannah or the Second Battle of Savannah was an encounter of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1775–1783) in 1779.   

 

푸와스키 가 2년후 인 서배너 전투 에서 죽어. 서배너 강 이 조지아 와 남캐롤라이나 주의 경계강이고, 여기 하류 해변 도시야 서배너. 

 

이사람은 미국에선 영웅이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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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바르 동맹 의 전쟁으로, 폴란드 를 분할을 해.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가. 

 

오스트리아 는 마리아 테레사 는 살아있고 아들 요제프 에게 넘겨주었지만, 실레시아 를 프리드리히 에게 뺏긴게 한이거든. 프러시아는 비스와강 하류의 단치히 지역을 경계로 프러시아 킹덤과 브란덴부르크 자기 가 떨어져있어. 오스트리아는 실레시아 를 달라는거고 대신 폴란드 땅 더 프러시아가 챙겨라, 프리드리히는 절대 그럴수가 없어. 오스트리아 가 그래서, 실레시아 를 못받는 대신, 크라크푸 오른쪽의 레써 폴란드, 작은 폴란드 에 오른쪽 갈리시아 를 전부 갖고 오는겨. 실레시아 포기로 오히려 더 큰 땅을 받아. 이때부터 여기가 오스트리아 제국 까지 가는거야. 프러시아 는 로얄 프러시아 땅 남은 것을 챙기고, 가장 작은 땅 이지만, 자기 두 떨어진 지역을 잇는 것으로 최고 만족 하는거고. 러시아 가 가장 많은 땅을 챙기지만, 경제적 실속은 없는거고.

 

오스트리아 의 동북쪽 경계선 은 폴란드 1분할 때 생긴 선이 1차대전까지 가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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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1분할 되고, 3분할 때 역시 중심인물이 코슈치우스코 야. 이사람은 푸와스키 보다는 한살 어림에도, 1차 바르 동맹에는 참전을 안해. 코슈치우스코 는 킹의 스폰 받는 귀족이야. 오히려 프랑스로 군사학 공부를 하러가고, 그러다 또한 미국독립전쟁때 가는겨. 그러나 푸와스키 와는 미국에서 접점이 없어. 이사람은 군사요새 설계 의 공병 장교 로 아주 탁월한 기여를 해. 토마스 제퍼슨 하고 너무나 친해. 미국독립전쟁 끝나고 나서, 돈을 못받아 월급 밀린걸. 이것 때문에 못떠나다가 채권이 확정되고, 폴란드 로 가는겨. 그리고 자기이름의 봉기 가 1794야. 이게 3차 분할 로 가는겨, 완벽히 폴란드가 분할되어 지워져. 러시아 포로 로 잡혀갔는데 마침 예카테리나2세 가 죽어. 아들 파벨 은 엄마를 증오하는 인간이야. 엄마가 증오하는 인간은 자기편, 다 풀어줘 ㅋㅋㅋ. 그래서 다시 미국오고, 그러다 나폴레옹 등장했다고 또 폴란드 가서 나폴레옹 만나고, 나폴레옹은 먼 이런 아마추어 같은 쉑 해대고. 

 

스위스에서 죽고, 시체를 크라크푸 에 갖고 와서 장례치르고 지금 여기 있고.

 

미국 독립전쟁 의 폴란드 인간 두 영웅이, 정작 폴란드 삼분할 의 두 당사자 야. 

 

The Polish–Russian War of 1792 (also, War of the Second Partition,[3] and in Polish sources, War in Defence of the Constitution[a][4]) was fought between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on one side, and the Targowica Confederation (conservative nobility of the Commonwealth opposed to the new Constitution of 3 May 1791) and the Russian Empire under Catherine the Great on the other

 

폴란드 삼분할 시작이 바르 동맹 전투로 1772년. 코슈치우스코 1794 로 3차 분할 이전에, 2년전 1792년에 폴란드 러시아 가 전쟁을 해. 이건 폴란드 킹 포니아토프스키 가 직접 러시아에 대항하는거야. 이 사람은 러시아 퍼핏 이 아냐. 저 전쟁에서 승리도 하지만, 결국 더 버틸 힘이 없어 이게. 이걸로 2차 분할 되는거고 이때 오스트리아는 지분이 없어. 2년후 코슈치우스코 의 봉기로 3차분할로 지워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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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volt of Horea, Cloșca and Crișan (31 October 1784 – 14 December 1784) began in the Metaliferi Mountains, Transylvania, but it soon spread throughout all Transylvania and the Apuseni Mountains. The leaders were Horea (Vasile Ursu Nicola, 1731–1785), Cloșca (Ion Oarga [ro], 1747–1785) and Crișan (Marcu Giurgiu [ro], 1733–1785).  

 

호레아 클로슈카 크리샨 봉기. 1784년에 트랜실베니아 의 농민봉기. 농노 의 문제고 역시나, 러시아 처럼. 카르파티아 산맥의 안쪽 산맥을 아푸세니 라고 해. 이 가지가 메탈리페리 이고. 농민대표단으로 비엔나 까지 가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해. 여긴 로마니안 들이고 오소독시 들이야. 차별을 받는다는거고 세금도 과중에. 그러다 요제프 가 병력소집을 하고, 사람들이 돈벌기위해서 지원하는걸 지역 귀족들이 막는거야. 등등 해서 벌어진 봉기이고. 

 

여긴 세케이 들에 작센 들에 헝가리안 들 의 대표귀족들이 있었지만, 이 외의 로마니안 들을 대표하는 이들이 없었고 이 불만이 터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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