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imilian I (17 April 1573 – 27 September 1651), occasionally called "the Great", a member of the House of Wittelsbach, ruled as Duke of Bavaria from 1597. His reign was marked by the Thirty Years' War during which he obtained the title of a Prince-elector of the Holy Roman Empire at the 1623 Diet of Regensburg.  

 

비텔스바흐 가문의 바바리아 막시밀리언1세. 막시밀리언.이란건 라틴어 막시무스. maximus. 의 게르만 말이야.

 

크다.는게 마그누스 magnus. 비교급 더 크다.가 maius major 마이우스.가 되고 이게 메이저.가 돼. 제일큰게 막스무스.여. 더 그레이티스트 the greatest. 

 

이사람이, 1573년생.이야. 이 사람 여동생이 마이아 안나.가 1574년 생이야. 이여자가 합스부르크 나중 황제 페르디난트2세.에게 시집을 간거고. 페르디난트는 1578년 생이야. 네살 어려. 이 페르디난트2세 엄마.도 비텔스바흐.고 엄마쪽으로 사촌끼리 결혼을 한겨 페르디난트2세는. 엄마가 저들 아빠 빌헬름 바바리아 공작.의 여동생이여. 

 

막시밀리언1세.가 부인 로렌 여자가. 1635년 61세에 죽어. 결혼 생활 40년하고. 막시밀리언이 62세에 두번째 결혼을 한 여자가, 자기 여동생과 페르디난트2세황제의 딸.이야. 조카랑 한겨. 25세. 이미 저 여동생은 죽었고 페르디난트2세는 새장가 가고. 

 

결혼생활을 전부인 40년 했는데 자식이 없어. 로렌 여편네는 졸 카톨릭이고, 기부 졸 하고, 하는데 멜랑꼴리야 역시. 할배가 되서 여조카.와의 사이에서 바바리아가 대를 이은겨 이게. 아 핏줄 끊길뻔 했오. 78세 에 죽어. 

 

30년 전쟁.이 터지고, 페르디난트2세 황제가 기댈 곳이, 스페인이여. 그리고, 바바리아 인겨, 자기 엄마이자 마누라 가문의 비텔스바흐. 딱히 없는겨 독일땅 안에선. 이 신성로마황제 라는 타이틀이 가면갈수록 이게 힘이 없어. 

 

저때 그나마 전쟁 수행능력을 가진 능력자.는 보헤미안의 발렌슈타인.이야. 이사람이 족보가 약한 훗사이트였다가 카톨릭으로 전향해서 군권을 잡는겨 전쟁능력이 탁월해서. 헌데 페르디난트2세.가 얠 못믿는거야, 능력자인데 오히려 무서운겨 자기 자릴 노릴까봐. 결국 저사람을 암살시켜 죽이걸랑. 

 

엄마와 마누라로 엮인 비텔스바흐의 바바리아 인데 말야, 또한 이 황제는 합스부르크 걸랑. 이게 둘이 사이가  애매한겨. 얘들은 적이면 적이지 친한 애들이 아냐 이게. 알프스에 산에 있는 합스부르카와 저 아래 에 있는 바바리아 비텔스바흐는. 이 비텔스바흐.가 가장 영향력이 쎄. 쾰른 대주교 도 비텔스바흐여. 쾰른 전쟁이 쾰른 대주교가 칼뱅 여자 만나서 눈돌아가서 칼뱅전향하고 나 그래도 대주교 할텨 해대다가 쫓아낸게 이 비텔스바흐여. 더하여 라인강 저 하류 윌리히-클레베-베르크.의 후계자 전쟁도 반을 여기서 갖고 왔어. 더하여 말야, 팔츠그라프 라는 라인 팔라틴 백작도 저게 비텔스바흐.의 방계야. 아잉 독일빠닥이 다 비텔스바흐여. 

 

합스부르크 가 황제자릴 꿰찼지만, 이 비텔스바흐.가  부담이 되는겨. 그래서 페르디난트2세.도 엄마와 마누라.가 비텔스바흐지만, 저 30년 독일전쟁때 전체 군사령관을 막시밀리언1세에게 못주는거야. 이사람을 저 보헤미안인 발렌슈타인 아래에 넣어. 이 둘이 졸 웃긴 사이야, 비텔스바흐 와 합스부루크.가. 

 

독일의 중심.은 이 바바리아.야. 독일의 무게중심은. 우리가 독일 하면 전차군단 이미지걸랑. 이건 이 바바리아 가 만든 정신이야 이 바바리아의 역사고. 흩어진 독일땅을 굳건하게 마음의 중심에서 잡게 해주는 곳이 이 바바리아 여.

 

Bavaria (/bəˈvɛəriə/German and BavarianBayern [ˈbaɪɐn]), officially the Free State of Bavaria (German and Bavarian: Freistaat Bayern [ˈfʁaɪʃtaːt ˈbaɪɐn]), is a landlocked federal state of Germany, occupying its southeastern corner. With an area of 70,550.19 square kilometres (27,200 sq mi), Bavaria is the largest German state by land area comprising roughly a fifth of the total land area of Germany. With 13 million inhabitants, it is Germany's second-most-populous state after North Rhine-Westphalia. Bavaria's main cities are Munich (its capital and largest city and also the third largest city in Germany[4]), Nuremberg and Augsburg.  

 

영어표기로 바바리아 이고, 독일어와 바바리어로 바이언(바이에른) 이야. 프라이슈타트 바이언. 독일에서 가장 큰 주.야. 7만 제곱키로 좀 넘고. 북라인 베프트팔렌에 이어 두번째 인구가 많고. 뮌헨.이 수도이고. 세번째 독일 도시이고.

 

비텔스바흐 성 Aichach 아이히아흐. 아우크스부르크 동북 화살표

뉘른베르크 Nuremberg. 는 위 마인강 지류야. 다뉴브.가 Ulm 울름.에서 잉골슈타트 Ingolstadt. 레겐스부르크 Regensburg 를 지나꺾여내려서 Passa 팟사우에 Linz 린츠 지나 비엔나.로 가는겨. 

 

레겐스부르크.가 다이어트.를 또한 자주 했던곳인데. 저기가 경건루이 아들 게르만루이.가 동프랑키아 시작하면서 코트.가 저 레겐스부르크.야. 여기사 진짜 독일의 시작인겨. 지류의 아우크스부르크.는 아우구스투스 이름따서 만든거고, 다들 기원직전후에 만든겨. 뮌헨.은 겔피 사자공 헨리.가 만든도시야. 그리고 이때부터 바바리아의 코트.는 뮌헨이야. 

 

독일을 올드스템 영거스템 더치로 메로빈지언과 샤를마뉴때 나누는데. 작센 슈바벤 바바리아.는 기본으로 가고, 올드는 투링기아 프랑크.고 영거는 프랑코니아 로타링기아 인데. 

 

클로비스1세의 메로빈지언.들은 작센.은 못먹어. 작센은 더치 라는 둑스.로 말하지만 이 올드 작센의 둑스.는 프랑크에 하미지 하던 애들이 아냐. 그냥 자체 둑스. 킹이야.

 

게르만 루이 부터 시작자체가  애매한데 이게. 이때 작센은 샤를마뉴때 들어온거야.

 

메로빈지언때 작센은 없어. 바바리아.를 복속하고 여길 후대에 더치.라며 공작령 이라고 말을 하고 올드 스템 더치 니 말하기로 하지만, 이때는 그런게 딱히 없는겨. 저때 바바리아 의 짱은, 렉스 Rex 킹.으로도 언급이 돼. 바바리아는 프랑크에 6세기 후반에 들어온겨. 그래도 킹.이라고도 언급이돼. 그러다가 백년 지나고 바로 또 독립하고, 나중 샤를마뉴에게 다시 들어오는거걸랑. 얘들은 걍 킹 이여 메로빈지언때도. 킹 으로 하미지 하다가 독립하다 다시 잡힌거야. 

 

샤를마뉴.가 바바리아를 지배하고, 작센은 처음으로 프랑크에 들어오고. 이때 여길 따로 듀크 니 머니 한게 아냐 이게. 걍 자기들이 직접 황제이자 바바리아 킹. 작센 킹.이야. 이것도 애매해. 바바리아 작센 을 나눠서 킹을 구분했는지 조차. 걍 샤를마뉴가 저길 자기 이름으로 다 다스린거야. 

 

아들 경건루이.가 이어받아서. 다시 반란한거 세아들과 진압하고. 세아들이 베르됭 조약으로 나누고. 이 동쪽은 게르만 루이.가 짱이 되걸랑. 

 

게르만루이가 죽어. 게르만 루이 세 아들이. 카를로맨. 루이 영거. 뚱땡이 찰스.야

 

카를로맨 타이틀이 바바리아 킹. 루이 영거 가 작센 킹. 뚱땡이 찰스가 나중에 두형들이 죽으면서 저걸 다 받고 게르만 킹.에 마침 서프랑키아에 작은삼촌 대머리샤를이 로타링기아 포함 황제 하다가 죽고, 이아들 말더듬 루이.도 죽고 다음 심플한 샤를.은 애기고, 해서 뚱땡이 샤를이 전부 다 먹걸랑. 얜 그러다 쓸쓸히 검은숲지대로 쫓겨나서 병걸려 죽어. 

 

작센 은 루이 영거.가  작센 킹. 렉스 Rex야. 그리고 다음 작센 킹 이란 타이틀은 없어. 

 

Liudolf (c. 805/820 – 11/12 March 866) was a Carolingian office bearer and count in the Duchy of Saxony from about 844. The ruling Liudolfing house, also known as the Ottonian dynasty, is named after him; he is its oldest verified member.  

 

작센에서 카롤린지언때 가장 오래된 인물로 현재 보이는게 리우돌프.여. 오토 조.의 시작으로 봐. 게르만 루이.가 게르만 킹.이 되고 작센땅에 최초의 영주.로 보이는겨. 현재 찾아낸 기록으로는. 

 

게르만 루이. 타이틀.이 게르만의 킹.이자, 작센 킹. 이고 바바리아 킹.인겨 이게. 작센의 리우돌프.는 작센 킹.에 일차적으로 하미지 한거야. 저때 저사람을 딱히 둑스.로 안봐. 카운트 코메스 로 보는겨.

 

작센은 리우돌프.에서 오토대제 까지 5대 이름이 보이는겨 둑스. 듀크 레벨로. 

 

게르만 루이 죽고, 동쪽은, 첫째 카를로맨.이 바바리아 킹 받고, 죽어서 이걸 둘째 루이 영거.가 받아. 죽고, 막내 뚱땡이 찰스가 받아. 죽고. 다음이 카를로맨의 아들 카린티아의 아눌프.가 삼촌 뚱땡이 샤를 쫓아내고 황제에 게르만 킹에 바바리아 킹.이고 이 아들, 동쪽에선 마지막 카롤린지언 루이4세 차일드.로 끝나는겨. 이들 타이틀은 바바리아 킹.이야 모두. 

 

즉 작센 킹.이란 타이틀은 둘째 루이 영거.만 보이는겨. 이후는 완전히 이 작센 킹 타이틀은 사라졌다고 보면 돼 나폴레옹 후에나 등장하는겨.

 

바바리아 킹.이 동프랑키아 독일땅 게르만루이.가 어릴때 부터 취하던 유일한 타이틀이었고, 게르만의 킹은 바바리아 킹.을 기본으로 취하는겨. 루이 더 차일드 라는 카롤린지언 의 게르만 루이 핏줄 끊길때까지. 바바리아 듀크는 이 다음에야 등장해 오토의 새잡이 하인리히 가 게르만 킹할때부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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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보소.의 앞못보는 루이.와 프리울리.의 베렝가르 가 다투면서 이어 황제들 하고, 40년 자리 비고, 서기 962년.에 작센의 오토1세.가 황제등장하면서 정리가 좀 되는거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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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nulf (birth unknown; died 14 July 937), also known as the Bad (Germander Schlimme) or the Evil (der Böse), a member of the Luitpolding dynasty, held the title of a Duke of Bavaria from about 907 until his death in 937.  

 

바바리아.는 루잇폴딩 조.의 아눌프.가 서기 919년 에 처음 듀크. 둑스.로 등장하는겨. 오토의 아빠 새잡이 하인리히.가 서기 919년에 게르만의 킹.이 되고 이때 아눌프.를 바바리아의 듀크.라고 해. 

 

 

게르만루이.가 아빠 경건루이한테. 열살전후 서기 817년.에 받은 타이틀이 바바리아의 킹.이야. 경건루이.는 삼형제 싸울때 바바리아 킹.으로 싸운겨. 베르됭 조약하고 게르만의 킹.이 된거고.

 

장남 카를로맨.에 바바리아의 킹.을 준거고. 차남 루이 영거.에게 작센 킹.을 처음 만들어준겨 이게. 그리고 작센.에는 카운트.나 듀크.를 둔거야. 작센의 첫 카운트.인 리우돌프.는 게르만 루이.가 임명한 사람이야. 이건 베르됭 조약 843년 즈음 이라고 봐야해. 작센은 저때 공식적으로 첫 더치.든 하튼 봉건영주가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겨.

 

바바리아.는 서기 919년에야 등장하는겨. 작센이후 70년 정도 지나서. 이 바바리아.는 창업자 게르만루이.의 타이틀인 바바리아 킹.이었고. 이 아들 삼형제가 23년간에 바로 카린티아의 아눌프.에 루이 차일드.에 이어서리, 919년에 듀크.가 등장하는겨. 

 

작센과 바바리아.가 이후 황제가 오토 조. 살리안 조.로 4대씩 할때. 이 줄기대로 저 각각에 오토 조 살리안 조.의 공작들이 갈리고, 호헨슈타우펜이 황제할때, 겔피들이 바바리아 작센을 다 쥐었다가 쫓겨난거야 작센과 바바리아에서.

 

 

작센.은 저 이후로, 아스카니아의 곰 알베르트.가 받았다 뺏겼다 다시 받고. 이게 자잘하게 쪼개지는겨. 저 쪼개진 아스카니아 가문의 작센들 중 하나인 작센-비텐베르크 가 베틴가문이 받고 이게 또 어니스트 알베르트 로 쪼개지고. 선제후권 있던 어니스트 는 선제후권을 알베르트 쪽에 뺏기고 더더 쪼개지고, 알베르트쪽 작센도 더더더 쪼개지고. 이전 아스카이나 가문에 있던 작센 들도 엘베강 하류에서 더더더더더 쪼개지고.

 

이놈의 작센은 걍 조각조각 쪼개지는겨 이게. 이 작센.이 신성로마제국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해결능력이 없어지는거야. 저게 지금 세개의 작센 주.로 작센이 음청나 보이지만, 전혀 실속이 없어 작센 이란 이름이.

 

오히려 이 바바리아는 달리 가. 똑같은 시기인 저 겔피 들 쫓겨날때, 여긴 비텔스바흐 가문이 받아. 서기 1180년.

 

First partition, 1253–1340 

Second partition 1349–1503 

 

이 바바리아.는 서기 1253-1503년. 250년 동안만 고지대 저지대로만 쪼개졌어. 중간에 9년은 합쳤다가 다시 쪼개진겨. 이들은 분열되도 크게 두개로 분열되었다가 다시 합한겨. 그리고 이게 1918년 1차대전까지 온겨 이 바바리아는. 

 

작센 쪼개진건 저건 수십여개로 이름을 일일이 나열할 수가 없어 저게. 쪼개진 애들 모두가 공작 타이틀이야. 공작이란 타이틀이 이게 의미가 없는겨. 걍 읍면장도 공작이야 뒤로 갈수록. 그래서 문학책 읽을때 공작 이니 공작 부인이 그게 무게가 없는겨. 오히려 백작에게 절절 매는게 공작이야 유럽 문학에서. 

 

Upper Bavaria (GermanOberbayernAustro-BavarianObabayern) is one of the seven administrative districts of BavariaGermany

 

Lower Bavaria (GermanNiederbayern) is one of the seven administrative regions of BavariaGermany, located in the east of the state.  

 

250년 간 분리되었을때도 두 개야. 고지대 저지대. 고지대.가 뮌헨.이고 저지대가 란트슈트 Landshut. 지도에서 뮌헨 과 슈트라우빙 Straubing 중간 지역이야. 뉘른베르크 라는 지금 큰 도시는 바바리아의 북쪽 마크였어. 이게 자유도시가 된거고. 이 바바리아가 나중에 저 프랑코니아 지역까지 다 먹은 겨.

 

250년 분열때 저 안에서 몇개들로 쪼개졌지만, 이게 서기 1503년.에 뮌헨 라인이 저걸 다시 다 합친겨.

 

바비리아가 루이 게르만이 어릴때 817년 바바리아의 킹.부터 919년에 듀크.를 두는거지만. 이때는 잉골슈타트 레겐스부르크 중심의 다뉴브강 근처여. 요게 좀더 확장되서 뮌헨까지 가는거고 북쪽에 뉘른베르크.를 마크령으로 두지만. 지금 바바리아의 반 정도걸랑. 여기가 이전에는

 

Garibald I (also GarivaldLatinGaribaldus; born 540) was Duke (or King) of Bavaria from 555 until 591.[1] He was the head of the Agilolfings, and the ancestor of the Bavarian dynasty that ruled the Kingdom of the Lombards.  

 

클로비스1세의  손자 대에 바바리아의 가리발트.가 처음 보이걸랑. 이때는 킹이야. 프랑크에 하미지를 하는 듯한 듀크지만. 저이후 바바리아.는 1300년 이상 하나인거야. 중간 250년 잠깐 둘로 쪼개지고 다시 합한. 비텔스바흐. 이전에 여러 조들이 갈렸지만 이후 9백년이 비텔스바흐가 중심을 잡은겨 여긴.

 

다른 한쪽이, 곰 알베르트.의 아스카니아 가문이 만든 브란덴부르크.야. 즉 저 겔피 기벨리니 싸울때 사자공 헨리의 상대 곰 알베르트.는 올라가서 브란덴부르크.를 만들고, 이게 조 가 갈리지만 하나로 죽가서 호헨졸레른 가문이 프러시아와 합치면서 위에를 묶은겨 얘들은. 그리고 그 힘으로 얘들이 통일하는거고. 할때 이전 무게중심은 1300년을 아래에서 이 바바리아가 잡아준겨.

 

Berthold, Margrave in Bavaria (died 980), was the ancestor of Otto I, Count of Scheyern (died 1072), whose third son Otto II, Count of Scheyern acquired the castle of Wittelsbach (near Aichach). The Counts of Scheyern left Scheyern Castle (constructed around 940) in 1119 for Wittelsbach Castle and the former was given to monks to establish Scheyern Abbey.  

 

비텔스바흐 의 시조.가 버톨트. 서기 980년 에 죽었는데. 마크그라프 였다는거지. 샤이언 Scheyern 의 카운트.가 자식이고. 이 샤이언 백작의 셋째 아들이 비텔스바흐 성.을 취해. 이 성이 아이히아흐 Aichach 근처야. 아우크스부르크 바로 오른쪽 위야. 샤이언.은 아이히아흐의 오른쪽 에 있어. 그리고 서기 1119년.에 이리 온겨 샤이언 성에서. 그러다 서기 1180년에 바바리아 공작.이 된거고. 조상님 이후 2백년 지난거야. 샤이언 백작 이후로는 120년 정도 지난겨. 이 비텔스바흐.가 족보가  쎈겨 이게. 

 

Radbot, Count of Klettgau (c. 985 – 1045), also known as Radbot of Klettgau, was Graf (Count) of the county of Klettgau on the High Rhine in Swabia. Radbot was one of the progenitors of the Habsburg dynasty, and he chose to name his fortress Habsburg.  

 

합스부르크 성.을 세운 사람이 켈렛가우 백작 라트봇.이야. 1020-30 년 요맘때 세운걸로 추정해. 이둘이 이것도  비슷해. 클렛가우.는 슈바벤과 스위스 접경인데 지금 독일땅이고. 합스부르크 성.은 스위스 아르가우.에 있는거고.

 

Otto V, Count of Wittelsbach (c. 1083 – 4 August 1156), also called Otto IV, Count of Scheyern, was the second son of Eckhard I, Count of Scheyern. Otto named himself Otto of Wittelsbach, after Wittelsbach Castle near Aichach. He served Henry V, Holy Roman Emperor, in his first Italian Expedition in 1110–1111. Emperor Henry V already addressed him as Otto Count of "Witlinesbac" in a document in 1115. From 1120 onwards, he was Count palatine of Bavaria.   

 

비텔스바흐 성으로 옮겨서 비텔스바흐 가문 시작인 직접조상이 오토5세 백작이야. 이사람이 바바리아의 카운트 팔라틴.이야. 즉 바바리아의 권력이 된겨. 하인리히 5세의 오른팔이여 이사람이. 

 

Duke Otto I was probably born at Kelheim, the son of Count Palatine Otto IV of Wittelsbach and Heilika of Pettendorf-Lengenfeld, a grandson of the Hohenstaufen duke Frederick I of Swabia.  

 

아들이 오토1세 바바리아 공작.이야. 1180년에 공작이 되는겨. 이사람은 호헨슈타우펜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1세.와 친척간인데. 저 위키영어가 애매한데 저게 아니고. 슈바벤 프리1세 공작.의 첫째가 프리2세 슈바벤공작.이고 이 아들이 프리드리히1세 황제고. 둘째가 콘라트 게르만 킹.이고 죽어서 조카가 황제가 되는거고. 딸이 Heilika 하일리카.야. 이 여자의 손녀.가 오토5세 백작이랑 결혼해서 오토1세 공작.을 낳는겨. 촌수가 밀려. 프리드리히1세 황제 조카뻘이야. 

 

As one of the best knights in the employ of Emperor Frederick Barbarossa in 1155 he had prevented a defeat of the Emperor near Verona, where the army caravan was ambushed on the way back to Germany after the coronation at Rome. In the Dominium mundi conflict between emperor and pope culminating at the 1157 Reichstag of Besançon (Bisanz), fiery Otto could only be kept from smiting the papal legate Cardinal Rolando Bandinelli with his battleaxe by the personal intervention of Frederick.  

 

프리드리히1세.가 대관식하고 돌아오는 길 베로나 에서 습격당할때 막아준겨. 이미 1122년 보름스 협약으로 교황 세상 된거걸랑. 만만한게 황제고, 베로나 롬바르디아 리그 나오기 직전이야. 이젠 세속에서 황제에 반기를 드는거고. 황제는 대관식하러 로마가서 구분고분 교황 말 안듣는 애들 쳐주겠다 약속해주고 대관식 받고. 

 

서기 1157년.에 브장송에서 다이어트를 하는데. 도미니움 문디. 세상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 라는 세속권력에 대한 문제여 저게. 교황이  황제 위에서 세상을 지배해야 겠단 거걸랑. 이에 오토 가 열받아서 그 교황 특사 추기경을 도끼로 쳐 죽일라는걸 프리드리히 1세 황제가 말렸다는겨 ㅋㅋㅋ. 

 

그러다가 1180년에 바바리아 공작.을 주는겨. 사자공 헨리한테 다시 뺏아서. 이게 9백년 이상을 온거야 1차대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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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텔스바흐.가 합스부르크.와 함께 로마 카톨릭의 대변이 되는겨. 그래서, 바바리아의 막시밀리언1세의 아빠 빌헬름때 여기가 카톨릭 진영의 마녀사냥을 했던거고. 

 

30년 전쟁 중인 1623년.에 선제후 권한을 받아. 라인 팔라틴의 프리드리히5세.가 패하고, 짐먼가문의 라인팔라틴을 비텔스바흐.가 갖고 오는겨. 짐먼가문도 비텔스바흐.가문이야

 

라인팔라틴 선제후권을, 임자인 프리드리히5세가 백산전투 패하고 망명 중에 저걸 뺏아온겨. 이사람은 이후 9년 후에 죽는거고.

 

Charles Louis, (GermanKarl I. Ludwig), Elector Palatine KG (22 December 1617 – 28 August 1680) was the second son of Frederick V of the Palatinate, the "Winter King" of Bohemia, and of Elizabeth Stuart, Queen of Bohemia and sister of Charles I of England

 

라인팔라틴 겨울왕의 장남이 카를 루트비히, 샤를 루이.인데, 아빠가 1632년에 죽어. 선제후권을 뺏겼어. 엄마는 헤이그에 가있는겨, 샤를 루이 포함 자식들이 졸 많아. 이 애들이 외삼촌 찰스1세의 런던에 있는겨 30년 전쟁 와중에. 이때 잉글랜드에서는 찰스1세의 영국 내전이 막 시작할때야. 카톨릭 복원하려는. 

 

저때 팔리어먼트 라운드헤드 라는 원정당.은 이게 딱히 자기들이 올릴 군주.가 없걸랑. 찰스1세의 아들 찰스2세도 카톨릭이고. 이때 팔리어먼트가 내세울 인간을 이 샤를 루이.로 찍는거야. 선제후권 잃은 라인팔츠그라프.를. 동생들은 찰스편에 선거고. 샤를 루이.도 팔리어먼트.가 계속 손짓하는겨. 

 

Although Charles Louis was involved in the early stages of the Civil War with his uncle, he was mistrusted for his parliamentary sympathies, and soon returned to his mother in The Hague. There he distanced himself from the royalist (Cavalier) cause in the Civil War, fearing that Charles would sell him out for Spanish support.  

In 1644, Charles Louis returned to England at the invitation of Parliament. He took up residence in the Palace of Whitehall and took the Solemn League and Covenant, even though his brothers, Rupert and Maurice, were Royalist generals.

 

샤를 루이.가 의회 쪽이 진정성이 있는건가 의심해대고, 런던 갔다가 다시 헤이그로 가고, 이때 엄마는 네덜란드쪽에 피신해있던겨. 그러다가 다시 런던 의회에서 얘를 부르는겨. 내전 중에. 

 

잉글랜드 찰스1세.는 엄마보다 네살 아래인 외삼촌이야. 얘가 외삼촌 자리를 넘보는겨 저 내전 중에. 찰스 1세가 이걸 알고 당연히 얠 싫어하게 되고, 얜 삼촌이 자기를 스페인에 팔아넘길까 만나기 무서워하고. 그러다가 찰스1세.가 잡혀, 이때 둘이 만나, 삼촌은 화를 내고. 찰스1세 목짜르는 처형장면도 얘가 다 보는겨. 쇼킹 먹고. 이미 팔리어먼트.의 올리버 크롬웰 세상이야. 얘가 뭔 킹을 옹립하겠어. 얜 저 이후 아일랜드 가서 학살하고 스콧 쳐들어가서 찰스2세 잡으려 하는거고. 그러다가 지가 프로텍터. 호국경 이란거 하면서 킹행세 하는거지. 뒈지고 역시나 자식 물려받는거고. 역사책에선 오잉 군주제를 엎은 위대한 혁명가  하는거고. 아일랜드 수십만 학살 한 건 눈딱 감고. 하튼 이 사가 들이란게 참 드러운 이들이여 이게. 저 올리버 크롬웰은 개머놈의 머중에 그야말로 머걸랑 저건. 

 

진보랍시고 떠받들여지는 모든 인간들 보면, 다  학살꾼이고 인간들  죽인애들이 쟤들의 우상이고 스승이야. 참 골때리는건데 저게. 위대한 북조선 위대한 중국 저 숭배질 하는 저게 다 똑같은 이들이야. 왜냐면 자기들이 모시는 분들의 학살은, 사람 죽인게 아니라 적폐를 죽인거걸랑. ㅋㅋㅋ. 위대하신 분들이란 거지. 

 

The execution of Charles I by beheading occurred on Tuesday 30 January 1649 

 

찰스1세 목짜르기가 서기 1649년 1월 30일 이야. 

 

Charles Louis was still in England in October 1648 when the Peace of Westphalia restored the Lower Palatinate to him[3] (the Upper Palatinate, to his great disappointment, remained under the Elector of Bavaria). He remained in England long enough to see the execution of his uncle in January 1649, which appears to have come as a shock. The two had not reconciled prior to the King's death – Charles refused to see his nephew before his execution.  

 

30년 전쟁 마무리 조약 베스트팔렌 조약이 1648년.이야 이때 라인 팔츠그라프.의 선제후권.을 원래의 저 짐먼가문 에게 다시 주는겨. 1623년 때 빼앗은 선제후권을. 라인 팔라틴.의 영지를 다시 주는겨 죽은 프리드리히5세.의 자식에게. 그래서 미망인인 엘리자벳.은 다시 여길 오는거야 헤이그에서. 아들 샤를루이.가 선제후권 갖은 팔라틴 백작.이 된겨. 헌데 다 준게 아냐. 어퍼 팔라틴.이라는 고지대 라인팔라틴 만 주는겨. 바바리아의 비텔스바흐 가 서운할거 잖아. 이들에겐 저지대 팔라틴과 함께 선제후권을 그대로 그냥 줘. 1623년에 받은. 즉 기존 7개 에서 하나가 더 추가가 된거야. 

 

라인 팔라틴 전제후권.의 영지가 라인강 마인츠 아래 주변 더하기 마인강 상류걸랑. 뚝 떨어져서. 여기가 이때 나뉜거야.

지금 바바리아의 행정구역이 고지대 프랑코니아 아래에 어퍼 팔라틴.이 있어. 여기여 이게. 여길 고지대 팔라틴 으로 바바리아 공작 비텔스바흐.가 이때 갖고 오면서 선제후권을 잡는겨. 샤를 루이가 쥐는 선제후 라인팔라틴.은 이제 오직 라인강 중상류 부근일뿐이야. 요걸 저지대 팔라틴.이라 해.

 

이게 결국 카톨릭 프로테스탄트.가 다이어트 에서도 지분을 갖아야 한다는 논리야. 라인팔츠그라프는 프로테스탄트여. 이걸 뺏으면 안된다는거고. 카톨릭 비텔스바흐 바바리아가 하나 더 추가가 돼. 곧 바로 하노버 의 선제후권이 생기는겨. 여긴 프로테스탄트로. 

 

저 샤를 루이.가 잉글랜드 스콧 아일랜드 킹자리에 욕심이 있던겨 이게. 삼촌 잡히고 만나려 해. 아마 자기가 킹 될 줄 알았을꺼야. 찰스1세가 조카 면담을 거부하고 처형을 당해. 얜 이때 라인팔츠 그라프.를 다시 받은 걸 알아. 베스트팔렌 조약이 끝났어. 그래도 얜 런던에 있는겨. 혹시나 나 킹 시켜주는거 아니까? 안돌아가고 끝까지 남아서 저 처형 장면을 보는겨 자기 삼촌 목짤리는걸. 그걸 목격하고 쇼킹 먹고, 그제서야 돌아오는거야. 아 저런 이들이 나를 과연 킹 시켜줄까? 킹 시켜주곤 내목도 저리 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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