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na is remembered as one of the most learned women of the 17th century.[8] She was fond of books, manuscripts, paintings, and sculptures. With her interest in religion, philosophy, mathematics and alchemy, she attracted many scientists to Stockholm, wanting the city to become the "Athens of the North". She caused a scandal when she decided not to marry,[9] and in 1654 when she abdicated her throne and converted to Roman Catholicism.
크리스티나 는 17세기에 가장 많이 배운 여인들중 하나로 기억된다. 책들, 원고들, 그림들, 조각들 을 좋아했다. 종교 철학 수학 연금술에 대한 관심으로 그녀는 많은 학자들을 스톡홀롬에 초대했다, 왜냐하면, 그 도시를 북쪽의 아테네.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일로 논란을 일으켰다. 성인되서 10년 후 1654년 에 자기 자리를 내려오고 로마 카톨릭 으로 전향했다.
많이 배운 여자들 중 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 지식인중에서 최고 중 하나여 이여잔. 이여자는 자기 나라를 고대의 아테네 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야. 르네상스로 넘실대는 나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고, 전쟁을 하지말고 인문학 자연과학을 키우고 싶었을 뿐이야. 이게 당대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뿐이고, 모든 비난을 다 감수하고, 유럽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해결사 노릇도 하다가 로마로 가서 여생을 보내고 죽은건데.
스위든 역사에서 가장 저평가 되고, 가장 오역되는 사람이 이 드로트닝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 여왕 이야.
Christina's financial extravagance brought the state to the verge of bankruptcy, and the financial difficulties caused public unrest after ten years of ruling. At the age of 28, the "Minerva of the North" relinquished the throne to her cousin and moved to Rome.
유럽 근대사 의 오역질은 정말 엄청난겨 이게. 이게 소위 유럽 지금 좌파 가 된거걸랑. 유럽 중세가 암흑기 였다 라는걸 심은 애들이야. 유럽 중세가 암흑이었다 라는 애들은 반드시 꼭 지들 나라 민족은 위대하다 는 들이 구구퍼여. ㅋㅋㅋ. 연쇄살인범들에게 조오온나게 집단 강간 당하고 혹사 당하고 끔찍하게 죽은 영혼들의 자식들이 자기 조상들을 연쇄살인하며 학살한 들을 위대하다며 떠받느는겨 저게. 기가막힌거야 저건.
육이오때 저 인민군 들이 내려와서 해댄 양민학살이 수십만이야. 물론 저런 양민학살을 국군을 부정하는 들은 안믿어. 한국 국군들이 양민학살을 해대고, 미군들이 학살을 해댄거지, 우리 위대한 잘생긴 현빈 모양 ㅋㅋㅋ 아 어떻게 저따위 드라마를 만드냐 그래, 저런거에 또 환장해대는 년들 보면 참 기가막힌건데 진짜 이 조선들의 나라는. 지들을 강간해댄 오백년을 위대하다미 민족놀이 해대는 들의 땅이니 머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똑같다미 인민군 과 국군 애들 이 저때 한 짓은. 이들은 반드시 인민군 은 편파적으로 나쁘면 안되는 애들이걸랑.
인민군 애들은, 패죽여 패죽여 양민들을. 총으로 제발 한방에 쏴 죽여 주세요. 걍 패죽여 패죽여.
당시 양민분들 살아남은 어르신 들의 증인이여. 인민군 들을 보면 벌벌 떨었어 그놈의 인민재판 당할때.
물론 니덜은 안믿겄지 당연히. 위대한 우리 북조선 님들이 그랬을리가, 그랬으면 당연히 적폐 니까 그리 패죽인거고요. 위대한 조선을 배신한 적폐 친일 들이니까 패죽여도 되는거요 그건.
저게 지금 선거판에, 상대가 적폐고 친일이라며 이 조선들이 인민재판에 환장해서 몰려다니면서 댓글로 정의놀이 해대고 저 들이. 지들 을 오백년을 강간해대고 오백년을 양반 들의 수청을 들면서 노예로 산 년놈들이 조선 위대해 해대면서 저 짓을 하는겨 저게. 길거리는 똥천지고. 건물들은 다 초가집에 공동묘지 그 자체고. 중앙 코트는 여자 사냥질 해댄 기생청을 둬서 떼씹하며 놀아나고 오백년 오백년 내내. 저 경복궁이 저게 마광수 말대로 걍 정액 덩어리지 저게. 아뉴 전세계가 다 했슈. 왜 우리 위대한 조선만 그리 욕질해대유. 저 크리스티나 도 말이야. 코트에서 연극 감독들 초빙하고 배우들 초대해서 극장을 만들어서 거기서 귀족들이 배우로 연기를 하는겨 저게 같이. 유럽 중세가 코트에서 서로 연극 하고 자기도 배우하고 구경하면서 즐기는겨 유럽 코트애들의 문화가. 어떻게 여자 들 사냥질 해대면서 기생청을 중앙에서 두고 무기들을 만들어 관리를 해대고, 첩놀이질에, 중국들에 접대부 로 들이고, 명나라 사신들오면 접대 시키고.
저게 나라냐 저게. 저게 짐승들의 나라도 아니고. 저게 저게 먼놈의 사는 땅이냐. 아프리카 들도 그따위 짓은 안해
저런 조선 조선 하며 쳐내려온 인민군 들이 인민재판 해대면서 패죽여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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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저런 것들 속에서 노나는게 참 웃긴거야 저게.
그래서 저것들이, 저 정의놀이 하는 심리를 읽으면 재밌어 저게.
선악이란 상대적이야. 이건 니체가 머 Gott ist tot. Kritik der Moral. 얘 말로, 고트 이스트 토트. 신은 죽었다. 크리틱 데어 모랄. 모랄에 대한 비판. 해대면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의 이데아 와 파이널 코즈 를 완벽하게 부정하는겨. 이건 머 별게 없어. 데카르트 스피노자 이야기여 이건. 스피노자 는 더 가서, 분명히 말해. 선악 이란 건 없어. 걍 상대적 비교개념 일뿐이야. 걍 똑같애. 그래도 그 바닥의 신이라는 서브스턴스는 완벽하고 디바인 한 신성 일 수는 있어. 제발 부디 인간사엔 간섭하지 마세요 라는 신앙일 뿐이야. 헌데 쟨 그따위 서브스턴스 는 없다는겨. 걍 바닥엔 거대한 괴물일 뿐이야.
이 니체 는 파이널 코즈 를 부정하면서, 중립 인듯 해대지만, 얜 바닥에 괴물을 던져놓은거걸랑 ㅋㅋㅋ. 그래서 걍 나 위버멘슈 할껴 해대민서 창녀들 찾아댕기다가 몰래, 모올래, 그러다 매독 걸려 죽은 거일 뿐이걸랑.
쟤 이야기가 별게 없어 저게. 너무나 유치한 초딩 수준 이야기걸랑 쟤 말은.
성선설 성악설 그따위 없어. 야 유럽 이야기하는데, 이들은 성악설이예요 여러분. 인간을 완전히 악으로 규정을 해요 여러분. 우리 위대한 유교요? 성선이죠. 사람들을 아름답게 봐요 여러분. 우리 위대한 유교 위대한 조선 ㅋㅋㅋ.
지들만의 망상으로 세상을 바라봐 저 정신병자 지식인 들이. 저딴 강의질을 해대는겨 저게.
지들만이 규정한 잣대놀이로, 지들만의 그 추하고 드러운 역사는 비단자락으로 가리고 오직 남탓. 똥을 덮은 비단자락을 보세요 저 비단의 역사 우리가 정의요 해대면서 남들은 적폐. 야 선관위란게 적폐 청산은 가능한 문구래 ㅋㅋㅋ. 조선은 적폐 아니냐? ㅋㅋㅋ. 아 참 골때리던데.
자기들은 정의여. 이건 공리여 공리. 조선은 위대한 정의여. 증명 불가능한 공리여. 액시옴 악시오스 여. 이 위대한 공리를 부정하면 적폐여. 인민들이 뭉쳐서 저 적폐를 청산해야 해. 위대한 공리 의 인간들 조선 만의 땅이 되면 정의가 실현이 돼.
자기들의 행동은 위대해. 세상을 바꿔.
데카르트 의 맥심. 준칙 세번째 에 머라고 나오냐? change my desires rather than the order of the world. 세상의 질서를 바꾸려 하지 말고, 나의 바램들을 바꿔라. 이 앞에 머여? 언제나 나 자신을 정복하기 위해서 애쓰라.
오직 나여 나. 모든건 나만의 문제여. 내 안의 문제여. 내가 문제여. 세상이 문제가 아냐. 세상을 바꾼다 는 들은, 가장 사기꾼들이고 인류를 학살해대는 들이야.
여러분. 내가 세상을 바꿀꺼예요. 함께합시다.
저들이 모여서 사람들을 쳐죽이는겨 적폐라고. 그게 인간 역사 그 자체여.
위대한 맥심이야 저게. 세상 바꾸려 말고, . 너 자신에게 집중해. 이게 데카르트 의 말이야. 스피노자의 말이고, 이게 유럽 철학사 그 자체여. 칸트 의 핵심이여 저게. 세상 은 저건 피상적인 해석으로 보일 뿐이야. 니가 드럽다고 인식되는 그따위 해석판은., 너만의 주작된 생각이야 하는겨 칸트가.
너의 인생이 드러운겨.
너가 드럽게 산거야. 추악하게. 그 추악함의 것들이 너의 포름 을 이루었어. 니 눈깔에 보이고 니 대갈빡에서 해석되는건 너 만의 너들 만의 삐딱한 인식과 해석으로 나오는 너만의 오역된 분노질 일 뿐이야 세상이 잘못 되었다며.
너가 잘못 된거야. 너가 잘못 한거고. 니 조상들이 잘못 산거야.
그걸 니 탓 안하고 남탓 한다고, 니가 정의냐 그게.
저기서 더러운게 머냐면. 자기는 위대한거야. 세상을 바꾸니까. 뿌듯한겨. 저 댓글놀이 하는 애들 대부분이, 물론 저 대가리 댓글놀이애들은 월급 받고 돈받으며 하는애들이고, 대부분은 저기에 휘둘려서 따라다니는 노예 그 자체걸랑. 생각 을 못해 얘들은. 이게 삼사십대 여 특히나. 아는게 없어 얘들이. 저기 가서 저격하세요~ 해대면 저 나이 처먹어서 해대는겨.
위대한거야 자기가. 뿌듯한거야.
보상을 받는거야. 심리적 보상. 난 당연히, 위대해서 말이지, 좀 안좋아보이는 짓들 해도 돼. 이것도 모질라 솔직히, 더 대단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저런 들이 특히나 엔번방 가서 노는겨. 더하여, 저건 자유 야. 자유 . 왜 막아 우리의 자유 를. 좋은겨 저게. 얘들이 성 적인 문제는 자기들만의 리버럴 을 또 들이대. 진보한겨 저건. 이 조선들의 저 강간 질은 환상의 노스탤지어여 저게. 인간사에 저런건 비유럽 에만 있었던 현상이여 저런 첩질 에 환관 질은. 여자 노예들이란 저 양반 선비들의 위안부일 뿐이여 저 오백년이. 저런 역사는 아시아 에만 있던겨 저게. 그래도 말야 에도는 저거 까지 는 아냐.
저건 못 끊는거야.
자기의 정의 놀이에 대한 심리적 보상 더하기, 조선 오백년의 저런, 면신례 에 기생 풍류놀이.가 결합을 하는겨.
해도 돼. ㅋㅋㅋ. 정의 놀이 하는 애들의 가장 큰 폐해가 저거야. 나는 정의로와. 좀 보상 받아도 돼.
저게 말이야. 머 비서여자를 어쩌고 저쩌고. 저건 저 교주중의 교주 족보를 봐도 보이걸랑. 아 헌데 이런 구조는 바닥에. 박정희 도 똑같은겨 이게. 자기만의 기생청을 두는겨 국가 기관을 이용해서. 유들 처럼 연애란걸 해본적이 없어. 조선 오백년의 왕정 처럼 여전히 쟤때도 기생청을 두는겨 ㅋㅋㅋ.
똑가태 저게 저 조선 이란 의지.의 힘은. 쟤도 조선을 지폐 동전으로 만든 이유고, 적폐라며 삿대질 해도 역시나 조선 상징은 당연히 위대해서 청산을 하면 안되는거고.
족보 가 드러운겨. 저 교주 중의 교주 란게.
머 족보 드럽게 해서 태어난걸 어째. 내가 내 의지로 내 족보에서 만들어진것도 아닌데.
야 그럼 나는 새로운 족보를 만들꺼야. 해야 되지 않냐?
또옥 같애 이 조선들은.
자기는 위대한 이념의 인간인거야. 비서여자 랑의 자식은 당연한거고.
아 추하고 더러워 이 조선 이념놀이 하는 들은.
아니 저래도 돼 어찌할 수 없어. 야 헌데 존경은 못해주겠다 .
왜 정치 투쟁하는 애들이 깜빵을 가면, 조폭애들이 떠받든대잖니. 이건 사실이여 가만 보믄. 아 내 예전에 저게 궁금했는데.
대체 왜 조폭들이 정치 놀이 해서 처들어간 애는 형님 모시듯 하지 저거? 최근에 나온 애도 저런 이야길 하걸랑. 지가 머 교도소의 조폭들이 자길 형님 대접했다미 정치하는 주제에.
왜냐면, 조폭 이라는 깡패 란건 말야. 얘들은 근본적으로, 내가 이렇게 된건, 사회 의 문제고 세상 의 문제야. 헌데 저 분들은 위대한 학생 위대한 정치 위대한 이념분들이야. 저 마음 바닥이, 아 저분들은 저걸 해결하고자 하던 분이셔. 내가 모셔야해 마음으로나마.
저 조폭 애들 마음 바닥이여 저게. 그래도 인간 이고 싶어서, 저걸로 자기 심리 보상을 하는겨. 그나마로 자긴 사람인 척 하고 싶은거야.
당연히 이념으로 쳐들어간 애는 저 안에서 떠받들여 지면서 신 대접 영웅 대접 받다가 다시 나와서 정의놀이 하면서 아 만져줘 난 이런 보상조차도 너무 쩍어 이거.
저게 레지스탕스 이야기 프랑스 이야기야. 이차대전 끝나고 나 위대한 독립투사여. 마누라 나 좀 챙겨라. 이혼율 높은겨. 야이 개색햐 니덜 머스마들이 개판이 되서리 다들 죽고 여자들은 가랑이 벌리서라도 살아남으려했고 니가 멀 잘했다고 투사 놀이니. 저기서 나치들한테 가랭이벌렸다거 얼굴에 낙서해대고 조리돌림시키고, 저때 프랑스 란건 정말 추악한겨 저게. 이 프랑스 란 나라는 정말 너무나 애들이 미개해진겨.
여자들이 다 이혼을 해. 정의놀이 니나 해. 난 내자식 이나 내 인생 살껴 머리 처박고 반성 해도 시원찮을 애들이 투사놀이 하고 자빠졌네. 해대면서 프랑스 여자들이 남자들을 버려.
저런 정의놀이는 참 심각한겨.
없어 그따위 정의. 그따위 선.
더럽게 산 애들이, 선 을 찾고 정의 를 찾고, 자기를 선 으로 포장하고 정의 로 포장을 해. 이건 아주 백퍼 항진명제여 이건.
세상을 바꾸려 말고, 너를 바꿔라. - 데카르트.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은 위대한 책이야 저건. 이후 모든 근대 철학 이야긴 데카르트 의 아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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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크리스티나 퀸은 말야.
아 대체 먼 이야기하다 이리 주절댄겨. 크리스티나 빨랑 해야지. 아 난 이여자 너무 좋아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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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머때리더만, 베트남 가서, 호치민 방명록에. ㅋㅋㅋ 백성들을 위해 어쩌고 헌신하신 ㅋㅋㅋ. 저게 조선 왕조 가 뇌에 스며서 여전히 백성이야 백성 ㅋㅋㅋ. 아 골때리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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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애가, 대권주자 여 ㅋㅋㅋ. 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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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s financial extravagance brought the state to the verge of bankruptcy, and the financial difficulties caused public unrest after ten years of ruling. At the age of 28, the "Minerva of the North" relinquished the throne to her cousin and moved to Rome.[10]
크리스티나 가 욕먹는게, 사치여. 이여잔 옷도 안입어 제대로. 머스마처럼 다녀. 씻지도 않아. 먼놈의 사치여 그게. 헌데 사치여. 책사고 그림사고 조각상 모으고 지식인들 초대하는데 돈 쓰는겨. 사치여.
차원이 다른 돈이 필요한 시대야. 스위든은 유럽 최초로 징병제를 실시한 땅이야. 얘들이 남들보다 전쟁할때 돈이 쪼끔 드는겨. 일단 용병 외에 정체성이 스민 자기들만의 민들 이 있는겨 얘들이. 얘들이 카를 10세까지도 그래서 유지가 된 이유야. 더하여 스위든이 리보니아 잉그리아 를 갖고 오면서, 중세 틀 을 그대로 이어서 저땅들에서 돈을 갖고 오는거야. 그나마 나은거야. 크리스티나는 이 돈들을 페이트론 으로 후원 개념으로 막 써댄거고.
더하여, 이여잔, 밤낮으로 책만 디다 본 여자여.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야 이여자가. 당대 최고의 사람들을 다 만났어. 듣고 보는 정보가 차원이 달라 이게. 이 때 이여자가 선택한게, 중세로의 복귀.야.
귀족들이 점점 죽어가는 시대가 17세기여. 이걸 이 여자가 복구하는거야. 작위들을 남발해. 영지들을 줘야하고 영지가 없으면 그만큼 연금을 줘야 하는거야. 이 여잔, 인간 문명의 거듭남 의 핵심을 저 귀족 들로 보는겨 이게. 그래서 기타 성직자 농민 층의 귀족면세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여자가 거부한거야. 자기들이 더 한차원 나은 문명을 이룸 은 귀족 을 키우는겨 이건. 더 가서 모든 민들의 귀족화 야. 이게 안 먹힌것일 뿐이야.
더하여, 잉글랜드는 엘리자벳. 이전에 앤불린 도 경험하고 스콧마리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레이디제인 그레이 도 짧게 경험하고 나서, 피의 마리도 있었고. 여자 군주 를 자연스럽게 생각을 해. 헌데 스위든 은 잉글랜드 보다는 여자 군주가 낯선거야. 스위든 애들 입장에선, 칼마르 유니온 으로 덴마크 마가렛 에 합쳐져서 130년을 고생한 적 있어. 여자군주도 생소해. 이것에 대한 반감이 있어. 그리고, 엄마 도 우울증 걸린 여자에다가, 숙적 덴마크 에 자기나라를 치라고 비밀서신도 주다가 들켜. 이래저래 불만 일 수 밖에 없고, 저런 인문학 자연과학에 돈 쏟아붓는건 처음 보는거야 코트애들조차. 이 스위든은 촌놈 들 중에 촌놈 이여. 대체 저런데 돈을 왜 쓰냐는겨 이건.
결정적으로 로마 카톨릭으로 바꿔. 루터 인간들이 대부분인 스위든 에서, 저여자는 제대로 평가 받을 수 가 없어 역사학자들 에게도 물론이거니와 대부분 민들에게도. 무덤은 로마 카톨릭 성베드로 성당 지하동굴에 있는 여자야.
가장 잘못 평가 받는 사람이야 이 크리스티나 퀸은.
28세,에 북쪽의 미네르바.는 자기 자리를 떠났어 스스로. 18세에 정식으로 올라서 딱 10년 한겨.
미네르바. 는 아테네 여신 의 로마화여. 로마의 아테네 여신이 미네르바 인데.
즉 이여자 별명이. 북의 미네르바. 북의 아테네 여신 이야.
아 이런 기본적 인 것 조차 너무나 잘못 알고 잇는건데. 일본애들 개념 단어에 사는건데 아 똑같은 말 그만하고.
Athens (/ˈæθɪnz/ ATH-inz;[3] Greek: Αθήνα, romanized: Athína [aˈθina] ; Ancient Greek: Ἀθῆναι, romanized: Athênai (pl.) [atʰɛ̂ːnai̯]) is the capital and largest city in Greece. Athens dominates the Attica region and is one of the world's oldest cities, with its recorded history spanning over 3,400 years[4] and its earliest human presence started somewhere between the 11th and 7th millennium BC.
지금, 우리가 아테네 라고 쓰는 도시이름 은. 영어로 애띤즈. 야. 그리스 애들은 지금 Αθήνα 아떼나 라고 불러 자기 도시 이름을. 고대에는 아떼나이 라고 불렀어. 저걸 이탈리아에서는 Atene 아테네 라고 부르는겨. 불어로는 Athènes 아뗀(느) 라고 불러.
Athena[b] or Athene,[c] often given the epithet Pallas,[d] is an ancient Greek goddess associated with wisdom, handicraft, and warfare[3] who was later syncretized with the Roman goddess Minerva.[4]
여신 이름은. 이떼나 또는 아떼네.여. 별칭으로 팔라스.이고. 단수여.
Borrowed from Latin Athena, from Ancient Greek Ἀθηνᾶ (Athēnâ).
영어로 아떼나.여 아테나.든. 그래도 고대그리스어 에 라틴어를 갖고 온 알파벳.이야.
도시이름 을 고대그리스 에서는. 복수 로 쓴거야. 아테나들.이라는 아떼나이.야. 복수형이야 이건. 여신 아테나들.의 땅이란거야. 이게 단수로 아떼나.로 지금 공식으로 그리스 에서 쓰는 도시 이름이야. 그렇지만 영어알파벳으론 복수형.이야. 애띤즈 Athens.
From Old French Athenes, Atenes, from Latin Athēnae pl (acc. Athēnās), from Ancient Greek Ἀθῆναι pl (Athênai), the plural form of Ἀθήνη (Athḗnē, “Athena”), the goddess
아떼나이.라는 여신 들. 을 아떼나이 한거고 라틴어로. 이건 올드프렌치가 그대로 갖고와서 뒤에 에스 를 붙인겨. 이건 정확하게 복수형 이야. 헌데 그리스는 지금 저걸 단수 아테나. 로 쓰는겨. 절대 말이지 쟤들은 아테네.든 아테니.든 아니여. 아테 나 여 나 나 나. 고대 그리스어로 아떼네. 가 단수여. 이거의 복수형이 아떼나이. 이고. 고대 그리스어 단수 아떼네.가 모양이 바뀌어서 아떼나 라는 단수 가 된겨 지금. 그래서 지금 현재 단수형 아떼나 로 그리스어로는 쓰고. 영어로는 복수형 을 쓴 거야 지금.
아떼네. 든 아테네 든. 이건 될 수가 없어. 고대에는 아테나이 였어.
저걸 한글로는. 무조껀 아테나 든 아떼나 든 써야해.
아테네 란건 그리스어 아떼나 를 이탈리아 애들이 그대로 아테네.로 쓴거야. 왜 저 이탈리아 발음으로 아테네 라고 부르냐 저걸.
왜겠어?
アテネ(現代ギリシア語: Αθήνα; Athína; IPA: [aˈθina]; カサレヴサ: Ἀθῆναι, Athinai; 古代ギリシア語: Ἀθῆναι, Athēnai)は、ギリシャ共和国の首都で同国最大の都市である。
위대하신 일본님들이. 아테네. 라고 하시니까. 아테네 하는겨 이 조선 땅 지식인 애들이.
바꿔 저것도. 아테나 든 아떼나 든. 아니면 아테나이 든. 차라리 영어소리 애띤즈 든. 왜 니덜은 일본에 그리 환장을 해대냐 니덜은. 민족정신좀 챙겨라.
Pope Alexander VII described Christina as "a queen without a realm, a Christian without faith, and a woman without shame."
이여자는 로마가서 교황들이랑 놀았걸랑. 교황 알렌선더 7세가 크리스티나에 대해서 묘사하길. 퀸 인데 지배하는 땅은 없고, 크리스찬인데 믿음은 없고, 여자인데 부끄러움도 없고.
ㅋㅋㅋ. 아 최고의 묘사인데.
Notwithstanding, she played a leading part in the theatrical and musical community and protected many Baroque artists, composers, and musicians.
극장연극 과 음악 살롱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많은 바로크 예술가들 작곡가들 음악가들을 지켜줬다.
Being the guest of five consecutive popes,[11] and a symbol of the Counter Reformation, she is one of the few women buried in the Vatican grotto. Her unconventional lifestyle and masculine dressing have been featured in countless novels, plays, operas, and film. In all the biographies about Christina, her gender and cultural identity play an important role
1626-1689. 63세에 죽어. 1654년 28세 내려와서 35년을 돌아다니다가 로마에 정착하걸랑. 교황들을 다섯명을 접하는겨. 카운터 리포메이션의 상징이 되서 바티칸 그로토에 묻히는 세명 중에 한명의 여자다. 파괴적인 라이프스타일과 남자옷을 입고 다녀서 무수하게 소설들 연극들 오페라들 영화 에 캐릭으로 등장하다. 그리스티나에 대한 모든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성과 문화적 정체성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Christina reached her majority in 1644, and Chancellor Oxenstierna soon discovered that her political views differed from his own. In 1645 he sent his son, Johan Oxenstierna, to the Peace Congress in the Westphalian cities of Osnabrück and Münster, to argue against peace. Christina, however, wanted peace at any cost and sent her own delegate, Johan Adler Salvius.
1644년. 18세에 성인 선포하고 직접 다스려. 아직 30년 전쟁 중이야. 1648년에 베스트팔렌 조약이야. 어릴때 부터 신하이자 선생이자 할배가 된 옥센스티아나 가 최고 자문가야. 아 헌데 크리스티나의 정치적 견해가 달라 이 할배랑. 할배가 자기 자식을 베스트팔렌 조약 협상하는데 보내. 30년 전쟁이란건, 발렌슈타인이 1634년 황제 페르디난트2세에 암살당하고 이건 완벽하게 프로테스탄트 가 이길 수 밖에 없는 전쟁이야. 스페인은 플랑드르 군대로 네덜란드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프랑스가 낀거고, 더하여 프랑스는 대륙에도 보내고 스위든 도 아돌푸스 복수해야해. 카톨릭 황제진영은 다 머저리들이고. 옥센스티아나 할배는 평화협상에 반대하는겨. 크리스티나 는 평화를 원해. 자기 사람 살비우스 를 파견해. 협상하라고.
저기서 협상테이블 의 주인은, 스위든 과 프랑스 여. 그중 스위든의 입김이 더 쎈겨. 킹도 죽고, 프랑스 보다 5년 먼저 개입했어 얘들은.
In 1648 Salvius considered it “a great miracle that we hear of revolts by the people against their rulers everywhere in the world, for example in France, England, Germany, Poland, Muscovy, and the Ottoman Empire,” and wondered “whether this can be explained by some general configuration of the stars in the sky.” In 1650 he went back to Stockholm
크리스티나 의 뜻을 이 살비우스 가 관철해서 이룬게 30년 전쟁 마무리하는 베스트팔렌 조약이야. 옥센스티아나 의 아들은 협상력이 없는 무능이고, 살비우스 가 주도를 해. 위대한 기적이었다 전세계 모든 곳, 프랑스 잉글랜드 독일 폴란드 모스크바 오스만 들에서 지배자들에 반기를 들었다. 하늘의 별들의 어떤 배열의 힘으로 이게 설명될 수 있을까.
기적적이란거지 자기가 협상을 했지만. 크리스티나 가 저걸 마무리 한거야.
The Peace of Westphalia was signed between May and October 1648, effectively ending the European wars of religion. Sweden received an indemnity of five million thalers, used primarily to pay its troops. Sweden further received Western Pomerania (henceforth Swedish Pomerania), Wismar, the Archbishopric of Bremen, and the Bishopric of Verden as hereditary fiefs, thus gaining a seat and vote in the Diet of the Holy Roman Empire and in the respective diets (Kreistag) of three Imperial Circles: the Upper Saxon Circle, Lower Saxon Circle, and Lower Rhenish-Westphalian Circle; the city of Bremen was disputed.[30]
Shortly before the conclusion of the peace settlement, she admitted Salvius into the Council, against Chancellor Oxenstierna's wishes. Salvius was no aristocrat, but Christina wanted opposition to the aristocracy present.
이때 스위든 이 받은건, 5백만 탈러 로 전쟁배상금을 받은거고. 서포메라니아 를 받고. 이때부터 스위든 포메라니아.가 되넉고. 비스마르. 브레멘 대주교령. 페르덴 주교령.을 받아. 그래서 제국회의 크라이스탁.에 참석해서 발언할 권리가 생긴겨 이 스위든이. 여기 서클들 중에 세 개에 개입을 하는겨. 고지대 작센 서클. 저지대 작센 서클. 저지대 라인-베스트팔렌 서클. 고지대 작센서클 이 포메라니아까지 걸랑. 이 포메라니아 라는게 폴란드 킹덤 땅이 아니여 이때도. 폴란드와의 경계인 루사티아.도 작센꺼여 페르디난트가 줬걸랑. 저 폴란드가 2차대전 지고 완전 뜬굼없이 땅을 받은겨 얘들이.
프랑스가 뜬굼없이 영미 가 개입해서, 땅을 받은겨 독일로 부터. 저건 영미 애들이 가졌어야 해. 대체 저 패한 놈들이 왜 지들땅 명분도 없는걸 받았는지.
브레멘.과 페르덴.은 베저강 Weser 도시들이고, 브레멘 은 저지대 작센 서클 이고, 페르덴 은 베스트팔렌 서클이야. 이 세곳에 다 개입을 하게 돼 스위든이. 저때부터.
저 이후, 브레멘에서 일차 이차 로 전쟁하는겨 우린 스위든한테 안들어 가겠다며.
그리고 살비우스 를 최측근으로 앉히고, 할배 옥센스티아나 를 은퇴시키는겨.
When the baby was born, it was first thought to be a boy as it was "hairy" and screamed "with a strong, hoarse voice."[13] She later wrote in her autobiography that, "Deep embarrassment spread among the women when they discovered their mistake." The king, though, was very happy, stating, "She'll be clever, she has made fools of us all!"[14] From most accounts, Gustav Adolf appears to have been closely attached to his daughter, and she appears to have admired him greatly.
크리스티나 가 태어날때, 남잔줄 알았걸랑. 머리카락도 없었어 태어날때. 그리고 얼굴빼고 온몸에 솜털이 가득 한거야. 울음소리도 우렁차고. 그녀가 나중에 자기 자서전에 썼다. "깊은 당혹삼이 여자들에게 퍼졌다 자기들이 잘못 안것을 알고는" 킹은 그래도 매우 행복해했다 "그녀는 명석할거야, 그녀는 우리 전부를 바보로 만들어버렸으니까" ㅋㅋㅋ. 아 하튼 얘들 위트와 유머는. 아돌푸스는 그의 딸에게 애착을 보인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그런 아빠를 굉장히 떠받든것으로 보인다.
In 1645 Christina invited Hugo Grotius to become her librarian, but he died on his way in Rostock. That same year she founded Ordinari Post Tijdender ("Regular Mail Times"), the oldest currently published newspaper in the world. In 1647 Johann Freinsheim was appointed as her librarian. After the Battle of Prague (1648), where her armies looted Prague Castle, many of the treasures collected by Rudolph II were brought back to Stockholm. Hence Christina acquired for her library a number of valuable illustrated works and rare manuscripts. The inventory drawn up at the time mentions 100 an allerhand Kunstbüchern ("a hundred art books of different kinds"), among them two world-famous manuscripts: Codex Gigas and Codex Argenteus.[31]
1645년. 19세여. 이 여자가 1648년 30년 전쟁 마무리 시키는게 22세여. 나이 20 전후에 자기 완전히 천장인, 애기때 부터 자길 키운 할배 옥센스티아나 를 물리친겨. 이여잔 주관이 확실한겨 이게. 엄청난 여자야. 저러기가 쉽지 않어 저게. 그만큼 꼬마때 부터 아주 모~든 분야를 다 익히고 공부하고 자기 생각을 확실히 갖은거야. 이여자 위대한 여자야. 19세에 드 그로트 를 초빙해 저 나이에. 국제법 창시자야. 네덜란드 의 최고 지성이여 드 그로트.가. 살비우스 와 친구였고. 와서 도서관장 해주세요. 헌데 오다가 죽어 로스톡.에서 바다를 못건너고.
오르디나리 포스트 티이덴데르. 오디너리, 정규적인 포스트 신문.이야. 티이덴데르 타임지여. 가장 오래된 신문이야 세계에서. 근대 최초의 신문이야 그야말로. 이전 베네치아 의 기와판에 새긴 소식지 가제트 를 넘어서 신문을 만든겨 19세 에. 1645년 에.
그리고 프라하 전투 1648년 에서 루돌프2세가 수집한, 이 인간은 벼라별 잡동사니 관심많은 인간에 오컬트가 넘실대던 코트였고. 여기에 코덱스 기가스.라는 사탄들 그린 그림과 이야기의 양피지.가 13세기 꺼야. 사탄 이야기 보려면 이걸 봐야해. 그리고 아그렌테우스 코덱스. 6세기 고쓰언어로 된 성경이여 오스트로고쓰 킹덤 테오도릭 킹을 위해 번역한. 그외에 수백종류의 책들을 갖고 와.
저 두개가 지금 스위든 소유로 있는거고.
Tre Kronor (Swedish pronunciation: [ˈtreː ˈkrûːnʊr]; "Three Crowns") was a castle located in Stockholm, Sweden, on the site where Stockholm Palace is today. It is believed to have been a citadel that Birger Jarl built into a royal castle in the middle of the 13th century. The name "Tre Kronor" is believed to have been given to the castle during the reign of King Magnus IV in the middle of the 14th century.
트레 크로노르. 세 왕관들. 이라는 성 인데. 스톡홀롬 에 있는. 여기서 크리스티아나 가 태어났고. 여기가 지금 스위든 킹 의 거주지.여. 13세기 지은건데 이게 1697년 에 큰 화재가 발생해. 크리스티나 가 수집한 온갖 책들의 도서관이 여기 였걸랑. 저때 크리스타니가 고대부터 중세까지 수집했던 어마어마한 책들이 저때 대부분 탄 거야. 가장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중 하나야 이게.
지금 로얄 팰리스.라는 왕궁이 과거 트레 코로노르. 자리여 화재가 났던. 저기에 크리스티나의 도서관이 있었던거고. 저기도 작은 섬 에 잇는 왕궁이야. 이 스위든 이란 나라는 걍 섬 그 자체여 자잘자잘한. 섬들을 이은 다리를 놓은거고. 왼쪽 12키로에 드로트닝홀름 궁 이 있어. 머겠니. 여왕 의 개인 거주지여. 스톡 홀름 등 홀름 이란게 걍 섬이야.
Christina was interested in theatre, especially the plays of Pierre Corneille; she was herself an amateur actress.[34][35] In 1647 the Italian architect Antonio Brunati was ordered to build a theatrical setting in one of the larger rooms of the palace.[36] The court poet Georg Stiernhielm wrote several plays in the Swedish language, such as Den fångne Cupido eller Laviancu de Diane, performed with Christina in the main part of the goddess Diana.[34][35] She invited foreign companies to play at Bollhuset, such as an Italian opera troupe in 1652 with Vincenzo Albrici and a Dutch theater troupe with Ariana Nozeman and Susanna van Lee in 1653.[34][35] Among the French artists she employed was Anne Chabanceau de La Barre, who was made court singer.[34] From 1638 Oxenstierna employed a French ballet troupe under Antoine de Beaulieu, who also had to teach Christina to move around more elegantly.[34][35]
연극의 시대여. 저때 머 테레비가 있어 영화가 있어. 연극이 최고의 문화야. 코트 에서 연극을 하는겨. 이탈리아 에서 갖고 온겨 알프스 넘어서. 프랑스 가 앞장선거고. 르네상스 란건 말야. 연극 이야 연극. 연극 이고 연극을 위한 대본 이고. 그러면서 사람들이 삶의 숨통 이 트이는겨 이게.
조선 들은 어떻게 숨통을 터? 계집질이야 여자 노비들 로 지 그림자 터는겨. 이런 조선을 저 민족 해대면서 위대한 조선 해대면서 저 세상 가시면서도 여전히 저 하늘에서 위대한 조선 하는지. 당연히 환생을 해서 또 저짓을 허겄지. 얼마나 얼마나 끔찍하냐 고 이게 이 무한 반복질.
메디치 카테리나.가 빈손으로 앙리2세에 시집와서 그래도 이탈리아껄 다 갖고 온겨 이게. 혹자는 포크 쓰는 법도 카테리나 가 갖고 온거라는거고. 그만큼 미개했던겨 저 알프스 넘어가. 발레 라는것이 이태리에서 15세기에 생긴거야 연극 다음으로. 이것도 프랑스가 갖고와서 급 발전시키고
Bollhuset, also called Stora Bollhuset (The Big Ball House), Bollhusteatern (Ball House Theater), and Gamla Bollhuset (Old Ball House) at various times, was the name of the first theater in Stockholm, Sweden;
스토라 볼류셋. 스위든 최초의 극장 이야. 1627년. 아빠때 만든겨. 여기에 외국 회사들 을 초청하는겨. 얘들은 건물만 이때 지은거지 멀 하겄어. 이태리 오페라, 네덜란드 극장단. 프랑스 가수. 발레단.
크리스티나 도 연극할때 배우로 서. 이건 당대 연극의 기본 시나리오 야. 귀족들이 단지 보는 것만 하는게 아녀. 자기가 배우여. 또한 대사를 외우는 것을 넘어서, 상황만 주고 즉석 연기를 하는게 저때의 연극 이란거야. 앤 불린 이 파리와서 보고 배운게 그거고. 코틀리 러브 라는게 단지 유럽 코트 애들의 연애 놀이.가 아녀. 연극 하면서 하는 연기 도 코틀리 러브.야.
이런게 말야, 이게 말이지, 차원이 다른겨 이게 조선 이랑.
조선 애들은, 기생청을 만들어서, 조선 팔도 돌아다니미 여자들을 수집하잖냐 이들이. 연산군은 지들 조상 아니라미 ㅋㅋㅋ. 연산 이 아주 정확한 조선이야. 머 딴 애들은 별다르간 저 조선 들 저거. 야 전쟁만 나면 도망을 가. 저런 건 말야 진짜 동물의 세계 에도 없는 이야기야 저건. 저건 먼 미생물 도 아니고 말야. 세상에 벌레 도 저러진 않아. 어떻게 도망을 가냐 그것도 오기 전에 애들. 신기한겨. 없어 이런건. 벌레사 에도 없어 이런건. 그것도 두번을 하고 마지막엔 그냥 줘 권력을.
오메 그리곤 독립군 나신거지.
내 세상 모든 이야기를 다 봐서 말하는데. 저런 이야긴. 그 어디에도. 없어.
차라리 명나라 마지막 숭정제 처럼 자살을 하던가.
차라리 남송 마지막 일곱살 짜리 송소제 처럼 전날까지 경전읽다가 자살을 하던가.
대체 저따위 들이 어디에 있냐고. 아 ~~ 그래서 중국 에 그리 고개 숙임질 하면서 중국몽 함께 하자는 거구나. 중국들은 저리 자살이라도 하는 존심은 있으니까~~ 아 이해가 되누만 중국몽 이란게.
이 조선들은 말야. 중국에 그리 그리 그리 노예질에 당했으면, 먼 존심이라곤 없어. 지들의 위대한 사가는 세상에서 사마천인거고. 야 참 기가막히지 저 미개한 무지라는건.
In 1646 Christina's good friend, ambassador Pierre Chanut, met and corresponded with the philosopher René Descartes, asking him for a copy of his Meditations. Upon showing the queen some of the letters, Christina became interested in beginning a correspondence with Descartes. She invited him to Sweden, but Descartes was reluctant until she asked him to organize a scientific academy. Christina sent a ship to pick up the philosopher and 2,000 books.[37] Descartes arrived on 4 October 1649. He resided with Chanut, and finished his Passions of the Soul. It is highly unlikely Descartes wrote a "Ballet de la Naissance de la Paix", performed on her birthday.[38] On the day after, 19 December 1649, he probably started with his private lessons. With Christina's strict schedule he was invited to the cold and draughty castle at 5:00 AM daily to discuss philosophy and religion. Soon it became clear they did not like each other; she disapproved of his mechanical view, and he did not appreciate her interest in Ancient Greek.[39] On 15 January Descartes wrote he had seen Christina only four or five times.[40] On 1 February 1650 Descartes caught a cold. He died ten days later, early in the morning on 11 February 1650, and according to Chanut the cause of his death was pneumonia
1646년. 20세. 피에르 샤뉘. 프랑스 사람인 대사.여. 이사람 통해서 데카르트 를 만나고 서신 교환을 해. 책 보내달라고 하고. 그러면서 데카르트 랑 친해지다. 데카르트.가 저때 Egmond-Binnen 에그몬트-비넨 에서 살아. 딸 다섯살에 죽고서. 여기가 북홀란드 끝이여 똥섬들 떨어져 나가기 전의. 샤뉘 는 스위든 대사에 네덜란드 대사를 하고. 데카르트는 말년 20여년은 네덜란드에서 있으면서 여기서 글들을 거의 쓴거야. 방법서설도 네덜란드서 쓴겨. 머 그래서 데카르트가 프랑스에 따뜻 어쩌고 에서 스위든 추운데서 죽다 도 개소리여 그건. 걍 거기가 거기여.
크리스티나 가 데카르트 를 초대해. 싫다고 해. 당신을 위한 과학 아카데미를 만들어주께. 배를 보내서 2천권의 책들과 함께 도착을 해. 알게 된지 3년 후인 1649년 10월 4일. 샤뉘 랑 같이 머물러. 여기서 영혼의 패션들.을 마무리를 해. 그러다가 두달 후인 12월 19일 부터 개인 레슨을 하는겨 크리스티나 한테. 헌데 크리스티나 가 열라게 바빠. 이때 23세여. 겨울이고, 오전 5시 에 매일 하는겨. 철학과 종교 를 주제로. 아 음청나 진짜.
헌데, 토론을 서로 둘이 하면서, 안 맞아 생각이. 그녀는 그의 기계적인 관점을 싫어했다. 그는 그녀의 고대 그리스에 대한 관심을 평가하지 않았다. 다음해 1월 15일 데카르트는 썼다. 그는 크리스티나를 단지 네번 다섯번 봤다고. 2월 1일 감기에 걸리다. 10일 후에 죽다. 샤뉘 에 따르면 폐렴 으로 죽었다고.
저걸로 벼라별 음모론이 있걸랑. 스위든 코트에서 죽였다느니, 데카르트는 카톨릭이여. 그렇잖아도 카톨릭에 관심있는 우리 퀸을 쟤가 어찌 하는건가. 걍 죽은겨 죽을때 되서. 데카르트 가 원체 몸이 안좋았어 어릴때부터.
저때 데카르트 는 당대의 대스타야. 크리스티나 는 대체 왜 끌렸나 모르겠지만, 기본 판이 다른겨 이건. 두 사람이 생각의 판이. 데카르트는 이제부터는 수학에 미친 그야말로 기계적인 세계관의 인간이고, 크리스티나는 세상의 온갖 잡다함을 다 본 여자야. 저때 나이가 23세 였지만. 꼬마때 부터 하루 열시간을 공부를 해도 행복해 하던 여자야. 온갖 언어를 다 익히고 온갖 책을 다 접한 여자야. 이여자는 내적 소양이 그야말로 풍부한 여자고, 데카르트는 완벽하게 한곳에 꽂힌 인간이야. 데카르트도 열린 인간이고. 카톨릭 인간이 칼뱅나라에서 용병을 하고 다시 카톨릭 용병을 하고 다시 칼뱅 의 나라에서 여생을 보낸 인간이고, 루터 의 퀸 이 보자고 해서 루터 땅에 간 인간이야. 온갖 세상 만물에 관심있던 인간이었지만, 이제 부터는 한 곳에 꽃힌 인간이야. 크리스티나 와 달러 이게. 크리스티나 의 생각의 힘도 아주 강력해. 이 여자도 나름 자기 주관이 확실히 선거야. 할배 옥센스티나아 조차 도 어릴때부터의 완벽한 거인 이걸랑. 이 사람을 자기 생각과 다르다며 내 친 여자야. 몇 번 대화 해 보고는, 데카르트 로 부터 다 뽑아먹은겨 이여잔. 너댓번 만나보고는 더이상 얻을게 없는겨.
Already at the age of nine Christina was impressed by the Catholic religion and the merits of celibacy.[46] She read a biography on the virgin queen Elizabeth I of England with interest. Christina understood that it was expected of her to provide an heir to the Swedish throne (her first cousin Charles was infatuated with her, and they became secretly engaged before he left in 1642 to serve in the Swedish army in Germany for three years). Christina revealed in her autobiography that she felt "an insurmountable distaste for marriage" and "for all the things that females talked about and did."
크리스티나.는 나이 9세에 카톨릭에 인상을 받아. 셀리버시. 독신 이란 것이 주는 보상.에 끌린겨.
결혼에 대한 느낌이 없어 이여잔. 아마 엄마 때문인가? 몰라 이건.
인간을 환경적으로 보는것도 이건 걍 일부 이야기야. 크리스티나 는 일반론으로 보면, 삐딱선을 타야 할 여자야. 엄마의 그 우울함에서 기괴하게 성장했어야 해 이여잔. 연산군을 보라고. 세상에 연산군 같은 이유를 갖은 애들은 유럽 역사에 흔해. 헌데 저런 짓은 안해. 이건 그 바닥의 역사 문제 같은데. 투렌 을 봐도 태생 자체가 둔재 그자체야. 헌데 혼자 스스로 극복을 해. 케이스 바이 케이스.야.
또한, 로마 카톨릭.은 독신이야. 이게 맞아. 왜 대체 교회에 헌신하기로 한 인간들이 결혼을 하냐 이거. 루터 는 후져. 아무런 연역적인 이유도 없이 지 조꼴리니까 결혼해서 이유를 만들고 남들보고 결혼하란거걸랑. 제일 황당해 쟨 저게.
크리스티나.는 엘리자벳.에 흥미로와해. 그러다가, 자기를 이을 사람이 카를10세 임을 알게 되고. 자식없으면. 헌데 카를이 또한 크리스티나 에 홀딱 빠졌어. 1642년에 얘가 30년 전쟁 독일땅 갈때 비밀리에 정혼을 했다. 16세여 저땐. 헌데 크리스티나는 자서전에 썼다. 즉 저때 16세는 걍 멋모르고 들이대니까 승낙한건데, 나중에 말하길, 나는 결혼에 대해서 치료 불가할 정도로 싫었다, 여자들이 말해대는 것, 하는 짓들 에 대한 모든 것들이 너무나 싫었다.
Ebba Larsdotter Sparre (1629 – 19 March 1662) was a Swedish lady-in-waiting and noblewoman. She is known as the intimate friend and speculated lover of Queen Christina of Sweden.
에바 라르스도테르 스파레. 에바 스파레. 세살 어린 여인 있데, 크리스티나 코트의 레이디.야. 이여자와 연인 으로 보이고, 침대도 같이 있었던거로 봐. 거의 유일한 애인이야.
As she was chiefly occupied with her studies, she slept three to four hours a night, forgot to comb her hair, donned her clothes in a hurry and wore men's shoes for the sake of convenience. Her unruly hair became her trademark. Her closest female friend was Ebba Sparre, with whom she shared a bed and possibly a sexual relationship.
그녀는 완전히 걍 공부만 했다. 밤에 서너시간 잤다. 머리 빗는것도 잊었다. 옷은 걍 허겁지겁 입은듯, 남자들 신을 신었다 편하다며. 그녀의 난잡한 머리카락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 가 되었다.
On 26 February 1649, Christina announced that she had decided not to marry and instead wanted her first cousin Charles to be heir to the throne. While the nobility objected to this, the three other estates – clergy, burghers, and peasants – accepted it. The coronation took place on 22 October 1650.
1649년. 23세. 30년 전쟁 끝나고. 데카르트 가 죽은 달. 에 결심했다 결혼 안하기로. 대신 그녀의 사촌 카를.을 후계자로 원했다. 귀족들은 반대했다. 성직자 부르조와 농민 층은 받아들이다. 그리고서 다음해 대관식을 하다.
민들이 원하는 건. 하는게 아냐.
민들 이란건. 넓고 깊게 못봐.
민심이 천심. 이따위 말은 말이지, 동양 고전 에도 없는 말이야 이건. 어떤 누구가 이걸 서경에 있다는 둥 동양 고전을 인용해대는데. 그야말로 거짓말이야. 아무리 개 무식한 중국이라도, 저런 말은 나올 수가 없는겨. 저건 사회주의 공산주의 애들의 배부른 돼지 애들이 사기치면서 권력 놀이 할때나 나오는 문구야. 저런 말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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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tutor, Johannes Matthiae, influenced by John Dury and Comenius, who since 1638 had been working on a new Swedish school system, represented a gentler attitude than most Lutherans. In 1644, he suggested a new church order, but it was voted down as this was interpreted as Crypto-Calvinism. Queen Christina defended him against the advice of Chancellor Oxenstierna, but three years later, the proposal had to be withdrawn. In 1647, the clergy wanted to introduce the Book of Concord (Swedish: Konkordieboken) – a book defining correct Lutheranism versus heresy, making some aspects of free theological thinking impossible. Matthiae was strongly opposed to this and was again backed by Christina. The Book of Concord was not introduced.
그녀의 개인교사 요하네스 마티아이.는 존 듀리 와 코메니우스 를 배운 사람인데, 1638년 부터 스위든의 학교 교육 시스템을 수립하는 일을 해왔는데 루터들보다 더 폭넓었다. 1644년에 그는 새 교회체제를 제안하다 그러나 거절되었다 유사 칼뱅주의 라며. 크리스티나는 그를 지켰다 할배 옥센티아나로 부터. 그러나 3년 후에 그 제안은 결국 취소되었다. 1647년에 성직자들은 콩코드 서 를 도입하길 원했는데 이단에 대항하는 루터교를 쓴 책이었는데, 자유로운 생각이 불가능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마티아이는 강하게 반대하다. 크리스티나도 막았다.
존 듀리.는 스콧 칼뱅이고, 코메니우스 는 체코 사람에 근대 교육의 아버지라 불려. 얘들은 루터 걸랑 스위든은. 왜 루터라 했어? 구스타브 바사.가 정치적으로 카톨릭 지우기 위해 프로테스탄트가 필요한거고, 마침 아래 가까운데 루터 애들이 건너와서 예배서 예배식 언어와 기본 성서 번역을 못하니까 루터애들이 도와주면서 걍 루터가 된겨.
칼뱅은 조직 문제에 더 내려 간거고, 루터 란건 걍 카톨릭이여 이건 조직 구조 측면에서. 이걸 깨 부술라는게 안된거고 오히려 또 이단놀이 하면서 할라는걸 못봐 주겠는거지.
크리스티나 는 여기저기 밉보일 수 밖에 없는겨 이게.
교회에 아부하고, 민들에 아부하는 그 걔는, 걍 쓰레기야 쓰레기.
She had long conversations about Copernicus, Tycho Brahe, Bacon, and Kepler with Antonio Macedo, secretary and interpreter for Portugal's ambassador.[55] Macedo was a Jesuit, and in August 1651 smuggled on his person a letter from Christina to his general in Rome.[56] In reply, Paolo Casati and Francesco Malines came to Sweden in the spring of 1652, trained in both natural sciences and theology. She had more conversations with them, being interested in Catholic views on sin, immortality of the soul, rationality and free will. The two scholars revealed her plans to Cardinal Fabio Chigi. Around May 1652 Christina decided to become Roman Catholic. She sent Matthias Palbitzki to Madrid; in August King Philip IV of Spain sent the Spanish diplomat Antonio Pimentel de Prado to Stockholm.
그녀는 코페르니쿠스, 티코 브라허, 베이컨 케플러, 와 오랜 교류를 하였고, 안토니오 마세도,는 비서에 통역자로 일했다. 마세도 는 제수이트였고. 1651년 25세. 크리스티나로 부터 편지를 받아 로마로 전했다. 이태리 제수이트 파올로 카사티.와 프란체스코 말리네스 가 스위든에 오다 다음해. 둘다 자연과학과 신학 교육 받은사람. 그녀는 그들과 더 대화하고 카톨릭 관점에 관심을 갖다. 원죄. 영혼불멸, 이성, 자유의지. 두 사람은 그녀의 계획을 추기경 파비오 키지.에게 전했다. 1652년 26세에 크리스티나는 로마 카톨릭 이 되기로 결심하다.
그리고 2년후에 내려온겨. 루터 나라야. 로마 카톨릭 은 퀸을 할 수 없어.
After reigning almost twenty years, working at least ten hours a day, Christina had what some have interpreted as a nervous breakdown. She suffered with high blood pressure, complained about bad eyesight and pain in her neck. Grégoire François Du Rietz, since 1642 the court physician,[59] was called when she suddenly collapsed in 1651.[note 7] In February 1652 the French doctor Pierre Bourdelot arrived in Stockholm. Unlike most doctors of that time, he held no faith in blood-letting; instead, he ordered sufficient sleep, warm baths and healthy meals, as opposed to Christina's hitherto ascetic way of life. She was only twenty-five, and advising that she should take more pleasure in life, Bourdelot asked her to stop studying and working so hard[63] and to remove the books from her apartments.
여섯살때부터 20년 동안 다스리면서, 성인이 되선 10년. 하루에 열시간 일했다. 크리스티나는 신경성 불안으로 지금식으론 보이는데. 고혈압에, 시력이 안좋아 불편해 했고 목 통증이 심했다. 1642년 16세 부터 코트의 의사였던 이가, 불려왔다, 그녀가 갑자기 1651년, 25세에 기절하다. 프랑스 의사가 스톡홀롬에 도착하다. 다른 의사들과 달리 그는 사혈 을 믿지 않다. 저놈의 사혈이란게 19세기까지 오고, 이게 사혈침 을 이나란 한무당놀이로 하는거고 여전히.
대신 그는 충분한 잠, 따뜻한 목욕. 건강식. 을 제안했다. 그건 크리스티나의 금욕적 삶의 방식에 반했다. 그녀는 겨우 25세, 삶을 좀 즐기세요. 공부 그만하시고, 일좀 줄이세요. 방에서 책들을 치우세요.
For years, Christina knew by heart all the sonnets from the Ars Amatoria and was keen on the works by Martial[64] and Petronius. The physician showed her the 16 erotic sonnets of Pietro Aretino, which he kept secretly in his luggage. By subtle means Bourdelot undermined her principles. She now became an Epicurean.[65] Her mother and de la Gardie were very much against the activities of Bourdelot and tried to convince her to change her attitude towards him; Bourdelot returned to France in 1653 "laden in riches and curses
그러면서, 이 의사한테서, 아르스 아마토리아. 2세기의 사랑의 아트. 사랑학 이야. 마르티알리스, 이전 보인 로마 에피그램 책 남긴, 고대로마의 보험사기의 그 인간책. 페트로니우스 네로때 사람. 의 것들에 흥미를 느껴. 이 의사가 피에트로 아레티노.의 소네트도 보여줘. 몰래 갖고 왔어. 이 의사 덕으로 먼가 삶의 방식을 정해. 그녀는 에피쿠로스 가 되었다.
Pierre Michon Bourdelot (2 February 1610 in Sens – 9 February 1685) was a French physician, anatomist, libertine and freethinker.
저 프랑스 의사.가 피에르 미숑 부르들로. 인데. 생각이 활달해. 크리스티아나 아플때 신세계를 경험시키면서, 유머를 주고, 삶의 즐거움을 준겨 이 의사가. 저때 엄마도 정신병 걸려서 소개해줬는데 오히려 엄마 엘레오노라 는 기겁을 해 저 의사한테서. 크리스티나가 너무 고마와서 선물을 듬뿍 주고 보내. 이 사람은 프랑스 콩데 가족 전문의고 중앙 코트에서도 유명한 의사야.
그리곤, 진짜 내려오는겨.
Christina told the councils: "I do not intend to give you reasons, [I am] simply not suited to marriage." The councils refused and Christina agreed to stay on the condition they never again asked her to marry. In 1651, Christina lost much of her popularity after the beheading of Arnold Johan Messenius, together with his 17-year-old son, who had accused her of serious misbehavior and of being a "Jezebel".[67][68] According to them "Christina was bringing everything to ruin, and that she cared for nothing but sport and pleasure."
카운슬에 말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유들을 댈 의지가 없다. 나는 단지 결혼에 안 맞는 사람이다. 카운슬은 거부하고, 크리스티나는 그 상황에서, 절대 결혼문제제기 안한다는 조건으로 퀸자리에 있기로 했다. 1651년 에 그녀는 인기를 잃었다 많이. 아르놀드 요한 메세이니우스 처형 사건으로. 그의 17세 아들과 함께 처형시킨 사건. 인데. 이 사람이 퀸을 심각한 방종과 제제벨 같은 폭군여자 라며 고소를 했다. 그들에 따르면 크리스티나 는 모든것을 파괴하는 여자고, 스포츠와 오락외엔 아무것도 관심없다고 했다.
Arnold Johan Messenius (Gdańsk, 1607 – Stockholm, 1651) was a Swedish enfant terrible and rikshistoriograf (historiographer of the realm, or royal historiographer) who was condemned to death and executed under the reign of Queen Christina.
아르놀드 요한 메세니우스. 궁정 코트 역사학자.인데. 저런거 보면 위인 납션네 해 보이걸랑. 아 크리스티나 악녀구나.
얜 아버지의 분노를 받은 인간인데 크리스티나 의 아빠 와 저 여자 를 싫어하는.
His father was sentenced to death in July 1616, but the king changed the sentence to prison, probably for life. During his imprisonment, Johannes Messenius wrote the Scandia illustrata, a history of the Nordic countries in 14 volumes.
이사람 아빠가 1616년에 사형선고를 받아. 아돌푸스 때에. 이 인간은 폴란드 지기스문트 바사.의 코트에 있던 인간이여. 바사 랑 친해. 얘가 역모 사건으로 기소가 되서 재판받아서 사형선고 당하는걸 죽이진 않고 감금한겨. 얜 무죄를 주장하고. 크리스티나 는 잘 몰라. 안풀려나는걸 딸 탓 하는겨.
이걸 그대로 자식이 받아서 저년 마녀 미친머 해 대다가. 죽은겨. 내가 킹이었어도 죽이..진 않고 걍 조선반도에나 보내버리면 되지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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