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판.으로 2014년 8월 29일 에 나온건데. 불어판 총페이지 630.

 

이게 임호경 번역으로 704페이지.로 나왔어. 왕국. 올해 3월 10일. 4년 만에 번역된건데. 

 

이거 번역 잘 됐어. 걍 술술 읽혀. 2000년대 이후의 번역글은 읽을 만해. 

 

이 사람은 베르베르 글 번역 했네. 얘 글은 관시미가 없어서 안보는데.

 

 

아 저 책 잘 썼어. 짐의 개소리를 좇아온 빠나나더른 저 번역된 임호경.의 왕국. 을 꼭 보도록 해. 임마뉴엘 카레르. 아 이 인간 글 잘 써.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7/feb/24/the-kingdom-emmanuel-carrere-review-john-lambert

 

https://www.nytimes.com/2017/03/02/magazine/how-emmanuel-carrere-reinvented-nonfiction.html

 

https://www.ft.com/content/d3cf2a64-feb9-11e6-8d8e-a5e3738f9ae4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7/07/10/the-radical-origins-of-christianity

 

 

https://imagejournal.org/article/inventing-the-kingdom/

 

 

이 인간 글 리얼하게 잘 쓰는데. 다른 글들도 읽고 픈데. 안 읽을거 같은데 구찮아서.

 

이 임마뉴엘 카레르. 가 몇살이냐 지금. 

 

Emmanuel Carrère, né le 

 à Paris, est un écrivain, scénariste et réalisateur français.

 

1957년 생이믄... 지금 60살이냐. 

 

이사람이 삼십대에 우울증이 와. 이 전에도 우울증이 있었나본데. 1990년 으로 기억을 하는데. 삼심대 초중반. 해서 정신상담 받는겨. 정신분석하는 사람들보다 더 잘알아. 

 

나한테 이거 물어볼 거죠? 그 질문을 이걸 알기 위함이죠? 

 

상담하는 박사들이 싫어할 타입이지. 왜냐믄 이미 자기들이 상담 분석할 내용을 지가 다 듣보고 안다 이거지. 당시도 소설가로 나름 먹고 살았걸랑. 책쟁이 걸랑. 유식하걸랑 나름. 

 

하튼 글로 먹고 살다가. 나중에 러시안소설. 이란 책을 쓰면서 자기 조상찾기 하면서 자기 병 고쳤는데. 이 책 읽고 픈데 머 비슷한 류 같아서리 안볼듯 한데 짐은.

 

저 사람이 저때 그리스도. 기독교에 빠지는겨. 자기가 이전에 개독이라고 욕하던 그 기독교에 자기가 빠져 ㅋㅋㅋ.

 

이 사람 부인.이 독실한 기독집안이었걸랑. 어릴때부터 성경과 그 분위기에 싸이다가 젊어서리 너무 싫어서리 카페가서 춤추며 놀다가 이 임마뉴엘 카레르.랑 만나서리 결혼하걸랑.

 

 

마누라.가 그리스도.에 그리.만 들어도 욕 할거 아녀?

 

마누라. 나 드뎌 안식처를 찾았어. 그리스도 여. 
아 헌데 그 마누라.가 자기 남편이 너무 힘들어하는걸 아니까니. 자기도 또 그리스도 해주는거지. ㅋㅋㅋ.
저 책 시작에 그리써. 저건 완전한 자기 자전적 소설이야. 이 인간 소설은 자기 이야기 그대로 하는겨. 리얼해. 
작가 겸 드라마 작가 겸 몇개는 감독 도 하니까니. 자기가 참여했던 미드의 스탭들 이랑 밥처먹으미 말섞다가 그러는겨. 아 저 수많은 사람들이 이 21세기에 예수가 부활했다느니 기적을 행했다느니 하는 말들을 믿고 교회 가는게 참 신기하지 않우? 대체 어찌 저럴 수가 있지?
프랑스.는 루터 다음 이은 칼뱅 나오고. 위그노 전쟁 하고 그리고도 앙리4세가 위그노에서 다시 카톨릭으로 돌아섰걸랑. 파리를 잃을 수는 없다고. 현재 인구 반이 로마카톨릭이고. 반가까이는 종교가 없어 여긴.

저걸 주제로 말섞기 한겨. 아 정말 시안하다 여전히 저따위 그리스도에 심취하는거 보믄. 대체 저따위 이야기를 믿고 의지하는게 말이되냐 이거. 애플과 구글의 아이티 세상에서 말야. 테슬라가 요즘은 짜졌지만 태양광에 전기차에 화성을 가니마니 하는 세상인데 말야. 

엠마뉴엘 카레르.가 저 이야기에 꽃혀서리 저 글을 쓰기 시작해. 자기가 빠졌걸랑. 그 구십년대 삼십대 초반에 삼사년을 성경을 끼고 살았어. 매일 요한복음을 찐하게 한 구문 씩만 읽고 감상문을 써. 그게 노트로 십여권되나바. 
자기 아이들을 다 세례식을 해. 
그리 삼사년 하다가.

자살 시도.를 해. 


그리고서리. 자전적 소설 러시안소설.을 쓰면서리 그 우울증에서 빠져나와. 그리스도.를 버렸어. 

그리스도를 버린지 이십년이 흐른겨. 그리고 저 대화를 나누면서리. 저 그리스도 이야기를 써댄거걸랑.


저거 잘 썼어. 

아 짐이 저따위로 그리스도 이야기를 정리한번 해보려고 했걸랑. 아 머 할라보믄 이미 저짝 들이 다 해서 말이야 짜증 나는데.

이전에 성경 번역의 역사 찔끔 정리 했지만. 짐께서 더 자세히 모든걸 깊이 정리를 하다보믄 하세월이고 해서 개괄만 해대는데. 헌데 이땅바닥엔 총론 개괄이 개판이걸랑. 복붙질 해대고. 그 복붙질도 한글러 복붙질 그 쏘스 다 개판에 번역 개판에 짜집기에. 읽다 보믄 저게 말인지 마린지. 해서 한글러들 이야기는 전혀 안보는데.

신약을 보면. 저 글은 예수 사후에 나오는 거 걸랑. 저 신약은. 마가 누가 마태 요한 은 예수 살던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때에 나온게 아니야. 그렇다고서리 다음 네로.가 불탄 로마 를 자기 탓 돌리는 로마 시민들이 무서워서리 그 12구에 있던. 여긴 불 안탔걸랑 남쪽 외곽이라. 여기 기독교도들이 방화 한 양 돌려서리 잔인하게 죽였다 하지만. 몇명인지 몰라. 숫자는 기록에 없어. 저때 베드로가 죽었다느니 바오로가 아마 같이 죽었다느니. 베드로는 예수처럼 죽을 수 없다 꺼꾸로 매달아 달라 등등은 걍 주작 소설이야. 기록 전혀 없어.

네로.는 악마가 아냐. 기독교인 박해 를 딱지로 천하의 악마로 낙인 된 거지. 그리 따지면 모든 는 다 악마지.
칼리굴라.도 악마가 아냐. 

저 전의 티베리우스.도 악마가 아냐. 이 인간 통치 잘했어. 이성적이야.
그 다음 클라우디우스.는 마누라 관리 못했을 뿐이야. 그리고 자기 몸이 불구인 건 자기 비하에 익숙한 인간이라 남이 머라 하던 신경 안써. 자기 자식이 죽은거 문제로 한번 한풀이 했을 뿐 클라우디우스도 정치 잘한겨. 몸이 안좋아서리 비서애들이 좀 나댔을 뿐이고.

칼리굴라. 얘는 왜 그리 신이고 싶어 했을까

 

네로. 얘는 왜 그리 키타라 연주하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고 싶어 했을까

 

 

 

저 둘다 엄마의 그림자가 찐한거걸랑. 이건 똑같이 히데요리의 엄마 요도도노.와의 관계랑 같어 이게. 헌데 가끔 궁금한건 왜 칼리굴라는 신. 네로는 노래. 의 선택지였는가. 인데. 

 

 

쟤들 악평은 

 

De vita Caesarum (Latin; literal translation: About the Life of the Caesars), commonly known as The Twelve Caesars, is a set of twelve biographies of Julius Caesar and the first 11 emperors of the Roman Empire written by Gaius Suetonius Tranquillus.

The work, written in AD 121 during the reign of the emperor Hadrian, was the most popular work of Suetonius, at that time Hadrian's personal secretary, and is the largest among his surviving writings. It was dedicated to a friend, the Praetorian prefect Gaius Septicius Clarus.

 

저 수에토니우스. 란 가 카더라 통신 써대면서. 마치 사실인척 쓴거걸랑. 121년.에 쓴겨 저게. 칼리굴라 네로 죽고 칠팔십년 후에 쓴거걸랑. 걍 카더라야 카더라. 

 

요즘에야 . 시간 지나서리 저 로마 애들이 분석이 제대로 되는거걸랑.

 

 

일단. 저 이야기 남긴 들은. 저당시 대부분 공화정 주의자야. 제정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그 대표적 인간이 키케로였고. 후져 키케로. 머 로마 최고의 작가는 키케로 세네카 하지만. 넘어가고.

 

저 키케로. 가 말하는 원로원 정치.라는건. 결국 지 중심의 정치야 저게. 원로원에서 말빨 제일 잘 먹히는건 키케로를 못따라가걸랑 저 말장난을. 카이사르가 다 하니 노인네 가 할일없이 심심한겨 저게. 카이사르 개개끼. 공화정이 최고야. 저 속내는 말야. 공화정의 중심인 원로원.의 중심은 자기란 거걸랑. 저걸 아무도 말을 안하는데.

 

 

에드워드 기본. 이 똑같은 걸랑 프로테스탄트 . 

 

로마는 왜 망했을까. 

 

 

저기에 방점이 있는겨. 서로마가 천년.이야. 물리적으론. 그리고 정서적으론 신성로마제국 천년이야. 이에겐 신성로마제국은 로마가 아냐. 비잔틴 천년하고 쇠했어.

 

 

천년. 이나 한 것에 방점을 둬야지. 어드래 천년이 갔을까. 그리고 정신적으로 너도 이 개새꺄 프로테스탄트가 별다르니 니도 로마 카톨릭의 아류일 뿐이야 이 새꺄. 신성로마제국 속에 살민서 그건 로마 아니니. 

 

이집트.가 말야. 삼천년이야. 기원전에. 어드래 이집트는 삼천년을 갔을까. 파라오.가 카 의 힘을 달라해. 그 카.는 1왕조 전의  ka 카야. 이 카.가 갖고온 호루스.고 이 기원전 3200년 전의 빵왕조 의 무덤이 있어. 이 카.가 갖고온 신들이 호루스야. 이 호루스가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이고. 

 

저 카.의 힘을 달라하는겨 람세스 2세도 여전히. 저 카가 qaa 가 아닌 ka. 야. 이집트의 원이름은 아이굽튀스니 투스니야. 저게 저 정체성이 삼천년이 간겨.

 

어드래 저리 갈수 있었냐.에 방점이 있어야 하걸랑.

 

저 에드워드 기본이 저따위 수에토니우스의 카더라 통신 빼껴쓰면서리 로마는 vice 악이다 하민서리 발광을 하는겨

 

 

저따위 책이 한글로 2000년에 완역이 되어서리 말야. 우왕 우리네 이제 에드워드 기번의 위대한 문명사를 제대로 봅니다. 시오노나나미 썅년.

 

 

한심한거지. 

 

 

시오노 나나미.도 몸젠을 언급해

 

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30 November 1817 – 1 November 1903) was a German classical scholar, historian, jurist, journalist, politician and archaeologist.[1] He was one of the greatest classicists of the 19th century. His work regarding Roman history is still of fundamental importance for contemporary research. He received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in 1902 for being "the greatest living master of the art of historical writing, with special reference to his monumental work, A history of Rome", after having been nominated by 18 members of the Prussian Academy of Sciences.[2][3]He was also a prominent German politician, as a member of the Prussian and German parliaments. His works on Roman law and on the law of obligations had a significant impact on the German civil code.

 

몸젠.이 그나마 로마사.를 제대로 쓴 인간이걸랑. 노벨문학상. 

 

시오노 나나미.가 몸젠을 언급하민서리. 아 몸젠이 그야말로 제대로 쓴겨 20세기 직전에. 저 에드워드 기번  걍 카더라 통신 빼낀 고. 그리고 저 당시 볼 자료가. 당근 적을 수 밖에 없어 백년 후 몸젠 보다. 얜 그따위 공적은 있어 그래도.

 

에드워드 기번.이 삼백년 전 다. 그걸 지금 번역해서리. 위대한 책 번역 한글 잘했슈. 

 

안창피하냐?

 

 

역사를 몸젠때에야 제대로 본겨. 고고학이 막막 뜨잖냐. 로마 당시의 소아시아. 시리아 중동에 이집트의 자료들 금석들을 그제야 본겨. 그리고 로마가 이해되서리 몸젠이 로마사 를 써.

 

저런 몸젠.도 로마사.가 제정 이전에 끝나. 카이사르까지 쓰고 5권까지 하고 말았걸랑. 

 

시오노나나미.가 몸젠 조차도. 제정이 싫은건가? 공화정까지만 쓴 그 속내는 무얼까 하걸랑.

 

 

헌데 시오노 나나미.도 그 다음 자료를 못본거지. 몸젠은 저걸 계속 다 쓸라고 했어. 헌데 못쓰고 죽었을 뿐이야. ㅋㅋㅋ.

 

 

먼얘기 하는겨 또

 

 

저 왕국. 이야기 하다가.

 

저 네로 다음에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다 살해되고 베스파시아누스. 가 예루살렘의 유대 전쟁 진압하고 로마 황제가 되는데

 

저 글들은 저때 나오는겨. 신약은. 

 

그 이전 썰한 웨스턴 텍스트 타입. 비잔틴 텍스트 타입. 알렉산드리안 텍스트 타입. 이 남아있는 게 끽해야 서기 200년 부터야. 

 

파피루스. 둘둘말이. 가 초창기 버전이고. 데부분 코덱스. 라는겨. 코덱스.는 파피루스 둘둘말이를 지금 책처럼 종이를 끊어서리 묶은겨. 둘둘말이가 아녀 이게. 이 책 모양 편집은 카이사르.가 맨먼저 디자인을 해. 그러다가 카이사르 죽고 1세기 전후에 코덱스.가 티나와 본격적으로.

 

파피루스 그 식물 진액들 말린거.를 둘둘말이. 하믄 멋지걸랑. 표나고. 로마애들이 멋 좋아하걸랑. 헌데 양피지.는 코덱스 짜르는 책이 훨 편한겨. 양피지를 코덱스로 막막 쓰는겨 처음엔.

 

하튼 저 신약은 저 유대전쟁때 비참한 아주 비참한 분위기 후에. 이전 마가 복음과 큐복음이란 자기들끼리 옮겨 쓰던 둘둘말이를 보고 나온 게 누가복음이고 사도행전이고 나중 나온게 마태복음이야. 요한계시록은 이거 넣어 말어 하다가 맨 마지막에 넣는겨. 

 

마가복음.의 코덱스 버전.에는. 아 저게 먼지 까먹었는데 그 코덱스 버전명들 서기 2백년 이후부터 몇십개 있걸랑. 코덱스 초창기 버전에.

 

예수의 부활 이야기.는 없어. 

 

마리아들과 살로메가 무덤에 갔더라. 가 끝이야. 

 

마가. 가 기본 텍스트야. 말글 못하는 갈리리 촌놈 베드로.의 비서인 마르코.가 쓴 마가복음을 보고 덧붙인게 누가 마태 요한 일뿐이야.

 

 

.

헌데 말이야. 하튼 저 신약 에 쓰여진 이야기.는 재밌는거야 저게. 저건 역사책 중에 최고야. 사도행전 짱이야.

 

구약도 마찬가지야. 창세기 재밌는거야. 

 

 

.

저 엠마뉴엘 카레르.의 글 보다가 말야. 아 저거 찐하게 봤는데. 페이지는 점점 막장에 오는데 대체 이 인간이 이 글을 어드래 마무리 할랑가? 

 

그리스도.가 이래서 못믿을만하다. 란 결론 내면 후진 거걸랑. 

 

 

 

이사람은 그리스도 가 아냐. 교회 안가. 기도 안해. 20년 전에 버렸어.

 

헌데, 자기 과거 삼사년의 그리스도 이야기 정리하민서리, 다시 그리스도.로 복귀하잔건가?

 

 

페이지가 체 십몇페이지 안남았걸랑.

 

 

Jean Vanier, 

CC, GOQ,

 born September 10, 1928, is a Canadian Catholicphilosopher, theologian, and humanitarian. In 1964 he founded L'Arche, an international federation of communities spread over 37 countries,[1] for people with developmental disabilities and those who assist them. Subsequently, in 1971, he co-founded Faith and Light with Marie-Hélène Mathieu, which also works for people with developmental disabilities, their families, and friends in over 80 countries. He continues to live as a member of the original L'Arche community in Trosly-Breuil, France.[2]

 

쟝 바니에. 90살이네. 

 

라르쉬.  L'Arche

 

 

Vanier is the son of Major-General Georges Vanier, who became the 19th Governor General of Canada (1959–1967), and his wife Pauline Vanier. He was born in Geneva while his father was on diplomatic service in Switzerland. Fourth of five siblings, in his youth Vanier received a broad education in English and French first in Canada and then in England and France. He joined the Royal Navy at the Dartmouth Naval College (later renamed Britannia Royal Naval College) in England at age 13. During World War II, Vanier and his family fled Paris just before the Nazi occupation. He spent much of the War at an English naval academy, preparing for a career as a naval officer.[6][7]

 

아버지가. 캐나다.의 거버너 제너럴. 이면 법무부장관 정도고. 그다음에 스위스로 가서 대사일 비슷한걸 했나봐. 제네바에서 태어났어. 캐나다에서 영어 불어로 배우고. 영국 프랑스에서도 교육받고. 2차대전때 나치를 피해서리 파리를 떳대. 영국 해군사관학교에서 장교준비 하다가

 

In early 1945, Vanier was visiting Paris where his father was Canadian Ambassador; he and his mother went to assist survivors of Nazi concentration camps. Seeing the emaciated victims, their faces twisted with fear and anguish, was a profoundly moving encounter for him, which he never forgot. Shortly thereafter, he served in World War II with the Royal Navy and then with the Royal Canadian Navy. In 1947 as a midshipman, Vanier accompanied the Royal Family on their tour of South Africa aboard HMS Vanguard.[8]

 

아빠가 카나다 대사자격으로 파리를 가서 같이 갔고. 거기서 엄마라 나치 생존자들을 도왔다. 그들 얼굴이 공포와 분노였어. 이게 이사람에게 깊이 박힌거야. 

 

In 1949, he joined the Royal Canadian Navy, at the carrier HMCS Magnificent. However, in 1950, feeling a strong inner spiritual calling to do “something else,” he resigned his naval commission. Vanier travelled to Paris to study as an undergraduate. He eventually went on to complete a PhD in philosophy from the Institut Catholique de Paris, with a doctoral thesis on Aristotle which was published in 1966 as Happiness as Principle and End of Aristotelian Ethics; this was his first published work. He went on to write several books during his career and taught philosophy at the University of St. Michael's College, University of Toronto.[7] He left academia in 1964, seeking a more spiritual ministry.

 

하튼 그래도 계속 군생활을 한겨. 그러다 1950년. 22살때. 자기 안에서 뭔가 하란 영적인 소리를 듣다. 해군일을 그만두고 파리에 가서 철학 공부. 박사. 파리 카톨릭 연구소. 아리스토텔레스 관련 논문 쓰고. 여기 저기 대학에서 강의. 14년 후인 1964년에 교직을 그만둬. 나이 36세.

 

In 1964, through Vanier's friendship with a priest named Father Thomas Philippe, he became aware of the plight of thousands of people institutionalised with developmental disabilities. Vanier invited two men, Raphael Simi and Philippe Seux, to leave the institutions where they resided and live with him in Trosly-Breuil, France. Their time together led to the establishment of L'Arche at Trosly-Breuil, a community where people with disabilities live with those who care for them.[9][10] Since that time L'Arche communities have been established in countries around the world. A governing philosophy of the communities is Vanier's belief that people with disabilities are teachers, rather than burdens bestowed upon families.[11]

 

그리곤 36세인 1964년에 저 라르쉬. 라는 조직을 만들어. 프리스트. 사제랑. 장애인들 대상으로 한.

 

신체적으로 자립 할 수 없는 사람들.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사람들을 이 사람이 델꼬 사는겨. 저게 지금 전세계적으로 퍼진 건데.

 

저 공동체 이야기가 나오더라고 저 엠마뉴엘 카레르.의 왕국.에. 마지막에.

 

 

가기 싫은걸 걍 억지로 간겨 어떤 독자와의 약속으로. 그리고 저 할배 장 바니에.도 봤나봐.

 

저기서 발씻어주는 걸 서로 하걸랑. 

 

저 장바니에.의 말이 참 인상적이더라고.

 

 

 

Jean Vanier in 2012

 

 

저걸 저걸 말이야. 저거 아무나 못하걸랑. 

 

저건 천국가기 위해 하는게 아냐 저게. 

 

 

저 할배가 말야. 처음 저걸 할때. 다들 버려진 사람들이걸랑. 비참한겨 그 외적 내적 수준이. 

 

어떤 아이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적으로 완전히 맛이간거지. 무슨 폭행인지 먼지 모르지 사연을 전혀. 절대 말도 안하고. 소리만 지르는겨 아이가. 세상이 사람이 무서워서리. 

 

그 아이의 부르짖음을 들으면. 자기도 무서운겨. 

 

 

아이가 사는게 너무 무서운거걸랑. 우는겨. 소리지르는겨. 이게 다야. 

 

아 헌데 그때 저 할배가 알았대. 아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한 존재구나. 나도 그 근본은 무서움 공포 두려움 이 저 내 마음 바닥에 있는거였구나. 

 

기억이 아사무사 한데. 읽은 지 좀 되어서 말야. 

 

저 버려진 사람들을 통해서, 자기가 얼마나 약한 존재였다는 걸. 느끼게 되었대.

 

.

 

네로.가 나약해서 기독교 박해 당시 험한 짓을 했다고. 모든 사가들이 말하걸랑.

 

약한 들이 독한 짓을 한다는거걸랑. 나약하니까 더 험하게 보인다 하걸랑.

 

 

헌데 저것도 그리 대단한 분석은 못돼.

 

 

인간은 나약한 존재야. 단지 자각을 못할 뿐이지.

 

네로.나 칼리굴라.는 자각을 한거지. 자기가 나약한걸.

 

 

 

하튼 그러고 나서리. 이 임마뉴엘 카레르.가 ... 아 이거 스폰가. 아 그래도 이게 주제는 아니야. 저 책 꼭 보도록 해. 

 

마지막 날에 다운 중후군 꼬마 엘오디. 라는 아이랑 노는 장면이 나와. 찬송가를 부르면서.

 

헌데 이 인간은 더이상 그리스도가 아니걸랑. 감정이 없어 찬송가에.

 

The book ends with a scene in which he is on retreat at L’Arche, the community founded by Jean Vanier whose mission is to serve the developmentally disabled by living with them in an intimate, home-like environment. At the conclusion of a worship service they begin to sing what he calls a “Jesus is my friend” hymn which he finds the quintessence of “religious kitsch.” Then a woman with Down syndrome named Élodie stands up.

Suddenly Élodie surges up beside me, dancing a sort of lively farandole. She plants herself in front of me, smiles, throws her arms in the air. She laughs, and above all she looks at me, encouraging me with her eyes, and there’s such joy in her look, such candid joy, so confident, so unburdened, that I start dancing with the others, singing that Jesus is my friend, and tears come to my eyes as I sing and dance and watch Élodie, who’s now found another partner, and I’m forced to admit that that day, for an instant, I got a glimpse of what the kingdom is.

여자에가 다운증후군이야. 꼬마야. 엘로디가 자기한테 막 온겨. 춤을 추재. 자기를 막 봐. 웃으면서. 그리고 두 팔을 쭉 뻗는거지. 계속 웃어 자기를 보고. 그때 엠마뉴엘 카레르가 그 엘로디 눈을 본겨. 그 표정을 보고. 그리곤 자기도 춤을 추기 시작해. 예수는 나의 친구다 노래 부르민서리. 

 

아 그때 눈물이 막막 쏟아지더래. 노래부르며 춤추면서 그 꼬마 여자애 엘로디.를 보는데. 

 

사람의 웃음과 행복. 그림자 없는 그 모습.에서 원더풀 뷰티.를 본겨. 지금도 엘로디랑 춤추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데. 자기는 거기서 왕국.을 보았대. 

 

 

왕국이 어딨어유 하고 예수한테 묻걸랑 요한복음인가 이것도. 어디에 있는게 아니다 너 마음안에 있단다.

 

아 정말 저따위로 말한 인간은 없었걸랑 지금까지.

 

 

.

저러면서. 글 마무리 하면서. 아 그래도 저는 지금 크리스찬은 아닙니다. ㅋㅋㅋ.

 

아 저거 정말 명작이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