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il Hall Chamberlain (18 October 1850 – 15 February 1935) was a professor of Japanese at Tokyo Imperial University and one of the foremost British Japanologists active in Japan during the late 19th century. (Others included Ernest Satow and W. G. Aston.)

Sir Ernest Mason Satow, GCMG, PC (30 June 1843 – 26 August 1929), was a British scholar, diplomat and Japanologist.

William George Aston CMG (9 April 1841 – 22 November 1911) was a British diplomat, author and scholar-expert in the language and history of Japan and Korea

Japanese studies (Japanese: 日本学) or Japan studies (sometimes Japanology in Europe)

저패니즈 스터디즈, 재포놀로지 라고도 함. 재포놀로지스트, 최초 가 세 사람이야 웨스턴에서. 배즐 홀 체임벌린, 어니스트 메이슨 사토, 윌리엄 조지 애스튼. 모두 영국인들이고, 두사람은 외교관 인거고.

애스튼 은 조선 과 찐해.

이 세사람이 일본어 와 조선어 의 소리들을 라틴어의 영어 로 표기법을 만들어. 그래서 구한말 외국인들의 조선 의 소리들은 이 세사람의 표준을 따르는거고, 이게 지금까지 쓰는거지.

배즐 체임벌린 은, 베어링 은행 직원이었다가, 정신적 질환으로 영국을 떠난거고, 일본에 들어간겨.

Chamberlain landed in Japan on 29 May 1873, employ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as an o-yatoi gaikokujin. He taught at the Imperial Japanese Naval Academy in Tokyo from 1874 to 1882. His most important position, however, was as professor of Japanese at Tokyo Imperial University beginning in 1886.

23세 인 1873에 일본에 들어가서, 오야토이 가이코쿠진, 킹에 고용된 외국인 자격으로 해군사관학교 에서 가르쳐 8년을. 秋山 真之(あきやま さねゆき) 아키야마 사네유키 는 1868년 생이고, 1890년 졸업이라 이사람과는 인연이 없고 여기선. 옮겨서 동경대 교수를 하고, 일본 코지키 를 최초로 영역도 하고. 하이쿠 에 일본 문학들도 영역을 하고.

어니스트 사토 는 아빠가 비스마르 사람, 메클렌부르크 고 여긴 여전히 스위든 땅에 서기 1900년 지나서야 독일땅이 되는거고. 아빠가 독일계고 런던으로 와서 런던여자 만나서 결혼하고 낳은 거지.

이사람은 1862-83 년, 21년간 일본에 있었고 다시 돌아와 5년을 더 지내 이후에. 1843년생이니 19세에서 40세. 런던대학 졸업하고, 리쿠르팅 에 합격해서 저 나이에 영국의 외교관 자격으로 일본을 가서, A Diplomat in Japan (based mainly on his diaries) which describes the years 1862–1869 . 아주 가장 격렬할때의 일본을 직접보고 쓴 책이 일본의 외교관 이란 책이야. 이건 웨스턴 애들이 일본공부할때 필독서야. 아주 유명한 책이야. 조슈 사쓰마 막부 의 하마구리의 변 에서 시모노세키 전투 조슈 애들이 영미네덜란드프랑스 네 나라랑 대포전쟁하는거며 1867 대정봉환 에 바로 보신전쟁, 걍 가장 피크 의 일본 애들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는 거거든 저게.

이사람의 일본 이야기들 이 아주 많고, 그런데 조선 에는 온 적이 없고.

조선과 찐한 사람이 애스튼 이야.

애스튼 은 1841년생, 사토 보다 두살 어리고, 사토 보다 늦게 일본에 와. 1864년 에 통역관 으로 오는겨. 언어에 아주 깊고, 일본어 도 습득하고 사토 와 같이 일하는거고.

From 1884 to 1885, Aston served as the United Kingdom's consul-general in Korea. He returned to consular duties in Tokyo as Secretary of British Legation in 1885.

1884년, 43세 에 콘술 자격을 통과해, 영사 자격이고, 이때 조선 주재 영사 를 하는겨 영국의. 영국의 대표 가 조선에서 이사람이고, 그런데 1884 당해 에 터지는게 갑신정변 이고, 바로 동경으로 떠나서 일본 책임자야 영국의.

In 1885–1887, Aston continued Korean language studies in Tokyo with Kim Chae-guk. This Korean teacher composed a number of stories for Aston to use as practice
일본에 와서도, 여기서 한국어를 공부해. 이사람은 그리스 라틴 프랜치 독일어 를 했다지만, 저 당시 쟤들 이력을 보면 저런 언어들은 다해. 여기에 일본어 와 한국어 가 또 땡기는거지.

한국어 선생이 김재국 이야. 영국 공사관이 정동 에 있었고, 여기서 만난 조선인이고, 일본갈때 같이 데려간거야 이 사람을. 동경에서 김재국 으로부터 계속 한국어를 배우고 조선 이야기를 채집하는겨 김재국 으로 부터. 김재국 이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문장들을 보여줘야 되거든, 애스튼 이 시안하게 한국말에 관심이 많은건데. 그래서 김재국 이 자기가 알고 있던 조선 이야기를, ㅋㅋㅋ, 애스튼 을 가르치기 위해서 푸는거야. 이걸 서로 기록을 하고, 이 기록물들을 애스튼 이 러시아 에 기증 하는겨.

Many years later, Aston donated these manuscript versions of Korean folk tales to the Asiatic Museum (Kunstkamera) in Saint Petersburg.

페테르부르크 의 쿤스트카메라, 쿤스트 가 아트 이고 카메라 가 룸 방 이고, 표트르 가 세운 최초의 러시아 박물관 이야.

여기에 김재국 으로 부터 공부하면서 듣본 조선 이야기들이 있는거고, 애스튼의 이 조선 포함 일본 중국 기록물들이 현재는 케임브리지 로 다 이관 이 되었어.

이게 서기 2004년에 러시아에서, 러시아어로 Корейские новеллы 카레이스키 나벨리, 코리아의 소설, 이란 제목으로 출판이 돼. 뒷표지는 한글로 조선야담.

이게 서기 2020년 에서야 한국어로 출판이 돼 번역이 되서. 코리안 테일즈, 김재국이 영국 외교관에게 들려준 조선이야기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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