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2세 프러시아 호모 그레이트 형님이 여자들이랑 싸우시고 그레이트 이신건데

합스부르크 의 마리아 테레사. 러시아의 엘리자벳 과 캐서린.

여자들 이름이 다 저거야. 마리아 테레사 를 특히나 스페인 여자들이 테레사 를 붙여서 17세기에 흔한겨. 이 테레사 는 16세기에서야 등장해 제수이트 와 함께 카운트 리포메이션으로.

안나 앤 은 마리아 친정엄마고 루터가 번개 칠때 무서워서 찾던 여인이셔. 엘리자벳은 마리아의 친척이자 자카리아스 부인에 먼저 요한 임신에 마리아 가 가브리엘 만나는거고. 구약은 아론의 부인이고. 리자 리지 줄이고, 내 신은 맹세에 부자 란거라는둥.

의외로 모르겠는 이름 이 캐서린 테레사 고, 아멜리아 도 흔하거든.

Catherine of Alexandria, or Katherine of Alexandria, also known as Saint Catherine of Alexandria, Saint Catherine of the Wheel and The Great Martyr Saint Catherine (Coptic: Ϯⲁⲅⲓⲁ Ⲕⲁⲧⲧⲣⲓⲛ; Greek: ἡ Ἁγία Αἰκατερίνη ἡ Μεγαλομάρτυς "Holy Catherine the Great Martyr"; Latin: Catharina Alexandrina), is, according to tradition, a Christian saint and virgin, who was martyred in the early 4th century at the hands of the emperor Maxentius

캐서린 은 알렉산드리아 의 캐서린. 이 모델이야. 헤 아이가 아이카테리네 헤 메가로 마르투스 . 헤 가 호 정관사 더 의 여자고, 마르투스 가 마터 라는 순교자 가 되는건데, 참 애매한게 마르투스 야. 증언 이란 의미와 믿음에죽음바침 과 먼 관계여 저게. 죽을정도로 신을봤다는증인 이라고 여겨지는거고 초월적 현상으로 증거보이는거지. 하기오그러피 hagiography 가 성인전 의 아이가 이고. 아이카테리네 가 고대그리스 여자 이름 이고 이게 캐서린 이 된 겨. 어찌보면 러시안 발음 예카테리나 가 훨 가까와.

From French Catherine, from Ancient Greek Αἰκατερίνη (Aikaterínē), *Ἑκατερίνη (*Hekaterínē), of debated meaning, possibly from ἑκάτερος (hekáteros, “each of the two”), or from the name of the goddess Hecate.

둘 의 각각. 또는 아마 헤카테 여신. 에서 온 듯 하고 헤시오도스 에 나오는데 기억에 없고 난. 마술 에 언더월드 좀 어둔 느낌이고.

위기의 3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가 통일하고 부하 막시미아누스 와 나누고 둘이 물러나서 콘스탄티우스 와 갈레리우스 가 아우구스투스 로 승진하고 세베루스 와 막시미아누스다자 가 카이사르 하고, 콘스탄티우스 죽고 자식 그레이트 콘스탄티누스 오르면서 막시미아누스 의 아들 막센티우스 등장하고 리키니우스 에 넷 이 다투다 콘스 형님이 다시 통일해서 콘스탄티노플 세우시기로 하고 동로마 시작하걸랑.

할때 막센티우스가 이태리남부에 아프리카 차지하고 알렉산드리아 도 지배한다고 보는거걸랑. 디오클레티아누스 가 기독교박해 하고 이어질때 캐서린이 항의하러갔다가 갇혀. 어릴때 마리아 와 아기예수가 왔었대. 막센티우스가 전문가 50명 보내서 설득해 전향하라고. 오히려 다 설득당해. 고문당해. 천사가 약 발라줘. 2백명 이 보러와. 황제부인도 전향해. 다 그리스도가 돼. 감옥을 여니까 빛이나고 향기가 넘쳐. 너 개종해서 나랑결혼하자 를 거부해. 나의 남편은 지저스 라며

The furious emperor condemned Catherine to death on a spiked breaking wheel, but, at her touch, it shattered.[11] Maxentius ordered her to be beheaded. Catherine herself ordered the execution to commence. A milk-like substance rather than blood flowed from her neck.[13]

휠로 쳐죽이는 이야기 가 캐서린 을 시작으로 봐. 그래서 브레이킹 휠 을 캐서린 휠 이라고도 해. 그런데 휠이 부서져. 참수 를 해. 흰 우유 같은게 목에서 흘러.

저 이야기 출처가 애매한겨. 히파티아 가 와전된 거로 봐. 또는

Sometimes cited as a possible inspiration of Catherine, the writer Eusebius wrote, around the year 320, that the Emperor Maximinus had ordered a young Christian woman to come to his palace to become his mistress, and when she refused he had her punished by having her banished and her estates confiscated.[22] Although Eusebius did not name the woman, she had been identified with Dorothea of Alexandria.

유씨비어스, 에우세비오스 가 320년에 쓴 글에, 저 동시대 막시미아누스다자 가 그리스도 여자 에게 자기 애인이 되라고 하는걸 여자가 거부해서 죽여. 이여자는 알렉산드리아 의 도로테아 로 밝혀져. 이여자 이야길수도.

도로테아 가 남자 테오도르  띠어도어 에 러시안 표도르, 도론 테오스 신의선물 이야. 도로시.

Teresa, Theresa and Therese (French: Thérèse) are feminine given names. The name may be derived from the Greek verb θερίζω (therízō), meaning to harvest.

테레사 는 그리스어 떼리조 에서 온듯 . 이건 베는겨. 수확에, 사냥하다여. 테레시아 하면 아르테미스 여자 사냥꾼이고.

Teresa of Ávila, born Teresa Sánchez de Cepeda y Ahumada, also called Saint Teresa of Jesus (28 March 1515 – 4 or 15 October 1582[a]), was a Spanish noblewoman who felt called to convent life in the Catholic Church. A Carmelite nun, prominent Spanish mystic, religious reformer, author, theologian of the contemplative life and of mental prayer, she earned the rare distinction of being declared a Doctor of the Church, but not until over four centuries after her death.[b] Active during the Catholic Reformation, she reformed the Carmelite Orders of both women and men.[4] The movement she initiated was later joined by the younger Spanish Carmelite friar and mystic John of the Cross. It led eventually to the establishment of the Discalced Carmelites. A formal papal decree adopting the split from the old order was issued in 1580.

테레사 하면, 아빌라 의 테레사 야. 1515-82. 이사람과 같이 언급되는 중요한 이가 존 오브 크로스, 십자가 의 요한 이야. 이 둘이 로마 카톨릭 에서 닥터 여. 36명 중. 여자가 네명 이야.

루터 티나올때고 카톨릭 이 카운트 리포메이션 하며 정신차릴 때야. 카르멜라이트, 카르멜 수도회 가 레반트 에 템플러 병원 기사단 서고 튜튼 설때 선 거로 보는데 자료가 없어

Tradition indicates that in 1185 is based on the story of a pilgrim in the Holy Land, the interpretation of which remains questionable. The oldest (and most reliable) written accounts of the presence of Latin hermits on Mount Carmel date back to 1220 and another text from 1263.

13세기에 레반트 에서 시작한겨. 여기 수녀회가 15세기 고 테레사가 여길 들어가서, 분위기를 확 바꾸자면서 부딪히는겨 이게. 좋은말론 개혁이고 기존 애들에겐 불편한거고. 보다 청빈 으로 가야 한다는거고. 이게 당시 시대분위기 로는 테레사 편이 유리해. 킹 이나 교황이나 테레사 편이야. 그러나 기존 세력도 만만찮은겨. 테레사 가 멘토고 행동대장 이 십자가 요한 이야. 카르멜에서는 이들을 인퀴지션 하는거고 펠리페2세가 막아. 요한은 갇히고 감시 당하고. 결국 카르멜라이트 가 이기는겨. 그리고 이들이 만드는게 디스캘스트 카르멜라이트, 맨발의 카르멜 수도회 야.

Her zeal for mortification caused her to become ill again and she spent almost a year in bed, causing huge worry to her community and family. She nearly died but she recovered, attributing her recovery to the miraculous intercession of St. Joseph. She began to experience bouts of religious ecstasy.

테레사 가 20세에 저 수도회에 들어가서 학대하며 참회 모티피케이션 을 해. 1년 병에 침대 거의 죽을뻔. 이때 성 요셉의 인터세션, 기도구원 으로 회복되었다고 믿어. 저때 엑스터시 를 경험 한겨

She reported that, during her illness, she had progressed from the lowest stage of "recollection", to the "devotions of silence" and even to the "devotions of ecstasy", which was one of perceived "perfect union with God" (see § Mysticism). During this final stage, she said she frequently experienced the rich "blessing of tears".

낮은단계의 회상 에서 침묵 모드 에 빠지게되고 엑스터시 로 간대. 히스테미 가만 정적에서 빠지면서 찐한기쁨 의 그리스말 이야. 신과 합쳐지면서 눈물을 찐하게 경험 한겨. 이여자가 자기 경험 으로 수도회를 바꾸려한거지 니덜도 나처럼 느껴라.

As the Catholic distinction between mortal and venial sin became clear to her, she came to understand the awful horror of sin and the inherent nature of original sin. She also became conscious of her own natural impotence in confronting sin and the need for absolute surrender to God.

죄가 중죄와 경죄가 있는데 죄의 공포와 본래원죄 를 이해하게 되다. 죄에 맞서는 무력함을 의식하게 되고 신에대한 절대적 복종의 필요성 을 알게되다.

Around 1556, friends suggested that her newfound knowledge could be of diabolical and not of divine origin. She had begun to inflict mortifications of the flesh upon herself. But her confessor, the Jesuit Francis Borgia, reassured her of the divine inspiration of her thoughts. On St. Peter's Day in 1559, Teresa became firmly convinced that Jesus Christ had presented Himself to her in bodily form, though invisible. These visions lasted almost uninterruptedly for more than two years. In another vision, a seraph drove the fiery point of a golden lance repeatedly through her heart, causing her an ineffable spiritual and bodily pain:

41세. 친구들이 너 경험이 사이비 페이건에 악마의 짓 일수도. 1559 44세 지저스가 몸의 형상으로 나타나다, 보이진 않다 강하게 확신. 2년이상 지속됨. 세라핌 대천사가, 버닝 불타는 천사여, 황금 창으로 가슴에 반복적 찌르다. 말할수없는 엄청난 영적 신체적 고통 을 주다

Lord, either let me suffer or let me die.

저 고통의 기억이 평생을 지배해

The fact that she wrote down virtually everything that happened to her during her religious life means that an invaluable and exceedingly rare medical record from the 16th century has been preserved. Examination of this record has led to the speculative conclusion that she may have suffered from temporal lobe epilepsy

몸 이 뜨는걸 경험해. 그래서 주변인들에게 나를 내려달라고 수시로. 저런기록 을 보면, 템포럴 로브 에필럽시, 측두엽 의 씨져, 간질 증세 로 봐.

John of the Cross (born Juan de Yepes y Álvarez; Spanish: Juan de la Cruz; 24 June 1542 – 14 December 1591), venerated as Saint John of the Cross, was a Spanish Catholic priest, mystic, and a Carmelite friar of converso origin.

요한 드라 크루스. 십자가 요한. 테레사 의 영향을 찐하게 받아. 27년 아래야.

At some time between 1574 and 1577, while praying in a loft overlooking the sanctuary in the Monastery of the Incarnation in Ávila, John had a vision of the crucified Christ, which led him to create his drawing of Christ "from above". In 1641, this drawing was placed in a small monstrance and kept in Ávila. This same drawing inspired the artist Salvador Dalí's 1951 work 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

십자가 요한으로 개명을 하고, 32세 즈음에 기도중에, 비전을 보는게, 십자가 에 메달린 지저스 야. 이걸 이사람이 그림으로 남겨. 위키영어 저 사람 가보면 있고, 이걸 나중 달리 가 그려 영감받아서.


달리 의 십자가 요한 의 지저스.

이사람이 1577 에 카르멜라이트 간부들 지시로 갇히는거고

John of the Cross is considered one of the foremost poets in Spanish. Although his complete poems add up to fewer than 2500 verses, two of them, the Spiritual Canticle and the Dark Night of the Soul, are widely considered masterpieces of Spanish poetry, both for their formal style and their rich symbolism and imagery. His theological works often consist of commentaries on the poems. All the works were written between 1578 and his death in 1591.

갇혀서 쓴 시가 스피리추얼 칸티클, 영적인 노래, 스페인 최고의 문학작품 으로 평가해. 이런건 좀 봐라 좀. 다른 하나 가 다크나이트 오브 더 쏘울. 영혼의 어두운밤. 이 두개가 최곤데, 영혼의 다크나이트 는 이사람이 만들어 퍼뜨린 구문이야.

Therese of Lisieux (French: sainte Thérèse de Lisieux), born Marie Françoise-Thérèse Martin (2 January 1873 – 30 September 1897), also known as Saint Therese of the Child Jesus and the Holy Face, was a French Catholic Discalced Carmelite nun who is widely venerated in modern times. She is popularly known as "The Little Flower of Jesus", or simply "The Little Flower.”

리지외 의 테레사. 1873-97. 24세. 쎄인트 테레사, 아기 지저스와 홀리페이스 의. 저 둘이 세운 맨발의 카르멜라이트 의 수녀 야. 노르망디 알렝송 태생에 리지외 에서 죽는데, 십자가 요한 의 다크나이트 를 이 여자 가 유행시킨겨.

이 테레사 이야기 도 참 재밌는데, 다음으로 넘기고.


A variant of Amalia, derived from Germanic compound names beginning with *amal, "vigor, bravery". The name and its variants have been confused with the Latin name Aemilia (whence Emilia, Emily) and the French Aimée (whence Amy).

아멜리아 아말리아. 게르만 말이고. 비거 , 힘이 넘치는겨, 용감.

에밀리 에밀리아 는 로마 아이밀리아 여. 아이물루스 경쟁에서 엑셀 우수함 이야. 로마때 이름 으로 쓴게 에밀리 가 된거고.

에이미 는 아모 아마레 에메 , 러브 여 이건.

.

Catherine is traditionally revered as one of the Fourteen Holy Helpers and she is commemorated in the Roman Martyrology on 25 November.

돌아가서, 성녀 캐서린 이 유명하지 않아. 이 이름은 14명 홀리 헬퍼 의 하나야. 불교식 명호 부르는겨. 지장보살 약사불 관셈보살 아미타불 식으로 특별히 곤경에 아플 때 잘 통하는 이름이 있담시.

저게 14세기 흑사병 돌 때, 라인란트 를 시작으로 유행한거야. 사람들이 기댈곳 이 없거든. 이야기들 중에 진짜 구원해 줄 이름들 14명 이 저때 등장해. 신기한 마력을 편 성인들이 우리 입장을 알고 구출해줄거야. 캐서린 이 저때 등장해. 저걸 인터세션 이라해 Intercession or intercessory prayer 일종의 컬트여 저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들을 찾아 부르며 기도하면 우릴 낫게 해줄거야.

At her trial, Joan stated that she was about 19 years old, which implies she thought she was born around 1412. She later testified that she experienced her first vision in 1425 at the age of 13, when she was in her "father's garden"[33] and saw visions of figures she identified as Saint Michael, Saint Catherine, and Saint Margaret, who told her to drive out the English and take the Dauphin to Reims for his consecration. She said she cried when they left, as they were so beautiful.

캐서린 은 마가렛 과 함께 잔다르크 로 유명해진겨 이게. 잔다르크 기록이 아주 상세하게 재판기록이 있어. 13세에 세명의 비젼을 봤대. 미카엘 캐서린 마가렛.

Margaret, known as Margaret of Antioch in the West, and as Saint Marina the Great Martyr (Greek: Ἁγία Μαρίνα) in the East, is celebrated as a saint on 20 July in the Western Rite Orthodoxy, Catholic Church and Anglicanism,

마가렛 은 안티오키아. 서기 304년 15세. 캐서린은 307년 17세 알렉산드리아. 동시대야. 안티오키아 거버너가 그리스도 버리고 결혼하자 를 거부해. 마침 드래곤 으로 사탄이 둔갑해서 다 먹어. 마가렛이 십자가를 쥐고 드래곤을 뚫고 나와. 졸 강력하잖아 14명 홀리 헬퍼 여 그래서.

The Golden Legend (Latin: Legenda aurea or Legenda sanctorum) is a collection of hagiographies by Jacobus de Varagine that was widely read in late medieval Europe. More than a thousand manuscripts of the text have survived.[1] It was likely compiled around the years 1259–1266, although the text was added to over the centuries.

이 이야긴 황금전설 에 있어. 이런건 필독서야 제노바 야코부스 데 바라지네 가 편집한겨. 마가렛은 고대그리스 나 게르만 이나 같이 쓴 단어야.  펄 진주 야

미카엘 은 계시록에 나오걸랑. 유다 서신에 대천사로 나오고. 저 세명 이 독특한겨 잔다르크 가 봤다는. 계시록 이란게  쎈 글이고, 거기의 이름에, 저 둘도 울트라 홀리 헬퍼여 그만큼 어려운겨 삶이

Joan was the daughter of Jacques d'Arc and Isabelle Romée,[28] living in Domrémy, a village which was then in the French part of the Duchy of Bar

잔다르크 가 동레미 야. 바 공작령 이 뫼즈 강 모젤강 죽 가는 일직선 에 신성로마 프랑스 두개 나뉘어져 사버린이. 로타링기아 피곤한 곳이고. 이쪽의 왼쪽 프랑스 관할이야.

She returned the following January and gained support from two of Baudricourt's soldiers: Jean de Metz and Bertrand de Poulengy

잔다르크 가 보드리쿠르 를 두번째 찾아가서야 도움 받는겨. 메쓰 의 장, 풀렌지 의 베트랑. 잔다르크 가 죽고 25년 후에 복원이 돼 재수사 해서. 16세때 저 두사람 이 삼십대 사십대야. 재수사 할때 증언한 기록이 있어.

이 둘이 보드리코 에게 다시 접근해서, 여기가 동레미 근처여. 허락받아서 셋이 저짝 왼쪽 시농 에 가는겨 샤를 7세 만나러. 육칠백키로 되겄나.

야 정말 안 잤냐? 가는길에? 말이 되냐?

절대 안잤슈

ㅋㅋ 재수사 기록이야.


잔다르크 이야긴 특히나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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