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é Descartes (/deɪˈkɑːrt/, French: [ʁəne dekaʁt] ; Latinized: Renatus Cartesius; adjectival form: Cartesian[19]:58 /kɑːrˈtiːziən, -iːʒən/;[16] 31 March 1596 – 11 February 1650)
르네 데카르트. 라틴어로 레나투스 카르테시우스. 자기가 라틴어로 이름을 이리 쓴거야. 레나투스 가 자기 이름이고, 카르테시우스 가 성.이야. 데카르트 할 때 데 라는게 des 축약어야. de les 드 레. of the . 카르테시우스 의 레나투스. 카르테의 르네 인겨. 카르테시우스.란 어원은 몰라. 레나투스 라는 르네 는 revived 되살아난 자.야.
원래 우리식으로는, 카르트씨의. 라는 말로 호칭을 하는건데. 이게 유럽애들에 대한 공식적인 예의적 호칭이야. 처음 만나는 사이나 공식적 자리에서 서로간 부를때, 이름을 부르는 건 실례여. 이름 부르는건 아주 편한 사이일때나 부르는겨 저때도. 그래서 쟤들은 서로 만날 때, 자기를 어떻게 불러주세요 하면서 져스트 콜미 어쩌고 로 편한 사람에게 관계를 트는거야. 더 편한사이면 애칭 을 부르라고 하고.
그외에 서로 모르고 안 지 얼마 안된 사이면, 누구네씨의. 라고 부르는겨.
스웨덴의 야콥 드 라 가르디.가 모스크바 원정 할때 나왔잖오. 이사람을 언급할땐 드라가르디. 라고 쓰걸랑. 가르디씨의. 라고 역사서술할때도 이리 쓰는겨. 항상, 드라가르디 가 머했다 라고 하지, 야콥 이 머했다 라고 는 안해.
더하여, 더 격식을 갖추기 위해. 유럽 애들은, 시뇨르 드 라 가르디. 므슈 드 라 가르드 이런 식으로 시뇨르 를 붙여. 드라가르디 선생 이런식으로. 즉 데카르트 를 만날때 상대는 시뇨르 데카르트 므슈 데카르트 라고 했을 거야. 이름 부르는건 실례여 이게.
왜냐면, 저들은 말이지, 가문 의 사람이야.
유교의 패밀리즘 어쩌고 저쩌고 대단한척 유교의 가족주의 자랑을 해대지만, 마치 유럽의 가족주의는 얄팍하고 아시아의 가족주의는 돈독한 듯, 알고 있걸랑. 정말 무지한겨. 정말 너무나 유럽애들의 기본적인 삶의 역사를 너무나 너무나 모르고 하는 말글이야. 아시아인들 대부분이 또한 그렇고.
쟤들은 철저한 가문의 인간들이야. 이름 조차 대대로 쓰는거야 그게. 개인의 정체성 이란 없는겨. 가족 이란 가문의 정체성 의 개인 일 뿐이야. 아빠 이름을 그대로 쓰는겨. 그게 쟤들 헨리 프리드리히 루이 샤를 의 자기땅 소리대로 몇세 십몇세 까지 쓰는거고. 그게 그대로 민들의 이름이야. 개인이란건 없어. 완벽한 패밀리즘의 땅이야 유럽이. 극동보다 더 철저하고 더 평등해. 극동은 여자쪽은 외가잖냐. 유럽은 그냥 커즌 이고 원스리무브드 세컨드리무브드 이지, 외삼촌 이니 외할배 니 따위의 외 짜는 없어. 그런 구분 자체가 없어. 커즌 이면 그냥 커즌 이지, 고종사촌 이종사촌 외사촌 이종사촌 이딴 구분이 없어. 안따져 그딴거. 그딴거 따지는 단어가 없는겨. 단어가 없다는건 그런게 관념안에 존재 하지를 않아. 존재 란건 단지 언어의 주어 서술어일뿐이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굳이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 긴 말을 만들어서 표현하면 모를까.
데카르트 가 1596년생.이야. 기억을 해.
이사람이 근대철학의 시작이고, 유럽이 근대를 이루는데 가장 큰 디딤돌을 만든겨.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무게감을 우린 잘 모르잖니 솔직히.
아시아는 저게 없어. 동양은, 생각하지 않고 따라서 존재하는 개인은 없는겨. 그게, 대가리가 깨져도 랍시고 이젠 자기자체를 부정하는 걸 자랑스레 말하는 수준까지 와버린 오컬트가 된건데. 이슬람과 동양은, 대가리가 깨져도.가 자기들이 자랑스레 내놓는 간판이야 이게.
In 1607, late because of his fragile health, he entered the Jesuit Collège Royal Henry-Le-Grand at La Flèche,[28][29] where he was introduced to mathematics and physics, including Galileo's work.[28][30] After graduation in 1614, he studied for two years (1615–16) at the University of Poitiers, earning a Baccalauréat and Licence in canon and civil law in 1616,[28]
1607년. 11세에 제수이트 칼리지를 들어가서 수학과 물리학을 배우고 갈릴레오도 배우고, 1614년 18세에 졸업해. 프와티에 대학에 2년, 20세에 졸업하고 배철러를 받고 교수자격증을 받아, 교회법 과 시빌로.로. 1616년.
Given his ambition to become a professional military officer, in 1618, Descartes joined, as a mercenary, the Protestant Dutch States Army in Breda under the command of Maurice of Nassau,[28] and undertook a formal study of military engineering, as established by Simon Stevin. Descartes, therefore, received much encouragement in Breda to advance his knowledge of mathematics.[28] In this way, he became acquainted with Isaac Beeckman,[28] the principal of a Dordrecht school, for whom he wrote the Compendium of Music (written 1618, published 1650). Together they worked on free fall, catenary, conic section, and fluid statics. Both believed that it was necessary to create a method that thoroughly linked mathematics and physics.[33]
While in the service of the Catholic Duke Maximilian of Bavaria since 1619,[34] Descartes was present at the Battle of the White Mountain near Prague, in November 1620.[35][36]:
22세에 전문적 군인이 되려고, 낫사우의 모리스. 수하의 군대에 들어가. 브레다 에 있는. 여기서 군사 엔지니어링 을 공부해. 여기서 데카르트가 네덜란드땅의 수학자 물리학자 들에게 많이 배우게 돼. 이작 베크만.이 근대원자론의 시작이야.
저게 웃긴겨. 데카르트는 로마카톨릭 이고, 30년 전쟁 터질때 80년 전쟁 후반전 시작하는 네덜란드 가서 프로테스탄트의 낫사우 밑에서 용병을 하는겨 이사람이. 어릴때 살던 곳은 위그노들 땅이었고 위그노들 여전히 반란해대는 와중이었고, 그러면서도 자긴 카톨릭이걸랑.
더 웃긴건. 1619년. 23세에는 바바리아의 막시밀리안 수하에서 군인생활을 해. 자기의 카톨릭 편이야. 1620년 24세때 백산 전투 에 현장에 있었어.
방법서설.에서 과거 회상하며 쓴데로, 프와티에 졸업하고 나이 20에. 책을 다 놓고 세상경험한답시고 프로테스탄트편 카톨릭편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네덜란드 브레다.에 바바리아 땅에 체코 프라하에 저리 돌아다닌겨.
완전히 사람이 열렸어 이 인간은.
Elisabeth of the Palatinate (26 December 1618 – 11 February 1680), also known as Elisabeth of Bohemia, Princess Elisabeth of the Palatinate, or Princess-Abbess of Herford Abbey, was the eldest daughter of Frederick V, Elector Palatine (who was briefly King of Bohemia), and Elizabeth Stuart. Elisabeth of the Palatinate is a philosopher best known for her correspondence with René Descartes.[1] She was critical of Descartes' dualistic metaphysics and her work anticipated the metaphysical concerns of later philosophers.[2][3]
라인팔라틴의 엘리자벳. 보헤미아 겨울킹퀸인 라인팔츠그라프 선제후 프리드리히5세와 엘리자벳 스튜어트의 딸이야. 30년 전쟁 시작하고 부부가 보헤미아 가기 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낳은 딸이야. 이여잔 칼뱅이야. 나중에 수녀로 죽어. 데카르트 와 편지 주고받으면서 아 당신 이야기 당췌 이해를 못하겠어. 당신의 이원론이라는 몸과 마음 이 따로고, 마음이란 영혼이 송과선 뇌에 있어서 몸을 조종한다는건데, 그게 대체 먼말이야?
저들은 말이야, 아주 솔직해. 생각을 애매하게 같기도 식 표현을 절대 하는게 아냐. 모르면 분명해질때까지 물어야 해.
엘리자벳.이 대체 그러면 어떤 구조와 설계로 송과선 에 위치한 영혼이라는게 몸을 움직이게 하냐는겨. 데카르트에게 완전히 AI 에이아이 로봇 움직이게 되는 그 과정을 이해되게 설명해달란 거걸랑.
데카르트와 저리 대화 주고받는 사람은 칼뱅이여. 그것도 카톨릭과 전쟁하는 프로테스탄트의 대표의 딸이랑 저런 대화를 주고받는겨.
Christina (18 December 1626 – 19 April 1689) became Queen of Sweden at the age of almost six.[note 1] As a member of the House of Vasa, she succeeded her father Gustavus Adolphus upon his death at the Battle of Lützen, but began ruling the Swedish Empire when she reached the age of 18.
스위든 의 크리스티나. 당시 스위든의 권력을 쥔 시집안간 퀸.이야. 이여잔 루터였어. 데카르트 보고 당신 이야기좀 해달라고 부디 스톡홀롬에 좀 와줘요 해대는겨. 데가르트 가 저기 가서 감기걸려 죽어. 사이가 안좋아 디다보면. 크리스티나가 만나보고 먼가 삐쳤어 이 여자가. 여하튼 데카르트 죽고서 크리스티나 는 카톨릭으로 개종을 해. 한글 글들보면 크리스티나가 데카르트를 만나서 카톨릭으로 개종했다는데, 무시칸 소리야. 상관이 없어.
이 유럽애들이란게 지식층이 저런거 보면 아무런 벽이 없어. 이념이나 종교나 이게 무의미한겨 대게들.
연락하는 당사자들도 자기들은 프로테스탄트 의 권력자들이지만, 카톨릭의 사람에게 궁금한거 물어보는겨 제발 와달라고도 하고.
조선은 생각 다르면 적폐고 찢어죽여서 자기 출세 하는게 중요하잖니. 어떻게 모함을 해보까 궁리만 해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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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 말야. 꿈이나 하나 정리해 보자.
Adrien Baillet (13 June 1649 – 21 January 1706) was a French scholar and critic. He is now best known as a biographer of René Descartes.
데카르트의 꿈은, 데카르트 죽고, 아드리앙 바이예.가 데카르트 전기를 쓰면서 알려진건데.
- La vie de monsieur Descartes (2 vols. 1691; modern edition in one volume: La vie de monsieur Descartes, Paris: Éditions des Malassis, 2012)
- La vie de mr. Des-Cartes. Réduite en abregé (1692; modern edition: Vie de Monsieur Descartes, Paris, La Table Ronde, 1992)
이사람이 쓴 여러 책들중에, 1691년과 1692년에 데카르트 전기를 두번 내.
Visions[edit]
According to Adrien Baillet, on the night of 10–11 November 1619 (St. Martin's Day), while stationed in Neuburg an der Donau, Descartes shut himself in a room with an "oven" (probably a cocklestove[37]) to escape the cold. While within, he had three dreams[38] and believed that a divine spirit revealed to him a new philosophy. However, it is likely that what Descartes considered to be his second dream was actually an episode of exploding head syndrome.[39] Upon exiting, he had formulated analytical geometry and the idea of applying the mathematical method to philosophy. He concluded from these visions that the pursuit of science would prove to be, for him, the pursuit of true wisdom and a central part of his life's work.[40][41] Descartes also saw very clearly that all truths were linked with one another, so that finding a fundamental truth and proceeding with logic would open the way to all science. Descartes discovered this basic truth quite soon: his famous "I think, therefore I am".[33]
생 마르탱 날. 투르의 생마르탱 거지에게 자기 망토 준. 서기 1619년 11월 10-11일 밤에(10일 밤에서 자정지나는 11일새벽), 노이부르크 안데어 도나우. 바바리아 공국에, 다뉴브강 도시야. 오른쪽이 잉골슈타트.이고. 네덜란드에서 갈아타서 카톨릭 용병으로 온겨. 데카르트가 추워서 코클스토브 가 있는 방안에 있었어. 저게 당시 난로여. 여기서 꿈을 세가지를 연이어 꿔. 그는 믿었다 신성한 영혼이 자기에게 새로운 철학을 보여줬다고. 그러나 그건 아마 두번째 꿈으로 보인다 환청을 들었다는 일화의 꿈은. 그 꿈에서 나오면서 그는 분석 기하학의 좌표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수학적 방법을 철학에 적용하는 아이디어와 함께.
그는 이들 꿈속에서 본 비젼들로부터 결론지었다, (꿈에서 본) 학문의 접근법이 진짜 앎의 접근법이 될 것이고, 자기 인생의 일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데카르트는 아주 분명하게 보았다, 모든 진짜들 실재 리앨리티들은 서로서로 연결되었다고, 그래서 근본적인 진짜, 리앨리티 를 발견하고 그걸 로직 논리로 전개하는 것이 모든 지식으로 가는 방법이라고.
데카르트는 이 기본적 진리, 그의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란 걸 이후 바로 들춰냈다.
저때 데카르트.가 두번째 꿈에서 환청 을 루시드 드림. 자각몽 처럼 생생하게 경험을 해. 그리고 바로 직교 좌표계 라는 분석기하학의 방법툴이야.
A Cartesian coordinate system (UK: /kɑːˈtiːzjən/, US: /kɑːrˈtiʒən/) is a coordinate system that specifies each point uniquely in a plane by a set of numerical coordinates,
우리가 수학시간때 배운 엑스 축 와이 축. 긋고 사분면 그리고 방정식 그리는 게 이 데카르트.가 저때 꿈 꾸고 바로 누워서 그린겨.
엑스 X 라는 미지수 로 방정식을 풀때, 이 엑스. 란걸 쓰기 시작한 것도. 데카르트 가 이 엑스 를 만든겨.
저당시 극도로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골아 떨어졌는데, 꿈속에서 환희를 느꼈다고 해.
저기서 사이언스 해대는건, 꿈에서 본 사이언스야. 기하학과 수학과 논리 로 전개하는 사이언스 이고. 이것만이 세상의 진짜 리앨리티 를 보는 길로 간다는 확신을 저때 얻은겨. 하룻밤에 세번의 꿈을 꾼거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는 저때 나온게 아니라, 이 후에 나온거고.
코기토. 에르고. 쑴. 에르고 라는건 접속사야. 그러므로 그래서. 코기토. 쑴. 이 주어 인 내.가 생각하는거고 내.가 있는거야(존재).
코기토. 라는건 cogito. con agito 콘 아기토. 야. 콘 은 쎈말이야. 함께 이고 집중 이야. 아기토 는 아고 ago 야. 나는 한다 나는 만들다. 에 ito 이토 라는건 반복한다는 접사여. 코기토 라는건, 생각을 그냥 하는게 아냐. 적극적인 사유야. 능동적인 생각이여 이 말은.
Je pense, donc je suis .처음은 불어 로 말하고, 뒤에 라틴어로 나온겨. 주 팡스, 동 즈 쥐. 파스칼 팡세 Pensées.의 동사 팡스.야. 이것도 라틴어에서 온건데. ponder 영어로 폰더 로 써. 이것도 휘몰아 잠기면서 깊게 생각하는겨.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Le Penseur 르 팡세. 여. 헌데 데카르트.가 이 팡세 를 안쓰고 코기토 라로 쓴겨. 자기나름 팡스의 penso 펜소.보다는 코기토.가 적합한겨 이게.
저기서 먼가, 세상의 진짜 바닥 리앨리티 로 가는 힌트.를 수학과 논리 에서 찾은겨 데카르트.가.
이게 근대의 시작이야.
신의 개입은, 버려. 신은 단지 세상을 창조했는지 걍 당구 큣대로 딱 돌려 움직이게 하곤, 신은 꺼지세요. 신은 그 이상 간섭 안한답니다. 목적론적 우주관 은 없어요.
가장 큰게 말이야, 이 데카르트를 가만히 보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와 다른 가장 큰건, 목적론적 세계관을 버린겨.
그런 파이널 코즈 는 없어요.
신 때문에 착한 짓 하지 마세요. 신은 우리에게 개입 안한답니다. 내가 생각하니까 내가 존재하는거요. 생각하는 내가, 모랄로 내 스스로 갖추도록 하세요.
신은 개입 안해요, 인간사든 우주사든.
그렇지만, 나는 독실한 신자 카톨릭이랍니다. 나는 신을 믿어요.
환장하는겨 이게.
은총이니 원죄니 의미가 없어. 교회에선 장사도 안되거니와.
수학과 논리로 세상의 진짜 네이처를 들춰낸다는겨 이데아든 네이처든.
열받고 환장한 사람들 한편에
다른 한편에서는, 해방과 자유를 느끼는거야.
인디비주얼 이라는 인디바이디드. 인디비저블, 나눌수 없는 서브스턴스.인 개인이 등장하는겨 이 데카르트로. 인디비주얼의 인디비저블, 나눌수 없는 하나는 . 영혼 이야. 몸뚱아리가 아니라. 개인 이라는 건. 나누어질수 없는 나.라는 에센스야. 스코투스 를 이은겨 이사람이. 스코투스 가 에센스 에 대해 서술하지 말라 했걸랑. 분해하지 말라했어. 신 이야길 한거야. 신에 대한 네이처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신은 존재합니다. 라는 프레디케이트만 써라. 이걸 데카르트 가 대못을 박은겨. 개인도 존재합니다요. 어이 근데 스코투스형, 프레디케이트 하나만 더 씁시다. 나는 생각합니다. 이게 개인의 유일한 존재의 이유랍니다.
이 데카르트가 지금 세상을 만든겨. 이런 데카르트를 프랑스가 만들은거야 16세기를 지나면서. 유럽이 저런 데카르트를 만들어낸거고. 프랑스에서 나올 수 밖에 없던겨 저때. 저걸 받아서, 프랑스를 이은 다음 주자 잉글랜드에서 뉴턴이 나오는거고.
대가리가 깨졌으면, 걍 뒈져 뒈져. 넌. 너희들은. 인간이 아냐. 니덜이 개돼지와 다를게 머냐. 넌. 너희들은. 오컬트의 제물이야 그냥.
왜? 생각을 하길 포기했잖니. 대가리가 깨져서.
저게 조선 오백년 이래 육백년 이었단다. 그게 조선건국이래 육백년 동안 우리는~~ 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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