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者詩三千餘篇,及至孔子,去其重,取可施於禮義,上采契后稷,中述殷周之盛,至幽厲之缺,始於衽席,故曰「關雎之亂以為風始,鹿鳴為小雅始,文王為大雅始,清廟為頌始」。三百五篇孔子皆弦歌之,以求合韶武雅頌之音。禮樂自此可得而述,以備王道,成六藝
사마천 사기.의 공자세가.에서 저 부분때문에 시경은 공자가 편집해서 내논 책이라고 하지만
지금 사가들은 저건 잘못되었다고 봐.
역사는 당대보다 후대에 시간이 더 지나서 더 제대로 보는거야. 그게 사관이야. 후대의 사관이 더 온전해. 당대는 자기와 그 주위밖에 못보걸랑. 듣고 보는게 한정이 되어있어.
해서 역사란건 백년 지나서 평가해라 란 말이 유행이 되는겨. 나폴레옹은 오백년 지나서 자길 평가해줄거다 제대로 하는거고
단테를 보더라도 신곡을 보면 단테만의 편협한 정보 인식에 의한 표현들이 군데 군데 보이는겨 지금에야 사가들이 밝히는거고 그걸.
마찬가지야. 사마천이 다 옳을 수가 없어.
시가 3천편여편이 있었는데 공자때 이르러서 거기중. 거기중. 넘어가고. 예의.에 가한 것만 취했다는 거걸랑. 저따위 구문만 봐도. 완전 자기 잣대에 의해서만 추리는거지.
三百五篇孔子皆弦歌之 해서 305편을 추린겨. 그걸 공자가 모두 현악기로 타면서 노래를 만들었다. 하는거고.
해서 저 305편을 시삼백 하걸랑.
헌데 저게 말이 안된다는거지
作者については、宮廷詩人・尹吉甫の名が知られており、また解説書のひとつ「毛伝」などが参考になるが、それも「雅頌」についてであり、「国風」に収められた詩編のほとんどは無名の人物の手になるものと考えられる。編者である孔子は、諸国遍歴の途次に、その土地土地の詩編を集めたと言われているが、すべてが採集によるものとは思われない。また孔子の没後、子夏・子張ら孔門の若い世代が潤色したところもあるだろうし、東周以降の作がまじっている可能性も高い。なお古代に「采詩の官」がおり、地方の詩を中央に送ったという説(鄭玄の『譜序』)もある。
일본애들 글을 보면. 궁정시인. 윤길보.가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익명으로 보인다. 편집자는 공자.로 알려져 있지만 모든 채집.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즉 305편 모두를 공자가 했을 리가 없단거지. 공자 이전에 시경.이란 편집된 책이 있을 수 있단 말이고
저 윤길보.는 서주.때 윤국.의 군주. 로 중국은 정리하고. 중화시조. 중국애들 시인의 할아버지.라고 지금 역사학자 애들이 자리를 잡아줬어
古人关于《诗经》的收集和编选,共計有“王官采诗”和“孔子删诗”、“献诗说”三種说法:
- 王官采诗说:《孔丛子·巡狩篇》載:“古者天子命史采歌谣,以观民风。”《汉书·食货志》中记载,周朝朝廷派出专门的使者在农忙时到全国各地采集民谣,由周朝史官汇集整理后给天子看,目的是了解民情[7]。刘歆《与扬雄书》亦稱:“诏问三代,周、秦轩车使者、遒人使者,以岁八月巡路,求代语、童谣、歌戏。”
- 孔子删诗说:见于《史记》,据说原有古诗3000篇,孔子根据礼义的标准编选,整理出了共计三百零五篇的《诗》[8],宋代朱熹[9]也基本肯定此说法。唐代孔颖达[10]、明代朱彝尊、清代魏源和方玉润[11]等皆怀疑此说。《左传》中记载孔子不到10岁时就有了定型的《诗经》,公元前544年鲁乐工为吴公子季札所奏的风诗次序与今本《诗经》基本相同[12]。现在通常认为《诗经》为各诸侯国协助周朝朝廷采集,之后由史官和乐师编纂整理而成。孔子也参与了整理音樂的过程。[13]無論如何,孔子以詩經為課本(五經之一),對詩經重要性的肯定無庸置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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