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 I, born Gustav Eriksson of the Vasa noble family and later known as Gustav Vasa (12 May 1496[1] – 29 September 1560), was King of Sweden from 1523 until his death in 1560
구스타브 에릭손. 에릭손 에릭슨.이 에릭.의 아들. 이란건데. 즉 아빠가 에릭 바싸.야
The given name Eric, Erich, Erik, or Erick is derived from the Old Norse name Eiríkr (or Eríkr in Eastern Old Norse due to monophthongization). The first element, ei- is derived either from the older Proto-Norse *aina(z), meaning "one, alone, unique",[1] as in the form Æinrikr explicitly, or from *aiwa(z) "everlasting, eternity".[2] The second element -ríkr stems either from *ríks "king, ruler" (cf. Gothic reiks) or from the therefrom derived *ríkijaz "kingly, powerful, rich, prince".[3] The name is thus usually taken to mean "sole ruler, autocrat" or "eternal ruler, ever powerful".[4]
에릭.이란건 올드 노르스. 바이킹. 영거 푸따르크. 스칸디나비비아 인들에서 온거야 시작이. 원 유니크. 하나 독보적인 뜻. 더하기 릭스.가 킹 지배자. 고독한 지배자. 영원한 지배자. 아 멋진 이름이야. 애 이름을 에릭. 이라고 지어라.
그래서 스웨덴 대표기업 중 에릭슨.이 있는거고. 이 에릭손 은 스웨덴 이름이야. 구스타브 바싸.가 시작이야. 이 바싸가 스웨덴에선 가장 위대한 인간이야. 국가 를 시작해서 제도 를 만들었어. 세금제도에 유럽 최초 상비군을 둔 사람이야.
서기 1523년. 나이 27세.에 독립하고 킹을 한겨. 아빠는 스톡홀롬 블러드배쓰.로 죽고. 이 스칸디나비아.는 역사서술이 귀족들 죽을때 블러드배쓰.라는 피의 욕조 란 단어를 자주 써. 64세에 죽어. 37년간 킹을 한겨. 마지막 이반4세 어린애와 리보니안 전쟁. 초기에 죽은겨.
문제는 말야. 역시나 종교야. 건국 하면서 로마카톨릭을 엎어야 해. 이게 덴마크와 같이 5백년 된겨 로마 카톨릭이. 이 세력이 어마어마 한겨. 문제는 재산. 재정이야. 코트에 돈이 없걸랑. 교회 돈을 땡겨야 해. 더하여 정치적으로 덴마크와의 끈을 끊어야해. 종교로 또한 덴마크와 엮여있걸랑. 루터 애들을 저때 영입해서 스위든어로 성경 번역해달라고 하고, 당연히 자기들은 번역할 실력이 안되걸랑. 더하여 예배식도 바꾸고 언어도 바꾸는 작업하면서 로마 카톨릭을 지우는겨.
헌데 이게 쉽게 안돼 이게. 아래 덴마크 크리스티안 2세가 소주성으로 경제망치고 스웨덴에 잔혹한 짓하다가 스웨덴 독립한거고 쫓겨나걸랑 삼촌한테. 얘가 원래 카톨릭을 프로테스탄트로 바꿨걸랑 성서도 덴마크어로 번역하고. 경제 망쳐 쫓겨나고 다시 복위하려할때 카톨릭을 들고 나온 이유야. 덴마크도 종교문제가 바닥에 여전한겨 스위든과 같이.
구스타브1세가 37년만에 죽었어. 장남이 에릭14세야. 얘가 이어서 계속 리보니안 전쟁.과 이어 북쪽 7년전쟁.을 했던겨.
The Livonian War (1558–1583) was fought for control of Old Livonia (in the territory of present-day Estonia and Latvia), when the Tsardom of Russia faced a varying coalition of Denmark–Norway, the Kingdom of Sweden, and the Union(later Commonwealth) of the Grand Duchy of Lithuania and the Kingdom of Poland.
The Northern Seven Years' War (also known as the Nordic Seven Years' War, the First Northern War or the Seven Years War in Scandinavia) was fought between the Kingdom of Sweden and a coalition of Denmark–Norway, Lübeckand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between 1563 and 1570.
리보니아 전쟁.이 서기 1558년.에 이반4세의 러시아가 서진하면서 시작이 돼. 25년간. 시작하자마자 5년후 1563년에 7년전쟁을 하는겨. 리보니안 전쟁중에. 스위든 vs 덴마크 폴란드. 7년 전쟁이 끝나고 다시 스위든.이 덴마크편에 서서 러시아 를 쫓아 내는거야.
저 7년 전쟁 중인 리보니안 초기엔 러시아가 리보니아에 에스토니아를 다 점령을 한겨. 7년 전쟁 후에 스위든이 다시 오면서 러시아가 다 뺏긴겨 저게.
리보니아.가 리보니안 십자군으로 서기 1207년에 여러 십자군 국가들이 들어서는거야. 이게 3백년이 흐른겨.
그러면서 스웨덴이 독립하고 서기 1523년. 러시아는 이반3세가 골든호르드 몰아내고 노브고로드 회복하고 카스피해 주변 칸국들 다 흡수를 하는겨. 그러면서 발트해로 진출을 해. 손자 이반4세.가 이어받아서.
리보니안이 연합체걸랑 교회령과 귀족 영주들의. 로마카톨릭에 신성로마황제에 하미지 하지만. 저긴 멀어. 아래 리투아니아.는 여긴 촌동네여. 이들은 발트해로 한자동맹 애들에게 물건 팔면서 먹고 사는겨. 한자동맹의 도움으로. 한자동맹은 또한 군사력이 있는겨 해적 산적을 막기위한 연합체이기도 하걸랑.
헌데 저당시. 스웨덴 독립하면서. 스웨덴도 당시 왼쪽 해변은 덴마크야. 덴마크가 발트해와 북해 사이에서 깡패야. 사운드 해협에서 통행세로 먹고사는 게 짭짤해 엄청나게. 스웨덴과 덴마크가 원수가 된 상황에 스웨덴도 발트해에 갇힌겨. 한자동맹도 여기서 분열이 되고, 또한 각각의 상업도시들이 급성장을 한거야. 굳이 동맹의 필요성도 못느껴. 저 한자동맹도 막을 내려 이때에.
저상황에서 스웨덴과 러시아가 핀란드와 리보니아를 사이에 두고 부딪히기 시작해. 러시아도 항구가 필요한겨. 저때 잉그리아라는 핀란드만 gulf 쪽이 수심이 얕아. 러시아가 더 왼쪽인 리보니아를 먹으려 하는겨. 저때 1600년 직전이야. 이미 아키버스.가 백년전에 만들어지고 휠락 스냅락 플린트락.이라는 방아쇠 총들이 막막 나와. 페드로냘이란 나팔총도 나오고. 대포는 백년전쟁때 티나온겨 이게. 이젠 포탄에 셸이란 터지는 밤이 나오는 시기여.
구한말에 천자총통 . 머스킷에 화승총 심지붙는 그따위 총은 서기 1600년 이전엔 다 버렸다. 유럽애들 삼백년 전에 쓰던 무기가 구한말에 조선에서 썼습니다 여러분. 우리네도 신식무기가 있어요.
참 비참한겨 저런 역사 설명이.
우금치에서 말이죠. 왜놈들이 화승총 조총으로 탕 탕 쏘는데 우리넨 낫이고 몽둥이로 다들 죽었슈. 왜놈 개개끼.
저딴 짓들을 방송질 하는겨. 정말로 역사적으로 무식한 소리야 저건. 노부나가 이에야스 시절도 아니고
저런 들이 모두 민족놀이 조선 만세 위대한 유교 하는 그야말로 머리에 똥만 그득한 들이걸랑.
저딴 들이 이땅빠닥에선 선생이고 석학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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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리보니안 십자군 국가들 연합체.가 다 고만고만한겨. 다 하급귀족들이야. 리가 대주교.만 좀 큰거고.
이 직전에 튜튼기사단이 폴란드와 전쟁에 지치고 망가지기 직전에 프러시아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을 하고 폴란드에 하미지를 한겨. 공작으로 공국이 되고.
리보니안 십자군도 연합체를 해산하고 저 십자군 기사단장.이 쿠를란드 젬갈리아 공작.이 된거야. 리투아니아 에 하미지를 하면서 이리 들어간겨. 결정적으로 힘이 없는겨 스스로. 이게 리보니안 전쟁 중에 선 공작령이야. 폴란드 리투아니아 지워질때 같이 지워지고 이게 월드워 원.끝나고 다시 이름으로 일년을 섰다가 사라진겨 역사에서. 라트비아로. 2백년 된 땅이야.
저때 젊은 이반4세가 쳐들어가는겨. 리보니안이 자기들 독립 유지하기 위해서 동쪽의 주교령 등이 상납을 했걸랑 돈으로. 이들이 리투아니아로 들어가는 낌새를 느끼고 쳐들어간겨. 이게 1558 리보니안 전쟁.의 시작이야. 아직 폴란드와 카먼웰쓰가 아냐. 1569년이야 그건.
저때 말야. 스위든.도 완전히 발트해에 갇힌거걸랑. 서쪽해변은 덴마크야. 이건 17세기에나 얘들 땅이 돼.
완전히 갇혔어 스위든이. 덴마크가 얘들에게만 세금을 더 올리는겨 통행세를. 즉 북해로 나가지 말라는겨 저건.
이 스위든이 저때 한자동맹 도시들을 쳐들어가는겨 먹고 살라고. 더하여 에스토니아 탈린.을 쳐들어가고. 여기가 발트해변이걸랑. 폴란드 단치히.도 쳐들어가고. 여기들을 점령해서 대륙과 연결하려는거야. 북해쪽은 막혔으니까.
스위든은 목재. 철. 구리. 등을 파는 곳이야.
스웨덴 노르웨이는 말이다. 지하자원으로 먹고 사는 곳이다 저기가. 가진 땅에 자원이 넘쳐난다. 넘쳐나는 걸로 지들 복지 하는거다 저게. 대체 어떻게 저런 애들의 것을 벤치마킹 해서리. 북유럽도 하니까 우리도 해유.
참 미친 들인데 진짜. 그렇다고 재들 서민층 만큼 세금 내는것도 아니고. 쟤들 서민층 세금 구간의 세금이 우리가 오십퍼 쪼금 넘어. 부자들 세금은 똑같고. 즉 저건 서민 팔이 하는겨 정치권이. 서민애들은 저쪽 서민애들 대비 육십퍼 세금만 내게 하고. 여기 세금을 올려야 하걸랑 이게. 지들 서민층이란 지지층을. 여기가 인구 비중이 가장 높아. 헌데 여긴 안건드리는겨. 지들 서민놀이 해야 하걸랑.
벤치마킹도 제대로 하던가. 쟤들 상속세 없애는 식으로 그럼 상속세 없애던가. 후진국만 오십퍼 상속세걸랑 이게. 이건 시장을 완전히 죽이는 제도야.
걍 모든게 사기고 거짓말이야 저건.
걍 아무것도 모르는 민들 감정팔이에 분노질 시키면서 지들 입맛대로 노는겨. 왜냐면 민들 수준이야 저게. 저런 정책과 이빨들은 절대 먹힐 수가 없걸랑 웬만한 지쩍 수준의 나라에선. 이 나라 인문학이 전혀 무지하다 보니 저딴 애들이 잘 먹히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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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return for a loan and a guarantee of Danish protection, Bishop Johann von Münchhausen signed a treaty on 26 September 1559 giving Frederick II of Denmark the right to nominate the bishop of Ösel–Wiek, an act which amounted to the sale of these territories for 30,000 thalers.[41] Frederick II nominated his brother, Duke Magnus of Holstein as bishop, who then took possession in April 1560. Lest Danish efforts create more insecurity for Sweden, Denmark made another attempt to mediate a peace in the region.[42] Magnus at once pursued his own interests, purchasing the Bishopric of Courland without Frederick's consent and trying to expand into Harrien–Wierland(Harju and Virumaa). This brought him into direct conflict with Eric.[29]
In 1561, Swedish forces arrived and the noble corporations of Harrien–Wierland and Jerwen (Järva) yielded to Sweden to form the Duchy of Estonia.[43] Reval, similarly, accepted Swedish rule.[29] Denmark dominated the Baltic, and Sweden wished to challenge this by gaining territory on the Eastern side of the Baltic.[44]
리보니안 전쟁 시작 1558년. 러시아가 서진해서 아래 리보니아로 들어오고. 위 바다로는 덴마크와 에스토니아가 들어오는겨 다음해에.
오셀 비에크 주교령.을 덴마크에 판거야. 여긴 에스토니아 서쪽 섬들이야. 이걸 덴마크가 사서 저 섬들을 소유해. 서기 1559년. 스위든.의 상권이야 저기가. 덴마크가 저기까지 먹으면 스위든.은 걍 끝이야. 얘들이 탈린.으로 가는겨. 헬싱키 맞은 편 해변이야 에스토니아 지금 수도. 여기 귀족들은 스위든.과 친해. 상업적으로도. 다 무너져가는 리보니아땅에서 이들이 스위든에게 손내미는거고 스위든이 여길 들어와.
오셀 비에크.를 받아서 오고. 이들이 리가 아래 쿠를랜드 주교령도 사려는거고.
리보니아.가 오른쪽은 러시아. 위쪽은 스위든. 왼쪽에서 덴마크. 걍 난리가 난게 저 리보니안 전쟁 초기야.
저 와중에 또한 스위든.이 단치히.를 치는겨 바다건너 폴란드 지역을. 또한 덴마크땅 해변도 쳐들어가는거고.
그래서 터진게 스칸디나비아 7년 전쟁. 북쪽 전쟁이야.
The Northern Seven Years' War (also known as the Nordic Seven Years' War, the First Northern War or the Seven Years War in Scandinavia) was fought between the Kingdom of Sweden and a coalition of Denmark–Norway, Lübeckand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between 1563 and 1570.
이게 서기 1563년에 터진겨. 오셀 비에크.를 덴마크가 먹고. 탈린 을 스위든이 먹고. 이 다음해에 터진겨.
이러면서 동쪽 리보니아.는 러시아 이반4세 세상이 된거야. 저 7년동안 리보니아 땅을 거의 다 점령했어 러시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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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든 입장에선. 칼마르에서 나오면서 원래 노르웨이도 자기들꺼야 저게. 칼마르 이전에 스위든 에서 저 노르웨이를 갖고 있던걸 형제 중 형이 스위든 킹하고 동생이 노르웨이 킹하다가 형이 죽고 노르웨이 동생이 스위든 겸하다가 동생도 죽어서 이 동생 부인 마가렛 덴마크 여자가 퀸.하고 이어 덴마크도 핏줄끊겨서 이때부터 세나라가 합쳐진거걸랑.
스위든은 노르웨이를 요구하는겨 계속. 발트해에서 막히고 북해로 갈려면 왼쪽 노르웨이를 갖고 와야해. 스위든의 가장 큰 요구야 또한.
그래서 터진게 저 7년 전쟁이야. 리보니아 전쟁 시작 후에.
7년 후에 합의를 보고. 다시 덴마크와 스위든이 손잡고. 이제 카먼웰쓰가 된 폴란드리투아니아 와 함께 리보니아로 세나라가 같이 쳐들어가는거야. 이때 폴란드 자모이스키.가 저당시 스티븐 바토리. 밑에서 처음 전쟁 경험을 한거고. 그러면서 러시아는 다시 쫓겨나고. 에스토니아.는 스웨덴이 완전히 갖고. 덴마크는 이전에 매입했던 오셀 비에크섬.을 갖게 되고. 리보니안 십자군 기사단장은 쿠를랜드 젬갈리아 땅의 공작이 되서 폴란드 카먼웰쓰에 하미지를 하는거야.
저 7년 전쟁 와중에 이반4세는 아나스타샤 로마노프나 죽고 하야쇼하고 오프리치니나 제도 만들어서 귀족 휘어잡아서 군기 바짝 든상태로 리보니아를 다 먹은거걸랑. 그리고 후퇴하면서 후반전이 된겨.
저 리보니안 전쟁 초기와 7년전쟁.때 스위든의 킹이 에릭14세.야.
아빠 구스타브 바싸.를 이어받아서 바로 2대야. 나름 똑똑하고 정열적이야.
Eric XIV (Swedish: Erik XIV; 13 December 1533 – 26 February 1577) was King of Sweden from 1560 until he was deposed in 1568. Eric XIV was the eldest son of Gustav I (1496–1560) and Catherine of Saxe-Lauenburg (1513–35). He was also ruler of Estonia, after its conquest by Sweden in 1561.
이사람이 27세. 서기 1560년 에 킹이 된겨. 리보니안 전쟁 시작하고. 헌데 킹 킹 재임이. 1568년 까지야. 7년 전쟁 중에 내려온겨. 이후 9년 후에 죽어. 즉 얜 짤린거야. 배다른 동생 요한3세.가 이어받아.
The Sture murders (Swedish: Sturemorden) in Uppsala, Sweden of 24 May 1567 were the murders of five incarcerated Swedish nobles by Erik XIV of Sweden, who at that time was in a state of serious mental disorder, and his guards.
스투레 모르덴. 스투레 살인사건. 스투레 가문이 스위든 명문 귀족가문의 하나야. 서기 1567년.에 에릭14세.가 릭스닥. 의회 때 귀족들이 왔는데 저 가문 사람들을 감금을 해. 역모죄로.
얘가 서기 1563년. 4년전부터 정신이 이상해졌어. 즉위하고 반 지나면서. 이때 배다른 동생 나중 요한3세.를 역시나 역모혐의로 감금해.
재판도 진행하는데. 걍 쟨 정신이 미친겨. 혐의가 없어. 그래서 저때 나중 카를9세 막내도 대들었던거야.
성에 감금을 했는데. 에릭 킹이 저 스투레 귀족들 감금된 성에 가서 말야. 용서를 빌어 무릎을 꿇고. 그러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칼로 두 사람을 죽이는겨. 그리곤 가. 다시 또 오더니. 다른 이들에게 자기가 당신 가족들을 죽였다고 용서를 빌어 무릎꿇고. 그러더니 돌아가곤. 애들 시켜서리 저 사람들 다 죽이라고 해.
저때 스투레 가문 사람들과 사람들이 다섯이 죽었어. 저렇게. 얘가 진정시키는 자기 옛 선생도 죽여.
귀족들이 반란을 하고 다음해에 얘가 쫓겨나는겨. 동생 요한3세.가 즉위에 오르는거고. 이 에릭 킹은 20세기 부검으로 비소 독약으로 죽은걸로 결론이 났어.
그리곤 요한3세가 7년 전쟁을 덴마크 폴란드와 협정 마무리하고 같이 리보니안 전쟁 드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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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요한3세가 역시나 말야. 종교야 이게. 이사람은 프로테스탄트야. 헌데 마누라가 폴란드 안나 야기에워.야 이여잔 카톨릭이야. 결혼은 훨 이전에 한겨. 해서 요한이 폴란드와 원래 사이가 좋아.
여전히 바닥은 카톨릭이걸랑 스웨덴이. 이사람이 부인이랑 결혼하면서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화합을 꿈꾼겨.
이건 망상이야 이런건. 초기에. 저런건 월드워 원투 다 끝나고 나서야 서로들 인정이 되는겨.
John III (Swedish: Johan III, Finnish: Juhana III; 20 December 1537 – 17 November 1592) was King of Sweden from 1569 until his death. He was the son of King Gustav I of Sweden and his second wife Margaret Leijonhufvud. He was also, quite autonomously, the ruler of Finland, as Duke John from 1556 to 1563.
이사람이 1569-92. 23년간 재임하는데. 이미 이전에 핀란드 의 공작이었어. 핀란드 가 이사람 나와바리야. 즉 이사람 아들 지기스문트 3세 폴란드 킹이되는 이.의 세력이 핀란드인겨. 핀란드는 당연히 요한3세와 그 아들.의 세력권에 있는거고. 그래서 카를9세 가 커즐 전쟁 곤봉전쟁.을 뒤에서 부추겼다는 소리가 나오는겨.
문제는. 지기스문트 3세.가 카톨릭이란겨 이게. 스위든.은 프로테스탄트걸랑. 둘이 전쟁하는게 이게 종교전쟁이 되어버린겨 모양새가. 이게 서기 1598년 지기스문트가 스위든 쳐들어가는 전쟁이야. 이 전쟁이 웃겨 보믄.
나중으로 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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