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herine II[a] (born Sophie of Anhalt-Zerbst; 2 May 1729 in Stettin – 17 November 1796 in Saint Petersburg[b]), most commonly known as Catherine the Great,[c] was empress regnant of All Russia from 1762 until 1796 – the country's longest-ruling female leader.

캐서린2세. Екатери́на II (Екатери́на Алексе́евна[5]; Екатери́на Вели́кая; 러시안 예카테리나 알레쎄바, 벨리카. 그레이트한 캐서린.

표트르대제 의 캐서린1세 가 차리나가 된건 대단한거야 저게. 이 여자 엄청난 여자야. 그런데 저 여인 못지 않게 엄청난 여자가 캐서린 2세야.
엄청나다는건, 정말 아무런 기반이 없는 사람이 상징이되어서 집단을 이끌게 된 저 힘 이거든. 엄청난 힘이야 저건. 우연이 아냐

캐서린2세 는 여건이 보다 좋지만, 귀족이지만, 이 여자도 러시아 에선 듣보잡이야. 부모 는 전혀 러시안 과 상관이 없고 슬라브 도 아닌 완벽한 게르만 여자여. 이반6세 아기 에 엄마는 로마노프 핏줄이야. 그럼에도 평생 가족이 당한거거든. 기반 이 있고 없고 의 차이 는 인간 생존의 전부 여.

그런데, 슬라브도  아니고 게르만 여자가, 아무 기반도 없이 몸 만 댕그러니 왔거든.  친정  부모는 해만 되지 도움이 안돼 시집와서. 이런여자가 혼자서, 남편을 쳐놓고 권력이 된겨.

권력을 잡는것 과 유지하는 건 또한 다르거든. 이 두개를 다 한겨 예카테리나 1세 2세는.

시안한 여자들이야 이게. 정말 시안한 러시아역사여.

이여잔 어릴때 스스로 깨달아 정치권력의 속성을. 이 힘 이란게 정치권력 이 개인 의 힘 과 상통해. 사는건 힘 이고 권력이거든. 권력의 속성  이 생리 의 속성 이자 우주의 본성 이자 네이쳐 이자 신 이야. 철학적 문젠데. 니덜따위 개무시기는 먼소린지 모를테니 넘어가

Finally, it was the Annals by Tacitus that caused what she called a "revolution" in her teenage mind as Tacitus was the first intellectual she read who understood power politics as they are, not as they should be. She was especially impressed with Tacitus's argument that people do not act for their professed idealistic reasons, and instead she learned to look for the "hidden and interested motives."  

이  여잔 어릴 때 스스로  공부해 훈련하고. 러시아 전혀몰라. 언어 몰라. 이여잔 순수 게르만 이여. 시집가서 러시아 공부 프렌치 공부.

타키투스 의 연대기를 읽으면서, 깨달았대. 정치권력 을 있는 그대로, 애즈 데이 아, 낫 애즈 데이 슈드 비. 권력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가 아니라, 권력 그자체 가 무엇인지. 그 숨은 관심끄는 동력  모티브들을 배우다.

저건, 책을 보다가 숨겨진 오브젝트 들을 느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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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들은 쉽게 다루는 방법을 알잖니. 조선의 피 가 적폐놀이 거든. 갈림질.  적폐 손가락질. 숙청. 조선 오백년 역사 자체야 저게. 저게 쭉 가면 제노사이드 로  가지. 인종청소 라미. 얘들은 타인종 청소 힘은 없으니 안에서 적폐숙청질 하고 중국 노예가 되서 인종청소 하겄다 하겄지. 참  더러운 것 들인데 이 극동 의 미개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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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체친 태생 이고, 아빠는 안할트-제릅스트 가문이야. 쏘피. урождённая Софи́я Авгу́ста Фредери́ка А́нгальт-Це́рбстская 유라즈돈나야, 네이, 받은 옛 이름은 소피아 아우구스타 프레데리카.

안할트 가 지금 작센안할트 주 고. 수도가 마크데부르크 인데 지금.


안할트 퓌르스테툼 이 수도가 데싸우 dessau 고 엘베강 너머가 제릅스트. 아래 잘러 saale 강이 흘러서 엘베 와 만나서 마크데부르크 지나. 오른쪽이 비텐베르크 보이고. 저기서 왼쪽아래에 헤르츠게로데 herzgerode 가 있어. 여기에 안할트 캐슬 이 있었어. 여기가 안할트 의 시작이야.

헤르츠게로데 위에 발렌슈테트 ballenstedt 가 있어. 여기가 아스카니아 가문의 시작이야. 1036년. 곰 알베르트 가 이 가문이고 서기 1100년 출생에, 콘라트 한테서 작센 공작 받다가 조카 붉은수염 호헨슈타우펜 이 다시 헨리에게 주고, 알베르트 가 올라가서 브란덴부르크 를 세우는겨. 라우엔부르크 에 비텐베르크 가 이 아스카니아 꺼였어. 안할트 가 원적인 작센 공작이 다시되고, 작센안할트 에서 작센라우엔부르크 작센비텐베르크 로 나뉘고, 비텐베르크 작센 을 베틴 가문 이 갖고 가는겨. 이 베틴 가문도 10세기 시작이고 베틴wettin 캐슬 이 저 지도 halle 할러, 잘러강 흐르는, 바로 위가 베틴 이고 이 베틴 이 오른쪽 마이센 아래 투링기아 차지하고 더 올라가 비텐베르크 작센을 아스카니아 직계끊긴걸 차지하고 마던까지 온겨. 라우엔부르크 는 이전 봤던 하노버선제후 의 형이 받은걸 내리받고 하노버가. 브란덴부르크 는 호헨촐레른 이 받은거고.

안할트 는 곰 알베르트 아들 부터고. 이 성은 버려지고 이들이 안할트 라는 단어를 원적으로 도시들 붙이면서 작센-안할트 공작들인건 아스카니아 들이야. 이 중 하나가 제릅스트 야. 브란덴부르크 는 호헨촐레른 가 받은거고, 저당시 소피아 의 아빠는 호헨촐레른 의 프러시아 에 충성하는 아스카니아 가문의 안할트-제릅스트 프린스 인겨.

이사람 이 슈체친 에 있어. 소피아 는 여기서 태어나고. 여긴 프러시아 킹덤의 포메라니아 수도야.

포메라니아 라는 곳이, 단치히 왼쪽 해변 이고 브란덴부르크 와 떨어진 곳이고 The Second Northern War (1655–60), also First or Little Northern War) 여길 2차 북방전쟁 스위든 칼10세가 폴란드 얀2세 카시미르 의 스위든킹 포기못해 에 열받아 쳐들어오고 다음 얼음바다 건너 코펜하겐 칠때,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가 폴란드 도와준다며 포메라니아 동쪽을 이때 받은겨. 그리고 대북방전쟁 1700-21 때 스위든 폭망하면서 오데르강 까지 프러시아가 받아. 스위든 포메라니아 라는 서포메라니아 의 수도가 슈체친 이야. 프러시아가 여기 까지 포메라니아를 넓히고 포메라니아 수도 도 슈체친 으로 옮기고 여길 안할트-제릅스트 에게 맡긴거야. 나머지 왼쪽 스위든 포메라니아 는 나폴레옹 쫓아내고 프러시아 가 갖고가는겨.

할때, 예카테리나 2세 인 소피아 는 여기서 태어난겨. 아스카니아 가문의 여자야.

Johanna Elisabeth of Holstein-Gottorp (24 October 1712 – 30 May 1760) was a German regent, Princess of Anhalt-Zerbst by marriage to Christian August, Prince of Anhalt-Zerbst, and regent of Anhalt-Zerbst from 1747 to 1752 for her minor son, Frederick Augustus. She is best known as the mother of Catherine the Great of Russia.

엄마 가 고토르프 의 요한나 엘리자벳. 아 이놈의 고토르프. 이 여자는 고토르프 의 방계인 고토르프-오이틴 eutin 이야. 예카테리나1세의 딸 불쌍한 안나 와 결혼하는 망나니 고토르프 는 종가집 이고.

고토르프 공작, 그 프레데릭3세 가 러시아 에 투르크에 페르시안 으로 시야넓히고 크리스티아나 중매로 스위든 킹 칼10세 한테 시집보낼 때, 이사람 손자가 고토르프 종가집 공작으로 대북방전쟁에서 칼12세 와 같이 전투하다 폴란드에서 죽고, 이 아들이 스위든 에서 자라면서 고모할머니 퀸 고토르프 여자가 애지중지 해서 다 베리고 얘가 스위든 에서 쫓겨나고 칼12세 여동생이 퀸하고, 이 고토르프는 표트르 와 예카테리나 의 딸 안나 와 결혼해서 여기 자식이 나중 표트르3세 가 될 때,

예카테리나2세의 엄마는 전쟁서 죽는 고토르프 의 동생 핏줄이야. eutin 오이틴 의 프린스 여.

그래서, 나중에, 예카테리나2세 는 표트르3세와 결혼을 하는데, 이 둘의 증조할배가 고토르프 프레데릭공작의아들 이야, 둘이 세컨드 커즌 인겨.  표트르3세 가 러시아 짜르 이자 고토르프 직계 공작이고, 예카테리나2세의 엄마는 홀슈타인-고토르프-오이틴 핏줄이야.

이 고토르프-오이틴 이, 스위든 킹 이 되는거고 러시아 스위든 1741-43 전쟁 후에, 어차피 스위든 구스타프 핏줄 끊기고 고토르프 직계 도 러시아 가고, 고토르프-오이틴 이 잇는거야 스위든을.

Adolf Frederick, or Adolph Frederick (Swedish: Adolf Fredrik, German: Adolf Friedrich; 14 May 1710 – 12 February 1771) was King of Sweden from 1751 until his death. He was the son of Christian August of Holstein-Gottorp, Prince of Eutin, and Albertina Frederica of Baden-Durlach.[1][2]

1751년 부터 스위든 킹 이 아돌프 프레데릭 (프레드릭) . 예카테리나2세 의 엄마의 큰오빠야.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오이틴 집안인겨. 러시아 엘리자베타 가 원래 고토르프 오이틴 의 장남과 결혼 약속했는데 천연두로 죽어. 러시아가 스위든 과 전쟁 후 스위든땅 핀란드 를 양보하면서 죽은약혼자의 동생이 스위든 킹 받도록 엘리자베타 가 조약 맺은겨. 스위든 과 친하게 지내자며. 죽은 사랑 도 애틋할거고. .

엘리자베타 의 언니 안나 가 고토르프 직계 공작 과 결혼해서 둘다 죽고 표트르 3세 만 남은겨. 이 여자도 고토르프 방계 오이틴 과 결혼 하려던거고. 표트르 대제가 시안하게 고토르프 에 꽂혔어.

엘리자베타 가 집권하자마자 자기 후계구도 를 짜는데, 조카 표트르3세 의 부인을 저 고토르프 오이틴의 딸 로 찍은거야. 아빠 아스카니아 의 프러시아 를 바라본게 아냐. 엄마 고토르프 쪽을 바라본거고, 엘리자베타의 죽은약혼자 여동생 의 딸 이고. 표트르3세도 고토로프 고, 스위든 킹 도 고토르프 로 갈거고.

엘리자베타 가 찍은겨 저런이유로.

Despite Johanna's interference, Empress Elizabeth took a strong liking to Sophie, and her marriage to Peter eventually took place in 1745.

When Sophie arrived in Russia in 1744, she spared no effort to ingratiate herself not only with Empress Elizabeth, but with her husband and with the Russian people as well.

엘리자베타 재임1741-62 에 조카 결혼을 1745 에 시켜. 예카테리나2세가 되는 소피 가 1729년생 16세. 표트르 3세가 한살 많고. 엄마 요한나 가, 고토르프에서 결혼해서 슈체친에 살고 소피 를 낳은건데, 이 여잔 처녀때 화려하게 살다가 슈체친 깡촌에 간거야. 사는게 너무나 심심한겨. 이여자가 그래서 음모놀이 정치놀이에 빠져. 엘리자베타가 나중에 아주 싫어해. 그럼에도 소피가 마음에 들고 고토르프 집안을 좋아해.

Besides her native German, Sophie became fluent in French, the lingua franca of European elites in the 18th century.[9] The young Sophie received the standard education for an 18th-century German princess, with a concentration upon learning the etiquette expected of a lady, French, and Lutheran theology.[10]  

소피 는 프랜치 에 능숙했다. 18세기 는 프랜치 가 지금식 영어인겨. 신부수업에 애들공부 를 다 저렇게 하고, 레이디 에 기대되는 에티켓에 루터 신학 익히고

Based on her writings, she found Peter detestable upon meeting him. She disliked his pale complexion and his fondness for alcohol at such a young age. Peter also still played with toy soldiers. She later wrote that she stayed at one end of the castle, and Peter at the other.[11]  

소피 가 신랑될 표트르3세 를 10세에 처음봐. 소피 글을 보면, 보고 싫었대. 창백하고 나이 11세 꼬마가 알코올 중독이야 아 이  러시아 가믄 다 저리되나. 저때가 1739년 정도면, 이반5세 딸 안나 말년 에 조카 이반6세 아기 직전이고, 꼬마때 그냥 만난겨. 세컨드 커즌이라. 결혼은 엘리자베타가 집권하고 추진되는거니까.

표트르3세가 아빠 고토르프 직계 엄마 표트르와 캐서린딸 안나. 안나 가 신랑이랑 고토르프 가서 낳은겨 1728년. 이때가 엄마 캐서린1세가 죽고, 짜르 자리가 표트르 첫부인 자식인 표트르2세 에게 가서 떠난거걸랑. 얘 낳고 죽고 아빠는 고토르프 의 킬 kiel 에서 자기자식 러시아 짜르 될 날만 기다려. 고토르프 땅도 덴마크 에서 일부만 돌려줘. 표트르 가 저런 환경에서 제대로 못 큰겨.

둘이 처음 볼때 표트르는 장난감  에 술처먹고. 양  벽 끝에서 따로 논거야.

The choice of Princess Sophie as wife of the future tsar was one result of the Lopukhina Conspiracy in which Count Lestocq and Prussian king Frederick the Great took an active part.  

결혼추진을 서기 1744년 에 한겨. 15세. 로푸키나 음모사건. 이반6세 옹립 하려는. 이 사건 으로 소피를 선택했다 는게 아냐 저문장이. 후계를 저때 잡아야 했던거고 제일 편하게 엘리자베타가 제일 잘 아는 고토르프 가문 인거야. 로푸키나 처리를 1743년 9월에 하고 바로 소피 를 데려와.

프러시아 프리드리히2세가 7년전쟁 때 끝날 뻔 했다가 기사회생하거든. 그 이유 단 하나, 러시아 엘리자베타 의 죽음 이야. 엘리자베타 가 더 살았다면 프러시아 에 독일은 지금 없어.

엘리자베타가 저 프리드리히를 혐오를 해. 합스부르크 의 마리아테레사 못지 않어. 프리드리히는 저때 두 여자 와 싸우고 그레이트 딱지 붙은겨 ㅋㅋ. 역사는 한편 재수야 . 승리는 단지 여배우 의 죽음 으로 남배우가 월계관을 쓴겨. ㅋㅋㅇ

엘리자베타 가 가장 신경쓰이는게 이반6세 와 그 가족 이야. 가장 아킬레스야. 로푸키나 사건 에 프랑스 인간들이 움직인건데 이 배후가 프러시아 프리2세야. 프랑스코트 에서는 러시아 관심없고 러시아도 저짝 관심없어. 프리2세 입장에선 실레시아 먹는데 오른쪽 리보니아 에 쿠를란트 있는 러시아 가 제일 불편한겨. 이사람 이 주도한겨 저걸. 엘리자베타가 이걸 알고, 오스트리아 후계전쟁 말에 리보니아 군대를 라인강으로 보내면서 오스트리아 편을 들고, 7년전쟁때 프러시아를 쳐들어가는겨. 시작이 저 로푸키나 사건이야, 프러시아 와 러시아 전쟁은.

더하여 저 로푸키나 때 프러시아 편들어서 음모놀이한게 소피 엄마 요한나 야. 이여자가 슈체친 에서 졸 심심한겨. 신랑은 프러시아 사람이고. 그럼에도 엘리자베타가 추진하고, 소피의 친정엄마를 두고보다 열받아서 내쫓아.

소피 아빠 안할트제릅스트 사람은 1747에 죽어. 형도 죽어서 제릅스트 프린스를 소피 남동생이 하고, 엄마 요한나는 제릅스트 에서 살아. 이 여자는 큰 오빠가 스위든 킹 이고 딸이 러시아 차리나 후보야. 제릅스트 에 큰 성을 지어 오빠와 딸이 놀러오면 접대하려고. 아무도 안와. 프리2세 가 7년전쟁 때 제릅스트 를 쳐들어와. 프러시아는 러시아와 적이된거고 러시아딸이된 제릅스트고 요한나 는 파리로 가서죽어.

When Sophie arrived in Russia in 1744, she spared no effort to ingratiate herself not only with Empress Elizabeth, but with her husband and with the Russian people as well. She applied herself to learning the Russian language with zeal, rising at night and walking about her bedroom barefoot, repeating her lessons. This practice led to a severe attack of pneumonia in March 1744. When she wrote her memoirs, she said she made the decision then to do whatever was necessary and to profess to believe whatever was required of her to become qualified to wear the crown. Although she mastered the language, she retained an accent.

소피 가 1744년 15세 와서 다음해 결혼식을 해. 엘리자베타 가 1762년 1월 초에 죽어. 소피 33세. 18년 을 혼자 기반을 닦은겨 이여자가.

표트르3세가 바로 올라서 7월 초 에, 마누라 한테서 쫓겨나는겨 ㅋㅋ. 정확한 사망일을 몰라. 한달 후에 묻혀.

러시아어를 지독하게 배워. 밤낮으로. 마스터를 했지만 자기만의 억양은 있었다. 폐렴이 걸려, 왕관 을 쓸 자격을 갖추기 위한 모든 건 무엇이든 하겠다 고 다짐. 플루리시, 흉막염 에 걸려서 거의 죽을뻔.

her mother wanted her confessed by a Lutheran pastor. Awaking from her delirium, however, Sophie said: "I don't want any Lutheran; I want my Orthodox father [clergyman]." This raised her in the empress's esteem.  

사혈 을 네번 해서 자기는 저때 살았다고 해. 이 사혈로 피 쏟아내는게 18세기 흔한 이야기여. 조지 와싱턴도 사혈 해. 이때가 러시아 오자마자고 친정엄마 같이 있을때, 루터거든 자기가족은. 루터 목사 불러서 성사하려해. 소피 가 깨고는, 나 루터 싫어 나 오소독시 사제 원해. 엘리자베타 가 좋아하다.

결혼전에 여 와서 오소독시 로 개종하고 예카테리나 로 개명을 한겨. 엘리자베타 의 엄마 이름 그대로. 성도 그대로 알렉세이 따는거고.

걍 엘리자베타 마음에 쏙 드는거지.

그리고나서, 결혼식 을 한겨. 소피 가 일년여 의 시험을 통과한겨 저게. 아빠는 러시아 안와. 프러시아 사람이고, 엄마는 하등 도움 안되고. 아 이여자 음청나

Catherine disparaged her husband as devoted to reading "Lutheran prayer-books, the other the history of and trial of some highway robbers who had been hanged or broken on the wheel".

신랑 표트르3세 는 루터책들을 읽어. 얜 덴마크 있었고 루터여. 나중 개종한거고. 역사책은 강도 들 재판받아서 교수형에 휠로 사형당하는걸 좋아해. 애인들에 빠지고.  둘이 애가 없어. 파벨, 폴 이 1754년 생이여. 결혼해서 9년만에 낳은겨. 엘리자베타 가 가장 신경쓰는 게 후계고, 21년 차리나 에 53세에 죽는데, 자기자리도 은근 불안해. 군부에서 표트르3세 를 쿠데타 로 올린다는 설도 있어. 자식을 독촉하고 아마 자식을 낳으면 엘리자베타 가 표트르 부부를 내치고 그 자식에 넘기려한다 는 설 에. 여하튼 예카테리나 에게  자식을 독촉하고, 이때 마음껏 애인을 만드는겨. 그리고 낳은게 파벨. 폴 이야. 이게 유전자 검증 이 안된듯 한데 어디는 친자식이 아니다 하고, 예카테리나 는 표트르 자식이라고 써. 질투를 느낀 남편이 자기 침대로 들어왔다며.

표트르 가 성정이 잔인하고 야비해. 예카테리나 가 두루두루 인맥을 만들어. 애인들과 함께. 남편의 적들도.

그리고 표트르가 오르는겨.

얘의 실책은,  외교야 일차적으론.

7년전쟁 중 이고,  더 쳐들어가면 프러시아 는 끝나는겨. 그런데 이 표트르가 어릴때 고토르프 살고 게르만땅에 게르만 의 우상이 프러시아 가 되버린겨 저당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부터 프러시아 킹 이되는. 얜 루터였고. 얘가 짜르가 되자마자 존경합니다요 프리2세 형님 해대민서  병력을 다 빼는겨 얘가. 프러시아 에 베를린병력에, 오히려 동맹을 맺고. 이 병력을 빼서 뜬굼포 덴마크 와 전쟁을 하게돼. 자기가 고토르프 공작인데 아빠때 땅을 많이 빼앗겼어. 박탈 당했다가 일부땅과 명함만 받았거든.

자기 무덤 자기가 판겨. 얘딴엔 프러시아 와 친해지고 덴마크 먹어서 발트해를 넘어 서유럽으로 진출한다는거지. 덴마크는  원래부터 러시아 동맹이야. 러시아 의 숙적은 스위든 이었고 덴마크는 자기편이고. 7년전쟁 성과는 다 날라가고. 걍 개판이  된겨.

On the night of 8 July (OS: 27 June 1762),[23] Catherine the Great was given the news that one of her co-conspirators had been arrested by her estranged husband and that all they had been planning must take place at once. The next day, she left the palace and departed for the Ismailovsky regiment, where she delivered a speech asking the soldiers to protect her from her husband. Catherine then left with the regiment to go to the Semenovsky Barracks, where the clergy was waiting to ordain her as the sole occupant of the Russian throne. She had her husband arrested, and forced him to sign a document of abdication, leaving no one to dispute her accession to the throne.

6개월 만에. 예카테리나 가 쿠데타 하는겨. 역시나 근위대 야. 엘리자벳과 똑같아. 계획되어온거고 곧 발각될듯 분위기고, 자기를 남편으로부터 구해달라. 근위대와 함께 사제한테 가서 차리나 선서하고 신랑 폐위시키고 . 표트르 가 근위병에 잔혹히 굴기도 했다는둥. 얘가 좀 문제가 있어. 개혁 추진 어쩌고 지만 일단 덴마크 가 가장 큰겨. 저걸로 다 돌아선거야.

예카테리나 가 잡고, 7년전쟁 을 마무리해. 빼낸병력 되돌릴수 없고 프러시아는 저때 실레시아 다시 확보한겨. 프리2세 와 예카테리나 가 폴란드3분할 하는겨. 마리아테레사는 찔끔 낑겨먹고.

예카 가 1796년 에 죽어. 34년 하고 67세. 폴란드 3분할 이 이여자때 다 한겨.

유럽쪽은 프러시아 와 경계선 긋고 더이상 은 안가. 스위든 쪽도 마찬가지야. 중재역할 을 하는것으로 정리해 러시아 역할은.

대신 아래 정리하는겨. 오스만 에 페르시안. 이쪽으로 땅을 넓히고.

재밌는게 중국 이야

Catherine perceived that the Qianlong emperor was an unpleasant and arrogant neighbour, once saying: "I shall not die until I have ejected the Turks from Europe, suppressed the pride of China and established trade with India".

이여자때 청나라가 건륭제 여. 청 하믄 강희 옹정 건륭 이고 건륭때 정점찌고 내리막가는거고.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투르크 를 유럽에서 내  쫓고 중국의 존심을 누르고 인도아 교역수립 전까진.

Two Chinese embassies to Anna's court, first at Moscow in 1731, then at St Petersburg the following year, were the only ones China dispatched to Europe through the 18th century.[1][29] These embassies were unique also in that they represented the only occasions where officials of the Chinese Empire kowtowed before a foreign ruler

중국 이 1731년. 러시아 쿠를란트 의 안나 때 처음 사신이 와 유럽에. 청나라가 유럽에 최초로 온겨. 러시아에 온게 유일한겨 이 청나라가.


The Dzungar genocide (Chinese: 準噶爾滅族) was the mass extermination of the Mongol Dzungar people, at the hands of the Qing dynasty.[3] The Qianlong Emperor ordered the genocide due to the rebellion in 1755 by Dzungar leader Amursana against Qing rule, after the dynasty first conquered the Dzungar Khanate with Amursana's support. The genocide was perpetrated by Manchu generals of the Qing army sent to crush the Dzungars, supported by Uyghur allies and vassals due to the Uyghur revolt against Dzungar rule.

준가리아 인종학살. 1755년. 오이라트 사람들 이여. 저때 42만에서 48만 을 대학살을 해. 이전에 여길 뜬 오이라트 들이 칼미키아 로 와서 이들이 폴란드 원정할때 용병하면서 전월세값내고 칼미키아 공화국으로 러시아 사는겨 지금.

중국들  대학살 피하러 저리 러시아로 넘어가는겨  아시안들이

이 중국사 를 조선  사학자들이  은폐에 무지 인데 중국몽 꾸라미

정말 조오온나게 죽여 저 청나라 때  또한.

이 중국들이란건 걍 하류여 이건.

저걸 너무 몰라. 저런 벌레들이 조선민족 애들에겐, 꿈이고 미래야

참, 너무나 한심한 땅이고

너무나 한심한 것들의 집단 이야

조선 이란건. 조선 민족 이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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