カイヨ Caiyo 1572?~1624.11.15(53歳)
카이요. 가요.
カイヨは文禄慶長の役で朝鮮から日本へ連れて来られた朝鮮出身のキリシタンで、1624年11月15日に長崎の西坂で 火あぶりの刑で殉教した人物である。1867年5月7日、ローマ教皇ピオ10世によって、カイヨは日本で殉教した他の204名 とともに福者に列福されている。
카이요는 분로쿠케쵸노야쿠 임진왜란 때 쓰레테 따라들어온 조선출신 의 키리시탄 으로. 1624년 11월 15일 나가사키 의 니시자카 에서 히아부리, 불태우는 형 에 순교한 인물 에 있다. 1867년 5월 7일 로마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카이요 는 일본에 순교한 다른 204명 과 함께 복자에 열복 되었다.
カイヨの経歴については、彼に洗礼を施したペドロ・モレホン神父が1627年3月31日付けでマカオから発信した書簡と、ジョアン・ロドリゲス・ジラン神父が1626年3月15日付けでマカオから発信した書簡に簡単に紹介されているが、どちらも カイヨ本人から聞いたことが記載されている。
카이요 의 경력에 대해서는 그에게 세례를 베푼 베드로 모레혼 신부가 1627년 3월 31일 부로 마카오에서 발신한 서간 과, 죠안 로드리게스 지란 신부가 1626년 3월 15일 부로 마카오에서 발신한 서간에 간단 소개되어있는데 모두 카이요 본인 에게서 들은 것이 기재된 것이다
以下、J.G.ルイズメディナ著 『遥かなる高麗』 に掲載されているこの二つの書簡を引用して、カイヨの略歴を紹介する。
이하 제이지 루이즈메데나 의 저 하루카나루 카오리, 아득한 고려 깜깜히 먼 고려 에 게재된 두개 서간을 인용하여 카이요 의 약력을 소개한다
なお、カイヨは 『遥かなる高麗』 では「ガヨ」と記載されている。また、『徳川初期キリシタン史研究』 (五野井隆史著) では「ガーヨ Gayo 」と記載されている。さらに、『日本切支丹宗門史』 (レオン・パジェス著 吉田小五郎訳 ) では「カイオ Caio 」と 表記されている。ここでは日本二十六聖人記念館の表記に従い、カイヨと表記する。
아득한고려 와 도쿠카와초기키리시탄연구사 에는 가ㅡ요, 일본절지단종문사 에는 카이오 로 표기돼있다. 일본26성인기념관 의 표기에 따라 카이요 로 표기한다
○郷里にいた頃
子供の時に郷里で仏僧になる。郷里がどこかは宣教師の上記書簡には記載されていない。「仏僧」と記載されているが、正式な僧侶ではなく、お寺に預けられて仏教を学んでいたのであろう。偶像に傾倒してよく節制を守っていたと記載されて
향리. 쿄우리 고향에 있는 무렵.
불승 이었다는데 정식 승려가 아니라 절에 아즈케라레테, 맡겨져서 불교를 배우고 있었다. 우상에 경도되고 절제를 지켰다 고 기재됨
いるが、仏像を拝み、戒律を厳しく守っていたということだろう。郷里で仏教を信じていた時に、仏より偉大な世界の主の存在を信じ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ような光と啓示を受けた、ということをカイヨは後に大坂で宣教師たちに語っている。
불상을 오가미 예배하고 계율을 엄격히 지켜왔다. 고향에서 불교를 믿을 때, 불佛보다 위대한세계의 주 의 존재를 믿지않을수없는 빛과 계시를 받았다 라는 내용을 카이요는 후에 오사카의 선교사 에게 말하다
また、年少の時、霊の救済を得ようとして隠者になり、人里離れた大きな岩にある洞窟に入って、草、特に松の葉を食べ て数年間暮らしたそうである。ある時、カイヨがいる洞窟に虎か狼がやって来て、しばらくの間、彼のかたわらに横たわった
연소 의 시에, 어릴때 영의 구제를 득하려 숨은 은자 가 되려고 사람마을 에서 떨어진 큰 바위에 있는 동굴로 들어가서, 풀 특히 솔잎을 먹으면서 수년을 살면서 그리 지내다. 한때 카이요가 있는 동굴에 호랑이 늑대가 들어와서 시바라쿠 잠시동안 그의 옆에 횡으로 눕다
後、立ち上がって少しも危害を加えずに立ち去ったそうである。このように神が彼を護ってくれたのは後日殉教する栄冠のためだったと、宣教師の書簡に記載されている。
후에 범 늑대 등이 일어나서 조금도 위해를 가하지 않고 일어나 갔다고. 그일은 신이 그를 보호해서 후일 순교하는 영관의 위함 이었다고 선교사의 서간 에 기재되어있다
○日本へ連行される
カイヨは20歳になった頃、夢の中で立派な老人を見、老人がカイヨに対し、当年多くの危険と苦労をへて海を渡り、希望が叶えられるであろうと言ったが、その時カイヨは海からほど遠い荒地にいたので、その夢が馬鹿げていると思って心にかけなかったそうである。ところが、この年、日本が朝鮮を征服しにやって来た時、彼は捕らえられて日本へ送られているが、連行される途中、対馬の海上で船が遭難し、夢が的中している。
카이요는 20세 즈음에 꿈에서 릿파나, 훌륭한 노인을 보는데 노인이 카이요에게, 당해에 많은 위험과 고로 를 겪고 바다를 건너서야 희망이 카나에라레루 이루어질거라고 말을 해. 당시 카이요는 바다에서 훨 떨어진 황지에서 살 때라 그 꿈이 거짓이라 생각하다. 그런데 그해에 일본이 조선을 정복하고 그는 포로가 돼서 일본에 보내지게 되고 연행도중에 대마도의 해상에서 배가 조난 당하고 꿈이 적중하는구나 했다는
日本へ連行された時期については、宣教師の書簡に 「その年、日本人が高麗を征服しにやって来て彼を捕虜にし、日本へ連れて来た」 という記載があることから、カイヨは文禄の役が起きたその年(1592年)に日本軍に捕まり、すぐに日本に連れて来られ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
일본에 연행되는 시기에 선교사의 서간에는, 그해 일본인이 고려를 정복하려 들어와서 그를 포로로 일본에 끌려오다.
日遙上人も故郷の父に宛てた手紙に日本軍に捕まった後、数ヵ月して日本へ送られたと記載しているからである。また、カイヨと同じく日本でキリシタンになったカウン・ヴィセンテも、1592年に日本へ来たと述べている。
일본에 멀리온 상인(다른사람인데 귀족인듯) 도 고향의 부친 앞으로 쓴 편지에 일본군에 포로된 후 수개월 지나 일본에 보내졌다고 기재하고 있다. 또한 카이요 와 같이 키리시탄 이 된, 카운 빈센테 도 1592년에 일본에 왔다고 서술한다.
○京で僧侶になる
カイヨは他の捕虜たちと共に海上で遭難しながらも、ついにたどり着いた所は京の都だった。その時、カイヨの主人はカイヨが生活できるような仕事を彼に与えようとしたそうである。それでカイヨは主人に、子供の時、両親が自分を仏僧にしたので、自分はただ霊の救いを考えるためにのみ生まれて来たようだ、と語っている。ここで、霊の救いというのは魂の救いという意味だろうと思われる。
카이요 는 다른 포로들과 함께 난파되어서 다들 쿄토 로 가고 여기서 주인을 만나서 생활하게되고 일도 맡기려는데. 카이요 가 주인한테, 자기는 코도모 어릴때 양친이 자기를 불승 에 맡겨서 자기는 영의 구제를 생각하는게 자기 태생의 이유란겨. 여기서 레이노스쿠이 영을 구한다는건 혼을 구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생각된다.
そのため主人はカイヨを京の寺院に入れたのである。彼は非常に満足し、やがて自分の檀家を持つまでになった。別の宣教師の書簡では、カイヨは京で法華宗 (現在の日蓮宗) の仏僧とたびたび会って、京のある重要な寺院で仏僧になったと記載されている。
이말에 주인이 카이요를 쿄토의 절, 사원에 들여보내. 비상하게 매우 만족하고, 오래지않아 야가테 자기의 단가를 확보해. 단가 라는게 물질적스폰서 야. 보시집안. 서간에 보면, 카이요 는 쿄토에 법화종 현재 일련종 의 불승과 자주 만나서 쿄토에 있는 중요한 사원 에 승려가 되었다고 기재.
○キリスト教に改宗
カイヨは京で僧侶生活を送っていたところ重い病気を患うが、病気が治った機会に法華宗の寺院を立ち退きたいと自分が所属する寺院の長に許可を求めた。その際、法華宗で見出せなかった霊の救いの道を探したいと言うと、許可された。京でのカイヨの主人には身分の高い親戚がいて、その親戚はキリシタンだった。
카이요가 승려생활 을 하던중 중병에 걸리고 치료가 되고 이때 법화종 의 절을 나와. 영을 구한다 가 이사람의 문장인데, 법화종 에선 답이 없는겨. 쿄토 자기 주인한테 신분이 높은 친척이 있는데 키리시탄 이래.
カイヨはその人物と交際し、キリシタンに関する話を聞いたところ、非常に喜び、その人物に頼んで教理を聞くことができる所へ密かに連れて行ってもらった。そこは京にあるイエズス会の教会だった。カイヨは説教をよく理解し、そこで洗礼を受けた。洗礼を授けた神父はペドロ・モレホン神父だった。
카이요 가 이사람과 교제하다가 키리시탄 관련 말을 듣다가 아주 기뻐서 그 교리를 들으러 따라간 곳이 예수회 야. 카이요 는 설교를 잘 이해하고 세례를 받아. 세례를 주는 신부는 베드로 모레혼. 혼 은 후안 이고.
その時、イエズス会の修道士(エルマノ)が記念品として聖像をカイヨに与えたところ、彼はその像を知っていると答えた。どうしてかと尋ねられると、その像は朝鮮の山の荒地で自分の前に姿を現して、自分が苦労しながら海を渡り最後には希望がかなえられるだろう、と言った老人であり、夢で言われたことがすべて実現した、と答えたそうである。
세례때 예수회 의 수도사 에루마노 가 기념품 으로 성상 을 카이요 에게 줘. 그는 그 이미지 를 알고 있었다고 답을 해. 어떻게 니가 알수있냐며 타즈네루 심문을 해. 그 상은 조선의 산의 황지에 자기 앞에 자태를 보이고는 자기가 고로를 겪으며 바다를 건너 최후에는 희망이 올거라며 그말한 노인이 있는데 꿈의 말이 실현되었다며 답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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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오백년 역사 가 비참한건, 조선오백년 엔 인물이 없다는거거든
조선 오백년은 인물이 없어. 글이 없고 사람이 없어.
더하여 그리고 백년. 더 없지. 근현대는 정말 똥 그자체고. 정말 조선과 한국, 아 이 똥떵어리. 역사.
민족 민주 들이 완벽하게사람들을 쳐죽이려 작덩하지. 저런 단어 개념조차 일본말.
카이요 같은 인물사 가
조선 오백년 이어 육백년 모든 인물사 통틀어 보다
천만배 낫지.
나머지는 니덜이 봐라. 구글돌려서.
http://satomi-rose.ciao.jp/homepage2/gay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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