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종족주의’ 비판 일본 학자 “조선인이 그렇게 가난해졌는데 수탈·착취 없었다니”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911267.html
https://youtu.be/SsT0yBiusrU

https://youtu.be/XrBAUKQerJ0



어제 나온 한겨레 기사인데.

저게 그나마 객관적인 당시 내용으로 보면 돼. 일본애가 쓴거걸랑. 한겨레님께서도 지지하는.

이런거에 정력을 낭비하기가 싫은데 말이지.

저 내용을 차근차근히 볼 필요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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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아무리 반발하고 비판해도 ‘나는 학자의 양심에 따른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어쨌든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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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맞지 ㅋㅋㅋ. 이나라에서 이 조선오백년을 지폐와 동전과 청동덩어리로 여전히 숭배하는 나라에서 조선을 욕하는 건 대단한 용기야 교수가 저런건. 조선을 비판하고 조선인.을 폄하하는 듯 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을 하고 기소를 하고 재판을 받는 나라거든 여긴. 여긴 역사.를 말해도 역사를 이야기해도 입에 재갈을 물리는 땅이야. 여긴 문명이 아냐.

이 조선 오백년의 연장선인 민족놀이의 땅이란 정말 이상한 땅이걸랑 이게.

그래서. 중국과 일본이 여길 조선반도.라 해도 아무말 안하는거걸랑. 한국어.가 아냐. 쟤들에겐 조선어야 조선어. 이전 썰했듯이. 세상에 우리말이 조선어 라니까? 저들이 우리말을 조선어. 라고 표준으로 써 이걸. 여기에 대해 아무런 말을 안해 절대로. 왜? 여긴 조선이걸랑 여전히.

독도 가 어디땅이니 일본해가 동해니 저쩌고 전에. 저딴 문제인식 자체가 전혀 없는겨 이게.

왜냐면. 조선이 아주 위대하걸랑 이 민족 정의 이념 놀이 하는애들은. 그래서 북조선에 환장을 하는겨. 저기가 유교 사회주의 란 타이틀이걸랑. 조선의 유교. 그리고 사회주의. 합쳐야 해 그러면 과거 조선 위대한 다이너스티가 되걸랑.




“그들 주장에서 받아들일 부분도 분명히 있다. 일제 때 무력을 동원한 수탈은 없었다는 점이 그런 것이다. 토지조사나 산미증식(쌀 생산 확대) 사업 때 조선인들에게 강제적으로 땅이나 쌀을 뺏은 적은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료로 볼 때 맞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조선왕조가 소유하던 토지를 일제가 압수해서 동양척식회사에 넘긴 뒤 소작인들이 소작권을 보호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농민들에게 땅을 그냥 압수한 것은 없었다. 일본인 지주들이 가장 많이 토지를 확보한 때는 1926년에서 1935년 사이인데 그때는 토지조사 사업과는 상관이 없다. 쌀도 태평양전쟁 시기에 강제 공출이 이뤄진 때를 제외하고는 강제적으로 처분하게 하거나 빼앗아 간 적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학자들의 연구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 의문은 수탈이나 착취가 없었는데 왜 조선인들이 그렇게 가난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일제 때 한국에 온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난하거나 직업이 없는 실업자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 부자가 됐다. 조선인은 더 가난해졌는데 일본인은 거의 전원이 큰 부자가 됐다는 게 너무 부자연스럽고 이상하지 않나. 그런 수수께끼를 공부를 통해 나름대로 풀었다. 결국 수탈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 근대화론은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저 사람의 주장.는 저 첫문단에서 다 나와. 일본을 비판하고 조선을 위대하다?라고 생각하는 저 일본인 학자.가 연구한 팩트.는 사실로 보면 되겄지?

일제.가 그냥 땅을 압수한 것은 없대. 일본인 지주들이 땅많이 가진건 토지조사사업과도 상관이 없대. 쌀도 전쟁 전에 강제 공출한거 외엔 강제적 처분이나 뺏은 적이 없대. 저 팩트는 맞대.

헌데 이사람의 의문은. 조선인은 가난해졌고, 일본인은 부자가 되었다. 원래 일본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실업자가 조선에 와서 다 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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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로마의 타키투스. 식의 역사 서술이걸랑. 팩트들은 있는데로 다 써. 그리곤 그걸 해석하는 주관을 실어. 팩트는 저래서 참 나뽀. 그리고 말야. 쟤가 주관적으로 판단한 "참 나뽀" 요걸 팩트로 해석을 하는거야 대부분 사가들이.

저걸 구분해서 보는 능력.이 인텔리전스.라는 지성이야.

intellego. 라틴어 인텔레고.여. inter 더하기 lego 레고. 사이에서 고르는겨. 추즈 하고 실렉트 하는겨.
언더스탠드. 그 바닥에 있는거.를 보는거야. 진짜를. 그게 이해 하는거야. 이 라는 하늘이 만든 잣대를 해 그 실타래를 푸는겨. 그 바닥을 보는거야 이해한다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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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일병 걸린 조선 민족 들이 저게 가장 안돼. 얘들은 인텔리전스.가 전혀 없어. 얘들은 지능.이란게 없어 이게.
모든건 저걸 구분해서 볼 능력이 지능이 안되는것에 있는데.

쟤도 하는말이. 저기에 감정이 섞이걸랑. 타키투스 처럼. 조선인들은 더 가난해지고 가난했던 일본인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대 조선에 와서.

당연히 일본이 수탈이든 착취든 했겄지. 지들이 먹은 땅인데. 세상에 식민지에서 자기들이 전쟁하고 처먹은 땅에서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갖고 가는 거지 안 갖고 가면 그게 이상한거지 그게.

저 일본애는, 어릴때부터 교육을 받기를, 일본인이 아주 위대한겨. 세상에서 가장 선한거고. 감히 유럽과 전쟁을 했걸랑. 러시아를 이겼어 쟤들이. 이 자부심은 엄청난거걸랑 저때. 이건 상상도 못한거야 그걸 관전하는 유럽애들도. 얘는 저 환경에서 저런 교육을 받고 자란거야.

헌데 커서 다시 보니까. 그만큼 대단하고 선하고 위대한 일본은 아니었다는거지.

당연히 맞지 저게. ㅋㅋㅋ. 그게 저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런 감정의 말이 쟤 인터뷰에 있어.

일본애들은 비옥한 초승달에 그리스 로마 없이도 서기 1008년에 겐지모노카타리를 쓴 애들이야. 저기에 고려 사신이야기가 나오걸랑. 고려 도 분명히 저런 수준의 리터러쳐가 있었음에 틀림없어. 다 지워서 그렇지. 조선이. 조선은 생각을 못하게 했걸랑. 유교 외의 서적을 갖고 있으면 목짤라 죽여. 실록에 그대로 나와 그게. 저때 다 태웠어. 이 조선이. 그래서 저 핏줄로 자기 욕 하면 상대가 적폐라며 아가리를 막는거야 저 핏줄이. 조선은 자기 잣대 외를 표현하면 죽여.

참 싄기한겨 저 극동 의 섬에서 저런 리터러쳐 가 나온게. 단지 섬 이란 특수성.으로도 설명을 못해. 인도네시아의 섬들은 그럼? 대만 필리핀은 그럼? 여긴 역사 자체가 없었걸랑.

저건 숙신 예맥 부여 고구려 의 사람들이 저기 가서 섞여서 만든겨 일본이란 나라는. 고려 시대도 저길 간거고. 고려 몽고족 와서리 최씨들은 강화도로 가서 한무당짓 불경 팔때 반도본토는 걍 지옥 그자체야 저게. 이때도 일본으로 넘어가는거고.


저 일본이란 나라는 내몽고 동북에서 시작한. 흥륭와 문화. 그리고 이다음의 신락. 조보구. 를 이은 홍산 문화.에서 숙신.이 나오고 이게 장백산맥 북쪽 기슭에서 읍루 물길 말갈 여진 만주 족을 낳은거고. 숙신의 다른 애들이 왼쪽에 정착해서 예맥.이 되고 여기서 부여.가 나오고 고구려 동예 옥저 백제.가 나오고 말야.

저 후예들이 반도에서 망해서 다들 저 바다건너 일본 섬으로 간겨 저게. 그래서 나오는 기사들이 고구려 양식의 묘가 나온다느니 하는거걸랑. 저때도 일부는 발해 로 가는거고. 거기서 바다건너 저리로 가는겨. 백제 망해서 저리 가는거고. 신라 망하고 저리가고. 고려때 몽고군 쳐들어와서 방치될때 저리 가는거고. 조선때 그 수많은 민들이 다 저리 가는겨 저게. 피해서 가는겨 저 점점 조선화된 은둔의 킹덤을 피해서.

일본 이란 섬나라는 그래서 이게 그나마 동양의 유럽판이 된거걸랑. 반도에 비하면 매우 자유로운겨 저게.

저건 대단한 이야기가 아냐. 쟤들도 알아 저런걸. 머 지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겠니? 머 저딴걸 충격! 쇼킹! 일본은 알고보니 한반도의 민족이 만든 나라!! 참 나 코메디도.

쟤들도 다 알아 저건.

그래도 후지걸랑. 유럽의 역사에 비하면 그냥 똥이야 그래봤자. 저게 포르투갈 애들 안토니오 다 모타.와 페이쇼토.가 종자도에 닿는 1543년. 이후 뻥쟁이 핀토.가 사비에르랑 동행해서 다이묘들 땅 돌아다니면서 얘들은 날개를 달기 시작한거걸랑.

그리고 1582년에 열두살 짜리 꼬마들 네명.이 유럽엘 다녀와 덴쇼소년사절단. 포르투갈 리스본.에 바닷길로 가서 바르셀로나까지 육로로 가고 거기서 바다건너 피사.로 가서 로마를 가고 돌아와. 열두살짜리 애들이 스무살이 되어서 돌아와. 유럽 신문에도 나 저게 당시.

쟤들은 저걸 한 애들이야 꼬마애들을 다이묘 영주.가 보낸겨 권력이.


저이후 300년간의 공부가 되었으므로 메이지시대.를 받아들일 수가 있었어 쟤들은.

그래도 후지지. 민들이 시티즌.의 이름으로 이제 막 갑자기 소학교를 강제로 만들게 하고 거기 다들 가라 하고. 한낮 민들이 갑자기 시민 자격이 되는겨. 이에 반발한 사무라이 무사애들이 어이가 없어하고 얘들이 사족반란을 하고 이걸 저 갓 소학교 다니고 글자를 배우고 유럽을 갓 익힌 저 민들.이 사무라이 들의 지배층을 조진게 사족반란이걸랑. 절정이 세이난 전쟁이야. 아주 비참해 이 내전은.

쟤들은 저때 시작한겨.

당연히 그 바닥에. 나가사키 인공섬에서만 숨통열어 배운거걸랑 저이후. 삼백년만에 제대로 하는겨. 리더 애들 조차도 막 유학가서 진짜를 몸으로 습득하는거고. 하물며 말야 농민 무당 들 중심의 민들이야 오죽하겄냐.

메이지 시대.는 완전히 개판 오분전이야 저게. 그래도 저걸 한거야. 쟤들이 메이지때 선거를 하는거고. 메이지의 정권애들이 저걸 추진하는겨 선거를. 당연히 관권선거에 폭력선거에 개판이 되고 저따위지랄이 우리네는 백년후에 하는거고 ㅋㅋㅋ. 쟤들은 민도.가 낮은걸 알았어. 그래도 한겨 저걸. 저 메이지때.


저 일본 학자 아이는. 저런 시대를 읽는 능력이 안돼. 저런걸 모르고 최고 위대한 재팬인줄 알았걸랑.

당시 일본이 위대하면 얼마나 위대하겄니. 그래봤자 유럽 애들 의 문명 수준에 되겠니 쟤들이.

쟤들은 저런걸 싹 가리고 오직 배워서 이긴 역사만 가르친거겠지. 거기에 쟤가 실망을 했다는거지. 그정도는 아니구나.

당연히 그정도는 아니지. 저걸 공부하다가 자각을 한겨 저 일본학자는.

저런애들이 일본에서는 자학사관 소리를 듣겠지. 왜 자학을 하냐고.

그리고 저런애들이 조선민족 애들에겐 일본내의 올바른 지성. 일본의 양심 소리를 듣는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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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이 더 가난해졌어? 그럼 그 이전엔 그만큼 안 가난했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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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Griffith London (born John Griffith Chaney;[1] January 12, 1876 – November 22, 1916)[2][3][4][5] was an American novelist, journalist, and social activist. A pioneer in the world of commercial magazine fiction, he was one of the first writers to become a worldwide celebrity and earn a large fortune from writing. He was also an innovator in the genre that would later become known as science fiction.[6]

존 그리피뜨 런던. 어릴땐 존 그리피뜨 체이니. 존 런던. 해야 하는데 잭 런던.이야. Jack 이 잭 이란 말이 근대에 영어권에서 존.이란 이름의 아이들의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한거걸랑. 그러다 이게 진짜 이름이 되어버려. 저 사람은 잭 런던.으로 알려져.

서기 1876년 생이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서 죽을때 여기 맞은편 위의 도시에서 죽었는데. 나이 40.에.

남북전쟁.이 끝나고 15년 후에 태어났어. 저널리스트 였고 사회주의자 였어. 글쓰기로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한 작가군 들 중의 한사람이야. 즉 이전 19세기 까지는 글쓰기로 돈벌이가 전혀 안된겨 이게. 마르틴 루터.도 성서번역으로 베스트 셀러작가 였지만, 수녀였던 마누라가 죽을때까지 허드렛 일 했던 이유고. 그림쟁이들 역시나 마찬가지야. 화가들이 코트의 후원으로 먹고 살수 있었던거지 코트를 벗어나서 자기작품으로 입에 풀칠하는건 20세기 되어서야 가능했던겨. 음악가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베토벤 모차르트.의 작품들이 우수수히 나올 수 밖에 없었어. 먹고 살라고. 그래서 유럽 문명이 압도적이게 된거야. 패이트론 체제에서 벗어나면서 예술도 도약을 한거야 저게.

잭런던.은 문학계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야. 에스에프.에서 한획을 그었다고도 하고. 소위 말많은 자연주의 문학 네추럴러리즘.에서 잭런던을 빼놓을 수가 없어.

이사람의 소설.이 삼십개 가까이가 되고, 단편소설은 아마 백가지 정도 될듯한데. 에세이들도 이삼십개 정리가 되고, 신문기자 였걸랑. 여기 글들이 나중 에세이로 모아지는거고.

His most famous works include The Call of the Wild and White Fang, both set in the Klondike Gold Rush, as well as the short stories "To Build a Fire", "An Odyssey of the North", and "Love of Life". He also wrote about the South Pacific in stories such as "The Pearls of Parlay" and "The Heathen".

가장 유명한게 더 콜 오브 더 와일드. 와 화이트 팽. 이야. 야성의 부름.은 번역이 되었고. 화이트 팽.은 안된듯 한데. 아이언 힐.이라는 강철군화.가 번역이 되어있고. 야성의 부름.은 썰매 끄는 개.를 의인화한거고. 화이트팽.은 늑대개 이야기고.

In 1889, London began working 12 to 18 hours a day at Hickmott's Cannery. Seeking a way out, he borrowed money from his foster mother Virginia Prentiss, bought the sloop Razzle-Dazzle from an oyster pirate named French Frank, and became an oyster pirate himself.

1889년.이면 13세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람은 돈벌이를 한겨 어릴때. 통조림 공장에서. 죙일 일하고. 그러다 자기 흑인 양엄마.에서 돈을 빌려서 보트.를 사서 바다 굴 해적질하는 사람한테서. 그리고는 굴.을 몰래 훔치는 일을 한겨. 이건 잭런던.이 만든 단어야 굴 해적.

친엄마.가 체이니.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는지는 몰라 하튼 잭런던을 낳고, 헤어져서리 꼬마를 엄마가 자기 흑인노예여자에게 맡겨. 잭은 흑인엄마한테서 큰거야. 그리곤 친엄마가 런던.씨랑 결혼해서 체이니.에서 런던.으로 성이 바뀌고 간거걸랑. 그래도 집이 넉넉치 않아.

체이니 라는 생부.는 점성술가 인듯 하고. 엄마는 음악선생과외하다 또 이 한무당짓에 빠져. 인디안들 영혼 접하는 놀이에. 아빠가 얠 낙태하려 했다느니 하고 원래 친부모가 서로 사이가 안좋았고. 그러다 엄마가 자살시도 한 기사에서 생부.를 알게되서 연락을 하게되었는데 오히려 생부 체이니.는 니도 불쌍하지만 내가 더불쌍해 흑흑 해대고.



London desperately wanted to attend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located in Berkeley. In 1896, after a summer of intense studying to pass certification exams, he was admitted. Financial circumstances forced him to leave in 1897 and he never graduated.

꼬마때 굴 도둑질.하다가 해안 경비대 일도 해. 그리곤 다시 고등학교를 간겨. 지가 돈을 벌고. 그리곤 근처 버클리에 대학을 들어가. 20세.에. 헌데 돈이 없어서. 21세에 그만두고. 학교는 그이상 못간거야. 얜 고졸이야 그래서.

He contributed a number of articles to the high school's magazine, The Aegis. His first published work was "Typhoon off the Coast of Japan", an account of his sailing experiences.

이사람이 고등학교 다니면서 학교 잡지.에 쓴 글이. 일본 해안의 태풍.이걸랑. 이사람이 바닷 굴 도둑질.하고 해안경비대 하고는 물범 물개 잡는 원양어선.을 탄거야 이게. 제노바의 콜럼버스.가 어릴때 바다에서 심부름꾼하듯이 한겨. 즉 이때 일본 도 다녀 온겨 그 근처를. 그리고 그 경험으로 고등학교 들어가서 글을 써.

단편소설 보이는게 1894년 부터야. 18세야. 얜 또래보다 늦게 들어간겨 하이스쿨을. 이때부터 글쓰기를 했던거야. 다른 애들보다 일찍 사회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하면서 글에 소질이 있는걸 자각을 해.

똑같이 저게 마크 트웨인.이었어. 마크 트웨인은 형따라 인쇄일을 하다가 미시시피강의 증기선 을 탄거고 캘리포니아가서 신문사 돈으로 세계여행을 해.

잭 런던.은 완전히 자기 힘으로 어릴때 부터 지낸겨. 돈이 없어 버클리를 나오고. 자기 매부인지 자형 따라서 골드러쉬를 가.

On July 12, 1897, London (age 21) and his sister's husband Captain Shepard sailed to join the Klondike Gold Rush. This was the setting for some of his first successful stories.

나이 21세.에 클론다이크. 에 여기에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이게 아래에 퍼진겨. 다음해 바로 간거야. 클론다이크.가 캐나다 유콘 Yukon 테리토리.야 서북쪽 끝. 조오온나 추워. 특히 한겨울에 간겨. 다들 영양실조에 잭런던은 괴혈병이 걸리고 잇몸이 망가지고 고생을 엄청해. 여기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정치적인 시각을 갖아 세상에. 그러면서 사회주의자.가 되지만. 왜냐면 워낙 없이 살았걸랑 꼬마때부터. 양엄마가 흑인노예였고. 흑인노예를 우리가 생각하듯 그리 생각하면 저런게 설명이 안되는겨 그래서.

세상은 돈.이야. 이걸 뼈저리게 알았어 어릴때부터. 저걸 자기가 글쓰기에 머리가 좋은걸 자각하고 글로 돈을 벌 생각을 해. 아 대단한 자각인거지. 자각이란건 정말 경험에서 나오는거지. 저기서 사회주의란건 지가 징징대지 말고 지가 스스로 벌어서 남들 주겠다는 건지.

그러면서 이인간이 돈벌이 글쓰기를 한겨. 저 클론다이크 골드러쉬.의 지독한 경험으로 나온 작품이 To build a Fire 1902 야. 잭런던 전문가들은 이 단편을 최고로 친대. 꼭 단편이니까 영어로 읽도록 해. 저런건 다 걍 있어 인터넷에 텍스트가.

저 경험으로 썰매끄는 개.나오는 야성의 부름.1903 이 나온거고.

그러면서 이 인간이 종군 기자가 된겨. 다음해 1904년 러일전쟁에. 이때 조선엘 들어오는겨. 만주땅 러일전 취재하려고.

London accepted an assignment of the San Francisco Examiner to cover the Russo-Japanese War in early 1904, arriving in Yokohama on January 25, 1904. He was arrested by Japanese authorities in Shimonoseki, but released through the intervention of American ambassador Lloyd Griscom. After travelling to Korea, he was again arrested by Japanese authorities for straying too close to the border with Manchuria without official permission, and was sent back to Seoul. Released again, London was permitted to travel with the Imperial Japanese Army to the border, and to observe the Battle of the Yalu.
London asked William Randolph Hearst, the owner of the San Francisco Examiner, to be allowed to transfer to the Imperial Russian Army, where he felt that restrictions on his reporting and his movements would be less severe. However, before this could be arranged, he was arrested for a third time in four months, this time for assaulting his Japanese assistants, whom he accused of stealing the fodder for his horse. Released through the personal intervention of President Theodore Roosevelt, London departed the front in June 1904.[35]

잭 런던.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라는 신문.의 우산으로 러일전쟁을 취재하러가. 요코하마에 1904년 1월.에 가서 시모노세키에서 체포가 되고, 미국 대사의 개입으로 풀려나서 코리아 로 들어가서 다시 체포가 돼 만주국경선에 허가 없이 갔다고. 그리곤 다시 서울로 와. 그리고는 일본군의 참관무관들 무리에 정식으로 들어간거야. 러일전쟁이 국제적인 측면에서 가장 호기심이 발동한 전쟁이야 저게. 증기선으로 전쟁하는게 이전에 있었지만 그야말로 제대로 된 화기의 증기선끼리 붙는건 저게 처음이걸랑 유럽과 아시아가. 저기에 유럽애들이 직접 무관 군인들을 일본에 보내서 해전도 참관하게 해. 저 전쟁 소식들이 바로바로 유럽에 타전되는거걸랑 저게. 그야말로 산업혁명의 산물이 제대로 쇼잉이 되는 무대였던거야 러일전쟁은. 모~든 유럽애들은 러시아에 당연히 베팅을 하는거고. 세상에 말이 안되지 극똥빠닥 미개한 나라가 어떻게 유럽애들도 벌벌떠는 러시아를 이겨. 저 러일전쟁의 결과는 정말 쇼킹한겨. 일본애들은 저때 나라의 운명을 걸은거야. 지면 노예가 되는겨. 203 고지전 여순 배틀은 그냥 자살하러 올라가는겨 저게. 그 소식이 일본 전역을 휩쓸고 다들 울음바다가 되었던거고. 오늘 망하나 내일 망하나 했던겨 저게. 저때 일본군인들이란건 과거에 농민 무당 상인 들이 시티즌이라는 국민 딱지를 사명감을 자부심을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달고서리 자기들 뒤에 국가 란게 있다는 처절한 사명감으로 저 러일전쟁에 임한거걸랑 사족 사무라이들을 다 조지고.

저걸 취재하는겨 잭런던이. 두번이나 일본한테 체포도 당하고. 정식 참관단에 끼어서 취재를 해.

그러다가 자기 담당 일본인을 줘팼나보지. 자기 말horse 의 사료를 훔쳐갔다고 열받아하면서. 어쨌거나 사람팼으니까 또 체포가 되고, 루스벨트.가 개입해서 풀려나서 6월달에 떠나. 즉 얜 초창기에만 있다가 진짜배기 러일전쟁을 못보고 돌아가. 발틱함대는 10월에 출발하걸랑. 여순항 공방전도 8월이나 되어 시작하고.

그리고는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경험을 해.

저때 1904년 1월에서 6월까지의 일본 과 조선.을 보고 나온 책이.

La Corée en feu. 라 코레 앙 푀. The Korea on fire 불 속의 코리아.여. 이게 영어판이 사라지고 번역한 불어판.만 남은거야


잭런던.이 딱히 러일전쟁 종군기.라고 쓸게 없는거야 이게. 만 6개월도 못가서 일본인 패고 대통령 빽으로 추방된거걸랑.

즉 저 말 사료.훔칠만한 수준인겨 아직 일본인들 이라는게. 잭 런던.의 주장이 맞다는 가정하에.

종군기 쓸게 없고, 유일하게 저때 쓴게 불어판, 코레 앙 푀. 라는 불 속의 코리아. 인거야. 저게 지금 아마존 중고판.에서 60유로 이상으로 거래가 되는 건데, 곱하기 천원만 하면 6만원이고.

저걸 번역한 게. 잭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 1904년 종군기. 로 번역되어 나왔걸랑.

구한말의 외국인들이 보는 시선은 모두 똑같아.

조선이란 곳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곳이다.

아프리카 흑인 동네도 여기보다 낫다.

세상에 이따위 나라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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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 님들이 가장 싫어하고 저주하고 외면하는게 구한말을 바라본 외국인들 이야기걸랑.

모두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편협한 시선 왜곡된 시선이란거야.

거짓말 이란건가? 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저 모든 외국인들이 상상으로 썼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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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은 이미 이름있는 글들을 쓴 28세의 청년으로 조선엘 온거야. 얘는 우월한 백인이 아냐. 흑인노예엄마 한테서 자라고 13세부터 굴도둑질하고 혼자 돈 벌어서 고등학교 들어가고 21세에 추운 유콘 땅에 금캐러간 아주 바닥바닥인생이었어 이사람은.

저런 청년이 아시아를 보고 쓴 글이야 저게. 어떻게 저런글을 백인우월주의 해댈 수 있냐 말이지. 쟤들은 그냥 자기가 본걸 그대로 쓴 것일 뿐이야 구한말 외국인들 글들은. 하멜 표류기 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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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건 우리네 사학과 나온. 이 사학과 출신. 국사학 출신 애들이 특히나 이념놀이에 미친 애들을 양산하걸랑. 이들이 조선사.를 빨아대고 찬양하고 위대한 민족 하걸랑.

왜냐면, 그래야 자기들이 먹고 살 수가 있는겨. 조선이 후져봐, 장사가 안되는겨 이게. 먹고 살아야 해. 당연히 자기 상품은 위대해야 하는거야. 세상에 이런 위대한 민족은 그 어디에도 없단다 하는거야 이게.

이나라 지성계만큼 썪고 썩은 집단은. 인류사에 있어본 적이 없어.

역사.는 자기들의 일기장의 종합으로만 봐야지, 외부인들이 바라본 역사.는 역사가 아니란거야 저들은.

그래서, 유럽사.는 역사 가 아닌거야. 한나라의 이야기를 주위 수십개 수백개의 영지의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보고 정리된 유럽 각각의 역사.는 역사가 아닌거지. 자기들 처럼 일기장 실록. 코트 기록에만 근거한 이야기가 제대로 된 역사서 란거지.


저들이 조선 이후로 학계와 언론계를 지배하는거야. 여전히 저런 그야말로 수준의 인간들 속에서 아이들이 커가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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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널려있는 잭런던의 이야기를 보자고.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716


저기글은 갖고 오기 구찮고. 극도로 편협한 잭런던의 조선 바라보기 라는 거지. ㅋㅋㅋ. 더 웃긴건. 대체 번역자는 왜 저런 글을 번역해서 냈을까? ㅋㅋㅋ 위대한 조선을 저리 편협하게 쓴 책을 내다니 너무나 어이없다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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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평민들의 그 내적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볼수 있어.

우리는, 현재, 저시대 우리 조상들의 마음들을, 파악해야 해.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당시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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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을 사진기 앞에 세워놓고 찍으려는데 신랑이 무서워서 울어.

저걸 저 작성자는 조선인이 겁많고 무책임하고 비겁하다고 잭런던이 썼다는게 내가 원본을 못봐서리 모르겠지만, 겁이 무지 많은겨 저게 사람들이. 그야말로 너무나 너무나 순박하고 순종적인 인간들이 된거야 민들이. 이건 하멜 표류기.의 하멜이 이미 썼던거야 230년 전에. 마음이 너무나 약해져서 자살들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하멜 때의 조선인들이었어. 저기에서 더 나약해진거야.

조선인들은 너무나 너무나 약해진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었던겨 구한말엔. 조선 오백년간 수많은 살육질. 광장에서 사람들 찢어죽이는 짓들. 대놓고 아이들 도 보게끔 하고. 그걸 저 이전에 헨리세비지랜더.가 쓰는겨. 정말 너무나 이상하고 기괴하다 란 감정으로.

세상에 저따위 나라가 어딨냐 말이지 이게.

“…양반의 허세가 무엇인지 알아봐야겠어. 관아로 가서 사또를 만나. 내가 2시까지 갈 것이라고 해. 날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내가 무척 화를 낼 것이라고 해….”

특히나 양반 이란 애들. 관료란 애들. 이 들이 웃긴겨. 잭런던의 글에서 비난의 대상은 저 공무원들이걸랑. 이사람은 민 들에 대해 머라그러는게 아냐. 저 양반들이라는 조선 의 정체성.의 중심인 저 권력에 대해 비난하는걱걸랑. 헌데 저걸 보는 민족 사학자 애들은 백인들이 양반 비난하는걸 자기 비난 하듯이 들리는겨.

저 사학자 들이 모두 조선 양반 핏줄인가?
저 사학자 들이 모두 조선 양반 핏줄인가?
저 사학자 들이 모두 조선 양반 핏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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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겁이 무척이나 많다.
행동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게으름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한 사회의 언어에서 어떤 단어의 존재는 그 단어에 대한 필요와 상응하는 법이다.
속도를 내야 된다는 필요성에 따라 조선말에는 적어도 스무 개의 단어가 만들어졌는데,
그것들 중 몇 개를 인용한다면 ‘바삐’, ‘얼른’, ‘속히’, ‘얼핏’, ‘급히’, ‘냉큼’, ‘빨리’, ‘어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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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쟤 잘본겨 저거. 언어에 모든 그 집단무의식의 것들과 시대가 드러나는 거걸랑. 속도.를 나타내는 단어가 스무개 정도라는겨. 그만큼 속도를 안내니 저런 단어 워드들이 막막 생겨났다는거지.

조선오백년이.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봐도. 상업을 죽인 공업을 죽인 왕조걸랑. 기술 전문성 이 필요가 없어. 무얼 만들 의욕이 없어. 무슨 일을 할 필요가 없어. 댓가가 없걸랑. 양반들이 다 그냥 공짜로 취하걸랑. 사회주의걸랑.

그러니 자연스레 그게 민들의 감정과 마음으로 들어가서, 안하게 될 수 밖에 없는거야. 저런 말들이 그래서 생기는거야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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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계층은 음모를 통해 사적(私的) 이익 추구하는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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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확한 지적이지. 이 양반이란애들이 적폐놀이로 오백년을 보내걸랑. 음모를 꾸며야해. 음모론에 환장하는 애들을 낳은겨. 이게 지금 음모론 에 미친 애가 공중파 스타가 된거고, 저 이빨들이 검찰 음모때문에 증거를 복사하러 변장해서 자기 컴퓨터를 취하려 한다는거고. 저 이념놀이 집단은 별거 없어. 역시나 자기들 몇몇만의 이익 추구야. 잭런던 통찰력이 엄청난거지.


조선인은 의지와 진취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구상의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비능률적인 민족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뛰어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짐을 지는 능력이다.
그들은 짐 끄는 동물처럼 완벽하게 일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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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진취성은 없어. 왜냐면 의지 자체.를 박멸한 오백년이걸랑. 허나 단순하게 시키는 일은 잘한다는겨 저게.

숙신 예맥의 후예들이 저렇게 된거야. 조선 오백년 식민지 의 기간동안.

숙신 예맥.의 사람들이 조선의 식민지 동안 비참한 노예 수준이 된겨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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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당시 원산에 상륙하여 평양 전투를 벌였던 일본군 보병 22연대의 하마모토(濱本利三) 소위는
자신이 쓴 ‘일청전쟁 종군비록(秘錄)’에서 원산 상륙 당시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더욱 놀란 것은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불결하다는 것이다. 도로는 쓰레기와 인분으로 넘쳐나고,
불결함의 극치인 돼지는 기세가 올라 곁눈질로 사람들을 노려보면서 도로를 활보한다.
악취가 코를 찔러 구토가 나올 지경이다.”

“서양인이 볼 때는 도로라고 하기에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웅덩이의 연속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정말 왕도(王道)라고 한다. 비가 조금만 와도 이 길은 진흙으로 가득 찬 강으로 변한다.
다리를 건널 때는 매우 조심해야 되는데, 믿겨지지 않겠지만 발목을 한두 개 부러뜨리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양반들은 모두가 도둑이다. 백성들은 그들이 자기들 것을 으레 빼앗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백성들은 지배계급이 도둑놈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도둑질에도 단계가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바로 강탈의 단계인 것이다."

고종은 실질적인 독립을 위해 국가 능력을 향상시키는 노력보다는
재정상의 심각한 곤란에도 불구하고 황실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열강의 군주들과 대등한 지위를 상징하는 명예나 훈장을 얻는 데 더 관심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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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말과 섞였지만. 길이 없어. 길은 똥천지야. 이게 사실일까 고고학적으로 검증을 해. 오잉 증말 사실이네. 허나 여러분 조선이 20만이고 당시 유럽 모든 도시들은 오만 십만이유 조선은 엄청난 대도시인규. 조선사 학자가 검증하곤 놀래서 저리 쉴드를 쳐. 저런 시대별 도시별 인구수 조차 몰라. 다 거짓말이야.

이 조선민족 지식인 자연 하는 애들이 가짜뉴스 조작해서 퍼뜨리는게 이게 육이오 이후로 지금 70년 째인건데.


조선인들은 일본군 병사들이 돈을 내지 않고 식량을 가져가는 것을 불평했다. 사실은 이렇다. 군 당국은 일정량의 식량과 마초를 징집하고 적당한 가격을 매긴다. 그러나 그 가격은 조선인 관리들에 의해 조정된다. 그들의 돈을 빼돌리는 수완은 서양인들을 능가한다. 이것을 일컫는 말이 따로 있으며, ‘착취’라고 한다. 100여 년 동안 이것은 일종의 수완으로 자리 잡아왔다. 조선에는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당하는 계급이라는 두 부류의 계급만이 존재한다. 일본군 당국이 조선에 병사들을 위한 식량을 요구하면 조선 관료는 각각의 가정에서 이를테면 쌀 두 되 정도를 받는다. 조선 백성은 쌀을 제공하고 일본군 병사는 먹고 일본 정부는 지불하고 조선 관료는 그 돈을 착복한다.---p.74

저때는 1904년.이야 러일전쟁 막 시작한거고. 조선인들이 돈을 안내고 식량을 가져가서 욕질한대. 일본군 당국이 가격을 매겨서 계획수립을 해서 돈을 조선 관리에게 줘. 그럼 이 조선 양반들이 그 가격대로 민들에게 줘서 할당받은 물건을 사는게 아니라, 거기서 가격을 후려처서 삥땅을 치는거야.

조선에는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당하는 계급 두 분류만 존재한다.

정확한거지 저게.

조선.이란건 몇몇만의 조선.이야. 조선.이란 정체성은 오백년 내내 민들에겐 있어본적이 없어. 오직 윗대가리 몇몇 음모놀이에 성공한 애들 만의 정체성이 저 조선 이란 두글자 걸랑.

그리곤 쪽빠리가 욕을 민들에게 먹는겨. 조선 양반이 중간에서 삥뜯고는 쪽빠리가 요만큼 밖에 안줬으니 이돈만 먹고 떨어져 모든건 쪽빠리 탓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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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지금도 여전한겨 저 조선 민족 지랄 하는 이들이.

고려 1100년 이후부터. 몽고군들 처들어오고, 똑같이 야만의 세월이걸랑. 걍 전 국토의 여자들이 위안부가 된겨 저게. 최씨들과 정권은 강화도로 토끼고. 그리고 공녀로 바치고, 이어서 조선 오백년이 여자들이 성접대하는겨 중국애들만 오면. 더하여 중국황제에게 여자들 바치고. 저짓을 위안스카이 한테 까지 했던거고.

저게 조선 이었걸랑.

저 일본인 학자.가. 저기서 그러걸랑. 일본 당국이 발주하면 일본 기업인들이 다 차지 하고 얘들이 조선인을 수탈한다 중간에 삥뜯고.

어이 일본 양심 학자님아

조선때는 말야. 우리 위대한 조선 양반은 말야. 우리 위대한 조선 관료는 말야, 공무원이 직접 삥땅 치던 애들이야. 그게 채만식의 논이야기 이고. 저게 그냥 평범한 조선시대 일상이었어. 니덜 일본애는 그래도 공무원이 아닌 민들이 삥땅치잖냐. 알고나 떠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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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통역과의 본질적인 어려움은 그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일본인 통역은 아시아인이다. 그가 백인만큼 백인의 사고방식을 잘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통역이 편자를 구한다든가 숙소를 구하는 것에 국한되는 한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추상적인 것을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는 순간부터 혼동과 오해가 시작된다. 그는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 금세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난처한 것은 한동안, 아니 어쩌면 영원히 상대방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이다.---p.97

우리가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동양인들은 직설적인 말을 들으면 서양인들이 마치 십계명을 어겼을 때 받는 것과 비슷한 충격을 받으며 상대방을 혐오한다는 것이다.---p.152

중국인은 일본인보다 기업 관계에서의 서구적인 규범과 예의를 훨씬 더 잘 이해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약속을 지키고 계약을 이행하는 것을 배웠다. 반면 일본인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시점에서 일정 기간 유효한 계약을 맺은 일본인 상인은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뀌어서 그 계약이 손해를 유발할 경우 자기가 왜 그 계약을 계속해서 이행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그 계약을 지킴으로써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도덕을 혐오했다. 일본인은 뜻밖의 변화가 생기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p.234

중국인과 일본인은 검소하고 일벌레이다. 중국은 공업 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막대한 양의 석탄과 철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4억 5,000명의 일꾼들이 공업화를 향해 전진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 만큼 어마어마한 새 경쟁자가 민족 간의 싸움이 치열한 세계시장의 무대에 등장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족의 모험이며 아시아인들의 꿈과 우리들의 꿈 사이에서 일어나는 첫 번째 충돌이다. ---p.252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617803

저 책소개에 나오는 공식 글인데 저게. 저 통역의 문제.는 사성소인식 유교의 폐해야. 말을 돌려까기 하는건 중국 일본 조선 이 다 똑같은겨. 유럽애들은 글쓰기를 그냥 그대로 직설적으로 표현하걸랑. 이 사고방식이 엄청난 차이야. 저걸 일본은 요즘 벗어나고, 우리네는 여전히 이게 안돼. 쟤들은 사생적 글쓰기.라는 말로 벗어났걸랑 저리 욕처먹으면서.

잭런던.은 중국인 경험이 적어. 얜 일본에 세번이나 체포가 된애야. 그래서 일본애들이 싫어 감정적으로. 그래서 상대적으로 중국을 띄우는겨. 저기에, 일본애들이 계약 에 대한 이해가 아직 안된걸 이야기 하는거야. 이 계약, 법치. 이게 저 이후 자리잡는거야. 잭런던이 접한 일본은 이제 막, 낮은 층의 상인 농민 무당 들이 갓 배우기 시작 할때의 사람들이걸랑. 당연히 이들이, 저 일본인 학자.의 주장처럼, 조선반도에 와서는 삥땅을 치는겨.

저기서 재밌는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아시아인들은 충격을 먹어 ㅋㅋㅋ. 이게 지금도 여전한거고 이 조선의 땅에선. 말은 돌려까기 하고 사성소인으로 속이듯 해야 하고 감정 표현을 하면 안돼. 음모적인 인간이 훌륭한겨 여긴. 아시아가 그래. 저게 공자의 유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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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더 가난해진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가난했어.

그나마 왜들이 삥땅을 치지만, 그래도 그 삥땅 치고 남은 돈이 어디냐. 예전엔 그런 일들도 조선엔 없었어 일할 꺼리가. 먹고살 꺼리가.

일본인 학자님아. 조선은 말야. 니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끔찍한 지옥이었단다. 니덜 조상 왜가 수탈이니 착취니 어쩌고 논하기 이전에.

그게 박지원의 양반전이다. 양반은 걍 천하의 개잡벌레 라는거다 그게 저 이전의 백여년 훨 이전의 조선 양반. 조선이란 애들이 모습이다 그게. 박지원이 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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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면서, 갓 소학교 나오고 평등해진 민들이 된 옛 하급민들이었던 일본인들이 윗자리에 들어서면서 쟤들이 칙쇼 해대는겨. 오히려 유럽애들은 자기들 매너.로 표현을 안하고.

그래서 그런말이 나오는거야. 왜놈들아 제발 좀 조선 민들에게 그리 직설적으로 감정 표현 말아라 그런거 서양애들에게 배워라 좀. 하면서 왜놈에게 그리 말을 전했다는거고.

일본학자 말이 맞아. 당시 일본인들은 갓 문명인 자리에 선 애들이라, 니가 나중에야 알게 된 것처럼, 그리 선하고 엄청난 족속의 시대는 아니었어. 그 잣대는 니가 유럽애들을 잣대로 취했을 때의 의견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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