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08n0251_p0848c04(00)║般若波羅蜜多心經
T08n0251_p0848c05(00)║
T08n0251_p0848c06(00)║    唐三藏法師玄奘譯
T08n0251_p0848c07(00)║觀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時,
T08n0251_p0848c08(03)║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 「舍利子!色不異空,
T08n0251_p0848c09(02)║空不異色;色即是空,空即是色。受、想、行、識,
T08n0251_p0848c10(03)║亦復如是。 「舍利子!是諸法空相,不生不滅,不垢不淨,
T08n0251_p0848c11(00)║不增不減。是故,空中無色,無受、想、行、識;無眼、
T08n0251_p0848c12(00)║耳、鼻、舌、身、意;無色、聲、香、味、觸、法;無眼界,
T08n0251_p0848c13(02)║乃至無意識界;無無明亦無無明盡,
T08n0251_p0848c14(05)║乃至無老死亦無老死盡;無苦、集、滅、道;無智,亦無得。
T08n0251_p0848c15(03)║「以無所得故,菩提薩埵依般若波羅蜜多故,
T08n0251_p0848c16(02)║心無罣礙;無罣礙故,無有恐怖,遠離顛倒夢想,
T08n0251_p0848c17(01)║究竟涅槃。三世諸佛依般若波羅蜜多故,
T08n0251_p0848c18(02)║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故知般若波羅蜜多,
T08n0251_p0848c19(01)║是大神咒,是大明咒,是無上咒,是無等等咒,
T08n0251_p0848c20(01)║能除一切苦真實不虛,故說般若波羅蜜多咒。」
T08n0251_p0848c21(00)║即說咒曰:
T08n0251_p0848c22(00)║「揭帝 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T08n0251_p0848c23(00)║ 菩提 僧莎訶」
T08n0251_p0848c24(00)║般若波羅蜜多心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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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버전은, 대정신수대장경, 의 반야바라밀다심경, 입니다. 일명 반야심경. 

불경을 하나 번역하고 싶은데, 제일 짧지만, 불교의 정수가 묻어있는 반야심경을 택했습니다.


시간날 때 마다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아마도 매우 긴 글이 될 듯 합니다.

불경을 몇년 전에 볼 때, 거의 아무짓도 안하고, 이 불경만 봤는데, 

저는 cbeta 란 대만전자불전 사이트를 주로 봤습니다. 우리 고려대장경 사이트보다 보기가 훨씬 수월하게 되어있어서요.


불경마다 저렇게 번역자가 있습니다. 불경은 곧 번역의 역사죠. 인도말을 한문으로 번역한 그 역사도 엄청난 드라마죠. 


위 반야심경의 현장 스님도 20년가까이 당나라에서 인도를, 그 에베레스트 있는 그 산맥을 넘고 왔다갔다, 하며 인도의 불경을 가져오는 이야기는 서유기로도 소설화되었지고


팔리어 오부 대장경이란 나까야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할때 19세기말에 팔리어 원본으로 된 것을 발견해서 보관하고 있는것을 일본이 1935년에 한문으로 번역해서 나온게 남전대장경입니다. 


이 경전이, 아함경, 으로 이미 후진시대, 즉 위촉오 삼국시대 다음의 오호십육국 때인 400년 전후에 번역된 것이 있는데, 1500여년 후에 빨리어를 한문으로 일본인들이 번역한 그 남전대장경과 대조해 보니 똑같다는 거죠. 감동이 처묵처묵.

여하튼, 이런 불경 번역의 역사는 그것자체도 들어가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례와 드라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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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들을 보다보니, 특히나, 쿠마라지바, 와 , 현장 의 번역 불경이 참 좋습디다. 전 개인적으로. 헌데 역시 보니, 이 두분을 2대 대역성으로 부릅디다. 위대한 번역의 성스러운 사람 두분이란 거죠.


쿠마라지바, 鳩摩羅什. 구마라십으로 읽어야 하나, 송대에 저 십을 습으로 읽었다하고, 이게 굳어져서 구마라습 이라고 통상 읽습니다.

이분도 고승전 2에서, 이분의 역사를 보면 역시 대하드라마일텐데, 이분 때문에 전쟁이 두번인가 세번인가 있었다고 합니다. 인도 구자국 사람으로, 왕족출신으로 인도말과 한문에 능통하고, 한문에 능통한 수준이 현지인을 넘는 수준인거고요. 제일 많이 읽히는 경전인 불설아미타경 도 이분 번역이죠


이분이 한 유명한 말씀이, 고승전 2권에 전해집니다

今于众前发诚实誓。若所传无谬者。当使焚身之后舌不燋烂。以伪秦弘始十一年八月二十日。卒于长安。是岁晋义熙。五年也。即于逍遥园依外国法以火焚尸。薪灭形碎唯舌不灰
http://fodian.goodweb.cn/dict_read16.asp?ID=16

금우중전발성실서, 약소전무류자, 당사분신지후설불초란. 이위진홍시십일년팔월이십일, 졸우장안. 시세진의희. 오년야. 즉우소요원의외국법이화분시, 신멸형쇄유설불회


지금 사람들앞에서 진실로 맹세하니, 만약 내 번역의 전함이 오류가 없다면, 내 죽어 몸을 화장한 후에도 당연히 내 혀는 타지않을 것이다. 이로 틀렸는지 보라. 진나라홍시연호 11년 8월 20일 장안에서 열반했는데 이때는 진나라 의희연호 오년이었다. 바로 소요원 정원에서 외국법에 의거 불로 주검을 화장했는데, 나무가 다 타고 잔해를 다 부수니, 오직 혀만 타지 않고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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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란게, 모국어를 쓰는 사람이 타국책을 번역해야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왕삼부곡이라고, 청나라 융성시기 삼황제인 강희 옹정 건륭제가 40권인가 번역된게 나온 것이 있는데, 끝까지 보느라 참 힘든 기억이 납니다. 제 기억엔 조선족분이 번역한 걸로 기억이 나는데, 아 그때 생각만 하면, 저 40여권을 어떻게 읽었는지. 저 책들이 이번에 재번역되서 나왔다고 하더군요. 전 장편대하소설을 과거 특히 좋아했던 타입이라.


헌데 쿠마라지바(344~413)는, 남의 언어로 번역을 한 사람으로, 그 번역의 깊이와 수월함이, 모국어 사람보다 훨씬 탁월합니다. 이분은 세계적으로 천재중의 천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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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玄奘, 602년 ~ 664년),13세에 승적에 이름 올리고, 627년 또는 629년에 천축(天竺, 인도)에 들어가 645년에 귀국하였다.-위키.

삼장법사로도 알려졌죠. 25세 또는 27세에 인도로 출발해서 43세에 귀국. 그후 20년을 번역하시는거죠. 


삼장, 석가모니말씀을, 석가모니 사후, 제자분들이 1차결집 2차결집으로 모여, 외운것을 서로 풀며 문자화하시는 거죠. 이 과정도 대단한 드라마입니다.

그 부처님 말씀을 기록을 할때,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죠, 경 율 론

경, 經, sūtras, 범어로 수트라. threads, 실로 꿰었다는 의미의 한자 경으로 번역합니다.


Every sūtra begins with the words 如是我聞 'Thus did I hear', indicating that it contains the words of Śākyamuni.
모든 경,은 여시아문,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석가모니 부처님 말씀을 직접 들은 것을 기록한 경전을 경. 이라 붙입니다


율, 律, vinaya, from vi-ni, to lead, train: discipline, removal. 비나야, 계율입니다. 디시플린, 이자, 리무벌, removal.


율은 , 계율은 모든 종교에서 중요한 것인데, removal, 비나야 에 제거 란 의미가 있죠. 정불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천수경에 신묘장구대다라니 에서 나오는, 라아 미사미 나사야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모하 자라 미사미 나사야, 로 읽는 것은 원래 라아미사 미나사야, 나베사미사 미나사야, 모하자라미사 미나사야, 로 읽어야 합니다. 

라아미사, 탐 의 독, 나베사는 devesa, 진, 나베사미사 진 의 독, 모하자라, moha, mudha, jala, 모하나 자라나 치, 어리석음. 모하자라미사, 치의 독.


세가지의 독, 탐진치, 를 제거하는 것이 부처가 되기 위한, 생의 고리를 끊기 위한 가장 큰 방법입니다. 이 탐진치를 제거하기 위함이 율, 계율, 비나야, vinaya 입니다. 저기 미나사야, 가 제거함의 vini의 변형, vinaya의 변형으로 보면 되겠죠. 이게 율. 입니다. 


론論,abhidharma 빨리어,shastra, 산스크리트어, Śāstra 샤스트라. 대게 빨리어의 아비담마 로 쓰죠. 이는 석가모니 말씀에 대해 논쟁한 것입니다. 결집하고, 또 후대에, 석가모니가 말씀하신 경 에 대해, 이런 말씀이다, 아니다 저런말씀이다 하며 논쟁하는 거죠. 




이 경 율 론, 은 삼장, 삼장(三藏), 세 가지 장, tripitaka, 트리피타까, 세 가지, 피타까, piṭaka, Sankskrit and Pāli word meaning ‘basket’,Sūtra Piṭaka, Vinaya Piṭaka, and Abhidharma Piṭaka.. 바스켓, 담는 것. 세가지 경전인 수트라 비나야 아비담마 를 담은 것. 해서 삼장 입니다.


현장스님이 이 세가지 경장 율장 논장을 몰래 숨겨서,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 랑 같이 가져 온 거죠. 20년 가까이 숱한 고난을 겪으시면서.


이 삼장에, Prajnaparamita, Prajñāpāramitā, 반야바라밀다, 즉 반야경,, dhāranīs, 다라니, 진언들, 포함해서 4장, 5장 이라고 합니다.


般若波羅蜜多心經

唐三藏法師玄奘譯

觀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 「舍利子!色不異空,
空不異色;色即是空,空即是色。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是諸法空相,不生不滅,不垢不淨,
不增不減。是故,空中無色,無受、想、行、識;無眼、
耳、鼻、舌、身、意;無色、聲、香、味、觸、法;無眼界,
乃至無意識界;無無明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亦無老死盡;無苦、集、滅、道;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菩提薩埵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無罣礙故,無有恐怖,遠離顛倒夢想,
究竟涅槃。三世諸佛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咒,是大明咒,是無上咒,是無等等咒,
能除一切苦真實不虛,故說般若波羅蜜多咒。」
即說咒曰:
「揭帝 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 僧莎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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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대정신수대장경, 고려대장경 판본 똑같음(고려대장경에 반야, 이언 공역의 같은 이름의 다른 번역된 경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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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다심경, 현장 번역.

이 번역을 이해하시면, 불교를 정통 으로 이해한 것임. 이라고 나는 말함.

이 반야심경의 내 해석을 좇아 오시면, 불교를 정통으로 많은 부분 이해하기 쉬움. 이라고 나는 말함.


이 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12연기를 먼저 이해해야 함. 

불교는, 4성제 8정도 12연기 를 이해하면, 대부분 이해한 것임. 이라고 나는 생각함. 내 생각임.


4성제, 고집멸도, 세상에 태어나 사는 것 자체가, 고, 고통이란 것, 이라는 깨달음, 제 1성제, 성스러운 깨달음 이라해서 제, 아닌 성제, 성스러울 성을 씀.


그 고통의 원인이 있다. 란 깨달음이 집. 

그 고통을 멸할 수 있다. 고통이란 것, 불멸하는 것이 아니라, 멸할 수 있는 것이구나, 란 깨달음이 멸.


그 멸함의 방법이, 길이 있을까 없을까, 고통을 멸할 수 있는데, 까지는 멸, 그 고통을 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인간이면 다 그 방법, 길에 의해 가면 멸할 수 있다는 깨달음, 이 도. 고집멸도 의 도제.



예전 불교공부하다가 4성제 팔정도가 이런저런 책들을 봐도 잘 납득이 안되서리 공부하다 정리한 자료입니다


불교는 철학이자 과학입니다. 신앙 religion 이전에. 물론 신앙.
사성제에서, 제諦 는 체로 읽어야 할듯 합니다. 예전 잘못?된 습관들이 굳어서 된 말들이 불경에 많습니다


예로 불경에서 이분이 번역한 것은 맛이 다른데, 구마라습 으로 한문으로 쓰죠 구마라지바, 이것도 구마라십이 맞는 말이라고 합니다
什 을 습으로 읽는 건 송대에서 쓰던 발음이라고 예전에 들은 기억이 납니다. 허지만 제, 체 같이 혼용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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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만 정리합니다. 팔정도는...자료가 없습니다. 다시 쓰려니...기가 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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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불교를 이 판에서 전도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럴 주제도 못됩니다
단지 세상을 이해하는데, 인간을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은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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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 8정도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인데, 범어, 한문, 영역을 비교해서
보다 확실히 해석아고 나름대로의 방점을 찍어야 할 필요가 있어 정리하겠습니다.


MECE란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분석을 할 때, Mutually Exclusive and Collectively Exhaustive, 익스클루시브, 즉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혼동, 섞이면 안된다는 거죠.
그리고 이그조스티브, 비어서는 안됩니다. 전체를 빠짐없이 다 봐야 된다. 다 판에 넣어야 된다


인문학이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얘기를 하는 곳이라, 얘기를 할때 이도저도 되고 이도저도 아닌 말들이 많죠. 그래선 안됩니다. 
구분이 되어야 하고
전체를 포함해야합니다.


제가 사성제 팔성도를 얘기하고자 하는것도
시중에 나오는 말들 글들, 다들 구분이 애매하단 거죠. 

사성제, 네 개의 개념이 전혀 다릅니다
팔정도, 여덟개의 길, 이 개념구분이 명확히 되어야 합니다.
MECE,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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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성문법계(聲聞法界)라,
성문(聲聞)부터는 벌써, 성자(聖者)의 지위에 들어 갑니다. 성인(聖人)입니다.
부처님 법을 깨닫는 단계인 셈이지요.
해탈을 위하여 부처님의 성교(聲敎) 즉 부처님의 말씀에 의한 가르침인
교법(敎法)에 따라서 사제(四諦)의 관법(觀法)을 닦는 경계입니다.
사제(四諦) 법문은, '사체' 또는 '사제' 로 발음을 합니다만 편음으로 사제라 하고
본음으로는 사체입니다. 이것은 고, 집, 멸, 도(苦集滅道) 아닙니까, 역시 우리
불자는 삼보(三寶)가 무엇인가? 사제(四諦)는 무엇인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이
무엇인가, 또는 팔정도(八正道)가 무엇인가, 육바라밀(六波羅蜜)은 무엇인가, 하는
기초 교리만은 외워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경전을 보더라도 그것이 기본이
되어서 해득(解得) 하기가 쉽습니다. 또 그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나 일반 철학을
배울 때도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됩니다.
-청화스님 말씀. 정통선의 향훈


고제苦諦
苦諦 [py] kŭdì [wg] k'u-ti [ko] 고체 koch'e [ja] クタイ kutai ||| The truth of suffering (duḥkha-satya): the realization byh Śākyamuni that existence as we normally perceive it cannot but be dissatisfactory. One of the Four Noble Truths 四諦. Also written 苦聖諦
Description:
梵語 duhkha-satya,巴利語 dukkha-sacca。四諦之一。又稱苦聖諦(梵 duhkhārya-satya)
佛光電子大辭典
py: pinyin
wg: wade-giles
ko:korean
ja:japanese


산다는 것, 사는 게 괴로움이다 
이게 진리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중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뭐 별거 아니네 하실 분들이 계실까 모르겠지만.
사는게 괴로운 것이구나 사는 건 좋은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확연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는 게 행복한 듯 느껴지는 소위 가지신 분들은 이해를 잘 못합니다.
부처님이 이 진리를 말씀드리고 싶었다는 것을 진실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집제集諦
Description:
集諦 [py] jídì [wg] chi-ti [ko] 집체 chipch'e [ja] ジュウタイ、ジッタイ jūtai jittai ||| The Noble Truth of the arising of suffering (samudaya-satya), which is the second of the Four Noble Truths 四諦; also written 集聖諦.
Description: 
samudaya, the second of the four dogmas, that the cause of suffering lies in the passions and their resultant karma. The Chinese集 'accumulation' does not correctly translate samudaya, which means 'origination
범어로 samudaya 는 원인, 기원의 의미입니다. 축적을 의미하는 集은 정확한 번역은 아니랍니다. 저도 집 이란 표현때문에 해석이 어려웠는데, 범어를 보니 명확해 집니다
고제, 사는 것은 괴로움이다


이 진리는 만고불변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있습니다.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애욕의 근본이 욕심과 어울리는 것,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고제, 집제, 매우 단순하고, 뭐 별거 아니네 하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사성제를 아주 깊이 깊이 이해하고 담아야 합니다.


사는 게 괴로움이다 라는 것을 확연히 이해하는 단계에 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 괴로움을 일으키는 것이 이러한게 있구나 라는 것을 또한 깊이 알아가는 단계로 가야합니다



멸제滅諦
Description:
滅諦 [py] mièdì [wg] mieh-ti [ko] 멸체 myŏlch'e [ja] メツタイ metsutai ||| The noble truth of the cessation of suffering (nirodha-satya). The principle espoused by Śākyamuni that all suffering eventually ceases; one of the Four Noble Truths 四諦. Also written 滅聖諦 and 苦滅諦.
Page: [Dictionary References] Naka1358b [Credit] cmuller(entry)
Source: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Description:
nirodha-āryasatya, the third of the four dogmas, the extinction of suffering, which is rooted in reincarnation, v. 四諦.
Source: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Description:
四諦之一。見四諦條。
Source: 佛教漢梵大辭典
Description:
nirodha-satya, duḥkha-nirodha-satya, nirodha, nivṛtti-satya
Page: P.2070-P.2077
Source: 明,一如《三藏法數》字庫
Description:
謂此教三乘用觀巧故,審實五陰生死等苦,昔本無生,今亦無滅,故名滅諦。
Source: 明,一如《三藏法數》字庫
Description:
滅即寂滅。謂聲聞之人,既厭生死之苦,諦審涅槃,實為寂滅之樂,故名滅諦。
Source: 明,一如《三藏法數》字庫
Description:
謂此教菩薩,諦審六度之行,實能證於涅槃寂滅之理,故名滅諦。(六度者,一布施、二持戒、三忍辱、四精進、五禪定、六智慧也。)
Source: 明,一如《三藏法數》字庫
Description:
謂此教菩薩,諦審生死涅槃,體元不二,實無生死逼迫之苦可斷,亦無涅槃之寂滅可樂、可證,故名滅諦。
Source: 朱芾煌《法相辭典》字庫
Description:
瑜伽六十四卷十頁云:云何滅諦?所謂一切煩惱永斷。又此永斷、由八種相,如前應知。此中愛盡離欲者:此顯有餘依涅槃界。永滅涅槃者:此顯無餘依涅槃界。
二解瑜伽六十六卷二頁云:復次此煩惱品麤重永滅,是有餘依涅槃增上所立滅諦。又因永斷、未來不生;及先世因受用盡已,現在諸行、任運謝滅;是無餘依涅槃增上所立滅諦。又六十八卷一頁廣釋。
三解集論五卷十二頁云:云何滅諦?謂相故,甚深故,世俗故,勝義故。不圓滿故,圓滿故,無莊嚴故,有莊嚴故,有餘故,無餘故,最勝故,差別故,分別諦故。如彼卷十二頁至十五頁釋。


멸제, 괴로움의 중단.중지, 
nirodha-沒 (1) Sink, be submerged, to disappear, be lost, destroyed, weaken, decline (nirodha). [滅] (2) A negative; not, is not., extinction. 소화, 줄이고 끄고 없애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첫번재 삶이 고라는 것, 이것이 첫번째 중요한 진리, 진리입니다. 두번째 집제, 한문상 번역은 좀 불편하지만 arising of suffering, 괴로움의 원인이 있다, 이 원인이 있음, 그리도 이 원인이 잡다한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어느때나 적용되는 상시적 보편적인 원인이 있다는 데에 방점이 있습니다. 그 원인이 뭐냐 12연기로 설하시고 그 궁극의 원인은 무명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두번째 진리, 삶이 괴로움인데 그 괴로움의 원인이,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그 원인이 있다, 이것이 두번째 진리입니다


다시 지금으로 왔습니다. 멸제, 그 괴로움을 nirodha, 멸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진리입니다. 또는 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일 수도 있을까요, 이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말씀을 드리냐면 제가 어디 경전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우주가 괴겁의 시기엔 모든 중생이 다 열반한다고 했으니까요. 여하튼, 이 멸, 괴로움을 그대로 둘 수 없고 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멸의 방법이 뭐냐, 그 방법을 또한 설하셨겠죠
얼마나 위대한지, 진리가 그냥 진리인 사제가 아니라, 사성제라 했습니다. 성스러운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가볍고 당연스레 말하고 있지만, 찬찬히 곱씹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멸제도 제가 아닌 멸성제, 고성제 집성제 입니다.



도제道諦
자, 이제 도제입니다


삶은 괴로운 것입니다. 즐겁지 않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요, 흔히들 말을 하는데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이것은 잘못된거죠. 왜냐 행복할 수가 없는 거거든요 산다는 것은. 그렇지 않을까요. 이건 좀 깊이 들어가는 말인데, 그래서 부처님께서 궁극은 이 삶을 벗어나라고 누차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데 이는 좀 깊게 들어가는 말이고, 적어도 고통스럽지 않고 그래도 그나마 즐겁게 살려면, 복을 받아야 하는데 그 복의 원인은 바로 선하게 사는데 있습니다. 그러니 선하게 살아라. 그래야 복을 받아 사는 것도 즐겁게 산다. 이렇게 방편적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래도 삶은 괴로운 것입니다.


아, 그리고 선하게 살아야 결국 괴로움을 멸하고 열반하고 제일의제를 관하고 보리를 증득하니, 선하게 사는 것은 현세든 내세든 행복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삶의 철저한 바탕인거죠


삶은 괴로움이다. 그 괴로움을 발생하는 원인, 보편적인, 통시적인 원인이 있다. 이러한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라. 그리고 그 원인을 스스로 깨달아라. 누가 밝혔냐, 바로 내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밝혔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깨달음을 부처님이 무수겁의 고행과 복덕으로 부처님이 깨달으셔 밝히시고 이제 우리는 그것을 수행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선오후수, 부처님이 먼저 깨달으신걸 우리 미흡한 중생은 닦아 수행을 합니다.
그리고, 이를 멸해야 합니다. 멸제입니다. 멸해야 하고, 중지하고 extinction, 소화해서 불을 꺼야 합니다. 불유교경 마지막부분 얼마나 간곡히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이 세상, 우주는 불안한 것이다. 믿지 말아라 무너져 가고 있다. 그러니 정진에 정진해서 열반하라. 이게 부처님의 간곡한 마지막 말씀입니다. 부디 다들 정진해서 삶을 벗어나라 윤회를 벗어나라


멸제인 것입니다. 괴로움을 벗어나라 꺼라, 곧 삶을, 윤회를 벗어나야한다는 정말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어떻게 벗어나느냐. 그 길을 또한 부처님께서 깨달아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부처님이 먼저 깨달으신 것을 익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벗어나는 길이 있다. 없는 것아닌가 의구심이 있겠지만, 그리고 중생들마다 다양하게 적용될 방법이 아니라 이 또한 보편적인 통시적인 방법이 있음을 밝혀놓으셨습니다. 이 길이 있다! 이것이 



도제입니다. 사성제의 마지막.


Description:
道諦 [py] dàodì [wg] tao-ti [ko] 도체 toch'e [ja] ドウタイ dōtai ||| (mārga-satya) The "Truth of the Way." The fourth of the Four Noble Truths 四諦, which includes the eight kinds of correct practices 八正道. 
Page: [Dictionary References] Naka下1016b [Credit] cmuller(entry) cwittern(py)
Source: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Description:
mārga, the dogma of the path leading to the extinction of passion, the fourth of the four axioms, i.e. the eightfold noble path, v.八聖道.
Source: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Description:
四諦之一。見四諦條。
Source: 佛教漢梵大辭典
Description:
mārga-satya, mārga, pratipat-satya.
Page: P.3785-P.3787
Source: 明,一如《三藏法數》字庫
Description:
道即能通之義。謂聲聞之人,諦審戒定慧之道,實能通到涅槃,故名道諦。(梵語涅槃,華言滅度。)
Source: 明,一如《三藏法數》字庫
Description:
道即戒定慧之道。謂此教三乘用觀巧故,審實所破之集,能破之道,同一真空,無有二相,故名道諦。
Source: 明,一如《三藏法數》字庫
Description:
謂此教菩薩,諦審無量道法,實能自利利他,故名道諦。
Source: 明,一如《三藏法數》字庫
Description:
謂此教菩薩,諦審一切諸法,皆即中道,離邊邪見,實無煩惱之惑可斷,亦無菩提之道可修,故名道諦。
Source: 朱芾煌《法相辭典》字庫
Description:
瑜伽六十四卷十頁云:云何道諦?謂資糧道、若方便道、若清淨道、如是一切、總略為一,說名道諦。世尊就勝,依能攝受沙門果證,但略顯示八聖支道、名為道諦。資糧道者:有十三種。如聲聞地已說應知。方便道者:若就最勝;謂於煖頂忍世第一法位中所有一切諸念住等菩提分法。清淨道者:謂於見道修道究竟道中,即彼所攝所有一切菩提分法。究竟道中所有能引諸功德道、彼亦皆入道諦數中。又諸菩薩方便道者:謂六波羅蜜多所攝。清淨道者:謂般若波羅蜜多所攝。此約最勝說。非不一切菩提分法,皆遍修習。
二解瑜伽六十六卷三頁云:復次若能證解第一義諦所有正見,及正見為先、一切聖道;是名道諦。復次欲令於苦,遍知;於集,永斷;於滅,作證;於道,修習;故略建立諸聖諦相。若廣建立;當知其相、無量無邊。又六十八卷二頁至五頁廣釋。
三解雜集論八卷十七頁云:云何道諦?謂由此道故;知苦、斷集、證滅、修道、是略說道諦相。今於此中、依四聖諦,以其作用,顯道體相。如彼卷十七頁至十卷十六頁廣釋。


다른 번억된 언어들을 보면 한결 이해가 쉽습니다.
자 이제 사성제가 좀 정리가 되었나요
저도 이렇게 쓰면서 다시 공부하고 정리해봅니다


P.S
지금보니 제가 쓴것이라도 좀 새롭습니다.
흔히들 사람들이 사성제 사성제 하는데, 가운데 성聖 성스러울 성을 붙입니다. 너무나 귀하단 거죠. 뻔한 말같지만, 새겨서 탐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성스러운, 성스러운 진리인지.
도성제가 멸해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까지 설하신 겁니다. 
그 구체적 방법이...소위 8정도 입니다
시중에 나오는 8정도 도, 솔직히 제가 확연히 납득하기엔 성이 안차서, 


4성제 공부하던 식으로 써야 하는데

다음으로, 이 도제, 즉 그 깨달음의 방법이 이딴 것이 있다. 해서 구체적 방법, 구체적 길, 여덟가지를 제시한 것이 8정도


정견,正見
정견은 아래 사성도의 고집멸도를 확실히 이해하고 그 인식을 계속 마음에 잊지않고 유지하는 것. 핵심은 고집멸도 그 사성제를 유지하는 것.
samyag-drsti, right views, understanding the four noble truths; the first of the 八正道; 'knowledge of the four noble truths. ' Keith.
(Source: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Source: 朱芾煌《法相辭典》字庫
Description:
分別緣起祿勝法門經二十頁云:復言:世尊!云何正見?世尊告曰:所謂現觀前方便慧,正現觀慧,及與現觀後所得慧;超越所知方便聖教諸邪解行。 

品類足論八卷一頁云:正見云何?謂聖弟子等、於苦思惟苦,於集思惟集,於滅思惟滅,於道思惟道,無漏作意相應,於法簡擇,極簡擇,最極簡擇,解了,等了,遍了,近了,機黠,通達,審察,聰叡,覺,明,慧,行,毘般舍那;是名正見。


정사유, 正思惟
속세에 대한 욕(desire)심을 버리고, 금욕하며 친절하고 베풀려고 하려는 자세를 갖고자 하는 것,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방점은 renunciation(금욕)과 kindness(친절)에 있습니다. 
Description:
samyak-samkalpa, right thought and intent, the second of the 八正道, 'right aspiration towards renunciation, benevolence and kindness. ' Keith.
正確的思考,亦即思考四諦的道理,以引發正當的欲念,明瞭世出世間的因果,斷集證滅,離苦得樂,是八正道之一。


정어, 正語
바른 말인데 어떤 바른 말이냐, 거짓, 죄짓는 것, 타에 해를 끼치는 것, 게으른 것 들에서 멀리하는 말 입니다. 망어 양설 악구 중죄, 즉 의미없는 거짓말 이간질 하는 말 나쁜 말 등도 이에 포함되겠죠. 정구업진언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는 큰, 마하는 매우, 이 정어가 매우 중요하고 또한 힘든 일 같습니다. 바른 말 한다는 것 보다는 뒤의 나쁜 말들에서 멀리한다 에 방점이 있습니다
samyag-vāk, right speech; the third of the 八正道; 'abstaining from lying, slander, abuse, and idle talk. ' Keith
(一)梵語 samyag-vāc,巴利語 sammā-vācā。又作正言、諦語。八正道之一。即遠離妄言、兩舌、粗言、綺語等一切虛妄不實之語。又以正語亦必為合乎道理之語,故又稱順理語。(參閱「八正道」280)


정업, 正業
정어가 말, 입으로 하는 짓들에 대한 것이라면, 정업은 몸이 하는 짓을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불여불수, 주지도 않는 것은 받지도 말라 도 여기에 포함이 되겠죠. 정어와 정업의 금기의 대상은 같겠습니다. 말 그리고 행동, 입 과 몸
samyak-karmānta, right action, purity of body, avoiding all wrong, the fourth of the 八正道; 'right action, abstaining from taking life, or what is not given, or from carnal indulgence. ' Keith.
(一)梵語 samyak-karmānta,巴利語 sammā-kammanta。八正道之一。又作正行、諦行。即身口意三業清淨,遠離殺生、不與取、邪淫等一切邪妄。(參閱「八正道」280)
分別緣起初勝法門經二十頁云:復言:世尊!云何正業?世尊告曰:謂聖所愛無漏戒攝無漏作意,同時而轉;於三身業,能正遠離。超越一切諸險惡趣。 


정명, 正命
정명은 불교의 계율에서 하지 말란 것에 시선을 두면 될겁니다. 위의 정업과 구분이 애매할 수 있습니다. 정업은 정명에 비해선 일종의 가벼운 계율이고 평상시 하루 24시간 끊임없이 벌어지는 몸가짐이라고 하면 정명은 특정 금계에 대한 하지말라 에 있습니다. 범망경, 구바라지바가 번역한 불경을 보면 십중대계, 사십팔경계가 있습니다. 불살생 불투도 음주하지말라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 등 특정 사안에 대해 하지 말라는 것. 이를 지키는 것이 정명입니다. 정업과 정명이 구분되어야 합니다.
samyagājīva, the fifth of the 八正道, right livelihood, right life; 'abstaining from any of the forbidden modes of living. ' 正因 The true or direct cause, as compared with 緣因 a contributory cause.
梵語 samyag-ājīva。巴利語 sammā-ājīva。又作諦受、正命道支。八正道之一。佛弟子依從正法,清淨身口意三業;遠離咒術、占卜等五種邪惡之謀生方法,而如法求取衣服、飲食、湯藥、床榻等生活資具,即稱為正命。又比丘為延續法身慧命而行之乞食,稱為正命食。


정진, 精進
정진은 사성제를 알고 그 제를 멸하는 일을, 생각과 행동을, unchecked, 멈추지 말고, progress, 나아가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지속. 이것이 정진입니다
vīrya, one of the seven bodhyaṅga; 'vigour,' 'valour, fortitude,' 'virility' (M.W.); 'welldoing' (Keith). The Chinese interpretation may be defined, as pure or unadulterated progress, i.e. 勤 zeal, zealous, courageously progressing in the good and eliminating the evil.
vīrya, zeal, unchecked progress.
謂人直心向道,勤行眾善,無有懈怠,是名精進


정념, 正念
념, 念은 범어(산스크리트어)로 smrti입니다. Recollection, memory; to think on, reflect; repeat, 계속 생각으로 되새김질하며 기억하고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이겠죠, 어떻게? 정, 바르게. 과거의 기억이 왜곡되서 반대로 기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억한 그대로 되새겨야 한다는 거죠. 그럴려면 계속 그런 상황을 유지하도록 지관수행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samyak-smṛti, right remembrance, the seventh of the 八正道; 'right mindfullness, the looking on the body and the spirit in such a way as to remain ardent, self-possessed and mindful, having overcome both hankering and dejection. ' Keith.
正確的念頭,亦即時常憶念正道,不使思想行為有錯誤,是八正道之一。
分別緣起初勝法門經二十一頁云:復言:世尊!云何正念?世尊告曰:勤修止觀。諸瑜伽師,依止三相;時時於彼三種相中及不放逸俱行境界,心現明記;超越遠離修道加行。


정정, 正定
정,定, samādhi, 사맛디, 이 범어는 외워두면 좋습니다. 선 수행을 사맛디라고 합니다. 신심을 고요히 조용히 유지하고 정신을 비우고 맑게, 정 깨끗하게, 그 상태로 집중하는 선수행을 하라. 제일 중요한 영역입니다.
samyak-samādhi, right abstraction or concentration, so that the mind becomes vacant and receptive, the eighth of the 八正道; 'right concentration, in the shape of the Four Meditations.' Keith.
正確的禪定,亦即把心安住於一境,不亂不動,是八正道之一。
謂人攝諸散亂,身心寂靜,正住真空之理,決定不移,是名正定。
Right Concentration 正定 right abstraction, the eighth of the Eightfold Path; meditation, focusing the mind without distraction, preparing the mind to attain wis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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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 는 저 4성제 8정도, 에서 어느부분이냐.

세상은 고통이다, 사는게 고통이다. 고, 괴로울 고. 고제, 제1성제, 
그 고통의 원인이 있구나, 집제, 제2성제, 있구나 까지만 깨달은 것임. 그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집제에서 말하지 않음.

그 고통의 원인, 을 파고들어간 것이 바로 12연기. 임. 

여기 12연기에서, 마지막 무명, 이 무명을 지울 수 있다, 가 멸제, 그 멸하는 길, 방법이 있다, 란 깨달음이 도제임

즉 12연기는, 4성제의 제 2성제 다음에 오는 것이고, 다음이 멸도 인 3,4성제, 다음에 8정도. 

이 흐름을 이해하고 각 구성요소를 이해하면, 불교를 정통으로 대부분 이해한것임.

이 관점으로 불경을 보시면, 대부분 이해가 됨. 이라고 나는 말함.

12연기를 말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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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세상 사는게 고통이다. 1성제. 아 그 고통의 원인이 있구나, 집, 원인이란 산스크리트어(이하 범어)를 한문 집 으로 번역한 것. 그 원인이 무엇이냐.
여기서부터 파고 들어가는 것임.

아 사는게 왜 고통인가? 이 모든 것은 석가모니, 고타마 싯달타 깨서,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사유에서 나오는 것임.


아 사는게 왜 고통인가,


1 .老死, 노사, jarā-maraṇa, 자라마라나, (범어,팔리어 같음), ,Old age and death, the last of the twelve links in the chain of Dependent Origination (pratītya-samutpāda).
아, 몸이, 늙고 죽어서 그렇구나. 늙는다는 것은 병든 것과 같이 생각하면, 아프고 늙어 죽는다는 것 자체가 고통임. 안 늙어본사람, 안 아파본사람은 이게 뭔 소린지 모름. 죽음에 대한 사유를 깊게 안해 본 사람은 죽음에 대한 고통 공포를 모름. 젊음은 이것이 뭔 소린 줄 모름. 카르페디엠, 안아프고 젊을 때 하는 말임. 결국 아프고 병들고 죽는 것. 아 늙고 죽는 것. 이게 고통의 원인이구나

왜, 늙고 죽을까, 그 원인은 무엇일까


2. 生,생, jāti 자티; life; utpāda means coming forth, birth, production; 生 means beget, bear, birth, rebirth, born, begin, produce, life, the living. 
梵語 jāta 或 jāti,巴利語 jāti。指生起,有下列之意:
아, 태어나니까, 늙고 죽는 거구나. 결국 태어나는 것으로 인해 늙고 죽어 고통이 생기는 거니, 태어남이 고통의 원인이구나. 태어나지 않았으면 늙고 죽을 이유가 없고, 고통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구나. 

연기, 緣起, 연하여 기, 일어나다 생기다. 연기 의 영어 번역이 노사 영어 번역보면, Dependent Origination, 의지하여 생김. originate,
Origin, 어원, Mid 17th century: from medieval Latin originat- 'caused to begin',막막 시작하는 것. 시작의 시작. 생에 의지해서 dependent, 노사가 생김 origination.


그럼, 왜 태어날까. 싯달타께서 계속 사유하심.


3. 有,유, bhāva, 브하바, : that which exists, the existing, existence; to have, possess, be. It is defined as (1) the opposite of 無 wu and 空 kong the non-existent; (2) one of the twelve nidānas, existence; the condition which, considered as cause, produces effect; (3) effect, the consequence of cause; (4) anything that can be relied upon in the visible or invisible realm. It means any state which lies between birth and death, or beginning and end. There are numerous categories— 3, 4, 7, 9, 18, 25, and 29. The 三有 are the 三界 trailokya, i. e. 欲, 色 and 無色界 the realms of desire, of form, and of non-form, all of them realms of mortality; another three are 本有 the present body and mind, or existence, 當有 the future ditto, 中有 the intermediate ditto. Other definitions give the different forms or modes of existence.
梵語 bhava,巴利語同, 범어 팔리어 같음.


대체 무슨 이유로 태어나는 걸까, 안태어났으면 늙어 죽지도 않고, 따라서 고통도 없을 것인데. 왜 태어나는 것일까.
아, 브하바, 유, 존재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것이구나.

여기서, 존재, 유,有,라 해석되는 bhava, 가 해석이 어려울 수 있음. 여기서 일단, 존재란 유.를 오온이란 다섯의 집적체 라 정의도 하고, 불교에서 보는 세계가 욕계, 색계, 무색계, 에 거하는 존재들을 유, 유정有情, 이라고 함. 욕계는 크게 지거천 공거천으로 나누고 지거천의 4천왕천 밑에 남염부주에 인간이 인간이란 유, 유정으로 산다고 함. 욕계 중 지옥엔 지옥에 사는 유, 유정이 있고, 축생계엔 개 돼지 등의 유, 유정, 이 있음.

이런 각 삼계 에 사는 존재, 들을 유, 유정 이라고 불교에서는 봄.

지금 불교는, 단지, 인간의 유, 유정, 인간이 사는 세계와 그 위의 지거천 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님. 온 우주의 모든 존재, 유, 유정에 대해 설하는 것임.

이런. 유, 유정, 존재때문에 태어나는 것이구나. 쉽게 말하면, 아 씌바, 내를 낳은 부모란 존재가 부모란 유, 유종이 있으니까 태어나는 구나. 그래서, 생해서 노사해서 고통인 것이구나.



그럼. 브하바, 존재, 유, 유정이란 것은 왜 생길까, 또 사유하심



4. 取, 취, upādāna.우파다나, To grasp, hold on to, held by, be attached to, love; used as indicating both 愛 love or desire and 煩惱 the vexing passions and illusions. It is one of the twelve nidānas 十二因緣 or 十二支 the grasping at or holding on to self-existence and things.

존재, 유, 유정이란 왜 생기는 것일까, 우파다나, 취, 취하려는 것. 영어해석을 보시면, 잡으려 하고, 막막 붙으려는 것. 그런 성질. 막 뭐가 들러붙거나 잡으려하거나 하는 것, 성질이라고 해석해보자. 그런 붙으려는 법칙이라고도 해석해보자. 이걸 애,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번뇌, 라고도 할수있고, 어떤 열정, 환상에 의한 막막 붙어서 뭉치고 싶은 현상 법칙 성질. 이라고도 해석해보자.

아, 이런 취하려는, 잡고 붙으려는 뭉치려는 성질, 또는 어떤 싀안한 잘못?된 법칙에 의해서 그냥 자연스레 들러붙으려는, 그런 것때문에, 존재, 유, 유정이란 것이 생겨서, 태어남을 만들고, 노사를 만들어서, 고통인 것이구나,


그럼, 이 우파다나, 취, 붙고 잡고 뭉치고 들러붙는, 이런 현상은 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5. 愛, 애, 【梵】tṛṣṇā, 1.對生命的渴愛、熱望、懇求。2.對所認識的境界隨生味著

트라슈나, 애, 사랑(요즘 사랑보다는, 그냥 원해서 들러붙으려는 것으로 해석하자), 목마른 갈망, 매우 좋아함. 목말라 구하려는 갈구. 

목이 막막 마르다, 물이 먹고 싶은 그 미친 욕구. 그런 욕구, 갈구, 그걸 트라슈나, 애, 라고 해석하자. 

아, 뭔가 갈망하고 간절히 구하려는 욕망, 목이 말라서 물을 내 몸에 붙여야 겠다는 애, 그런 트라슈나, 애, 라는 것때문에, 우파다나, 취, 가 생기는 것이구나, 그래서, 애 때문에, 취 가 생기고, 취 때문에 유, 가 생기고, 생에 노사해서 고통인것이구나


그럼. 애, 트라슈나 는 왜 생길까?


6. 受, 수, 梵語 vedanā, 巴利語同, To receive, be, bear; intp. of vedana, 'perception,' 'knowledge obtained by the senses, feeling, sensation.' M. W. It is defined as mental reaction to the object, but in general it means receptivity, or sensation; the two forms of sensation of physical and mental objects are indicated. It is one of the five skandhas; as one of the twelve nidānas it indicates the incipient stage of sensation in the embryo. 

베다나, 수. 받으려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구나. 이 우주에 유, 유종들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수, 받아서 품으려는 작용이 있구나, 저 영역의 five skandhas 는 오온, 이란 것. 뒤에서 설명.


그럼, 저, 베다나, 수, 받으려하는 작용은, 대체 왜 생길까?


7. 觸,촉, 梵語 sparśa,巴利語 phassa, To butt, strike against; contact. sparśa, touch, contact, collision, the quality of tangibility, feeling, sensation. M.W. Eleven kinds of sensation are given— hot, cold, hard, soft, etc. sparśa is one of the twelve nidānas, cf. 十二因緣, and of the sadāyatana, cf. 六入. It is also used with the meaning of 濁 unclean.

스파르샤, 촉, 접촉, 컨택, to butt, touch, 먼가 상호 접촉하는 작용때문에 생기는 것일게다. 


그럼, 저 스파르샤, 촉, 접촉의 작용, 성질은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8. 六入,육입, sadāyatana, The "six entries" sadāyatana, which form one of the links in the chain of causaton, v. 十二因緣 the preceding link being觸contact, and the succeeding link 識 perception. The six are the qualities and effects of the six organs of sense producing sight, hearing, smell, taste, touch, and thought (or mental presentations).

사댜야타나, 육입, 아, 안이비설신의, 라는 여섯가지 입구가 있으니 접촉, 컨택이 되는 것이구나, 눈이 있어 눈밖의 안계, 눈의 세계와 접촉을 해서, 촉해서, 수 해서, 애가 생기고, 귀코혈몸 도 그와같으며, 의입처, 뜻 의, 마음 의, 의식 의, 인식 의, 즉, 마음의 입구가 있어서, 생각의 입구가 있어서, 그 생각의 입구를 통해서 생각의 세계, 마음의 세계와 촉해서, 수해서, 애 하는 구나.

그러면, 저 육입. 사다야타나 는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9. 名色, 명색, 梵語 nāma-rūpa,巴利語同。為名與色之並稱, ,名指心的方面,色指物的方面。又名色亦為五蘊之總稱

나마루파, 명색, 명색 을 바탕으로 육입이란 것이 생성되는 구나. 명색은 명과 색 각각의 말의 합성어. 명은 마음의 면을 가리키고, 색은 물질의 면을 가리킨다. 즉 색, 물질에 바탕을 두어 안이비설신 이란 육입 중 5입이 생기고, 명,마음 이란 것을 바탕으로 의, 란 입구가 생기는 구나.

그러면, 이 명색은 또 무엇에 기인해서 생기는 것일까


10. 識, 식, vijñāna, 비냐나"the art of distinguishing, or perceiving, or recognizing, discerning, understanding, comprehending, distinction, intelligence, knowledge, science, learning . . . wisdom." M.W. parijñāna, "perception, thorough knowledge," etc. M.W. It is intp. by 心 the mind, mental discernment, perception, in contrast with the object discerned; also by 了別 understanding and discrimination. 心的別名,了別之義

비냐나, 식, 이 식이란 개념도 약간 어려운듯. 구분한다. 구별한다. 가 핵심으로 보임. 이해해서 구별할 줄 아는 작용. 기술. 
식 에 기본적으로 저 6입에 대입하면 안식 이식 비식...의식, 6개의 식이 있음. 안식, 눈의 식, 눈을 통해 이해되서 알아서 구별해서 눈을 통해서 안계, 눈의 세계만 구별해서 보는 작용 인 안식을 통해, 명색 중 색을 바탕으로 한 6입 중 안입처 가 생성되서, 촉해서 수해서 애 하는 것임. 잘 따라오시기 바람.


마찬가지로, 의식이란 것이 있어서, 생각, 마음의 식을 통해, 의입처가 생성되서 촉해서 생각하고 상상하게 되서(촉 하고 수 해서) 마음으로 애, 갈구하는 것임.

유식론으로 들어가면, 논하는 자에 의해 8식 9식, 아뢰야식 말나식 등으로 나눔. 이 가장 끝의 식이 윤회의 식. seed임. 이 식조차 없애야 윤회를, 타고남을 끊는, 고통을 끝는, 니르바다, 멸해서, 세상, 우주를 벗어나는 것임.

그럼, 대체 저 식, 비갼나 는 무엇으로 인함 인가?


11. 行,행, 梵語 sajskāra,巴利語 savkhāra, 指身口意的造作, Go; act; do; perform; action; conduct; functioning; the deed; whatever is done by mind, mouth, or body, i.e. in thought, word, or deed. It is used for ayana, going, road, course; a march, a division of time equal to six months; also for samskāra, form, operation, perfecting, as one of the twelve nidānas, similar to karma, action, work, deed, especially moral action, cf. 業. 카르마, 업과 비슷한말.

사스카라, 행, 움직이려는 작용, 법칙 때문에, 식이란 것이 작용하는 것이구나. 안이비설신의 로 구별되는 세상은, 가만히 있지 않고, 기본적으로 막막 움직인다는 것. 해서, 눈의 세계인 안계, 코로 맡아지는 비계, 귀로 들리는 이계 등등 다 움직이려는 작용이 있구. 이 움직임, 행, 으로 인해, 각각의 식이 생기고 그로인해 입처 입구가 생기고 그로인해 촉하고 수하고 애하는 구나. 


그럼 이 사스카라, 행, 은 무엇에 기인함인가?


12. 無明, 무명,【梵】avidyā, Commonly tr. 'ignorance', means an unenlightened condition, non-perception, before the stirrings of intelligence, belief that the phenomenal is real, etc.
不明白道理,亦即愚痴的別名
謂過去世煩惱之惑,覆於本性,無所明了,故曰無明。
謂於事理等法,無所明了,障覆真性也

무명, 아비댜, 어두워서 그렇구나. 우주의 도리, 근본 이치를 명백히 모르고, 어리석어서 그렇구나, 과거세의 번뇌의 미혹함으로 그 아미타 부처란 본성을 뒤덮어 잊어, 조금의 빛도 없이 깜깜한 무지의 상태라서 그렇구나. 

그 아미타 부처란 본성을 잊은체, 각각의 육입처에 해당하는 세계의 유, 유종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일 수 밖에 없고, 행, 그로 인해, 식이 생기고, 명과 색이 구별이 생기고, 그를 숙주로 해서 오입과 일입 해서 육입이 생기고, 각각의 육입처를 통해서, 촉, 컨택 접촉을 하게되고, 수, 뭔가 품으려 하고, 애, 갈구하게되고, 취, 엉겨 붙으려 하고, 그래서 존재, 유, 유정이 생기고, 이런 존재로 태어남, 새끼를 낳고 이게 자라서 늙고 죽는, 고통을 겪게 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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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12연기임. 노사, 생, 유, 취, 애, 수, 촉, 육입, 명색, 행, 무명,

저걸, 무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님. 저 사유대로, 논리대로, 노사, 부터 시작을 해야함. 기본은. 

왜 고통일까, 노사 때문에, 왜 노사일까, 생으로 인해서, 왜 생 할까, 유, 존재때문에.....때문에 때문에...해서 마지막, 무명. 때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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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명, 밝지 못함. 즉 무명을 명, 밝음으로 바꾸어야 한다!. 왜 밝지 못하느냐, 번뇌, 탐진치때문이구나. 탐진치가 덩어리 덩어리되어서 번뇌라는 것으로 찐뜩찐뜩 엉켜붙어서, 무명 하는 구나. 아 그래서 결국 고통스러운 거구나!

이 무명을 명 하게 해서, 이 윤회의 구조를, 우주를,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고통의 세상에서? 이 번뇌의 질기고 질긴, 때를 벗겨낼 수 있을까? 고통을 없앨 수 있을까?

그래 없앨 수 있다. 번뇌를 없애서,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 그 고통을 멸할수 있다. 가 멸제. 제 3성제 임. 다음 제4성제로 가고, 제4성제의 구체적 방법이 8정도임
.

여기까지 이해하면

불교를 정통으로 이해한 것이라고 나는 말함
.

자, 그럼, 반야심경은, 거의 해석이 된 것임.

觀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 「舍利子!色不異空,
空不異色;色即是空,空即是色。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是諸法空相,不生不滅,不垢不淨,
不增不減。是故,空中無色,無受、想、行、識;無眼、
耳、鼻、舌、身、意;無色、聲、香、味、觸、法;無眼界,
乃至無意識界;無無明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亦無老死盡;無苦、集、滅、道;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菩提薩埵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無罣礙故,無有恐怖,遠離顛倒夢想,
究竟涅槃。三世諸佛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咒,是大明咒,是無上咒,是無等等咒,
能除一切苦真實不虛,故說般若波羅蜜多咒。」
即說咒曰:
「揭帝 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 僧莎訶」


관자재보살이 행한다,심,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시, 이 때에,

관자재보살
관자재, avalokiteśvaraḥ, 아발로키테슈바라, 觀世音, 관세음, 이라고도 함. 관자재 의 능력은 생략함 길어지니까.

보살, 보리살타, 의 준말, 菩提薩埵, 【梵】bodhisattvah, bodhisattva, a being of enlightenment: 'one whose essence is wisdom': 'one who has bodhi or perfect wisdom as his essence,菩薩,
범어의 보티사뜨바, bodhisattvah, 를 한문 음역을 따와 소리나는 데로, 보리살타, 로 쓰고, 이를 보살, 로 줄여 말함.


반야바라밀다, 般若波羅蜜多, prajñā-pāramitā.與般若波羅蜜同, 범어의 프라냐파라미타, 의 한문음역, 반야바라밀, 과 같은 말

반야바라밀, 般若波羅蜜, 般若譯義是智慧,波羅蜜譯義是到彼岸,般若波羅蜜是說般若如船,能將眾生從生死的此岸,渡到不生不滅的涅槃彼岸。

이말 참 아름다움. 반야, 는 지혜, 바라밀, 은 도피안, 피안에 이름, 이란 뜻. 피안은 윤회를 벗어난, 삼계를 벗어난 세계임. 즉 깨닫고 수행해서 번뇌를, 탐진치의 독을 씻어내서 갈 수 있는 세계 가 피안. 임. 저승세계 그딴 세계가 아님. 그 도피안, 피안에 도달함. 을 바라밀 이라 함.


반야, 는, 배와 같다. 반야 라는 배에 중생들을 태워서, 이 생사의 윤회의 세계인 차안을 벗어나서, 불생불멸하는 열반의 피안의 세계로 건너게 하는 것이 반야 이다. 얼마나 아름답나? 위 한문 해석임.

관자재 보살이 이런 반야바라밀다를 행심, 깊게 행하실 때에, 오온이 모두 공 임을 보셨다. 


오온, Five Skandhas 五蘊 or Five Aggregates, that is, the five components of an intelligent beings, or psychological analysis of the mind: 1.Matter or Form (Rūpa) - the physical form responded to the five organs of senses, i.e., eye, ear, nose, tongue and body 2.Sensation or Feeling (vedanā) - the feeling in reception of physical things by the senses through the mind 3.Recognition or Conception (Saṃjñā) - the functioning of mind in distinguishing and formulating the concept 4.Volition or Mental Formation (Saṃskāra) - habitual action, i.e., a conditioned response to the object of experience, whether it is good or evil, you like or dislike 5.Consciousness (vijnana) - the mental faculty in regard to perception, cognition and experience, 


다섯가지 온, 한문 온, 은 쌓은 것. 임. 집적체. 로 보시면 됨. 오온은 색,수상행식, 으로 봄. 색과 수, 행, 식, 은 위의 12연기에서 말함.

상, 想, To think, meditate, reflect, expect; a function of mind.
Recognition 想 or Conception or Thinking. The Sanskirt word is Saṃjñā. It is the function of mind. It may lead to desire. One of the Five Skandhas.
생각하는 것, 생각하면 떠오른 그런 마음으로 보는 이미지들이 다 상. 임.

이 오온의 집적체가 육입처로 구성된 중생으로 보면 되겠음.

아, 해석 너무 길어짐. 피곤함

의외로 기네.


저 경 에서, 중요한 단어들만, 나열함.
相, lakṣana 攞乞尖拏. Also, nimitta. A 'distinctive mark, sign', 'indication, characteristic', 'designation'. M. W. External appearance; the appearance of things; form; a phenomenon 


공상 의 상임. 공이라고 특정될 수 있는 상. 락샤나.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공과 색, 같다는 말이 무엇이냐 면.

이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한 것이라면, 불교는, 마음에서 이 우주가, "물질적 으로도" 생성되었다고 봄. 이것은 아래 우주의 생성, 아니 정불에서, 기독성경의 선악과, 와 불경 아함경 기세경의 지미, agua dulce, 달콤한 물, 에 대한 욕심으로 이 우주가 생성되기 시작했다는 글로 이해 하셔야 함.


결국 이 우주는 원래, 없었던, 공, 의 세계임. 이 공 에서 지금 이딴 식으로 몸이 생성되고 막막 처먹고 사는 것임. 이게 웃기심? 그럼 빅뱅은 안 웃기심?

즉 이 우주의 보이는 색, 이것의 본질, 실재, 진실, 화이트헤드식으론 리앨리티, 는, 공, 빅뱅이전의 아무것도 없는 그것이란 것, 이게 공의 개념이라고 나는 말함.

머 씌바, 걍, 색즉시공이다, 마음을 비워라, 다 모두 씌바 개소리임. 
.
해서, 아래 불유교경, 석가모니 말씀이 그말씀임. 이 우주, 무너지고 불안정한 세계니까, 빨리 빨리 정진해서, 본 실재는, 8식인지 9식인지 아뢰야니 말나식도 없애서 공 하라는 것임.
.
진, 이란 말
盡, 【梵】śāntaḥ, An emptied vessel, all used up; end, finish, complete, nothing left; all, utmost, entirely. At the end of seven days, seven days being completed

샨타의 번역어. 다 없어진 것. 모두 소진됨

菩提, bodhi; from budh; knowledge, understanding; perfect wisdom; the illuminated or enlightened mind; anciently intp. by 道, later by 覺 to be aware, perceive; for saṃbodhi
Buddha [Buddha] the enlightened one. The term Buddha is derived from the root budh 'to wake up', 'to know'. Hence Buddha literally means 'one who is awakened', 'the enlightened one'. Buddha is an enlightened person who is absolved from all existence by perfect knowledge of truth, and who reveals to the world the method of obtaining the Nirvāṇa.
佛 Means "the Enlightened One" or "the Awakened One".音譯:佛.佛陀


보리살타, 의 보리, bodhi, 보디 란 말의 한문 음역, 깨달음. 지혜 임. 깨달은 이를 보리살타, 보띠사뜨바, 붓다 buddha, 한문으로 불, 불타, 우리말로 부처라 함.

究竟, Examine exhaustively; utmost, final, at the end, a tr. of uttarā, upper, superior, hence 至極 ultimate, supreme. 梵語 uttara,巴利語同。音譯鬱多羅。形容至高無上之境界


구경열반할때 구경. 구, 가 끝 구임. 삼계 끝까지 가서 그조차 벗어나, 열반, 니르바나, 해서, 벗어나라.

顛倒, 解釋: 倒見事理的意思,如以無常為常,以苦為樂等是, 解釋: 錯誤
원리전도몽상, 의 전도, 이치를 꺼꾸로 보는 견해임. 다른말 착오.

阿耨多羅三藐三菩提, 梵語 anuttara-samyak-sajbodhi, 無上正等正覺, 「阿耨多羅」意譯為「無上」,「三藐三菩提」意譯為「正遍知」。乃佛陀所覺悟之智慧;含有平等、圓滿之意。以其所悟之道為至高,故稱無上;以其道周遍而無所不包,故稱正遍知。


아뇩다라 삼먁삼보리, 범어 아누따라 삼먁 삼보디, 의 한문음역, 아누따라, 더 위가 없다, 는 말, 무상, 삼먁, 은 퍼펙트, 아주 완전한, 뜻으로, 삼보리, 는 보리를 더 강조함. 삼보리. 저것도 원래 한글은 아뇩다라삼먁보리 가 아닌 다른 말로 요즘 번역한다 했는데 바뀐지 모르겠음.


일례로, 사성제, 도 사성체, 가 맞음. 허나 오랜 관습으로 사성제 굳힘. 진체 역도 진제 역으로 하는 상황임.


마지막 진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이걸 범어로, 원래는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바하

이걸 번역하길, 가테 가 간다, 해서 간다 간다, 뭐 저기 피안의 세계로 간다, 

이런 식으로 번역을 하는데,

전혀 근거없는 번역임. 


그딴 번역 없음

.
it is said that the Indian masters who came to China to translate Sanskrit texts never translated mantras into Chinese because they knew this could not be done. They also held that it was impossible to explain the esoteric meanings of the mantras in words. It is said that when a devotee succeeds in realizing singleness of mind (samādhi) by repeating a mantra, then its profound meaning will be clearly revealed to him or her.
Tibetan exegesis of the mantra tends to look back on it from a Tantric point of view. For instance seeing it as representing progressive steps along the five paths of the Bodhisattva, through the two preparatory stages (the path of accumulation and preparation – gate, gate), through the first part of the first bhūmi (path of insight – pāragate), through the second part of the first to the tenth bhūmi (path of meditation – pārasamgate), and to the eleventh bhūmi (stage of no more learning – bodhi svāhā).


진언은 대게 해석이 가능하나, 
저 진언은 해석이 안됨. 수행 깊은 이가, 말로 표현하는 그 무엇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함
티벳에서는 수행해서 밟는 일단계를 가테 가테, 그다음 통찰, 화악 밝아지는 단계를 파라가케, 그다음 궁극의 단계를 보디스바라, 라고 해석한다고 함
.

아 너무 길어져서, 걍 이렇게 마무리해서, 미안하지만, 저정도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반야바라밀다심경 해석임

내가 가장 완벽한 해석이라고 하면, 걍 그른줄 아셈
.
The 14th Dalai Lama explains the mantra[48] both as an instruction for practice and as a device for measuring one's own level of spiritual attainment, and translates it as "go, go, go beyond, go thoroughly beyond, and establish yourself in enlightenment". In the discourse, he gives a similar explanation to the four stages (the four "go"s) as in the previous paragraph.

달라이라마, 저 진언을, 가자 가자, 저 피안으로 가자, 그대의 자신을 무명에서 벗어나서 열반하자, 라고 번역했다고는 함.


觀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시,

관자재보살이, 행할, 심반야바라밀다,를, 때에,

관자재보살이 깊은 지혜바라밀, 지혜의 배를 타고 저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 방법을 행, 수행할 때에,


이것도, 다시 질문을 해야 함. 지혜바라밀, 반야, 지혜로써 이 우주를 벗어나 저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을 수행한다, 이게 뭔 의미일까?

우리는 대게, 해석을 할때, 한문이든 영어든, 아니면 국어든, 그 글 자체를 보고, 이해한 듯이 생각하고 넘어간다.


저게 해석이 다 된것인가? 저게 대체 뭔뜻인가? 해석은 계속 묻고 물어야 한다. 단지 한문 음훈 알고 영어 단어 안다고 해서 번역을 한 것, 해석을 한 것이 아니다.

영어는 저 문장을 어찌 해석했을까?


에드워드 콘체,Edward Conze (1904 – 1979) 의 영역본, THE HEART SUTRA, 를 보면

Avalokita, the Holy Lord and Bodhisattva, was moving in the deep course of the Wisdom which has gone beyond.

was moving in the deep course of the Wisdom, 반야의, 지혜의 깊은 과정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뒤에 which has gone beyod, 의 주어는 course로 봐야 한다. 지혜의 깊은 과정, 경로, 지혜로써, 저쪽 피안으로, 깊게 가서, gone beyond, 가버린 것이다. 피안으로, 도피안, 피안에 도달한 것이다. 


행하다를 moving, 으로 번역, 깊은 참선을 통해서, 유식론으론, 8식이면 아뢰야식, 9식론으론 암마라식, 10식론이면 건률타야식, 등 유식론마다 입장이 있는 건, 이 훈습된, 번뇌의 때가 낀 식들은 다 버리고, 불심, 진실심인 식으로, 피안으로 가는 과정, 을 깊은 수행, 참선으로 지혜의 배, 반야선을 타고 간 것이다. 

이것이 저 문장이다. 관자재 보살이 깊은 참선수행으로 이런 식으로, 저 피안의 세계에 반야선을 타고 고해의 바다를 건너서 가봤다. 캬~


천수경에, 시작하자마자,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乘般若船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越苦海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반야선을 속히 타보고 싶어요, 어여 고해의 바다를 건너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반야선 이 반야라는 지혜라는 배, 월고해, 고해를 넘다, 어딜 향해서, 피안을 향해서, 고해를 넘고, 도 피안, 피안에 다다르다, 이것이 바라밀(다)
.
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조, 비추다, 밝게하다, 견 보다, 밝게 비추어 보다, 무엇을, 오온이 개, 모두, 공, 공임을., 그리고, 도, 건너다, 넘다, 일체의 고액을. 고난과 재액, 불행한 일을.

콘체의 이 부분 영역
He looked down from on high, He beheld but five heaps, and He saw that in their own-being they were empty.

콘체의 영역은 범어를 번역한 것. 한문을 보고 번역한 것이 아니다. 현장과 콘체가 한문과 영어로 번역하는 원문은 거의 같은 것일게다. 허나 콘체의 영역과 현장의 한문이 뒷부분이 다르다. 현장은 도일체고액. 이라 했고, 콘체는, 그는, 즉 관자재보살은, 일체가 공임을 보았다. 로 해석했다. 다른 버전의 원본으로 번역했음 추론할 수 있다. 콘체는 여기선, 그 관자재보살이 지혜의 배, 반야선을 타고 피안의 세계에 가는 과정의 깊은 수행에서 오온, five heaps가 공, 함을 관조했다. 라고 자기의 원본을 보고 해석했다.


관자재보살이 오온의 실체는 다 공임을 보셨고, 일체고액의 바다를 넘으신 것이다. 피안에 도달으신 것이다. 깊은 수행을 하시면서.
.
「舍利子!色不異空,空不異色;色即是空,空即是色。受、想、行、識,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진,미,모험,온전함(Truth, Beauty, Adventure, and Wholeness)
(아래)

참조.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과 공은 같다 라는 말은, 위 화이트헤드의, 안이비설신의 로 접하는 현상, 피나미논, phenomenon, 이 색, 이고, 그 실재, 리앨리티, reality, 파고 들면 그 궁극은 양자 전자를 넘어, 공, 이란 것. 육입처로 접하는 모든 현상의 본질은 본체는 공, 텅텅 비어있다는 것, 콘체는 empty, 로 표현함. 

우주가 한점으로 시작을 했으면, 성하고 주, 머물러서, 괴, 무너지다가, 공겁으로 접어듬. 텅텅빈 공겁에서, 다시 한점으로 시작해 빅뱅하면서, 성하고 주하고 괴하고 겁을 반복함. 이 빅뱅이전의 상황 이 공. 임. 

모든 겉으로 접히는, 우주 만상의 것들은, 결국 공 이 그 리앨리티, 본체 본질 이란 것 이 불교의 말씀임.

우주의 시작이, 일체제법이, 중생의 저 피안에서, 이 차안, 우주에 대한 욕, desire로 인해 시작한 것. 그것으로 인해 빅뱅이 시작되고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것임. 해서,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 일체유심조, 물리학임.


일체제법, 법이란 것. 梵語 dharma,巴利語 dhamma, 범어로 다르마, 달마, 팔리어로 담마. 영어로 law 등, 근본불교에서는 이 우주의 법을 5위 75법으로 분류함. 누구는 100법으로 보기도 하고, 

5위 75법, 자리가 있음. 삼계, 즉 욕계 색계 무색계 로 이 우주, 세계를 분류하면 각 세계별로 욕계는 6욕천으로 분리해서 거기에 지거천 공거천, 저거천에 사천왕천, 그리고 색계도 무색계도 각각 세부 분류되는 세계가 있을 것이고, 그 각각마다 돌아가는 다르마, 달마, 담마, 법이 있음. 그 법으로 각각의 세계가 돌아감. 그 세계, 그 법으로 돌아가는 법계에 거하기 위해선, 나름 공덕을 쌓던 정진을 해서, 참선을 해서, 업을 소진해서 지옥계 벗어나고 축생계 인간계 각각 벗어나서, 그 위의 자리, 위의 세계 로 가야함. 그것이 5위의 위, 자리임. 일체제법인 75법을 나름 피라미드 식으로 5가지 자리로 분류를 한 것임. 그 5가지 자리마다 세부 세계, 법을 각각 분류한것이 75법. 이것이 일체제법임

곧, 일체제법이 이 우주만물이 거하는 세계란 것임. 뒤에 사리자야 시제법공상, 이 제법, 여러법, 즉 일체제법임 75법임. 이 법들 다 모두 공상이라, 그 본질 본체 리앨리티는 공이다. emptiness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간의 몸으로 참선해서 신선조차 되지 말아라, 신선도 신선세계의 그 법도, 다 무너질 허상이라. 일체제법 안에 있는 것이다. 거기에 거하지 말고. 진여의 세계로 들어가라. 이 현상의 일체제법의 세계는 무너질 세계고 불안불안한 세계인 것이다.

인간의 몸일때 정진하라 해서 어서어서 벗어나라. 돈버는 짓 점치는 짓 그딴 짓 할 여유 없다. 인간의 몸일때만이 정진해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 최후의 말씀인 불유교경임
(아래)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教誡經)

이런 관점으로 반야심경을 보시면 됨. 한글자 한글자 치밀하게 하려니, 엄두가 안나서 이만 접겠음
.


P.S
해서 반야심경이 저 말하는 모든 귀결은, 나오는 말 공중무색, 空中無色, 중, 가운데 중, 은 갑골문의 해석을 보면 아래위 군대깃발 사이에 점 형상, 군대 사방 사이에 핵심지대, 즉, 핵심이란 의미임 추상적으로, 공 이란 말의 핵심, 공이란 단어란 궁극적으로 무슨 뜻이냐, 무색, 색이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석해야 함. 내 해석임.

12연기의 노사, 생, 유, 취, 애, 수, 촉, 육입, 명색, 행, 무명, 이런것도 원래는 없는 공, 의 세계가 진짜 세계였는데, 욕의 마음이 발동하여, 지미를 맛보려는 마음, 선악과를 따려는 마음이 발동하는 순간, 무명이 생기고 무명에 인하여 행이 생기고,,해서 해서 유가 생기고 생에 노사가 생기는 이런 색의 세계, 우주 에서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이다. 

무노사진, 의 진, 위에 말한듯이, 노사의 다 함, 노사의 끝 이딴 것도 그래서 있을리가 있었겠나?
무지역무득, 지, 알 지, 일체제법계의 각각에 또한 해당하는 참선의 정이 있고 지 가 있음, 이런 지, 도 궁극적으로 없던 것이고, 얻을 것 또한 있었겠는가, 다 없다. 모든 것은 다 허상이고, 궁극의 리앨리티 실재는 공 이다.

공이란, 진여, 의 세계인데, 이건 말로 설명이 불가한 기묘한 오묘한 것이다. 해서 오도송으로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누구는 둥그런 원으로 표현하는 그런 묘한, 텅텅빈 것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 그런 것이 공, 이다. 언어의 한계. 헌데 이곳이 피안의 세계이고, 반야바라밀(다)해야 한다, 반야, 지혜의 배를 타고 저 진여의 공의, 피안으로 도달해야 한다.

보리살타, 보살들은 이런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였고, 해서 무서울것도, 공포스러울 것도 없다. 이에 의지해야 궁극의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고, 저 진여의 피안으로 가는 것이다.

이게 반야심경의 전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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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훌륭하고도 쉬운 해석임. 

에드워드 콘체의 영역.

Avalokita, the Holy Lord and Bodhisattva, was moving in the deep course of the Wisdom which has gone beyond.
He looked down from on high, He beheld but five heaps, and He saw that in their own-being they were empty.
Here, O Sariputra,
form is emptiness and the very emptiness is form ;
emptiness does not differ from form, form does not differ from emptiness, whatever is emptiness, that is form,
the same is true of feelings, perceptions, impulses, and consciousness.
Here, O Sariputra,
all dharmas are marked with emptiness ;
they are not produced or stopped, not defiled or immaculate, not deficient or complete.
Therefore, O Sariputra,
in emptiness there is no form nor feeling, nor perception, nor impulse, nor consciousness ;
No eye, ear, nose, tongue, body, mind ; No forms, sounds, smells, tastes, touchables or objects of mind ; No sight-organ element, and so forth, until we come to :
No mind-consciousness element ; There is no ignorance, no extinction of ignorance, and so forth, until we come to : There is no decay and death, no extinction of decay and death. There is no suffering, no origination, no stopping, no path.
There is no cognition, no attainment and no non-attainment.
Therefore, O Sariputra,
it is because of his non-attainmentness that a Bodhisattva, through having relied on the Perfection of Wisdom, dwells without thought-coverings. In the absence of thought-coverings he has not been made to tremble,
he has overcome what can upset, and in the end he attains to Nirvana.
All those who appear as Buddhas in the three periods of time fully awake to the utmost, right and perfect Enlightenment because they have relied on the Perfection of Wisdom.
Therefore one should know the prajnaparamita as the great spell, the spell of great knowledge, the utmost spell, the unequalled spell, allayer of all suffering, in truth -- for what could go wrong ? By the prajnaparamita has this spell been delivered. It runs like this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 Gone, gone, gone beyond, gone altogether beyond, O what an awakening, all-hail ! -- )
This completes the Heart of perfect Wisdom.

부처님 열반시 경전이, 열반경 이라 알려진, 대반열반경, 내용이 방대하다.

이외에 팔리어경전인 아함경에 잡아함경 중아함경 장아함경 등에 군데군데 열반시 말씀이 전해진다.

아함경 또한 더 방대하다. 한역으로 번역된 김월운의 아함경 전집은 집에 있어야 한다. 이십여권 될텐데, 불경 관심있는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아함경의 팔리어버전인 니까야, 는 전재성역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이건 책이 훨 길게 번역이 되어있다. 이것 또한 일독을 권한다. 

최근에야 불경번역이 제대로 되고, 니까야도 다른 번역이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다른 번역은 읽어보지 않았다.
.

불경 중에 , 다 좋지만, 사람들이 특히나 알았으면 하는, 잘 안알려진 경전이, 저 유교경, 불유교경이라고 줄여 말하는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 

부처님 열반시 말씀이 압축적으로 열반 직전의 말씀이 적나라하게 전해지는 짧은 경전이다. 불설아미타경 보다 내용이 쪼끔 많을까, 아주 짧다.

이것도 구마라습 번역, 이분 번역 불경은 다 읽으시길 권함.
.

예전 서점에 가니, 김지수, 이분 불교번역책 참 좋던데, 이분 역으로 된 책이 있는데, 여유있는 분은 이분의 불유교경 책 사서 보시믄 되시고

한글대장경의 번역과 대정신수대장경의 한문을 그대로 옮긴다.
.

불교 믿으시는 분들, 절에들 가시면, 절에 노란 겉표지의 무비스님 불경이 쌓여들 있는데

여 불경들 중, 고왕경이 있다. 이것도 역시 대장경에 있는데, 이게 내 보이 오타도 아니고 한문 자체가 내용이 완전 다르다. 즉 틀리다.

절에 있는 고왕경 책들은, 대장경버전으로 바꾸셨으면 한다. 잘못된 경전이란 것이다. 불경의 모든 책들은 대장경을 기본 판본으로 해야한다.

맘의 여유가 되면 어디가 틀린지 밝히고 싶으나, 그딴 여유는 안되는데, 하튼 예전 본 기억으론 좀 심각하게 다르다.
.

불유교경중 마지막 말씀

「汝等比丘,常當一心勤求出道,一切世間動不動法,皆是敗壞不安之相。汝等且止,勿得復語,時將欲過,我欲滅度,是我最後之所教誨。」

그대 사람들아, 항상 일심으로 정진해서 도를 구해 이 우주를 벗어나라, 일체세간의 이 우주는 변하는 법이거나 변하지 않는 법이거나 하여튼간에 모두가, 이 우주의 모든것이 허물어질 불안한 상, 실재가 아닌 현상일뿐이라. 그대 사람들아 니덜이 하는 모든 짓들 돈버는 짓들 점치는 짓들, 하튼 그딴 짓 다 그만두라, 더이상 내로부터 말 들을 생각마라, 시간이 막막 가는구나, 내 지금 이제 죽는다, 입적한다, 이것이 내 이세상에서 말하는 최후의 가르침이다. -캬역

p.s
유교경 아래 첫머리에 수발타라를 제도하셨다. 란 말씀이 나오는데, 대반열반경 마지막이 수발타라를 불제자로 제도하는것이다. 곧, 이 유교경은 대반열반경, 열반경 다음의 버전으로 진짜 마지막 석가모니 말씀이라 유추할 수 있다

.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v1/search.asp
(한글대장경, 가나다 검색에서 찾으시면 됨)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


후진(後秦) 구자국(龜茲國)삼장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김진철 번역

///



진,미,모험,온전함(Truth, Beauty, Adventure, and Wholeness)

Truth, Beauty, Adventure

I would rather be whole than good -Carl G. Jung


저 두 구절을 좀 정리해야되겠다. 항상 머리에서 맴돌고 글로 정리를 안해본지라. 쓰면서 정리.

이게 잘 써지면 디게 좋은 글이 될틴데.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의 Adventures of Ideas, 라는 명저가 있는데, 우리말로는 오영환 교수님께서 관념의 모험으로 번역을 하셨다. 오영환교수가 화이트헤드를 초창기 국내 소개하신 한국화이트학회에서 회장 맡으신걸로 아는데, 이 책이 아마 한길사에서 나왔는데, 무지 어렵다. 


20년전에 보고 접고는 원서를 카피해서 무식하게 본 기억. 허나 끝까진 다 봤지만, 영어공부 되었는지는 몰겄고 내 속으로 삭혀서 익힌 건 하나 없는듯. 의식엔 남아있지 않고, 무의식 저편에 글자로만 남아있으려나.


철학책은 일단 번역서 자체는 읽기 어렵다. 쓰이는 단어 자체가 번역된 것이 단어들은 대부분 한문단어이고, 그 단어자체에 대한 이해도 어렵고, 학자마다 정의하는 의미도 다르다. 따라서 그 책을 온전히 번역할려면 원 책의 두세배이상의 두께여야 한다. 번역된 글 자체는 직역일 뿐이다. 완전한 번역이 되려면 직역하고, 그 의미를 다시 하단에 풀어야 한다. 그런 책을 보기가 힘들다. 해서 특히 철학책들은 더욱 강의실에 갇힐 수 밖에 없다. 좀 나쁘게 말하면 자기들끼리 모르는 얘기들 주고받은 식이 될 수도 있다.


화이트헤드의 책이 특히 그렇다. 그의 책은 특히나 원서를 읽어야 하고, 이해 안되는 단어들은 옥스포드사전 등 영영사전을 뒤져봐야 이해가 그나마 된다.

해석의 깊이가 좀 된 듯한 지금, 되었는지는 모르나, 예전 인상적인 부분이 튀어나와 뒤져보게 되었다. 관념의 모험은 화이트헤드의 거의 말년 작품이다. 정리하고픈 부분이 저 진, 미, 모험 이 영역이었다. 다른 것은 전혀 기억에 없고, 슬푸다. 헌데 지금보이 다시 처음부터 톱아보곤 싶지만 마음뿐이다.


미스코리아니 미스무슨대회니 하면 주는 상이 진선미 이다. 이는 통속적으로 인간의 문명을 이룬 3대 요소를 말한다. 인간의 문명을 이룬 세가지는 truth와 goodness와 beauty. 이 세가지를 탐구하고 찾는 과정으로 지금의 문명을 이루었고 앞으로의 문명의 진보를 이룬다는 것이 저 진선미 세글자에 있다.


헌데 화이트헤드는 이런 일반적인 해석을, 각각을 더 깊이 정의하며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가 정의한 것은 진. 미. 그리고. 어드벤처, 즉 모험. 이라고 말한다. 저기서 선. goodness를 뺀다. 다음 부가적으로 art, peace를 첨부한다. 이 두가지 개념은 일단 차치하자. 


우리는 쉽게 Truth를 진실, 진리 라 직역을 한다. 이런 것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철학의 맛인데, 화이트헤드는 Truth를 이렇게 정의한다.

Truth is a qualification which applies to Appearance alone,.....Reality is just reality, and it is nonsense to ask whether it be true or false....
Truth is the conformation of Appearance to to Reality


먼저 Appearance, 현상, 과 Reality, 본질(이라고 하자, 사실보다는 더 깊어서, 오교수는 뭐라 번역한지 몰겄다), 을 구분해야 한다. 

현상은 드러난 것이다. 흔히 눈에 보이는것, 불교식으로 말하면 안이비설신의 라는 식에 의해 겉으로 접하게 되는 것. 이게 현상, 어피어런스다.
본질은 현상 속에 숨어져 있는 온전체, 라고 해야 하나, 직접적으로 듣보는 못하는 숨겨진 사실이다. 


물리학에서 물질, matter,는 시공간을 차지하는 것(object)인데 이 속에는 다른 것, 본질(substance)이 있다,이 이 속에 본질적인 것들(Substaces)는 무엇일까 를 분석해 들어가서 찾은것이 분자, 원자, atom, 더 이상 쪼갤수 없는, 더 들어가서 양성자 전자 등이다. substance란 말 자체가 stance의 sub, 밑에 있는 것. 영어가 이런 것이 재밌는데. 


겉으로 보이는 물질. matter 자체가 현상, 어피어런스Appearance면, 그 안에 파고들어가 보이는 본질,서브스턴스가 저 위에서 Reality, 란 용어를 쓰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 현상과 본질이 맞으면 Truth, 참됨 인 것이다.

살인 사건에서, 살인이 일어난 현장은 현상, 어피어런스다. 실제 일어난 사건, 진짜, 이게 Reality,다.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 해서 그 사건의 본질을 명확히 꿰어 맞추면 그것이 Truth.


해서 저 위에 Reality가 true냐 false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 Truth를 해 가는 과정이 문명의 역사 중 하나였다. the conformation of Appearance to to Reality. 이것이 Truth. 진. 이라는 의미가 이해가 되셨을 줄 믿는다. 

불교에서도 대비되겠다. 제법무상이란 것. 모든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Appearnce, 현상이다. 본질,Reality가 아닌 것이다. 다 껍데기인 것이다. 이 본질, 리앨리티가 무엇인지를 찾고자 정진을 하고 혹독하게, 그리고 본다. 만물의 불성됨을, 거기서 성공한 분들은 오도송, 깨달음의 시를 추상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본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것이다. 단지 추상적 이미지와 싯구로 상상을 할 뿐.


해서, 진실이란 말을 우리가 자주 쓰는데, 우리가 쓰는 진실이란 말은 Truth가 아닌 Reality로 봐야한다. 화이트헤드의 언어를 빌리자면. 헌데 이게 맞는게 이런 용어의 정의들을 하나씩 해나가면 다른 정의를 또한 쉽게 꿰맞춰가면서 해석 이해되고 세계가 이해된다. 


일단 저말을 다시 정리하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실은 Truth가 아닌 Reality, 본질임을. 천천히 따라오시면 이해되시리라 생각한다.

현상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 현상에 맞는 본질을 찾는 과정의 역사가 과학의 역사고 그 과정으로 이 인간 문명이 이루어졌고, 사고가 깊어졌다. 또한 그 탐구를 계속 진행하며 문명은 발전할 것이다.


다른 요소가 Beauty. 아름다움이다. 
Beaty is the mutual adaptation of the several factors in an occasion of experience.
Thus in its primary sense, Beauty is a quality which exemplification in actual occasion: or put conversely,
it is a quality in which such occasions can severally participate. There are gradations in Beauty and in types of Beauty


미, 아름다움은 어떤 경험의 순간, 때에, 그 영역을 구성하는 요소들, 인자들의 상호간의 작용. 이게 아름다움의 정의다.

위의 Appearance,현상에서 본다면, 보이는 겉의 현상에서 그 현상을 구성하는, 겉에서의, 여러 것들이 있다. 여기서의 것은 그 내부의 본질보다는 현상에서의 구성으로만 일단 이해하자. 뜯어서 본질을 보려말고, 밖에서만 보이는 양태들의 비율. 그 양태들의 작용. 그 양태들이 합해진 어느 순간을 접하게 될 때 그 순간 우리는 beauty하다 란 말을 쓰자. 그 접하는 순간 보이는 한 예가 저기서 exemplfication.이다. 양태는 속을 쪼개서 본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겉표면만 비율대로 쪼개는 거지 내부에 뭐가 있냐는 보지를 말자 여기선, 일단. 


여자의 몸을 예로 볼때 각 몸의 구성요소, 그 각각의 상호작용이 mutual adapation이란 표현으로 보이면 되겠다. 합해져서 눈에 보이는 어느 한 순간의 현상을 보고 뷰티 하냐 어느정도 뷰티하냐 라고 말을 한다. 저 영어의 정의를 보면 그래서 gradations in Beauty, 아름다움엔 등급이 있다는 말이고 추한것도 아름다움 중에 등급이 낮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 구성요소간의 상호작용. 이것이 아름다움. 이다. 등급이 있다. 

여기에 구성요소들간이 서로 침해하지 않고 해를 입히지 않고 어느 순간 아름다움의 최극치, 완벽한 아름다움을 이루는 순간의 비율, 대비가 있다.
여기서 나오는 말이 Harmony, 이다 . 조화가 제대로 될때, 완벽, Perfection 이 되나. 두 언어 모두 화이트헤드 의 이책에서 중요한 말이다


헌데 저 완벽이란 건 완벽한 순간 불완전해진다. 완벽한 시간은 지속되지 않는다.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룰 수 없는 완벽한 미를 찾고 만들기 위한 과정이 인류 문명의 역사였다는 것.


선,Goodness란 것은, 착할 선, 한문으로, 이것은 아름다움의 정도가 높을 때, Good, 좋다, 선하다, 일 뿐이고, 아름다움이 안될 때, evil, 나쁘다, 고통스럽다. 란 것이다

여기에서 화이트헤드는 진선미에서 이 선을 미의 하부개념으로 넣어버린다. 

여기에서 본인이 처음 제시한 칼융의 저 유명한 말. "나는 선good하기 보다는 차라리 온전whole하고 싶다"란 말이 겹쳐서 남았다


지금 이를 정리하려고 손가는 데로 쓰고 있다.

선, 정의도 같은 말일까. 화이트헤드의 저 글을 읽으면 perfection에서 종교를 갖고 오고 뷰티, 아름다움에서 물론 선의 개념을 미적관점과 함께 윤리학에도 비교하여 통섭하여 쓴다. 

아름다와지면 그것이 좋은 것이고 선한 것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설계하는 정치가 선한 정치다. 

아름다움, 뷰티를 트루쓰, Truth와 같이 써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면. 즉 세상의 본질로 찾아 가는 truth가 될 수록, 현상과 본질이 일치할 수록 뷰티의 정도가 높고 완벽해 진다는 것이다. 단지 겉으로 본 여체가 아름다운 것은 잠시일뿐 오래갈 순 없다. 최고 미녀라도 시간 지나면 그냥 피와 살덩어리일뿐,
그 내면의 본질과 외면이 일치할 때, 칼융식으로 말하면 이것이 자기실현인데, 온전해질때, 그때 아름다움은 완벽해지고 오래간다. 그리고 그러면 , 좋다, Good! 선하다. 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 식으론.


선, 착할 선은 뷰티, 미의 하부개념일 뿐.


여기에 더하여, 그 진, 본질로 일치하려는 과정, 미, 완벽한 아름다움을 향해, Adventures, 모험을, 끝 없는 여정을 가는 것이 인류의 역사 문명의 역사라는 것. 인간도 삶의 의미를 여기다 두는 걸 지도 모른다. 왜 사는가? Reality가 무엇인지 찾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끝없는 모험을 하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인 게다. 왜 끝이 없냐? 완벽함 perfection이란 없거든, 그 궁극의 Reality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거든.


결국 더 나아가면, 그 완벽함, 리앨리티가, 종교 신앙의 영역인게다. 저 곳에 답이 있다고 모험을 걸고 동굴에서 처박혀 정진하는 것! 인간으로서 최고의 삶이라!! 위대한 삶이라!! 나는 그렇게 정리했다. 


세상에 드러난 대부분 세속의 종교인들에게서 나는 참된 신앙을 전혀 보지 못한다. 않는다.


칼융은 그래서 역시, 선함보다는 온전함을 취한다고 했겠다.


선이냐 정의냐, 그게 추구할 가치가 , 궁극적 대상이 아니란 거다. 화이트헤드와 비슷하다


불선, 악까지 내 스스로, 내가 포섭을 해야 한다. 해서 wholeness, 온전함을 구할 때, 그때 나는 Reality에 닥아가는 것이고 미적인 완벽함을 갖는 것이다. 물론 이 궁극적 닿음은 종교 신앙의 영역임을 다시 한번 반복한다.


플라톤은 영혼을-불교에서의 마음과 대비되겠다 상응하겠다 - 물질과 육체적 차원을 지향하는 검은 말과, 신성한 세계를 지향하는 흰말, 그리고 이를 모는 기수, 마부로 구성되어있다고 하였다. 프로이드식으로 마부, 기수가 에고, 검은말이 이드, 흰말이 슈퍼에고다. 

검은 말을 버릴 수 없다. 세탁할 수 없다. 인정해야 한다. 이를 어떻게 잘 길들이냐가 인간 삶의 숙명이다. 이 둘을 잘 길들이자는 의미가 칼융식의 wholeness온전함이다. 선만 추구한다면 검은말을 버리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모순과 병폐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온전함을 보지 않고 선만 취하려는.


프로이트는 인간의 욕망-이것도 마음의 작용이다 불교에서-을 에로스라는 사랑과 타나토스 라는 죽음의 욕망으로 구분한다. 타나토스를 버리면 안된다. 이를 승화해야한다고 한다. 잘 승화하면 곧 온전한 인간인게다. 쓰고 보이 프로이트와 칼융이 달리 보이지 않음을 타이핑하면서 생각하게 된다
.

걍 말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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