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638년.의 글로브 띠어터 전경. 보헤미안 바츨라프 홀라 Wenceslaus Hollar (13 July 1607 – 25 March 1677) 가 그린 런던 뷰.중에 글로브 띠어터.라는 셰익스피어 연극단 회사.의 극장.인데.
The Globe Theatre was a theatre in London associated with William Shakespeare. It was built in 1599 by Shakespeare's playing company, the Lord Chamberlain's Men, on land owned by Thomas Brend and inherited by his son, Nicholas Brend and grandson Sir Matthew Brend, and was destroyed by fire on 29 June 1613.[4] A second Globe Theatre was built on the same site by June 1614 and closed by an Ordinance issued on 6 September 1642.[5]
1599년에 세우고. 1613년에 불나서. 다음해 다시 세우고 1614년. 2년후에 셰익스피어가 죽어 1616. 그리고 1642년에 파괴가 돼. 퓨리튼 애들이 없애는겨. 이 1642년.이 잉글리쉬 내전의 시작이고, 7년후인 1649년에 찰스1세 의 모가지가 짤리고, 저 퓨리튼의 올리버 크롬웰.이 민주 해대면서 독재를 하는거지.
Oliver Cromwell (25 April 1599 – 3 September 1658)
얘가 편히 살다가 59세인 1658년에 편하게 뒈지걸랑.
he is often the central focus of wider debates about whether, as historians such as Mark Levene and John Morrill suggest, the Commonwealth conducted a deliberate programme of ethnic cleansing in Ireland.[88] Faced with the prospect of an Irish alliance with Charles II, Cromwell carried out a series of massacres to subdue the Irish. Then, once Cromwell had returned to England, the English Commissary, General Henry Ireton, adopted a deliberate policy of crop burning and starvation. Total excess deaths for the entire period of the Wars of the Three Kingdoms in Ireland was estimated by Sir William Petty, the 17th Century economist, to be 600,000 out of a total Irish population of 1,400,000 in 1641.[89][90][91] More modern estimates put the figure closer to 200,000 out of a population of 2 million.[92]
얘가 죽인 아일랜드인이. 인종대총소를 하는데 얘가. 저때 죽은 아일랜드인이 140만명 중에 60만명이 죽다. 보다 최근엔 2백만 중에 20만이다 라는 소리도 나오는데. 아일랜드인들에겐 지금도 히틀러 보다 악마가 이 올리버 크롬웰 이야. 라운드헤드.에 위그 걸랑. 이게 소위 인민민주 란겨 이게. 이들은 학살 을 좋아해 역사를 보면. 얘들이 그래서 존경하는게 올리버 크롬웰, 1789년 프랑스 대학살, 모택동이 시진핑이 김일성이. 위인이야 얘들에겐. 왜? 사람들 죽이는걸 좋아하걸랑. 적폐걸랑 상대가. 프랑스 1789 대학살 이야길 뒤에 하겠지만, 아 은제 하냐 저걸.
조지 몽크.가 영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이야. 찰스2세 를 다시 올리고, 대관식이 1661년 이야.
Cromwell's body was exhumed from Westminster Abbey on 30 January 1661, the 12th anniversary of the execution of Charles I, and was subjected to a posthumous execution, as were the remains of Robert Blake, John Bradshaw, and Henry Ireton. (The body of Cromwell's daughter was allowed to remain buried in the Abbey.) His body was hanged in chains at Tyburn, London and then thrown into a pit. His head was cut off and displayed on a pole outside Westminster Hall until 1685. Afterwards, it was owned by various people, including a documented sale in 1814 to Josiah Henry Wilkinson,[141][142] and it was publicly exhibited several times before being buried beneath the floor of the antechapel at Sidney Sussex College, Cambridge in 1960.[139][143] The exact position was not publicly disclosed, but a plaque marks the approximate location.[144]
조지 몽크.가 바로 찰스2세를 올리고, 대관식하기 전에, 찰스1세 처형당한 날 1월 30일.에 올리버 크롬웰 시체를 꺼내서 효수 를 해. 로버트 블레이크 는 넬슨보다 더 쳐주는 해군 제독이고, 존 브래드쇼.는 당시 판사였고, 헨리 이어튼.은 크롬웰 사위이자 사령관이고. 사후 처형을 하는겨. 목을 메달고, 죽였다 하는거고, 그다음에 목을 짜르는겨 저들 차례차례로
저게 당시 그린 그때 그림이야. 누가 그렸는지는 몰라. 크롬웰을 첫번째 저리 하고, 다음 브래드쇼. 다음 이어튼. 저 셋은 목을 차례대로 짜르고, 셋의 목은 따로 웨스트민스터 홀.의 바깥에 걸어놓는겨. 1685년 까지 25년간을. 짤린 몸뚱아리들은 한 구덩이에 묻었다는데 셋 다. 어딘 지 몰라. 저 머리.는 서기 1960년. 케임브리지 에 최종 묻히고, 이전에 몇번 더 공개적으로 걸고. 걍 얼마나 치가 떨렸으면.
로버트 블레이크.는 머리를 안짜르고 그냥 교회 묘지에 파묻은겨. 이 사람은 좀 다르걸랑.
헌데 저 셋 다 저 사후 처형식때 진짜 시체들이 아니란 설도 있고, 이미 분위기 파악해서, 발굴되서 훼손될껄 눈치채서 가족들과 수하애들이 미리 빼돌렸다는 설도 있는거고. 걍 썰일 뿐이고.
아무리 대갈빡이 안좋아도, 올리버 크롬웰에 휘그당 찬양하면서, 아일랜드 위대해 는 하지 말거라. 아일랜드 애들에게는 쟤들이 히틀러보다 사탄이니까.
이 들은 말야, 터키 도 자기 형제래. 터키 애들이 아르마니안들을 백만명을 학살했어. 저때 터키도 청년 혁명 당 어쩌고 민주 해대면서 저 짓을 한거걸랑.
똑같아 역사는 세계적으로. 혁명 데모크라시 인민 해대던 애들치고, 정말 악랄하게 대규모로 인간들을 안 죽인적이 없다 이게. 아니면 굶겨 죽이거나. 시장을 악으로 규정하고 굶겨 죽여 인민들을. 모든 경제 는 지들이 규정한데로 움직여야 한다며. 그게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이랍시고 천만명이 굶주려 죽은거다 그게.
어떻게 아무리 인민 민주 해도 그렇지, 모택동이 위인이랍시고 빨아대냐. 어떻게 여전히 김일성 이 위대하단 애들이 있냐. 왜냐면 쟤들은 쟤는 적폐 를 청산했다는거걸랑. 친일 적폐를 청산해서 위대한겨. 모~~든 학살당한 이들은 양민학살 들의 그 양민들도 당연히 죽여할 애들을 죽인겨. 위대한겨 그래서.
어떻게 시진핑이 위대하다고 방송에서 저짓을 해대는거며. 위대한지 다행인지 라 말했냐 저게? 중국민들에겐 시진핑이 짱이 된게 참 다행이냐? 라 핸냐 저게?
천안문 민주화 는 왜 가만 있니. 같은 민주화인데 저들이 더 악랄하게 죽인거 아니냐? 탱크들 동원한거 봐라 저때.
왜 가만히 있니? 중국이 그리 좋으니?
저것들의 이념은, 단지 하나야 하나. 조선 이란 두글자 에 조선 오백년간 성접대 하고 빌붙어 먹은 저 중국 들이 저것들의 이념의 궁극이야. 아프리카 돼지열병 해대면서 미국 독감 일본 뇌염 은 아무말 안하면서 유독 유한 폐렴 중국 황사 란 용어는 미치겠는겨, 환장을 하는거야. 대체 왜 우리 중국 님들을 폄하하십니까요. 도대체 왜그러세요, 우리 위대한 조선 오백년동안 마음대로 여인들 집단으로 왕조차원에서 창년으로 만들고 변방에 창녀로 공급할 수 있었던 우리 오백년 다이너스티. 중국사신이 오면 성접대 해야 하고, 중국에게 여인 줘서 순장도 시켜야 하면서 유지 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위대한 조선 오백년을 있게 한 중국님들한테 대체 왜 그러세요. 배우세요 좀 조선 왕조님들을, 38년만에 도망나온 안단 이란 조선인도 돌려보내잖아요. 철저한 중국인의 노예가 될 생각을 하세요 좀. 중국은 우리의 꿈이예요 꿈.
아프리카 돼지열병 해도 되고요 스페인 독감 미국 독감 해도 되고요 일본 뇌염 해도 되요. 반일 놀이 열심히 하세요. 그런데요. 중국한테는 제발 머라 마세요. 중국인들이 육이오때 넘어와서 숱하게 죽인것도 머라 마세요. 임란때 얼레빗 참빗 이야기 일본보다 더 악랄하게 약탈하고 죽인거 머라 마세요. 그래선 안돼요. 우리에겐 중국몽이예요.
중국 혐오하면 댓글 삭제해요 이제. 일본 혐오는 마음껏 하세요. 중국에겐 북조선에겐 머라 하시지 마세요. 사과하란말은 일본한테만 하세요. 모든건 일본 탓이예요. 조선은 위대한거예요. 조선을 유지해준 중국은 엄청나게 위대한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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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일랜드인들에겐 여전히 지금도 올리버 크롬웰 하면 그야말로 이가 갈린다 저거.
저 퓨리튼 들이, 또한 미국가서 한 짓이, 착한척 하며 시작한 남북전쟁이다. 저게 저게 지금 미국 민주당 인거고, 쟤들이 양키 고, 미국의 가치는 바닥의 저 올드 싸우쓰 의 카발리에 카바예로 사람들이다. 양키의 말들이 잰틀맨 인거고.
저 절정이 최근 아카데미 상이다. 그게 머냐 그게.
영화 로 무슨 가치를 가르치려하고 무슨 의미를 부여하려하고.
대체 무얼 안다고 지가 누굴 가르치냐. 이 조선 땅빠닥에서.
저 양키의 허섭함이 저지경 까지 온거다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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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홀.에다가 걸어놓는데. 이 웨스트민스터 궁 이란게. 1016년 이여. 크누트 가 와서 있던 곳이여 이 건물이. 지금 이걸 상하원 의회 건물로 쓰는거고. 저 홀이 유럽에서 가장 웅장하고 넓은 홀이고. 천년 된 건물이야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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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때. 저 셰익스피어 극단의 극장.이, 영국내전 시작하는 서기 1642년에 퓨리튼 애들이 파괴를 하고 사라진거야. 그리고 7년후에 찰스 목짤린거고. 저걸 프랑스 에서 1789년 에 하는겨. 찰스 모가지 1649년 후인 140년 만에 프랑스 대학살때 루이 16세.가 1793년. 144년 만에 프랑스에서 똑같이 한거지.
영국에선 조지 몽크.고, 프랑스에선 나폴레옹 으로 보면 안돼 저걸.
영국에선 올리버 크롬웰.이 직접 목짜르고 자기가 킹 행세 한거고 프로텍터 란 새로운 직함으로.
프랑스에선 킹 짜른 앤 똑같이 목짤려 죽여버리고, 로베스 피에르 죽을때 재밌어 이게. 이전 썰. 아 생생한 이야길 해줘야 하는데. 1789년 언제 가냐 이거.
쟤들이 달라 좀. 영국은 저때 너무나 잘 넘어간겨 조지몽크의 판단으로. 프랑스는 조지몽크 같은 인간을 못 키운거지. 얘들이 아직 나폴레옹을 조지몽크 와 비유하걸랑. 아냐 그게.
내 지금 가만 보면, 정말 유럽애들은 자기들 역사를 못봐 제대로.
아 물론 머 조지몽크는 머고 크롬웰의 아일랜드는 머여 해대는 인간들이 대부분이고 이거. 야 이따위 판에서 이따위 얘기를 해야한다니 이거.
The Lord Chamberlain's Men was a company of actors, or a "playing company" (as it then would likely have been described), for which Shakespeare wrote during most of his career. Richard Burbage played most of the lead roles, including Hamlet, Othello, King Lear, and Macbeth. Formed at the end of a period of flux in the theatrical world of London, it had become, by 1603, one of the two leading companies of the city and was subsequently patronized by James I.
저 글로브 띠어터.를 세운 회사.가 로어드 체임벌린즈 멘. 이라는 회사야. 여기의 연극무대를 위한 작품을 대게 셰익스피어가 쓴거고. 여기 주주 가 여섯명인데. 버비지 형제.가 각각 25퍼 를 갖은 50퍼의 대주주.야. 셰익스피어 랑 친구여 이 형제가. 극단 주주이자 배우들이야 버비지 형제가.
Richard Burbage (c. 1567 – 13 March 1619) was an English stage actor, widely considered to have been one of the most famous actors of the Globe Theatre and of his time. In addition to being a stage actor, he was also a theatre owner, entrepreneur, and painter. He was the younger brother of Cuthbert Burbage. They were both actors in drama. Burbage was a business associate and friend to William Shakespeare.
Cuthbert Burbage (c. 15 June 1565 – 15 September 1636) was an English theatrical figure, son of James Burbage, builder of the Theatre in Shoreditch and elder brother of the actor Richard Burbage. From 1589 he was the owner of the ground lease of the Theatre. Best known for his central role in the construction of the Globe Theatre, he was for four decades a significant agent in the success and endurance of Shakespeare's company, the King's Men.
William Shakespeare (bapt. 26 April 1564 – 23 April 1616)
리차드 버비지. 커뜨버트 버비지. 셰익스피어 가 1564년 생이고, 형 커뜨버트.가 1565년. 동생 리차드 가 1567년생이야.
글로브 띠어터.가 1599년.이야. 이건 버비지 형제가 주축으로 극장을 세운겨. 셰익스피어.는 1592년 즈음에 등장해. 28세 정도에. 이때의 극장은 버비지 형제.의 아빠가 만든 극장이야.
The Theatre was an Elizabethan playhouse in Shoreditch (in Curtain Road, part of the modern London Borough of Hackney), just outside the City of London. It was the first permanent theatre ever built in England. It was built in 1576 after the Red Lion, and the first successful one. Built by actor-manager James Burbage, near the family home in Holywell Street, The Theatre is considered the first theatre built in London for the sole purpose of theatrical productions. The Theatre's history includes a number of important acting troupes including the Lord Chamberlain's Men, which employed Shakespeare as actor and playwright. After a dispute with the landlord, the theatre was dismantled and the timbers used in the construction of the Globe Theatre on Bankside.
더 띠어터. 쇼어디치.에 세운 연극전용 극장이야. 서기 1576년. 이전에 있었던 연극극장이 레드 라이온. 붉은 사자.야 서기 1567년. 이건 바로 다음해 사라져. 즉 레드 라이온.은 임시 극장이야. 이건 전혀 다른 연극 회사야.
제임스 버비지.가 저 버비지 형제의 아빠야. 극단 배우들 매니저여. 쇼어비치 에 그야말로 최초로 세운겨 연극극장을. 레드 라이온.은 임시극장인거고. 서기 1576년.에. 스페인 아르마다 1588년 의 12년 전이야. 여기에 셰익스피어 가 28세에 온겨. 1592년에. 제임스 버비지.가 1597년에 죽어. 그러면서 아마 이게 계약문제로 다툼이 생기는 듯한데. 두 형제가 이어받았는데. 해결이 안돼. 그래서 건물을 허물고, 두 형제가 극장을 다시 지은겨. 이건 서덕 Southwark 에 져. 이 서덕.이 캔터베리 이야기의 시작인 여관이 있던 곳이야. 이건 템즈강변 아래이고. 이전 더 띠어터 는 템즈강 좀 먼 북쪽이야.
즉 셰익스피어.가 초반에는 저들 아빠 제임스 버비지.랑 있다가, 제임스 죽고, 형제들이랑 서덕.에 글로브 띠어터.에서 연극 공연을 한겨.
그때 건물이 저 그림이야. 저게 차원이 다른겨 서기 1638년 즈음의 저 극장이 저래.
John Manningham (died 1622) was an English lawyer and diarist, a contemporary source for Elizabethan era and Jacobean era life and the London dramatic world, including William Shakespeare.
존 매닝햄. 이 1622년에 죽은 사람인데. 저 당시 변호사 정도 되나본데. 이사람 일기 가 남은게 있는겨. 이사람 일기가 당시 셰익스피어 연극 보러 간거에 당시 일화들이 있어. 이 중에 유명한게.
The anecdote of Shakespeare's triumph over Richard Burbage in the pursuit of the favors of a lady of doubtful virtue ("William the Conqueror was before Richard III") comes from his diary entry dated March 13, 1602.[3] Sir Thomas Bodley, John Stow, and Sir Thomas Overbury are also occasionally mentioned by Manningham.
정복왕 윌리엄이 리차드 3세보다 먼저왔다. 리차드 버비지 의 배우 모습을 연극으로 본 여자가, 리차드 버비지 에게 쪽지를 보낸거지. 호텔 방번호와 함께. 셰익스피어가 이걸 눈치채고 먼저 저 여자에게 작업걸어서 자기가 방에 들어간겨. 1602년 3월 13일 일기. 버비지가 여자 방에 들어가보니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먼저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거지. 리차드에게 한 말이야 셰익스피어가, 웃으면서 당시.
리차드 버비지 를 리차드 3세. 자기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정복왕 윌리엄.
참 재밌게들 논 인간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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