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dy of the Dead Christ in the Tomb (and detail, lower) 30.5 cm × 200 cm. Kunstmuseum Basel

무덤안 죽은크라이스트 의 몸. 쿤스트 무제움 바젤. 스위스 바젤 에서 1671년에 아트콜렉션 을 해. 쿤스트 가 know 노우 의 쾨넨 konnen 이고, 캔 할수있다 로 가. 날리지 가 독어로 가서 쿤스트 아트 기술이 된겨.

The Body of the Dead Christ in the Tomb is an oil and tempera on limewood painting created by the German artist and printmaker Hans Holbein the Younger between 1520–22.

한스 홀바인. 이 1520 즘에 그린. 23세. 아우크스부르크 태생. 라임우드 에 입힌 오일 과 템페라. 피그먼트 안료는 물에 안녹아. 접착제가 오일에 계란노른자 로 안료를 붙인게 템페라. 라임우드 가 tilia 틸리아 라는 linden tree 린덴 트리. 고 이걸 영국에서 라임트리 라고 불러. 라임열매 라임과 전혀 상관없고. 누마누마 노래 제목이 드라고스테아 딘테이 의 딘테이 가 인린덴트리 여. 저걸 피나무속 사랑 보리수나무속 사랑. 쇼펜하우어의 보리수도 린덴이지만 보리수도 아니거니와 걍 일본애들번역을 아무생각없이 붙여서 모든게 개판이라 보면되고. 부처 인도보리수와 조선보리수와 저 피나무 린덴과 셋이 족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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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이미지 중에, 가장 재미? 있는 그림은 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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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en was the first to propose the ransom theory of atonement in its fully developed form,[153] although Irenaeus had previously proposed a prototypical form of it.[153] According to this theory, Christ's death on the cross was a ransom to Satan in exchange for humanity's liberation.[153] This theory holds that Satan was tricked by God[153][154] because Christ was not only free of sin, but also the incarnate Deity, whom Satan lacked the ability to enslave

링크 가 안되는 글은 내가 폰으로 쳐서리 폰은 텍스트로만 붙어서 그런거고. 길가미 누우미 치는겨 컴구경안한지 몇년이냐 이거.

오리진 이 랜섬만 처음 제기 가 아니라, 기독신학 의 모든 주제 테마는 오리진 이 처음이고 모두 오리진이 심은 깃발들 갖고 기독신학을 하는거야. 오리진은 지저스 와 동끕이여. 인간 역사에서 가장 무시되었고 되고있는 사람이야 이 오리진은. 기독교는 오리진 을 이단시해서 신도가 줄어드는겨 미래엔 기독교 도 사라져. 천년안에.

내가 설립한 종교가 유일한 종교가 되는겨 천년후에. 엄청나지 않니? 아이 샹 지금 신도가 하나 없어 서글프긴 하다만서도. 아 이걸 영어로 시작했어야 하는데. 시작이 조시라 끝도 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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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은, 지저스 십자가죽음 은 사탄에 랜섬이었다, 그 반대급부는, 휴매니티의 리버레이션, 인간의 우시아 의 해방 이야. 이건, 사탄이 인간을 죄로 족쇄질 했다는겨. 신은 그렇게 둔거고.

아담과 이브가 사탄에게 인간성을 팔아, 사탄은 인간을 클러치 족쇄로 묶어, 신은 이 족쇄를 풀기 위해 사탄에게 랜섬 보석금 인질(금)을 걸어야 해. 신이 트릭을 써, 사탄과 흥정을 해, 너 크라이스트 의 죽음 이면, 인간의족쇄를 풀어주겄니? 콜? 지저스의 죽음과 대체하기로 받아들여 사탄이.

그러나 지저스는 죽음에 묶이지 않아. 사탄이 요걸 몰랐다는겨. 그래서, 죽음의피로 인간들족쇄를 풀어줬어 해방돼. 나중에 알게돼, 지저스는 죽음에 묶이지 않은거고 죽은게 아니네? 아  쏙았어 신 한테, 인간들 다시 족쇄질 하지는 못하는겨 그렇다고? 예전엔 아담 이브로 한방에 프로그램되서 자연스레 낳자마자 수갑채웠는데, 저때부턴 현피뜨면서 각개다이로 족쇄질 하고 있겄지. 그래서 상수가 현피뜨자면 졸 구찮아 하는겨.  일일이 상대하는게 얼메나 피곤하겄누.

justice was satisfied and God was able to free us from Satan's grip.

지저스 죽음으로 랜섬을 사탄이 허하며 동시에 신측에서도 희생을 했다며, 죄가 갚아져서, 져스티스 가 새티스파이 되었다, 그래서 사탄의 그립에서 인간이 풀려났어. 이 풀려난게 머여? 이게 리뎀션 어토운먼트 셀베이션 딜리버런스 레콘실리에이션 이여. 이게 곧 져스티스 가 새티스파이 된겨.

즉 인간이 이즈비에 신이 못되는건, 유식하겐, 져스티스가 새티스파이 되지 않아서야.

이게 참 재밌는 문구야. 져스티스 가 새티스파이 되다

satis (“enough, sufficient”) +‎ faciō (“to make, construct”)

쌔티스파이 는 싸티스 에 파키오. 충분히 꽉차게 만든겨. 싸티쓰 가 싸투쓰 의 분사고. 쎄로 싸우 씨뿌리는겨. 풀 꽉차게 충분하려면 씨뿌려야 해. 이 워드들이 멋져. 지저스의 씨뿌리는 비유는 그리스어들에서 나온겨. 그리스는 수메르 에서 받은거고. 쟤들 워드들에 쏠들의 역사가 다 심어지고 그걸 지저스 의 작가들이 구현한거야 문장으로.

져스티스, 원래 태초의 잣대 가 훼손 이 되고 유실 이 된거야. 이게 씬. 죄 라는겨. 죄로 훼손되고 능력 잃은겨. 이걸 다시 채우기를만들어 새티스팩션, 그래야 구원 이 돼서 신과 맺어져.

씬 이란 단어가 트루에서 파생된겨. 참에서 깨진게 씬이야.
非,既是声旁也是形旁,表示非法。罪,篆文(网,缉捕)(非,非法),表示缉凶。造字本义:动词,抓捕、惩罚犯人. 전문에 집포 지부 잡아
조포 징벌범인. 주아부 잡아서 범인을 징벌해. 죄나벌이나 극동한자는 같은 의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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쌔티스파이 를 위해 지저스를 랜섬 으로 사탄에 주고 사탄이 속아. 신이 속이다니, 아무리 상대가 사탄이라고. 반발이 생길수 밖에 없어. 이게 11세기 에서야 다른 해석이 나오고 마던에서는 오리진의 해석을 따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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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Augustine wrote the following to explain the theory:

The Redeemer came and the deceiver was overcome. What did our Redeemer do to our Captor? In payment for us He set the trap, His Cross, with His blood for bait. He [Satan] could indeed shed that blood; but he deserved not to drink it. By shedding the blood of One who was not his debtor, he was forced to release his debtors

— Doctrine of the Atonement, Catholic Encyclopedia

성 오거스틴 이 오리진의 랜섬을 멋지게 풀어. 리디머가 왔고 디시버는 극복되었다. 우리의 리디머는 우리의 캡터 에게 무엇을 했나. 우리 인간을 위해 랜섬을 지불하면서, 리디머 그는 그이의 십자가 라는 덫을 놓았다, 그이의 피라는 미끼와 함께. 사탄은 그 피를 뿌렸다. 그러나 사탄 그는 피를 마실 자격은 없었다. 원 리디머 그는 사탄의 채무자 빚진자 가 아니었지만, 그 원 리디머 의 피를 사탄은 흩 뿌려서, 사탄의 채무자들을 풀어줘야 했다.

참, 잘 써. 아 저들 문장 쓰는거 보면 감동이야.

리디머 의미는 바이백 으로 쓴겨. 족쇄된 인간성을 되산거야 랜섬으로 주고, 리디머 원 지저스 vs 디시버 캡터 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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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로마카톨릭은 랜섬 이론을 취하지 않아. 우리가 아는 대속이란건, 안셀름 이 해석한 개념이야

Anselm of Canterbury[a] (/ˈænsɛlm/; 1033/4–1109), also called Anselm of Aosta (Italian: Anselmo d'Aosta) after his birthplace and Anselm of Bec (French: Anselme du Bec) after his monastery, was an Italian[7] Benedictine monk, abbot, philosopher and theologian of the Catholic Church, who held the office of Archbishop of Canterbury from 1093 to 1109.

캔터베리 의 안셀름. 아오스타 태생. 벡 수도원. 캔터베리 대주교가 1093-1109. 빨강머리 윌리엄 에 아들 헨리1세 때고. 잉글랜드가 보름협약 1122 보다 먼저 당해 1107 런던협약. 서임권을 세속이 교회에 뺏겨. 헨리1세와 교황 파스칼. 이 파스칼도 카놋사 굴욕시킨 그레고리7세 가 추기경 시킨거고, 파스칼 전 이 우르바누스2세 교황이야 십자군 발기하는.

안셀름 때 런던협약으로 잉글랜드에선 킹 보다 더 쎈겨 교회가. 교회와 세속의 이 긴장이 안셀름 죽고 70년 지나 토마스 베킷 대주교 가 헨리2세 애들에게 현피떠서 맞아 죽는겨. 그리곤 킹이 죄인이 되는겨 이게. 오직 웨스턴만의 이야기여 세속이 교회죽여서 죄의식 느끼는건. 존 위클리프 가 교황의 교회를 비난해. 에드워드3세는 저런 위클리프가 좋아. 얀 후스는 잉글랜드 위크리프 에서 시작이야.

할때 안셀름이 16년 대주교 에 킹땜에 도망다니고 런던협약하고 2년후 죽어.

안셀름 은 닥터 에 쎄인트야. 성오거스틴 과 토마스아퀴나스 사이에 안셀름 이야. 40년 아래가 피에르 아벨라르야. 스콜라 시작 이 이 둘이야.

The Monologion. 모놀로기온 1075년. 독백. 참 멋있는게, 시작이, 성서에 의해서 신의존재 가 강요되선 안돼. 신존재증명을 하는데, 성서에  이리 써있느니 저리 있느니 해서 믿어라, 뻑 니미뻑이여. 성서를 치우고, 오직 이성으로 신존재증명이 가능한가.

https://youtu.be/fGEX1pEpZ4M

Cur Deus Homo ("Why God was a Man") was written from 1095 to 1098 once Anselm was already archbishop of Canterbury[32] as a response for requests to discuss the Incarnation

쿠르 데우스 호모. 신은 왜 인간이었나. 캔터베리 대주교 되고 바로 쓴 글이야. 여기서 지저스 십자가 의 어토운먼트. 에덴동산 의 죄를 지어. 인간은 타락한거고, 이 타락은 신을 공격한거야.

사탄 은 등장 안해. 신이 사탄과 딜을 하느니, 사탄을 속이니어쩌고는 너무 유치한겨.

인간의 타락이 신을 공격한거야. 인간은 스스로 떨어진거야. 스스로 죄지은거야. 신이 벌을 준게 아냐. 인간 스스로 죄지어서 스스로 벌에 처해진겨. 스스로 낭떠러지에 떨어진겨이건.

humanity has offended God.

인간의본성이 신을 공격한겨. 죄짓는것 자체로 신은 상처를 받은거야 쇼킹먹은겨. 신을공격하다 와 맞먹는거야.

인간 스스로 지은죄의 나락의벌 을 인간스스로 회복을 못하는겨 이전상태로.

신의 도움만으로 인간은 이전으로 갈수 있어.

Divine justice demands restitution for sin but human beings are incapable of providing it, as all the actions of men are already obligated to the furtherance of God's glory.[199]

디바인 져스티스. 이 논리에선, 이 단어 가 핵심이야.

디바인 져스티스 가 새티스파이 되어져야 한다는거야.

에덴동산의 사과먹은 죄 로 신 이 공격당한겨. 열받은겨. 져스티스 가 훼손된거야. 그냥 져스티스 가 아니라, 디바인 져스티스야. 신성한 올바름.

신성한 올바름 이 무한대로 훼손당했다는겨. 이걸 채워넣어서 올바름 해야하는데, 인간이 이걸 채울수 없어. 불가능해 인간능력으로는.

Further, God's infinite justice demands infinite restitution for the impairment of his infinite dignity.[196] The enormity of the offence led Anselm to reject personal acts of atonement, even Peter Damian's flagellation, as inadequate[200] and ultimately vain

리스티튜션, 다시 쎗업, 고장수리 리페어, 신의 위엄이 무한한데, 다친거야, 수리보상도 무한해. 인간의 원죄공격이  굉장해서, 개인적 깨끗회개참회로는 디바인져스티스 가 원상회복 안되는겨. 피터 데이미언 의 플레절레이션 조차도 무의미해.

피터 데이미언, 피에르 다미아니, 안셀름 아빠뻘 에 저거쓰기 20년전 죽어. 베네딕트 몽크. 단테가 천국 최고에 올려놓아. 혼자 채찍질 벌하는걸 플레절레이션 이라해. 이사람이 최초로 해서 유행한겨. 폴 서신 고린도전서에 자책하는 문장 이 저 채찍질로 봐. 하튼 안돼 저것도 터무니없이 불충분해 의미없어 자책의 채찍 회개참회질

Instead, full recompense could only be made by God, which His infinite mercy inclines Him to provide. Atonement for humanity, however, could only be made through the figure of Jesus, as a sinless being both fully divine and fully human.[197] Taking it upon himself to offer his own life on our behalf, his crucifixion accrues infinite worth, more than redeeming mankind and permitting it to enjoy a just will in accord with its intended nature

완전한 보상 상환의 만족 새티스팩션은 신만이 할수 있어. 그런데, 신의 베품력 머시 도 무한해서, 하기 싫어도 신이 하고싶어질수밖에 없어. 인간성의 깨끗구원은, 지저스를 통할수밖에 없고, 왜냐면 지저스 는 죄없는 존재로 완벽한 신성이자 완벽한 인간성 이거든. 인간성도 죄로 훼손되고 신성도 져스티스가 훼손된겨. 이 두훼손을 복구하는건 두 본성을 각각 완벽히 지닌 지저스만이 가능한거야. 우리 인간의 이익을 위해 지저스가 스스로 자기 삶을 내놓아, 십자가형은, 인간의 리딤 구제 도, 인간 본성에 내재된 져스트한 올바른 의지를 즐기도록 하는것 도, 아닌, 그 이상의 무한한 가치 를 일으키다.

무한한 신성. 무한한 머시베품. 무한한 값어치. 지저스의 베푼 값어치가 신의 무한 신성 과 가름 되는겨.

똑같은 리뎀션 이지만, 즉 똑같은 대리희생으로 생판 남인 인간들이 구원된겨. 사탄에 인질로죽여 다른족쇄풀어 구원 과 전혀 다르고, 더 거룩한거야 의미가. 이후로 오리진의 인질론 은 소수의견이 돼

satisfaction theory of atonement

안셀름의 어토운먼트 를 새티스팩션 띠오리 라고해. 무얼 새티스파이한겨? 디바인 져스티스를.

오리진 의 랜섬은 사탄을 트릭 속인겨고. 지저스를 죽음에 묶인다며 사탄이 피뿌리게하고 인간풀어준겨, 속아서.

Substitutionary atonement, also called vicarious atonement, is an idea within Christian theology which suggests that Jesus died "for us",[1] as propagated by the Western classic and objective paradigms of atonement in Christianity, which regard Jesus as dying as a substitute for others, "instead of" them.

랜섬이든 새티스팩션이든, 대신 회개깨끗구원 한겨. 어토운먼트 라는 하나됨 은 자기의죄로 자기가 고장난거 자기가참회회개수련 으로 수리보상해서 복구해야하는데, 남이 대신 해서 자기가 깨끗 해방 된겨. 대속 이야 이게. 대속 이란 단어의 정확한 영어는 서브스티튜셔너리 어토운먼트 여.

지저스의 십자가 는, 어쨌거나, 서브스티튜셔너리 야. 어떤 이론들이던간에 모두.

Penal substitution (sometimes, esp. in older writings, called forensic theory)[1][2] is a theory of the atonement within Christian theology, which argues that Christ, by his own sacrificial choice, was punished (penalized) in the place of sinners (substitution), thus satisfying the demands of justice so God can justly forgive sin. It began with Luther and continued to develop with the Calvinist tradition[1][2][3][4][5] as a specific understanding of substitutionary atonement, where the substitutionary nature of Jesus' death is understood in the sense of a substitutionary punishment.

페널 서브스티튜션. 루터와 칼뱅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안셀름의 로마 카톨릭과 달라.

디바인 져스티스 를 새티스파이 하는건 똑같아.

채우는 방법 의 차이야. 얘들은 이 채우다 를 더 파들어간거야. 지저스의십자가가 져스티스를 채우다, 뭔가 논리적으로 허술한겨 얘들이 보기엔.

Penal substitution derives from the idea that divine forgiveness must satisfy divine justice, that is, that God is not willing or able to simply forgive sin without first requiring a satisfaction for it.

디바인 져스티스를 채우는건, 디바인 포니브니스, 신성한 용서야. 신의 올바름이 훼손된건 신의용서로 수선해. 그냥 용서 가 아냐. 고통을 수반해야 해. 모두 신이 고통겪고 신이 용서하는겨. 신의 올바름은 그렇게 새티스파이 돼

Those who believe that Jesus was himself God, in line with the doctrine of the Trinity, believe that God took the punishment upon himself rather than putting it on someone else.

삼위일체로 본성은 아빠와 아들이 같아. 아들고통이 아빠고통이야. 신이 자기에게 벌하고 고통겪는겨

In other words,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affirms that by taking the punishment upon himself Jesus fulfills the demands of justice not for an unrelated third party but for those identified with him.

인간은 제3자가 아니란겨. 인간은 자기와 같아. 나와상관없는고통겪는희생 이 아니란거지. 그래서 무한한 져스티스 의 요구를 무한한 머시로 채운겨 고통겪으면서.

If, in the penal substitution understanding of the atonement, the death of Christ deals with sin and injustice, his resurrection is the renewal and restoration of righteousness.

그래서, 지저스가 삼일후 부활한게, 져스티스가 새티스파이 되어서 올바름 져스티스 가 다시 복구되어 고쳐짐을 상징하다

욕 쳐 나올 만큼 말 참 잘 만들어.

Gustaf Emanuel Hildebrand Aulén (15 May 1879 – 16 December 1977) was the Bishop of Strängnäs in the Church of Sweden, a Lutheran theologian, and the author of Christus Victor, a work which still exerts considerable influence on contemporary theological thinking on the atonement

저런 띠오리 이론으로 이름붙여 정리한 사람이 구스타프 힐더브란 아울렌. 스위든 스트랭내스 주교여. 이사람시 1931년 쓴 크리스투스 빅토르. 승리자 크라이스트 라는 책이야. 우리가 어렴풋이 들어온 예수의 대속 이란 단어에 개념은, 이사람의 문장들일 뿐이야. 랜섬 새티스팩토리 패널 서브스티튜셔너리 이론들.

Both are forms of satisfaction theory in that they speak of how Christ's death was satisfactory, but penal substitution and Anselmian satisfaction offer different understandings of how Christ's death was satisfactory.

Penal substitution differs in that it sees Christ's death not as repaying God for lost honour but rather paying the penalty of death that had always been the moral consequence for sin

안셀름 과의 차이가, 안셀름은 지저스의 죽음자체가 거룩한겨. 신의 져스티스가 훼손된건 아너 가 다친겨 인간의 죄로. 이 아너를 복구하는겨. 지저스의 거룩한행위의 아너를 리페이 지불하면서

루터 칼뱅 애들은, 훼손된걸 고치는건, 페널티 야. 벌 받야지 정의실현된다 라는 개념이야. 언뜻보면 오히려 참 유치한거야 루터 칼뱅 애들이.

훼손된게 벌받으면 고쳐져.

그런데, 타파스 가 저 문장이야. 고통 고행이 결국 벌 이야. 벌받는겨 감당해라 그래야 쎄진다 그러면 성공한다.

내가 저 대속에 구원 이야길 신학의 테마 에서 꺼낸이유가 이 문장들 과 만나기 위해서 였거든.

나중에 하자 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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