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51세 도쓰토예프쓰키

Vasily Grigorevich Perov (Russian: Васи́лий Григо́рьевич Перо́в; 2 January 1834 (21 December 1833 O.S.) – 10 June (29 May O.S.) 1882) was a Russian painter, a key figure of the Russian Realist movement and one of the founding members of Peredvizhniki.

바씰리 그리고레비치 페로프. 바씰리 페로프 가 38세일때 51세 도톱형을 그린건데. 이화가는 페렛비에즈니키 설립멤버. 러시아 중앙코트에서 나와서 자기들 스스로 기획전시 하는겨. 러시아 여러지역을 돌면서. 이동파 여행파 어쩌고 번역하고.

도톱이형이 1821-1881.

Dostoevsky completed his first novel, Poor Folk, in May 1845.

도톱이는 밀리터리 엔지니어 야. 대학도 알렉산더1세가 세운 군사 공병대 를 졸업한겨. 지금도 있어. 미국 미군공병대학 이 있듯이. 얜 엔지니어 기술자고, 카데 캐딧, 얜 위관급 장교야 공병대 졸업한. 그런데 억지로 졸업해. 수학 과학이 안맞아. 근데 아빠가 아포플렉틱 스트로크, 뇌출혈로 죽고 걍 억지공부해서 졸업하고, 군바리 상태에서 번역과 소설을 써.

서기 1845 24세에 푸어포크, 가난한사람들 첫중편소설을 내. 이걸로 영스타가 되어서 사회 문학계 지도층 써클 에 들어가. 첫 소설로 이름을 알린겨.

난 도톱이 책을 그야말로 아무생각없이 시간 때울거 없나 하미, 죄와벌 이 있길래 먼가 하고 봤다가, 그리곤 카라마조프 를 봤걸랑.

대게 뭔 감상평 이야기 하면, 대게 머  쇼킹 이니 충격 어쩌고 하잖니. 마치 그런 단어를 쓰면 자기가  있어보이는거거든. 야 캬 머  별 먼소릴 테레비 칼럼 에 어쩌고 저쩌고.

개거짓말들 인걸 난 알걸랑. 어드래 과장 드러내면 좀 있어보이까 유식해보이까 하는 조선들 종특인데.

카라마조프 는, 죄와벌 때문에 봤는데, 이 도톱이 글은 흡입력이  쎄. 죄와벌 은 키에케고 의 리프오브페이뜨 여. 동시대 같이 인식한 구문이야. 덴마크와 러시아 에서. 카라마조프 를 보고 덮곤, 그야말로 소름, 가슴 쿵쾅. 칠일후에도 저책 생각하니 쿵쾅, 정말 조올라게 강렬해 저 카라마조프.

그리곤, 도톱이껄 안봤걸랑. 카라마조프 이상의 책은 없을거고, 나머진 카라마조프 로 가기위한 여정의 글들일듯. 그러다 백치 를 보고, 악령을 보고, 아 이 도톱이껀, 다 봐야 되겄더만.

내가 본 유이한 전집 은, 플라톤 과 셰익스피어 인데, 이 도톱꺼도 다 보고싶어지더만.

도톱이가 시베리아 10년을 서기 1849 부터 시작을 해. 28세.

궁금한게, 도톱이는 죽음경험직전 과 시베리아 다녀와서 진짜글을 쓴건가? 시베리아 전의 글은 후졌을까?

도톱이는, 원래부터, 쎘다, 강렬했다, 강렬했다는건, 리앨리티 세상과 인간의 바닥을 보고 파악하고 드러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라는건데

가난한사람들 1845년 나이 24세, 이게 첫 소설인데,

도톱이는 걍 시작부터 강력 초울트라여. 대체 저나이에 어떻게 저런 시각을 갖을 수 있지? 카라마조프 1879는 이미 34년전 저때 반이상 갖고 있던겨 도톱이가.

도톱이는 밀리터리 엔지니어 로 근무하면서 책을 쓴겨. 1845. 쏘셜리즘 유토피아 웨스턴화 의 써클에서 지내. 곧 1848 대혁명 이 오기 직전이고, 1848 이란건 프랑스 1789 대학살의 대륙확장판이고, 프랑스1789 부터 대륙 킹덤들은 정보부 공안이 쎄지고 검열이 쎄지는겨. 특히, 러시아.

The members of the Petrashevsky Circle were denounced to Liprandi, an official at the Ministry of Internal Affairs. Dostoevsky was accused of reading works by Belinsky, including the banned Letter to Gogol,[46] and of circulating copies of these and other works. Antonelli, the government agent who had reported the group, wrote in his statement that at least one of the papers criticised Russian politics and religion.

도톱이가 1849 4월23일에 체포돼. 내무부 산하 리프란디 가 정보부장이고, 찍힌겨. 이 리프란디 는 푸시킨 이 우크라이나 망명때 정보부여. 출세해서 정보부장된겨. 벨린스키 는 도톱의 10년 위고, 얜 무신론자야. 도톱이가 나중 싫어해. 도톱이는 절절한 크리스찬이야. 저당시 벨린스키 의 글인 고골에게편지 포함 불온한 글들을 읽었다며 체포된겨. 이 벨린스키는 이미 전에 폐결핵으로 죽었고.

In 1846, on the recommendation of the poet Aleksey Pleshcheyev,[41] he joined the Petrashevsky Circle, founded by Mikhail Petrashevsky, who had proposed social reforms in Russia. Mikhail Bakunin once wrote to Alexander Herzen that the group was "the most innocent and harmless company" and its members were "systematic opponents of all revolutionary goals and means"

정보원이 보고를 한게 쟤들 써클이 모여서 불온한 정치글들을 낭독했다는겨. 도톱이도 읽은걸 정보원이 들었다는거고. 이 써클이 페트라셰프스키 가 주도한건데 얜 외무부의 번역가 일하며 불끈대던 애고 도톱인 시인 플레시셰비에프 소개로 가입하고 쟤 아파트에 책이 많아서 주말에 도서관용 으로 간거고. 나중 바쿠닌 왈 저 서클은 그야말로 순수문학서클이고 우리의 정치개혁활동에 반하는 애들 이라며. 쟤들이 모두 동년배고, 바쿠닌 도, 도톱이 체포될때 체코에서 얜 체포되서 나중 러시아 이감되서 시베리아 가는거거든.

도톱이 체포 도, 1848 유럽혁명 바람 때문에 러시아 짜르가 미리 단속을하는겨이게. 모든게 1848 이고 이전 1789 여.

푸시킨 1799-1837 리프란디 1790-1880 고골 1809-52

푸시킨 이 좌파 대변인 하면서 렬렬히 부르짖다가 20대에 코카서스에 우크라이나로 유배가 돼. 우크라이나 키예프 아래를 뉴러시아 라고해. 여기 사람들을 소러시안, 리틀러시안 이라고해. 즉 뉴러시아 소러시아여. 러시아 문학책에도 그리나와. 리프란디가 30대에 저기서 20대의 푸시킨을 감시해. 푸시킨은 여기와서 얜 저지역 주지사 마누라에게  구애해. 그리곤 이 푸시킨이 자기 마누라에게 구애하는 애랑 총 듀얼 로 재수없게 신장쪽맞아 죽은겨. 듀얼로 총쏘고 죽는건 확률상 재수  없는거거든.

푸시킨 죽을때 도톱은 16세고, 아빠뻘이고, 고골은 도톱보다 12년 위인데, 고골은 1836 부터 러시아를 벗어나서 돌아다니고 예루살렘도 가고 1848년 4월에 들어와. 도톱이 체포될때 들어온겨 12년만에. 도톱 27세 고골39세. 고골은 4년후 죽어. 예루살렘 증후군걸린건지 고골은 영성주의로 간겨. 죽은혼 이 말년 작품인데 미쳐서 2부를 태워. 후회해 악령들렸다미. 아무것도 안먹고 9일만에 죽어 고통에.

도통이는 고골 빠야. 첫 소설 가난한 도 주인공캐릭이 고골 외투 의 주인공 그대로 갖고온겨. 도톱이 전집이 상당한데 곳곳이 고골 오마주야. 도톱이는 고골 열라게 좋아해. 그런데 12년 차이임에도 당대에 둘은 정작 만남이 없어. 푸시킨과 고골은 친했고. 고골은 정치와 상관없어 금서도 아니고, 고골의 풍자소설 감찰관 은 오히려 짜르 니콜라이가 좋아했어. 니덜 정신차리라미 공무원 들 읽으라미 했거든.

공무원 이 많은 나라는 , 끝난겨.

젊은애들이 공무원 이 꿈인 나라, 끝난겨

이 남조선땅은, 희망이 없어.

그야말로 완벽하게 생의 뿌리를 짤랐어 오년간. 앞으로 오년은 더한애가 등장해서 아작을 낼테지만. 저 들이 먼 잘못인가 저딴거드를 렬렬히 빨아대는 민들 의 땅.

아, 정말, 우주 생명사에 이 조선 땅 만큼 머같은 땅은 없을겨 ㅋㅋ 그래서 조선 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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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se was discussed for four months by an investigative commission headed by the Tsar, with Adjutant General Ivan Nabokov, senator Prince Pavel Gagarin, Prince Vasili Dolgorukov, General Yakov Rostovtsev and General Leonty Dubelt, head of the secret police.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을 4월 23일 체포해. 그리고 얘들을 어찌할지 네달을 회의해. 차르 니콜라이1세, 애져턴트 제너럴, 차르를 어시스트 하는 별, 프린스 란건 크냐즈 의 영역이고, 땅있는영주 파벨 가가린 은 크레믈린 사령관이고, 크냐즈 돌고루코프 는 전쟁부장관, 야코프 로스토프체프 는 교육사령관, 레온티 두벨트 는 비밀정보부장.

최고권력들이 네달 고민 해서 사형판결을 내려. 8월말. 그리고 12월에 처형식을 해. 짜여진 각본대로.

They sentenced the members of the circle to death by firing squad, and the prisoners were taken to Semyonov Place in St Petersburg on 23 December 1849 where they were split into three-man groups. Dostoevsky was the third in the second row; next to him stood Pleshcheyev and Durov. The execution was stayed when a cart delivered a letter from the Tsar commuting the sentence.

장대 세개에 각각 세워. 세명을. 소총부대가 사격하는겨. 도톱이는 세번째 그룹 두번째. 즉 8번 이야. 앞에 여섯 죽고 세번째 죽는겨. 페트라셰프시키 , 시인 플레시셰비에프 도 같이 죽는겨. 처형을 시작하려는데, 카트 마차가 와서 중지시켜 차르가 판결을 바꿨다며.

모든게 연출된거로 봐.

저때 다들, 특히 도톱인 확실히 죽는줄 알고 있었어.

Dostoevsky later alluded to his experience of what he believed to be the last moments of his life in his 1868-1869 novel, The Idiot, where the main character tells the harrowing story of an execution by guillotine that he recently witnessed in France.

도톱이 저 처형식때의 장면과 감정을 백치 에서 써. 크냐즈 미시킨 므이시낀 이 프랑스 갔다가 길로틴 처형장면을 본 이야길 전하면서, 처형 직전 살아남은 누구의 경험담 이라며. 저기서 세명씩 한조에 그사람은 여덟번째였다며. 저기서 도톱이 하는말이, 싸버린 이 처형시키는 상황엔 당사자는 희망이 전혀 없다는겨. 강도의 총구 앞에서는 살아남을 희망이 있대. 그러나, 공권력이 처형하는 장면에선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겨. 죽음을 확실히 느낀대. 죽는구나. 그 감정을 느낀대. 그런데 취소되었다며. 그때의 감정이란.

도톱의 가장 큰 주제는, 감정 파헤치기야. 채찍질을 당한 죄수에게, 물어봐 궁금해서. 고통스러워. 고통? 그 고통이란게 구체적으로 뭔가? 몸에 불이 나는거지. 몽둥이 오백대 천대를 맞는 고통. 몽둥이보다 채찍질이 더 아프대. 깔미크출신 죄수는 4천대를 맞아. 천대씩 나눠서. 한대가 천대같은 4천대를 네번 나눠. 천대맞고 병원가서 아물면 다시 천대.

고통? 구체적으로 어떤건가?

니가  쳐맞아봐 ㅋㅋ.

이 감정 파고드는건, 도톱이가 최고같어. 이미 본능적으로 촉수가 내재된상태에서, 죽음직전의 감정을 처형식에 겪어보고, 시베리아 10년에서 온갖 바닥의 감정들을 다 접한겨.

죄와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야. 러시안은 웨스턴을 안다, 그러나 웨스턴은 러시아를 이해할수 없다. 도톱이 문장이야.

백치 가 스토리로는 재미져. 악령은 상대적으로 저 네개중에서 가장 쳐져.

백치 의 미시킨 이 간질 발작 환자야. 도톱이가 이 간질 경험이 있어. 간질 의 리얼함이 어디서 나오나 했건만 자기경험이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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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stoevsky served four years of exile with hard labour at a katorga prison camp in Omsk, Siberia, followed by a term of compulsory military service.

가짜처형일이 12월23일. 체포된해고. 옴스크 의 카토르가 캠프 에서 노역의 형무 를 하는겨. 4년을.


시베리아 중심은 오비강 예니세이강 사이고, 오비강은 우랄산맥 오른경사면이야. 이르티시강 이 알타이 중국 카자흐스탄 에서 옴스크 를 지나 죽 가서 오비강을 만나. 오비도 알타이 상류지류들에서 생기고. 옴강이 옴스크에 이리티시강과 만나.

옴스크 오른쪽 같은 위도 가 오비강 노보시비르스크. 노보 뉴, 시비르스크 시베리아. 시베리아 가장 큰도시가 인구 150만 노보시비르시크 이고 다음이 인구 백만 옴스크 야. 여기가 위도 55도. 코펜하겐이 55도여. 런던이 51도여. 옴스크가 러시아 내전 시 백군 화이트아미의 콜차크 제독의 수도.

옴스크 아래 보이는 아스타나 Astana 가 카자흐스탄의 수도야. 이름이 바뀌어서 지금 Nur 누르 술탄. 아스타나 오른쪽에 이르티시강이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국경선 가장 가까운 뾰족 지점이

Semey (Kazakh: Semeі; Cyrillic: Семей), until 2007 known as Semipalatinsk (Russian: Семипалатинск) and in 1917–1920 as Alash-kala (Kazakh: Алаш-қала, Alaş-qala), is a city in Kazakhstan, in East Kazakhstan Region, and in the Kazakhstan part of Siberia.

쎄메이, 쎄미팔라틴스크. 지금 카자흐스탄 의 시베리아. 도톱이 옴스크에서 4년 죄수생활하고 풀려나서 군인생활 6년하는곳이야.

After his release on 14 February 1854

만 4년을 죄수생활하고 서기 1854년 2월14일에 옴스크 감옥에서 출감

Before moving in mid-March to Semipalatinsk, where he was forced to serve in the Siberian Army Corps of the Seventh Line Battalion,

옴스크 오른 아래 쎄메이 의 제7전선요새 의 시베리아 부대 에 강제군역. 여기서 부대장 자식들 과외하면서 상류층들과 만나고

During a visit to Belikhov, Dostoevsky met the family of Alexander Ivanovich Isaev and Maria Dmitrievna Isaeva and fell in love with the latter.

마리아 를 만나서, 1857년 2월에 결혼해. 반성문 쓰고 결혼허가에 출판허락을 받아. 간질 발작을 마리아가 보고 두려워해. 도톱인 죄수에 강제군역에, 희망없는 애거든. 30대중반. 그럼에도 끌려.

"Because of her strange, suspicious and fantastic character, we were definitely not happy together, but we could not stop loving each other; and the more unhappy we were, the more attached to each other we became"

우린 결코 안행복이다. 그러나 서로 러브를 못멈췄다. 우리가 더 불행할수록, 우리는 더욱 서로 끌려다녔다.

1864에 마리아 죽고, 한살위 형도 죽어. 도톱이 동생만 다섯이야.

In 1859 he was released from military service because of deteriorating health and was granted permission to return to European Russia, first to Tver, where he met his brother for the first time in ten years, and then to St Petersburg

1859 에 군역을 벗어나. 건강악화 에 우랄왼쪽 러시아 오는걸 허락받아. 트베르 에서 형을 10년만에보고 피쩨르부르그 로 오다.

그리고서 연재하고 낸 책이

The House of the Dead (Russian: Записки из Мёртвого дома, Zapiski iz Myortvovo doma) is a semi-autobiographical novel published in 1860–2[1] in the journal Vremya[2] by Russian author Fyodor Dostoevsky, which portrays the life of convicts in a Siberian prison camp.

자피스키 이즈 묘르토바 도마. 영어로 정확히, notes from dead house , 죽은집에서의 기록들 이야. 1860-62연재에 책인데. 368 페이지. 이게 460페이지로 번역된건데.

監獄,中國歷史古代稱囹圄,韓國稱為教導所,日本稱為刑務所,是拘禁囚犯的場所。 在美国,有部分监狱是私营的。如美国感化公司。

감옥 은 중국말. 영어 생활 영어는 고대중국말. 한국은 교도소 일본은 형무소. 그래서 서대문 형무소 여.

Katorga (Russian: ка́торга, IPA: [ˈkatərɡə]; from medieval and modern Greek: katergon, κάτεργον, "galley") was a system of penal labor in the Russian Empire[1] and the Soviet Union (see Katorga labor in the Soviet Union). Prisoners were sent to remote penal colonies in vast uninhabited areas of Siberia and Russian Far East where voluntary settlers and workers were never available in sufficient numbers. The prisoners had to perform forced labor under harsh conditions.

도톱의 옴스크 캠프를 카토르가 라고해. 그리스말 선박 노젓는 노예여. 카토르가 는 형벌시스템 중 하나로, 노역 일 을 시키는겨. 고대엔 죄수가 갤리선 노젓고, 프랑스 장발장은 선박 수리를 하는겨. 러시아는 시베리아 와 예니세이강 오른쪽인 러시아극동 을 죄수들을 보내.

Penal labour is a generic term for various kinds of forced labour[1] which prisoners are required to perform, typically manual labour.

刑務作業(けいむさぎょう)は、自由刑の内容または自由刑に付随して行われる作業

형무소 교도소 생활하면서 밖에 나가서 일하는걸 페널 레이버, 형무작업 이라고해.

페널 칼러니, 캠프 를 나와 석방시키고 그곳에서 살게해. 모스크바쪽으로 못와. 도톱이 같이 갔던 서클 애들은 캠프 나오고 시베리아 시민 살이 를 한겨.

바쿠닌 이 똑같이 시베리아 로 갔다가, 시베리아 시민으로 살다가, 미국배타고 일본쪽으로 도망가서 요코하마가서 미국을 간겨.

도톱인 반성문 졸 쓰고 졸 아프고 해서 재수좋게 우랄왼쪽 입성 허가를 받은겨.


죽은집 , 이란게, 군역 아닌 옴스크 감옥살이할때, 저녁에 족쇄끌며 노역에서 감옥 들어가는 죄수들을 보고 도톱이 가 분장한 기록자가 하는말 이야. 죽은집 이구나 죽은집에 걸어가는구나.

족쇄 는 절대 못 풀어. 발족쇄는 출감할때 푸는겨. 속옷 입고 벗는 방법이 있대.

4천대를 맞아. 매맞다가 죽어.

저책은 졸 지겨운건데, 또, 보다보면, 또 보게돼. 도톱이 문장은 진짜 끄는 힘이 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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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7년 전쟁 에서 비롯된거야. 이 7년전쟁으로 대륙의 부르봉 스페인 프랑스 가 철저하게 망하는 확인도장을 찍은거고, 중앙권력이 망가지는겨 얘들이. 경제가 끝나고 물가치솟고 베네주엘라 가 된거야. 곧 남조선의 모습이 될텐데 지금 남조선 물가가 이게 심상치않아. 아 정말 어떻게 단 5년만에 경제를 개박살을 낼수 있는지. 수습이 안될텐데 저게. 주식투기가 일상이 되어버렸어 ㅋㅋ. 주식투기를 문화로 여기자는게 광고야. 참 골때리게 가는 남조선인데.

The Seven Years' War (1756–1763) was a global conflict, "a struggle for global primacy between Britain and France", which also had a major effect on the Spanish Empire.

1756-1763. 조지 와싱턴 이란 어린애가 22세에 드주몬빌 의 캐나다 부대를 습격 살육하면서 프렌치앤인디안전쟁 이 시작되고 이게 7년전쟁으로 번진겨. 저 조지 와싱턴 이란 애는 지금 미국애들의 최고 영웅이고. 오스트리아 후계전쟁 1740-48 에서 합스부르크가 프러시아에 실레시아 뺏긴걸 이때 갖고 오려고 대륙에 전세계로 번진겨.

미국독립이란건 7년전쟁 1756-63 에서 시작이 된겨. 7년전쟁으로 영국은 북미수호를 위해 모든 자원을 투입한거고, 메마른 세수를 확보위해 북미에게, 너 이제 빚갚아, 니들 대체 본국 영국을 위해 한게 머야 국방비 행정비 우리가 다 대고 니들 정착을 위해 본토는 무료봉사한거고 7년전쟁으로 거지됐어 니덜 빚갚아, 를 쌩까고 우리 독립할텨 가 1776 이여. 이 전쟁의 영웅이 또한 조지 와싱턴이고. 얘가 1754 습격으로 시작된 7년전쟁이 1775-83 독립전쟁하고 초대대통령 8년하고 2년후 뒤진겨. 미국 은 조지 와싱턴 그 자체고, 미국의 최고 히로여 지금도.

저 드주몬빌 습격은, 백퍼 천퍼 조지와싱턴의 사탄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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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엘리자베타 가 1761 연말에 죽어. 프러시아 가 지워지는 순간에 살아난겨. 표트르3세가 프리드리히2세를 떠받들고 뜬굼포 지고향 덴마크 를 먹고 발트해를 넘겠대. 프러시아는 이때 얘때문에 살아서 나중 독일이 된겨. 6개월만에 마눌 예카테리나 가 쿠데타로 잡고 저인간은 죽어.이게 1762년 이야. 그리고 7년전쟁 마무리하고, 프리드리히가 예카테리나와 폴란드 분할하는겨. 예카테리나 가 생전에 저걸 다해. 프러시아는 프리드리히 죽고 조카 가 받아 2차 3차 를 예카테리나와 하는거고.

1756-1763 이 칠년전쟁으로 프랑스는 거지가 된겨. 태양왕 루이 14세의 증손자 15세 1710생이 나이 5살에 올라 40살때 7년전쟁 맞고, 1774에 죽어. 폴란드 마리와 낳은 아들의 자식 루이16세가 20살 1774에 킹 되서 15년후 1789 당하고 4년후 목짤리는데. 1789 프랑스 는, 느닷없어 온겨 이건. 갑자기 당한겨. 이 갑자기 가, 1756-1763 칠년전쟁 하고 26년동안 망가진 경제의 꼴까닥에서 터진거야.

루이14세의 그 화려하고 강력한 문명의 부를 얘가 전쟁으로, 중세마인드로 모두 소진하고, 소진하면서 끝물 스페인을 확실히 죽이면서 부르봉에 편입해서, 7년전쟁으로 사망확인 도장을 같이 찍은겨 증손자 루이15세에. 그리고 1789대학살을 26년후에 느닷없이 온듯 느껴진거야.

북미를 프랑스가 모두 빼앗긴겨. 루이지에나 라는 로키 까지의 땅은 스페인에 주고 이땅도 나중에 나폴레옹이 스페인 점령해서 독립한 미국에 돈받고 팔아.

느닷없이 온듯하지만, 깔딱깔딱 하다가 올수 밖에 없는게 1789 프랑스 대학살 이야.

모든게 저놈의 7년전쟁이고,

사회주의 코뮤니즘이라는인민민주주의 는 7년전쟁 1756-63 후의 26년 지난 프랑스 대학살 1789 에서 오는겨.

거리에, 적폐가 보이면, 걍 찔러 죽여.  걘 영웅되는거고. 클리앙 오유 딴지 보배 들이 길가다 적폐다! 찍고 조지고 죽이면 영웅인겨. 깜빵 적폐들 이라며 짜웅해들어가 막막 찔러 수천명을. 파리 의 모습이야 테러시대의.

쟤들이 저짓을  하고프거든. 니덜은 파쇼들이다 라고 하니, 야 우리가 왜파쇼 에 독재니 우리가 사법살인을 했니 고문을 했니 이 적폐들아. 적폐언론 을 없애고 민주언론만 있어야 하는디.

조선 오백년의 야만, 조선이란건 사법체계가 없거든. 신소설 귀의성에, 지금이 조선시대처럼 백주대낮 대명천지에 사람죽여도 괜찮았던 시절인줄 아니? 해대는 침모 의 대사가 있거든.

쟤들이 미치겠는거야. 그동안 쌓인 양키 문명으로, 그짓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겨 쟤들이. 북조선식 숙청짓 살인짓을 하고 싶은데, 남조선이 웨스턴화 되서 못하는겨. 파쇼짓을 못해 대놓고는. 애들 선동해서 야금야금 없애고 북조선과 하나되어서 다 조질팅께, 그날이 오면 ㅋㅋ.

그날이 오면, 개소리하는거지. 그날이 오면, 모두들 죽는거지, 몇몇만의 돼지들만 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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