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manuel-Augustin-Dieudonné-Joseph, comte de Las Cases (21 June 1766 – 15 May 1842) was a French atlas-maker and author, famed for an admiring book about Napoleon, Le Mémorial de Sainte-Hélène ("The Memorial of Saint Helena").

 

라스카즈. 가 와인 말고,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 유배갈때, 같이 간 작가야.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 갈때, 혼자만 간게 아니고, 자진해서 같이 하고 싶던 사람들이 동행을 했어. 

 

Napoléon Bonaparte (15 August 1769 – 5 May 1821). 1821에 죽었으믄 52세에 죽었걸랑. 저 섬에 영국 군함타고 떨어진게 1815년이야.

 

영국배를 자진해서 탔어. 아 저 전에 이미 독약을 먹었었어. 헌데 몸이 안받아들여서리 구토를 해. 죽는 것도 맘대로 못죽는거지. 

 

그 증말 사악한 영국애들에게 그래도 가 지 발로 스스로. 유럽애들은 전쟁하민서리, 승패 기울어지면, 협정하면서 상대를 존중해줬걸랑. 나폴레옹도 그래왔고. 내 영국으로 망명할테니, 내도 그따위 대우 해주라 한 거지. 착각 한거지.

 

 

영국이, 유럽이, 나폴레옹이 너무나 무서운겨 ㅋㅋㅋ 한마디로. 또 근처 어디 있으믄, 저 불덩어리, 저 정열덩어리, 분명 또 유럽을 뒤집어놓을꺼걸랑.

 

 

세인트 헬레나.가 저기여. 앙골라 해변에서 2800 키로랴. 

 

배를 타고, 영국까지 갔다가, 항구에서 대기하다가, 명령 떨어져서리 다시 빠꾸해서리 절로 간겨. 

 

나폴레옹.이  어이없어하는거지.

 

 

저때 대동한 이들 중 한 사람이 저 comte de Las Cases 라스카즈.라는 작가야. 

 

 

저 섬에서, 나폴레옹이 죽을때 까지, 1815-1821. 6년간을 저기서 찐한 자기내면작업을 해. 자기 이야기를. 

 

신이 있다면, 아 신이 있는거 같오. 나폴레옹을 보믄. 그 백일천하.라민서리, 코르시카 옆에 엘바섬에서 다시 대륙 갈때도 말야. 마침 나폴레옹 감시하는 순시선 배 장교가 이태리 잔치한다고 자리를 비워. 마침 남풍이 불어. 마침 월식이야. 아 골때리 저거.

 

 

저 라스카즈.포함 세명이서 돌아가면서, 나폴레옹의 이야기 구술하는 걸 받아 적는겨. 

 

나폴레옹이 구술하고, 받아적고, 그걸 확인하고. 해서리 싸인하는겨.

 

헌데 정작 저 라스카즈.는 저 섬에서 일년 후에 쫓겨나. 그 섬을, 나폴레옹을 감시하는 영국 제독이. 저것덜 먼 수상한 짓 하는구나. 해서리 얘를 쫓아내는겨. 저 섬에서. 

 

저 라스카즈.가 나폴레옹이 죽고 발간한 책이 저거여. 

 

Le Mémorial de Sainte-Hélène ("The Memorial of Saint Helena").. 세인트 헬레나 의 회상. 우리말로 멀로 번역이 된 줄 몰겄어. 

 

저 이미지 보니 저건 1824년 판이고. 첫판은 나폴레옹 죽고 바로 이듬해 나온거고. 

 

저게 나폴레옹 바람을 일으키는겨 또한 프랑스에서. 그 바람으로 나폴레옹 조카.가 또 황제 되는기고.

 

 

나폴레옹이 아들에게 전하는 유서 중에 저따위 말이 있어

 

 "아들아, 너는 역사를 철저히 공부하거라, 찐한 역사가 진짜 철학이다"

 

저게 먼말이냐면, 철학이란 관념놀이걸랑. 이건 현실바닥의 이야기가 아냐. 거칠게 말하면 공허할 뿐이야. 제대로 된 철학은 역사책이란 거걸랑. 나폴레옹은 당시 철학자들 무시해. 수학자도  무시해. 

 

Pierre-Simon, marquis de Laplace (/ləˈplɑːs/

French: 

[pjɛʁ simɔ̃ laplas]; 23 March 1749 – 5 March 1827)

 

라플라스. 라플라스 변환의 그 라플라스 걸랑. 나폴레옹보다 스무살 많오. 나폴레옹이 사관학교 입학할때 수학 시험 감독관이야. 당시 얘네 수학시험 보는게 걍 지금 처럼 책상 위에서 종이에 끄적 대는게 아니라, 감독관 들 앞에서 칠판에서 방정식 쓰민서리 피티하는겨.

 

라플라스 보고도 나중에 그러걸랑. 슨상님, 천국을 수학공식으로다가 증명할 수 있슈?

 

.

 

헌데 저 역사 를 강조하는 말을 가만 보믄 말이지. 

 

우리네가. 저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거걸랑 이게. 이놈의 역사를 또한 관념으로만 익힌거지. 

 

일본들은 역사에 무지 강하걸랑. 일본이 기본적으로 보는 책이 에도 시대와 이후에. 日本外史 일본 외사. 그리고 중국 사기. 는 기본이야.

 

저 서기 천년 에 나온 겐지이야기.도 가만 보믄, 겐지의 아들이 시험을 보는데 그 시험과목이 중국애들 사기.야. 공자 맹자니 논어 이따위 단어 전혀 없어 저 겐지이야기에.

.

 

 

실지왕 존. 존 래크랜드가 잉글랜드보다 큰, 브리튼 보다도 더 넓은 프랑스에 있는 땅을 다 잃고, 마그나 카르타 쓴게 1215

 

그리고, 프랑스 킹들한테 인사하러들 가야 하고, 이 부들부들 갈며 절치부심. 백년. 

 

그 백년 후 프랑스 왕위 계승을 핑계로 쳐들어가다. 백년전쟁. he Hundred Years' War was a series of conflicts waged from 1337 to 1453

저 백년전쟁은 그 이면에, 프랑스의 방적산업까지 먹을라카는거다 저게. 영국은 울. 양모팔이를 프랑스에 하고 프랑스는 그 수입한 양모를 옷감으로 만들어 되팔았걸랑. 저거까지 먹을라 칸거다. 백년전쟁을 일으킨 큰 이유 중 하나.

 

프랑스, 반성한다 비록 이겼지만 자기땅 전쟁에서. 킹이 권력을 집중한다. 상비군을 두기 시작한다 이때서야. 카톨릭 사제랑 권력을 공고히 하다

깝깝해지기 시작하는 프랑스. 그 깝깝한 싸이키가 티나오는게 종교를 핑계로 36년간 전쟁 The French Wars of Religion between 1562 and 1598. 으로 터뜨린다. 그리고도 카톨릭이 이겼다.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들인 위그노 들은 스위스 신성로마제국의 영지들 동유럽 폴란드 잉글랜드들로 흩어진다

 

프랑스는 이때 앙리 4세가 일을 모두 쉴러 공작에게 맡긴다. 친구. 그리고 여자들하고만 논다.

 

프랑스는 그래도 백년전쟁을 이겼다. 1453. 종교전쟁 이전에. 잉글랜드 보다 국내 사정이 낫다. 잉글랜드는 장미전쟁 내전해야 하고. 

 

프랑스가 아메리카에 먼저 진출한다 잉글랜드보다.

 

In 1534, Francis I of France sent Jacques Cartier on the first of three voyages to explore the coast of Newfoundland and the St. Lawrence River. He founded New France by planting a cross on the shore of the Gaspé Peninsula. The French subsequently tried to establish several colonies throughout North America that failed, due to weather, disease, or conflict with other European powers. Cartier attempted to create the first permanent European settlement in North America at Cap-Rouge (Quebec City) in 1541 with 400 settlers but the settlement was abandoned the next year after bad weather and attacks from Native Americans in the area

 

215594131.png

잉글랜드 엘리자베쓰때 버지니아 발견한 1580년 때 보다 오십년이 앞선다 프랑스가 그래서. 유럽이 근해에서 어류가 씨가 마를거 아니간 다들 고기잡이 서로들 하니. 점점 멀리 간다 고기 잡으러 특히 대구. 가다보니 다다른 곳이 저 뉴펀들랜드.다. 저건 아메리카 발견 이전에 알려진 곳이걸랑. 

 

프랑스는 저기에다가 저 갸스뻬. caspe. 라 써있는 갸쓰뻬반도.를 가는거라 저때. 그리고 1541년 지금 저 퀘벡.이란 곳에 정착민들을 두는거라. 대부분 다 죽는다. 잉글랜드 초창기랑 똑같다. 버지니아에 둔 사람들 수백명이 제임스타운 정착하러 올때 보니 십여년 지나서. 다 없다 다 죽은거지.

 

쟤덜 초기 식민지 이야기 보믄 비참하다 저 정착민들.

 

그럼 저 당시 영국 마저 정리하자. 멍크 장군 까지 정리하고 말자

 

 

 

 

잉글랜드는 저 이후, 백년전쟁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재정 파탄이 나고, 내전 당근 벌어지는겨 그게 장미전쟁

 

The Wars of the Roses were a series of English civil wars for control of the throne of England fought between supporters of two English rival branches of the royal House of Plantagenet: the House of Lancaster (associated with a red rose), and the House of York(whose symbol was a white rose). The conflict lasted through many sporadic episodes between 1455 and 1487;

 

32년 해주는겨 가볍게. 저리 내전하믄서리 싸이키 서로들 섞으민서리 정체성 결국 공고히 하는거지. 스페인 포르투갈은 저때 막막 무어인이란 무슬림 몰다 몰아내기 직전인거고. 스페인은 그 승리의 힘으로다가 바로 밖으로 싸이키, 힘을 내 쏟으민서리 제일 먼저 아메리카 진출하는거고 금 은 을 싸재이는거고 

 

잉글랜드는 이제 수습하기 시작하는거라. 

 

백년전쟁이 끝이 1453 이야. 백년 흘러야 힘이 생기는겨. 내전하미 수습하민서리. 그리고나서 등장하는 상징.이 인물.이 헨리 8세야. 

Henry VIII (28 June 1491 – 28 January 1547) was King of England from 21 April 1509 until his death. Henry was the second Tudor monarch, succeeding his father, Henry VII.

 

아부지 헨리 7세부터 정신차릴 쯤 되는겨. 아부지가 조선소도 맹글어 배도 맹글어. 상인들 보고 어여어여 밖에좀 나가라 하는겨. 스페인 포르투갈애들이 밖에서 돈벌이 하미 나라에 힘받는 소식 들었걸랑. 우리네 잉글랜드도 이제부터 하자 하는거지.

 

저때 대륙은, 잉글랜드 내전하고 수습할때에, 자생적으로, 얀 후스 그 신성로마제국 체코에서 종교개혁 일으킨 바람으로 마르틴 루터 티나와서리 농민전쟁 2년 하고,from 1524 to 1525, 불만을 종교로 푸는기고,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수십영지들은 상공업바람이걸랑, 농민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해진거지 불만 표출해이지 루터를 핑계꺼리로 삼아서리,  이 바람으로 프랑스에선 칼뱅 티나와서리, 그 깝깝함, 정치 사회적으로 답답해진 프랑스, 킹과 사제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프랑스, 터진거지 또한 종교를 핑계.로 그게 36년간의 프랑스 종교전쟁이고,between 1562 and 1598 이 바람으로 또 이전 잠시 농민전쟁 농민만 불만 터뜨린거 말고 더 나아가서 나머지 민들 다 터뜨리는거지 이게 신성로마제국 중심의 전유럽 30년 전쟁. between 1618 and 1648

 

저 프랑스 종교전쟁 분위기, 잉글랜드로 가는겨 저게, 

 

 

헌데 잉글랜드는 저따위 깝깝함이 상대적으로 없었던거야. 이전 장미전쟁으로 32년을 터뜨렸어. 다 쏟은겨 지들끼리. 카톨릭 대 프로테스탄트 그따위는 걍 핑게야. 역사를 마음으로 봐. 고코로 라는 마음으로. 낵아 만든 사관이야.

 

 

잉글랜드.는 오히려 그 카톨릭을 로마의 카톨릭을, 헨리 8세의 발정으로 왕의 엄치 하나로 짓눌러서 꺼지라우 한겨. 그리고 걍 깨갱 하고 꺼진겨.

 

민들은 아무런 관시미가 없어. 그 찐한 카톨릭을 믿은 사람들은, 아 걍 로마 카톨릭 이땅바닥에서 꺼지는 구나. 한겨 ㅋㅋㅋ

 

 

 

헨리 8세.가 캐서린의 시녀 앤블린이 너무 좋아. 스페인 아라곤의 캐서린 너무 시러. 카톨릭이 결혼 무효화 안된대. 내쫓아. 수도원장도 내쫓아. 지덜만의 교회를 세워. 앵글리칸 성공회.를

 

이 영국의 카톨릭인 성공회. 앵글리카니즘에 protest하는 이들이, 영국에서 티나오는겨. 대륙에서 넘어온 루터와 칼뱅애들이 힘을 보태는거지. 대륙은 졌걸랑 로마 카톨릭에 대항한 프로테스탄트들이. 

 

퓨리튼. puritan. 청교도. 로 번역하는 이 퓨리튼 들은 성공회를 보다 purify 순수히 하자는 이들이고, 해서 이들은 성공회에 보다 애착이 있는 부류들이 많고 다른 퓨리튼 들은 더 개혁적인 곳으로 모이는거고. 해서 대게 이들을 다른 개신교와 분리해 보는 이들도 있어.

 

저들 중 하나가 바로 장로교야. 

 

Presbyterianism is a part of the Reformed tradition within Protestantism which traces its origins to the British Isles, particularly Scotland.

 

이들이 잉글랜드에서 정착이 힘들어서 떠나 정착한 곳이 아일랜드의 북쪽 북아일랜드여. 북아일랜드가 이 장로교가 많어. 이 장로교도들이 또한 아메리카 가는거고, 우리네의 그 상투의 나라 쓴 언더우드랑 결혼한 시카고 태생의 양키누나도 이 장로교야 장로교가 조선에 많이 초기에 들어온거고.

 

하튼 헨리 8세가 저러면서, 헨리 8세와 여섯 여자들 이란 이야기들도 있고.

 

헨리 8세 죽고, 그 이혼, 아니 결혼 무효화된 캐서린의 딸 메리.가 피의 메리 되는 거고, 자기 엄마의 웬수 앤블린.의 딸 엘리자베쓰는 런던탑에 갇히는 거고, 메리 죽고 엘리자베쓰 누나가 왕이 돼. 엘리자베쓰 1세

 

Elizabeth I (7 September 1533 – 24 March 1603) Reign 17 November 1558 – 24 March 1603

 

1600년 전후가 이 엘리자베쓰의 시대야. 최고의 여자야. 스페인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1588년에 아일랜드 앞바다에서 다 엎어. 얘들은 아일랜드 바닷길 몰라서 진거고. 해적질 했던 애들은 해군 제독들 해군 장교들이 되고, 해양권을 확보를 해. 얘들이 본격적인 북미 식민지의 길을 연 거지.

 

엘리자베쓰 때 간 북미 잉글랜드인들은 다 죽었고, 저 이후에 제임스 1세 때 에서야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정착 시도를 하는거고.

 

 

엘리자베스 후임이 없어 처녀라서. 스콧에서 델꼬와. 얘가 제임스 1세가 돼. 이때 자식들을 델꼬와 둘째가 찰스 1세야. 

 

 

Charles I (19 November 1600 – 30 January 1649)[a] was monarch of the three kingdoms of EnglandScotland, and Ireland from 27 March 1625 until his execution in 1649.

 

얘가 스콧에서 왔걸랑. 아부지 제임스1세가 스콧에선 제임스 6세였걸랑. 아 잉글랜드는 왜 스콧이랑 달로? 한거걸랑. 여긴 왜 쓰잘덱없는 팔리어먼트란게 있어? 왜 감히 왕이 예산을 쟤덜 허락 맡고 짜야해? 왜 쟤덜 허락 맡고 세금을 정해야해? 

 

구닥다리 촌놈이 어이가 없는겨 여 와서, 자기 아부지도 하는것도 보고. 일종의 연산군이여 조선의. 아 우리 아부지 성종은 왜 저리 대간들에게 아니되옵니다 소리만 들어야해? 먼 왕이 저래? 한거걸랑.

 

해서 왕 쪽 애들이랑 팔리어먼트 지지하는 애덜이랑 싸우는겨. 내전을 이제야 하는거지. 여기에 이걸 청교도 혁명.하미 또 종교냄새 피우는거지만 사학자들이. 즉 이것도 성공회.에 대한 반감을 또한 핑계로 꼭지로 내세울 뿐인겨. 상대적으로 덜 깝깝해왔지만, 한 번 푸는거지 그동안 서로들 쌓인 싸이키들을. 성공회.가 결국 로마카톨릭의 다른 이름일뿐이고, 얘덜도 나름 서로들 쌓인 싸이키가 내재된 거걸랑 충돌직전의.

 

The English Civil War (1642–1651) was a series of armed conflicts and political machinations between Parliamentarians ("Roundheads") and Royalists ("Cavaliers") over, principally, the manner of England's government. The first (1642–1646) and second(1648–1649) wars pitted the supporters of King Charles I against the supporters of the Long Parliament, while the third (1649–1651) saw fighting between supporters of King Charles II and supporters of the Rump Parliament. The war ended with the Parliamentarian victory at the Battle of Worcester on 3 September 1651.

 

팔리어먼트. 의회파가 이겨. 처음엔 귀족애들이 다 찰스에게 붙걸랑. 사정보니 왕이 더 쎄보이는거걸랑. 여기에 저 찰스 원래 얘가 스콧애걸랑. 스콧도 찰스에 붙을꺼 아녀. 팔리어먼트가 상대가 안되었걸랑.

 

여기서 티나온 인간이 크롬웰 이라카는 올리버 크롬웰

Oliver Cromwell (25 April 1599 – 3 September 1658)[a] was an English military and politicalleader. He served as Lord Protector of the Commonwealth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from 1653 until his death.

 

얘가 졸라리 퓨리튼. 청교도걸랑. 해서 저걸 청교도 혁명 머 그라는데, 관시미가 없고. 걍 내전일 뿐이고.

 

얘덜이 의회파인 팔리어먼트쪽이 이기믄서, 저 찰스 1세 대가릴 짤러서 흔들어 사람들앞에서. 감히 꼰대 왕이. 세상이 지금 잉글랜드가 어느 수준까지 온줄 모르고. 하민서리. 

 

헌데 저 크롬웰.은, 이성이 부족했걸랑. 완전한 하나님 빠걸랑. 이성의 힘이 없는 인간이 권력을 잡으믄 독재가 되는겨. 

 

왕권을 엎었어. 정말 본격적인 의회 데모크라시가 오는 줄 알았어. 팔리어먼트들은 열광을 한겨.

 

 

 

어설픈 민주주의인거지. 어설픈 데모크라시. 아직은 그따위 수준의 소양이 의식이 함양이 안되었어 사람들은. 세상은 준비가 안되었어 그렇게까지.

 

 

이 판을 읽고 엎은 이가 멍크. 라 카는 멍크 장군이야.

 

George Monck, 1st Duke of AlbemarleKG (6 December 1608 – 3 January 1670) was an English soldier, politician and a key figure in effecting the Restoration of the Monarchy to King Charles II in 1660.

 

얘가, 죽은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에게 돌아서. 왕정이 복고 되는거야 얘땜에. 찰스 2세가 너무 고마울꺼 아녀? 멍크한테 북미 식민지의 땅을 줘. 지금 캐롤라이나. 쟤덜 하나의 주.가 기본 십만제곱키로야. 남한땅이야. 얘덜 개인들에게 회사들에게 땅도 저따위 크기로 줘. 아 통  커

 

버지니아.의 와싱턴도 이름알려지기 전에 우리네 남한땅 반을 받았을껴. 아 부러워.

 

나폴레옹이 출현할때, 프랑스 사람들이 떤겨 그래서, 아 나폴레옹이 저 멍크가 되려하는거 아닐까?

.

 

 

 

잉글랜드가 팔리어먼트가 힘을 잃을꺼 아녀?

 

얘 다음애가 제임스 2세걸랑. 팔리어먼트가 힘이 없다고, 이 병딱이 세상에 로마 카톨릭을 갖고 올라는겨 아녀? 사람들이 벙찔꺼 잖오? 아 저따위 구식 로마카톨릭을 버린 지가 언젠데 우리 헨리 8세 엉아가 발정나서 버린 그 구닥다리를 갖고와. 이때 나오는게 명예혁명이야.

 

 

르네 데카르트(프랑스어: René Descartes [ʁəne dekaʁt], 라틴어: Renatus Cartesius 레나투스 카르테시우스, 1596년 3월 31일 - 1650년 2월 11일)

아이작 뉴턴 경(영어: Sir Isaac Newton25 December 1642 – 20 March 1726/27)

 

저러면서, 대륙엔 데카르트 나오고, 영국은 뉴턴 나오면서, 그 합으로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이 나오민서리 산업혁명으로 날라가는데

 

 

저리 정리해보면, 

 

엄청난 질문이 생기고 바로 답을 찾게돼. 물론 자뻑의 답이지만 말야.

 

 

 

 

산업혁명은, 식민지 시장 어쩌고 저쩌고 가 아냐. 저런 사유의 흐름으로 보면 말야. 결국 정점은 저 두인간이걸랑.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 특허 딴 해가 1769년이야. 얘 이전에도 증기기관 연구자들이 있었고, 제임스 와트가 그 열매를 취한 것 뿐이고.

 

저건 획기적인 거걸랑. 인간의 힘에서 기계의 힘으로 전환을 한 거걸랑 저게.

 

 

북미 식민지의 경우만 보더라도, 1607 제임스타운에 정착하민서리 1774 독립선언할때 까지 2백년 가까이, 저들은 걍 초창기엔 목숨부지 하느라 바빴어, 저 땅에서 처먹고 사는게 문제였고. 잉글랜드에서 지원하는 가구 옷 가축 끊기면 죽는겨 걍. 인디언들 도움 없었으믄 죽은기고.

 

그 시장이란게 뉴잉글랜드 사람들 인거지 걍. 잉글랜드 살던 그 사람들이 거주한 땅만 바뀐겨. 그걸 새로운 시장이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걸랑.

 

저 독립선언 전후 부터 나름 좀 시장 하고 딱지 붙일 수가 있었어. 잉글랜드 본국 자체는 또 당시 인클로저 하민서리 농민 데모  하고, 또 팔리어먼트 인클로져 하민서리 지들끼리 또 대화하미 풀어.

 

조선에서 저리 난 부리면. 걍 죽여 다. 조선의 민란 자랑스러어 개지랄 진짜.

 

우리네가 제국주의 어쩌고 나뽀 잣대 대잖니? 그 똑같은 잣대로다가 당시의 우리네를 좀 봐. 똑같은 잣대를 디리밀어야 해. 

 

제국애덜이 저리 나뽀. 그래 나뽀 해. 그럼 당시 우리네 조선은 그럼 제국 애들보다 좋았어? 훨 나뽀 훨 나뽀 훨 엑스덜이야. 타자의 은폐 하미  대단한 발견한 듯 하는 남미 철학자. 잘났다 잘낫어. 몬테주마가 니덜 매년 수만명 사람 태워죽이미 제사 지낸건 말 안하니?

 

 

이땅바닥은 자기들 은폐 해 진짜. 조선을 은폐해 은폐. 조선 똥덩어리 왕조를 비단으로 포장해서 애덜한테 갈켜. 비단으로 포장해서 영화 드라마로 띄워. 비단으로 포장해서 시험을 치게하고. 

 

한심한거지 저게. 

 

저런 기억의 조작질로다가, 저따위 원전에 대한 환상질을 하는겨. 지덜이 대단한 줄 알어 저따위 게르만 애들 처럼. ㅋㅋㅋ

 

쟤덜이 저리 가기까지의 이야기는 아는게 하나~~도 없어.

 

 

 

 

그따위 역사가 없는 애들이 지금 아프리카고 중남미야. 재덜한테 어설피 저 유럽애들의 체제를 덧대서리 지금도 저리 지지부진한거다

 

그따위 사유들이 민들에게 스미기 위해서는 말야, 유럽애들 수준처럼 말야, 그게 수백년이 걸린다 그게. 필리핀이 저런 이유고. 우리네는 착각을 해도 보통 착각을 하는게 아니다 지금. 

 

그게 지금 저 권력이고.

 

망상이다 저게. 관념뿐이고. 역사를 실재로 배우는게 아니라 망상으로 배우는겨 저게.

 

 

 

 

쟤덜이 이집트 그리스 로마 더하기 질하고, 거기에 각각들의 켈트들꺼 더하기, 에 프랑크 동고트 서고트 노르만 바이킹 앵글로 색슨 이라는 게르만들을 더하기 하고, 그 더하고 휘젓고에 얹어서리 동시에 그리스도 사유 더하고, 거기에 옛 잊혀진 그리스의 생각과 오피니언즈들 다시 빼내서 생생하게 더하고 해서 그따위 르네상스 하면서리, 전쟁으로 섞고. 

 

그 절정이 바로 저 데카르트. 와 뉴턴.이야. 저기에서 티나오는게 제임스 와트야. 

 

 

저걸 지금 그 후발주자들이 걍 카피를 한게 지금 문명이고 다들. 우리네도 그 카피하는 애들의 엔분의 일일 뿐이야.

 

 

데카르트의 묘비에 이렇게 썼다해

 

“데카르트, 유럽 르네상스 이후 인류를 위해 처음으로 이성의 권리를 쟁취하고 확보한 사람이다.”

 

이성의 불을 찐하게 밝혔어. 이건 중세의 이성과 신앙 논쟁의 이음일 뿐이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길을 터준거고 얜 그리스 아리스토틀 꺼낸것일 뿐이고

 

그리스의 이성은 소크라테스가 불을 지폈을 뿐이고

 

 

 

데카르트.가 왜 프랑스에서 먼저 티나오고, 뉴턴이 왜 하필 잉글랜드에서 티나왔냐는 거지 그 다음에. 뉴턴은 데카르트의 다음 버전이걸랑.

 

합리론 데카르트 경험론 베이컨 그따위 말하는 놈을 걍

 

 

 

정리 다시해보믄

 

백년전쟁 끝이 1453년이야. 저 345 숫자 기억해라저거. 1534 노부나가. 두살어린 히데요시.보다 여섯살어린 이에야스. 노부나가랑 명종이랑 같은태어난해. 콘스탄티노플 함락또 저 해.

 

자 백년전쟁 1453년. 잉글랜드는 졌어 백년동안 수습해. 그리고 백년후 헨리8세와 메리 건너뛰어서 엘리자베스 1세. 죽은 해가 1603. 이 다음이 제임스애들 찰스오고 왕과 팔리어먼트 싸우고 왕이 지다가 멍크땜에 이겨 왕정복고 하고 그리고 카톨릭 갖고 올라다가 왕이 굴복해 명예혁명 1688.

 

자 백년전쟁 1453년. 프랑스는 이겼어. 그리고 왕권강화 깝깝해지는겨 종교전쟁 터지는게 그래서 백년 후에 터지는겨 1562. 36년간을 해. 그래도 이겼어 로마카톨릭이.

 

프랑스는 깝깝해 지는겨. 이 깝깝함이 에너지를 막 짓누르는겨 사람들의 사유를. 대륙은 사유가 넘칠당시야 르네상스. 이때 데카르트가 나오는겨.

 

자극을 받으니까 티나오는거걸랑. 데카르트가 환영을 봐. 신들린거지. 이건 이전 코기토에르그쑴  쉽게 한글러 최로로다가 설명 넘어가고. 얘 글은 카톨릭에서 이단이다 하미 판금이었어. 여서 이성과 수학이 티나오는겨.

 

이걸 받은게, 잉글랜드의 뉴턴인거야. 잉글랜드는 유럽에서 최첨단의 사유야. 잉글랜드가 저리 브렉시트 하는 자만인지 자부심 떠는 이유야. 유로.로 화폐 통합해도, 검은 수요일로 디어서리 파운드 썼지만 쓰지만. 저 자부심은 대단한겨 영국은. 영국은 자기들이 세상을 리드한다고 확신을 해. 미국은 영국이 낳은거야. 만약 저때 프랑스가 이겼으믄 지금 미국은 지금미국이 아닐 확률이 많어. 더 후질거란 말씀이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