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acobite rising of 1745, also known as the Forty-five Rebellion or simply the '45 (Scottish Gaelic: Bliadhna Theàrlaich, [ˈpliən̪ˠə ˈhjaːrˠl̪ˠɪç], lit.'The Year of Charles'), was an attempt by Charles Edward Stuart to regain the British throne for his father, James Francis Edward Stuart. It took place during the 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

The Jacobite rising of 1689 was a revolt seeking to restore James VII, following his deposition in November 1688. Adherents of the exiled House of Stuart were known as 'Jacobites', from Jacobus, Latin for James, and the associated political movement as Jacobitism.

재코바이트 반란, 을 대충 넘어가서리 정리를 하면. 빨리 프랑스 대학살 1789 에 나폴레옹 을 해야 하는데, 앞단 이야기가 정리가 되어야 해서 말이지.

나중 프랑스 자코뱅 은 이 잉글랜드 제임스 가 아니야. 성서의 야코부스 이고 모두. 이 이름의 자코뱅 거리 가 자코뱅파 들이 된거고.

시작이 제임스2세 의 1689 이고, 1688 그 해에 얜 서둘러서 런던에서 도망나오고, 오렌지 윌리엄 은 당당히 그냥 걸어들어가는 거고. 루이14세 가 얘의 스폰서 인거고, 이게 프랑스 루이의 9년전쟁 의 시작점인거고, 이 루이 는 9년전쟁 으로 그 절정의 최고의 프랑스 코트 를 죽음으로 향하고, 종지부를 찍은게 스페인 후계전쟁 이야. 1701-13. 그리고 죽어. 이 루이의 전쟁질의 여파가 백년후 의 프랑스 1789 대학살을 만들고, 현재도 아이엔지 야 이 프랑스 란건. 미래에 지워질 나라.

스페인후계전쟁 이, 신성로마의 레오폴트황제 가 시작했지만 이 기간에 죽고 장남 요제프 1세 가 또한 죽고 동생 칼6세 가 황제 가 되면서, 스페인은 자연히 프랑스 부르봉의 루이의 손자 인 펠리페5세 에게 가기로 하고, 프랑스 부르봉과는 끊기로 하고, 이때 말이지, 펠리페5세는 손자 지만 나이가 30세가 곧 되는 성인이야. 형이 이때는 살아있어서 루이14세를 잇기로 한거거든. 그런데 저렇게 정리가 된 후, 펠리페5세의 형 이 바로 죽어. 그리고 태양왕 루이 가 죽는겨. 그래서, 저 죽은형의 아들, 즉 루이의 증손자 가 나이 다섯에 프랑스 킹 이 돼. 얘가 루이 15세야. 폴란드 언니랑 결혼하는.

스페인후계 전쟁은 퀸앤 이 승자고 영국의 시대를 선포하는 전쟁이야. 이 영국은, 이때 우트레흐트 조약 등을 맺으면서, 아씨엔토 를 챙겨서 흑인노예무역권 을 얻어내는거고, 이때 생기는게 남해회사 야. 더하여, 북미 에서 루퍼트 땅이라는 허드슨베이 를 갖고오고, 뉴펀들랜드 와 노바스코샤 를 갖고와, 프랑스 로 부터.

영국이 부르봉에게 스페인을 주는 대신에 북미 를 갖고 오는겨 이게. 이전에는 애팔래치아산맥 동쪽 기슭해변 뿐인 땅이야 영국에겐. 아래 루이지애나는 스페인땅이고.

노바스코샤 는 반도야. 이 반도 위에 붙은듯 있는게 케이프브리튼섬 이야. 현재는 여기까지 노바스코샤 주 야. 이때는 케이프브리튼섬 은 프랑스꺼고 아래 반도만 준거야 영국에게. 저 케이프브리튼섬 조차 1만제곱키로야. 아래 반도는 5만제곱이 넘어, 남한땅 절반이야.

프린스에드워드 섬 이 현재 캐나다 의 주 프라빈스 야. 가장 작은. 이것도 5천제곱이 넘어, 제주도 의 세배크기야. 길죽한 섬이. 이 섬이 빨간머리앤 의 무대야. 스페인후계전쟁 으로, 할리팩스 있는 노바스코샤 의 반도 만 영국이 갖는거고, 케이프브리튼섬 에 프린스에드워드섬 은 프랑스 꺼야.

저 거대한 북미의 프랑스가, 이후 50년 지나서 7년전쟁으로, 모~두 영국 것이 되는겨. 그리고 미시시피강 왼쪽에서 로키산맥까지의 루이지애나 라는 거대한 스페인 지역은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먹고 저걸 미국에 판거야.

James II and VII (14 October 1633O.S. – 16 September 1701[a])

제임스2세 가 1633년생이고, 나이 50에 킹이 된겨 형을 이어서. 그리고 5년후가 1688이고, 얘가 12월 23일날 잉글랜드를 떠나는거야. 오렌지 윌리엄 이 이 뒤를 봐줘 안다치고 떠나게. 자기 장인 이야. 조선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리고 다음해 3월에 직접 아일랜드 로 병력을 끌고 가는겨. 아일랜드는 카톨릭의 본산 이야, 프랑스 와 스콧의 카톨릭을 가르친 애들이 아일랜드고, 잉글랜드 는 색슨 애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다 깨부슨겨. 아일랜드가 카톨릭 교주여 알프스 너머 라인강 서쪽의. 제임스2세 지지하는거고, 이 소식을 듣고 스콧 이 들고 일어난거고,

The Massacre of Glencoe (Scottish Gaelic: Murt Ghlinne Comhann) took place in Glen Coe in the Highlands of Scotland on 13 February 1692. An estimated 30 members and associates of Clan MacDonald of Glencoe were killed by Scottish government forces, allegedly for failing to pledge allegiance to the new monarchs, William III and Mary II.

1689의 재코바이트 라이징 은 글렌코어 학살 로 끝나는거야. 30명 죽은겨, 반란군 죽인걸 학살 이라며 명명한것은, 오렌지 윌리엄에 대한 거부감이고. 3년 간의 전쟁이야. 이때가 제임스2세 는 이미 56세여. 얜 이걸로 끝이 난거야. 9년전쟁 초반의 일이고. 그리고, 태양왕 루이 는 오렌지와 손잡는거고, 그래도 제임스2세 를 스폰해. 폴란드 킹 자리를 주려고 해, 거부해, 저걸 받으면 잉글랜드 킹 할 명분이 없어지니까. 얘는 오렌지 윌리엄 살아있을 때 죽은거야. 제임스2세 죽고 다음해 오렌지 가 죽고, 퀸 앤 이 나이 37세 에 오르는겨.

In France, James was allowed to live in the royal château of Saint-Germain-en-Laye.

제임스2세 는 돌아와서, 쌩 제르망 앙 레, 의 성에 살아. 여기서 죽어. 그리고 부인도 여기서 살다 죽어. 이 둘의 무덤은 파리에 있는겨 지금.

James Francis Edward Stuart (10 June 1688 – 1 January 1766)

아들 제임스 가 1688년 6월생인거고, 이전 말했듯이 얘 출생으로 카톨릭 이어지는 공포감에 오렌지 데려 오는거고, 얘는 엄마가 모데나 의 마리 이고, 퀸 메리 와 여동생 퀸 앤 은 엄마가 하이드 야. 나머지 남자형제들은 일찍 죽고.

쌩제르망 성에서 제임스2세 가 아들 제임스 에게 주입을 시키는거야. 너 잉글랜드 킹이 되면 이러저러하게 통치하라며. 얜 아주 자기가 킹 이 되어야만 하도록 교육을 받아 파리 땅에서.

퀸앤 은 1665년생, 언니 메리 보다 세살어려. 제임스2세가 하이드 에서 32세 에 낳은 거고, 아들 제임스 는 모데나 여자에서 55세에 낳은겨. 둘이 23년 차이여. 배다른 누나 퀸앤 이 엄마 뻘이야.

퀸앤 은 1683년 23세에 결혼을 했는데, 신랑이 1708년에 죽어. 퀸 오르는게 1702년이고 1714년 8월 에 죽어 49세.

유산과 사산이 15번이 넘어. 아들 하나 살아남았지만 갓 1년 지나 죽어. 퀸 오르기 직전 이야.

유산에 사산으로 몸이 아주 안좋은겨 이 퀸 앤은. 그래서 말년에는 1년 이상 걷지도 못하다가 죽은겨. 퀸앤의 재임 전체 는 스페인 후계전쟁 그 자체야. 후반 우트레흐트 조약은 퀸앤이 병석에 있을때 한거야.

with major outbreaks in 1708, 1715 and 1719.

아들뻘 배다른 동생 제임스 가, 아빠를 이어서 20년 만에 들이대는겨 얘가 나이 스물 이 되어서, 1708에 직접 스콧 에든버러 로 상륙하려 해. 일단 스콧 이 홈 이니까. 여기 상륙을 못해. 그러다가, 퀸앤 이 죽었어, 다음해 1715년 나이 27세 때 스콧에 착륙해서 배틀 몇개 하고 패배하고 프랑스로 가. 1719년, 27세 때는 스페인에서 출항하려는 데 얘는 날씨때문에 못가. 그리고 가는 곳이 이탤리여.

이 1719년 은, 4자동맹 전쟁 기간이야. 쿼드러플 얼라이언스. 스페인 부르봉이, 이전 스페인후계전쟁때, 벨기에지역과 이탈리아 전부 를 합스부르크 에 뺏겼거든. 이탈리아 를 갖으려는겨 일단.

이게 가장 웃긴게, 영국 과 프랑스 가 손을 잡았거든. 얘들 둘은 철천지 웬수야. 그래서 제임스2세 애들이 너무나 귀한 재료여 프랑스에겐. 그런데, 펠리페5세의 형 이 나이 서른 되서 죽고, 그리고 태양왕이 죽은겨. 증손자 루이가 다섯살이야. 프랑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이때 영국하고 적이 되면 절대 안되는겨 이게. 그래서 영국과 동맹을 맺고, 여기에 네덜란드가 끼는거거든. 이때 터진게 스페인 부르봉이 이탈리아를 쳐들어가고, 이 지중해에 지브롤터 와 메노르카 가 영국것이고 직접적으로 얽히고, 프랑스 도 영국 눈치를 봐야해. 그래서, 저 아들 제임스 는 이때 스페인에서 재코바이트 하는거고, 갈 곳이 없는겨 이제. 그래서 로마 진영으로 가는거야. 로마 카톨릭 에겐 얜 최고 손님인거고.

이때 이탈리아 와서, 얀 소비에스키 의 손녀와 결혼을 하고, 여기서 일명 보니 찰리 프린스, 를 낳은거야. 얘가 아빠를 이어 3대 재코바이트 를 하는거고, 이게, 1745년 재코바이트 야.

James died after a "lingering illness", aged 77, in Rome on 1 January 1766, at his home, the Palazzo Muti,[3][25] and was buried in the crypt of St. Peter's Basilica in present-day Vatican City. His burial is marked by the Monument to the Royal Stuarts. His claimed reign had lasted for 64 years, 3 months and 16 days, longer than any British monarch until Queen Elizabeth II's reign surpassed it on 23 May 2016

그래서, 저 1688년생 제임스 는 로마에서 죽어, 47년 여기서 살다가. 77세. 자기가 브리튼 킹 이라면서. 자기 아빠 죽고부터 자기가 킹인겨. 64년 3개월 16일. 그래 그럼 니가 킹 해라 라면서 이 재임기록이 퀸 앨리자벳 이 지금도 사시면서 기록경신 이 된거야. 빅토리아 할머니도 64년 막 채웠나 하튼 몇개월 적은겨.

Charles Edward Louis John Casimir Sylvester Severino Maria Stuart (20 December 1720 – 30 January 1788) was the elder son of James Francis Edward Stuart, grandson of James II and VII, and the Stuart claimant to the thrones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after 1766 as Charles III. During his lifetime, he was also known as "the Young Pretender" and "the Young Chevalier"; in popular memory, he is known as Bonnie Prince Charlie. He is best remembered for his role in the 1745 rising; his defeat at Culloden in April 1746 effectively ended the Stuart cause, and subsequent attempts failed to materialise, such as a planned French invasion in 1759.[2] His escape from Scotland after the uprising led to his portrayal as a romantic figure of heroic failure

보니 프린스 찰리, 바람과함께사라지다 에서도 나오는 캐릭 인데. 1720년 로마 출생이야. 부모 와 함께 지금 로마에 묻혀있어. 1745 재코바이트 때 25세 야.

Du Teillay landed Charles at Eriskay on 23 July

1745년 7월 23일 에 에리스케이 에 착륙해. Outer Hebrides 아우터 헤브리디즈 지역이야. 여긴 지금 사람이 안살아. 스콧 의 북쪽이고, 아래 왼쪽이 인너 이고. 헤브리디즈, 헤브라이즈, 위도가 57도여. 저기가 서북끝이라 무지 높아 보이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 가 59도여. 브리튼 섬이 좀 낮아 이게.

얘가 저기서부터 주우욱 내려오는겨, 스콧 인간들이 신나서 합세하고, 이게 엄청난 거고 얘들이 맨체스터 에서 아래 더비 Derby 까지 내려와. 얘가 직접 여기까지 온거야. 그리고 다시 위로 가서 Culloden 컬라든 이 하이랜드 고 오른쪽이 머리 에 애버딘 이고. 1년도 안돼서 마무리가 된겨.

Adam Smith FRSA (baptized 16 June [O.S. 5 June] 1723[1] – 17 July 1790)

국부론 의 아담 스미쓰 가, 저때 22세 야. 보니찰리프린스 보다 세살어리고, 저때는 런던 옥스포드 에서 학생인거고, 애들이, 야 야 너 스콧 킹 오셨다 너도 함께 안하냐 놀리는거고 ㅋㅋㅋ. 스미스 가 저 컬라든 전투 끝날 즈음에 에든버러 가서 교수 시작 하는거야.

저때가 오스트리아 후계전쟁 한창이고, 이어서 다음에 7년전쟁 이야. 쟤를 스폰하는건 다시 프랑스 야. 프랑스 는 잉글랜드와 그야말로 철천지 웬수야 이게. 스콧의 영원한 친구는 프랑스 이고. 이전 폴란드 후계전쟁엔 영국이 개입안해. 그러나 오스트리아 후계전쟁은 조지들의 하노버 가 저땅에 있는겨. 합스부르크 편들어야 하고, 프랑스 는 또한 역사 자체가 반 합스부르크여 라인강을 가운데로 둔. 더하여 곧 7년전쟁으로 프랑스 는 마침표 를 찍으면서 1789의 대학살로 가게되고 아이엔지 인거고 현재도.

할때 프랑스 입장에선 보니찰리프린스 가 너무나 좋은 재료 인거고 역시나.

보니찰리프린스 는, 이전의 아빠 와 할아버지 이상으로, 잉글랜드 본토까지 직접 다녀 오신겨. 제임스2세 는 아일랜드에서 소리만 지르다 오시고 아빠 제임스 는 요란만 했지 찔끔 한번 발담그고 가시고, 실재로 재코바이트 의 상징은 저 3대 인 보니찰리프린스 이고, 영웅이야 얘가.

그리고, 7년전쟁 이 발발하고, 프랑스 입장에서 가장 좋은 재료가 보니찰리 거든, 영국침입작전을 거대하게 계획하는데 이 보니찰리 를 내세우려하고 얠 직접 면담 하는겨. duc de Choiseul 이때 프랑스 외무부 에 전략가 가 슈아젤 공작 인데, 슈아젤이 보니를 직접 면담하고는, 애가 별로인겨. 그래서 캐스팅을 안해. 그래서 재코바이트 는 1689로 시작해서 1745로 끝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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