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generally agreed that true writing of language (not only numbers) was independently conceived and developed in at least two ancient civilizations and possibly more. The two places where it is most certain that the concept of writing was both conceived and developed independently are in ancient Sumer (in Mesopotamia), around 3100 BC, and in Mesoamerica by 300 BC,[3] because no precursors have been found to either of these in their respective regions. Several Mesoamerican scripts are known, the oldest being from the Olmec or Zapotec of Mexico.
언어를 글자화 한 진짜 글자. 는 시작을 두 군데에서 한 걸로 봐. 따로 따로.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글자 기원전 3100년과 중미의 마야글자 기원전 300년.
중국의 한자.의 시작인 갑골문.도 저 수메르의 글자들 익힌 마음들이 전해진걸로 본다는겨. 즉 한자의 근원을 좇아가다보면 저 수메르 글자란 거지.
Ancient Chinese characters are considered by many to be an independent invention because there is no evidence of contact between ancient China and the literate civilizations of the Near East,[5] and because of the distinct differences between the Mesopotamian and Chinese approaches to logography and phonetic representation.[6]
헌데 고대 중국 글자인 갑골문을 또한 수메르 글자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발명품으로 간주한다는거지. 로고그래피. 그 글자모양이랑 발음을 보면 달라서리. 그래도 그 바닥은 저기 수메르 글자와 맥을 이루는듯.
저들 글자는 청동기 시대의 글자이고. 글자로서 의미있게 보는 진짜 글자. true writing of language.
이 이전의 글자.를 프로토 라이팅. 최초의 글자.
Proto-writing consists of visible marks communicating limited information.[2] Such systems emerged from earlier traditions of symbol systems in the early Neolithic, as early as the 7th millennium BCE. They used ideographic or early mnemonic symbols or both to represent a limited number of concepts, in contrast to true writing systems, which record the language of the writer.[3]
이건 커뮤니케이션 표시인데. 제한적인 정보를 주고받는 거야. 제한적인 정보.에 방점이 있어. 기원전 7천년 신석기 시대에.
가장 오래된 프로토 글자.는 중국에서 티나와. 아직까지는. 이건 2003년도에 발견이 되었어.
Dates (BC) | English name | Chinese name | Modern-day name and location |
---|---|---|---|
18000–7000 | Xianren Caveculture | 仙人洞、吊桶环遗址 | Wannian County, Shangrao, Jiangxi |
8500–7700 | Nanzhuangtouculture | 南莊頭遺址 | Yellow River region in southern Hebei |
7500–6100 | Pengtoushan culture | 彭頭山文化 | central Yangtze region in northwestern Hunan |
7000–5000 | Peiligang culture | 裴李崗文化 | Yi-Luo river basin valley in Henan |
6500–5500 | Houli culture | 後李文化 | Shandong |
6200–5400 | Xinglongwa culture | 興隆洼文化 | Inner Mongolia-Liaoning border |
6000–5000 | Kuahuqiao culture | 跨湖桥文化 | Zhejiang |
6000–5500 | Cishan culture | 磁山文化 | southern Hebei |
5800–5400 | Dadiwan culture | 大地灣文化 | Gansu and western Shaanxi |
5500–4800 | Xinle culture | 新樂文化 | lower Liao River on the Liaodong Peninsula |
5400–4500 | Zhaobaogou culture | 趙宝溝文化 | Luan River valley in Inner Mongolia and northern Hebei |
5300–4100 | Beixin culture | 北辛文化 | Shandong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가 발견돼. 강서성 만년현. 완니엔. 의 선인동 동굴에서.
A 2012 publication in the Science journal, announced that the earliest pottery yet known anywhere in the world was found at this site dating to between 20,000 and 19,000 years before present.[2][3]
사이언스.지에서 2012년에 발표를 해. 2만년에서 1만9천년전 사이로 추정되는 세계최초의 토기가 나왔다고.
20世纪60年代初在此进行过两次科学发掘。1993年、1995年由北京大学考古系、江西省文物考古研究所和美国奥得沃考古研究基金会马尼士博士联合组成的中美农业考古队进行了两次发掘,1999年江西省文物考古研究所和北京大学考古系又作了一次发掘,取得了重大的收获。该遗址有旧石器时代末期到新石器时代早期上下两层地层堆积,上层距今约9000—14000年;下层距今约15000—20000年。在该遗址出土了大量石器、骨器、穿孔蚌器、原始陶片、人骨标本以及兽骨残片,中国南方出土物最多的洞穴,其中发现的陶片最早年代约19000-20000年左右,是中国和世界已发现的最早陶制品。[1][2]两处遗址都有野生稻和人工稻的线索,对吊桶环遗址的稻作植硅石分析显示了将野生稻驯化为人工稻的历程,证实该地区是亚洲乃至世界上最早栽培水稻的地区。[3][4][5]
1960년대 초에 처음 발굴하고. 1993년 95년에 북경대학이랑 강서성 연구소랑 미국 연구소랑 본격 발굴 했다는거지. 대량의 석기. 유골. 구멍뚫린 조개그릇. 사금파리 도자기 조각.
저긴 장강.의 하류 시작부근이고. 그 다음으로 보이는 곳이 남장두유적. 난주앙토우. 저긴 허베이성. 황하강 하류고. 그다음 펑토우샨. 팽두산 유적은 호남성. 장강 중류고 바로 하래 퉁팅호 란 동정호가 있고. 그 다음 페일리강. 베리강유적.은 하남성 이야. 저 점 왼쪽위에 낙양.이 있고. 이 유적엔 뤄하. 낙하가 흘러. 이 낙하는 바로 위 황하로 흘러.
저 페일리강. 하는 배리강 유적은 지아후 유적의 가지야. 지하후. 가호. 문화가 신석기 문명의 대표 사이트 중 하나인데. 賈湖. 이 가호. 지아후.는 저 배리강 보다 좀 아래야. 낙양에서 150키로 남동부에 있어.
여기서 발견된게. 최초 글자인 프로토 라이팅.의 시작이야 현재까지는.
賈湖遺址是9000年至7700年前的新石器時代文化遺址,位於中国河南省漯河市舞阳县北舞渡镇西南1.5公里的贾湖村,面積约55000平方米,于1979年秋贾湖村民修筑护村堤期间,村小学师生在取土坑内开荒种地时发现。
위키 중국에선. 9천년에서 7700년하고. 위키영어는 7천년 하고.
하튼 여기서 발견된 거북껍데기 글자가 있어
贾湖契刻符号指的是在河南漯河市舞陽縣北舞渡镇贾湖遗址(新石器時代的裴李崗文化)中出土的龟甲上契刻的符号,共有16个。从其形状看,具有多笔组成的结构,应承载契刻者的一定意图。有近似甲骨文的「目」字、「曰」字等的符號,年代约为公元前6600年。[1]有报导称那些符号为迄今人类所知最早的文字。[2]类似的原始文字——温查契刻符号在公元前5300年也在欧洲出现了。目前,世界公认最早的文字系统是楔形文字。多数专家认为贾湖契刻符号是有意识刻画的,但不能确证为文字。
눈 목. 날 일. 등의 부호가 보인다. 세계가 공인한 가장 빠른 문자계통으로 설형문자.다.
단. 문자로 확증될 수는 없다.
걍 원시문자. 프로토 라이팅.이야
.
저 선인동 유적이 21세기 직전에 발굴되면서 말야. 저건 엄청난 사건이야. 기존 신석기 문명을 끽해야 기원전 1만년으로 봤걸랑. 메소포타미아에. 괴베클리테페.가 또한 발견도 되었지만.
저건 2만년이야. ㅋㅋㅋ.
아 헌데 청동기가 발견이 안돼 1만 7천년동안. 그 최초 청동기 검이 발견된게 이전의 그 마가요 유적이야. 감숙성에 있는.
쉼
저 최초인 선인동.은 포양호 오른쪽에 있어. 강서성. 주원장의 포양호 전투. 아 이 전투별 이야기.는 짐 밖에 못하는데 그따위 각론은 하다보면 끝도 없고. 해서 걍 넘어가는데.
그리고 남장두.는 하북 황하. 팽두산.은 포양호 옆에 동정호.의 바로 옆위. 배리강. 가호.는 하남성. 황하.
중국 문명의 시작이 지금까지 유적으론 장강. 중하류가 시작이란거걸랑. 아직까진. 그리고 황하 중하류.
청동기는 황하 상류.인 마가요.유적이고. 늦은 후에야. 청동기는 메소포타미아보다 훨 늦어 현재까진.
이 고고학이 블루오션이야 가만보믄. 헌데 이 고고학이 제일 중요한 겨. 우리네가 후진 이유고.
인류라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지중해 지브롤터. 헤라클레스의 두기둥을 넘어서리 가고 또는 해변을 따라서리 이집트 머물고 더 가서리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인 메소포타미아에 머물고. 걸어걸어서리 저 중국에 갔다 란 가설이 있을 수 있고
한편으론 배. 걸랑. 물길로 떠다닐수 있는겨. 이들언어가 프로토 파마 뉭겐.의 호주 북부. 그리고 프로토 오스트로니지언. 프로토 오스트로아시아틱 으로 보이걸랑.
아 헌데 배.는 일만년 전. 으로 보걸랑. 아 헌데 저 선인동 유적은 이만년전이걸랑. 메소포타미아의 신석기 사람들이 배타고 저기 가기에는 배가 안 나올때야.
저기가 중국 남부에 동쪽이야.
배가 2만년 전에 있었을 수도 있겄지. 아니면 걸어서 저까지 간 사람들이 신석기 혁명을 먼저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저기서 먼저 인간으로 진화를 했는가 할 수도 있고.
하튼 말야. 왜 중국이는 저리 나름 신석기 를 메소포타미아 못지 않게 혁명 했는데. 그다음은 왜 이리 늦었을까나. 인도도 신석기 혁명은 메소포타미아에 안뒤져.
헌데 왜 저 인도 랑 중국이는 지금 왜 저리 후져졌나?
저 글자가 기원전 6600년. 지금에서 7천년 전 이상 먼저 저리 티나왔는데. 왜 갑골은 기원전 1300년인가. 기원전 3년천의 수메르 문자들과 이집트 문자들 보다 2천년이 뒤지고. 먼저 티나온 글자보다 5천년동안 멀한겨 대체.
The Vinča symbols, sometimes called the Vinča signs, Vinča script, Vinča-Turdaș script, Old European script, etc., are a set of symbols found on Neolithic era (6th to 5th millennia BC) artifacts from the Vinča culture of Central Europe and Southeastern Europe.
저 지하우 글자 다음으로 보이는 원시글자가 빈차 글자야. 기원전 6천년에서 5천년. 루마니아 세르비아 등에서 발견돼.
.해서 하튼 본격적인 글자는 수메르 이집트에서 먼저 티나와 . 메소포타미아. 초승달 지역.
그렇다고 프로토 라이팅이라는 원시글자와 본격글자의 구분은 또 머냐. 하면 또 답하기 애매하대. 하튼 이때부턴 먼가 의미있고 읽을거리가 있는겨. 해석이 되는거고
Egyptian hieroglyphs (/ˈhaɪrəˌɡlɪf, -roʊ-/[2][3]) were the formal writing system used in Ancient Egypt. It combined logographic, syllabic and alphabetic elements, with a total of some 1,000 distinct characters.[4][5]
이집트 신성문자. 하이어로글리프. 하이어로. 는 sacred 세이크리드. 란 뜻. 그리스어 히에로스. 홀리. 신성한. 이란거고. 신과 관련된거지. 글리프.는 파다. carve. 신이랑 관계된 이야기를 파서 새긴겨. 한문개개글자처럼 각각 의미가 다른 글자 들이 1천개. 한문은 총 몇개라고?
The use of hieroglyphic writing arose from proto-literate symbol systems in the Early Bronze Age, around the 32nd century BC (Naqada III),[1] with the first decipherable sentence written in the Egyptian language dating to the Second Dynasty (28th century BC). Egyptian hieroglyphs developed into a mature writing system used for monumental inscription in the classical language of the Middle Kingdom period; during this period, the system made use of about 900 distinct signs. The use of this writing system continued through the New Kingdom and Late Period, and on into the Persian and Ptolemaic periods. Late survivals of hieroglyphic use are found well into the Roman period, extending into the 4th century AD.
With the final closing of pagan temples in the 5th century, knowledge of hieroglyphic writing was lost. Although attempts were made, the script remained undeciphered throughout the medieval and early modern period. The decipherment of hieroglyphic writing would only be accomplished in the 1820s by Jean-François Champollion, with the help of the Rosetta Stone.
기원전 3200년. 나카다 3세. 이전 설명한 이집트 왕조 나누기에서 본격 왕조시대 이전. 빵왕조. 0왕조의 파라오.야. 여기에 처음 나오고. 본격왕조의 시작 제1왕조가 기원전 3천년 전후이고. 제 2왕조인 기원전 2800년대의 글들이 해석이 된다는거지. 즉 이전의 신성문자들은 아직 해석을 못한겨. 기원후 4세기까지도 이 글자들을 썼대.
이집트는 알렉산드로스.가 원정하면서 지배당하고. 알렉산드로스가 빠꾸길에 죽고. 그 부하 프톨레마이오스가 왕조를 만들고 지배하다가. 클레오파트라.가 욕심 부리면서 안토니우스 갖고 놀다가 독사 풀고 자결하면서 아우구스투스.로 불리는 옥타비아누스.가 개인용으로 먹걸랑.
로마.는 개방의 나라 걸랑. 언어 다 쓰게 했어. 자기 언어 강요 안해. 라틴어 쓰던 말던. 오히려 지들이 그리스어를 배워서 써. 고대 로마.는 고대 그리스가 없었으면 로마는 없어. 로마 제국의 바탕은 또한 그리스야. 그리스 인간들이 그리스 망하고 로마로 가. 로마로 가서 선생하고 과외하고 의사하고 문학 역사 천문학 수학 수사학 다 그리스애들이 로마애들을 갈켜.
로마의 속지에도 그리스 애들이 참모로 들어가. 그리스애들과 로마애들이 말이 통하는겨. 그리스애들이 정부에 입각한 로마 속지 식민지나 로마 동맹국들이 훨 편해 다루기가. 왜냐면 그리스 인간들이 그나마 말이 통하걸랑 로마랑.
그러다 서로마 망하고나서. 저기도 개판이 되는겨. 그리곤 나중 무슬림 나오면서 무슬림 식민지가 되고. 이러면서 신성문자. 는 안써.
저 글자의 해석을 저 로제타 스톤. 에 쓰여진 신성문자 민중문자 데모틱. 그리고 그리스어.로 병행해서 쓴 것 때문에. 이것 때문에 저 방대한 신성문자들을 해석할 열쇠가 되는겨. 아 저거 없었으믄 이집트 이야기는 인류에게 지워진거지.
클레오파트라.를 띄우는데. 머 스토리가 워낙 좋으니 문학 연극 드라마로 쓰지만서도.
클레오파트라 이후로 식민지가 되는겨 이집트가. 걍 2천년 가까이 식민지야.
고대 그리스가 얼마나 엄청나냐. 얘들도 로마에 먹힌 이후로 로마의 재료만 되었을 뿐. 이후에 비잔틴에서 오스만으로 넘어가면서 또한 2천년 가까이 식민지야.
자기들이 먼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시간을 2천년을 공백이 생긴겨. 그게 지금 그리스 이집트가 후진 이유야.
먼가 흩어진걸 모아서리 거기서 힘을 쌓아야 하걸랑.
고대 그리스.는 민주. 라는 데모스. 로 망했어.
데모스. 는 노예아닌 시민권갖은 시민. 의 데모스 이기도 하지만. 그 아테네의 앗티카 반도를 세구역으로 나눠서리 열개씩 쪼갠 삼백여 자치구. 각각이 또한 데모스. 란 뜻이야. 데모스가 의미가 몇개 돼.
인간들이 존심이 쎈겨 이것들이. 자기가 각각 위대한 인간들인겨. 지들이 주인이야. 대단해.
여 광경을 보여주는게 사도바울. 바오로. 의 이야기야 아테네가서 연설하걸랑. 예수님 믿으라고. 아 헌데 아 저 장면을 말야. 저당시의 역사 저 당시 저들의 분위기를 좀 익히면 웃긴겨 저게.
신약은 역사를 보는 시선으로 봐야해. 제일 재밌는 캐릭터가 저 사도 바울이야.
저 이야기는 진짜야. 리엘리티.가 듬뿍 실린이야기야. 물론 아 저건 바울의 허세. 저건 작가의 주작. 이런게 보여. 저당시 로마사들이 드문드문 있걸랑.
여하튼 저들은 저리 2천년 가까이. 그 위대한 그리스 위대한 이집트가.
한쪽은 민주 하다가 망했고
한쪽은 이시스 오시리스 호루스 토트 프타 등등 신에만 미쳐서리 망했어.
The Battle of Kadesh or Battle of Qadesh took place between the forces of the Egyptian Empire under Ramesses II and the Hittite Empire under Muwatalli II at the city of Kadesh on the Orontes River, just upstream of Lake Homs near the modern Syrian-Lebanese border.[10]
The battle is generally dated to 1274 BC in the conventional Egyptian chronology,[11] and is the earliest battle in recorded history for which details of tactics and formations are known. It is believed to have been the largest chariotbattle ever fought, involving between 5,000 and 6,000 chariots in total.[12][13][14]
As a result of the multiple Kadesh inscriptions, it is the best documented battle in all of ancient history.[15]
저 글자들중에 신전에 새겨진 카데슈 전투.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의 무와탈리2세 랑 아나톨리아랑 시리아에 접하는 카데슈 에서 벌이는 전투. 기원전 1274년.
아 저걸 볼 수가 잇는겨.
고대 역사 중에 가장 최고의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보는거지. 지금으로 부터 3300년 전의 이야기를.
The Kadesh inscriptions or Qadesh inscriptions are a variety of Egyptian hieroglyphic inscriptions describing the Battle of Kadesh. The combined evidence in the form of texts and wall reliefs provide the best documented description of a battle in all of ancient history.[1]
The Egyptian version of the battle of Kadesh is recorded in two primary accounts, known as the Bulletin and the Poem. These inscriptions exist in multiple locations. Some scholars divide these accounts into three. The Bulletinis repeated seven times and the Poem eight times, spread across temples in Abydos, Temple of Luxor, Karnak, Abu Simbel and the Ramesseum, and two hieratic papyri.[2]
저 이야기가 불리틴과 시.의 형식으로. 불리틴.은 그야말로 게시판 공고문 기록이야. 신문 기사야. 저게 신전들에 새기고. 파피루스에 써있다는거야. 저 파피루스 두 종류가 남아있고.
Cuneiform references to the battle have been found at Hattusa, including a letter from Ramesses to Hattusili III written in response to a scoffing complaint by Hattusili about the pharaoh's victorious depiction of the battle.[7] However, no annals have been discovered that might describe it as part of a campaign. Instead, there are various references made to it in the context of other events.
히타이트제국의 수도 하투사. 앙카라 부근에 있어. 여기에 람세스2세와 히타이트의 다음왕들간의 서신 교환에서 단순히 언급만 되어있는 게 보이고.
.
저러한 이야기를 다 먹고 삼켜서리 자기화 한 애들이. 고대 로마였고 그게 지금의 영프독과 서유럽이고 미국이야.
미국애들이. 오바마던 트럼프던. 우리보고 미국의 친구이자 동맹인 한국. 하잖냐? 자주.
저게 저 카이사르 애들이 쓰던 말이야. 이전 콘술들이 쓰던 말이고. 자기들 동맹국들한테.
로마의 친구이자 동맹인 이집트여. 로마의 친구이자 동맹인 누미디아여.
저걸 고대로 지금 하는겨.
지금 달력이 로마가 만든겨. 카이사르가 자기 생일 넣은 달을 넣어줘 부탁해 해서리 율리우스.가 줄라이가 된겨. 로마 달력이 누마 이전에 원래 일년에 열개야. 나중에 두개 달을 더 만들면서 두개씩 밀려난겨.
셉템버 악토버 노벰버 디셈버. 가 뜻이 7. 8, 9, 10. 숫자붙인겨. 이게 두개씩 밀려서리 저게 9월 10월 11월 12월이 되었어. 그래도 저걸 써 지금. 전 세계가. 저것도 웃긴건데.
헌데 그만큼 로마. 가 음청난겨. 음청난 거의 그 바닥은. 정신이야. 개방. 개방. 열림.
그 바닥이 법. 이고. 법의 로마 였걸랑. 남들 들은 풍문 상소로 고문 하민서리 찢어죽일때. 저 적폐유. 적폐임을 자백하라우. 우왕 아퍼유. 나 적폐 맞우. 죽어라 찢겨서.
그리고. 배웟걸랑. 자기들 보다 나은건 다 받아서리 자기들이 재생하고 더 나은걸 만들어.
건축이 어쩌고 도시를 만들고 물질문명을 저쩌고는 부차적인겨.
상업. 경제가 먼줄 알아.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할때 상인들을 델꼬가. 여기서 경제활동 일으키게 해달라고. 물론 뒤에서 커미션 처먹으미 빚갚는거지만.
카이사르는 갈리아 땅을 먹기 위해서 갈리아를 간게 아냐.
스위스 고원지대의 헬베티이.
The Helvetii was a confederation of about five related Gallic tribes that lived on the Swiss plateau, hemmed in by the mountains as well as the Rhine and Rhone rivers. They began to come under increased pressure from German tribes to the north and east.[10]
얘들이 움직이는겨 프랑스 남부쪽으로. 여긴 로마속주걸랑. 30만이 움직인데. 옆에 게르만 무서워서리. 저건 남부를 약탈할 위험이 크걸랑. 그러면서 다른 부족들과 붙는겨. 저걸 막으러 가는겨. 그러다가 갈리아 전 지역이 들고 일어나는거고 게르만이 라인강 넘어서리 약탈하러 오는거고.
걍 저거 막기 위해서 간겨. 로마.는 중세나 고대나 땅욕심이 원래 없어.
한니발이 넘어오지 않았으면. 로마는 에스파냐 니 프랑스 남부니 관시미가 없어. 아프리카 관시미가 없어. 쳐들어와서리 약탈하니까니 그거 쳐부수러 간겨. 그리스도 마찬가지야. 걍 상황이 가서 진압하고 할 수 밖에 없어 저 이야기들을 디다보면.
저 로마 애들의 저 정신을 이어받으라고 저따위 로마 달력을 계속 쓰는겨. 카이사르가 수정해서 만든 달력 율리우스 달력을 천오백년 쓰고. 그레고리 달력을 이후 고 날짜 오차 십여분 수정해서리 쓰는겨 ㅋㅋㅋ. 즉 지금 카이사르 달력을 쓰는데 그 이유는 저 로마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겨 쟤덜이.
거기에. 에이디. 란 주님으로부터.의 기원후를 쓰는겨
지금 세상의 본 정신은 로마 더하기 그리스도. 야.
여까지만 하자. 오늘은. 카이사르 좀 더 풀어볼랬더만 서두 길어져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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