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rench had not prepared for such an eventuality. Realising that the war in Germany was not going to end quickly and that the Rhineland blitz would not be a brief and decisive parade of French glory, Louis XIV and Louvois resolved upon a scorched-earth policy in the Palatinate, Baden and Württemberg, intent on denying enemy troops local resources and prevent them from invading French territory.[49] By 20 December Louvois had selected all the cities, towns, villages and châteaux intended for destruction. On 2 March 1689 Count of Tessé torched Heidelberg; on 8 March Montclar levelled Mannheim. Oppenheim and Worms were finally destroyed on 31 May, followed by Speyer on 1 June, and Bingen on 4 June. In all, French troops burnt over 20 substantial towns as well as numerous villages
프랑스 가 1688년 9월 27일에 필립스부르크 를 포위하고 이건 한달만에 점령하고, 라인강 따라서 보름스 하이델베르크 슈파이어 마인츠 들을 지나면서 접수를 하셔. 가다가 코블렌츠 는 못갖고와 버텨서. 그리고 신성로마 영주들이 모이고, 대투르크전쟁의 병력이 돌아와. 루이가 이걸 예상을 못했어. 저렇게 다들 대동단결로 모이고 투르크전쟁에서 바로 돌아올줄은. 걍 저렇게 라인팔츠그라프 를 쉽게 넣고 끝날 줄 안거야. 쾰른 도 자기 사람 심으면 될 줄 안거고. 그만큼 자신만만했던거고 신성로마 는 걍 핫바지 애들로만 본거야 얜. 아 이거 오래 가겠구나. 이게 전쟁이 쉽게 끝날 게 아니구나.
저기를 항복받았다고 해서 프랑스 것이 된게 아냐. 저 영주들이 바로 프랑스 에 올인할 것도 아니고, 말로만 하미지 하겠다는거지. 나중에 조약으로 결정지어져야 하는겨 모든 것이 저 유럽애들은. 저 지역들은 바로 신성로마군들이 오면 반프랑스가 될게 뻔해. 프랑스 애들이 접수한 지역들을 모두 불태우는겨. 저기가 프랑스 땅을 침입하는 전초기지로 쓰일 것은 뻔해. 스코치드 . 태우고 파괴하는겨 이때. 바로 12월 20일 에, 루브와 가 도시들 타운들 마을들 성들을 파괴할 곳들을 정해서 없애기로 해. 1689년 3월에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을 파괴하고, 5월에 오펜하임. 보름스 를 다 파괴해. 이어 슈파이어 빙엔. 20개의 주요 타운들 과 상당수의 마을들을 다 파괴한겨.
The Imperial Diet of the Holy Roman Empire declared war on France on 11 February, beginning a unified imperial war effort.[51] The Germans prepared to take back what they had lost, and in 1689 formed three armies along the Rhine.
1689년 2월 11일에 신성로마는 다이어트 에서 전쟁선포 를 한겨 공식으로. 그리고 제국전쟁 을 시작해. Reichskrieg 라이히스크리크. 신성로마 의 체제 개편 리폼 은 막시밀리언이 만든거고 서클 개편하면서 이때 만든겨. 이게 대투르크전쟁 도 이 걸로 병력 소집한거고. 30년 전쟁은 라이히스크리크 를 선포하지 않았어. 이후 프랑스 를 상대로 처음인겨 이건. 즉 프랑스 가 투르크 같은 애들이 된거야.
저러면서 1689년 초에 프랑스 애들이 라인란트 를 저리 주요 지역들은 다 태우고 파괴하고 가는겨, 저기서 자기들 땅 못넘어오게. 그리고 전선이 바로 프랑스 모든 변경으로 확 불이붙은게 9년전쟁 의 초반이야. 저때 모~든 영지들은 반 프랑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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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 명예혁명 이란건 대륙의 저런 시끌벅적 한 저 시점에서 동시에 발생된 일이야 이게.
모든 건 루이14세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얘가 라인란트 카를2세 죽고 3년 준비에 저해 1688년 6월에 쾰른 대주교 죽고 자기사람 못심은거에 이어 9월에 베오그라드 점령되면서 바로 시작한거지만. 더하여 머리 위 잉글랜드는 자기 사촌인 제임스2세 가 완벽한 자기편이라 안심되는거고. 프랑스는 이제 움직이려면 제일 먼저 잉글랜드 가 가장 큰 변수가 된거거든.
이 루이 가 벌인 9년전쟁은 이건 너무한거야 . 얘 전쟁 들 중에 가장 명분이 없는건 이 9년 전쟁이야. 뒤의 스페인후계자 전쟁도 머 딱히 명분이 있을라나. 루이 엄마 도 스페인의 앤 이고, 마누라도 필립 핏줄이지만 모두 시집오기전에 상속권을 다 포기했거든. 그래도 스페인은 어쨌거나 얘가 명분이 더 쎄 상속순위론. 그런데 9년전쟁의 저건 정말 걍 깡패짓이야 얜.
얜 정말 이거. 투르크 랑 같은 애야 이게. 유럽사 에서 보면. 정말 얘가 이게 나이 50이 다되서 완전히 이건 정신병자가 된겨. 자기가 태양이 된겨 이게 진짜. 얜 프랑스역사에서 역적이야. 유럽사에서도 마찬가지고. 얘가 프랑스를 망친겨. 이걸 프랑스 애들은 몰라 ㅋㅋㅋ. 위대한 프랑스인. 앙시앵 레짐 하면 떠오르는 애가 얘 야. 얘 무덤 하나 박살낸건 잘한겨 1789 대학살때.
쟤 가 저런건 리슐리외 와 마자랭 관 상관이 없어 저게. 두사람 다 뒈지고 나이 처먹어서 지 혼자 한겨 코트 애들이랑. 즉 이때 코트 참모 애들이 수준이 떨어진거야 정책자들이. 콜베르 가 후진거야 얘가 비록 동인도서인도 회사 는 만들었지만. 컴퍼니는 실속도 없었고 늦게 카피하고 뛰들어가서.
얘가 저짓을 안했으면 오렌지 윌리엄은 잉글랜드 에 가지 않아. 제임스2세 는 혼자 만 양심의 자유 선언 하고 더하여 종교의 자유 를 공포했을지도 몰라 ㅋㅋㅋ. 카톨릭으로 전부 바꿔는 정말 집단 히스테리 의 오해 일 수도 있어. 요즘 사학계에서 오히려 제임스2세 에 대해 미안해 하는 소리들이 나오는겨 그래서.
헌데 이 놈의 루이 가 결국 저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겨. 네덜란드 입장에선 당연히 1672년 이 떠오를 수 밖에 없어 백퍼 천퍼. 제임스2세 가 최소한 중립 이여 더하여 확률상 루이랑 손잡고 쳐들어 올 경우가 너무나 높은겨. 쾰른 대주교 껀 물고 늘어지는것도 똑같아 프랑스가 저 쾰른 에 뮌스터 를 발판으로 쳐올라온거거든. 네덜란드는 급박한 상황이야. 잠도 못자 얘들은 저 프랑스 때문에 저때는.
대륙은 완전히 저건 전쟁분위기야. 1685 의 퐁텐블루 칙령으로 낭트 칙령 취소 하는 것 부터 예견된겨 이미. 라안팔츠그라프 카를2세 의 죽음 은 좋은 루이 의 핑게고. 리유니온즈 로 계속 땅따먹기 하는거고 얜 이와중에. 투르크 때문에 동쪽은 바쁘고. 그러다 쾰른 대주교 죽고 반프랑스 주교는 당연한 황제진영의 인사야 저건.
제임스가 이 지점에서 너무나 몰랐던겨 상황을. 마침 아들도 낳았어. 일곱주교 가 감히 킹의 개인 양심의자유 선언을 거부해. 저건 반역이야 진짜 킹 입장에선. 저게 쉽게 보면 한 개인의 자유선언이지만 또 넓게 보면 주교들 입장에선 공식적인 킹덤의 종교 를 군주 가 거부한거거든. 제임스가 너무나 너무나 시대를 오해한거야. 좋게 말하면 앞서간거고. 영국이 저 국가 종교 를 앵글리칸 으로 하는걸 최근에야 취소한거야. 그런데 말이지, 지금 엘리자벳2세 퀸 은 앵글리칸 이야. 군주 는 지금 영국법에서도 앵글리칸 아니면 안돼 이게. 제임스2세 때문에 이래 저게.
왜 글로리어스 라 하는가 저걸.
그야말로 글로리, 로 꽉 찬겨 글로리어스 라는건. 신 과 비슷한 빛을 뿜는게 글로리 야.
After fourteen years of marriage and multiple miscarriages, in October it was announced the Queen was pregnant. Melfort immediately declared that it was a boy, while James sent his daughter Mary a letter urging her to convert to Catholicism; this convinced many he was seeking a Catholic heir, one way or the other.[54] It is suggested this was the key factor in William's decision to invade England.
첫부인 앤 하이드.랑 연애에 서로 기대고 키스하고, 카머너 인 하원 딸이랑 처음 결혼이야. 그래도 제임스는 애인이 많고 배스타드들이 많아 얘가. 이 부인이 34세 에 죽어 1671년. 여덟 자식 중에 살아남은게 퀸 이되는 마리 와 앤 이야. 나머지 여섯은 거의 낳자마자 죽어. 저때 다 저래 보면. 마지막 애 낳고 죽은겨 앓다가. 이 애도 죽고. 그리고 재혼한 여자가 모데나 의 마리아 야. 역시나 독실한 카톨릭 이야. 결혼후 14년이 제대로 자식이 없다가 임신하고 1688년 6월에 뽀이 가 나온겨.
이때 제임스가 , 윌리엄에 시집간 마리 에게 편지를 보내다, 너 카톨릭 으로 바꿔라. 이것은 그가 카톨릭 후계자 를 찾고 있었음을 확신시켰다. 방금 낳은 아들이든 딸이든 간에. 이것이 윌리엄 이 잉글랜드로 가게된 큰 이유 였다.
저 편지 로 제임스2세 의 마음을 읽었다는 거지. 이걸로 결심을 굳힌겨 오렌지는.
With a European war inevitable, securing or neutralising English resources was vital for both the Dutch and French. In April 1688, Louis XIV announced new tariffs on Dutch herring imports and plans to support the Royal Navy in the Channel. This was largely a gesture, as it required moving units from the Mediterranean, but viewing it as the prelude to a formal alliance between England and France, William and his supporters began to prepare a military intervention.[60] On the pretext of fighting French privateers, in July the States General approved recruiting an additional 9,000 sailors and construction of 21 new warships
잉글랜드 는 중립 을 선언했어 애초부터. 그런데 잰 분명히 프랑스와 손잡을꺼야. 이런 확신이 다들 드는겨. 루이가 4월에 네덜란드 청어 수입에 새 관세를 올려. 그리고 해협의 로얄네이비, 하면 무조건 잉글랜드야. 프랑스는 프렌치 네이비 라고 해줘. 이 해군은 프랑스가 리슐리외 부터야 시작해서 콜베르 가 킹덤 해군을 갖춘겨. 얘들이 9년전쟁 때 그나마 급속도로 해군력이 성장해. 프랑스가 잉글랜드 와 하나가 된겨 겉으로 보면.
네덜란드 입장에선, 잉글랜드 를 무조건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해. 쟤들이 십년전 보다 초강력해진걸 알아. 잉글랜드 의 중립 조차 도움이 안되는겨. 갖고 와야해 잉글랜드른 자기 편으로.
잉글랜드 는 마침 6월 말에 일곱주교 를 반역으로 재판걸어서 다행이 배심원들이 무죄 판결 냈어. 그렇지만 저놈 저거 정말 카톨릭 으로 가는건가? 마리에게 온 편지가 바로 잉글랜드 애들에게 읽혀 저게.
William laid careful plans over a number of months for an invasion, which he hoped to execute in September 1688. William would not invade England without assurances of English support, and so in April, he asked for a formal invitation to be issued by a group of leading English statesmen. Gilbert Burnet recorded a conversation at the end of April between William and Admiral Edward Russell:
So Russell put the Prince to explain himself what he intended to do. The Prince answered, that, if he was invited by some men of the best interest, and the most valued in the nation, who should both in their own name, and in the name of others who trusted them, invite him to come and rescue the nation and the religion, he believed he could be ready by the end of September to come over.
— Gilbert Burnet.
윌리엄 은, 잉글랜드 를 먼저 쳐들어가든 협상하든 자기편으로 만드는게 목숨줄이야. 9월에 실행하기로 한겨. 저게 몇달이 된겨 계획이. 제임스2세 를 몰아내자는게. 본격적인게 프랜시스 에드워드 아들 탄생이야. 이 전에도 이미 계획이 선겨 쟤가 아들을 낳든 말든 쫓아내자 라는게 잉글랜드 코트에서. 그런데 윌리엄은 4월에 잉글랜드 지원자들 없이는 절대 실행 할 수 없는겨. 윌리엄이 잉글리쉬 정치인들 리더그룹에서 발행 된 공식 초청장 을 요구해. 길버트 버넷 이 4월말 윌리엄과 에드워드 럿셀 의 대화를 기록했어.
럿셀은 오렌지에게 설명했다 하고자 하는 것들을. 오렌지는 답했다 가장 선한 인상을 받는 자들, 그 네이션에서 가장 고귀한 자들 중에서 초청을 해야 하고, 그들 자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들을 믿는 다른이들의 이름과 함께, 자기 오렌지를 초청하라고, 그래서 그 네이션 과 그 종교를 구하자고 했다. 그는 9월말 에는 건너갈 준비가 끝날 거라고.
저게 4월 이야. 이미 아들 낳기 전이고. 오렌지 가 원하는건 가장 영향력 있는 잉글랜드 인들의 서명 이 찍힌 초청장이야.
에드워드 럿셀 이 해군장교고 저때 35세야. 드라우터 가 솔베이 처들어올때 잉글랜드 해군이었어. 아빠가 제임스2세 배제 법안 낸 사람이고 휘그 의 선구자인겨 그래서. 이 사람형이 찰스2세 형제 암살음모 에 걸려 죽어. 바로 해군에서 팽당하고 윌리엄 간첩 을 한겨. 그래서 이 럿셀 이 윌리엄때 영국 해군 총 제독 이 돼. 저때는 걍 백수 간첩.
길버트 버넷 은 스콧 출생 솔즈베리 주교 인 대 학자 이고.
Only after the Prince of Wales had been born in June, however, and many suspected he was supposititious,[a] did the Immortal Seven (who consisted of one bishop and six nobles) decide to comply, with the letter to William dated 18 June (Julian calendar),[b] reaching him in The Hague on 30 June, and dispatched by Rear Admiral Herbert, disguised as a common sailor. The Seven consisted of Lord Shrewsbury, Lord Devonshire, Lord Danby, Lord Lumley, Henry Compton, Edward Russell, and Henry Sydney. The invitation declared:
그러다 진짜 두달 후에 아들이 나오고, 일곱주교 반란 사건 재판이 생기고. 6월18일 에 출발해서 헤이그 에 30일에 닿아. 율리우스 달력 . 아 저때 저놈의 율리우스 그레고리.
Thursday 4 October 1582 was followed by Friday 15 October 1582
그레고리 달력 이 10일 을 건너뛰는겨. 이게 1582년 10월 4일 다음날에 적용해서 10월 15일 이 돼. 저게 프로테스탄트 등장하고 나온 거고, 그래서 카톨릭 들만 저걸 쓴겨. 프로테스탄트 는 저걸 안써. 영국 이 저걸 안쓰다가 2백년 가까이 지나서야 써. 네덜란드 는 그레고리 력을 시작하자마자 쓴 유일한 프로테스탄트 진영이야 네이션 급의. 다들 18세기에 저걸 쓰는겨. 영국사 는 저때까지는 모두 율리우스 력이고. 저게 달력 달리 쓰는 애들 끼리 만났을때 그래서 두개 달력을 동시 표기를 해.
the Immortal Seven. 저때 간 잉글랜드 귀족들 을 임모어털 세븐. 불멸의 세븐. 이라고 해. 주교 한명 귀족 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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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y in 1688, a pamphlet titled The Letter circulated in England, composed by Grand Pensionary Gaspar Fagel, who handled the Dutch foreign affairs.[56] This claimed to be a response to arguments in support of repeal by James Stewart; a Presbyterian radical and exile, in 1692 he was appointed Lord Advocate by William and was almost certainly a double agent.[57] Fagel guaranteed freedom of worship but retained the Test Acts, which many Dissenters viewed as essential and undercut James, who offered tolerance but only in return for repeal.[58] English supporters provided William with detailed information on public opinion and developments, very little of which was intercepted.
저때 잉글랜드 분위기가, 제임스2세가 가장 문제가 된게, 혼자 양심의 자유 선언 을 1687년 2월 에 스콧에서 발표하고 적용되고 4월에 잉글랜드 에 적용이 되는겨. 이건 제임스2세 개인 혼자 의 선언이야. 종교의 자유 여. 지금 사가에선 이걸 획기적으로 보는거고. 사람들은 제임스가 이걸로 본격적인 카톨릭 으로 바꾸는건가 공포를 느낀겨 또한. 몰라 이걸. 자기 딸 매리 한테 너 카톨릭으로 바꾸라는 것도 개인 만의 문제인지 앞으로 확대하려 한건지 몰라 이건. 대부분 그리 짐작했고 이후도 그리 생각할 뿐이고, 헌데 킹 이 네이션 전체 의 정체성을 벗어난거야 저건. 저 당시 저건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가 없던거여. 절대적으로. 아무리 개인 만의 문제라고 쉴드를 쳤어도. 이 집단 정체성 이란 문제 에 대해 고민한 글들이 없어 보이는데. 참 중요한 테마야 이 내셔널리티 란건.
제임스2세가 저 문제가 10년 이상 된겨. 저 글을 보면, 이미 1688년 초에, 더 레터, 라는 팸플릿 이 돌기 시작해 전단지가, 이건 네덜란드 사람 하스파르 파헬. 가스파르 페이걸.이 작성해서 잉글랜드에 뿌려진건데, 이사람도 드비트 코트 의 인간이었다가 그랜드펜션어리로 승격 된거거든. 오렌지 가 그냥 쓴거야. 오렌지 의 저당시 1688 의 네덜란드 컨택포인트야.
제임스 스튜어트 가 스콧 의 디센터고 반 제임스고, 이사람의 주장에 대한 답 형식이 잉글랜드에 돈건데. 신앙의 자유 를 주장해 저기서. 이미 찰스2세 가 죽고 신앙의 자유 가 자리잡은겨. 이미 디쎈터들이 잉글랜드 에서는 차별이 없는겨 이게. 그런데 디쎈터 들 조차 테스트 액트. 는 환영해. 이 테스트 액트 라는게 1673년에 만들어진거고 2년 전에 코어퍼레이션 액트. 에 이은건데, 이게 모두 공직 에 들어설때 선서 하는겨. 이건 말야, 유카리스트 의 지저스의 피와 살 을 거부하는 선언이야. 이건 로마카톨릭 을 거부하는겨. 루터 는 이땅에 없고 루터 도 당연히 거부되는겨 섬에선.
저건 카톨릭 에 대한 반대야. 팔리어먼트 가 만들어서 찰스2세가 받아들인거고. 헌데 이걸 제임스2세 가 동생시절에 거부하는겨. 그러다가 10년 만에 혼자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를 선언해 버린거야.
완전히 외톨이야 제임스는. 잉글랜드 의 윌리엄파들이 이런 상황들을 계속 네덜란드 윌리엄에게 상세하게 전달하는거고, 이게 전혀 중간에 캐치되서 제임스 에게 보고가 안된겨. 완전히 혼자 따로논거야 제임스는. 그러다가 불멸의 세븐 이 넘어간거야.
On 30 September/10 October (Julian/Gregorian calendars) William issued the Declaration of The Hague (actually written by Fagel), of which 60,000 copies of the English translation by Gilbert Burnet were distributed after the landing in England,[96][97] in which he assured that his only aim was to maintain the Protestant religion, install a free parliament and investigate the legitimacy of the Prince of Wales. He would respect the position of James. William declared:
It is both certain and evident to all men, that the public peace and happiness of any state or kingdom cannot be preserved, where the Laws, Liberties, and Customs, established by the lawful authority in it, are openly transgressed and annulled; more especially where the alteration of Religion is endeavoured, and that a religion, which is contrary to law, is endeavoured to be introduced; upon which those who are most immediately concerned in it are indispensably bound to endeavour to preserve and maintain the established Laws, Liberties and customs, and, above all, the Religion and Worship of God, that is established among them; and to take such an effectual care, that the inhabitants of the said state or kingdom may neither be deprived of their Religion, nor of their Civil Rights.
9월 30일 에 오렌지 윌리엄이, 헤이그의 선언 을 발표해. 실재로는 파헬. 페이걸 이 쓴거고. 이게 길버트 버넷 이 영어번역해서 6만장을 잉글랜드 에 뿌린겨 오렌지 가 잉글랜드에 도착한 후에. 자기의 유일한 목표 는 프로테스탄트 를 유지하는 것이고, 팔리어먼트의 자유, 웨일즈 프린스 의 적법성 을 문제제기 하기 위함이야. 갓 태어난 아이 야. 루머 가 돈 게 제임스 와 모데나의마리 의 친자식이 아니란겨. 뱃속에서 사산이 되었고 쟨 몰래 들어온 아이란거야 제임스가 카톨릭 승계 하려고 만든. 킹 제임스 가 그래서 증인들을 내세우고 친자식이라고 주장을 해. 더하여 쟨 두번째 부인의 자식이고 첫번째 부인 의 자식인 마리 나 앤 이 승계해야 한다는거고. 이런 적법성의 문제야.
모든 이들에게 분명하고 명백하다, 어떤 스테이트 나 킹덤의 공공의평화와행복 은 보존될 수 없다는 것은, 법들, 리버티들, 관습들은 합법적인 권위로 세워진건데 네이션 안에서, 이것들이 공개적으로 침해되고 무시되는 곳에선.
더 상세하게 말한다면 신아의 (전혀다른) 변형 이 (진지하게) 만들어지는 곳, 다시말해서 신앙이 법에 반대되어서 들어오게 되는 것. (여기서는 법들 리버티들 관습들이 침해 무시 되는겨). 그런 자리에선 거기서 가장 즉각적으로 관계된 이들은 무조건적으로 지키고 유지하려고 한다 그 정착된 법들, 자유들 그리고 관습들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앙 과 신을경배 함을. 이 신앙이란건 그들가운데에 정착된 것이고 그래서 실재적인 캐어 를 해야 하는것이고, 말하여진 스테이트 나 킹덤의 거주민들은 그들의 신앙 도, 그들의 시민의 올바름들도 빼앗길 수가 없다.
가장 문제가 신앙이고, 카톨릭에 대한 반감이야. 제임스 는 카톨릭 으로 다시 올터레이션. 바꿔서, 기존의 법들과 자유들 과 관습들 을 무시한다는겨.
리버티. 이게 말이야 쟤들의 핵심이고 항상 따라붙는 말이야.
마그나 카르타. 도 이놈의 리버티야. 제 1항이, 교회의 프리덤. 이을 보장했다 는 거야. 이 프리덤. 리버티 는 유럽 애들의 유전자야 이게.
이전 헤로도토스 역사 의 아테나이 가 말도안되는규모 의 페르시아 에 맞서는 유일한 이유야. 리버티 리버티. 당신 은 리버티. 엘레우테이아 가 먼지 모르지? 리버티 로 안 살아봐서? 그런 나라에선 대갈을 땅에 받고 절을 한다메? 나를 차라리 죽여라 죽여.
쟤들은 아테나이 에서도, 시민을 남자는 폴리테스 여자는 폴리티스 이고 로마는 키비스 라고 하지만, 이런 단어 보다는 프리맨 이라는 자유인 을 써. 고대 아테네 비극들도 시민을 표현하는 말은 폴리테스 가 아녀 엘레우테이아 여. 자유인 이야 자유인.
Prohibited anyone from levying aid on their free men.
어느누구도 영지의 자유인들 프리멘 에게 에이드 를 부과 할 수 없어. 마그나카르타 야. 에이드 란건 중세에 부역 이고 공물 이고 의무야. 이런거 할 수 없어. 프리멘 들이란 시민들은 계약에 의한 세금 만 내면 되는겨 영주에게.
어떻게 조선 식으로 공짜로 성벽을 가서 쌓는 부역질을 하냐. 태종 상왕 때 한양 도성 쌓으러 조선팔도에서 모두 가. 자기돈 들고 가. 백여명이 굶어죽어. 실록 기록이야. 밥도 안줘 이들. 이런건 일본 역사에서도 없어
부역 이란게 없어. 군역 이란게 없어. 이런게 오직 조선 과 중국 에만 있던 역사여.
유럽사 에 군역 이란건 없어. 이전 썰. 이런 주장 하는 유럽사가들이 있어. 개소리야. 쟤들은 용병 쓰는 애들일 뿐이야. 저런게 주제가 아냐 일부영지는 했을 지언정.
프리멘 이야 프리멘. 자유인. 자유.
법들과 자유들. 이게 얘들이 항상 갖고 가는 두 단어야. 권리청원 이라는 퍼티션 도 리버티즈 앤드 라이트스 야. 라이트스 라는 옮음들은 리버티즈 라는 자유들 을 바닥에 깐 옳음들이고, 옳음들이란 라이트 는 머여?. 로 로 법이야 법. 로 law 와 라이트 right 는 같은 말이고. 이건 자유 리버티 프리 와 붙어서 쓰이는거고, 뒤의 커스텀즈 란건 우리는이런법들자유들로살아온그리스도관습의 인간들 이란겨. 저 바닥엔 프리덤 리버티 야.
제임스 의 죄는 프리덤 리버티 를 갖은 인해비턴트. 거주민들 이라는 프리멘 에게서 신앙과 시빌라이트스. 옳음들 즉 법들 을 빼앗았다는겨.
.쟤들은 전혀 달라 이 인간의 역사가.
조선 을 살고 중국몽을 꿈꾸는 이스턴에선 상상을 못해. 저 격차가 큰겨 이게. 이스턴은 사람 사는게 아냐 이게. 지능이 떨어져. 쟤들에 비하면 지능이 없는겨 지금도. 이 지능없는 미개한 들이 조선 민족 해대면서 적폐놀이를 여전히 하는거거든.
On 16/26 October William boarded his ship, the Den Briel (Brill in English). His standard was hoisted, displaying the arms of Nassau quartered with those of England. The words Pro Religione et Libertate ("For Liberty and [the Protestant] Religion"), the slogan of William's ancestor William the Silent while leading the Dutch Revolt against Catholic Spain, were shown next to the House of Orange's motto, Je maintiendrai ("I will maintain").[103] William's fleet, which with about 40,000 men aboard was roughly twice the size of the Spanish Armada – and assembled in a tenth of the time – consisted of 463 ships.[101] Among these were 49 warships of more than twenty cannon (eight could count as third rates of 60–68 cannon, nine were frigates), 28 galliots, nine fireships, 76 fluyts to carry the soldiers, 120 small transports to carry five thousand horses, about seventy supply vessels and sixty fishing vessels serving as landing craft.[104][105] Most of the warships had been provided by the Admiralty of Amsterdam. On 19/29 October William's fleet departed from Hellevoetsluis. The fleet was approximately halfway between the Republic and England when the wind changed to the northwest and a gale scattered the fleet, with the Brill returning to Hellevoetsluis on 21/31 October. Despite suffering from sea-sickness William refused to go ashore and the fleet reassembled, having lost only one ship that grounded,[106] though about a thousand crippled horses had been thrown into the sea.[107] Press reports were released that deliberately exaggerated the damage and claimed the expedition would be postponed till the spring.[108] English naval command now considered to try blockading Hellevoetsluis but decided against it because it was feared that the English fleet would founder on the Dutch coast, a dangerous lee shore for a blocking force, by the stormy weather
10월 16일 에 승선을 해. 기함의 휘장 문구가, 침묵 오렌지 의 슬로건, 프로 헬리기오네 에트 리베르타테. 신앙과 자유 를 위해.
이때 4만명이 가. 총 배들이 463척. 이중 전함들이 49척인데 30개 이상의 대포들이 각각 장착된 전함이고, 8척은 60개 이상의 대포들이 장착된거고 아홉은 대포가 적은 프리깃 빠른배들 이고. 28 갤리옷. 9 파이어쉽. 76 플룻 선. 플룻선 이란건 네덜란드의 화물선 이야. 병력들 수송하는거고. 120 척의 화물선들은 5천마리 기병대 말 수송.
대부대가 이동하는겨 저게. 그래서 저걸. 또한 인베이젼. invasion. 어쨌거나 침입한겨 ㅋㅋㅋ. 대부분은 암스테르담 애드머럴리티 에서 동원한것이고.
Officially, the invasion was a private affair, the States General allowing William use of the Dutch army and fleet.[74] For propaganda purposes, English admiral Arthur Herbert was temporarily made Lieutenant-Admiral-General and nominal commander of the 53 warships that served as escorts. In reality, operational control was exercised by Lieutenant-Admiral Cornelis Evertsen the Youngest and Vice-Admiral Philips van Almonde.[85] William, accompanied by Willem Bastiaensz Schepers, the Rotterdam shipping magnate who organised the transport fleet, travelled on board the newly built frigate Den Briel, rather than one of the larger vessels
모양새를 잘 갖춰야 해. 자기들은 침입 하는게 아냐. 그래서 잉글랜드 제독 아서 허버트 가 최고 자리 를 맡은겨. 53개 전함을 지휘하는. 실재로는 네덜란드 에서 지휘 하고. 오렌지 가 타는 배도 전함 이니 큰 배 가 아냐. 대포 도 덜 장착된 프리깃 이고 여행용이야. 일부러 저런 외양을 갖추는겨.
10월 19일 에 헬레푸츨뢰스 에서 출항 해서 바람 북서풍이 불어서 다시 돌아왔다가 다시 가. 막 흩어진겨 바다에서, 봄으로 마룰까요 해다가 다시 가,
On 3/13 November the invasion fleet entered the English Channel through the Strait of Dover in an enormous square formation, 25 ships deep, the right and left of the fleet saluting Dover and Calais simultaneously, to show off its size. The troops were lined up on deck, firing musket volleys, with full colours flying and the military bands playing. Rapin de Thoyras, who was on board one of the ships, described it as the most magnificent and affecting spectacle that was ever seen by human eyes. William intended to land at Torbay but due to fog the fleet sailed past it by mistake. The wind made a return impossible and Plymouth was unsuitable as it had a garrison. At this point, with the English fleet in pursuit, Russell told Burnet: "You may go to prayers, Doctor. All is over". At that moment however the wind changed and the fog lifted, enabling the fleet to sail into Torbay, near Brixham, Devon. William came ashore on 5/15 November
다시 출항해 11월 1일에. 그리고 3일 에 도버 해협 지나서 토베이 Trbay 에서 내리려 한겨. 안개와 바람 때문에 지나치고. 플리머쓰 로 가다간 전쟁 날 판이야. 이때 잉글랜드 함대가 추격을 해. 럿셀이 버넷 에게 말했다, 기도합시다, 모든 것이 끝났소 ㅋㅋㅋ. 이때 바람이 바뀌고 안개도 걷히고 토베이로 가서 브릭스햄 해변에 도착 11월 5일.
그리고 이틀에 걸쳐서 육지에 내리는거야.
The Dutch army was composed mostly of foreign mercenaries; there were Dutch, Scots, English, German, Swiss, and Swedish regiments, even Laplanders[101] as well as "200 Blacks brought from the Plantations of the Netherlands in America",[116] thus from the colony of Surinam. Many of the mercenaries were Catholic
저때 네덜란드 부대 는, 대부분 외국 용병들이다. 더치 스콧 잉글리쉬 게르만 스위스 스위든 부대들. 랍란더스 는 사미족 이야 예전 러시아 이야기할 때 썰했던 잉글랜드인들이 처음 만나 알게된 사미어. 200명의 흑인들도 아메리카에서 데려왔어 ㅋㅋㅋ. 헌데 대부분은 카톨릭 이야 또.
하튼 쟤들 저런게 참 재밌는겨 전혀 달라 이게. 돈도 미리 선불로 다 지급하고, 윌리엄이 절대 민간인 대상 어떤 짓도 못하게 지시를 내려. 자기들은 민심 잃으면 끝나는거고 전쟁 하러 온게 아냐.
도착을 서쪽 데본의 브릭스햄 에 해서 동진 하는겨. 11월 1일에 재출발해서 5일 에 닿고 칠팔일에 다 내려서 11월 20일에 윈캔톤, 소머셋.에서 첫 전투 자잘한게 벌어져. 이어 솔즈베리 는 바로 문열고, 이전에 저 왼쪽 플리머뜨 해변도 윌리엄 편이 돼. 걍 전투 없이 무혈입성 하는겨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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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at the same time ordered all English troops to depart from the capital, while his forces entered on 17 December; no local forces were allowed within a twenty-mile radius until the spring of 1690. Already the English navy had declared for William. James, by his own choice, went under Dutch protective guard to Rochester in Kent on 18 December, just as William entered London, cheered by crowds dressed in orange ribbons or waving, lavishly distributed, oranges.[132] The Dutch officers had been ordered that "if he [James] wanted to leave, they should not prevent him, but allow him to gently slip through".[133] James then left for France on 23 December after having received a request from his wife to join her, even though his followers urged him to stay. The lax guard on James and the decision to allow him so near the coast indicate that William may have hoped that a successful flight would avoid the difficulty of deciding what to do with him, especially with the memory of the execution of Charles I still strong. By fleeing, James ultimately helped resolve the awkward question of whether he was still the legal king or not, having created according to many a situation of interregnum.
윌리엄은 모든 잉글리쉬 군대는 수도 런던을 떠나라, 그의 부대는 12월 17일에 들어갔다. 어떤 로칼의 병력도 반경 20마일 안으로 들어오는걸 허락치 않다 1690년 봄 까지. 이미 잉글리쉬 해군은 윌리엄 지지 선언. 제임스는 자기 선택대로 네덜란드 보호 아래 캔트의 로체스터 에 닿다 12월 18일, 윌리엄이 런던 입성할때, 이때 군중들은 오렌지 리본들로 치장하거나 흔들면서 오렌지를 환영하다. 네덜란드 부대들은 명령받다, 제임스가 떠나길 원하면 그를 막지 말고 안전하게 가도록 둬라. 제임스는 12월 23일 프랑스로 떠났다 부인의 요청을 받고, 제임스 주위는 가지 말라고 독촉하다. 그런데 제임스2세 는 아빠 찰스1세 의 목짤린 경험이 있거든. 가야해.
The name "Convention" was chosen because only the king could call a Parliament, although as William had been appointed de facto regent by the peers the convention could be argued to be, strictly speaking, a lawful Parliament.
그리고 새 의회가 소집돼. 선거하고 모이는겨. 이때 의 의회가 콘벤션 이야. 원래 의회 란건 킹 만이 소집할 수 있어. 콘벤션 이란건 모두 모인겨. 킹이 소집한게 아냐. 킹이 없이 선출된겨 이건 그래서 자기들이 그냥 모이다 콘벤션 이야. 이건 시작부터가 법적 논쟁이 있는겨, 윌리엄 이 실재론 리젠트 라는 권력자 지만 법적으론 아녀. 엄밀히 말하면 저건 불법 일 수가 있어.
그리고나서, 나온게 권리장전 이라고 번역된 빌 오브 라이트스. 야 이건 1689 에 초안이 나온겨 시작도. 그래서 1688 이 아냐 1689 야 엄밀히는
The proposal to draw up a statement of rights and liberties and James's violation of them was first made on 29 January 1689 in the House of Commons, with members arguing that the House "cannot answer it to the nation or Prince of Orange till we declare what are the rights invaded" and that William "cannot take it ill if we make conditions to secure ourselves for the future" in order to "do justice to those who sent us hither". On 2 February a committee specially convened reported to the Commons 23 Heads of Grievances, which the Commons approved and added some of their own. However, on 4 February the Commons decided to instruct the committee to differentiate between "such of the general heads, as are introductory of new laws, from those that are declaratory of ancient rights". On 7 February the Commons approved this revised Declaration of Right, and on 8 February instructed the committee to put into a single text the Declaration (with the heads which were "introductory of new laws" removed), the resolution of 28 January and the Lords' proposal for a revised oath of allegiance. It passed the Commons without division
쟤들은, 라이트스 앤드 리버티즈. 야. 이게 시작부터 지금도 이건 항상 붙어 다니는 말이야. 그래서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 이 있는겨. 이 자유 라는 건 인간의 궁극적인 오브젝트 고 리앨리티 야. 이걸 조선 들이 가장 증오 하는겨 자유 라는 말을 그래서. 얘들은 끔찍히 싫어해 이 자유 라는 말을 ㅋㅋㅋ. 자유 라는 말이 곧 지워질거야 이 조선민국에서. 보수 란 애들도 이 자유 라는 말이 먼말인지 몰라. 일본들도 엉엉 울었어 이 자유 라는 단어 를 알고선. 조선 구한말 때 유자들이 가장 증오하는게 저 자유야. 대체 자유 가 말이 되니. 자유는 죽음으로 가는길이야. 저런 말을 한의학 배웠다고 인용하며 말하는겨 21세기에 ㅋㅋㅋ. 참 한심한 조선 의 재현이지 저게. 저런 애들이 이땅에선 석학이고 선생이야.
저건 일종의 쿠데타 여. 걍 명백히도 저건 쿠데타여 ㅋㅋㅋ. 포장을 해야해. 제대로 된 명분으로. 가만보니까 별 시안한 일이 생긴겨 저게. 1월 29일 에야 초안을 만든겨. 하원에서. 자기들 네이션 이나 오렌지 윌리엄에게 먼가 대답을 해야해. 먼가 시작을 해야해 지금 이 사태에 대해서. 이런 일이 왜 생겼나 를 네이션 과 윌리엄 에게 대답을 해야해. 이걸 하원 이 하는겨 카머너 들이. 로어드 라는 상원 의 모임들이 대표성이 약한겨 이게 저런걸 봐도. 이 상원 이란건 모든 유럽이 갖고 있는겨 이게. 걍 킹 의 자문단 들이 상원이야. 폴란드의 세임. 스위든의 릭스닥 이 의회 라지만 이건 걍 귀족들의 모임체 일 뿐이야 이게. 영국사가 이게 절대적으로 다른겨.
이걸 먼저 해야 납득이 되고, 그래서 이걸 발판으로 미래 로 갈 수가 있어. 먼저 이걸 정리를 해야해. 왜 이런일이 발생했나. 왜 라는 문제 의 원인들이 나오면, 미래에 대한 개선안 들이 그대로 나오는겨. 2월 7일 에 수정해서 8일에, 제목을 달은겨, 여기에 새 법들을 도입 이란 문구는 삭제를 하고. 이게 만장일치로 통과가 돼.
On 13 February the clerk of the House of Lords read the Declaration of Right, and the Marquess of Halifax, in the name of all the estates of the realm, asked William and Mary to accept the throne. William replied for his wife and himself: "We thankfully accept what you have offered us".
2월 13일 에, 상원의 클럭. 기록관이 이걸 읽는겨. 디클러레이션 오브 라이트. 라이트 를 선언 하는겨. 옳음 이야 옳음. 권리 가 아녀 절대. 저걸 권리 라고 번역하면 안돼. 말이 되냐 먼놈의 권리 를 선언하고 먼놈의 권리들의 나열이야. 옳음 의 내용은 안에 권리 인 동시에 의무 도 반 이상 포함이 된겨 저 라이트 라는 말에는. 라이트 는 법 이야 법. 법 이란건 옳다는 직선 을 전제로 한거고. 자기들이 라이트 옳다는겨. 권리와 자유 가 아녀. 이런식의 번역으로 우리가 전혀 웨스턴 이야기 가 번역이 안되는겨. 별 시안한 문장들이야 유럽사에 유럽 리터러쳐 가. 저런게 레미제라블 도 저런 문구들 태반이야 리터러쳐 번역한게. 허섭한 번역들.
하원 이 하고 이걸 상원 이 허락해서 킹에 전달하는겨 모든게. 상원 은 걍 통로이자 공식적인 의사결정집단 이야. 행위 를 이 상원 이 하는겨 그래서. 상원의 기록관 클럭 이 읽는거야. 그리고 나서 할리팩스 후작 이, 킹덤의 모든 영지들의 이름으로, 윌리엄 과 마리 에게 요청하는겨, 권좌 를 받아 달라고. 윌리엄이 답했다 부인과 자신의 대표로, 우리는 감사하면서 받는다 당신이 우리에게 제시한 것을.
할리팩스 후작도 상원 이야. 하원이 감히 못해 저런것도. 상원 에서 읽고 상원에서 킹후보에게 요청하는겨.
- the pretended power of suspending the laws and dispensing with[nb 3] laws by regal authority without consent of Parliament is illegal;
- the commission for ecclesiastical causes is illegal;
- levying taxes without grant of Parliament is illegal;
- it is the right of the subjects to petition the king, and prosecutions for such petitioning are illegal;
- keeping a standing army in time of peace, unless it be with consent of Parliament, is against law;[nb 4]
- Protestants may have arms for their defence suitable to their conditions and as allowed by law;
- election of members of Parliament ought to be free;
- the freedom of speech and debates or proceedings in Parliament ought not to be impeached or questioned in any court or place out of Parliament;
- excessive bail ought not to be required, nor excessive fines imposed, nor cruel and unusual punishments inflicted;
- jurors in trials for high treason ought to be freeholders;
- promises of fines and forfeitures before conviction are illegal and void;
- for redress of all grievances, and for the amending, strengthening and preserving of the laws, Parliaments ought to be held frequently.
의회의 동의없이 리걸 오떠리티, 권력 즉 킹의 권한으로, 법들을 정지하거나 행사하는 것은, 불법이다.
제임스가 만든 교회커미션 이란 앵글리칸 위의 조직은 불법이다
의회의 허락없이 세금 부여는 불법이다
킹에게 퍼티션, 법적요구 하는 것은 서브젝트들 속한 시민들의 옳음이다. 그런 퍼티션을 탄압하는건 불법이다.
조선민국에서 킹 한테 이래라 저래라 법적으로 니 문제 많다 라고 하면 잡아가 ㅋㅋㅋ. 북조선에서 정은이 한테 저러면 죽어. 시진핑한테 저러면 사라져. 저런 들이 지들 중국몽이고 시진핑은 위대하대 ㅋㅋㅋ.
평화시에 정규군 유지는, 의회 동의 없이는, 법에 반한다.
프로테스탄트 들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기들을 취할 수 있다, 그들의 조건들에 맞는, 법이 허락하는 만큼. 쟤들이 그래서 총기 지금도 갖고 있는겨 미국애들은.
의회의 의원 선거는 프리 해야한다
의회 에서 발언과 토론과 처리 중의 자유 는, 탄핵도 심문도 안된다, 어떤 코트 안에서도, 의회 밖에서도.
과다한 보석금, 과다한 벌금 은 안된다. 잔인하고 특이한 형벌도 안된다.
반역죄 에 대한 재판의 배심원들은 프리홀더들이어야 한다.
판결 전에 벌금이나 형벌을 제시하는 건 불법이고 무효다.
잘못된 걸 고치고, 법들의 수정과 강화와 보존을 위해선 의회는 자주 소집되어야 한다.
저게 결론으로 내놓은 라이트 들이야. 이 앞에 제임스2세가 저 각각에 대해 어떻게 잘못했는가를 일일이 썰한겨. 이전 반역죄 사례 가 있었는데 거기 배심원이 부적격한 자들 이었다 프리홀더 가 아니였다 하면서 등등 해서 이런일들이 벌어졌었다. 다음으로 각각의 것들은, 무효다 불법이다.
마지막 을 위한겨 저게. 의회 소집 은 자주 열려야 한다. 요것만 긍정형 문구거든. 위의 불법 이다 란건 반대로 그래서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는거고. 저것도 많은부분 불법인건 의회의 동의 없음. 이야. 의회 가 졸 중요해진겨 이게.
저걸 윌리엄 부부 앞에서 읽는거야.
저건 윌리엄 들으라고 읽는거고, 자기들 네이션 의 서브젝트들 에게 우리는이런이유로제임스를내리고 윌리엄을 데려왔다 라며 답하는거야.
저게 그대로 액트 가 돼 잉글랜드 에서는. 스콧 도 바로 자기들 액트의 클레임을 넣어 저걸. 저걸로 브리튼 유니온 할때 유니온 액트로 넣는거고 조항들을.
웃긴게 저때 윌리엄 의 입장이야. 윌리엄 이 어찌보면 저게 꼭두각시로 보이거든. 모든건 의회야. 함부로 못해 저 말들 보면. 그런데 윌리엄이 어릴때 라이덴 대학 서 공부하던 애고 마던 을 익힌애고 네덜란드 라는게 레겐텐 이전에 프룻샤프 vroedschap 라는 도시의원들 의 땅이었어. 저런 역사가 자유의 프리지아 로 따지면 저런 합의제는 프리지아 가 더 빨라. 네덜란드 는 중세 를 겪지 않은 애들이야 중세 봉건주의가 아녀 이 네덜란드 땅은. 카를 5세 때 겨우 반란진압하면서 사오십년 만 합스부르크 의 중세 로 들어갔다가 바로 나온겨 얘들은.
저걸 걍 당연스레 감사하게 받는겨 저거.
저 당시는 여전히 대륙은 9년 전쟁 초기에 막 신성로마 전쟁선포 하고 영주들 다 모이고, 루이는 오메 이거 길어지겄네 라인란트 저거 불태워야겠어 생각하던 때야.
잉글랜드 가 저렇게 까지 될 줄은 생각도 못한겨 루이는. 오히려 내전 이 일어날 줄 만 안거고 어차피 자기는 대륙만 조지면서 잉글랜드 가 신성로마 편만 아니면 되는겨 이 얍삽한 루이는. 제임스에게 용병 구할 돈 몇푼만 보낸거고. 헌데 저리 쉽게 오렌지가 오르고 제임스가 도망올 줄은 전혀 전혀 생각을 못한겨.
네덜란드는 일차적으로 잉글랜드를 자기편 으로 만든 것 만으로 성공한거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암스테르담 이 버려지고 런던으로 사람들이 모이는겨. 금융의 중심이 이때 런던 이 된거야. 자기들 상징 이 런던에 있어. 이걸 내부자들은 안거야 우리 오렌지가 저기가서 킹이 되면 네덜란드가 저무는건데. 이 우려 대로 현실이 된겨 네덜란드는. 여기에 잉글랜드의 국제정치에 네덜란드 자원이 쓰이고. 이래저래 이때부터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영국에 비해 뒤떨어지는겨.
저들의 라이트 와 리버티 는 저걸로 영국에서 다시 재확인 도장 받으면서 가는겨. 마그나카르타 의 연장이야 5백년 가까이 된 저때까지의. 저게 이어 미국으로 간거고. 미국 헌법이 나오고 바로 수정헌법이 나올때 미국의 빌 오브 라이트스 가 들어가는거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가 저기에서 들어가는겨.
저게 차원이 다른겨 유럽 안에서 조차. 저 영국이. 미국은 정확하게 영국의 카피본이야.
저걸 프랑스애들이 어설프게 갑자기 따라한게 1789 프랑스 대학살 이야. 이걸 혁명 포장질 하면서 갈키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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