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쟁. 네덜란드 80년 전쟁. 잉글랜드 내전.이 끝나면서, 17세기 후반은, 유럽 전역에서 복잡하게 보이는 전쟁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이걸 제대로 정리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글러는 없을테고, 아시아에도 거의 없을테고, 유럽애들도 이걸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애가 없을텐데. 내가 그야말로 독보적일 테지만.
진짜 이해하고픈 빠나나덜만 따라오도록 해.
머가 생각이 나냐면,
The Eden Treaty was a treaty signed between Great Britain and France in 1786, named after the British negotiator William Eden, 1st Baron Auckland (1744–1814)
이든 조약. 1786년. 영국과 프랑스 가 체결한거야. 오클랜드 남작 윌리엄 이든.이 주도를 한거고, 이 사람 이름을 딴건데.
네이버 검색 해보니, 이게 전혀 없는게 참 어이없지도 않지만.
정말 우리넨, 개무식한겨 이건.
It was spurred on in Britain by the secession of the thirteen American colonies, and the publication of Adam Smith's Wealth of Nations.
미국독립전쟁 끝나는게 1783년.이야. 아담스미스 국부론이 1776년.이야. 아담 스미스의 이야기로, 프리마켓 이란 자유무역.이 나오는거야, 분업과 함께. 이 사상이 딱 10년 심어지고 나온게 이든 조약이야. 관세를 없애는겨 서로. 영국과 프랑스가. 영국은 미국이 떨어져 나가자 마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거고, 3년후의 조약이야. 프랑스도 경제가 개판이 된 상태고. 영국이 꼬시는거야, 우리 둘이 이제 살길은, 자유무역 을 하는거다. 관세 라는걸 우리가 만들었었는데, 미안하다, 이제 서로 자유롭게 무역하면서 너와 나의 국부를 늘리자. 아담 스미스의 말이 맞다 생각해보니.
프랑스.가 무식해졌걸랑. 이 프랑스는 참 문제인데. 루이 14세를 겪으면서 완전히 바보 지능이 되버리고 지금 프랑스가 되어버린거야 쟤때.
지금 중국이란 나라는, 철저하게 유럽애들의 보호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나라일 뿐이야. 프리마켓 을 중국에 적용하면 중국은 설 수가 없어.
저건 경쟁력 없는 애들에겐, 필패여 저게. 프랑스가 이걸 덥썩 받고, 터진게 프랑스 대학살 1789.야. 안좋은 경제가 더 안좋아진겨.
This treaty is often considered to be one of the grievances of the French people that sparked the French Revolution. The treaty collapsed in 1793, following claims in the National Convention that the Aliens Act 1793 breached the terms of the treaty and the outbreak of war in early February between Great Britain and France ended any chance of a compromise.
이든 조약은 프랑스 시민들의 분노들중의 하나로 종종 여겨진다,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켰다. 1793년 국민 공회에 에서 이 조약을 파기하고, 곧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하게된다.
프랑스 1789 시작할때, 국민제헌회의.라고 일본애들이 번역했지만, 함께하는 의회.를 만들고, 그리고 바스티유 감옥 사건이 터지고, 다음에 만드는게 국민 공회 라는 내셔널 컨벤션 이야. 여기서 이든조약을 파기하는겨 일방적으로. 가장 저주받을 조약이야 프랑스 애들에겐.
왜냐면, 프랑스 라는 나라는, 루이 14세 를 지나면서, 완전히 경쟁력이 사라지는겨 상품시장에서. 얘들은 중세영지체제를 벗어나지 못한거야. 영국은 잉글랜드 헨리 7세 부터 상업 이 최고의 가치 임을 안겨 튜더 시작할때. 엘리자벳 이 한 짓이, 모스크바 컴퍼니, 레반트 컴퍼니여. 모스크바 에도 상인들이 가고, 터키 오스만 상대로 장사하는게 핵심 임을 안겨 이미. 배론들이 장악하면서 인클로저 운동이 13세기야. 마그나 카르타 1215이후 자잘한 배론들에 젠트리 들이 등장하면서, 니꺼 내꺼 가 명확해지는겨. 헨리7세는 이걸 보면서 상업 이고 부르즈와 가 나라를 떠받치는 힘이구나 를 간파한거고.
위대한 애야 헨리7세는. 저런 헨리7세를 언급하는 한글러들 보면, 돈만 밝히는 헨리7세. 이 유교에 쩐 위선적인 애들은 대갈빡에 똥만 처박힌거라, 위대한 조선 위대한 중국 외엔 뵈는게 없걸랑.
저 상업 감각이, 길게는 인클로저로 5백년 차이고, 짧게는 헨리7세부터 3백년 차이야.
프랑스가 상대가 안되는겨 이게. 영국은 저 이후 계속 저걸 확장한 나라고 저 개념의 사버린.을. 이걸 버리지 않았어 영국 사버린의 킹체제 리더들은. 크롬웰도 세금 더 걷기위해서 항해법 을 만드는겨. 무역 이 가장 중요한걸 알아 쿠데타 애들도. 쟤들은 위인전 이 걍 모두가 위인이여 이게. 저 인물사 하나하나가 음청난 이야기의 인간들이고. 저런 애들 보다가 극동 애들 보면, 이건 똥자루 들을 위인 해 대는 이게,
루이14세의 전쟁.이 저 속에서 발악하는겨
얘들은, 남들이 상업으로 국부를 키우는걸, 전쟁해서 빼앗자. 그럼 우리께 될 지니.
얜 중세를 못벗어난겨 이게. 시대에 뒤쳐진겨. 프랑스는 데카르트 를 낳고서 끝난겨 여긴.
Mercantilism is a national economic policy that is designed to maximize the exports, and minimize the imports, of a nation. These policies aim to reduce a possible current account deficit or reach a current account surplus. Mercantilism includes a national economic policy aimed at accumulating monetary reserves through a positive balance of trade, especially of finished goods. Historically, such policies frequently led to war and also motivated colonial expansion.[1] Mercantilist theory varies in sophistication from one writer to another and has evolved over time.
머컨털리즘. 이라는거야 이때 등장하는게. 중상주의. 유치한 정리야 저런건. 수출을 극대화하고 수입을 극소화하는 국가의 경제정책. 이 정책의 목적은 흐르는 계정, 경상수지라 일본애가 번역한, 흘러가는 무역으로 인한 계정.의 부족, 즉 적자를 줄이고 이익을 늘리는 것이다. 중상주의는 화폐 보유를 축적하는게 목적이다 무역의 이익을 통해서, 특히나 완제품을. 역사적으로 이건 종종 전쟁을 낳고, 식민지 팽창을 부추겼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의견차가 많다.
Mercantilism was dominant in modernized parts of Europe from the 16th to the 18th centuries, a period of proto-industrialization,[2] before falling into decline, although some commentators argue that it is still practiced in the economies of industrializing countries,[3] in the form of economic interventionism
16세기에서 18세기 까지의 유럽 근대화 부분들에서 지배적이었다, 이때는 산업혁명을 낳는 윗시대이고, 경제적 개입의 형태로 여전히 시행이 되고 있다 이런 개념의 중상주의 라는건.
The Italian economist and mercantilist Antonio Serra is considered to have written one of the first treatises on political economy with his 1613 work, A Short Treatise on the Wealth and Poverty of Nations
안토니오 세라. 칼라브리아 Cosenza 코젠차 사람. 이탈리아가 항상 먼저여 이런것도. 이사람이 1613년 처음 논문을 쓰다 국가들의 부와 가난에 대한 짧은 논문. 대담. 이 트리티즈 라는 제목으로 대게 책을 냈어 중세에도. 이후 163년 후 1776년에 국부론이 나오면서 이걸 보탠겨 아담 스미스가.
Mercantilism in its simplest form is bullionism, yet mercantilist writers emphasize the circulation of money and reject hoarding. Their emphasis on monetary metals accords with current ideas regarding the money supply, such as the stimulative effect of a growing money-supply. Fiat money and floating exchange rates have since rendered specie concerns irrelevant
아 이걸 더 풀생각은 없고, 이전에 프라이스 레볼루션.이라는 화폐가치 전환 언급을 했지만, 이 프라이스 레볼루션 이라는게, 물가가 오르는게 아녀 이건. 이건 화폐량 이 급증을 한거고, 이걸 퍼담을 인간 문명이 확장이 된겨 동시에. 물가는 폭등하지 않아. 왜? 물가가 오른다는건, 상품제공능력은 한정된 상태에서 화폐량이 많으면 오르는거 아니겠니? 상식 아니니? 초딩애들 산수여 이건. 뭔놈의 논문도 아니고.
저때는 불리온 코인.의 시대야. 피아트머니가 아녀. 갑자기 금은 골드실버가 급증을 했어. 그만큼 저걸 쓰고 활용할 재화와 용역, 상품과 서비스 도 갑자기 필요해진 시대야 저게. 저걸 유럽 문명이 다 받은겨 저 터져나오는 금과은을. 물가는 폭등하지 않아. 프라이스 레볼루션 이라는건, 물가 폭등 이 절대 아니고, 화폐량 급증 이야. 전혀 다른 전제조건은 머야? 급증한 화폐를 받아 수용할 만큼 물질문명창출 능력의 급증이야.
이건 오직, 금은 본위제 를 철저하게 2천년 이상을 수행해온 이 바닥에서 벌어지는 일이여. 이걸 항상 명심해야 해.
화폐라는건, 그 자체는 걍 화학기호 덩어리여. 걍 돌멩이여 저건. 불리온 코인이란건. 돌멩이야 돌멩이. 헌데 저 돌멩이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갖춘겨 2천년 이상.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로 따지면 2500년 이상을. 금은 본위제 기준으로. 이전 수메르 조차도 저런 화폐로 움직여진거고. 이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겨 보다 잘 살도록. 이게 짐승과 전혀 다른겨 이게.
짐승 수준 지능의 애들이, 돈이 나쁘고, 저기에 자본주의 딱지 붙이고 적폐인거고 저것들은, 그리곤 고대야만으로 돌아가자며 지들 배떼기만 불리는 애들이고. 모~~
조선 오백년과 그 핏줄들이 여전히 이땅을 못 죽여 환장하는 이유고.
루이14세는, 프랑스 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애 중에 하나지만, 저 부.를 갖기 위해서 저 화폐를 얻기 위해서, 꺼낸 전략이 전쟁 으로 취득하려는겨 이들이. 시대가 바뀐걸 모르고.
금은.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가 국부 가 강한겨. 불리온 코인 시대에.
저때 쟤들은 단지 저거 하나에 꽂힌겨 애들이. 특히나 프랑스 애들이. 저건 루이 14세 만의 잘못이 아냐. 리슐리외 마자랭 포함 모든 치자 들 참모들의 공통된 생각이야 저게. 프랑스는 데카르트 낳고 끝인겨 얘들은.
30년 전쟁 이후 유럽 전쟁은, 금은 갖기 전쟁이야 저게. 워즈 포어 골드 앤드 실버.여. 모~~든 전쟁이 저때는 금은 이라는 불리온 코인 상대가 갖은거 뺏아오기야. 금은 이라는 화폐 를 어떻게 더 많이 취할 수 있는가 거점 쟁취 전쟁이고. 우리의 상인 무역을 손해 시키는 놈들을 진압하기 위한 전쟁이야.
이전의 중세전쟁은, 후계자 쟁탈 전쟁이야. 영주 가 죽으면, 저 영주의 영지 를 내가 갖을텨. 해대는겨. 그걸 통해서 권력으로 개인의 부든 영지인들의 부든 내가 얻어서 누리고 운영하겠다는거야. 상대 영지를 내가 우리가 갖고 오겠다는거고.
이젠, 이런 개념은 점점 사라지고, 우리가 장사하는데 괴롭히지 말어! 우리 장사하고 돈버는데 조폭 삥땅치는 짓좀 하지 말어! 이거야 앞선애들은.
헌데 늦은 애들은 머하겠어? 조폭 나와바리 놀이하는겨 이게. 니가 갖은 상권 임자는 나야 나. 이는 여전히 중세 후계자전쟁 프레임 을 못벗어난거야. 저 땅을 갖고 오면 저 상인들 포함 저 문명은 내꺼얌. 여전히 이짓 을 해대는 놈이 있는겨. 얘들은 전쟁을 해도, 이게 자기것이 안되는거야. 갖고 있으면 머하냐고, 그게 자기화 자기들화 가 안되는데.
이런 프레임 대표적인 애들이, 스페인 인겨. 얘들의 식민정책은, 걍 저 땅에 있는거 빼내오는 짓 만 하는겨 이게. 그리곤 이걸 또한 군대 용병 에게만 뿌리고. 왜 뿌려? 저 땅을 확장 유지 하기 위한 용도로 전쟁에만 쓰는거야. 그렇다고 전쟁을 위한 기술 개발 에 전념하는것도 아니고, 단지 그 기술을 돈으로 사기만 하는거고. 파는 애들은 계속 팔려고 만들면서 능력 키우는거고. 스페인 애들은 살 줄만 아는겨. 군대로 만들고 찾은 돈으로, 구입만 할줄 아는겨. 이 구매력으로 유럽에 화폐가 뿌려지면서 저걸로 유럽이 문명이 급 확장을 한거지만.
이게 또한 프랑스야. 특히나 저 루이14세.
Louis XIV (Louis Dieudonné; 5 September 1638 – 1 September 1715), known as Louis the Great (Louis le Grand) or the Sun King (le Roi Soleil), was King of France from 14 May 1643 until his death in 1715. His reign of 72 years and 110 days is the longest recorded of any monarch of a sovereign country in European history.[1][a] In the age of absolutism in Europe, Louis XIV's France was a leader in the growing centralisation of power
1643년 5세에서 1715년 77세까지 72년 재임인데. 유럽 역사 어떤 군주보다 가장 길다 재임이. 당시 권력 집중의 리더 였다. 르와 솔레이 라는 썬 킹. 태양왕.은 당대에 얘가 자기한테 붙인 닉이야.
He sometimes danced leading roles which were suitably royal or godlike (such as Neptune, Apollo, or the Sun).[104] At other times, he would adopt mundane roles before appearing at the end in the lead role. It is considered that, at all times, he provided his roles with sufficient majesty and drew the limelight with his flair for dancing.[104] For Louis, ballet may not have merely been a tool for manipulation in his propaganda machinery. The sheer number of performances he gave as well as the diversity of roles he played may serve to indicate a deeper understanding and interest in the art for
춤출때 킹의 품격에 맞는, 신과 같은, 넵튠 아폴로 또는 태양 같은 꼭지 역할을 췄다. 때로는 선두열에서 끝에 나타나기 전에 먼데인 롤, 땅의 역할, 우주의 역할을 했다. 언제나 그는 충분한 위엄과 각광받는 재주로 춤을 추다. 사교댄스에서 그는 자기 정책 프레임용의 도구로 쓴것 만이 아니다, 예술 자체에도 조예가 깊었다. 머 당연한 말을 덧붙이냐. 저게 얘를 띄우는 사가애들의 서사걸랑.
얜 걍 뽕맞은 앤데.
Louis XIV was declared to have reached the age of majority on 7 September 1651. On the death of Mazarin, in March 1661, Louis assumed personal control of the reins of government and astonished his court by declaring that he would rule without a chief minister:
루이가 1651년. 프롱드2차 이전 13세에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애인거고. 그리고 마자랭은 10년 후 1661년 에 죽고, 엄마 앤.은 1666년에 죽어. 마자랭과 엄마가 정치를 한거고, 마자랭 죽고서 자기정치를 제대로 하는겨 1661년 23세에. 이때부터 1715년 까지, 54년 동안 완전히 얘만의 시대여 이게.
Franco-Spanish War 1635–1659
War of Devolution 1667–1668
Franco-Dutch War 1672–1678
War of the Reunions 1683–1684
Nine Years' War 1688–1697
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1701–1714
Spanish-Portuguese War 1640–1668
1652–1654
First Anglo-Dutch War
1665–1667
Second Anglo-Dutch War
1672–1674
Third Anglo-Dutch War
1780–1784
Fourth Anglo-Dutch War
마자랭이 1661년 죽고 23세 루이 이전에, 30년 전쟁 끝난 상태에서 프랑스는 스페인과 계속 전쟁하는거고 1659년 까지. 마자랭이 루이 결혼 시키고 죽은겨. 루이 엄마 앤.은 펠리페3세의 딸이자 펠리페4세의 누나고, 루이 부인은 펠리페4세의 딸이고. 다우리를 쎄게 받기로 했는데 못받고, 프랑스도 안받아 더 큰걸 받으려고.
루이는 전쟁만 하다 뒈진겨 자기가 권력 잡고도. 23세 1661년 부터는 얘가 의사결정을 하는겨. 이때 니덜 앞으로 내 허락없이는 이도저도 하지 말라면서 선포를 하걸랑. 이런 이야기에 프랑스 사가는 오 위대한 천재의 연설, 이따위 해 대고. 역사 후진 애들은 기본적으로, 근대 사가 애들이 후지고 지식인 애들이 후져 공통적으로.
얘가, 스페인과 상속전쟁(Devolution), 네덜란드 전쟁, 리유니온 전쟁. 9년 전쟁, 스페인 후계자 전쟁. 하면서 권력 직접 잡고 54년을 보낸겨. 저기서 네덜란드 전쟁, 9년전쟁(대동맹전쟁), 스페인 후계자 전쟁은 그야말로 대전. 이고.
이 와중에, 포르투갈이 독립선언하며 터지는게 스페인-포트투갈 전쟁.이고. 잉글랜드-네덜란드 2차 3차 가 터지고,
- 1653 Swiss peasant war of 1653
- 1654 First Bremian War
- 1654–1667 Russo–Polish War
- 1654–1660 English-Spanish War – 15,000 killed in action[1]
- 1655–1660 Second Northern War
- 1656 War of Villmergen
- 1663–1664 Austro-Turkish War
- 1666 Second Bremian War
- 1666–1671 Polish–Cossack–Tatar War
- 1672–1673 Second Genoese–Savoyard War
- 1675–1679 Scanian War
- 1676–1681 Russo-Turkish War
- 1679 Covenanter Rebellion
- 1683–1699 Great Turkish War – 384,000 killed in action[1]
- 1685 Monmouth Rebellion
- 1689–1692 First Jacobite Rising
스위스는 1653년 농민전쟁에. 1656년 필메르겐 전쟁.이고, 브레멘 이 스위든 으로 들어간걸 부정하는 전쟁을 두번을 하고, 러시아와 폴란드.가 본격적으로 부딪히는 시기고, 다시 오스만이 합스부르크 와 부딪히고, 이게 1683년에 비엔나 전쟁이 터지는 대투르크 전쟁.으로 이어지고. 스콧 커버넌트 반란에 제임스2세 반대하는 먼머쓰 반란에 이어 1688 명예혁명으로 제임스2세 되찾기 반란하는 브리튼 내전이 벌어지는데. 저 상황에서, 잉글랜드는 크롬웰 서고 스페인과 전쟁하고, 포르투갈은 독립한다고 전쟁하고. 네덜란드 는 프랑스 와 전쟁하고, 이 네덜란드는 이와중에 뜬굼없이 덴마크와 손잡으려고 스위든 을 적으로 돌려. 이게 드비트 라는 홀란드 리더.의 뻘짓 이걸랑. 그러면서 이 네덜란드가 1655년부터의 노던 워 라는 북의 전쟁에 개입을 하고. 이 북의 전쟁이라는게 스위든 카를10세 가, 폴란드 휘젓고 유틀란드 반도에서 바다 건너서 코펜하겐 포위해서 로스킬러 조약으로 드뎌 스위든 아래를 갖고 오면서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얘들께 되고 사운드 해협을 쥐면서 북해랑 연결이 되면서 스위든 제국이 되는건데.
프랑스, 잉글랜드, 네덜란드, 스위든, 은, 돈이여 돈. 이제 돈벌겠다고 전쟁하는겨 저게.
프랑스.는 직접 땅을 취하면서 돈 갖고 오겠다는 중세를 못벗어난거고, 이게 러시아 이고 오스만 이여 여전히. 특히나 오스만은 여기에 여전히 종교가 깔린거고. 이제는 종교 신앙 을 목적으로 전쟁하는 애들은, 걍 짓밟혀 뒈지는겨. 시대에 뒤떨어진 애고. 저 와중에, 여전히 종교 에 목멘 애가 찰스2세 동생 제임스2세여. 쫓겨나서 자코뱅 재코바이트가 되는겨 이런 덜떨어진 애는. 잉글랜드 내전의 세킹덤의 전쟁하면서, 끝난겨 저따위 종교 이념은. 제임스 2세에 덜떨어진 저 스콧 커버넌터 들이나 카톨릭의 아일랜드가 여전히 종교 명목으로 저지레 할 뿐이고. 이 아일랜드는 이전 내전때 아이리쉬 프로테스탄트랑 뭉쳤으면 오히려 브리튼이 얘들께 되었을 수도 있어.
스위든은 저기서 무역로 개척하려는 사운드해협 숨통 여는게 목적이고. 땅 더 늘리는건, 이건 부차적인겨.
프랑스의 가장 큰 실패.는 모자란 세금을 취하기 위해서 땅을 갖고 오는데 환장한겨 이게. 이건 리슐리외 마자랭 의 책임이여. 이런걸 볼 수도 없었는지. 얘들은 어떻게 하면 저 중세 시스템에서 세금을 더 거둘수 있을까, 세목을 어떻게 더 만들까, 이게 가장 골친겨. 모자르는 세금에, 주위 애들의 침략을 버티고, 로타링기아 , 아 이놈의 로타링기아 가운데 땅은 걍 천년 이상의 숙제여 저게.
돈이 없어 돈이. 세금을 쥐어 짜야해. 영주들을 들들 볶다가, 얘들이 시민들에게 직접 세금을 거두는겨. 그러면서, 오히려 영주들이, 킹 코트의 세무서 대행에서 이게 해방이 돼. 근대의 징세 는 대륙에서 이때 시작하는겨. 직접세 라는걸 지금식의 직접세 로 이해하면 안돼.
일본 애들은, 농민들에게 연공을 받아서 그걸 봉록으로 자기들 사무라이들에게 나눠주는겨. 오공오민 이라는게 민들이 다섯 먹고 다섯을 영주가 받아서 영주가 받은 다섯으로 해결하는겨. 민들 세금이 50퍼 지만. 이걸로 조선 위대해 해 대걸랑.
조선은, 구분의 일 십분의 일.을 직접 중앙 코트 에서 갖고가는겨. 나머지 일곱 여덟에서, 양반 지주가 반 이상을 처먹는거고. 농민이 갖고 가는건 삼사십퍼여 그게. 가져간 양반은 세금을 내겠니 저기서. 그렇다고 사무라이 가신단 운영하듯이 돈이 들겟니 조선 양반들이.
그것도, 저땅주인은 이놈저놈이 서로들 자기땅 이라며 저놈 이놈 이 반씩들 막막 갖고 가는겨 이 조선 들이.
일본들은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니?
유럽 세금체제가 일본애들이랑 비슷한겨 이게. 영주가 걷는겨 자기 영지인들에게. 이걸, 영주 를 제치고 킹의 코트에서 직접 걷어가는게 저때부터여.
그러면서, 세목을 늘리고, 막막 세금을 쪼면서 얻은 금은 으로 전쟁을 하고, 모자르는 금은 을 위해서 남땅의 금은 을 취하려고 전쟁을 하는겨 이제부턴. 불리온 코인 시대여 아직.
어이 재무관, 돈이 없어? 괜찮아, 저 나라 치면 돼.
악순환의 연속이고, 루이는 이짓만 한겨.
According to Philippe de Dangeau's Journal, Louis on his deathbed advised his heir with these words:
Do not follow the bad example which I have set you; I have often undertaken war too lightly and have sustained it for vanity. Do not imitate me, but be a peaceful prince, and may you apply yourself principally to the alleviation of the burdens of your subjects.[114]
루이 14세가 죽을때, 침상유언을 후계자에게 한겨. 내가 너에게 남긴 이런 나쁜 사례를 따르지 말아라. 나는 종종 너무 쉽게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을 지속했으나 소용은 없었더라. 나를 모방하지 마라, 평화로운 군주가 되어라, 너의 속지인들 신민들의 부담을 줄이는데 기본 원칙을 두거라.
Some historians point out that it was a customary demonstration of piety in those days to exaggerate one's sins. Thus they do not place much emphasis on Louis' deathbed declarations in assessing his accomplishments. Rather, they focus on military and diplomatic successes, such as how he placed a French prince on the Spanish throne.
저걸 해석하는 사가들, 저런 말은 군주들 뒈질때 흔히 하는 고해성사식 말일뿐 자기 죄를 과장하면서. 루이의 침상유언에 비중 둘거 없다며, 루이의 업적을 칭송해야 한다는겨 사가들 주장은.
미친겨 저 프랑스 사가들은. 정말 너무 무지한건데.
Louis XV (15 February 1710 – 10 May 1774), known as Louis the Beloved (French: le Bien-Aimé),[1] was King of France from 1 September 1715 until his death in 1774.
루이15세가 루이 14세의 증손자야. 네살에 올라서 1774년. 64세에 죽어, 59년을 해. 얘때 망한겨 프랑스가. 그리고서 이든 조약.을 1786년 에 한겨 영국과 프랑스가. 관세 다 내리고 서로 시장을 열었어 프리마켓.
프랑스 경제가 맛이 간 상태에서, 더 맛이가는겨 이게. 프랑스 경제력이 영국에 전혀 상대가 안되는겨. 그리고 터진게 1789 프랑스 대학살이야.
루이14세의 전쟁질은 아무런 의미 없는 전쟁이었어. 프랑스의 힘을, 중세 천년 이상의 힘을 모두 소진한 전쟁이야 루이14세의 전쟁은.
헌데 저런 루이를, 위대하다며 찬양질 해대는 애들이 프랑스 사가들이고.
일단 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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