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position that existence precedes essence (Frenchl'existence précède l'essence) is a central claim of existentialism, which reverses the traditional philosophical view that the essence (the nature) of a thing is more fundamental and immutable than its existence (the mere fact of its being).[1] To existentialists, human beings—through their consciousness—create their own values and determine a meaning for their life because the human being does not possess any inherent identity or value. That identity or value must be created by the individual. By posing the acts that constitute them, they make their existence more significant.[2][3]

The idea can be found in the works of philosopher Søren Kierkegaard in the 19th century,[4] but was explicitly formulated by philosopher Jean-Paul Sartre in the 20th century. The three-word formula originated in his 1945[5] lecture "Existentialism Is a Humanism",[6] though antecedent notions can be found in Heidegger's Being and Time.  

 

레그지스탕스 프레스디 르상스. 사르트르 가 콕 찝어서 한 말이야. 실존주의 애들이 쓰는 말이고, 키에르케고르.가 실존주의 시작이고. 

 

이 키에르케고르. 도. 

 

セーレン・オービエ・キェルケゴール 일본어로 세렌 오비에 키에루케고루. 를 한글로 슬쩍 바꿔서 키에르케고르 하걸랑. 

 

Søren Aabye Kierkegaard (/ˈsɒrən ˈkɪərkəɡɑːrd/ SORR-ən KEER-kə-gard, also US/-ɡɔːr/ -⁠gor, Danish: [sɶːɐ̯n̩ ˈkʰiɐ̯kəˌkɒˀ] (5 May 1813 – 11 November 1855)[7] was a Danish philosopher,  

 

이사람은 덴마크 사람이여. 덴마크어로 사언(서안) 오비 키에케고. 여. 키에케고. 가 발음기호로 읽는 거의 정확한 소리야. 영어로 사런(소런) 오비 키어커가드. 여. 영어로는 드 발음을 해줘. 키엘커가드 던 키얼케가드 던. 이따위로 발음을 하던가. 키에르케고르 란 말은 걍 저건 일본애들 발음이야. 

 

인문학의 기본은 철학이걸랑. 이 철학자 이... 한글러 들은 정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는 표현은 철학에서 존재에는 본질이 없는 생각, 관념, 모든 것의 파악하는 방법을 나타낸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가 자신의 강연 《실존주의는 인문주의일까》 (1945년)에서 최초로 이 개념이 제기되어 실존주의에서의 기초적인 관념·개념이 되고 있다.  

 

저걸, 모두 우리말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대체 저게 먼말이야. 존재가 머고 실존이 머고. 뜬굼없이 지들끼리 막소리해대고. 저것도 모두 일본말이야 저게. 

 

Existentialism Is a Humanism (French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 is a 1946  

 

사르트르.가 저말을,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라는 강의를 전해에 하고, 다음해 1946년 에 낸겨. 여기서 나오는 말이야.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일본애들이 1950년대부터 사르트르를 번역해. 십년 지나서 대만의 중국어판이 나와. 

 

実存は本質に先立つ」(« l'existence précède l'essence »)  일본애들 번역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지쓰존 와 혼시쓰 니 사키다쓰. 걍 고대~~로 번역질 하는겨 이걸. 이 우리말 서양철학 모든 말들은, 모두 일본말이야 이게. 

 

存在先於本質. 중국어로는 존재선어본질.이야. 얘들은 존심이 있어서, 절대 그대로 일본애들 번역을 안써, 한글자라도 바꿔 전체를 못바꾸면. 얘들은, 실존 이란 말을 안써. 존재 라고 해,. 실존주의 라고 안써. 존재주의.여. 

 

중국애들이 일본보다 번역이 늦잖니. 3백년이 뒤졌고, 이게 20세기 초의 것들도 역시나 늦는겨. 자기들이 독자적으로 번역 할 수가 없어 20세기 후반이 지나도. 먼저 일본애들 번역을 보고서 20세기 서양인간들 꺼도 번역하는겨. 그래서 얘들은, 베낀 티를 일단 안내야 하고, 자기들 역사 존심이 있어서 일단, 더하여, 보다 잘 번역했어 얘들이 이런건.

 

이 조선들의 나라에선, 일본말이 쉬우니까 일본꺼를 저때도 그대로 갖고오는거고, 

 

애들이 정말 창피 한걸 몰라. 너무너무 쪽팔려 저런걸 보면. 

 

Ontology is the philosophical study of being. More broadly, it studies concepts that directly relate to being, in particular becomingexistencereality, as well as the basic categories of being and their relations  

 

Existentialism (/ˌɛɡzɪˈstɛnʃəlɪzəm/[1] or /ˌɛksəˈstɛntʃəˌlɪzəm/[2]) is a tradition of philosophical enquiry which takes as its starting point the experience of the human subject—not merely the thinking subject, but the acting, feeling, living human individual.[3]:14–15 It is associated mainly with certain 19th- and 20th-century European philosophers who, despite profound doctrinal differences,[4][3]:18–21[5] shared the belief in that beginning of philosophical thinking.  

 

온톨로지.를 존재론. 하는건 일본말이야.  이걸 중국애들은 본체론 이라고 해. 本体论(英語:Ontology),又译存在论存有論,  그리고 일본애들의 존재론, 도 써주고, 존유론 이라고도 해줘. 얘들의 공식어는 본체론.이야. 

 

이그지스텐셜리즘.을 중국애들이 존재 주의라고 해. 저 존재 라는말을 일본애들 실존 대신 쓰는겨. 

 

実存主義(じつぞんしゅぎ、フランス語: existentialisme、英語: existentialism)とは、人間の実存を哲学の中心におく思想的立場。あるいは本質存在(essentia)に対する現実存在(existentia)の優位を説く思想。

実存(existenz)の当初の日本語訳は「現実存在」であったが、九鬼周造がそれ(正確には「現実的存在」)を短縮して「実存」とした(1933年(昭和8年)の雑誌『哲学』内の論文「実存哲学」においてのことであり、可能的存在に対置してのものである)。語源はex-sistere(続けて外に立つの意)  

 

실존주의. 지쓰존슈기. 본질존재 에쎈스 에 대한 현실존재 이그지스턴스. 현실적존재. 를 실존.으로 줄여 번역한거고 1933년.에. 원래 의미는 엑스. 밖에 있는겨. 

 

걍 우리는 아무생각없이 실존  하는거고. 헌데 저 실존 이란 말도 먼말인지 몰라 이 조선어족 애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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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건 정말 아무것도 못봐줘. 니덜은 말야. 신학이든 철학이든, 한글로 번역된 것은, 보지 마. 절대로. 

 

토마스 아퀴나서 번역해댄거 보면 와아아안전히 저건 거짓말이야. 참 싕기한겨 저게. 지들도 모르는 말을 저리 씨부리는거 보믄. 저걸 보면 추리극을 써야해. 아 얘는 이걸 이리 번역해서 이따위 뜻으로 이해해서 이따위로 끄적이고 저따위로 강의하는거구나. 거짓말  해대네. 

 

 

 

저게 모두 말이지, 아리스토텔레스 의 카테고리 문제여 저게. 

 

저런 에센스 니 이그지스턴스 니 온톨로지 니 해대는건, 정확하게, 아비세나 의 주석서 의 문장 하나 때문에 시작한 의문들이야. 에센스 와 이그지스턴스 는 구분 가능한가. 이게 중요한 말이야. 당연히 이걸 이  중요한 한문장을 알고 있는 한글러 들은 단 한 명 없을꺼야. 영미권에서 이걸 좀 아는 애가 있을라나. 

 

이전에 저걸 풀었지만, 한번 나중에 내가 쓴 글을 보다보니까, 아 니덜한테 참  어렵겠구나 싶던데. 그래서 저녀니 저게 먼 암호여 해대는게 이해는 가는데. 아 참 쉽게 설명을 하려다가도 내가 졸 구찮걸랑.

 

헌데 저게 말이지. 서양철학애들의 가장 큰 줄기여. 모든건 저놈의 아비세나 의 저 주석서로 벌어지는 이야기야 이게. 

 

40번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메타피직스를 읽은 인간이, 어릴때, 판겨 이인간이. 아 내 이 아비세나 참 대단하다 생각해. 만약 내가 저 아비세나 의 저 문장을 접하지 못했으면 이렇게 찐하게 안 닥아왔을텐데 말야. 

 

문제는 아리스토의 열개 카테고리.야. 이건 하나 더하기 아홉개.야. 이게 전혀 달라. 하나 와 나머지 아홉게 가. 

 

처음 시작인 첫번째.가 우시아. 라는 서브스턴스.야. 나머지 아홉개 카테고리들은, 서브스턴스 에 기생하는 카테고리들이야. 요말을 아주 명확하게 이해를 하도록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저런걸 굳이 말 안한겨. 일단 저 카테고리라는게 자기 개인 강의노트야. 자기만의 비밀장부야. 자기가 잘난척 하기 가장 좋은 도서관 서지목록이야 저게. 죽기전까지 공개를 안한겨 아리스토텔레스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 헌데 저걸 제대로 짚은 사람이 아비세나 인거야. 

 

문제는 저 우시아. 라는 서브스턴스 야. 서브시스트하는 바닥에 깔린 숙주. 

 

아비세나 의 에센스 와 이그시즈선스 는 구분가능한가. 라틴어로 번역되는. 저기서 에센스 가 우시아 이고 서브스턴스 야. 

 

이그지스턴스 라는건. 우시아 더하기 기생충 이야. 우시아 더하기 나머지 아홉개 카테고리들이 조합되는 몸체 인겨. 

 

이그지스턴스 라는건, 아주 엄밀히 말하면, 에센스 더하기 아홉카테고리 항목. 의 몸체 인겨. 

 

여기서, 방점은, 에센스 가 아냐. 이그지스턴스 에서는. 에센스가 어쨌거나 숙주야. 허나 이 숙주 자체는, 이그지스턴스 가 아녀. 나머지 기생충들이 붙어야 이그지스턴스 화된 이그지스턴시아 라는 몸체 로서 기능을 갖추게 되는겨. 

 

이게, 아리스토 텔레스 가 표현한 단어. 온-이-온 이라는거야. ὂν ἢ ὀν (Being qua Being) 이게 빙쿠아빙. 이야. 에센스 라는 우시아 라는 서브스턴스 라는 빙. 에 더해진 빙.이야 이게. 당연히 빙 이란 에센스 는 숙주야. 같이 포함한 몸체여 이건. 

 

온-이-온 이란말이 메타피직스 전체 16권 중에, 제4권 제6권 제 11권 에만 나오는 단어야. 이걸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자세하게 썰 풀지 않은겨. 강의노트야. 이 형님 머리속에만 있는겨. 사후에 출판해서 요약본이라서 잘 몰라 이 후학애들조차. 이걸 끄집어낸게 아비세나.인거야. 40번 달달달달 봐서 꿈속에서도 외운다는. 이걸 이리 이렇게 본 사람은 아비세나 가 최초인겨. 남들은 아는척 했던거고. 아비세나는 미치겠던거야. 돌대가리도 아닌데, 당췌 이해가 안갔던거야 하나가. 하나가. 그게 저 빙쿠아빙. 이란것과, 그럼 저 첫번째 우시아.라는 에센스라는 서브지스턴스라는 저건 머냐 이거야. 먼가 달라 보이걸랑 저 첫번째 카테고리는. 

 

구분 가능 하다 는게. 아 저게 확실히 다른거구나! 라고 눈치를 챈겨 저게. 우시아 라는 첫번째 카테고리는 독자적으로 유지가 가능한건가? 저 나머지 아홉개 라는 기생충들이 없어도? 가능 하다 이거야 아비세나가. 

 

그리되면 어드래 더 생각이 가는겨? 우시아 라는 에센스 를 디비 파게 되는겨 이건. 이 에센스 라는 것의 진짜 속성 얘의 구성체는 그럼 뭔가 얘의 성질 구성요소들은 먼가? 

 

이걸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해를 한거야. 그래 맞아 가능해. 이 토마스 란 사람은 교회 이 교계 에서 문제가  많아 이건. 제대로 토마스 이야기를 본다면,  불편한게 토마스 이야기야. 이걸 지금 애들이 먼말인지 모르니까 걍 성인인가부다~~ 하민서리 추앙하는거걸랑. 일단 한글번역은 모든게 암호래서 먼 말을 해댄지도 모르고, 이 한글러 조선어족 인간들은 정말 너무 미개한건데. 아 내 저거 걍 정리하다가 도 느끼는거지만, 원래 미개한 줄은 알았지만, 정말 너무나 어마어마하게 미개한겨 이 인문학 학계란게. 

 

프란시스칸 이 열  받는겨 저건. 이 중심에 스코투스.야. 

 

서양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인간.은 스코투스 와 오컴.이야. 중요한 두 사람이야. 

 

 

서양 철학사 애들 목록 을 보면, 열명 을 딱 찍어서 서양 철학사 를 푼다고 할때, 반드시 언급 해야 할 두 사람은 저 스코투스 와 오컴 이야. 

 

우시아 를 저렇게 분리하면 안되는겨. 

 

저건 신 이야 신. 

 

분리해서 신 이라는 우시아 에대해 논 한다는 것 자체가 악마야 그건. 그걸 토마스 아퀴나스 가 해댄겨 신의 네가지 네이쳐 라면서. 왜냐면, 토마스 는 당연히 아비세나 처럼 구분 되는게 저 한개 와 아홉개야. 구분을 했어. 그러면 당연히 저 첫번째 인 전혀다른 카테고리인 저 우시아 에 대해 논해야만 하는거야. 

 

미친짓이야 저건. 프란시스칸 애들에겐. 스코투스 가 분노를 하는거야. 너 이 토마스 아퀴나스 이놈 그렇잖아도 후진 도미니칸 애들인데 이 도미니칸의 저 토마스 저거 니가 어드래 저 에센스 와 이그지스턴스를 분리 가능하다민서리 구분해서 에센스 라는 우시아 라는 서브스턴스 에 대해 왈가왈부 하고 자빠젼냐 이 개새꺄. 

 

로마 카톨릭 교계에선, 스코투스 에 속으로 환호를 보내는거야. 이 토마스 아퀴나스 가 성인이 된건, 저건 저런 속내를 모르는애들이 잘못 올린거야 저 꼴통 카톨릭 애들이. 나중에야 아차 했을거야. 분명해 이건. 그렇다고 박탈 할 수도 없는 노릇인거고. 

 

저게 시작이야 근대 철학 이라는게. 오컴 이 저 스코투스 선배님 이야길 받아서, 이인간이 만든게 유명론 이란겨. 이름만 짓고 해부하지 말라면서, 논리로만 놀아라 하는거걸랑. 논리학 의 거두가 이 오컴 이야. 

 

이 논리학. 이라는게, 가장 중요한 학문이고, 우리가 가장 취약한, 아니 비유럽계에서 가장 취약한게 이 논리학. 수사학 이라번역되는 로직 인겨. 지금 문명의 바닥 주춧돌은 이 논리학.이야.  이 논리학의 시작은 또 누구여? 아리스토텔레스.야. 

 

논리학 이 단지 중세 유니버시티에 머걍 가정법 이프절 놀이하는게 아녀 저게. 쟤들의 철학의 바닥은 저놈의 논리여 논리. 논리학. 증명을 쟤들의 저때부터 오컴의 논리학 을 이어서 천년의 논리학의 두께로 증명가능 시작을 하는겨. 이 절정이 비트겐슈타인 이고. 

 

살아있는 최고의 천재 중 한명인 크립키 할배.도 저 논리학 논문으로 세상에 나온겨 꼬마일때. 이 논리 로 학부주제에 박사들을 가르친거고. 

 

이 논리학 이  중요한겨. 쟤들 빠 라는 법률 자격 시험도 바닥이 이 논리여 논리. 

 

가장 취약하고 접근조차 못하는 학문이 저놈의 논리학 이야 비유럽계에서. 

 

저걸 부추긴 인간이 오컴의 윌리엄.이야. 저건 샹 아비세나 에 토마스 아퀴나스 에 스코투스가 분노하면서 후배 오컴이 아 형님 좀 진정좀 하슈 하면서 논리학을 꺼낸겨. 분리하고 싶은 분들은 여기서 따로 노세요. 

 

저게, 프란시스코 수아레스.가 우시아 라는 에센스를 다시 재조명하면서, 이전에 스코투스.는 신에 대한 우시아 를 건드리지 말란 거였걸랑. 그외 나머지 띵 들에 대해선 반반 열어놓은겨 스코투스는. 오컴은 확실히 때내서 저짝에서 가상놀이 로 맘껏 하시라 한거고. 헌데 이걸 다시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로 갖고 온게 수아레스.야. 위험한겨 우시아를 꺼내서 다시 현실세계에서 보겠다는건. 요때는 카톨릭 교계에 똑똑한 인간이 있었어. 그래서, 수아레스 가 살아있을때는 살라망카 학파로 유명인사라 강의 초빙 열라했다가, 아 이 인간 위험해 교회에선, 하고 금서가 된겨 이 수아레스는. 즉 얘들이 토마스 아퀴나스 때 무식해서 걍 넘어간걸 알고선 확실히 수아레스 는 막은거야. 

 

데카르트 란 인간은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래서. 

 

아 이 데카르트 란 인간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사는겨 이게. 

 

새삼 이놈의 데카르트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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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pense, donc je suis 즈 팡스 동 즈 쉬.

데카르트 가 저런 말을 처음 불어로 하고 나중에 라틴어판에 코기토 에르고 숨.이라 한겨.

 

저걸 나는 존재한다. 이래버리면. 안되이건. 저건 영어로, 즈 쉬.가 아이 엠. I am 이야. 

 

야, . 그러면. 이그지스트 는 걍 실존한다 이래야 해? 이그지스턴스 는 실존 이라 해야 하고 존재 라고 쓰면 안돼? 

 

번역을 하면 안돼 이건. 쟤들 단어는 소리나는 데로 걍 그대로 쓰는 게 백퍼 천퍼 맞아. 저걸 일본한자로 번역해버리는 순간 회로가 엉키는겨. 저 늙은이도 왜 번역을 안하냐 해대지만  그놈의 번역도 모두 일본한자 를 고대로 갖고 오는 주제에  창조적 주체적 번역인양.

 

좀 이 창피한줄 알아라. 

 

모~든 철학강의가 정말 일본한자들 한글 발음 번역한 개소리 라서 모든게 개판인겨 이건. 

 

나는 존재한다 라고 하는 불어는 쉬.여. 영어로 엠. 이고, 저건 뒤에, 빙 being 이 생략이 된거야. 

 

온톨로지. 라는건. 

 

The compound word ontology ("study of being") combines onto- (Gr. ὄνon,[2] gen. ὄντος, ontos, "being; that which is") and -logia (Gr. -λογία, "logical discourse"). See classical compounds for this type of word formation.[3][4]

While the etymology is Greek, the oldest extant record of the word itself, the New Latin form ontologia, appeared in 1606 in the work Ogdoas Scholastica by Jacob Lorhard (Lorhardus) and in 1613 in the Lexicon philosophicum by Rudolf Göckel (Goclenius).  

 

서기 1606년 에야 보이는 단어야. 이건 야콥 로하르트.가 꺼낸 말이고. 온토스 더하기 로기아.여. 이인간이 저걸  애매하게 만든 말이야. 온토스온. 하면 온-이-온 과 같은 말이야 이게. 빙쿠아빙. 온토스온 로기아 해서 온토스오놀로지.도 아니고, 온 로기아 해서 온로지.도 아니고, 얘가 온토스 놀로지 해서 온톨로지가 된겨 이게. 이게  어중간한 말이야. 이건, 에센스 도 이그지스턴스 도 같이 보는겨. 이게 애매한 분야야

 

Principal questions of ontology include:[citation needed]

  • "What can be said to exist?"
  • "What is a thing?"[8]
  • "Into what categories, if any, can we sort existing things?"
  • "What are the meanings of being?"
  • "What are the various modes of being of entities?"  

저기서도, 인용필요 란게, 콕 찝어서 정리가 안된겨. 통일이 안된거고. 저기 질문이. 이그시즈트 란게 머고, 띵 이 머고. 빙 이란게 머고, 엔티티들의 빙 이란 모드들은 머냐. 

 

  • what it is (its 'whatness', quiddityhaecceity or essence)
  • how it is (its 'howness' or qualitativeness)
  • how much it is (quantitativeness)
  • where it is (its relatedness to other beings) 

저걸 더 구체화 하면, 에센스 란게 머고, 그것이 머야? 할때 이 질문의 뜻이 머냐 이거. 이 것 자체도 지들 언어놀이 에 따른 질문들일 뿐이걸랑. 뒤에 하우니스 콴티터티브니스 는 어느정도냐 등등. 앞에 꺼는 우시아. 에센스. 서브스턴스 라는 첫번째 카테고리 자체의 내용 에 대한 질문이야. 이건 에센스 를 디비파는거고, 나머지 질문들은 아홉가지 카테고리들이야. 

 

이그지스트. 라는건, 정확하게 프로토콜 되어야해. 저건 에센스 에 아홉가지 카테고리가 더해진 걸 이그지스턴스 라고 하는겨. 숙주 에 기생충이 더해져야지 숙주의 모드들 이 이그지스트 하는겨. 

 

우시아 에센스 서브스턴스 에 대해선 이그지스트 이그지스턴스 라는 말을 절대로 절대로 써선 안돼. 

 

이그지스트 란 말은, 미디벌 라틴어 에서야 나온 말이야. 이건 아비세나 주석서 를 번역하면서 만든 말이야. 엑스 에 시스테레야. 밖에 있는겨. 이건 방점이 에센스 가 아니고, 에센스에 기생한 기생충들 아홉가지 카테고리 에 잇는겨 이건. 그때 밖에 있다 라는 말 이그지스트 란 말을 만든거야 아비세나 주석서 때문에. 

 

그래서, 온톨로지.란건, 우시아 라는 에센스. 에도 관심이  많은거고, 기생충들인 아홉가지 카테고리가 붙은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겨. 요 기생충 더해진게 이그지스턴스.야. 분명하게 이걸 구분해야해.

 

온톨로지.는 그래서. 저걸 번역하기가  애매한겨 이건. 이걸 중국은 본체론. 일본은 존재론. 온토스 라는걸 본체, 존재 이따위로 번역을 해버리면 어쩌자는겨 이건. 그러면 에센스 나 이그지스턴스 에 대해, 각각을 존재 니 본체 니 라고 절대 절대 말해선 안돼. 

 

뭔말인지 알겄냐? 온톨로지 는 저 두개를 다 합친 이야기야. 그래서 야콥 로하르트.가 1606년에 온토스온. 온이온. 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도 아니고. 어중간한 사이의 단어 온토스 를 써서 온톨로지.가 된겨 이게. 

 

저걸 멀 어드래 번역할껴 저걸.

 

저걸 저리 본체 니 존재 니 번역하면서. 이그지스텐셜리즘 이 나오면서, 못쓰는거야 쓴 애들은. 중국은 본체 라고 못써. 존재 라고 존재주의 하는거고, 일본은 저걸 존재 라는 말을 이전에 썼어. 실존  하는겨. 

 

네이쳐 매터 포름. 걍 그대로 써 그대로. 

 

본체 본질 본성. 머 지들 맘대로 막 이때 저때 막써. 저게 네이처 에센스 이그지스턴스 포름 이걸 막 지들 조꼴리는데로 막막 쓰는겨. 그래서 대체 이게 먼말이여 문맥을 보면 절대 이해를 할 수가 없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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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아이 엠. 이야. 골대리는겨 이건. 아이 엠. 이라는건. 아이 엠 빙 이야. 숨. 이야 라틴어로. 이건, 나라는건 우시아 라는겨. 나라는건 에센스 라는거고. 나라는건 서브스턴스 라는겨. 

 

나라는 건, 기생충 아홉가지 카테고리가 붙은 숙주 가 아니라, 독자적 숙주 첫번째 카테고리 인 빙. 이라는겨 저건. 

 

이걸 다시 현실로 끄집어 낸겨 데카르트가. 그리고, 프레디케이트. 설명을 하나만 하게 해달라는겨. 토마스 아퀴나스 처럼 네가지 네이쳐 를 안붙일테니 하나의 네이쳐만 붙일께요. 나는 생각한다. 

 

생각하는 걸로 충분한 거야. 이걸로 나라는 에센스 는 온. 하는거야. 빙 하는겨. 온토스온. 빙쿠아빙. 이 아녀 이건. 기생충이 덕지덕지 붙은 나.가 아냐. 나는 걍 온. 이고 빙. 이야. 기생충 카테고리들 이 없어도 나는 홀로 선다는겨 이건. 

 

교계에선 끔찍한거야 저 소리는. 

 

나 라는 에센스를 끄집어내고, 생각하는 팡스. 를 끄집어내고, 또 라틴어로는 더 무거운 코기토 를 끄집어내.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겨. 나라는 서브젝티브.가 

 

이건 말이야. 오컬트 에서의 탈출 이야. 신으로 부터 벗어나는  당당한 외침이야. 

 

 

 

우리 조선 인간들을 현재 보면, 이게 오컬트야 이건. 조선 뿐만이 아니라, 비유럽인간들 을 보면, 이게 오컬트야 모든 인간들이. 유럽인간들이 또한 점점 오컬트 인간들이 많아지는거고. 

 

이 오컬트 에 대해 이전 경험주의 를 얘기하면서, 야 이건 나만의 독보적인 생각인데, 베이컨이  고마와할텐데 나한테. 

 

중세 천년이란건, 오컬트 의 시대야. 

 

오멘 omen 이 오멘 류의 단어들이 넘쳐나던 시대가 저놈의 중세 천년이야. portend 포어텐드. 예언하고 프레시지. 경고하고 이따위 말들이 넘쳐나는 시대야. 그래서 저때 특히나 넘쳐나던게 헤르메티카.여. 연금술놀이를 하고, 저이후에도 접신론이 버글버글한겨. 이놈의 접신주의가 20세기 초까지도 난리여 이건. 러시아 라스푸틴 도 중앙 코트에서 권력을 갖고 논거고. 

 

저게 대표적인 소설이, 파르마의 수도원.이야. 아 이거 정말 명작이다 이거. 오멘 이란 징조 징험 이 저 책의 바닥이야 이건. 저게 나폴레옹 시대여 저게. 

 

 

근대 라는건, 오컬트 를 벗어난게 근대야. 

 

 

이 조선 이 여전히 한무당 질 오컬트 의 나라야. 

 

저 의학 을 보면 알아. 지금 저 바이러스 넘실될때 저 저 중의학 애들 꼬라지 봐. 

 

쟤들이 지지하는 게 또 어디니? ㅋㅋㅋ. 

 

웃긴 나라야. 헌데 이해가 되는겨. 이게  오멘 의 나라야. 사주 팔자에 주역 오행이 넘실대는 나라고 관상 에 청와대 터가 어쩌고 묘자리 놀이에, 선거 만 하면 지들 조상 묘자리를 옮기는 짓은 심심하면 나왔고, 요즘은 묘자리 안 옮기냐. 

 

운명 운명 해 대는 애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고. 

 

조선 위대한 민족이 세계사적 변혁기의중심이 될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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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테카르트.가 깨부스기 시작한거야. 나는 나 자체로 아이엠. 이야. 헌데 그 근거도 그 논리도 기가막혀. 나는 팡스. 코기토 하는 에센스 서브스턴스 라는겨. 그래서 나는 에센스 서브스턴스 우시아 자체로 있는겨. 이게 아이 엠. 이야.

 

아이 엠 빙쿠아빙.이 아녀. 아이 엠 빙. 이야. 이건 천지 차이야 이말은. 

 

저기서 나. 라는건 스피릿.이고 포름 이고 포름의 네이쳐 야. 

 

기생충들 아홉가지 카테고리들을 거부하는겨 이건. 몸 이란 육체 는 나라는 스피릿에 덕지덕지 붙은 기생충들이야. 

 

나 라는건 오직 에센스 인 스피릿 이라는 영혼이야. 이게 나의 정체성인거고. 이건 생각하는 나.야. 

 

나는 생각할꺼야. 

 

 

나는 오멘 놀이 징조 놀이 무슨 예언 놀이 안할래. 

 

이건 이런 의지야. 

 

그래서, 나는 신이  절대자 따위가 내 인생에 개입한다 할지언정, 개입안한다고 생각하며 살꺼야!!

 

신에 대한 선전포고여. 너 이 개새꺄 내 인생에 개입하지 말어. 사람들 세상에 개입하지 말어. 개입하는척 하면서 사람들을 니 노예로 부리지 말어. 사람들이 니땜에 오멘 징조 놀이 사주 팔자 에 관상 에 궁합  하면서 미개하게 살게 하지 말아. 앞으로 의 인간 문명은 나 스스로 생각하면서, 생각하는 나 들이 주도하면서 살거야.

 

이게 이전 문명과 전혀다른 근대 현대 문명을 만든거야. 

 

저런 미개한 오컬트 짓을, 비유럽은 여전히 했던거고 지금도 하는겨. 신을 저따위로 믿고. 

 

데카트르 가 완전히 말이지, 우시아 를 확 꺼내온겨. 이 시작은 아비세나 여. 위대한 인간이야 이 아비세나. 이걸 갖고 온 토마스 아퀴나스. 위대한 인간이야. 더하여, 스코투스 위대한 인간이야. 스코투스 는 신 이라는 우시아 를 끄집어 내지 말라했을 뿐이야. 헌데 나머지 띵 들은 달리 가게 해줬걸랑. 이걸 오컴이 가상세계에서 노세요 하면서 그래도 뇌 활동을 움직이게 해준거고 다시 저렇게 떨어져 나간 우시아 를 수아레스 가 끌고 나오고, 데카르트가 아예 못질을 해버린겨. 

 

이게 말이지. 칸트 가 이걸 받는거야. 

 

칸트 의 중심어. 칸트 의 관심은. 순수이성 이 아냐. 

 

칸트 의 주제어.는 모랄 이야 모랄. 이 모랄 도 도덕 윤리 이따위로 번역 해선 안돼. 쓰레기 도교 개쓰레기 유교 말의 도덕 윤리.는 모랄 이란 말과 전혀 다른겨. 

 

칸트가 처음 제대로 쓴 책이 모랄 관련 된 책이야. 그리고 나서 시작한게 이성비판 시리즈야. 

 

가만 생각해보니까, 자기의 모랄 이론이. 근거가 취약한거야. 이 사람은 로직 논리학수사학 인간이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거야. 자기 만의 도덕법칙 이론을 만들려고. 가장 시간이 걸린게 처음 판인 순수이성비판인겨. 두번째 실천이성 은 이전에 쓴 모랄 이론의 개정판 일 뿐이야. 

 

실천이성 을 쓰기위해서, 순수이성 을 아주 깊이 고민하면서 쓴겨.

 

투비 라는 개선책. 비젼 이란건. 현상분석 에서 나오는겨. 그래서 현상 분석 현재 분석 이라는 게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릴뿐이야. 그게 순수이성 비판이야. 이게 논리 만드는 가장 깊은 책이 된겨. 이건 기본적으로 논리학 이 바닥에 깔려야 볼수 있는 책이야. 이 나라에서 이걸 볼 수 있는 한글러는. 없어.

 

저기서 칸트가 결론으로 가는게. 저게 결국. 나야 나. 나라는거. 저게 역시나 데카르트 의 나 라는 겨. 플라톤의 인식론 이야기의 2천년 지난 칸트 판이 순수이성 비판이야. 

 

저기서 떨리는 결론. 저건  떨리는겨 저 대목에 가면. 

 

세상이란 것. 내 밖에 이그지스턴스 하는 저 오브젝트 라는 저 나 외의 저 세상이란건, 진짜. 가 아닌겨,  시간 공간 의 문제로. 

 

저건 사람들만의 색깔다른 안경으로 보이는, 진짜가 아닌 다른 세상인겨. 그렇다고 이걸 불교의 허상 이니 허무니 이따위로 해석하면 안돼. 전혀 다른겨 불교 이야긴. 부디 말야 아는척 좀 하지말어. 

 

제대로 진짜를 볼 수가 없어. 이게 칸트의 결론이야. 완벽한 관념론 이야 이건. 관념론 이란게 내용에 따라서 달라. 내 눈밖에 저 세상은 나만의 인식 나만의 안경 나만의 생각 에 의한 세상일 뿐이야. 나만의 관념 으로 해석되는 세상일 뿐이고. 진짜가 아냐. 그렇다고 허무 허상 도 아냐. 저 진짜 라는걸 보기가  어려운겨. 

 

그리고 더 가서, 안경 쓴 나. 저걸 보는 나. 로 가는겨 해결책이. 

 

저걸 보는, 나 라는 건 대체 머냐는겨 이놈의 나. 무게 중심 이 다시 나 라는. 정확하게. 생각하는 나.로 오는겨. 

 

완벽한 데카르트 의 복사판이야 이건. 

 

저걸 증명하는게 순수이성비판의 이야기 일 뿐이야. 결론이  허무한겨. 진짜를 볼 수 없어. ㅋㅋㅋ. 이걸 아리스토텔레스 부터 시작한 로직. 오컴의 윌리엄의 로직 으로 저 증명을 하는겨 칸트가. 

 

헤겔.은 저따위 증명 필요없이, 절대적으로 나 라는건 에센스 던 이그지스턴스 던 있는겨. 멀 그걸 구태여 증명하시려 합니까요 칸트형님. 해대면서, 이 헤겔은 역사를 강의한 사람이야. 인간의 역사 를 본겨.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에서 자기들 유럽까지. 

 

이 방법론이 다를뿐이야.

 

데카르트 는 수학 이야

 

칸트 는 논리학 이야

 

헤겔 은 역사학 이야.

 

 

역사 를 강의한 인간이야. 역사를 보니까, 정신 이라는 에센스 가 증명할 필요없이 절대적으로 있어 이건.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이고 이 합체가 생각하는 시대정신.인겨. 더가서, 인간은 어떤 저 더 나음을 위해 목적지향점으로 진보 하는겨. 변증법따위 개소리는 헤겔의 단어가 아니고. 헤겔 하면 변증법  해대는데. 역동적으로 인간의 나 라는 생각의 스피릿 우시아 에센스 가 집단으로 뭉쳐서 계속 전진하는겨 인간이란. 요건 데카르트 와 전혀 달라. 데카르트는 수학이야.  정적이야. 헤겔은 역사를 본 사람이야  역동적이야. 칸트는 논리학 이야. 칸트는 현상분석을 통해서 논리적 으로 현황을 증명 할 뿐이야. 여기서 나는 보편적 도덕법칙 을 따라 살꺼야. 라는 명제를 끄집어 낼 뿐이야. 역사가 그래서 진전한다, 몰라 난. 도덕법칙을 따라 살면 진전 될래나?

 

이 나 라는 강력한 거점 교두보를 만든게 데카르트야. 데카르트 가 오기까지 고대 그리스가 복원이 된거고 아비세나 부터 재시작 한거고 이때까지 중세천년 신학이 보태준겨. 플라톤 조차, 지식이란 정당화된 믿음 하고 만거야. 플라톤 은 제대로 듣보는 인식만 있으면 진짜를 볼수 있어 이데아를. 이게 달라 2천년이 지나고선. 어감이 달라 이 주장의 힘이 다르고. 이게 달라 그 느낌이. 중세 천년 동안의 신학의 힘이야 이건. 

 

저건. 유럽애들에게만 해당이 되는겨.

 

헤겔은 잘못 봤어., 아시아 역사를 보질 않았어. 아시아는 여전히 오멘.의 시대를 사는겨. 허섭한 애들을 정치 교주로 모시고 살고, 왜냐면 제대로 된 신앙을 제대로 된 신학을 여긴 하지 않았어. 이슬람애들도 아샤리들이 다 죽이면서 이성이 죽었고. 이 유교의 아시아는 더 강력한 미개로 복귀를 하고. 헤겔의 역사 강의 내용은 오직 니덜만의 이야기일 뿐이야. 기가막힌 우연의 만남들의 연속 이 저런 유럽을 만들어서 얘들이 근대 를 만든거걸랑. 

 

시안한 거야 저건. 중세 천년 이후의 유럽이란건. 

 

아시아는 이 조선만 보더라도. 유럽이 안왔으면, 여긴 여전히 조선 오백년을 사는겨. 길바닥엔 똥천지고, 여전히 여자들은 창녀들로 조선 중앙 코트에서 수집 관리를 해대고. 노예들 넘쳐나고, 물질문명은 전혀 없이. 지금도 저런 것들이 권력을 잡고 있걸랑. 얼마나 부도덕하고 얼마나 드럽냐고 저 것들 저거. 정치면 팔십년 동안 보면서 저렇게 추악한 것들의 정권은 없었어 이건. 

 

추악하고 더러분 애가 지들의 롤모델이라며 우리가 머요 해대고. 

 

저게 말이 되냐고 헌데 말이 되는겨 이게. 

 

데카르트 가 먼지 몰라. 칸트 가 먼지 모르고. 헤겔이 먼지 몰라. 철학계가 완벽하게 무지해서, 이 나라가 지쩍 수준이 여전히 오멘 의 오컬트 로 넘쳐날 뿐인겨 이게. 쟤들 봐라? 지들이  똑똑한 이성적 인간인줄 안다니까? ㅋㅋㅋ. 하기사 동양철학 한다는 애가 서양철학 안다는드시 선생 소리 들으며 위대한 석학 놀이 하는 마당이니 테레비에 나와서. 

 

참 끔찍한 나라야.

 

헌데 저게 모든 비유럽의 공통 문제야. 심각한겨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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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가  찐한거야. 그 뒤의 애들은 데카르트 의 아류야. 그걸 칸트 와 헤겔 이 증명과 방향제시를 하면서 저건  강력해 글들을 보면. 막 떨려. 나는 보면. 저런 글을 보면. 왜냐면 난  쟤들 사유 를 다 이해를 하잖니. 

 

이그지스텐셜 리즘은. 칸트에 대한 반발이야. 칸트는 보편이란 유니버설 에 환장한 인간이야. 그걸 거부하는겨. 나 라는걸 생각하는 나 에서 벗어나고자 하는겨. 데카르트에 대한 반기야. 이그지스턴스.야. 이건 머야? 기생충 아홉가지 카테고리가 붙은 숙주 우시아야. 방점은 기생충 카테고리들.이야. 각각의 이그지스턴스 기생충 카테고리가 붙은 이 상황 이 문제의 중심이야. 이건 하이덱거 의 존재 라는 것과 똑 같은겨 얘의 존재란 말도 콘틴전시 라는 상황상황에 붙어다니는 기생충카테고리가 붙어있는 나여. 우시아 라는 나 에서 이그지스턴스 라는 나 로 빠져 나오면서 해결책을 달리가는게 이그지스텐셜리즘 이야. 

 

저걸 실존이 어쩌고 존재가 저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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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지스턴스 가 에센스 보다 앞에 선다 라는게 머겠어? 기생충이 더해진 숙주 가 숙주 그 자체보다 중요하단겨. 데카르트 의 나, 칸트의 나.에서 기생충과 함께하는 나로 온겨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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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가 저런 데카르트 를 트집잡는겨.

 

헌데, 가만 디다보믄, 스피노자 는 데카르트 와 다를게 없어. 

 

서두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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