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ldavian Magnate Wars refer to the period at the end of the 16th century and the beginning of the 17th century when the magnates of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intervened in the affairs of Moldavia, clashing with the Habsburgs and the Ottoman Empire for domination and influence over the principality.  

 

몰도바 마그네이트 전쟁들. 마그네이트.란게 부자 야 돈많은 사람. 라틴어 마그누스 magnus. 그레이트여. 중세에 마그네이트.란건 권력이야. 귀족이고. 몰도바 권력 전쟁들.인데. 

 

몰도바 바로 위.가 할리치와 볼리니아 Halych Volhynia(갈리시아 로도메리아)이고 여긴 야기웨어 이전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나눠 먹은겨. 몰도바.는 아래 왈라키아와 함께 헝가리에 하미지하고 헝가리가 합스부르크 들어가면서 합스부르크가 영향력 행세하려는거고. 폴란드리투아니아(이하 폴란드).는 카먼웰스로 합쳤어. 합스부르크가 멀어 여긴. 몰도바는 폴란드에 하미지를 해. 그리고 아래에서 오스만이 쳐들어왔어. 몰도바 오른쪽은 크림타타르야. 얘들은 투르크여. 오스만에 하미지를 하고. 몰도바는 오스만과 폴란드 사이에 낑긴겨. 

 

폴란드 입장에서는 몰도바가 오스만에 넘어가면 자기들이 위험해. 몰도바에 얘들이 적극 개입을 하는거야. 폴란드는 오스만과의 전쟁에서 이 몰도바를 사이에 두고 내내 전쟁하는거야. 

 

The Long Turkish War or Thirteen Years' War was an indecisive land war between the Habsburg Monarchy and the Ottoman Empire, primarily over the Principalities of WallachiaTransylvania and Moldavia.[4] It was waged from 1593 to 1606 but in Europe it is sometimes called the Fifteen Years War, reckoning from the 1591–92 Turkish campaign that captured Bihać.

In the series of Ottoman wars in Europe it was the major test of force between the Ottoman–Venetian War (1570–73)and the Cretan War (1645–69). The next of the major Ottoman-Habsburg wars was the Great Turkish War of 1683-99. Overall, the conflict consisted in a great number of costly battles and sieges, but with very little result for either side.  

 

몰도바 전쟁과 같이 치르는게 롱 투르크 전쟁. 또는 13년 전쟁이야. 트랜실베니아 왈라키아 몰도바.에서 합스부르크와 오스만이 벌이는 전쟁이야. 오스만은 다뉴브 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헝가리 동쪽이 얘들 수중에 들어와. 이에 맞서는 헝가리는 다뉴브강 서쪽에 더해서 북쪽 고지대 헝가리. 즉 카르파티아 산맥에 있는겨. 여기가 지금 슬로베키아 이고. 

 

이 오른쪽 트랜실베니아.와 왈리키아.와 몰도바.가 중간에서 낑긴겨. 오스만과 합스부르크와 폴란드 사이에서. 

 

트랜실베니아.가 산맥 넘어 위로 바로 폴란드야 당시. 트랜실베니아의 스티븐 바토리.는 당시 오스만에 하미지 하는겨. 왼쪽의 동헝가리도 오스만에 하미지한거고. 이 상태에서 폴란드 야기에워 안나.랑 결혼해서 폴란드의 킹이되고 트랜실베니아.는 형.한테 섭정을 맡기는거야. 여긴 오스만에 하미지 하는겨.

 

스티븐 바토리.가 폴란드 퀸 안나의 남편으로 간택이 된건. 폴란드 세임.에서 합스부르크를 싫어하는겨. 폴란드는 이전에 보헤미아의 후사이트 전쟁할때 후사이트 편들었어. 후사이트들이 폴란드로 많이 넘어오고. 저 보헤미아를 합스부르크가 이어 가져갔걸랑. 합스부르크가 유럽에서 세력이 거대해지고 폴란드 세임 귀족들은 저기에 위협을 느끼는거야. 아래 오스만이 쳐올라오지만 합스부르크도 싫은겨 이 폴란드는.

 

그래서 스티븐 보타리.를 택한겨 세임에서. 오스만이 싫은것보다 합스부르크가 더 싫은거야. 그리고 주 전쟁터는 합스부르크와 오스만이 싸우는게 다뉴브 경계로  싸우는거고. 

 

폴란드 입장에서는 스티븐 보타리.가 오면서 오스만과 은근히 친해진겨 이게.

 

헌데 문제가 몰도바 지역이야. 몰도바도 폴란드에 하미지 하는거고

 

Jan Zamoyski, Polish grand crown chancellor (kanclerz) and military commander (grand crown hetman), known for his opposition towards the Habsburgs, had been a vocal supporter of Commonwealth expansion in the southern direction. Since the early plans made by Commonwealth King Stefan Batory for the war against the Ottomans, Zamoyski supported them, viewing those plans as a good long-term strategy for the Commonwealth. Any policy that was against the Ottomans was also supported by the Holy See, and Pope Sixtus V strongly expressed his support for any war between the Commonwealth and the Ottomans. Three powerful magnate families from the Commonwealth, the PotockisKoreckis and Wiśniowieckis, were related to the Moldavian Hospodar(Prince or VoivodeIeremia Movilă (Jeremi Mohyła), and, after his death in 1606, they supported his descendants. 

 

폴란드.의 얀 자모이스키. 가장 안타까운 인물이야. 이사람 뜻대로 당시 폴란드가 움직였으면 폴란드가 지금 저리 되지 않았어. 폴란드는 저당시 킹과 귀족들이 지금의 폴란드란 허섭한 나라를 만든거야. 쟤들의 그 무지와 무능의 여파가 이게 삼사백년이 가는거야. 물론 사가들이 저리 볼줄 모르지만. 그래서 쟤들을 욕도 안하지. 오히려 포장질할까 이 조선들처럼. 역사가 심판할거다 란 소리는 개소리야 그게. 우리네 조선 오백년 그 똥떵어리도 찬양질 받고 그나마 나은거니까 더이상 욕질 말어 해대걸랑. 역사가 심판한다. 참 개소리중에 개소리라 지금 여겨지는데. 그따위 심판이란건 없어. 오히려 악인으로 규정된 애가 역사적으론 선한 이야 보니까. 평가를 못받을 뿐이고. 그렇다고 걔가 천당가는것도 아닐테고.

 

지금 우리 나라는.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거고 말야. 곧 레미제라블.한 시기가 와. 헌데 이 나라를 망친 쟤들은 그래도 여전히 역사적으로 위인 대접받을껴 ㅋㅋㅋ.  비참한 거지. 참 인간사가 코메디야. 이 역사 세계사를 쭉 보니까 말야. 

 

정의 란 건 게르만애들에게나 있는거야. 지금의 게르만.

 

정의 란건 후진 문명에선 없는 추상명사야. 사필귀정 인과응보. 이따위 말은 후진 문명속에선 벌어지지 않아. 게르만 애들에게나 써먹을 말이야. 

 

저 위키 영어 설명은 다 개소리야 저건. 머  폴란드가 교황의 재촉에 동의하고 오스만에 전쟁하려는 장기플랜을 짜고 자모이스키는 동의하고. 저건 잘못된 해석이야. 당시 폴란드 귀족들이 몰도바 호스포다르(보이보드) 예레미아 모빌라.와 친했고 그 후손들과도 관계를 이어가다. 몰도바는 폴란드꺼였어 당시.

 

그리고. 폴란드는 오스만보다 합스부르크가 더 싫어. 오스만과 은근히 친해. 몰도바.에게도 은근히 내비치는겨 오스만과 신경거스르지 말고 잘 지내라고. 몰도바는 좌불안석하면서 폴란드에 슬픈 눈빛 던지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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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문제는 말야. 코사크.야. 

 

The three Principalities and the territories united under Mihai's authority for four months.

몰도바.가 지금은 오른쪽 귀퉁이지만. 이게 지금 반으로 줄어든거야. 트랜실베니아의 오른쪽이 몰도바야. 왈라키아란건 이 아래야. 몰도바.는 지금 수도가 치시나우 Chisinau 야. 저 지도에서 폴란드 경계. 지금 우크라이나.의 강이. 드네스트르 강 Dniester 이야. 치시나우 왼쪽에 강이 프루트 강 Prut 이야. 이게 하류에서 다뉴브강이랑 만나서 흑해로 흘러. 프루트강이 지금 루마니아의 경계인거고. 저 프루트강 왼쪽을 다 뺏긴겨 몰도바가. 더하여 트랜실베니아까지. 왈라키아가 루마니아란 이름으로 저 거대한 땅을 지금 갖고 간거야. 몰도바의 중심은 원래 이 프루트 강.이야

 

러시아 문학책을 보면 오데사.란곳이 자주 나와 여기가 몰도바 넘어 드네스트르 강 하류에 오른쪽이야. 지도에서 안보이는.

 

저 지도를 보면. 오스만이 이전 메메드2세가 왈라키아의 블라드3세 드라큐라한테 시껍하고 피해서 다뉴브 하류따라서 흑해 주변을 가면서 크림타타르.가 오스만에 들어오는거걸랑. 이 크림타타르.를 통해서 오른쪽에 Astrakhan 아스트라칸.을 오스만이 쳐들어가는거고 그러면서 러시아랑 불편해진거고.

 

저 흑해 북쪽의 드네프르강 Dnieper 하류야 이 오스만에 하미지 하는 타타르는. 이 위에가 코사크야. 코사크가 드네프르강 중류가 시작이야 여기서 오른쪽 볼가강으로 퍼진거고. 이 코사크.는 폴란드에 하미지를 한거야 이전에.

 

저 코사크들과 타타르들이 서로 배틀을 하는거야. 더하여 코사크들이. 저 흑해주변을 죽 따라 내려가면 콘스탄티노플이여. 이스탄불. 여까지 쳐내려오는겨. 코사크 가  쎈겨 이게. 얘들은 슬라브야 원래가. 슬라브가 스텝화가 된겨 기마부족으로. 

 

이 코사크들이 타타르를 침략하고 흑해 돌아서리 이미 오스만에 하미지 하는 루마니아에 불가리아땅까지 쳐들어오는겨. 더하여 이스탄불까지. 흑해라서 배를 타고 가. 왜냐면. 먹고 살라고. 코사크.는 걍 유목이야. 수렵이야. 예전 게르만 슬라브애들 민족이동하는 식으로 그땅에서 농경해서 먹고사는 애들이 아냐. 오스만애들이 잘살걸랑. 저길 약탈하는거야. 그렇다고 자기들이 주인님 모셔대는 저 폴란드 리투아니아.에 그러하긴 머하고. 저 폴란드쪽 보다 오스만쪽 애들에 더 차림상이 풍성한겨. 오스만애들은 약탈 이걸랑. 약탈해놓은게 많아 저기가. 같은 야만애들 끼리 싸우는겨. 

 

Around the end of the 16th century, the relations between the Commonwealth and the Ottomans, never too cordial, further worsened with the growing number of independent actions by Cossacks. From the second part of the 16th century, Cossacks started raiding the territories under Ottoman rule  

 

폴란드랑 오스만은 친해 은근히. 헌데 코사크때문에 이게 균열이 가는거야. 코사크가 쎈겨. 헌데 이 코사크를 그래도 폴란드가 진압을 한거야. 아무리 쎄도 폴란드의 조직적인 문명의 힘엔 안되었어 당시. Pospolite ruszenie. 폴란드의 군대 포스폴리테 루세녜. 귀족들이 자기들 영주들 마다 자치적으로 만든 부대야. 완전히 고대 로마의 그 군단이야. 이 폴란드란 나라는 안타까운 나라야. 저때 저 지기스문트3세와 그 귀족애들 때문에 저리 된겨 폴란드가. 폴란드가 노벨상의 나라다 저기가. 평화상 그따위 두세개 쓰레기 말고. 유일하게 동유럽에서 말야. 르네상스.가 있던곳이 폴란드야. 

 

저 코사크들을 이 폴란드애들이 적극적으로 활용을 못하고 오히려 저 힘을 죽이는겨. 허가제를 실시해서 면허 발급 받은 코사크만 말을 타고 군인을 할수 있게해. 얘들은 생계수단이 군인 외엔 없어. 그런 것 없이 저러면 어쩌자는겨. 폴란드는 저당시 아주 말야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나라 폴란드를 어드래 하면 조질까 요 궁리만 하던 애들이야. 지금 조선 빠닥과 아주 똑같은 건데 말이지.

 

The Commonwealth could not control the fiercely independent Cossacks, but was held responsible for them, since at that time they were nominally under the Commonwealth rule. At the same time, Tatarsliving under the Ottoman rule were raiding the Commonwealth. However, they attacked mostly in the south-eastern areas of the Commonwealth, which were fairly sparsely inhabited, while the Cossacks were raiding the heart of Ottoman Empire, wealthy merchant port cities just two days away from the mouth of the Dniepr river (which the Cossacks used as their main transportation route). By 1615, Cossacks had even burned the townships on the outskirts of Constantinople

 

폴란드가 통제를 못해. 헌데 책임은 얘들한테 있어. 오스만이 폴란드애들한테 부들부들 한겨. 스티븐 바토리.가 킹하던 시절이야. 친했었걸랑 원래. 오스만과 폴란드 사이가 코사크로 틀어지는겨. 

 

타타르.가 폴란드땅으로 침범을 해. 코사크는 오스만 땅으로 가고 항구도시들이 부유하걸랑. 여길 약탈을 해. 흑해 주변은 모두 오스만땅이야. 코사크가 콘스탄티노플 주변 까지 가서 불을 질러. 아 음청난 코사크. 

 

Consecutive treaties between the Ottoman Empire and the Commonwealth called both parties to curb Cossack and Tatar activities, but they were never implemented on either side of the border. In internal agreements, pushed forward by the Polish side, the Cossacks agreed to burn their boats and stop their raiding. However, Cossack boats could be built quickly, and the Cossack lifestyle required periodic hunts for glory and booty. Sometimes Cossacks just needed resources to ensure their subsistence, while on other occasions they were bribed by the Habsburgs to help ease Ottoman pressure on their borders. Also, there was widespread animosity between Cossacks and Tatars, after decades of border clashes and reciprocal looting of estates and villages. Cossacks raided Ottomans territories and their vassals near the Black Sea almost yearly, usually attracting retaliatory Tatar raids (and vice versa). The vicious circle of chaos and retaliations often turned the entire south-eastern Commonwealth border into a low-level warzone. 

 

오스만과 폴란드가 나서서 타타르와 코사크를 불러. 니덜 그러지 말라고. 코사크가 말듣고 자기들 배들을 태워. 침략을 멈추고. 그리고나서 또 바로 배를 만드는겨. 왜냐면 먹고살 방법이 없어. 이들은 약탈 외엔 없어 살수있는 방법이. 더하여 합스부르크.가 코사크를 뒷배를 봐주는거야. 자본이 필요하걸랑 뭘 하든지간에. 

 

오스만의 적은 합스부르크야. 그래서 로마 카톨릭이고. 

 

합스부르크의 당시 최대적은 오스만이고. 프로테스탄트고. 그래서 또한 프로테스탄트가 오스만과 친해. 참 재밌는 정세야 저게.

 

저러면서 코사크와 타타르.가 서로서로 다시 오스만과 폴란들 쳐들어가. 복수심과 함께. 어찌보면 애꿎은건데. 왜냐면 정작 코사크 타타르 가 서로 둘이 붙기엔 말야. 이겨도 얻을게 없어. 서로 거지걸랑. ㅋㅋㅋ. 그래서 자기들 각각의 배후를 치는겨. 해서 저 몰도바 전쟁이나 투르크 전쟁에서의 코사크 타타르.의 캐릭이 인간사에서  웃긴겨 저게. 아주 특이하고. 

 

코사크가. 당시 이미 이반4세의 명으로 한쪽은 시베리아 정벌하러 간거고 다른 코사크들은 저리 오스만을 들 쑤시는겨.

 

 

In 1593, war between the Ottoman Empire and the Habsburgs started. In 1594 a very strong Tatar raid, carried by about 20,000-30,000 men led by the Khan of CrimeaĞazı II Giray (Gazi Gerej II) plundered Pokucie and moved to Hungary through mountain passes, in order to plunder Habsburg lands. Commonwealth troops gathered too late to intercept it. The Prince of TransylvaniaSigismund Báthory (Zsigmond Báthory), nephew of former Polish king Stefan Batory (István Báthory), had strengthened Habsburg influence in Moldavia after setting Ștefan Răzvan (Stefan Rozwan) on the Moldavian throne. Ștefan Răzvan was a Roma from Walachia (his father had been an Ottoman Muslim Roma, therefore not a slave) and had married a Moldavian noblewoman (his story was the basis of a play by 19th century Romanian writer and historian Bogdan Petriceicu-Hasdeu). 

 

저러다가. 서기 1593년.이 롱 투르크 전쟁 13년의 시작이야.  크림타타르 칸 가지 2세 기레이. 가지 란게 오스만의 이슬람 전사고. 즉 쟤들도 이슬람이 된겨. 이삼만을 데리고 포쿠체.를 약탈해. 여기가 카르파티아 산맥 돌아나가는 기슭이야. 지금 슬로바키아 땅이고 당시 헝가리 합스부르크야. 산길 따라서 쭉 가는겨 얘들이. 이 바로 아래가 트랜실베니아.야 

 

당시 트렌실베니아 보이보드.는 스티븐 로타리.의 형의 아들이야. 트렌실베니아.는 원래 오스만에 하미지하고 지내야해. 헌데 얘가 합스부르크에 붙는거야. 저당시 오른쪽 몰도바.에 보이보드가 새로 앉은 사람이 스티븐 라즈반.이야. 이사람은 왈라키아에서 온 로마. Roma . 이건 로마니. Romani 야. 로마니안 Romanian이 아냐. 인도에서 온 집시족이야. 당시 이 로마니.는 모두 노예야. 헌데 저사람은 이슬람에 귀화한 오스만 시민인거야. 이사람이 몰도바 귀족여자랑 결혼해서 저기 보이보드가 된겨. 헌데 이사람이 이슬람에서 그리스도로 개종을 하는겨. 오스만이 열받아. 

 

저 듣보잡 로마니. 스티븐 라즈반.에 배후가 있는겨

 

Michael the Brave (RomanianMihai Viteazu(l) pronounced [miˈhaj viˈte̯azu(l)] or Mihai Bravu pronounced [miˈhaj ˈbravu]HungarianVitéz Mihály; 1558 – 9 August 1601) was the Prince of Wallachia (as Michael II, 1593–1601), Prince of Moldavia(1600) and de facto ruler of Transylvania (1599–1600). He is considered one of Romania's greatest national heroes.[2] Michael was seen by 19th-century nationalists as the first author of Romanian unity.[3]  

 

용감 마이클. 미하이 비테아주. 미하이 브라부. 용감 미하이. 이사람이 왈라키아.의 프린스. 보이보드.가 돼. 왈라키아 창업자 바사라브 Basarab 가문의 방계인데. 배스타드 로 봐. 족보 조작한듯해. 왈라키아의 지방 영주. 반 ban 이었어. 이쪽은 크냐즈.가 아니라 반 이라고 해. 오스만 주재 영국대사.한테 로비도 해서 펀딩을 받고 뇌물을  써서 보이보드.가 돼. 왈리키아는 오스만에 하미지 하는 곳이었고. 이사람이 보이보드.가 되서리. 오스만에서 독립을 하려는겨.

 

이사람이 오스만에 로비해서 서기 1593년.에 왈라키아의 보이보드가 돼. 이미 오스만에서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고 한거야. 

 

미하이 브라부.가 스티븐 라즈반.을 몰도바의 보이보드.로 앉힌겨. 라즈반은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을 하고. 또한 웃기게도 이전에 트랜실베니아의 보이보드.가 된 스티븐 바토리의 조카.가 로마 카톨릭에 꽂힌겨. 트랜실베니아도 합스부르크 연합에 껴서 오스만에 싸워.

 

미하이 브라부. 스티븐 라즈반. 저 조카인 지기스문트 바토리. 이 셋이서 완전히 오스만에 돌아서서 합스부르크와 손을 잡아. 오스만이 13년 투르크 전쟁하는 시작이야 이게.

 

여기에 폴란드.는 걍 가만히 있다가 짱돌을 맞은겨. 폴란드는 합스부르크가 싫어 당시. 오스만이랑 친하고 싶어해.

 

그러면서 몰도바.의 기존 친폴란드 귀족들이 쫓겨나는거야. 몰도바란 곳이 합스부르크와 폴란드와 오스만에 낑긴겨 저당시. 더하여 오스만이 몰도바를 쳐 올라가는거고. 동시에 트랜실베니아도 쳐 올라가서리 13년 투르크 전쟁하는거걸랑.

 

몰도바 귀족들이 폴란드가서 에스오에스 치는겨. 여길 내려오는게 얀 자모이스키.야. 아 내가 폴란드 역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간. 

 

A pro-Polish hospodar was mostly tolerated by the Porte when the Commonwealth was anti-Habsburg or neutral. Therefore, when Emperor Rudolf II's forces gained control of Moldavia, Transylvania (PolishSiedmiogród) and started supporting Mihai Viteazul (PolishMichał Waleczny), prince of Wallachia, the Ottomans didn't look too favourably at the Commonwealth's meddling.  

 

오스만 입장에선 열받았어 자기 속지인 왈라키아.와 트랜실베니아가 등돌리고. 몰도바도 중립인척하다가 합스부르크로 가고. 코사크 들이 자기들땅 쳐들어오고. 폴란드가 그래서 더 싫고. 오스만이 타타르 앞세워서 헝가리에 트렌실베니아에. 그리고 자기들이 직접 몰도바로 가는겨. 

 

폴란드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얀 자모이스키. 이 사람이 몰도바.에 와서 스티븐 라즈반.을 쫓아내고 이전의 친 폴란드 보이보드를 다시 앉혀. 그리고 쳐올라오는 오스만 파샤.하고는 대화를 해. 폴란드는 오스만과 전쟁하기 싫은거야. 보이보드 새로 올리고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자. 헌데 옆 크림타타르가 쳐들어오고 도망간 라즈반도 침입하고. 이걸 자모이스키.가 다 이기고. 라즈반은 보이보드가 임페일러 시켜서 죽여.

 

그리고 얀 자모이스키.는 다시 돌아가는겨. 지기스문트3세 때문에 또 스웨덴 전쟁을 해야하걸랑 리보니안 가서. 스웨덴이랑 친해지고 합스부르크를 멀리하기 위해서 자기가 스티븐 바토리.에 충성했고. 이를 이어서 지기스문트를 킹에 올린게 자모이스키.야. 후계자 전쟁승리도 이사람이 한겨. 완전히 이사람이 만든 인간이걸랑 친스웨덴을 위해. 

 

헌데 완전히 바뀐겨 쟤가. 스웨덴에 틀어지고 오히려 합스부르크랑 친해진거야 쟤가. 자모이스키.는 리보니아 가서 전쟁하고 와서 대들다가 걍 병들어 죽어. 

 

 

스티븐 바토리가 죽고. 스웨덴의 지기스문트3세가 폴란드 킹이 되고. 오히려 얘가 나중에 합스부르크와 손잡으면서 폴란드는 오스만과 완전히 결별하게 된거야. 폴란드는 오스만과 전쟁에 안 낄수도 있었어. 스웨덴과도 전쟁 할 필요가 없었어. 지들이 자초한겨 저걸.

 

트랜실베니아.의 지기스문트 바토리.가 자기 사촌한테 보이보드.를 넘겨. 오스만이 수시로 쳐들어오걸랑. 이 사촌은 카디널이야. 추기경. 

 

용감 미하이.가 혼자가 된겨. 몰도바는 라즈반.이 죽고. 이전 친폴란드 애들이 앉고. 트랜실베니아.는 사촌한테 넘겼는데 이사람이 미하이.를 무시해.

 

미하이 입장에선 왈라키아 트랜실베니아 몰도바.가 합쳐서 로마카톨릭이 되서 합스부르크와 함께 오스만을 내몰자 하는거걸랑. 역사에서 또한 가장 아까운 인물이야 이 용감 미하이.는. 트랜실베니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해.

 

미하이.가 트랜실베니아를 쳐들어가. 

 

The Székelys (Hungarian pronunciation: [ˈseːkɛj]), sometimes also referred to as Szeklers (HungarianszékelyekRomanianSecuiGermanSzeklerLatinSiculi), are a subgroup[5][6] of the Hungarian people living mostly in the Székely Land in Romania. A significant population descending from the Székelys of Bukovina lives in Tolna and Baranya counties in Hungary and in certain districts of VojvodinaSerbia.  

 

세케이. 카르파티아 감는 아주 안쪽지역의 사람들이야. 트렌실베니아 맨 오른쪽. 헝가리안 즉 마갸르 사람들이여. 이사람들이 트렌실베니아.에 하미지를 했걸랑. 자기들도 독립을 하려 했어. 이들이 트랜실베니아.와 용감 미하이.로 갈라서. 미하이가 이사람들 데리고 트랜실베니아를 치러가. 추기경 보이보드. 앤드류 바토리.가 말야 이 세케이.한테 죽어. 앤드류가 무서워하는겨 아 나 보이보드 하기싫어. 이걸 옆에 세케이가 자기들 이기면 독립시켜주겠다미 이런 약한 놈 하민서 죽인겨.

 

그리고 미하이.가 트랜실베니아.의 보이보드가 또한 되고. 몰도바.도 이사람이 취하는겨. 이 용감 미하이.가 저 세곳을 다 통일한겨 이게. 

 

오히려 이걸 헝가리와 합스부르크 병딱들이 겁을 먹는겨. 힘의 균형 같은 소리

 

Giorgio BastaCount of Huszt (1550 – 1607) was an Italian general, diplomat, and writer of Arbëreshë origin, employed by the Holy Roman Emperor Rudolf II to command Habsburg forces in the Long War of 1591–1606. He was later sent to administer Transylvania as an Imperial vassal[1] and to restore Catholicism as the dominant religion in the region.[2]  

 

조지오 바스타.  나폴리 킹덤 사람인데 나폴리도 합스부르크께 된 시절이고. 이사람이 모하이.가 점령한 트랜실베니아.를 맡은 인간이야. 이사람이 기존 트랜실베니아의 귀족의 콜로 모하이.를 내쫓아. 헌데 이 바스타.의 용병들이 돈을 못받아서 난동을 피우고 여기에 오스만도 쳐들어오는겨. 얘가 이걸 관리를 못해.

 

더하여 말야. 이전 추기경 앤드류 바토리.라는 사촌에 자리를 넘겨서 세케이.에게 목짤리게 해놓고. 얘가 다시 트랜실베니아를 노리는겨. 지기스문트 바토리.가. 저시절엔 다시 폴란드랑 오스만이랑 손잡은거야. 아직 폴란드 지기스문트3세.가 스웨덴과 전쟁하느라 합스부르크에 관심 안갖을 때걸랑. 독일 30년 전쟁이 안터졌어. 

 

이 바토리.가 폴란드 군대에 뒤 오스만이 뒷심대주고 하면서 얘가 트랜실베니아로 쳐들어 오는겨.

 

이걸 저 조지오 바스타.와 용감 미하이.가 다시 연합해서 바토리와 전쟁을 해서 물리쳐 보내. 그리곤 얜 오스만의 꼭두각시가 되다가 떠돌다가 걍 죽고. 저러면서 스티븐 바토리.가 세운 트렌실베니아.는 걍 끝난거야 조카세대에서. 역사에서.

 

그리곤 조지오 바스타.가 동맹군인 저 용감 미하이.를 암살을 한거야. 바토리와의 전쟁 승리 며칠 후에.

 

A few days later Basta, who sought to control Transylvania himself, executed the assassination of Michael by the order of the Habsburg Emperor; it took place near Câmpia Turzii on 9 August 1601.[33] According to Romanian historian Constantin C. Giurescu:[32]


Never in Romanian history was a moment of such highness and glory so closely followed by bitter failure

서기 1601년. 루마니아 사가 왈. 루마니아 역사에 그런 고귀하고도 영광스러운 순간은 없었다. 그 이후 쓰디쓴 패배의 역사일뿐.

 

용감 미하이. 루마니아 역사에서 최고야 이사람은. 

 

Captain John Smith, the famous leader of the colony at Jamestown, Virginia and the Pocahontas story, was serving Sigismund Báthory as a mercenary. Smith was captured, and sold to Crimean Tatar slave traders. He later escaped to Poland before continuing on to England, from where he sailed to America in 1607.  

 

저때 용감 미하이.편에서 용병이었던 사람이 존 스미쓰.야. 존 스미스.가 지기스문트 바토리.에서 일했다는건 아마도 이전일꺼 같아. 아 이게 학실하지 않은데. 지기스문트 바토리가 앤드류에게 보이보드 넘기기 전에 일한거고. 이후엔 용감 미하이.를 따라간걸로 보여. 해서 이전 모시던 지기스문트를 오히려 적으로 싸운거고. 미하이.가 죽고 미하이 다음 의 보이보드.의 용병으로 계속 저기 있었어 존 스미스는. 그러다가 크림타타르 애들에게 잡혀서 노예생활를 하다가 탈출을 해. 자기가 팔려갔는데 그 귀족 여자가 자기에게 사랑에 빠졌대. 머 믿거나 말거나.

 

그러면서 저 존 스미스.가 제임스타운 1607년.을 이 인간이 한거야. 여기서 만난 여자가 포카혼타스.고 포카혼타스.때문에 죽다가 살아나고. 이 포카혼타스.는 식민지땅 영국사람이랑 결혼하고 영국 놀러갔다가 바로 죽어. 나이 스물한두살에.

 

저 존 스미스.가 그램머 스쿨 나오고 나이 이십대 초에  프랑스 앙리4세 위그노 전쟁에 다음 네덜란드 독립전쟁에 저기 왈라키아에 트랜실베니아.에 나대다가 제임스타운 1607년이 나이 27세여 저게. 쟤가 체서피크 만 지도를 다 그리고 뉴잉글랜드 작명하고 그쪽 해안선을 그린인간이여. 저인간이 미국을 만든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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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 미하이 죽고. 폴란드 지기스문트3세.는 스웨덴과 리보니안 전쟁을 계속 하다가. 얘가 서기 1610년 지나면서 합스부르크.와 손을 잡는겨 이게. 더하여 몰도바.에도 친합스부르크 애들이 보이보드가 되는거고. 그러면서 폴란드가 오스만과 완전히 갈라서면서 다시 적이 돼. 

 

폴란드.는 스웨덴에 오른쪽 러시아.와 또 전쟁해야 하고.

 

오스만.은 오른쪽 사파비 이란애들과 전쟁해야 하걸랑. 서로 바쁜겨 저 와중에도. 계속 몰도바를 두고 전쟁하다가 협정맺다가. 코사크랑 타타르랑 서로 계속 침범들 하다가.

 

The Polish-Ottoman War (1620–21) or First Polish-Ottoman War was a conflict between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and the Ottoman Empire over the control of Moldavia. It ended with the Commonwealth withdrawing its claims on Moldavia.[1]  

 

서기 1620년.에 몰도바에서 쎄게 배틀을 해. 저기가 프루트 Prut 강이야. 기후도 지형도 안좋고. 이때 오스만2세.가 예니체리 한테 암살당하는겨 처우에 불만 품고서. 

 

저 폴란드와 오스만이 대투르크전쟁.인 17세기 말까지 전쟁하는겨. 폴란드는 이전 서기 1500년 전후 올라오는 오스만을 몰도바에서 만나서 배틀하고. 오스만과는 전쟁할 필요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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