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raham of Claverhouse, 1st Viscount Dundee (c. 21 July 1648 – 27 July 1689), known as the 7th Laird of Claverhouse until raised to the viscountcy in 1688, was a Scottish soldier and nobleman, a Tory and an Episcopalian. Claverhouse was responsible for policing south-west Scotland during and after the religious unrest and rebellion of the 1670s/80s.
존 그램. 이 던디 의 첫 비스카운트.여 1688. 40세. 토리 였고. 클레이버하우스 영지가 당시 스콧 남서 지역도 폴리싱 에 책임이 있었다. 던디는 에딘버러 위 동쪽이거든. 1670년대/80년대 에 킬링타임에 콘벤티클과 전쟁지역이 스콧 서남부여. 이 책임을 또한 클레이버하우스 영주 가 맡았다는건데. 즉 이 자리가 간단한 자리가 아닌겨 이게. 이 던디가.
비스카운트 란게 공후백자남 에 자작 번역했지만, 이게 모두 메이지 때 어설픈 일본들번역이고, 완전히 개판이거든. 우리네는 일본애들 생각세상에서 사는거고. 아 이 조선들의 나라. 그러면서 지들이 정의 라는 나라. 세상에 가장 미개한 벌래들의 나라.
이전에 후작이란 마그레이브 썰할때 말했지만, 마퀴스 에 마키. 영어 불어. 이런 자리들은 원래 없던겨 초기 유럽엔.
The first marquess in England was Robert de Vere, 9th Earl of Oxford, who was appointed the Marquess of Dublin by King Richard II of England on 1 December 1385. On 13 October 1386, the patent of this marquessate was recalled, and Robert de Vere was raised to the rank of the Duke of Ireland. John Beaufort, 1st Earl of Somerset, the second illegitimate son of John of Gaunt, was raised to the second marquessate as the Marquess of Dorset in September 1397. In 1399, he was disgraced, and the king revoked his marquessate. The House of Commons of England later petitioned King Henry IV for his restoration, but the King objected stating "the name of marquess is a strange name in this realm".
잉글랜드 처음 마키스 가. 서기 1385년 이여. 프랑스엔 아예 없어 이따위 마키. 란건. 신성로마에나 마그레이브 라며 벼라별 그라프 들이 있는겨 샤를마뉴때부터 땅넓히고 경계 라는 마크 찍고 오토때 본격적으로 북쪽 엘베강 넘어 개발하면서 벼라별 그라프 들이 있어 이전 썰. 공후백자남 이란건 없어.
마키스 란건 잉글랜드 에서 뒤늦게 들어온겨 독일땅으로부터. 아일랜드 웨일즈 애들 상대하는 경계령 중요때문에. 중세 다 갈때야 생긴겨 저게. 리차드2세 때 백년전쟁 와중에. 이 리차드 2세 가 블랙프린스 라는 흑세자 의 아들이고. 에드워드3세가 할아버지고. 옥스포드 백작 로버트 드 비어. 에게 더블린 마키스 를 최초 로 준겨 겸직으로. 이 최초 마키스 자리를 다음해 바로 리콜, 회수 해, 아일랜드 공작 자리로 올린겨. 마키스 란걸 취소하고. 즉 마키스 가 1년 있다가 사라진겨.
그리곤 다시, 곤트의 존 의 배스타드 존 보퍼트 서머셋 백작에게 아래 도어셋 마키스 를 주는겨. 서머셋 도어셋 이 왼쪽에 데본 에 콘월 이 또한 게일애들 있거든, 아래는 해변이고. 경계 의 중요때문에 아예 아래 도어셋 도 지키란겨. 리차드2세가 1397년에 마키스 를 줬는데, 이게 2년후 1399년에 취소 되는겨. 헨리4세가 킹이 되면서 뺏은거거든.
곤트의 존.은 에드워드3세 의 셋째 아들이야. 에드워드3세가 1377년에 죽어. 직전해에 장남 흑세자 가 죽어. 둘째도 십년후에 죽어. 흑세자 아들 리차드2세 가 10세에 킹이 돼. 잉글랜드 코트의 실세 는 곤트의 존 인겨. 그런데 백년 전쟁중이야. 전장에 있는겨 삼촌 곤트의 존 이라는 랭카스터 공작 은.
The Lords Appellant were a group of nobles in the reign of King Richard II, who, in 1388,[1] sought to impeach some five of the King's favourites in order to restrain what was seen as tyrannical and capricious rule.
로어즈 어펠런트. 1388년. 어필, 항소 항의 하는 영주들 이란거고. 리차드2세가 21세 때고, 리차드2세의 전제적이고 임의적인 통치에 반대한다면서 쿠데타 를 한겨 귀족들이. 이게 성공을 했어. 여기 합세한게 나중 킹 헨리 4세여. 헨리는 곤트의 존 의 아들.이야.
리차드2세 가 3년전에 옥스포드 백작 로버트 드 비어.에게 최초로 마키스 란 자리를 주고, 이어 아일랜드 공작 자리로 승격을 시킨겨. 소문이 저 둘이 게이, 라고 소문이 나고, 저때 농민 반란에, 대륙엔 백년전쟁에, 위에 스콧도 반란에, 갓 성인 된 리차드가 갈피를 못잡아. 이걸 영주들이 쿠데타를 한거야. 이때 삼촌 곤트의 존 은 스페인땅에 있었어.
Constance of Castile (1354 – 24 March 1394) was claimant of the Castilian throne after the death of her father Peter, King of Castile and León, also known as Peter the Cruel. Her mother was María de Padilla, whom Peter had secretly married, but was then forced to repudiate; however he kept her as his mistress.
곤트의 존.이 두번째 결혼한 여자가 카스티야 의 콘스탄스 야. 첫 부인 랭카스터의 블란체. 블랑카 블랑슈 라는건 프랑스어고 햇빛비추는겨. 여기서 낳은 아들이 헨리4세고. 3년후 1371년에 재혼하는 여자가 카스티야의 콘스탄스 인데, 이여자는 아빠가 피터 페드로.고 엄마가 파디야 의 마리아. 이 페드로 때 오른쪽 아라곤과 두 피터 의 전쟁.에 카스티야 내전 하는겨 예전 썰. 이 페드로 의 배다른 동갑내기가 트라스타마라 가문 시작하는 엔리케(헨리) 2세 고. 동갑내기인데 개월 수로 엔리케 가 빨라. 엔리케 는 배스타드, 애인에서 나온자식이고. 당시 카스티야 가 아라곤 과 두 피터의 전쟁에 엔리케 가 내전으로 아라곤과 합세하고, 이 아라곤에 프랑스 가 손잡고, 카스티야 는 잉글랜드 와 손잡아. 당시 백년전쟁 을 여기서도 하는겨. 이걸 곤트의 존 이 대륙에 스페인에 바쁘게 돌아다니는거고. 카스티야 의 페드로 는 산맥넘어 가스코뉴 땅 잉글랜드 에 의지하는거고. 그러다 엔리케 가 이기고 이 페드로 를 유에프시 하듯 패죽인다고 했잖냐 다 까먹었겠지만.
그리고 나서,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이 콘스탄스 와 결혼하는겨. 그리곤 자기가 카스티야 킹 을 자처하는거고. 이 콘스탄스 의 엄마 가 애인이었어. 페드로가 애인 마리아 와 비밀결혼 하고, 엄마등쌀에 딴여자랑 결혼했지만 마음 안주고, 이애가 이상태에서 또 세번째 여자를 들여 이전 결혼 취소하겠다면서, 그리곤 하룻밤 자고 내쫓고. 그래서 미친놈 닉을 준거고. 그러다 엔리케 한테 맞아 죽었고 트라스타마라 가문으로 카스티야 가 넘어간겨. 이걸 결혼으로 잉글랜드 곤트의 존 이 갖고 오려는거고. 곤트의 존이 바쁜겨 백년전쟁에 카스티야 되찾기 전쟁하느라. 그러다가 1388년에 본토에서 로어드즈 어펠런트 라는 쿠데타 가 터진겨.
부랴부랴 와서 쟤들을 정리하고 다 화해시키고, 다시 조카 리차드2세 를 올려. 은인이여 삼촌이. 곤트 의 아들 헨리4세 는 뻘쭘해진겨 이게. 그리고 1399년 초에 곤트의 존 이 죽어.
Thomas de Mowbray, 1st Duke of Norfolk, 1st Earl of Nottingham, 3rd Earl of Norfolk, 6th Baron Mowbray, 7th Baron Segrave, KG, Earl Marshal (22 March 1366 – 22 September 1399)
노퍽 공작 토마스 드 모브레이. 이때 잉글랜드 이름들이 드 가 있는겨 여전히 14세기에도. 모브레이 도 어펠런트 였어 헨리4세 와 함께. 리차드2세 가 얘를 따로 챙겨주고 자기 심복으로 만들어. 그리고 노퍽 공작 자리도 줘.
Thomas of Woodstock, 1st Duke of Gloucester (7 January 1355 – 8 or 9 September 1397)[2] was the fifth surviving son and youngest child of King Edward III of England and Philippa of Hainault.
글라스터 로 읽어. 글라스터 공작 토마스. 에드워드3세 의 막내아들이야. 리차드2세의 막내삼촌인겨. 둘이 사이가 안좋아. 리차드2세 가 모브레이 를 시켜서 이사람을 암살한거로 봐 역사해석은. 그런데 이때 리차드는 32세인데, 자식이 없어. 다음 승계가 곤트의 존 헨리4세여. 모브레이 가 이 헨리를 싫어해. 헨리가 글라스터 를 죽였다는겨. 헨리가 열받아해. 리차드2세가 뻘쭘해서리 둘을 모두 추방을 해. 헨리 가 프랑스로 갔는데, 이때는 프랑스도 미친놈닉 샤를6세여. 백년전쟁 기간이지만 이때 평화조약을 맺은겨 킹들이 띨해서. 저때 프랑스 코트 의 실세 가 샤를6세 의 동생 오를레앙 의 루이.여. 형이 정신질환이라 감금도 시켜. 얜 확실히 정신병인겨. 이 오를레앙의 루이 가, 리차드2세 와의 화친을 깨고, 망명중인 헨리4세 에 병력을 줘서 내란을 부추기는겨. 잉글랜드는 이미 리차드2세가 고립된상황이고 이걸 헨리4세가 가볍게 갖고 와서 저 해 1399년에 킹 이 되는겨.
프랑스 실세 오를레앙 의 루이.는 부르고뉴 의 현명공 이 부르고뉴 를 제대로 시작하면서 플랑드르 까지 갖고 온거거든. 이걸 루이 가 갖고 오려는겨 부르고뉴가 부담되니까. 현명공이 죽고 무섭공 피얼리스 장 이 기분이 나빠. 소문을 퍼뜨려, 저 루이 가 미친형 샤를6세의 마누라 퀸 과 불륜이라고. 퀸이 1407년에 또 애를 낳아. 애가 하룻만에 죽어. 샤를7세 가 이전에 낳은 마지막 생존 자식인거고. 오를레앙 의 루이 가 퀸 이 산고 겪는 걸 알고 가는 길에, 이걸 들은 부르고뉴 들이 파리 거리에서 찔러 죽인겨 기다려서. 15명의 마스크맨들이. 이때부터 부르고뉴 와 오를레앙 의 내전 이 시작이 된건데.
저 와중에 헨리4세 가 킹이 된겨 1399년에. 그리고 나서, 존 보퍼트 서머셋 백작에게 같이 이전에 줬었던 도어셋 마키스 를 취소 시키는겨.
John Beaufort, 1st Marquess of Somerset and 1st Marquess of Dorset, later only 1st Earl of Somerset, KG (c. 1371 – 16 March 1410)
존 보퍼트.가 그래서 결국 타이틀은 소머셋 백작 만 남은겨. 헨리4세가 즉위하자마자 바로 마키스 를 뺏아서.
존 보퍼트 도 곤트의 존 의 자식인데, 배가 달라.
Katherine Swynford, Duchess of Lancaster (born Katherine de Roet, c. 1350 – 10 May 1403), also spelled Katharine or Catherine,[2] was the third wife of John of Gaunt, Duke of Lancaster, a son of King Edward III.
존 보퍼트 는 엄마가 캐떠린 스윈포드 여. 헨리7세 이야기 할 때 언급했던. 곤트의 존이 첫부인 랭카스터 에서 헨리4세 낳고, 두번째 부인 카스티야 의 콘스탄스 랑 재혼할때 사귄 귀족 애인이야 스윈포드. 카스티야 부인 에서 낳은 딸이 트라스타마라 엔리케2세 의 아들 후안1세 의 아들 엔리케 3세 에게 시집가는겨. 이 엔리케 3세 와 곤트의 존 딸.의 증손녀 가 카스티야 의 이사벨 이여 레콩퀴스타 하는.
잉글랜드 헨리7세 는 스윈포드 의 자식이고, 즉 존보퍼트 가 헨리7세의 큰형인거야. 랭카스터 곤트의 존에 엄마가 스윈포드 인. 곤트의 존 의 카스티야 부인 이 1394년에 죽어. 스윈포드 와는 이 후에 정식으로 결혼을 한겨 애들 다 크고서. 당시 법으론 결혼 전에 낳은 자식은 배스타드 일리짓메잇 합법이 아닌겨. 그래서 이사벨라 가 헨리7세 한테 잉글랜드 킹 자리 내놓으라 한거고, 딸 캐서린을 보내는걸로 합의를 본겨 이 캐서린이 시집갔다가 신랑 열병에 죽고 동생 헨리8세 랑 결혼하게 되서 구박받는거고 헨리 한테.
할때, 저 존 보퍼트 는 헨리4세 의 배다른 동생인데, 리차드2세 가 자기사람으로 만든거야. 이걸 헨리가 킹 하고 마키스 자리를 취소하고, 나중에 다시 카머너 들이 탄원을 해 도어셋 마키스 자리를 보퍼트에게 줘야하는거 아니냐고. 싫걸랑, 그래서 이때 헨리4세가 하는 말이
"the name of marquess is a strange name in this realm".
마키스 라는 이름은 이 땅에서 낯선 이름이야.
아 이 문장 이야기 하려고 먼 쓰잘덱 없는 이야길 이따위로. 여하튼 이 마키스 초기 두개 자리 생겼다 지워지는게 저런 사연들이 있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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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던겨 저게 중세 유럽의 영국땅과 프랑스엔. 저건 16세기 근대 부터 생긴겨 잉글랜드는.
저게 웨일즈에 아일랜드 에 스콧 문제로 이후 우후죽순처럼 잉글랜드에서 생긴거고 얼리마던 부터. 신성로마 는 벼라별 그라프들 땅이고, 저기서 마그레이브 란거 걍 하나를 후작, 이러는거고.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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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 viscount comes from Old French visconte (Modern French: vicomte), itself from Medieval Latin vicecomitem, accusative of vicecomes, from Late Latin vice- "deputy" + Latin comes (originally "companion"; later Roman imperial courtier or trusted appointee, ultimately count)
비스카운트 란것도 이거 웃긴겨. 자작 번역해서 대단한 듯 보이지만. 잉글랜드 에 이 비스카운트 가 등장하는게 15세기여 서기 1440년. 원래는 카운트 라는 로마 시대 파견 공무원 이 중심이야 중세 유럽 의 영주 타이틀 이란게. 여기에 갑자기 또 바이스 라는 대리인 이 붙은겨 이 카운트 에. 이건 매로빈지언 다음인 샤를의 자식들인 카롤린지언 때 생긴겨. 카운트 들을 보좌하라고 비케코미템. 비콤트 라고 만든겨. 이게 훨 나중에야 잉글랜드로 간건데.
The title was in use in Normandy by at least the early 11th century.[5] Similar to the Carolingian use of the title, the Norman viscounts were local administrators, working on behalf of the Duke.[6] Their role was to administer justice and to collect taxes and revenues, often being castellan of the local castle. Under the Normans, the position developed into a hereditary one, an example of such being the viscounts in Bessin.[6] The viscount was eventually replaced by bailiffs, and provosts
노르망디 들이 11세기초에, 비스카운트 에 대한 역할 알앤알 을, 지방 행정가들 로 정했는데 하는일이, 듀크 를 위해 일하다. 롤 이란게, 사법을 관리하고, 세금 과 영지매출을 걷고, 종종 캐슬 의 캐슬런 일을 했다. 이 캐슬런 이란게, 중세 유럽에선 말야, 교도관 인겨. 감옥지킴이 야. 지방 영주를 보좌하면서 저런 일들을 하던게 비스카운트 란 자리였어. 그래서 저건, 나중에 세습 으로 내려간거고. 그러다가 이 비스카운트 가 별도의 귀족 자리에 단독 영주 가 되면서 원래의 일들은 베일리프 나 프로보스트 가 맡게되었다는겨.
베일리프 라는게, 샤이어 의 리브 셰리프.는 샤이어 지킴이. 베일 을 지키는겨 이 베일 이란게 받은거 란거고 위에서 받은 자리 인겨. 낮은 공무직 이야. 프로보스트 란건 타운의 헤드여. 스콧에서 쓰던 타이틀인거고.
비스카운트 라는게 영주의 행정보좌직 이 따로 작은 영주 가 된겨.
프랑스 는 Vidame 비담 이야. 이게 자작 이란 한자 와 전혀 상관이 없어. 비스카운트 와 대등하게 쓰지만, 이건 전혀 다른겨. 이건 프랑스 의 교회 가 갖고 있는 세속 땅을 대리 시키며 관리하는 명함이야. 바이스 다미누스 여. 바이스 라는 비카리우스 가 대리인 이고, 대리 지배자여. 교회 땅 대리지배인 일 뿐이야. 마키스와는 전혀 개념이 다른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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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approximately 270 viscountcies currently extant in the peerages of the British Isles, though most are secondary titles
현재 영국 의 비스카운티 들이 270명이야. 세컨더리 타이틀, 법적 권한이 없는 명예직이고, 커트시 타이틀 이야. 중세 를 잇는겨 이들이, 위대한 영국인 이유야.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는게 지금 벨기에 이고, 스페인이여 킹덤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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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때 존 그램이 던디 의 저런 첫 비스카운트 였다는거고.
던디 가 클레이버하우스 의 제7대 Laird 레어드.여. 레어드 라는게 lord 로어드 의 스콧게일어고. 스콧티시 가 아녀 가끔 웨스턴 도 이 스콧티시 스콧게일을 막 써대는데, 스콧티시 는 영어 고 스콧게일은 게일어여 전혀 달라. 게일어는 게르만 영어가 아녀.
토리 였대
A Tory (/ˈtɔːri/) is a person who holds a political philosophy known as Toryism, based on a British version of traditionalism and conservatism, which upholds the supremacy of social order as it has evolved in the English culture throughout history. The Tory ethos has been summed up with the phrase "God, Queen, and Country".[1] Tories are generally monarchists, were historically of a high church Anglican religious heritage,[2][3] and opposed to the liberalism of the Whig faction.
토리 에 대응 하는게 휘그 이고, 이전이 카발리에 였고 휘그는 라운드헤드, 원정당 이라고 일본이 번역. 머리 둥글게 깎은겨. 카발리에 기사당은 머리가 길어.
토리 휘그 는, 정치적 철학 이 다른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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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below this line is being written after on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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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와 휘그 라 하는데, 둘이 서기 1678년 에 시작한거로 봐. 제임스2세 배제법안 이슈 터질때여. 토리는 1834년 휘그는 1859년 에 지워져. 토리는 지금 컨서버티브 보수당이 된거고 저때부터, 휘그는 지금 리버럴 데모크랫. 자유민주당에 이어간거고, 군소정당이고, 영국의 양당 중 하나인 노동당은 서기 1900년 에야 생긴거야. 자민당이 노동 과 손을 잡는경향도 있지만 휘그 라는게 쟤들 글들 이거저거 보면 지금 휘그는 없습니다요, 천만에, 얘들이 지금 소셜리즘 에 노동 으로 스민겨. 그리고 자유 라는 리버럴리즘에 바닥을 둔 이들은 보수당으로 스민거고. 원래 휘그 하면 리버티 였어. 휘그 가 지워지고 리버티 당 자유당을 만든겨. 이 자유당이 자유민주당이 된거고, 다른한편으로 사민당이 된겨. 휘그 의 자유 는 시선이 아래 민들로 내려갔는데, 민들을 위하는 방식이, 아! 자유가 아니구나 소셜리즘 코뮤니즘으로 탑다운으로 체제를 만들어야 해결이 되는거구나! 라고 생각한 애들이 사민당 에 노동당 으로 빠진거야 지금.
소셜리즘 코뮤니즘 의 노동자 어쩌고 로는 말야, 민들의 문제가 해결 되기는 커녕, 걍 그 집단의 사람들을 전부 죽일 뿐이야. 그게 역사여. 인류 역사의 항진명제야.
코뮤니즘 이란건, 인류의 이상사회 유토피아 에서나 생기는 체제 일 뿐이야 ㅋㅋㅋ. 나만의 위대한 센턴스.
코뮤니즘 이란 세상은 결국 실현이 돼. 단, 모랄이 저급한 인간들이 모~두 사라지는 땅에서. 결국 웨스턴 애들만의 코뮤니즘 세상이 될꺼야 일이천년 후에는. 나만의 센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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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이란 단어는 자유 를 혐오하는 애들이야. 둘이 손잡는게 어려운거고,
우리가 진보 라고 하면, 세계적으로 말이지, 무척 앞선 듯 하지만 말야, 얘들은 근본적으로, 자유 라는 두글자를 혐오 증오 하는 애들이야. 물론 본인들이 이런 센턴스를 본다면 말도안되는 소리 하나 하겠지만 ㅋㅋㅋ.
진보 라는 애들은, 소셜리즘 이야 기본 사상이. 소셜리즘 커뮤니즘 은, 철저히 철저히 자유 라는 두글자를 죽여야 만 해. 세상은 이 소셜리즘 커뮤니즘 으로 망하는겨 앞으로, 이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는게. ㅋㅋㅋ.
휘그 와 토리 는, 찰스1세 의 내전 인 카발리에 와 라운드헤드 를 이은 것일 뿐이고, 정치적 으로 갈린겨. 킹 대 의회 의 구도여. 이게 결과적으론 뜬굼없이 크롬웰의 퓨리튼 들이 군사적 종교적 으로 다수가 된거야 황당하게도. 저 의회 카머너들은 모두 앵글리칸 들이야. 얘들이 크롬웰 퓨리튼들 좋은 일만 해준겨 이게. 저건 전혀 종교적 이슈가 아냐.
그리곤 찰스2세 복권하고, 이 인간도 바닥에 카톨릭이고, 동생은 확실한 카톨릭이고, 찰스는 자식이 없고, 의회 애들이 두려운겨 카톨릭 세상이 될까봐. 의회 는 여하튼간에 반카톨릭이야. 모여서 승계배제의 빌 bill 을 제출할 때부터 휘그와 토리 의 시작이야. 이게 이삼년 끌다가 최종 거부되는거고, 다음 이어지는 게 라이하우스 음모사건이고, 아예 저 두 형제를 죽여버리자, 실패해. 그리고 제임스2세 가 킹이 된겨.
이 명예혁명 이란건, 아니, 제임스2세 가 자기나라에서 쫓겨나서 남의 나라 군주 가 군대 데리고 몰려와서, 피한방울 없이 킹 이 된건, 이건 전무후무 한 사건이야. 이거 골때리는 사건이야 이건. 나중에 정리하고. 아 이런 이야길 하는 애들이 단 하나 없는데, 웨스턴 에서 도 조차. 빌 오브 라이트스. 라는 역사적 센턴스들은 차치하고 말이야. 저 사건 은 전혀 전혀 다른겨 이건. 그야말로 독보적 인 이벤트야. 폴란드 는 선거 라는걸로 작센 이 뒤에 킹이 되는거여 얘들은 어쨌거나 선거로 킹 뽑은거고, 이게 전혀 달라. 저런 일은 인류역사 에 최초여 저건. 자기 킹 쫓아내서 남의 나라 땅 인간 을 킹에 앉힌건.
카발리에 대 라운드헤드 는, 찰스1세 라는 킹 을 따르느냐 마느냐 로 갈라진겨. 모든 권력은 라운드헤드 가 쥔거야. 이 라운드헤드 들이 크롬웰 사후 에 몽크 를 중심으로 해서 찰스2세 를 올린겨. 라운드헤드 들이 카발리에 가 된겨 이게. 그리곤 라운드헤드들이 크롬웰 등 세명 모가지 짜른거로 역사정리를 하는거고, 모두 라운드헤드들 이 다 한겨.
그리고나서, 카발리에 니 라운드헤드 니 경계선이 없어 이젠. 그런데 제임스2세 를 킹 후보로 인정하냐 마냐 로 갈리는겨. 이게 토리 와 휘그 의 시작이야. 그리곤 오렌지 윌리엄 을 데려왔어. 이건 휘그들 중심이지만 토리들도 암묵적 동의를 한겨 이건. 제임스2세 는 부랴부랴 도망간거고. 의회에 토리들이 침묵 방관한겨. 재코바이트 반란이란건 스콧과 아일랜드 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잉글랜드 의회 의 토리 들은 침묵이나 몰래 도와줄 뿐 얘들인 의회에서 이미 힘이 없는겨.
이게 너무나 불쌍해서, 오렌지 윌리엄 이 죽고, 부인 퀸 앤 이 토리들을 꺼내준겨. 더하여 휘그가 장악한 의회가 불편한거고. 퀸 앤이 저때 정치를 잘한겨 여자가. 아이리쉬 애들에겐 천하의 마녀에 나쁜년이여 제임스 조이스 의 율리시스 를 보면. 당연한거고 찌질이 아이리쉬 들에겐.
그러다가 퀸앤 죽고 하노버의 조지 가 올때는 다시 휘그들이 확실히 장악을 하는겨. 오렌지 윌리엄 이나, 하노버의 조지 들이나, 얘들이 힘이 있겄니? 절대 힘이 있을 수가 없지. 자기들은 걍 휘그애들의 가마 타고 온 손님 일 뿐이야. 이게 열받아서 조지3세 부터 다시 토리들을 또 꺼내 쓰는겨. 영국 역사는 휘그 의 역사지 토리 의 역사 가 아냐.
토리 의 에토스 감정선은 갓, 퀸, 컨추리 라는 구호에 있다. 저 구호가 퀸 앤 때 나온거일거야. 빅토리아 여왕 즉위할때는 이미 의미가 없거든 휘그니 토리니 바로 사라질때고. 다른 곳 보면 갓 킹 컨추리 야. 신과 군주 와 땅은 같은겨. 이들에겐 마너크 라는 절대군주 라는 상징이 있어야 한다는겨 사상이. 그냥 허수아비 역할이어선 안된다는거고. 엘리자벳 2세 여왕이 지금 남아있다고 토리 의 사상이 적용된게 아냐. 토리 들은 저런 허수아비 권력의 마너크 를 심자는게 아니거든. 그래도 이들 때문에 지금 퀸 이 있고, 저런 세컨더리 커트시 타이틀 이 그나마 있는겨 영국에. 트러디셔널 전통을 잇는거고, 컨서버티브 라는건 자기들 중세 천년을 지키겠다는 의지고.
이나라의 보수 라는건, 박정희 군부 애들이 갖고 온 게 머냐? 자유 여 ㅋㅋㅋ 웃기게도. 군부독재 라며 규정받은 애들의 사상은 자유 야. 이걸 컨서버티브 하겠다는겨. 자유경제. 이 자유 를 가장 혐오하는게 또한 진보여. 자유민주 에서 자유 를 이미 교과서 에서 지워. 골때리는겨 이게.
자유는 죽음으로 가는길입니다. 한의학에서는요. 저 말의 의도는, 자유 는 죽음 이란겨 인간 역사에선.
골때리는겨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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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가장 혐오하는게, 세계 공통 의 진보 라는 애들이여 레프트 라는 애들이고 ㅋㅋㅋ. 궤변 같지? ㅋㅋㅋ.
휘그 의 리버럴리즘 에 반대한다 토리는. opposed to the liberalism of the Whig faction.
리버럴리즘 이란게 가장 어려운 사조여 이게. 이걸 모두 퉁쳐서 자유주의 해대거든. 이 리버럴리즘은 토리나 휘그나 똑같어 바닥은. 영국은 리버럴리즘 의 나라고 이걸 그대로 미국이 갖고 간거여. 미국의 상징은 스태추 오브 리버티 라는 자유의 여신상 이야.
초기에는 리버럴리즘 이 이슈가 안돼 휘그나 토리나. 오직 킹 과 의회 의 관계 로 나뉘어졌을 뿐이야. 이건 이전 썰했듯 마그나 카르타 이후 4백년동안 이어져온 이슈 인겨.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군주 와 귀족 이 긴장감있게 대립한 나라는 없어 없어. 영국은 그야말로 위대한 나라야.
Benjamin Disraeli, 1st Earl of Beaconsfield, KG, PC, FRS (21 December 1804 – 19 April 1881) was a British politician of the Conservative Party who twice served as Prime Minister of the United Kingdom. He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creation of the modern Conservative Party, defining its policies and its broad outreach. Disraeli is remembered for his influential voice in world affairs, his political battles with the Liberal Party leader William Ewart Gladstone, and his one-nation conservatism or "Tory democracy". He made the Conservatives the party most identified with the glory and power of the British Empire. He is the only British prime minister to have been of Jewish birth. He was also a novelist, publishing works of fiction even as prime minister.
벤자민 디즈레일리, 비즈콘필드 백작. 빅토리아 때 사람이야. 이사람의 라이벌이 글래드스톤 이야.
William Ewart Gladstone PC FRS FSS (/ˈɡlædstən/; 29 December 1809 – 19 May 1898) was a British statesman and Liberal politician. In a career lasting over 60 years, he served for 12 years as Prime Minister of the United Kingdom, spread over four terms beginning in 1868 and ending in 1894. He also served as Chancellor of the Exchequer four times, serving over 12 years.
빅토리아 시대 걸출한 두 인물이여. 둘다 토리여. 이 들일때 휘그 와 토리 가 해체 가 된겨. 글래드스톤 이 토리에서 휘그로 갈아타고 휘그에서 나오는 리버티 파티 자유당의 당수 가 되는겨. 토리애들 입장에선 변절자고, 영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인 은 이 글래드스톤 이야. 토리 는 상대적으로 욕먹는게 노동계층을 등한시한다는 거로 비춰지는거고, 글래드스톤이 이 아래계층의 문제 를 심각히 보고 토리에서 나온겨. 그래도 리버럴리즘 은 절대 안버려. 그래서 글래드스톤 리버럴리즘 이란 말도 나오는거고. 그러면서 당연히 아일랜드 도 독립 시키라는겨. 당대엔 실패하지만 이사람의 입김으로 사후에 아일랜드가 독립을 한겨. 미국 독립 도 휘그 들이 지원을 하는거고, 벤자민 프랭클린 의 편이 휘그 애들인겨.
이 휘그 애들의 리버럴리즘 이란건, 정치적 으로는 절대군주 라는 마너크 킹 퀸 의 권력으로부터 의 해방이야. 라운드헤드 를 이어서. 당연히 식민지 국가들의 리버럴 로 확장이 되는겨 이게.
그런데, 토리는 리버럴 이라해도, 집단의 정체성이 유지된 상태의 리버럴 이어야 하는겨. 강력한 하나의 나라 가 있어야 자유도 자유 라는거거든. 이 걸 정리해서 제창한 이가 벤자민 디즈레일리 야. 이 개념으로 나온게 지금 보수당 이야. 이건 미국 보수주의와 캐나다 보수주의 의 기본 컨셉 이고 또한. 세상의 모랄 은, 사람들이 비하하는, 미국 조지아 중심의 남부 에 있는겨 ㅋㅋㅋ. 남북전쟁의 패배자 들이 지금 세상 모랄 의 핵이여 핵. 어떻게 낙태 를 하니 . 어떻게 생을 죽이니. 인간의 생 생명 이란게 우주의 시작이고 생이란 것이 신 인데 어떻게 아이를 죽이냐. 어머 고리타분한 카톨릭에 감리교 에 찌든 적폐 ㅋㅋㅋ.
디즈레일리 가 수상을 두번하고 그 사이 를 글래드스톤이 두번에 추가 두번 더 하고, 이 빅토리아 퀸 의 용인술이 최고여.
정치적 리버럴리즘.의 차이가, 토리 는 하나의 권위 를 둬야 하는겨. 신 킹(퀸) 컨추리 가 삼위일체 인 하나가 당당히 강력하게 존재해야해. 자유도 이 속에서의 자유야. 휘그 는 이걸 부정해 정치적으로. 이들이 뒤로 가서 소셜리즘 에 아나키스트 로 번지는겨. 이게 프랑스로 가는겨 1789 대학살 때부터, 프랑스가 저 1789 대학살 분위기가 백년 을 가는겨 이게. 뒤로 갈수록. 개판도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는겨 정치사회적으로는 이 프랑스란 나라는 저때부터. 저걸 억지로 잠재운게 선거로 당선된 나폴레옹 3세여. 이사람이 전제정치체제로 바꾼겨. 그리고 보불전쟁에서 패하고 다시 제3공화정 들어서면서 서기 1900년 을 지나는게 프랑스여. 개판도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는 나라가 된겨. 그야말로 자유야 ㅋㅋㅋ. 저때 프랑스 의 모랄 이 개판이 돼. 자유부인 이란게 저때의 프랑스께 일본으로 가서 조선으로 들어오는거고, 프랑스 거리는 나체사진들을 상점에서 파는거며, 정치인들은 민들 을 위한 아부의 정치를 하는거며 민들 이용해서 자기들 권력놀이 하는거며, 살롱들에서 정부(情婦 情夫) 들이 넘실대고, 그리고 권력은 군대 를 없애려는겨 ㅋㅋㅋ. 신 킹 국가 라는 거대한 앱스트랙트 가 없는 자유라는건, 아무런 힘이 없어. 이 프랑스 가 그래서 1차 대전 2차 대전 을 그대로 당하고 영미에 의해서 다시 세워지고, 여전히 저 짓들의 프랑스 가 된겨. 이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후진 나라가 될꺼야 슬라브 보다 못한.
Classical liberalism is a political ideology and a branch of liberalism that advocates civil liberties under the rule of law with an emphasis on economic freedom. Closely related to economic liberalism, it developed in the early 19th century, building on ideas from the previous century as a response to urbanization and to the Industrial Revolution in Europe and North America
경제적 으로 휘그 의 리버럴리즘 을 클래시컬 리버럴이즘 이라고 해. 이건 머냐면 말이야, 토리 도 리버럴이야 경제도. 토리 의 경제대명사 는 프리트레이드 여. 자유무역이야. 휘그 의 경제리버럴은 여기에, 보호주의자 가 깔려. 여기서 보호 의 대상은, 노동계층 이야. 요게 달러. 노조 가 중요한겨 그래서. 리버럴 인데 노조 를 중시하는 리버럴 이야.
아담스미스 를 이 클래시컬 리버럴이즘 에 놓거든. 이것도 디다보믄 웃긴게,
Despite Smith's resolute recognition of the importance and value of labor and of laborers, classical liberals selectively criticized labour's group rights being pursued at the expense of individual rights[14] while accepting corporations' rights, which led to inequality of bargaining power
아담스미스 는 휘그 의 경제주의 와 상관없어. 헌데 휘그애들이 아담스미스 의 국부론 이 나오고 나서 이 이론을 자기들껄로 한겨. 그러면서 아담스미스 가 뜬굼포 클래식 리버럴이즘 이 된건데. 저 문장을 이해를 못할텐데 말야. 아담 스미스는 완벽한 프리 트레이드 여. 이사람은 자유에 목숨건 사람이야. 국부론 을 보면, 아담스미스 의 문체 는 말야 아주 잔잔하고 아무런 감정이 없어. 그야말로 차분한 글이 국부론이야. 그런데 감정 들어갈때가 저놈의 코어퍼레이션 이야기할때야. 저게 한자동맹애들의 길드 여. 얘들은 길드 라고 안하는겨 존심이 있어서. 코어퍼레이션 법 으로 움직이는 나라야 잉글랜드는. 이걸 스콧에 심은거고. 마스터 와 도제 의 관계 이고, 7년 의무여. 어프렌티스 라는 도제 는 일 배우기 위해 무급으로 일해야 하고 인원수도 정해진겨. 노동자 가 시장의 아이템에 따른 인력이동 을 자유롭게 못해 저놈의 코어퍼레이션 법 때문에. 더하여 저 마스터 들이 따로 모여서 담합을 하고, 임플로이어들이 시장가격 담합하기 위해서 권력과 긴밀한데 밖에선 보이지가 않아요. 반대로 피사용자들은 그런 유니온 을 못하고 힘도 없어요. 라는 문장을 쓰거든.
아담 스미스 는 그래서, 저런거 다 없애야 한다 는거거든. 그런데 저게 휘그 애들이, 저기서 코어퍼레이션 의 라이트 는 죽이고 도제들 의 권한 노동자들의 라이트 들은 보호하자는 거군, 요렇게 해석해 버리고 이걸 지들 이념으로 쓰는겨 ㅋㅋㅋ.
휘그의 리버럴이즘 과 반대 다 하는게 저런 말이고.
나머진 나중에 하자. 아 던디 이야기 로 몇개 하는겨 이거. 다음엔 꼭 한꼭지로 마무리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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