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비스 1세. Clovis 1. 가 저 Austrasia 아우스트라시아. 를 시작으로 옛 로마점령지를 흡수를 해. 아우스트라시아 부터 아래 롬바르드 왕국. lombard kingdom 까지 빨간 경계선을 확정짓는 이가 샤를 마뉴. 오른쪽 허연부분인 체코와 엘베 하류너머는 아냐

 

헤르만의 저지로 저 독일 동부의 다뉴브강(danube. 도나우강 donau)위로는 로마가 포기를 하고.

 

클로비스부터 시작한 메로빈지언 왕조. Merovingian dynasty. 481년부터 751년 까지로 봐. 270년 동안. 

 

클로비스.가 저리 영토를 확장 통합하면서, 그 영토들을 자기 자식들에게 나눠줘. 초창기라 이때는 왕권이 훨 강했어. 기사라는 kngit 나이트.는 이때 등장하는게 아냐. 

 

아우스트리아시아 Austrasia 부터 프랑크 왕국이 시작한것도 이유가 있겠지. 로마보다 훨 멀어 로마의 통치권이 상대적으로 약해. 물론 프랑크족들이 이쪽에 집중된 것도 있고.

 

봉건주의. 라는 Feudalism. 이란 명사.는 19세기까지 나온 단어가 아냐. feudal. 이란 형용사나 feudality는 나왔어도.

 

1944년에 본격적으로 학자들이 쓰기 시작했어. 이때는 중세 봉건주의 퉁쳐서 저 프랑크때 481년인 5세기로 보는 시선도 있었어.

 

헌데 본격적인 봉건주의. Feudalism은 메로빙거왕조 다음인 까롤링거 왕조. 로 부터로 보는 견해가 현재 주류야. 

 

Feudalism 퓨덜리즘. 봉건. 封建. 봉.이란 글자는 왕. 군주가 땅덩어리에다가 가지 많은 나무를 심어서 자기땅 경계긋는 거야. 이거 내땅. 경계의 상징 가지많은 나무.

 

Feudal. The term "feudal" or "feodal" is derived from the medieval Latin word feodum. The etymology of feodum is complex with multiple theories, some suggesting a Germanic origin (the most widely held view) and others suggesting an Arabic origin. Initially in medieval Latin European documents, a land grant in exchange for service was called a beneficium (Latin)

 

일을 해주고 보상으로 받은 땅. 이란 뜻이래. beneficium. 베네키피움 이라 했대. 라틴어로는.

 

공후백자남. 그런 귀족들이 받는거야 땅을. 왕king으로 부터. 왕국 kingdom의 king 한테서. 해서 받은 땅들이 공작령 후작령 백작령 하는거지.

 

까롤링거 왕조 Carolingian dynasty 가 751에서 1122년에 끝나. 

 

Feudalism was a combination of legal and military customs in medieval Europe that flourished between the 9th and 15th centuries

 

저 봉건주의. 땅 나눠주고 다스리게 하는 제도는 까롤링거 왕조 후반에서 15세기 즉, 백년전쟁이 끝나면서 종을 쳐. 백년전쟁이 끝나면서 킹들이 병력을 직접 두는 상비군을 두기 시작해. 각 영지들에게 흩어져 있는 기사들이란 군병력이 의미가 없어지걸랑. 그러면서 영지들도 점점 쇠락하면서 종을 치는건데. 그러면서 봉건 영주들이 쇠락해지고, 상공업이 부흥하면서 그 바닥에서 인문주의 르네상스가 귀족중심으로 그리스 고전을 재해석하면서 중세를 마무리를 해. 그걸 바탕으로 30년 종교전쟁을 하게 되는데 국제전을 하는거지 카톨릭과 신교도들간의. 그 바닥은 교리의 문제보다는 정치사회이슈가 중심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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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가 기독교를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로마 식민지를 벗어나고 원주민들을 합하는거지. 최초의 자기들만의 왕조를 세우다. 프랑크 왕국. 그 최초의 왕조 메로빙거 왕조. 클로비스의 할아버지 이름을 따서.

 

처음의 왕조걸랑, 아직 잘 몰라, 영토 확장하면서, 옛 로마 식민지의 제도를 어설프게 배워서 다스리는거지. 

 

로마 쫓아내고, 처음 차기들 왕조 세우고, 머 달리 이념이 있는것도 아니고, 왕조가 쇠하기 시작하는겨, 그래도 정신을 지배하는건 기독교야. 카톨릭. 기독교. 그리스도교 일단 같이 쓰자고 용어를.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교황은 살아있는겨. 기독교의 최고의 상징은 여전히 중요해. 왕국과 교황과 서로 협업하면서, 카톨릭은 밀라노칙령 313년 이후 포교를 하는거고, 세상을 그리스도교로 만들고 싶어하고, 그럴려면 왕이란 통치자의 도움이 절대적이야

 

왕 king도 마찬가지지, 인간들 이념을 사유를 통일하기 위해선 기독교. 그리스도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겨. 통치를 위해선.

 

교황은 카톨릭을 보호할 속세의 권력이 필요해. 정치에 역시 개입을 하게 되는거고.

 

메로빙거 왕조 마지막 즈음인 270년이 지나가는 저 751년. 아, 교황이 보기엔 이놈의 메로빙거 왕조애들이 이제 힘이 없는겨. 군사력이 없어. 다들 영지들 나눠갖고 지들 맘대로야 처음 왕조라. 영지들 밖의 군데군데 문명화 되지 않은 바바리안들, 저 오른쪽 동부의 게르만들. 그리고 왼쪽에서는 스페인 그 피레네 넘어서 무어족 중동애들도 막막 넘어오는겨. 카톨릭이 위험한거지.

 

저 메로빙거 직계 애들로는 이제 안되는겨. 힘있는 애로 교체를 해야해. 카톨릭이 살기 위해선. 

 

Charles Martel. 카를(샤를) 마르텔. 메로빙거 왕조 막판즈음에, 지금 스페인포르투갈 땅 이베리아 반도를 이미 먹은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애들에게 쫓겨난. 걔들이 이베리아 먹고 피레네 산맥 건너서 이 본토를 치는겨 이쪽 유럽을 먹을라고. 이쪽 이야긴 나중에 하고. 하튼 이 무슬림 애들을 막아서 피레네에 가둔 사람이 카를 마르텔.

 

마침 프랑크 왕국의 한 지역인 노이스트라 궁의 재상. 궁재 mayor of the palace of the neustra in the franks. 중에 Charles Martel 카를 마르텔 이란 힘있는 궁재 Mayor가 있네? 프랑크 왕족의 혈통이고 왕자 prince이지만 직계는 아니야. 카를 마르텔도 마찬가지. 지금 메로빙거 직계인 왕조로는 프랑크 왕국이 망할 듯. 아 이거 낵아 해야 돼. 누굴 찾아가나? 그래 교황을 찾아가자. 교황도 불안불안 할껴. 그래서 귀족들을 설득해서 다음 왕은 내 자식들이 하는겨.

 

 

카를 마르텔. (불어. 샤를 마르텔)에겐 두 아들이 있었어. 그 중 작은 아들. Pepin the Short. 둘째라고 소피핀.이라 불러. 피핀 페핀 페뺑.

 

나중에 이 둘째 소피핀이 왕이 되능겨. 카를 마르텔은 먼저 죽고. 왕조가 바뀌는겨. 751년. 까롤링거 왕조의 시작이야. 

 

Carolingian dynasty

 

까롤링거. an altered form of an unattested Old High German word *karling, kerling, meaning "descendant of Charles"

 

찰스. 샤를. 의 후손들 이란 뜻이래.

 

위대한 사람이 바로 티나와. 저 카를 마르텔. 까롤링거 왕조의 실질적 시작, 소피핀의 아들.

 

 

프랑스에선 샤를 마뉴. 독일에선 카를대제.  Charlemagne,  Charles the Great. 

 

클로빙거1세의 Austrasia 아우스트라시아.지역부터 시작한 프랑크 왕국. 그 이후 250년 지나고 저 서유럽을 다 점령하는겨 프랑크 왕국의 이름으로. 로마가 떠나고 고만고만한 이들이 서로 주인이라고 있는 땅들을 다 통합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한. 그리고 신성로마제국. the holy roman empire 를 독일 전역에 퍼뜨린겨 로마로 건너가서리 교황이 얹혀주는 황제의 관을 쓰면서리.

 

신성로마제국 이란 단어도 13세기말 프리드리히2세 죽고 나오는 단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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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빨간 경계선을 확정지은 사람.

 

서유럽 전체를 카톨릭으로 통일한 사람. 

 

Charlemagne, or Charles the Great. 

 

프랑스에선 샤를 마뉴.가 우리의 시작이다. 독일에선. 아니다 카를 대제.가 우리의 시작이다. 헤르만의 뒤를 이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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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면서 800년이 지나가. 샤를 마뉴. 카를 대제.는 814년에 죽지만. 

 

이후 이 샤를마뉴. 카를대제.의 손자들 대에서 이 프랑크 왕국이 분열을 해. 샤를 마뉴가 빨간 선으로 확정한 저 광활한 서유럽을 세명의 손자가 각각 나눠. 그리고 서로 싸워 지들끼리. 더 뺏어먹을라고. 그리고 이들이 제후들에게 땅을 본격적으로 나눠주고 대신 충성을 받는 봉건주의를 본격적으로 하는거지. 이때 기사. knight 가 자리를 잡으면서 귀한 계급층으로 형성을 해.

 

 


기사.  騎士. 말탄 병사. 기사 knight 나이트.와 기사도 civalry 쉬벌리

 

During the High Middle Ages, knighthood was considered a class of lower nobility. By the Late Middle Ages, the rank had become associated with the ideals of chivalry, a code of conduct for the perfect courtly Christian warrior
 

중세시대 초창기엔. 기사들은 귀족층에서도 낮은계층이었다. 중세 후반으로 갈수록 이 기사 knight란 계층은 기사도. 시벌리 chivalry라는 이념과 같이 붙어다니며 귀한 계급으로 접대를 받다. 기사도 civalry란  "의례義禮로 세례를 받은 '완전한 그리스도 기독교 무사worrior' 의 행동양식" 이다.

 

Often, a knight was a vassal who served as a fighter for a lord, with payment in the form of land holdings

기사. knigt는 vassal. 베쓸. 봉신. 봉토를 받은 신하. 영주lord 를 위해 파이터로써 서비스를 하는 사람. 영주는 그 댓가로 땅 권리를 지불하다 기사에게.

 

이 기사도 란 것. civalry. 그리고 저 기사 knight.

 

 

저걸 보면. 유교가 생각이 나고, 그 유교의 선비 사. 士 란 족속들이 겹쳐져. 그리고 더불어 일본의 侍. 귀족모시는 사무라이. 와 겹치고.

 

사무라이를 고대와 중세의 worrior로 서양애들은 보는데, 그건 아냐. 사무라이가 쟤들의 기사고,

 

 

기사와 영주의 저 관계를. 프랑스는 영주들이 기사와 충성의 계약을 해. 영주들이 그 파이터.의 댓가 충성의 댓가로 땅을 주고. 영국은 그게 아냐. 저 기사들이 국왕에게 직접 충성을 맹세해. 영국이 중앙집중적인거지 권력이 훨씬. 나중 이것이 백년전쟁 프랑스를 치게 되는 힘이 돼.  프랑스가 초반에 몰려서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가게 되는 이유고. 잉글랜드 는 기사들이 킹을 직대하면서, 얘들이 하원이 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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