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fessor and the Madman is a 2019 biographical drama film directed by Farhad Safinia (under the pseudonym P. B. Shemran), from a screenplay by Safinia and Todd Komarnicki based on the 1998 book The Surgeon of Crowthorne (published in the United States as The Professor and the Madman) by Simon Winchester. It stars Mel Gibson, Sean Penn, Natalie Dormer, Eddie Marsan, Jennifer Ehle, Jeremy Irvine, David O'Hara, Ioan Gruffudd, Stephen Dillane, Laurence Fox, and Steve Coogan.

더 프로페써 앤 더 매드맨. 2019 개봉. 파라드 사피나, 크레딧엔 피비 솀런. 이란태생 이민자고. 세번째 디렉팅인데 이건 폭망했네. 멜깁슨 숀펜을 쓰고. 안봐서 몰겄는데. 런던 작가 싸이먼 윈체스터, 가 1998년에 크로우똔 의 써전. 으로 나온거고, 이게 미국판은 제목을 바꿔서 내. 더 프로페서 앤 더 매드맨. 이게 우리말로 번역이 돼. 교수와 광인. 안팔려서 절판 되었을 거고.

이게 보니 지난달 국내에 개봉한건데. 누적 관객이 1만7천. 이런건 말야 인간종자라면 기본적으로 봐라. 이 조선 핏줄들아.

https://www.youtube.com/watch?v=mOX-DrI05iQ


The Surgeon of Crowthorne: A Tale of Murder, Madness and the Love of Words is a non-fiction history book by British writer Simon Winchester, first published in England in 1998. It was retitled The Professor and the Madman: A Tale of Murder, Insanity, and the Making of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i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부제 가, 살인 미쳐버림그리고워드들을사랑함 의 이야기. 러브오브워드즈 할때, 오브 라는 이 전치사 가 재밌는겨. 이 오브 는 여기선 뒤에 오는 말이 목적인겨. 러브해 무엇을 할때 오브. 해. defeat 디핏 이 명사로 쓸때 디핏 오브 해서 다음 나오는 것을 쳐부순겨. 인베이젼 오브. 다음이 것을 침입한겨.

미국판 이 원제 에 부제 도 바꿔, 어떤 이야기 인데, 오브, 무엇이냐면, 살인 비정상 그리고 옥스포드영어사전 OED 의 제작.

영국판은 매드니쓰, 북미판은 인쌔니티. 미친것도 지역 영어 로 쓴겨. 북미 는 인쎄인 인쌔니티 하는거지.

insane 인쎄인 이란건 쎄인하지 않은겨. sanus 싸누스 sound 싸운드, 여기서 싸운드 는 헬띠 건강한거야. 라틴어 sano 싸노. 치료하고 건강하다 에 싸누스 에서 싸운드 이고, 건강하지 않은게 인쎄인 이야.

sound 같은 싸운드 가 소리 인데. 이건 라틴어 가 sono 쏘노 에서 온겨. 소리내다. 쏘노 쏘누스 싸운드 고.

매드 는 직접적인 말인거지. 인쎄인은 간접적인 표현이고, crazy 크레이지 는 깨부슨상태야. 매드 보다 쎈 말이야. 게르만어고.

크레이지, 먼가 산산 조각 나는 어감이 있잖니. 크 라는 소리에. 이 워드 라는게 정말 재밌고, 그 워드 가 나오게 된 걸 유추를 시작하면 말이지, 신븨롭기까지 해. 아 이 언어 에 대한 맛을 이땅에 아는 인간 단 하나 없는데 말이지. 왜냐면 게 무식하거든.

크로우똔의 써전. 버크셔 의 마을이름이고, 써전 이란건 케르 에르곤, 손 의 일 이고, 손이 짜르고 꿰메는겨. 외과의사야. 의사 란건, 외과 써전 이 최고여. 써전 들은, 자기가 진짜의사 라는 자부심이 강해, 니덜이야 모를텐데 이런걸. 의사 하면 써전 이야. 얘들은 내꽈 정신꽈 이딴애들 속으로 우습게 봐. 니덜따위가 의사냐 해대는 애들이 써전 이야.

케르 가 써가 되는데, 이게 알프스 넘어선 사라진겨. 케르 손 의 단어가 코러스 라는겨. 다른 어원으로 취급하지만, 소크라테스 는 χαίρω 카이로 에서 코러스 라 하거든. 플라톤 전집에서 재밌는게 저 소크라테스 의 어원 이야긴데, 즐거움 을 주어서 코러스 라는겨 카이로 에서 온겨. 학계에선 코러스 라는건 모임 그룹 이야. 그래서 소크라테스 어원 은 대게 농담 장난으로 취급하거든. 저 단어들 이야기가 아주 플라톤 전집 곳곳 에 있어.

철학자 니 글쓰는 작가는 반드시 워드 에 대한 내역 을 탐색해서 찾아내야 해. 플라톤 전집에서 저걸 빼놓을 수 없는 이유고 크라튈로스 가 그래서 반드시 존재해야 만 하는 책이고 가장 중요한 책이야. 웨스턴 애들은 이런 워드 탐색을 책쓸때 기본으로 해. 이걸 역시나 전혀 모르는게, 조선빠닥 모든 인문학자연 하는 개조 들이야.

이 어원 이야길 하는, 유일한 인간, 역시 이광수 더만. 야 이 조선빠닥에 이광수 란 인간 이 있다는건 다행인건가, 다행이지 나라도 읽어 느껴서 아하! 하게 해줬거든. 이광수 의 글맛을 누가 아냐 말이지 친일파 대는 세상에. 이광수, 저 글들 보면 이광수 란 인간의 지식의 한계가 아주 적나라 하게 보여. 그래서 너무나 귀엽걸랑. 이광수 의 문장들이 어떻게 정답이 되겠니. 이광수 가 무얼 알겠니. 끽해야 일본어번역당시허섭한것들 본 게 전부여. 조선에 절절한 인간의 그 지성이 대단해 봐야 머가 대단하겠니 그따위 감수성 조차. 그럼에도, 이땅 인간만의 지식과 정서 를 아주 제대로 보여주거든. 이광수 의 문학은, 보편적일 수가 없어. 한글러 들의 모든 소설들은, 가장 취약한게, 보편성이 전혀 없다는겨. 너무나 후진겨 이건.

카이로스 카이라 즐거움 줘서 코러스 가 아니라
무리 그룹 의 코러스 가 아니라
케르 라는 지휘자의손 에 움직이는게 코러스고 콰이어 성가대지. 내말이 마자. 왜냐며는 내말은 다 마즈니까

저 써전 이 버크셔 크로똔 의 정신병동 에 수감되거든. 그래서 크로똔 의 써전 이야 영국책 제목은.

William Chester Minor, also known as W. C. Minor (June 22, 1834 – March 26, 1920), was an American army surgeon, psychiatric hospital patient and lexicographical researcher. After serving in the Union Army during the American Civil War, he moved to England. Affected by paranoid delusions, he was committed to a London psychiatric hospital from 1872 to 1910 after he shot a man whom he believed to have broken into his room.

Sir James Augustus Henry Murray, FBA (/ˈmʌri/; 7 February 1837 – 26 July 1915) was a Scottish lexicographer and philologist. He was the primary editor of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OED) from 1879 until his death

Sir 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30 November 1874 – 24 January 1965)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내가 아주 초창기때 언급했던 두 인물 이야긴데, 걍 대충.

Minor was released in 1910 on the orders of the then Home Secretary, 35 year-old Winston Churchill.

1910년 이면, 마이너 76세, 머리 73세, 윈스턴 처칠이 36세. 홈시크리터리 처칠 이 마이너 를 사면하고, 마이너 는 미국으로 가는겨 와싱턴 디시 의 성 엘리자벳 병원으로. 여기서 10년 있다가 죽은거고.

Minor provided these, with increasing ease as the lists grew. It was many years before the OED's editor, James Murray, learned of Minor's history and visited him in January 1891. In 1899, Murray paid compliment to Minor's enormous contributions to the dictionary, stating, "we could easily illustrate the last four centuries from his quotations alone"

OED 사전 에 마이너 가 단어의예문들 을 보낸게 10여년 인듯한데 정확한 연대가 안보이고. 제임스 머리 가 마이너 의 상태 를 알고 방문한게 서기 1891년 1월, 57세 54세. 머리 가 마이너 의 사전에굉장한기여 를 상찬하다, "우리는 쉽게 지난 4세기를 비춰볼수 있었다 마이너의 인용들로만" 윌리엄 마이너 가 4백년 동안의 영어 문장 들 중에서 좋은걸 다 발췌를 해준겨 단어들 마다.


마이너 가 1834년 생이고, 런던에 1871년 37세 에 건너와서 다음해 1872년 28세 에 정신병으로 사람 죽이고 정신병동에 갇힌겨 저해 38세 에. 이때부터 1910년 76세 까지 크로똔에서 40년을 있던겨. 86세에 죽지만 38세 부터 48년을 정신병동에서 살다 죽은거지.


At age 14, he was sent to the United States, where he lived with relatives in New Haven while attending Russell Military Academy. He subsequently enrolled at Yale Medical School, supporting himself during his years as a medical student with part-time employment as an instructor at the Russell Academy and as an assistant on the 1864 revision of Webster's Dictionary,[3] then in preparation at Yale under the supervision of Noah Porter. Minor graduated in 1863 with a medical degree and a specialization in comparative anatomy. After a brief stint at Knight General Hospital in New Haven he joined the Union Army.

씰론, 스리랑카 태생이고, 아빠가 콩그리게이셔널 처치 의 선교사 고 형제들이 많고, 다들 잘 살아. 와싱톤 씨애틀 시장 도 형제야. 14세에 미국와서, 메사추세츠 뉴헤이븐 에 살면서 럿셀 사관학교 에 다니다, 여기가 예일 가는 중간 코스여. 예일 메디칼 스쿨 에 들어가고 이게 지금 예일대학에 의대 고. 의대 다니면서, 럿셀아카데미 에 강사, 웹스터 사전 개정판 에 보조, 로 일을 해. 1863년 29세 에 졸업하고 비교해부학 에 전문가여. 이때가 미국 남북전쟁 때야 1861-65. 여기 북군 유니온에 군의관 으로 들어간겨.

He was accepted by the Union Army as a surgeon and may have served at the Battle of the Wilderness in May 1864, which was notable for the terrible casualties suffered by both sides. There is an unverified story of Minor also being given the task of punishing an Irish soldier in the Union Army by branding him on the face with a D for "deserter"[4] and that this incident later played a role in Minor's delusions.[4] Historians disagree as to whether the Union Army used branding as a punishment for desertion,[5][6] which means that the story may be fabricated. Moreover, it is unlikely Minor was present at the Battle of the Wilderness, which took place May 5–7, 1864, since his military records place him at Knight USA Hospital in New Haven at that time and do not show him arriving at 2 Division Hospital USA at Alexandria, Virginia, until May 17

윌더니스 전투 에 있었을 지도. 이게 1864년 5월 인데, 이 사람 복무 기록을 보면 뉴헤이븐 에서 버지니아 알렉산드라 병원 도착 기록이 없다는거지. 기록이 없다고 아니다 라 할수도 없고. 자세히 개인병사 기록을 일일업무식으로 관리되었다 할수도 없고. 아마 이 전투 에 참전 한거 같은겨. 여기서 먼가 심한 인간군상을 겪은거지.

The Battle of the Wilderness, fought May 5–7, 1864, was the first battle of Lt. Gen. Ulysses S. Grant's and General George G. Meade's 1864 Virginia Overland Campaign against Gen. Robert E. Lee and the Confederate Army of Northern Virginia in the American Civil War.

윌더니스 전투. 1864년 5월. 북군 율리시스 그랜드 와 남군 로버트 리.가 처음 붙은겨 서로 필드마샬 로는.

윌더니스 가 버지니아 북쪽 숲지고. Chancellorsville 여기 근처가 챈슬러스빌 이야. 1년전에 챈슬러스빌 전투 를 남군이 이기고, 이 승기로 로버트리 가 북진해서 한달후 치른게 게티스버그 전투여. 요기가 즉 버지니아 와 펜실베니아 의 접경에서 왔다갔다 하는겨 이게. 게티스버그에서 대패하고 로버트리 가 다시 내려와서 치르는게 윌더니스 전투 야. 저 게티스버그 의 북군 필드마샬 이 조지 미드 고. 조지미드 와 그랜트 가 로버트리 와 붙은겨.

게티스버그 가 미국내전포함 역사에서 가장 많이 죽은 전투고, 죽은이들만 일이만명으로 보는겨. 그 다음으로 사람죽은게 저 윌더니스 전투여 5천명이 죽었어. 사상자가 아니고. 승패는 안나고. 여기서 왈 북군에서 아이리쉬 병사가 탈영해서 디저터 의 디 를 낙인찍었다느니 하는 말도 나오는데 이건 주작된 말로 보고. 하튼 이 현장에 마이너 가 있었던겨.

After the end of the Civil War, Minor saw duty in New York City. He was strongly attracted to the red-light district of the city and devoted much of his off-duty time to consorting with prostitutes. By 1867, his behavior had come to the attention of the army and he was transferred to a remote post in the Florida Panhandle. By 1868, his condition had progressed to the point that he was admitted to St. Elizabeths Hospital, a lunatic asylum (as mental hospitals were then called) in Washington, D.C. After 18 months he showed no improvement.

그리고 바로 다음해 남북전쟁 끝나고, 마이너 는 뉴욕시티에 근무하다가, 여기서 레드라이트디스트릭트 에 빠져. 이게 홍등가 로 번역이 된거야.

이 홍등가 라는 단어 가, 영어 여 영어. 극동단어가 아니라.

紅燈區(英語:Red-light district),又稱風化區,是指以性產业為主的街區。在日本,红灯区称为風俗街(日语:風俗街ふうぞくがい Fūzokugai)。中國古代至近代稱為花柳巷煙花巷煙花之地花街柳巷,如北京著名的八大衚衕南京秦淮河廣州陳塘等,但傳統上妓女不一定是性工作者,與現代紅燈區的性質並非完相同

홍등구 . 풍화구. 성산업 위주의 거리구역. 일본에선 풍속가, 후우조쿠가이. 홍등구 풍속가 에서 홍등가 하는거지. 아 이 단어 조잡하게 만든건 참 욕 나오는데. 화류항, 연화항, 연화지리, 화가유항. 북경의 팔대호동. 남경의 친화허, 광주의 찬통 등. 전통상 기녀 가 불일정하게 성공작, 현대 홍등구의 성질과 비슷 상동. 얘들 성노동자 는 성공작자 야.

창녀 기생 을, 화류, 연화, 버들류 에 연기 를 꽃에 붙여서 쓰는거고. 항 이라는게 항구 라며 물수변 에 익숙한건데, 항 이란 건, 거리 여. 거리 가. 보다 후진게 길빠닥 항 이야. 항간에, 할때 항 이고, 단표누항 비천한 거리. 그래서 홍등가 하면 안돼. 홍등항 이라고 할 지언정. 거리 가, 는 밝은문명세상이고 항 은 어두운 곳이야. 홍등가, 라고 중국애들은 안한거야. 중국애들에겐 성공작 은 항. 어두운겨.

저게 조선 인거고, 중국을 받아서. 중국애들은, 그래도 어두운 거리에라도 저걸 하는겨. 팔대호동. 북경에 여행금지구역 여덟곳이여. 저기여 여자들 몸파는데 못가는거고.

조선 이란 곳은. 킹 이란 조 와, 관아 의 기생 관기를 두고, 지들끼리 꽁씹하는 거야. 이 꽁씹은 이 조선 들의 유전자여 이건. 그것도, 권력 가진 공권력 조선 들만의 특권이야.

이걸 모든 인민이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게, 일제 시대 때 이걸 해본겨. 세상 모든 인간들 처럼, 유독 조선 인간들만 ㅋㅋㅋ. 그래서 조선 민조 에 미친 역사학자들은, 일제 일본들이, 풍속을 더럽혔다 하거든. 도덕 군자 조선 이 유곽 으로 넘쳐났다며. 이땅에 가장 들은, 조선 을 미화하고 거짓만 날조하는 저 역사학자에 소설가 들이야. 전부 저거 거짓말이야.

風俗街(ふうぞくがい)とは、性風俗店が密集している場所のことをいう。日本における風俗街は、以下のとおり。遊廓から発達したものなど、それぞれの街に歴史がある[1]。これらの店が軒を連ねる地域の形容して花街・花町(はなまち)と呼ぶ場合がある。近年では無店舗型のデリヘル(デリバリーヘルス)も増加しており、風俗産業にも変化が見られている。

일본애들에겐, 거리 가. 야. 풍속가. 풍속항 이라고 안하는겨. 이 한자 쓰는 작법은 유전으로 같은겨 이게. 갑골문 이란건 굉장한 힘이야. 저 갑골의 원초적 유전의 단어작성의주문 을 벗어날 수 가 없어. 언어란건 묘한겨. 언어란건 주작을 할 수 가 없어. 이 단어 주작질 하는 세상 유일한 들 역시나 이 조선 민국. 아 이 조선 이란 두글자 는 참 드럽고 역겨운 단어야. 그러면서 이 조선 을 퍼뜨리는 이들은 지들이 정의고 진보야 ㅋㅋㅋ. 기가막힌겨. 연쇄살인마 들은, 지들이 정의 라고는 안해. 이 조선 팔이 들은, 연쇄살인짓을 하면서 지들이 정의라고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고 싶어해. 정말 진짜 시안한 애들이야.

花街(花町とも書く)(かがい、はなまち[1])とは、芸者屋、遊女屋が集まっている地域を指す名称である[2]。花柳(かりゅう)という別称もある

화가, 화정 이라고도 쓰다. 카가이, 하나마치. 거리 가.야. 절대 항 을 안써. 어두운게 아냐. 게이샤 유녀 달라. 게이샤 는 연예인이야. 몸은 유녀만 팔아. 얘들은 이게 공식적으로 모든 영지들 구석구석에 있는겨. 당당한 문명의 거리가 에 있는겨.

쟤들의 엔터테인사업 이란건, 유일한겨 웨스턴 에 위협적인건. 애니메 는 그중 하나일 뿐이고.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가 29세 에 의대 졸업하고 바로 윌더니스전투 에서 비참한 현장 겪고, 30에 전쟁끝나서 뉴욕에 근무하다가 여기 홍등가 에 빠진겨. 콩그리게이셔널 이야 아빠가. 프로테스탄트 가 카톨릭 보다 보다 엄격한겨 이 정신이. 근대 의 모랄은 프로테스탄트 가 잡아주는거야. 토리 휘그 의 긴장감 이듯,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의 긴장이야. 카톨릭 이란건 프로테스탄트 가 출현했기때문에 정신을 차린거야.

프로테스탄트 중에서 가장 끝을 가는 애들이, 콩그리게이셔널 이야. 이사람은 이 문화에서 큰거고, 의대 까지 30년 삶을 이렇게 살았을껴 그러다가 전투를 겪은거고. 이 풀리지 않고 쌓인 게, 홍등가 에서 확 터진겨 이게. 여기에 아주 찐한 맛을 들여. 아마 이때, 바이러스 걸려서리 뇌에 들어와서 정신병이 된거야. 이런 말은 안하지만.

In 1871, Minor went to London for a change of pace to help his mental condition. In 1872 he was living in Tenison Street, Lambeth,[8] where once again he took up a dissolute life. On February 17, 1872 haunted by his paranoia, he fatally shot a man named George Merrett, whom Minor wrongly believed to have broken into his room. Merrett had been on his way to work to support his family of six children, himself, and his pregnant wife, Eliza. After a pre-trial period spent in London's Horsemonger Lane Gaol, Minor was found not guilty by reason of insanity and incarcerated at the asylum in Broadmoor in the village of Crowthorne, Berkshire. As he had his US Army pension and was not judged dangerous, he was given rather comfortable quarters and was able to buy and read books

1871년, 37세. 1865부터 이삼년 홍등가 빠지다가, 군당국에 보고되고,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먼가 중독 에 걸린겨. 2년 가까이 치료받다가 나온겨 진전없어서. 차라리 전혀 다른곳에 가면 나아질까 해서 런던에 온거야. 그리고, 조지 메릿 을 쏴죽여. 자기방에 침입한 강도 인줄 알고. 이 사람은 자식 여섯이고 부인 엘리자 는 또 임신중이고. 정신병으로 무죄, 크로똔 의 정신병동 에 감금. 미국 연금을 받았고, 오히려 개인적으론 편한겨 저곳이. 걍 안에서 책이 나 읽는겨. 이 생활을 이때터, 50년가까이 하다가 죽은겨 걍.

It was probably through his correspondence with the London booksellers that he heard of the call for volunteers for what was to become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OED). He devoted most of the remainder of his life to that work.[11] He became one of the project's most effective volunteers, reading through his large personal library of antiquarian books and compiling quotations that illustrated the way particular words were used. He was often visited by the widow of the man he had killed, and she provided him with further books

그러다가, 런던 서점주인들한테 책사서 보는게 낙인데, OED 를 위한 지원자를 뽑는게 신문광고로 난걸 본거고. 이 옥스포드 사전 이란건, 정말 최고의 책이야. 국어사전 이란걸 보다가, 이 옥스포드 영어사전 을 보면, 사전이란게 이런거군, 하는걸 알게돼.

조선 밖에 볼수 없는 인간, 정말 세상에서 여 이건. 불쌍한 인간이야. 조선 말 외엔 할줄 아는게 없어. 불쌍한거지. 필요성을 못느껴 외국어 배울. 디져야지 이따위 버러진. 왜 사니 왜. 이나라 국어사전 은 사전이 아니란걸 알게돼. 저건 걍 일본사전 어설프게 베낀거고 옥스포드 어설프게 뻬긴겨. 저딴게 먼 사전이니 저게.

저 작업에서 필요한게, 워드, 단어에 대한 예문이야. 데피니션 이 아냐. 데피니션 은 윗단에서 내리는겨 배운애들이. 예문을 넣야 하는데, 주작할 수 없어. 영어 문장들에서 발췌를 하는겨. 영어라는게, 셰익스피어 만 아는데 셰익스피어 가 가장 많은 단어를 만들어냈다느니. 이사람 못지않게 드러낸건 실락원의 존 밀턴 이야. 여기 세 영어들이 수두룩해. 예문 중에 가장 좋은건 말이지, 가장 오래된 쓰임 이야. 가장 오래전에 어떻게 쓰였는가 를 보면 그 단어의 진짜 맛을 의미를 알게돼. 이 단어의 힘. 엄청난겨 이게. 일본애들 사전이 엄청난건, 만요집 고금화가집 이 그게 8세기부터여. 저기에 쟤들만의 용례가 그대로 있는겨. 이해 안되는 단어 가 저런 쓰임 을 보면, 싀안하게, 이해가 돼.

조선 말 사전이란게, 조선만의 단어들이, 용례가 없어요 ㅋㅋㅋ. 끽해야 15세기 에 한글로 보이는 몇개. 한글 로 쓴 문장이 없어. 19세기 글이, 고대 소설이야. 19세기 한글소설이 고대소설이야 ㅋㅋㅋ.

말에, 단어에, 아무런 힘이 없어. 쓴적이 없어. 못쓰게 해. 자기 말을. 이런 나라가 세상에 어딨냐고.

한글로 글 쓰기를 해보는게, 구한말에서나 해보는겨. 일제 때에야, 마음 껏 쓰는겨 ㅋㅋㅋ.

그리곤 조들이, 일본가 우리말을 못쓰게 했다는겨.

세상에 먼 저따위 역사 주작질 이 있냐고. 어떻게 저따위 거짓말을 해대냐고. 저런 거짓말을 당당히 해. 정의의 이름으로. 미친 들이야 저게.

저 작업을, 윌리엄 마이너 가 한겨. 단어를 찾아서 그 단어의 정의를 써서 준게 아니라. 저 팀에서, 단어들을 선정해서 부탁을 해. 이 단어 이단어 들이 이그젬플들이 없어요. 하면 걍 저 단어들에 대해 모든 책들을 보면서 단어별 문장 을 찾아써서 주는겨. 출처, 어느 책 몇페이지. 하면서.

저때 또한, 엘리자, 자식 여섯에 임신중이었던, 마이너에 죽은 자 의 부인.이 면회와서 책을 넣어주다.

유별나게 많이 오는 지원자의 것이 마이너 라서, 머리 가 궁금해서 누군가 하고 보니 정신병동에 있는 사람이고 자기보다 세살 위여. 1891년 에 찾아간겨. 마이너 가 1872년에 들어왔으니 20년 된거야. 57세 와 54세 의 만남 이야. 1899년 에 머리 가 마이너 의 업적을 찬탄해준거고. 너무 고맙다고. OED 에 들어간 예문중에 가장 많은 예문을 넣은 사람이, 윌리엄 마이너 야.

Minor's condition deteriorated and in 1902, due to delusions that he was being abducted nightly from his rooms and conveyed to places as far away as Istanbul and forced to commit sexual assaults on children, he cut off his own penis (autopenectomy) using a knife he had employed in his work on the dictionary.[14] His health continued to worsen and, after Murray campaigned on his behalf, Minor was released in 1910 on the orders of the then Home Secretary, 35 year-old Winston Churchill.[14] He was deported back to the United States and resided at St. Elizabeths Hospital where he was diagnosed with schizophrenia. He died in 1920 in Hartford, Connecticut, after being moved in 1919 to the Retreat for the Elderly Insane there

그리고, 1902년 에, 악화가 돼. 망상이, 자기가 납치를 당해서, 이스탄불까지 끌려가서, 거기서 아이들을 강간하도록 위협을 받는다며. 그래서 자기 페니스 를 칼로 짤라. 사전 작업할때 쓰던 칼. 머리 가 이 소식을 알고, 마이너 석방 운동을 하는겨. 저때 윈스턴 처칠 이 홈 씨크리터리 35세 였고, 풀어주고, 미국 정신병원 가서, 정신분열 조현병 진단 받고 10년지나 죽다.

Priti Sushil Patel[2] (born 29 March 1972) is a British politician serving as Home Secretary [note 1] since 2019. She previously served as Secretary of State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from 2016 to 2017. A member of the Conservative Party, she has been Member of Parliament (MP) for Witham since 2010. She is ideologically on the right wing of the Conservative Party and considers herself to be a Thatcherite.

Official portrait, 2020

지금 영국의 홈 씨크리터리. 가 프리티 쑤실 퍼텔. 인데. 이름이 저게 영어가 아니잖어? 인도여자여 저게 정체성이.

쑤시을 프탤 정도로 부르거든. 뒤에 엘 이 다크 엘 이야. 퍼텔 이든 프텔 이든 스트레스 가 뒤 앨 에 있어서 앞엔 슈와 야. 이 슈와 소리를 한글로 어 라고 표시하지만. 걍 으 야 으. 저런 걸 한글로 모두 다이어크리틱 으로 표시를 하면 돼. 이 작업을 이 한글 학자 들 때문에 못하는겨 이걸. 대체 왜 저런 작업을 안하는지 몰라.

한글 게 훌륭해요. 아무소리나 다 쓸수 있슈. 는 소리하고 자빤네. 아무소리내게 다이어크리틱 자모음 을 것들아 만들고 써라. 말도 안되는 개거짓말좀 그만해라 이 민조 들아.

찰스2세가 복권하고, 써던 노던 디파트먼트 의 씨크리터리 를 각각 만들어. 써던 이 지금 포린 오피스 가 되고, 노던 이 홈 오피스 가 돼. 포린 오피스 의 짱이 포린 씨크리터리 야. 홈오피스 의 짱이 홈 씨크리터리 야. 서열이, 프라임미니스터 다음 챈슬러 시크리터리 고 다음이 포린 시크리터리, 다음이 홈 시크리터리 야.

홈 시크리터리 가 홈오피스, 행안부 내무부 에, 저 여자가 MI5 밀리터리 씨크리터리 쎅션 5 를 맡는겨. 이걸 씨크릿 서비스 라해. 이건 국내 치안 이야.

포린 오피스 의 포린 시크리터리 가, MI6 쎅션 6 이야. 제임스 뽄드 형님이 여기여. 이걸 씨크릿 인텔리전스 써비스 라는 SIS 라 하는겨.

Patel was born on 29 March 1972 to Sushil and Anjana Patel in London.[3][4] Her paternal grandparents were born in Gujarat, India, before emigrating to Uganda, and running a convenience store in Kampala.[5] In the 1960s, her parents emigrated to the UK and settled in Hertfordshire.[6][7] They established a chain of newsagents in London and the South East of England.[8][9] She was raised in a Hindu household

야 저여잔, 조상이 엄청나네. 저 여잔 런던 태생이고, 할아버지가 인디아 구자라트 출신이고, 이 구자라트 는 거 아래 뭄바이 에 거 겨드랑이 날게 삐쭉 티나온 거기여. 우간다 로 이민가서 여기 캠팔라 에서 편의점 하다가, 부모가 영국으로 이민온거네. 저때 우간다 가 유명한 이디 아민. 이란 애고, 얘가 등장할땐, 우간다 모든 인민들이, 찬양 하거든, 민주 세상이 온다고, 이디 아민이 우리 인민들이 주인되는 세상만들어준대. ㅋㅋㅋ. 인민들이 찬양하면서 모신 애가 이디 아민.이야. 조오오오온나게 죽여 ㅋㅋㅋ. 아 저 아프리카 라는 들의 땅. 남아공 이란 저 나라. . 남아공이란 나라 에 누가 살수 있니 길가다 심심하면 총맞는 땅. 여자들 지나가면 강간당하는 나라 남아공. 만델라 님 위대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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