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grian War (1610–1617)

The Kalmar War (1611–1613)

 

스위든(스웨덴)이 폴란드에 러시아와의 잉그리아 전쟁.이 터지고, 1년후에 덴마크.와 칼마르 전쟁을 해. 칼마르 전쟁은 2년에 끝나고 잉그리아전쟁은 이어서 계속 갔던거고.

 

잉그리아 전쟁.은

 

Field Marshal and Count Jacob Pontusson De la Gardie (Reval, 20 June 1583 – Stockholm, 22 August 1652) was a statesman and a soldier of the Swedish Empire, and a Marshal from 1620 onward.

 

야코브 폰투쏜 드 라 가르디.가 하는겨. 스위디시 에스토니아 인간이야. 에스토니아.는 스위든이 리보니안 전쟁'때 갖고 온거고, 그래서 맞은편 핀란드 인간들이 건너간거야. 그래서 에스토니아.는 핀란드인 언어족의 우랄어족이 된겨 이때부터. 드 라 가르디.는 엄마가 요한 3세.의 배스타드.여. 즉 지기스문트 바싸.랑은 사촌간이야. 

 

러시아.가 가짜 드미트리1세 쫓아내고, 폴란드는 전쟁선포하고, 러시아에 또 가짜 드미트리2세 나오면서 반란하고, 이때 짜르 슈이스키.의 바실리.가 스위든에 손을 내밀고, 스위든 에스토니아.의 드 라 가르디.가 오는겨. 그러면서 반란군 진압하고 동시에 지기스문트 바싸.의 폴란드 정식군대가 출병을 하고, 쿠시노 전투.에서 드 라 가르디.가 대패하고, 러시아 코트.는 폴란드 것이 되고, 드 라 가르디는 다시 돌아가서, 이제 폴란드 것이 된 러시아.를 쳐들어 가는거야. 이게 잉그리아 전쟁.의 시작이야. 

 

노브고로드.를 먼저 손에 넣어. 노브고로드.는 어서옵쇼 하고 스위든 킹이나 자식이 우리 영주좀 해주셔 하고.

 

드 라 가르디.가 이전에 바실리 짜르. 도와줄때 받기로 한게. 코렐라 요새.야. Korela Fortress. 이건 카렐리아 지협. 러시아에서 핀란드 가는 오른쪽 라도가 호수 북쪽 접하는  Priozersk 프리오제르스크. 여. 여긴 다시말하면 카렐리아 전체를 주겠다는겨 이게. 이걸 달라는거야. 상대는 다시 폴란드야. 폴란드 군대가 러시아를 점령했걸랑.. 

 

 northwards to Archangelsk and eastwards to Vologda  

 

스웨덴 병력이. 아르칸길스크.에 볼로그다.까지 점령해. 노브고로드.에서 동진 오백키로.가 볼로그다.고 이 아래가 야로슬라블.이야. 볼로그다 에서 정북 6백키로가 아르칸길스크.이고. 백해 해안이여. 

 

이와중에 로마노프.가 폴란드애들 몰아내고 짜르가 된겨.

 

스위든.에겐. 폴란드 가 지기스문트바싸 때문에 웬수가 되었지마는 러시아는 이전부터 웬수였고. 안 나가고 이기회에 러시아 전역을 다 디비는겨.

 

In 1613 they advanced towards Tikhvin and laid a siege to the city, but were repelled. The Russian counter-offensive failed to regain Novgorod, however. The Russian tsar refused to commit his troops to battle and the war lumbered on until 1614, when the Swedes captured Gdov.

The following year they laid siege to Pskov  

 

티크빈.이 노브고로드 동북 이삼백키로고. 그도프.는 에스토니아 바로 옆.이고. 프스코프.는 에스토니아 남쪽 러시아 접경이고. 

 

로마노프.가 차르 되고, 스위든.과 조약 맺으면서 니덜이 뺏은 땅들 다 돌려줘. 대신 잉그리아 줄께. 해서 저때부터 스위디시 잉그리아.가 된겨.

 

드라 가르디.가 어릴때 네덜란드 독립전쟁에 용병으로 경험쌓은걸 저기서 써먹어. 

 

Polish–Swedish War of 1621-1625 

Polish–Swedish War of 1626–1629

 

드 라 가르디.가 스위든의 동쪽 담당을 하는겨 이게. 에스토니아.에 잉그리아.에. 폴란드.랑 리가.를 두고서 리보니아에서 계속 전쟁을 또 해. 독일 30년 전쟁 기간에. 폴란드는 지기스문트 바싸. 이후로 스위든과 완전히 척이 진겨. 폴란드는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삼분할 되서 지워진게 아냐. 스위든.이랑 싸우느라 지워진겨 이게. 완전히 저 지기스문트 바싸가 그야말로 헛짓 하면서 폴란드가 똥이 된겨. 폴란드는 안 싸워도 될 스위든.과 싸우느라 완전히 나라가 개판이 된겨. 지금도 저 후유증에 사는겨. 그러면서 그 탓을 얀 마데이코.가 스카르가 연설.을 그리면서. 얀 자모이스키. 탓으로 돌리는겨 이 역사 해석하는 이들이 현대에도. 얀 자모이스키.를 킹보다 더 윗자리 앉히고. 킹을  불쌍한듯 그리고, 제수이트 스카르가  먼 대단한 인사이트를 가졌담시롱. 쟤 연설글도 걍 환타지 걸랑 저게. 

 

헌데 저런게 폴란드 지금 애들은 저걸 아쉬워 하는거고. 지기스무트 바싸. 띄우는거고

 

실패한 나라들의 현재에 해석하는 자기들 역사 해석을 보면 그나라 수준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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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아 전쟁.이 1610.에 드 라 가르디.가 다시 러시아로 향하고. 바로 다음해 칼마르 전쟁이 터져. 1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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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든.이 스톡홀롬 욕조 학살. 스톡홀롬 배쓰.로 분노해서 구스타브 바싸.를 주축으로 반기들고 독립을 했지만. 완전히 발트해에 갇힌 상태걸랑. 

 

 

BlekingeBornholmBohuslän (Båhuslen)Scania (Skåne) and Trøndelag,  Halland

 

스위든.이 삼등분 하면. 위도로 저 바깥 고트란드 Gotland 선있는 정도 까지 아래가 예타란드. Götaland. 이 위 스톡홀롬 있는 곳이. 스비아란드. Svealand. 이 위쪽이 놀란드. Norrland. 야. 예타란드.가 Geats 기트족.의 땅이고. 베오울프.의 이야기고. 붙어있는 섬이 외란드.이고 여기 접판 해변도시가 칼마르.여. 고트란드.는 gutes 구트족.의 섬인거고. 

 

예탈란드.에 속하는게 맨 아래 노랑.이 스카니아.야. Scania. 이오른쪽 들어간 발등발가락.이 블레킹예. Blekinge.야. 블레킹예를 바로 돌아 올라가면 칼마르.란 도시고. 스카니아 왼쪽 주황색.이 할란드 Halland. 이 위 해변 노랑이 부후슬랜 Bohuslan. 이여. 예테보리.란 도시가 부후슬랜.에 있는 도시야. 스카니아 동남에 보라색 섬.이 Bornholm 보른홀름.인데 이건 지금 덴마크 섬이고. 

 

사운드 해협.이 스카니아.와 덴마크의 코펜하겐 있는 Zealand 질란드. 셸란(드) 의 사이여. 여기서 덴마크.가 통행세.를 아주 톡톡히 걷는겨. 얘들의 최고의 수입이 저 사운드 듀.라는 통행세여.  블레킹예. 스카니아. 할란드. 부후슬랜. 이라는 저 지역들이  모두 덴마크땅인겨 저게. 스위든.이 저길 벗어날 수가 없어. 바닷길로 가면 꼬박꼬박 통행료내야 하고. 스위든은 또 덴마크애들에 반기들어 독립했다고 더 밉보여서 더 내야하는거고. 

 

 

저 해변인 부후술랜. 할란드. 스카니아. 블레킹예.가 스위든 땅이 되는게. 1658년.이야. 

 

The Treaty of Roskilde[1] was concluded on 26 February (OS) or 8 March 1658 (NS)[2] during the Second Northern War between Frederick III of Denmark–Norway and Charles X Gustav of Sweden in the Danish city of Roskilde. After a devastating defeat, Denmark-Norway was forced to give up a third of its territory to save the rest, the ceded lands comprising BlekingeBornholmBohuslän (Båhuslen)Scania (Skåne) and Trøndelag, as well as her claims to Halland.  

 

로스킬러 조약. 로스킬데.가 아냐. 로스킬러. 코펜하겐 바로 왼쪽에 있는 도시여. 여기서 맺은 조약. 서기 1658년. 이때 저 해변들이 스위든 땅이 이때서야 된겨. 저때 노르웨이 중간내륙 노르웨이해 접하는 트뢴델라그.도 갖고 오지만. 이건 다시 노르웨이가 갖고가는거고. 

 

The March Across the Belts was a campaign between 30 January and 8 February 1658 during the Second Northern War where King Charles X Gustav of Sweden led the Swedish army from Jutland across the ice of the Little Belt to Funen and the Great Belt to reach Zealand. The risky but successful crossing was a blow to Denmark, and led to the Treaty of Roskilde later that year, which handed ScaniaBlekinge and Halland to Sweden.  

 

마치 어크로스 더 벨트스. 해협들을 그냥 건너서 행군하는겨. 1658년 1월 30에서 2월 8일까지. 한겨울에. 저 해협이 얼었걸랑. 

 

The Second Northern War (1655–60, also First or Little Northern War) was fought between Sweden and its adversaries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1655–60), the Moscow Tsardom (1656–58), Brandenburg-Prussia (1657–60), the Habsburg Monarchy (1657–60) and Denmark–Norway (1657–58 and 1658–60).  

 

2차 북쪽 전쟁. 스위든이 독립하고 덴마크가 다시 벌이는게 1차 북의 전쟁이고. 2차 북의 전쟁이 1655년에 시작하는데. 독일땅 30년 전쟁이 끝나고나서 벌어지는거걸랑. 스위든이 독일 30년전쟁에서도 최고의 스타야. 얘들이 저때 서포메리아.를 갖고오면서 대륙에 발을 디디걸랑. 그러면서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덴마크.가 스위든.에 대드는겨. 이걸 말야 스위든이  다 조져버린겨. 엄청난겨 이게.

 

Charles X Gustav, also Carl Gustav (SwedishKarl X Gustav; 8 November 1622 – 13 February 1660), 

 

이때 스위든 킹이. 카를 10세 카를 구스타브.여. 엄마가 카를9세.의 딸이야. 지기스문트 바싸.를 이긴 삼촌.의 딸. 카를 다음이 아들 구스타브 아돌프.고. 이 아돌프 딸이 퀸이 돼. 크리스티나. 이 여자가 로마 카톨릭.인겨. 프로테스탄트의 나라에서. 6 November 1632 – 6 June 1654. 6세에 퀸에 오르고. 22년을 재임하지만 어려서 섭정을 받는거고. 1650년. 24세에 대관식을 해. 헌데 결혼을 안해. 크리스티나.는 예술과 책에만 환장한 여자야. 그리고 카톨릭의 중세.에 미친겨. 중세의 작위를 남발해. 그래도 한편으론 덴마크에 르네상스를 이여자가 준거야. 코트에 인물들이 넘쳐들어오는거고. 그러다 재정도 파탄나고. 안맞는겨 자기가. 자기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하고. 사촌.인 카를 구스타브.가 킹에 올라. 이사람이 크리스티나 일때 덴마크.에서 30년 전쟁을 앞장을 선거고. 외치는 애초에 이사람이 해 왔던겨.

 

크리스티나.는 대관식하고 4년후에 자진해서 내려오고, 세상 돌아다니고, 로마에 가서 죽어 63세. 지금 로마 판테온에 있어. 역사에선 머 이여자가 낭비 어쩌고 재정 파탄 어쩌고 해 대지만 그게 이여자 때문도 아니고 스위든은 독립 후 언제나 항상 전쟁 속에서 살은겨. 항상 돈이 모질라. 저걸 저 여자 탓할 필요도 없고. 

 

스위든이 리보니아에 잉그리아까지 먹으면서 폴란드 카먼웰스.와 러시아.와 계속 부딪히는겨. 더하여 서포메리아.도 점령하고 여기서 또한 합스부르크.에 프러시아. 폴란드와 부딪히고.

 

카를 구스타브.가 서포메리아.에 도착해서 폴란드로 쳐들어가는겨 육지로. 바르샤바 까지 점령해. 폴란드 킹은 도망가고. 그러면서 리투아니아.를 카를이 취하는겨. 그리곤 빠꾸해서 덴마크.를 쳐들어가는겨 육로로. 저 주트란드 유틀란드 반도로. 저기서 덴마크 수도.가 있는 셀란(드) 섬 코펜하겐으로 말야. 주트란드에서 걸어가는겨 말타고. 해협 얼을때. 

 

Early in the morning of 30 January 1658, the army was lined up to cross the Little Belt to reach Funen. The army consisted of about 9,000 cavalrymen and 3,000 foot soldiers.  

 

Now investigations were made to find the best way over the ice that covered the Great Belt in order to reach Zealand. Again Erik Dahlberg led the investigation, and he advised taking the longer route via Langeland and Lolland rather than the more direct route across the Belt

 

9천명의 기병과 3천명의 보병들 데리고. 바로 붙은 섬이 Funen 퓐섬.이야. 이 해협을 작은 벨트.라고 해. 퓐섬.과  Zealand 셸란.섬 사이 해협이 그레이트 벨트여. 아래로 돌아서 건너. 자잘한 섬들. 랑게란드.에 롤란드.로 해서 코펜하겐 있는 셸란드.로 걍 저걸 건넌거여. 얼음 바다를. 

 

덴마크.가 바로 항복하고. 옆의 로스킬러.에서 조약을 맺는겨. 1658년. 저 해변땅 이제부터 스위든꺼다. 구스타브 바싸.가 독립 1521년 하고. 140년 만에 저기가 확 뚫린거야 스위든은.

 

저 그림이 아주 스위든 역사에서 최고의 장면인겨 저게.

 

카를 구스타브.가 다음에 코펜하겐.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해. 헌데 주변국이 뭉치는겨. 네덜란드. 잉글랜드. 프러시아의 브란덴부르크. 힘의 균형 논리걸랑. 카를 구스타브.가 2년 후에 죽어. 그러면서 2차 북의 전쟁. 5년이 끝나고. 노르웨이땅인 트뢴더라그.와 보른홀름. 섬.은 다시 덴마크가 갖고오는겨. 이게 지금까지 국경선이 되는거고. 

 

Frederick III (DanishFrederik; 18 March 1609 – 9 February 1670[1]) was king of Denmark and Norway from 1648 until his death in 1670.  

 

저때 덴마크 킹.이 프레데릭3세.야. 유럽에서 절대군주.하면 두명이여. 태양왕 루이 14세. 그리고 저땅 뺏긴 프레데릭 3세. 절대군주는 이거 이상 없어. 유럽엔 절대군주 란게 없어. 그건  무식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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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는 문제가 저 사람 아빠 크리스티안 4세여

 

Christian IV (12 April 1577 – 28 February 1648) was king of Denmark and Norway and duke of Holstein and Schleswig from 1588 to 1648. His 59-year reign is the longest of Danish monarchs, and of Scandinavian monarchies.  

 

59년 을 재임해. 1588-1648. 나이 11세.에 올라서. 19세 부터 직접 통치를 해.

 

지기스문트 바싸.가 1566년 생인데. 1587 – 1632. 21세에 폴란드 킹 하고 45년 하걸랑. 얜 이러면서 적극적으로 폴란드를 죽이려 작정하고 걍 죽인거고 폴란드를. 그러면서 현대사가들이 영웅대접해주는 참 시안한 세상인거고.

 

크리스티안 4세.도 덴마크.에선 그레이트 킹이야. 

 

. He is remembered as one of the most popular, ambitious, and proactive Danish kings, having initiated many reforms and projects. Christian IV obtained for his kingdom a level of stability and wealth that was virtually unmatched elsewhere in Europe  

 

헌데 말이지. 얘들은 이때 딱히 머가 없어. 스위든.은 러시아에 폴란드랑 전쟁하면서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걸랑. 이 스위든.은 이전에. 아빠 프레데릭2세.가 스위든의 미친 킹 에릭14세.랑 북의 7년 전쟁하고. 얘들은 거의 없어 전쟁이. 리보니안 전쟁으로 이반4세 나올때 걍 스위든에 폴란드에 곁다리껴서 한거외엔 없어.  좋을 때야 이 덴마크는 상대적으로. 당시 유럽의 분위기를 비교하면. 대륙도 독일땅 농민전쟁에 프랑스 종교전쟁에 네덜란드 독립전쟁에 스페인과 잉글랜드가 목숨걸고 살면서 또한 인도가고 북동북서항로 갈때. 이 덴마크는  편한겨 이건.

 

특히나 저 크리스티안 4세. 59년 재임기간. 저기서 먼  개혁 정책이니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한게 없어 한게. 30년 전쟁도 찔끔 발담그다가 다시 들어오고. 여기서 입지를 다진건 또 바다건너 스위든이 스타가 된거고.

 

이 크리스티안 4세 일때. 칼마르 전쟁이야. The Kalmar War (1611–1613) 스위든.은 카를9세.가 죽고 아들 구스타브 아돌프.가 즉위한 해여. 크리스티안은 34세.고 아돌프는 17세여. 카를 말년에 터진겨 저건. 이미 스위든.이 바다가 막혀서, 아예 내륙 노르웨이를 쳐들어가는겨. 육로를 뚫을려고. 그리고 위 사프미 지역에도 쳐 올라가서 세금을 받는거고. 노르웨이해로 뚫어서리 나가려는겨. 이걸 덴마크가 용납을 못하는거고. 해서 덴마크.가 스위든을 쳐들어가는거야. 그리고 바로 카를9세.가 병들어 죽어.

 

덴마크.는 그동안 거의 전쟁이 없었어. 너무너무너무 좋을때야 얘들은. 저 크리스티안4세 내내. 그 이전에도. 스위든은 전쟁에 지치고 지친 애들이야. 구스타브 바싸.가 독립하자 마자 모든걸 새로이 만들면서, 징병제.를 최초로 시행했걸랑. 농민들을 군인으로 만들고 치른 게 리보니안 전쟁.에 바싸.가 초기에 늙어 죽고. 다음 북의 7년 전쟁이여. 아들 에릭14세가 하는. 농민들이 멀 알어. 오직 정체성만 의욕만 있는겨. 패배할 수 밖에 없걸랑.

 

저 1차 북의 7년 전쟁.도 덴마크가 이길 수 밖에 없는겨. 헌데, 용병으로 오히려 마무릴 못한거야. 돈이 안 꽂히면 안싸워. 덴마크.가 저 사운드 해협 통행세로 먹고 사는 애들이걸랑. 딱히 없어 얘들도. 이길수 있는 전쟁을 그냥 와버렸어.

 

칼마르 전쟁도 마찬가지야. 용병이야 덴마크.는. 헌데  돈이 또 안꽂혀. 얘들은 재정에 문제가 있는겨 이게. 저것도 완전히 스위든을 지울수 있는걸 못 지운거야. 잉글랜드 네덜란드가 또 끼어들며 중재하지만. 힘의 균형. 그래도 문제는 돈이야. 용병에게 돈을 제대로 못 꽂아주는겨 여전히. 칼마르 전쟁은 그래서 걍 그리 끝나는겨. 아무런 수확없이. 전쟁 보상금만 받고. 

 

그래도 크리스티안4세.는 말야. 완전히 르네상스 킹이걸랑. 얘들은 저때 태평성대야 다른 유럽에 비하면.

 

그래서 저때 크리스티안이 머  해군 배들을 늘리고. 허드슨만 탐험가고. 그린란드도 가고. 북서항로 막 돌아댕기고 북미도 가고. 군제 개혁도 해서리 농민들을 군인화 하고 어쩌고 저쩌고. 

 

조온나 의미없는겨 저게.

 

잉글랜드.는 컴퍼니.를 뒀걸랑. 얘들은 이런 잉글랜드.를 안배웠어. 잉글랜드 의 컴퍼니 전략은 엄청난겨 이게.

 

얘들은 머 하나 제대로 한게 없어. 걍 인도네시아 작은 섬 하나 식민지 한게 다야 이때에. 그리고 동인도회사 덴마크 하나 만든게 다고. 

 

이 크리스티안 4세.의 누나.가 덴마크의 앤.이야. 잉글랜드의 제임스 와 결혼하는.

 

잉글랜드.는 덴마크의 자식이야. 햄릿은 정확히 덴마크 저 셸란섬.의 성이야. 데인로.의 데인족들이 잉글랜드의 또 한 부류고. 잉글랜드는 덴마크.가 안식처여 이게. 덴마크와 잉글랜드가 아주 묘해. 얘들 둘은 그래서 역사적으로 친구야. 거의 적이 된 적이 없어. 누나 앤.의 나라도 그래서 졸 놀러도 가. 헌데 잉글랜드는 아무것도 아닌 애들이 그야말로 분발심으로 만든 나라야. 쟤들은 그야말로 조바심.으로 만든겨 영국의 역사는. 피 속에서 만든 역사걸랑.

 

덴마크.는 너무나 편한 나라여 이건. 상대적으로. 

 

마가렛.의 칼마르 유니온.에서 마가렛 죽고 다다다음에가 

 

Christian I (February 1426 – 21 May 1481) was a Scandinavian monarch under the Kalmar Union. 크리스티안 1세.야. 이사람이. Oldenburg 올덴부르크 가문.의 시작이야. 

 

지금 덴마크.의 권력자는 퀸.이고. 이 여자도 저 올덴부르크 가문의 방계 일뿐이야. 저 가문이 4백년 지배하고 이 방계가 지금 온겨. 올덴부르크.는 브레멘 왼쪽 옆이야. 이 올덴부르크 가문.이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같이 지배한겨. 지금 독일 주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주.도 원래 덴마크 꺼고. 브레멘에 올덴부르크.에 오른쪽 메클렌부르크.도 저게 덴마크 꺼야 하걸랑. 얘들이 다 뺏기고 걍 달랑 저 모가지 잇는겨 이게.

 

Christian II (1 July 1481 – 25 January 1559) 

 

이 덴마크.는 저 크리스티안1세.의 손자 2세.가 말아먹은겨. 얘가 재벌 죽이고 중소기업 살려야 한다며 상업을 개판으로 만들고 경제가 죽걸랑. 그리고 스톡홀롬 학살 사건 하면서 스위든.이 독립하는거고. 덴마크역사에서 최악은 얘야. 다음 삼촌 프레데릭1세. 가 얠 내쫓고 킹을 하면서 계속 올덴부르크 가문이 지금까지 온거지만.

 

저 59년 재임한 최고의 기간.의 크리스티안4세.때 얘들은 멀 했어야해. 얘들은 말야 이때 걍 논거야. 

 

저런게 참 어려운 문제야. 

 

전쟁이 없으면, 그 문명이 퇴하가 돼. 역사를 보면. 또한. 

 

오히려 살아남으려 바둥바둥 한 애들이, 최종 역사의 승자가 된겨. 어찌보면. 

 

덴마크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었걸랑.

 

지금 북유럽 이란 나라들은 말이지. 유럽 대륙의 그야말로 피터지는 중세 천년 의 역사에. 저 북유럽은 상대적으로 평화여 저건. 쟤들은 서유럽애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의 바탕에서 걍 누릴 뿐이야.

 

우리넨 북유럽 하면  대단히 여기걸랑.  스위든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라는 북유럽

 

그게 그게 아냐. 쟤들은 상대적으로 말야 역사가 후져. 저기서 스위든. 하나 인정해 줄만해. 

 

서유럽애들이. 특히나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이 네나라가 만들어 놓은 고생판에서 쟤드른 열매만 취할 뿐이야. 자원  풍부해. 그걸로 복지놀이 하는겨 저것들은.

 

저 북유럽은 딱히 별게 없어 저게. 세상 역사는. 이탈리아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얘들이 만든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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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튼 저리 칼마르.랑 잉그리아는 정리하자.

 

빨랑빨랑 정리하자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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