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derick II (German: Friedrich II.; 24 January 1712 – 17 August 1786) was a Prussian royal and military leader who was King of Prussia from 1740 until his death in 1786.
46년 킹을 해. 28세 1740 에서 74세 1786. 러시아 엘리자베타 가 1741-62 에 예카테리나2세가 1762-96. 67세고. 영국 킹 조지1세가 1727 까지고 2세가 1760. 3세가 1830 까지야. 조지3세가 1738년생 인데 프리드리히 1712년생 과 커즌 이야. 세컨드커즌 도 아니고. 조지1세가 외할아버지여.
기본적으로, 역사란건, 족보를 모르면, 알수없어. 우리가 유럽사 를 아는 애들이 단 하나 없는 이유가 저 족보를 이해할 지능 이 복잡계로 되지 못한거지.
나야 쟤들 족보를 수메르부터 마던까지 꿰는 사바세계 유일한 분이시고.
엄마가 하노버 소피아도로테아 고 이여잔 킹조지가 프린스일때 마누라 애인 죽이고 평생가둔거고, 엄마이름 그대로 갖고, 갇힌 엄마 풀어줘 아빠색햐 해대고. 그래서 채리터블 하면서도 당차.
프러시아 의 프리드리히2세 고, 할아버지 가 1세여.
프리드리히, 왠지 프리트리히 해야 할 발음이거든.
From the Old High German Fridurih (fridu (“peace”) + -rih (“suffix for male names, originally a noun meaning king”)),
프리두 리히. 프리두 가 평화여. 이게 프리데 프리덴 이 돼 지금. 리히 rich 가 킹 이여 게르만. 영어 리치 부자 가 킹 되는겨 거지가 킹 되겄니. 프렌치가서 르와 로이 레이 고, 로얄 로 영어가고. 킹 이 슬라브 가서 크냐즈 하는거고. 로얄 렐름 realm reach 레인 다스리는겨. 도이체스 라이히. 엠파이어 가 독일어는 라이히 야. 킹 은 쾨니히 고. 엠퍼러 를 카이저 하고. 카이저 는 킹 쾨니히 에서 온게 아냐. 로마 황제 시작 카이사르 에서 온 거야.
킹 과 리히 라이히 의 변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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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 라는 건 곧 워드 이고 말 이야. 이 언어학 언어역사 를 모르면, 역사 를 몰라. 이 조선빠닥에서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단 하나 있냐고 이 땅에서.
프리두 를 살리고자 하는겨 단어 소리가. 프리드 하는겨 굳이. 저게 사투리로 가면 프리트리히 하는거고 지방말 쓰는 촌놈 소리 듣는겨.
두 를 뺀 프리 가 프라이 프라이하이트 로 가고
평화 를 만들고 지키는 사람이야.
From Old French Godefrei, from Old High German Godafrid (“peace of God”), from got (“god”) + fridu (“peace”). Doublet of Gottfried and Geoffrey.
곳프리. 신 의 평화. 신의 속성 평화 를 가진 사람.
프리드리히 가 위로 가서 스칸디나비아로 프레데릭 으로 써. 이걸 영어로도 프레데릭 이야. 레터가 달러 저게. 소리도 다르지만.
Frederick was the last Hohenzollern monarch titled King in Prussia and declared himself King of Prussia after annexing strategic parts of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in 1772.
이사람이 받은 자리는 킹인프러시아 야. 1772년 에 폴란드 3분할 해서, 로얄 프러시아를 갖고와서 이어붙이곤, 스스로를 킹 오브 프러시아 한겨.
war ab 1740 König in, ab 1772 König von Preußen 독어로 보면. 인 과 폰 차이야. 킹 이니까 카이저 가 아니고 쾨니히 지.
할아버지 1세가 황제 레오폴트 한테서 프러시아 킹 을 받아 스페인 후계전쟁 1701-14 직전에. 이때는, 인 이여. 니가 프러시아 안에서만 킹 이라는겨.
프러시아 라는건, 황제 입장에선 전혀 상관 없는 땅이야. 자기 싸버린 밖의 땅이야. 폴란드 는 카이저 와 상관없고. 그런데 포메라니아 땅 전부는 황제 관할이야. 폴란드가 지금 오데르강 동쪽 포메라니아 를 갖았지만 저긴 독일땅 이어야해. 폴란드가 정말 2차대전후로 땅을 거저 쳐먹은겨 저게. 실레시아땅은 체코 땅 이지 폴란드께 될 수없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인거지, 프러시아 킹 이든 머든 관심없어 황제한텐. 제국회의 때 선제후 로 의전하는거지 킹 이 아냐. 그레이트 선제후가 2차 북방전쟁 후로 동포메라니아 와 프러시아 의 사버린을 폴란드 킹 으로 부터 완전히 독립하고 걍 킹 이된겨 저자리가. 신성로마황제가 저길 킹 이라고 선언할 권리도 없는겨 저게. 그렇다고 교황한테 킹이라불러주셔 하는것도 웃기고. 어중간 한게 킹 이란 자리야. 보헤미아 는 황제 라이히 관할이라 당연히 황제가 킹 을 줄 수도 있어. 그외 킹 은 자기가 선언하고 주변에서 인정받는겨
근데 1세가 웃긴게 킹인프러시아 이지 킹오브프러시아 가 아니라는겨 황제가. ㅋㅋ. 저게 웃겨. 말장난인듯 아닌듯 하면서 누르는겨저게. 나에겐 넌 걍 선제후고, 킹 은 다른 애들한테 받아라 하는겨 저게.
이 자리도 주변에서 인정해야 해. 이게 스페인후계전쟁 끝나고 조약 서로 마무리하면서 여기에 문구로 킹인프러시아 를 인정해.
할배1세는 비공식 이고, 아들 프레데릭 윌리엄 부터 공식 킹 이야. 그러나, 킹인프러시아 야.
킹오브프랑스 킹오브잉글랜드 랑 킹인프랑스 랑 이게 어감이 전혀 다른겨 ㅋㅋ. 인 이면 외교적 대표성이 없는겨. 니땅 안에서만 킹 이란거거든.
시안한 전치사 하나 때문에 은근히 기분이 상하는겨. 특히나 이 2세가 합스부르크 에 러시아 여편네들 상대하는데 항상 저여자들이 인 in 을 꼬박꼬박 쓰거든 ㅋㅋㅋ. 이걸 1772에 이으면서 오브 로 바꾼거야. 이것도 이때처음 생긴 단어 장난질이여. 그래서 저걸 영어로 보면 당췌먼말이냐 저거, 해대는거고.
그런데 신성로마 와 관련된것만 선제후 의전 이고 프로이센 일일땐 킹 으로, 이게 되겄냐고 사람 일이란게. 걍 저때부터 킹 이야 실재로는.
漢字による表記では、普魯西と表記され、「普」と略される。なお、明治時代には孛漏生の字も当てられた[6]。「孛」と略されて、江藤新平が漢詩にこの字を用いている[7]。
프로이센 을 독일어고. 이게 북쪽해변에 로망쉬로 모두 프러시아 소리가 돼. 프레데릭 처럼. 원래 발틱언어족 땅이었다가 이름만 남은겨.
한자로 보로사. 가끔 패루생. 줄여서 보. 보불전쟁 영보전쟁
普鲁士(德語:Preußen;普鲁士语:Prūsa;波蘭語:Prusy;立陶宛語:Prūsai;拉丁語:Borussia或Prutenia)
덕어. 보로사어 라는건 지워졌어. 저건 발틱언어족이고. 지금 프러시안언어족 이 있는데 이들은 게르만 의 다이얼렉틱 이야. 파란어 폴란드 입도완어 리투아니아 납정어 라틴어.
다들 프러시아 비슷발음 이야.
프러시아 킹은 할배 1세 부터여. 1701. 그리고 헷갈린게 프러시아 와 독일 이란건데.
German Reich (German: Deutsches Reich, pronounced [ˈdɔʏtʃəs ˈʁaɪç]) was the constitutional name for the German nation state that existed from 1871 to 1945.
프러시아가 보불전쟁을 이기고 1871에 도이체스 카이저라이히 를 선언해. Deutsches Kaiserreich. 저먼 게르만은 밖에서 부르는거고, 얘들은 스스로 도이치 라고 자기들을 불러. 우리는 도이치야. 사람들 이란 독일어여. 괴테 는 독일인 정체성 만드는 글이고 유치한겨 괴테글이란게. 너무나 유치한 아이감성의 글 수준인데 왜냐면 정체성의 시작이야. 도이치 를 괴테가 부르짖는거야.
도이치 의 카이저 의 제국 이란겨. 이게 1918 까지여. 1차대전으로 킹덤 이 사라져. 쾨니히니 카이저니 지워져. 저안에 킹덤들 공국들 이 있고, 프러시아 는 킹덤으로 있는겨.
빌헬름 1세는, 도이치 의 카이저 고 프로이센 의 쾨니히 인겨.
그리고 1918 다들 리퍼블릭 에 스테이트 되고 나치 등장하는 1945 까지 는 킹 도 카이저 도 없어. 그냥 도이체스 라이히 야.
그래서 정리를. 걍 . 1871-1945 를 도이체스 라이히, 저머니 엠파이어 라고 학계에서 쓰는겨. 다음 동서 독일에 독일연방 인거고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독일 은 비공식 용어야 1918-45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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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가 프리드리히 1세.야. 그러나 브란덴부르크 에선 3세여. 프로이센 킹 으로 다시 시작이야.
이빠가. 프리드리히 빌헬름1세야. 이 이름은 시작이 그레이트 붙는 선제후여 이사람의 할배야. 똑같은 이름을 한세대 건너서 손자에 붙이는건 고대그리스 풍습이고 이걸 따른겨. 그레이트 선제후가 1640-88 나이 20에 선제후 되서 48년 하면서 독일을 만든겨 이사람이. 이 아들이 킹 1세고 다음이 같은 이름 에 다음이 지금 2세 그레이트 킹 인데 삼사십년씩 이은거야 다행히.
프리2세 가 호모 란 설이 유력하고 무자식으로 죽어. 부인은 의전 때만 봐. 동생이 프리드리히 빌헬름2세 받고 3세 4세 같은이름 가서 빌헬름1세 에 손자가 빌헬름2세여. 중간이 프리드리히3세 인겨. 이사람은 아빠가 60 넘어서 킹오르고 황제 선언하고 90에 죽어서 받아 세달 하고 후두암 으로 죽어. 빌헬름 2세 가 1차대전하고 내려오는거고.
할때 빌헬름 붙여서 이름 조합 한거거든.
선제후 그레이트가 프리드리히빌헬름 시작인데. 이사람이 프러시아 를 유산으로 받고 동포메라니아 를 갖고 와서, 베를린 에 캐슬 을 새로 증축을 해. 베를린 은 이전 2백년전에 수도 옮긴거고 30년전쟁으로 다 죽고 무너지고, 태양왕 루이 의 낭트 칙령이 오히려 이사람에겐 해피한겨. 위그노들이 여길 채워줘. 인구 30퍼 가 이때온 프랜치 로 봐. 프러시아 는 이때 온 위그노 들이 만든 나라야 이게. 왜냐면 저당시 독일 게르만 은 가장 뒤쳐진 애들이야 서유럽에서. 프랑스 배우는게 급선무인거고 프랜치가 최고언어고 프랜치인간들이 최고의 인간이야. 장교들이 프랜치야 저때 온.
그레이트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이 바닥 다지고 아들 프리1세가 킹 에 다음 프리빌헬름2세가 군대를 만들어. 저 프리2세가 이걸 받아서 프로이센의 그레이트 가 되는데
From Middle English William, from Anglo-Norman Willame, from Old High German Willahelm, from Proto-Germanic *Wiljahelmaz, from *wiljô (“will”) + *helmaz (“helmet”). Cognate with German Wilhelm and Latin Gulielmus.
빌헬름 이, 게르만이야. 의지 바램의 윌 빌. 헬멧 의 헬름. 희망 바램을 지키는 사람 이야. 영어로 가서 윌리엄 이고 이게 이태리 가서 기욤 이 돼. 이 떠블유 가 알프스 아래로 가면 G 지 가 돼서 그 기 가 돼. 겔피 가 벨프 여. 이게 내려가서 겔피. 기벨리니 도 원래 비벨리니 여.
wage 가 월급에 전쟁하다 인데 원래 gage 게이지 가 위로가서 웨이지 가 돼. 인게이지 약혼 약속 웨딩 웨이지 같은겨 . 지 와 떠블유 가 저리 엮여 쟤들이. 윌리엄 이 기욤 으로 되는겨 쌩뚱맞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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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을 2백년만에 다시 세운겨 선제후가. 프랜치들이 흠뻑 오고. 그래서 9년 전쟁 도 터지지만
독일 이야기 에 항상 나오는 강 의 지도야. 독일 역사 가 유럽 핵이야. 중세천년 중심은 신성로마고 독일 역사가 가장 복잡에 핵심이야. 독일 역사를 모르면 인간을 몰라. 이 조선 땅에 누가 독일역사를 아냐 말이지 단 한 애라도. 나 빼고.
역사를 말할때 지리를 모르면 역사를 몰라. 산과강 모르면 몰라. 대체 누가 산 과 강을 꿰냐말이지 이 조선 땅에. 나 빼고.
체코 에서 엘베강 이 죽 서북으로 작센 안할트로 가서 마크데부르크 전에 잘레 saale 강과 만나 죽 가. 체코 여서 북으로 베를린 으로 가는 다른 줄기 가 있어. 베를린 으로 다른 물줄기가 꺾여서 돌아가 엘베와 만나
하펠 강 havel 이 북쪽 호수들의 땅 메클렌부르크 에서 내려와서 왼쪽 에 포츠담 브란덴부르크 지나 엘베강 에 만나. 베를린 아래에 spree 슈프리 강 이 체코 수디티즈 줄기에서 죽 이리로 와서 하펠 과 만나는겨. 브란덴 포츠담 베를린 이 비슷하고 킹 코트 를 다 써. 곰 알베르트 가 브란덴 만들고 수도를 베를린 으로 옮긴겨. 2세 킹은 포츠담에 있고 안만나는 마누라는 베를린에 살아.
Duchess Elisabeth Christine of Brunswick-Wolfenbüttel-Bevern (8 November 1715 – 13 January 1797) was Queen of Prussia and Electress of Brandenburg as the wife of Frederick the Great.
프리2세 부인 이 볼펜뷔텔 의 베번 가문이야. 이놈의 볼펜뷔텔. 이 여자 오빠가 바로 안톤울리히 여. 이반6세 의 아빠로 안나레오폴도브나 와 결혼해서 평생 감옥살이한 사람. 애들 두고 가쇼 했지만 그리못한다며 남아 죽어. 수시로 의사가 와서 진료받아 이사람과 딸들은. 엘리자베타 가 쿠데타 해서 쫓겨난.
프리드리히2세 에겐 처남 인겨. 처남댁 이 이반6세 엄마고. 엘리자베타 에겐 프러시아 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로푸키나 사건 을 프리2세 가 할 수밖에 없어 이래저래.
프리2세 가 부인과 정이 전혀 없어. 이 인간은 호모여. 그런데 저 볼펜뷔텔부인 이 신랑한테 너무 잘해. 이 여자도 웃겨. 프러시아 역사에서 평이 좋아.
Elisabeth was the niece of Empress Elisabeth Christine of Brunswick-Wolfenbüttel, wife of Holy Roman Emperor Charles VI. The match had thus been arranged by the Austrian court in the hopes of securing influence over Prussia for another generation.[1] On 12 June, 17-years-old Elisabeth was married to Frederick at her father's summer palace, Schloss Salzdahlum in Wolfenbüttel, Germany. On their wedding night, Frederick spent a reluctant hour with his wife and then walked about outside for the rest of the night. Due to the circumstances behind their betrothal, he was well known to have resented the marriage from the very beginning.[1] Thus, Elizabeth's position at the Berlin Court was difficult from the beginning, as the only support that she could count on was the King's
원래 결혼을 러시아 안나레오폴도브나 와 시키려 한겨 아빠 프리빌헬름1세가. 이사람 닉은 쏠져 킹. 이여. 군사학에 미친 인간이고 아들 프리2세도 군사에 매진해야해. 표트르 편 들어서 대북방전쟁 도와주고 오데르강 까지 받아. 러시아 와 합스부르크 와 친해 이때까지는. 사보이의 외젠 이 러시아 말고 합스부르크 와 더 엮으려고 해서 찾아낸게 볼펜뷔텔 의 엘리자벳 이야. 황제 칼6세 부인이 볼펜뷔텔 이고 이여자 조카여. 이 황후 여동생이 표트르 대제 아들 부인이고.
프리2세 가 누나랑 친하거든. 저 결혼정해지고 사랑도 우정도 없는 결혼이라며 자살 하겄다 는 식 의 편질 보내. 결혼식밤 아주 싫어하다 남은밤 걸으며 돌아다니다.
Nevertheless, Frederick, with the help of his tutor Jacques Duhan, procured for himself a three thousand volume secret library of poetry, Greek and Roman classics, and French philosophy to supplement his official lessons.[8]
이사람 은 원래, 문학 예술 을 좋아한겨. 표트르 아들 이랑 똑같어 시작은. 표트르 아들은 처형집 합스부르크 다녀와서 애비가 반역으로 쳐죽인건데, 이 사람도, 똑같어. 너무싫어 아빠가 공부시키는게. 문학책 읽고싶어. 다 뺏겨. 그런데 선생인 자크 두한 이 몰래 시집들 그리스로마 책들 삼천권을 구해줘
Jacques Egide Duhan de Jandun (1685–1746) was a Huguenot soldier who served for twelve years as tutor to Frederick the Great.
자크 에지 두한. 27년 위 인데 프랑스 위그노 여. 대북방전쟁때 너무나 탁월해서 킹 이 자식 한테 군사교육 시키라며 선생시킨겨 12년을. 이사람 아빠가 프랑스 투렌 님의 비서여. 아 이 투렌. 내가 존경한다 이 투렌. 아빠가 투렌에 배운걸 아들이 익힌겨. 그런데 인문학이 더 훌륭한거지 이사람이.
그래도 프리2세의 아빠 킹 이 아주 혹독한겨. 마음에 안들어해 너무 유해서. 호모걸랑. 그래서 얘 동생한테 프린스를 넘기려고도 하걸랑.
도망 가려는겨 표트르 의 아들 처럼
At age 16, Frederick formed an attachment to the king's 17-year-old page, Peter Karl Christoph von Keith.
얘가 썸 타는 페이지 보이가 피터 폰 키쓰. 스콧 키쓰 클랜 이 포메라니아 정착해서 귀족 되서 프러시안 인겨. 둘 사이가 들켜서 아빠가 키쓰 를 변방으로 쫓아내
Hans Hermann von Katte (28 February 1704 – 6 November 1730) was a Lieutenant of the Prussian Army, and a friend, tutor and possible lover of the future King Frederick II of Prussia, who was at the time the Crown Prince.
한스 폰 카테. 캣 의 독어야. 고양이씨. 이사람도 귀족이고 킹아빠가 아끼는 집안이고. 프리2세 보다 8년 연상 이야. 둘이 썸 타는겨. 도망을 가려해 영국으로. 16세면 1729년 조지2세 가 막 오른거고, 외삼촌 이걸랑. 외삼촌 군대 끌고와서 치까 .
Katte affair
Soon after his affair with Keith, Frederick became close friends with Hans Hermann von Katte, a Prussian officer several years older than Frederick who became one of his boon companions.[15] When he was 18, Frederick plotted to flee to England with Katte and other junior army officers. While the royal retinue was near Mannheim in the Electorate of the Palatinate, Robert Keith, Peter Keith's brother, had an attack of conscience when the conspirators were preparing to escape and begged Frederick William for forgiveness on 5 August 1730;[16] Frederick and Katte were subsequently arrested and imprisoned in Küstrin. Because they were army officers who had tried to flee Prussia for Great Britain, Frederick William levelled an accusation of treason against the pair. The king briefly threatened the crown prince with execution, then considered forcing Frederick to renounce the succession in favour of his brother, Augustus William, although either option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justify to the Imperial Diet of the Holy Roman Empire.[17] The king forced Frederick to watch the beheading of his confidant Katte at Küstrin on 6 November, leading the crown prince to faint just before the fatal blow.[18]
아빠 킹 이 팔라틴 선제후 땅 마인하임 가서 빈 사이에 도망가려는겨. 이 계획이 저 키쓰 의 형 에게 들어가고 일러바치고 얘들을 체포해서 퀴스트린 오데르강변 에 가두고 반역죄로 둘 을 다 사형시키려 한겨. 자기 아들을. 하튼 후계권을 박탈하고 동생에 넘겨. 살리크법으로 이건 불법이고 결제받아야해. 카테 는 죽이는겨. 살려주려해도 근위대 군율 어긴거고 죽일 수 밖에 없어. 아들 프리2세 가 똑바로 지켜보게 하고, 처형을 해 카테 를.
그리고. 겨우 풀려나서 말 잘 들어야 해. 잘못하면 진짜 죽어 ㅋㅋㅋ. 결혼 하라면 해야 하는거고.
그리고 이사람이 진짜 변한겨.
"What a terrible man he was. But he was just, intelligent, and skilled in the management of affairs... it was through his efforts, through his tireless labour, that I have been able to accomplish everything that I have done since."[37]
아빠 에 대해 나중 쓴 글. 얼마나 테러블한 인간이었나. 그러나 그는 정당 지성 이었고 일들을 처리하는데 능숙했다...그의 노력들 그의 쉼없는 노동 을 거친 결과로 나는 이후 내가 해왔던 모든것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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