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좀 다시 올려보고. 춤 졸 잘추는걸?
清水宗治, 시미즈 무네하루. 여담으로. 물론 세키가하라.랑 이어지지만. 저 하리마 옆에 비젠 옆에 빗추. 備中. 에 다카마쓰 성 성주였어.
혼노지의 변. 노부나가 죽을때, 히데요시는 하리마 자기 영지 떠나서 주고쿠 정벌을 하러갔어. 저기서 막힌겨 시미즈 무네하루.의 다카마쓰에서. 여기도 물론 모리.씨 어제 썰한. 그 집안 가신이었고. 히데요시는 수공을 해. 성 옆들의 물줄기를 막아서리 다카마쓰 성을 물에 잠겨 죽일라 하는거지. 항복해라. 안한다. 시간만 가는겨.
그다가 노부나가. 6월 2일 아침에 죽잖냐. 그걸 자정즈음에 아는겨. 히데요시가. 바로 협상을 들어가 새벽에. 히데요시 무지 빨라. 전광석화. 그대로 노부나가에게서 배운거지. 이때 모리군 협상파트너가 에케이. 恵瓊. 중이야. 세키가하라 전투의 서군 중심인물 중 하나. 임란때도 갔고.
히데요시.는 안절부절 상태이잖겠어? 빨랑 가야하걸랑. 주고쿠 정벌이 의미가 없어. 빨랑 가서 미쓰히데.를 쳐야해. 헌데 그냥 갈 수가 없어.
다카마쓰 성주 무네하루.만 할복한다믄 우린 명분이 선다. 그럼 그냥 가겠다. 그냥 갈 수는 없다. 성에 오천여 무사들이 있었걸랑. 그 안에 민들도 또한 수천이 있었겄지.
에케이.가 대충 겐또를 쳤겟지. 먼 일이 오사카에 생긴거구나. 헌데 응해 이 안을. 히데요시.가 비범한 인간인걸 안거지 이미.
시미즈 무네하루.가. 아 이 싸무라이 들. 증말 음청나.
고뤠? 내만 죽으믄 내 아래것들이랑 성의 민들을 다 사는겨? 내만 죽으믄 되는겨? 아 씨바 죽어주께 그럼.
히데요시.가 직접 죽는걸 봐야해. 이미 물이 좀 잠긴 성에서 배를 타고 나와. 히데요시 씨바 술이랑 음식을 보내.
아 뭇져 무네하루! 니가 진정한 무사여! 어여 죽어 어여!
하고 히데요시.가 비장한듯 보는거지. 시 한수 읊고 가는 절복. 할복 하는거야. 히데요시 왈. 무사중의 무사.
히데요시 . 하튼 무지 얍삽해. 잔머리도 짱이야.
그리고 바로 뜨는겨. 미쓰히데 치러.
얜 자격있어. 다이코 될 자격.
교토.에서 에도. 지금 동경.까지 직선 4백키로. 그리고 저기서 꺾어서 위로 아이즈.까지 대략 1백여키로.
서울 부산 직선이 몇키로냐.
6월 아마 중순에 출발할껴. 이에야스.가 오사카 지나서리 교토를 떠나는게. 이때 오사카성에 있었고 이에야스는. 에도.는 아들 히데타다.에게 맡겨논 상태고.
교토 아래 후시미성.에 어릴때 인질생활 함께 했던 鳥居元忠 도리이 모토타다. 세살 위 할배한테 맡기고, 눈물의 이별을 하고. 이 할배는 이에야스 오기 전에 농선전하다가 죽고.
저 에도길. 저 길역시 도카이도.란 오가도. 중 하나. 나중 이 길을 넓히는거지. 이길로 가. 십오일이나 이십일 걸려. 천천히 가는겨. 가다가 성에 다 들르고. 장수들이 이상한거지. 왜 저리 츤츤히 가시나. 빨랑 빨랑 아이즈 가서 치고, 빨랑빨랑 다시 교토로 와야지. 이시다 미쓰나리.가 먼짓 할낀데 없는사이에.
저 에도.에 가서도 북진을 또 안해. 또 거서 보름 한달 있는겨. 아 답답한거지. 장수들이.
이에야스.의 속내는. 반감 갖은 애들 다 나오란거지. 바퀴벌레들 숨어있지 말고, 충 하는 척하면서 나중에 또 칼 디밀지 말고, 니덜도 알길 없는 니덜 마음. 이기회에 다 확인해서리 역시 우군이라 쉴드 치는 애들. 갈 애들 역시 다 가라는거지.
이게 세달이야. 세키가하라에서 붙는 기간까지.
.
영주들의 가족들이 당시 교토에 그 일조이조구조 하는 그 사방 사오키로에 또한 사는겨. 그리고 오사카에 자기들 집들이 또한 있어. 영주들이 자기 영지에만 사는게 아냐.
이 구조는 중세 유럽이랑 똑같아. 중세 유럽의 영주들이. 자기들 봉 받은 영지에만 박힌게 아냐. 오히려 도시에 살아. 11세기를 거치면서 상공업이 흥해지걸랑 브루조아가 생기기 시작하고. 십자군 전쟁 이후엔 도시들이 더 붐비는겨. 오히려 자기 영지의 저택은 걍 전원주택으로 쓰는겨. 도시가 넘 넘 재밌어.
이게 당시 오사카고. 사카이.야 교토 의 입구.
아 씨바 동군의 그 영주들의 가족들 역시 저 교토 오사카 사카이 중심의 긴키에들 또한 있걸랑. 이걸 인질로 역시 모아서리 미시다 이쓰나리.가 오사카에 쳐박고 협박을 하는거고. 이따위 정보도 이미 동군 아이즈 점령길에 그 당사자들이 다 아는거지.
불안 불안 한거지.
그래도 이에야스.는 하세월인겨.
갈 사람은 가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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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때도 말이지. 저 시미즈 무네하루. 를 보더라도. 그리고 그 임란전 히데요시.가 관동 정벌할때 이에야스랑 같이. 그때 오다와라 함락시킬때. 그 성주 호조 우지나오. 도 할복해. 내가 죽을 테니 우리 사람들 죽이지 말라. 걔랑 가신 몇이랑 할복하고 끝이야.
조선 봐라 조선. 당췌 이해가 안되는겨 얘들입장에선.
먼 왕이란 이가. 본성이 함락이 되었으면 나와서리. 어찌저찌 하겠다 우리 민들 건드리지 말라. 하는게 당연한거걸랑.
지혼자 도망가. 그리고 각자도생하라해.
우리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뒈지자~~~~~~~ 하민서리 지들은 토끼. 그게 김상헌 같은 애들이야.
그리고서리, 그 민들의 비참질을, 외적에 돌리는겨 그 화살을.
똑같어. 호란때도 똑같고. 그게 일제 식민지 프레임도 똑같어.
종각 에 가서 침이나 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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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 전투. 1600년 9월 15일. 이야. 세달만에 빠꾸해서리 저 세키가하라 가운데서 붙는거지. 저 아이즈. 앞에는 이에야스.가 아들 히데야스. 를 박아. 아마도. 그리고 에도에 스무살도 안된 노부요시.를 박고. 얘덜 다 이에야스. 보다 먼저 죽었어.
히데타다.는 뒤에 출발하고. 이에야스가 후진에서 마지막으로 출발해 오사카를 향해서. 히데타다.는 세키가하라 전투 끝나고 중산도. 나카센도 길로 들어와.
저 빨간 똥그래미.가 세키의 평원. 세키가하라.야.
이에야스.의 동군은 저 아래 하마마쓰 거쳐서 오카자키 거쳐서 나고야. 저기가 노부나가의 오와리.야. 저길 거쳐서 이에야스.보다 먼저 출발한 애들이 진을 치는겨. 저기도 이미 서군의 미쓰나리.한테 다 넘어왔어. 저 위의 기후. 나고야 위. 저 기후.성도 노부나가 마누라 노히메 집안 미노. 땅이였걸랑. 노부나가.가 마누라 복수 해주고 저 기후성을 아주 튼튼하게 지었어. 저기에 노부나가 장손자 그 산보시.가 아마 저기 성주였어. 얘도 반기를 든거지. 이거도 동군에서 먼저 간 애들이 접수를 해. 산보시.가 이때 갓 스물이 안되었걸랑 혈기만 왕성.
오가키. 저 세키 옆. 여기에 서군이 다 집결을 했어. 농성전을 해야 했었는데. 농성전을 못하는겨. 서로 믿음이 없걸랑. 농성전에선 배신 배반이 결정적이걸랑. 배신해서리 한 곳 뚫리면 걍 다 끝나는겨. 오가키.에서 나오는겨 9월 14일 밤에. 자정 지나고 나와서 진을 치는겨. 이날 밤에 이에야스.가 동군에 합류를 했어.
저 빨간 동그라미. 세키가하라. 지역이야. 교토 로 가는 길은 동해도본선.하는 아래 길이고, 저 위는 북국가도. 위 에치젠 가는 길이야. 진을 치는건 주로 아랫길 교토가는길 중심으로 치는거고 북극가도 쪽에도 진을 쳐.
핵심 뽀인뜨는 저 천만산. 天満山 덴마야마. 그 아래 송미산. 松尾山 마쓰오 야마. 그리고 오른 쪽에 남궁산. 南宮山 난구야마. 저 맨 위에 사사오야마 笹尾山 세미산.
저길 서군의 두뇌.인 이시다 미쓰나리.가 진을 쳐.
얜 아주 작은 석고의 영주야. 얜 힘이 없어 서군을 진두지휘할 힘이. 서군애들이 은근 기분 나뽀. 저 윗 진친 곳이 또한 미쓰나리 저거 지 영지에서 진을 치네? 대체 저게 먼데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오가키 성에서 농성하면 서군 모리 형이 올텐데. 그럼 편히 이길껄 왜 여기다 이지랄이래? 하는 반발도 열라 있었어.
모리 데루모토. 毛利輝元. 얘가 히데요시. 그 혼노지변때 주고쿠 실질 짱이었걸랑. 히데요시 아들뻘이야. 이때 이십대지. 에케이가 갖고 노는애야 결국. 그레서 히데요시와 에케이의 이빨에 당한거지. 그때 모리. 얘가 좀 생각이 있었으믄 히데요시 치고 지가 짱할 수도 있었어. 어려서 그래.
얘가 상황판단을 못했어. 오사카에 이삼만 대군을 갖고 왔으면서도 더이상 진격을 안하는겨. 저기 세키가하라에 참전을 안해. 밑에 동생애들 몇몇만 병력 일부 갖고 간겨.
저 진은. 걍 거의 백프로 서군이 이기는 포진이야. 얘들은 간밤에 잠도 안자고 오가키성에서 나와서리 저리 진을 다 쳤어. 그리고 기다리는거지. 비가 왔걸랑 저 밤과 새벽에. 그리고 다 산이잖오. 저 길들 옆에가 다 강이야. 안개 무지 끼고 아침에. 비 쫄딱 맞고 근적근적 상태에서 기둘리는겨.
서군 병력 74,000 - 104,000
동군 병력 80,000以上
설이 몇몇 되지만. 걍 서군 1십만 동군 7만으로 봐. 저 현장에 있던 이들이. 저기서 저 가운데 접전지역에서 마쓰오산. 송미산. 이랑 저 오른쪽 남궁산. 난구산. 이랑은 각각 4키로 정도떨어진겨.
동군의 이에야스.는 새벽 늦게 들어와. 저 아랫길로. 강을 옆에 두고 들어오는겨. 그리고 저 빨간색에 진들을 쳐. 그리고 붙는겨.
저건 백프로 걍 서군이 이기는겨. 이에야스. 걍 도박질한겨 저거. 이에야스. 염리예토 흔구정토. 그 불심의 깃발 어릴때 부터 들고. 자기의 마음으로 지금까지 자기만의 이데아.가 지금의 자기를 만들었다는 그 신념으로 저짓을 한거걸랑.
몰아넣고 걍 왼쪽 오른쪽 애들 배후 옆구리 몰아치면 끝난겨 저거.
머 세키가하라 전투.가 세시간 만에 끝 어쩌고 저쩌고 걍 헷소리고.
고전했어 저 가운데서. 승부가 안나. 포진 자체가 안돼 동군은.
문제는 저 송미산. 마쓰오산. 에 처박힌 小早川秀秋 .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히데 나 요시 있으믄 다 히데요시.의 양자나 가신 이라 보믄 돼 한때는. 이에야스 자식들도 히데 나 요시 가 몇 돼. 젊을 때 죽었지만.
얘도 히데요시 가문. 히데요시의 마누라. 네네부인 고다이인. 의 오빠 자식이었걸랑. 1582년생.
얜 오가키 성에 안들어가고 미리 며칠전에 저 마쓰오 산에 처박혔어. 아 여기가 핵심지역이구나. 머리 잘 돈거지 어린나이에. 조총이 육백여총 있었어. 당시 비가왔잖오. 애들 조총이 다 젖었을거 아녀 관리 졸 했겠지만. 헌데 얘네 조총부대는 비도 안맞은 상태인거지. 미리 저 산에 처박힌겨.
저 남궁산. 난구야마. 저긴 모리 의 동생이 저기 처박혔걸랑. 얘덜도 눈치 무지 보는거지.
이 둘이. 서로들. 니가 움직이면 내도 움직이께.
저 가운데서 전투 한창 벌어지는데, 얘덜이 꿈쩍을 안해.
만약 마쓰오 산의 고바야카와 가 동군을 쳤으면, 저 난구산에 모리 부대도 동군의 배후를 쳤을껴. 그럼 께임 끝이고 이에야스.는 없는겨. 역사에.
물론 간재비들 활동 하는거지 전투중에. 저 고바야카와 쪽이랑 난구산 모리쪽이랑 이에야스 간재비들이 계속 활동하는겨.
접전이었어. 9월 15일 아침부터 시작한 전투가 정오 직전까지.
이에야스.가 보다보다가. 마쓰오 산쪽으로 총질 협박질을 하는거지. 니 우리 안도와 주믄 바로 칠꺼다.
저 진을 보면. 서군에서도. 얘가 배신할까봐 저 마쓰오 산 밑에 진을 쳐. 얘덜은 동군을 치기 위한 진이 아니라. 저 산에 고바야카와. 가 배신할까봐 그걸 막는 진이었걸랑. 얘들의 대장은 大谷吉継 오타니 요시쓰구.
大谷吉継 오타니 요시쓰구. 아 얘 음청나. 1558년생. 히데요시가 키운애야. 히데요시가 발탁을 했어. 전투 짱이야. 잘생기고. 헌데 나병에 걸렸걸랑. 이때 시력을 다 잃었어.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다녔어. 참모애가 상황 중계하며 작전지시를 내려. 원래 동군이었어. 나병 걸리고 죽기만 바라는 사람. 먼 낙을 보겠다고. 이사람 의리가 짱이걸랑. 이시다 마쓰나리하고도 사이가 좋았어. 동군에 가담하려다가. 이시다 미쓰나리.의 싸우고 죽자.란 말에 서군에 가담해.
얘의 아래 장수애들이 저 고바야카와 밑에 포진을 해. 이 오타니 요시쓰구.의 부하 중에 한명이 脇坂安治 와키자카 야스하루.
얘가 총을 서군으로 겨누는겨. 고바야카와. 저 산위에 있는 애들도 서군으로 총을 겨눠.
께임이 끝난겨.
저때 난구야마 난구산 남궁산.에 그 에케이. 중. 히데요시랑 협상했던 애. 도 발목을 잡혀서리 가담을 못해. 이미 이에야스.의 간재비들에게 다 넘어왔어.
저 써글 격전지역에 있던 사쓰마. 규슈의. 島津義弘 시마즈 요시히로. 계속 지켜만 보다가. 걍 이에야스 본진을 뚫고 탈출을 해. 그리고 규슈로 넘어가.
저기서 생포한 에케이. 고니시 유키나가. 그리고 나중 혼자 튀다 잡힌 이시다 마쓰나리. 는 교토에 모아서리 목 잘라 죽여.
논공행상
이긴 동군에 가담한 애들이 영지를 석고를 최고 다섯배
진 애들은 죽이거나 영지몰수거나 대폭 깎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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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군의 애들도 서군과 가문이 같은 애들이 많아. 살려달라거나 영지 보존해 달라거나 로비 하는거지.
모리 데루모토.는 그 10개 영지에서 두개 영지로 줄고. 삼백년을 이를 갈어. 본성도 히로시마 그 내해 쪽이 아니고 하기성. 저 윗 산음도쪽에 세우게 해.
삼백년을, 매년 정초에. 회의를 해
올해 도코가와 가문을 치러 갈까유?
아니 일단 미루자.
ㅋㅋㅋ. 졸 웃겨. 결국 삼백년 후에 얘들이 주축을 또한 이뤄서. 저 사쓰마의 시마즈. 애들이랑 삼백년 만의 복수?를 하지만.
고니시 유키나가.의 히고. 의 낭인들도 삼백년 후에 힘을 보태.
평화. 는 결국 이에야스. 가문 만의 평화였지. 삼백년을.
이 도쿠가와 가문에선, 그래서 인물이 안나왔어.
절치부심.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지고, 신분이 떨어진 저 패자의 무사애덜에서 삼백년간의 그 쌓인 싸이키. 무의식 집단 무의식에서, 인물들을 쏟아내는겨 삼백년 후에.
그게 메이지 유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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