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史

유럽사128. 오스만과 비잔틴

didasko 2019. 1. 8. 12:54

유럽의 근대시작 16세기 이야기하다가 뜬굼없이 오스만으로 와버렸는데. 80년 전쟁 30년 전쟁 중에도 여전히 동쪽은 이 오스만이 서쪽에 개입을 하는거걸랑.

 

이전 글 움베르토 에코 할배의 월스트리트저널 글.을 나중에 번역하며 풀겠지만 말야. 저건 명문이야 저게. 저기서도 유럽 천년 중세.가 어마어마했던 이유. 그 이전 6천년 문명사와 다른 큰 것 중 하나가 바깥의 다른 이야기들을 유럽 특히 게르만애들이, 이 야만 바바리안 들이 말야, 야만으로 시작해서리, 자기들에 접하는 걸 얘들이 다 흡수를 한거야. 외부의 문명과 만나면서 쟤들의 사유를 얘들이 다 흡수를 한겨.

 

아이네이스.에서 유노여신.이 로마의 제우스인 요베. 유피테르. 주피터.라는 자기오빠이자 신랑에게 애원을 해. 마지막에.

 

master blood of Rome receive
the manhood and the might of Italy.
Troy perished: let its name and glory die!

 

로마라는 그 바닥의 사유. 생각.이 스민 로마의 피. 블러드가. 맨후드. 인간이라는 정체성. 동물과는 다른. 신을 함양한 인간. 신의 호울니스. 온전함을 갖추려하는 인간. 신의 자식이자 신과 섞인 데미갓. 반신반인.에서 인간이 되었지만 역시나 신.이었던 인간성 맨후드.를 갖게 해달라. 그래서 이탈리아의 힘을 갖게 해달라. 

 

트로이는 멸망했다. 그 트로이란 이름과 그에 스민 영광의 빛은 다 뒈졌다!

 

.

 

아이네이스.는 최고의 책이야 저게. 

 

저걸. 쌩짜 개무시기 야만인 바바리안인 게르만.이 저걸 한겨. 자기들꺼에 세상 모든 맨후드.들을 다 리시브.해서리 중세 천년동안 저걸 한겨. 얘들은 타 문명을 안죽였어. 다 배웠어. 그 죽어가는 것에서 알짜들만 취한거야. 로마.를 얘들이 갖고 온거야. 저 대목에서 말이야. 마스터블러드.라는 로마.가 게르만으로 완전히 대체된거야 이게. 

 

쟤들은 저때 자기들이 야만인걸 인정했어. 로마를 배우기 시작했어. 이게 인류사의 천운인겨. 글자들을 그대로 다 배운겨. 그러면서 자기들 꺼를 만들기 시작한거야. 그게 알프스 위의 로망스.라는 유럽언어들에 독어 영어 들이야.

 

 

독어 영어.는 라틴어의 변이들인 로망스에 넣지 않아. 저게 먼말이냐면. 먼가 더 독립적인겨. 라틴어와 별개가 아니라, 라틴어를 이용해서 보다 더 독창적인 언어 문화를 만든거야 자기들껄 활용해서. 해서 영독프. 해야하는겨 영프독.이 아니라. 프랑스어는 로망스야. 영어 독어는 로망스에 안넣어. 프랑스가 개후진 이유야 저 셋중에.
그러면서. 외부애들과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얘들이 다 흡수한겨. 리시브 더 맨후드.인겨 저게. 몽골야만들이 중국에서 배운것들을 갖고오는걸 얘들이 취해. 아랍상인들이 이전 동쪽에서 갖고오는것을 얘들이 취해. 이슬람이 티나와서리 갖고 오는것을 얘들이 취해. 스텝 아바르와 윗쪽 슬라브가 갖고오는것도 취해. 오스만이 티나와서 머 이상한거 갖고오면 얘들이 취해. 폴란드애들이 가벼운 기병코트를 만들어. 이런 옷양식도 취해. 
이게 중세 유럽천년.동안 한거야 그 전쟁의 천년 과정에서. 여기서 근대가 나온거야. 지금 문명은 백퍼 쟤들이 만든거야. 천년 피터지게 전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과정에 종교라는 이념으로 또한 수많은 이들이 죽었어 루터 이전에도. 저런 수백년동안의 이념전쟁 후에야 루터라는 개뼈다귀 가 티나온것일 뿐이야. 그러면서 사유의 탐색 모험을 천년을 한겨. 그게 중세 천년이야. 니미 효니 괘니 괴상한 지아먼시. 저런걸 지아먼시. 흙점이라해 . 저게 타로점이야. 코트에서 저따위 놀이나 하는겨. 그러면서 이성의 이념 개 유교 하는겨 저게. 완전한 무당들이야 정치하는 들이 이 유학자들은. 음양오행. 정말 개도 저따위 개이 없어. 이건 나중에 더 가고. 지금 저따위 이야기 하기도 싫으니.
저때 오스만.이 또한 중요한 재료야. 오스만 이야기 없이는 유럽이야기를 할 수 없어 또한.

트로이.는 글로리.라는 영광의 순간이나 있었지.
저  조선은 말야. 저따위 글로리.는 없어. 오백년 내내. 저건 그야말로 왕조야 저건.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그렇게도 잊었나 세월따라 잊었나 웃음속에 만나고 눈물속에 헤어져 다시는 사랑않으리 그대 잊으리 그대 나를 만나고 나를 버렸지 나를 버렸지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지금 백주년 하면서 말이지. 이들이 건국백주년 이러니 별 말 많아서리 건국이란 말을 이제 안쓰는듯 하는데. 
건국이라 하던 말던 간에. 솔직하게 말을해. 
저 인민인지 국민인지. 저거도 더 들어가면 웃긴데
http://www.law.go.kr/%EB%B2%95%EB%A0%B9/%EB%8C%80%ED%95%9C%EB%AF%BC%EA%B5%AD%EC%9E%84%EC%8B%9C%ED%97%8C%EC%9E%A5/(00001,19190411)

대한민국임시헌장

[시행 1919.4.11.] [임시정부법령 제1호, 1919.4.11.,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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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일치로 중외협응하야 한성에 기의한지 삼십유일에 평화적 독립을 삼백여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다시 조직한 임시정부는 항구완전한 자주독립의 복리로 아자손려민에 세전키 위하여 임시의정원의 결의로 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

선 서 문

존경하고 경애하는 아이천만 동포 국민이여, 민국 원년 삼월일일 아 대한민족이 독립선언함으로부터 남과 여와 노와 소와 모든 계급과 모든 종파를 물론하고 일치코 단결하야 동양의 독일인 일본의 비인도적 폭행하에 극히 공명하게 극히 인욕하게 아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와 정의와 인도를 애호하는 국민성을 표현한지라 금에 세계의 동정이 흡연히 아 집중하였도다. 차시를 당하야 본정부일전국민의 위임을 수하야 조직되었나니 본정부일전국민으로 더불어 전심코 육력하야 임시헌법과 국제도덕의 명하는바를 준수하야 국토 광복과 방기확고의 대사명을 과하기를 자에 선언하노라. 국민 동포이여 분기할지어다. 우리의 유하는 일적의 혈이 자손만대의 자유와 복락의 가이요. 신의 국의 건설의 귀한 기초이니라. 우리의 인도일마침내 일본의 야만을 교화할지요. 우리의 정의일마침내 일본의 폭력을 승할지니 동포여 기하야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지어다.

 

저게 법제처. 싸이트걸랑. 뜬굼없이 제0조. 해서리 1919년 4월 11일 제정. 하고 써있걸랑. 그러면서 10개조가 저 아래 붙어. 대한민국의 인민은. 이 3456조야. 8조에선 조선 구황실을 우대해야만해. 

 

헌데. 저기 제0조.에선 국민의 신임. 이천만 동포 국민이여. 등 국민 이란 단어들이 막막 티나와. 

 

 

원문.이란걸 보자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prevPage=0&prevLimit=&itemId=ij&types=&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ij_001&position=-1

 

여기에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디비래. 저기 4월 11일 저거겠지?

 

大韓民國臨時憲章 (1919. 4. 11)

大韓民國臨時憲章宣布文

 

 神人一致로 中外協應하야 漢城에 起義한지 三十有日에 平和的 獨立을 三百餘州에 光復하고 國民의 信任으로 完全히 다시 組織한 臨時政府는 恒久完全한 自主獨立의 福利에 我 子孫黎民에 世傳키 爲하야 臨時議政院의 決議로 臨時憲章을 宣布하노라

 

이게 저 제0조.에 해단하는 말이야. 선포문.하면서 신인일치.로. 유교는 말야. 신정일치야 이게. 지들도 말하걸랑. 신과 사람이 일치인겨. 그 신의 상징이. 타로점 치는 괘놀이하는 역경이야. 거기에 추연의 오행 오덕이고. 이걸 단절하지 않아. 신인일치의 중외 협응. 당시 한성에서 기의 한것도 신과 인간이 일치한겨. 그 이전에도 신인일치의 조선.이었을거라는건 짐만의 해석일뿐이지만. 저기선 국민.의 신임.해서 국민 이 나오고.

 

그리곤. 열개조 같고. 다음에

 

宣 誓 文

 

尊敬하고 熱愛하난 我 二千萬 同胞國民이어

 民國 元年 三月 一日 我 大韓民族이 獨立을 宣言함으로브터 男과 女와 老와 少와 모든 階級과 모든 宗派를 勿論하고 一致코 團結하야 東洋의 獨逸인 日本의 非人道的 暴行下에 極히 公明하게 極히 忍辱하게 我 民族의 獨立과 自由를 渴望하난 實思와 正義와 人道를 愛好하난 國民性을 表現한지라 今에 世界의 同情이 翕然히 我 國民에 集中하엿도다. 此 時를 當하야 本政府가 全國民의 委任을 受하야 組織되엿나니 本政府가 全國民으로 더부러 專心코 戮力하야 臨時憲法과 國際道德의 命하난 바를 遵守하야 國土光復과 邦基確國의 大使命을 果하기를 玆에 宣誓하노라

 同胞國民이어 奮起할지여다. 우리의 流하난 一滴의 血이 子孫萬代의 自由와 福榮의 價이요 神의 國의 建設의 貴한 基礎이니라. 우리의 人道가 마참내 日本의 野蠻을 敎化할지오 우리의 正義가 마참내 日本의 暴力을 勝할지니 同胞여 起하야 最後의 一人지 鬪할지어다

 

 

政 綱

 

一. 民族平等 · 國家平等及 人類平等의 大義를 宣傳함

二. 外國人의 生命財産을 保護함

三. 一切 政治犯人을 特赦함

四. 外國에 對한 權利 義務난 民國政府와 締結하난 條約에 一依함

五. 絶對獨立을 誓圖함

六. 臨時政府의 法令을 違越하난 者난 敵으로 認함

 

大韓民國 元年 四月 日

大韓民國臨時政府

 

▪ 延世大 現代韓國學硏究所, 『雩南李承晩文書』 東文篇 6, 122~123쪽.

 

선언문.이 나오고 정강.이 나와. 평등 평등. 평등해야해. 십개조의 네개는 인민.이어야 하고. 저기에 국민이 막막 언급이 돼. 대한민국 원년 4월.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 이승만문서.에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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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저게 원문이여?

 

大韓民國臨時憲法 (1919. 9. 11)

 

9월11일. 읽기 구찮아서. 콘트롤 에프.로 

國民 찾아봄. 저기에 없어 지믜 컴퓨터가 못찾겄대. 혹 있다면 지믜 컴퓨타가 쓰레긴거야.
저 아래로






 

 

 

 

다 쳐봐도. 국민이라는 단어는 읎어. 지믜컴을 버려야 하나 이거. 
저때 이승만의 글에만 선언문에 막 국민 했나 보네. 이승만.이 생각이 있는 인간이었네 이게. 

9월 11일 이. 처음 4월 11을 껄 더 풀은거야. 이게 확실한 헌법이야 이게.

大韓民國臨時憲法 (1919. 9. 11)

我 大韓民國은 我 國이 獨立國임과 我 民族이 自主民임을 宣言하엿도다.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엿스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엿도다.

 

 

 

半萬年 歷史의 權威를 仗하야 二千萬 民衆의 誠忠을 合하야 民族의 恒久如一한 自由發展을 위하야 組織된 大韓民國의 人民을 代表한 臨時議政院은 民意를 體하야 元年 四月 十一日에 發布한 十個條의 臨時憲章을 基本삼아 本 臨時憲法을 制定하야써 公理를 彰明하며 公益을 增進하며 國防及 內治를 籌備하며 政府의 基礎를 鞏固하는 保障이 되게 하노라.


4월 11일은 헌장. 이야. 헌장.에 제0조.라는 단어는 없어. 저 법제처.는 이승만의 자료를 편집한 제0조.일 뿐이야. 
진짜 헌법은 다섯달 후 9월 11일. 인민이야 인민. 대한민국의 인민을 대표한 임시의정원.

第1條 大韓民國은 大韓人民으로 組織함

第2條 大韓民國의 主權은 大韓人民 全體에 在함

第3條 大韓民國의 疆土는 舊韓帝國의 版圖로 定함

第4條 大韓民國의 人民은 一切 平等함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그래서. 대한인민.으로 조직한겨. 대한민국의 구성원은 국민.이 아냐. 인민이야. 정확한 단어야 저게. 

 

어디에도 국민.이란 말은 없어. 

 

 

 

다른거야. 국민과 인민은. 

 

 

인민은 그래서 일체 평등해야 하는겨. 불평등은 나빠. 평등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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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 지금 저게 지금 시대 문제인겨. 불평등이 사회 악이래. 인민인민. 좋은말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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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임시헌장.의 이승만 책에서 나온 국민. 의 진짜 종이를 보고프네. 저게 진짠지. 이승만은 그래도 생각이 있는거야 저게. 국민.이란 정체성의 의미를 쟤가 아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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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의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 어쩌고 선포하는 조선이고. 만세는 뜬굼없이 대한독립만세.는 머야. 

 

만세.라는 말의 어원을이전 썰. 한나라 한무제때 산호만세로 시작해서리. 중국 황제가 받는 거걸랑 제후와 신하들에게서. 해서 조선실록 세종때. 중국가 왔을때

 

세종실록 39권, 세종 10년 3월 19일 신축 2번째기사 1428년 명 선덕(善德) 3년 

예조에서 조서를 맞이하는 의식에 대해 아뢰다

 

예조에서 조서(詔書)를 맞이하는 의식을 계(啓)하기를,

....사찬이 창하기를, ‘꿇어앉으라.’ 하면 전하는 왕세자 이하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꿇어앉는다. 선조관이 조서를 선유(宣諭)하고 나면, 봉조관이 선조관 앞에서 조서를 받들어 그대로 조서안(詔書案)에 둔다. 사찬이 창하기를, ‘부복, 흥, 평신’이라 하면, 전하가 왕세자 이하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부복하였다 일어나서 몸을 바로한다. 사찬이 창하기를, ‘국궁, 사배, 흥, 평신’이라 하면, 전하가 왕세자 이하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몸을 굽히면, 풍악이 시작되고, 사배하고 일어나서 몸을 바로하면 풍악이 그친다. 사찬이 창하기를, ‘진홀(搢笏), 국궁(鞠躬), 삼무도(三舞蹈), 궤좌슬(跪左膝), 삼고두(三叩頭), 산호 만세(山呼萬歲), 산호 만세(山呼萬歲), 재산호 만세(再山呼萬歲), 출홀(出笏), 부복, 흥, 사배, 흥, 평신’이라 하면, 전하가 왕세자 이하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홀을 꽂고, 몸을 굽히고, 세 번 무도(舞蹈)하고, 왼쪽 무릎을 꿇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만세, 만세, 만만세를 부르고, ....

 
중국가 명나라 황제의 조서를 갖고 올때. 우대하신 세종대황께서. 중국가 꿇어안저라. 하믄 즌하와 신하들이 꿇어안저. 그리고 절 하고 굽신 하는 와중에 풍악을 울려. 진홀.에서 궤좌슬 삼고두에서 산호만세 산호만세 산호재만세 하고 평신까지. 하면 그에따라. 삼무도. 세번 발을 디뎌 땅에. 하고 다시 절하고 
 
삼고두.라는게. 저게 머리만 조아리는게 아녀. 
 
  1. 「跪」の号令で跪き、
  2. 「一叩(または『一叩頭』)」の号令で手を地面につけ、額を地面に打ち付ける。
  3. 「二叩(または『再叩頭』)」の号令で手を地面につけ、額を地面に打ち付ける。
  4. 「三叩(または『三叩頭』)」の号令で手を地面につけ、額を地面に打ち付ける。
  5. 「起」の号令で起立する。

 

 

저걸 확실히 안쓰는데. 1고두. 하면 손을 땅에 대고. 대갈빡을 지면에 부딪히는겨. 절을 한상태에서 대갈빡으로 땅에 박치기를 하는겨.

 

三拜九叩(The three kowtow and nine prostration)
“拜”:会意字。从两手,从下。《说文》古文上象两手,“丅”为“下”的古体。《说文》引扬雄说:“拜从两手下。”表示双手作揖,或下拜。隶书将“丅”(下)并入右边的“手”之下,而成为“拜”,一直沿用至今。
本义:“拜”,古代表示敬意的一种礼节。两手合于胸前,头低到手“拜”:就是站起身来,然后慢慢地双腿膝关节触地,上身匍匐在地,这个动作就称之为“拜”。
“叩”:《说文》无“叩”字,只有“敂”字。《说文》:“敂,击也。从攴,句声。读若扣。”从“攴”(pū),表示与击打有关。本义:击,敲打。
“叩”:其动作就是身体不起来,而头在地面,用头叩触地面三次。

중국들 말 더 정확하겐. 새번 카우타우. 에 아홉번 프로스트레이션. 이라 영역을 해. 프로스트레이션.이 땅에 납작 엎드리는겨. 

 

고. 기동작 취 시신체불기래. 일어나지 않어. 머리 두.가 지면에 있어. 그리고 지면에 땅을 세번 디리 박는겨. 

 

왜 세번일까? 저게 산호만세 산호만세 산호재만세. 세번을 땅바닥 헤딩으로 의례로 창조한거지 ㅋㅋㅋ. 

 

 

 

 

 

조선 실록에서. 저걸 세종때 기록하고. 안 쓰는겨 쪽팔려서 지들도. 그러다가 말야. 세월지나서리 저걸 잊은겨 저 유래를. 고종이 우리도 제국이고 황제다. 황제님이니 우리가 산호만세 산호만세 산호재만세 만세삼창 하겄슈.

 

 

우리네는 말야. 만세. 란 걸 해본 적이 없는겨 몸에서. 

 

 

세종이 처음 저걸 한거야 기록에 의하면. 물론 이전에도 했는지 모르지만. 중국가 조서 갖고 올때.

 

 

해서. 먼가 어색한겨. 만세 만세 만세 하고 손을 드는 동작이. 저건 정확하게 미디어가 창조한 양식이야. 

 

 

해서 누구네가. 삼일때 단지 하얀천으로 흔들었다는 기록이. 그게 더 신빙성이 있어보이는겨.

 

 

 

그 태극기.란 것도 저때 쟤들이 뚝딱 조정에서 만든겨. 그 음양의 효 세개로 된 팔괘 중에 네개를 꺼내서리 상하좌우에 붙이고 가운데 음양 한게 정확히 유가의 역경과 음양가 추연의 오덕종시설의 합작품이고. 저 역경과 오덕종시설.의 교미질로 된 걸 조선 오백년동안 한거걸랑 선비들이. 

 

 

그걸. 태극기로 자기들 제국 헤럴드리.로 쓴거야. 헤럴드리.라는걸 이제 처음 써보는겨. 할때도 저걸 쓴거야.

 

 

 

 

저걸. 순박한 민들이 저 상징을 다 알겠니? 알았겠니?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 삼천만 동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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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그렇게도 잊었나 세월따라 잊었나 웃음속에 만나고 눈물속에 헤어져 다시는 사랑않으리 그대 잊으리 그대 나를 만나고 나를 버렸지 나를 버렸지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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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슬퍼. 
 
이땅바닥은 다 거짓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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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대한독립만세.라고도 했겄지. 누구는 만세 만세 만세.가 우리것이여 할 수도 있겄지. 누구는 국민.이라고 했겄지. 헌데 삼천만 동포가 다 저런거야?
 
 
저런걸 걍 그대로 알려주면. 안되는거야? 대한민국의 인민.이 조직원이다. 라고 알리면 안돼? 그게 그리 문제야? 저 만세.의 시작은 중국가 시킨거다.라고 알려줘서. 걍 그래도 제대로 써보자. 해도 되는거 아녀? 
 
알릴건 제대로 알려라. 있는 그대로. 
 
조선을 부정하고 이제부터 한. 이었습니다. 해서 조선은 없어지고 이제부터 대한이었습니다. 조선은 사라진겁니다. 
 
 
그건 거짓말이야. 
 
저 만세.란 말은 더러운말이야 그래서. 다른 말 만들고 다른 동작을 만들어. . 쪽팔리지도 않냐. 
 
테레비에서 만세삼창 우리네도 해봅시다. 하는 지나가는 영상.을 보다가. 너무나너무나 끔찍해서 걍 끄적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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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얘기를 하려면 비잔틴을 개략 보자. 시칠리아도 엮이고. 결국 아라곤에 또 나바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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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독립선언서.랑 그 이전 150년 전의 미국독립선언서.랑 비교해봐라 라 했지만. 저 수준 차이가 너무한거야 저게. 저걸 썰할라다가 말은게. 미국독립선언서 이야기를 하려면 저때까지의 유럽 이야기가 있어야 저 이야길 할 수 가있어. 저건 마그나 카르타.를 이어받은겨. 마그나 카르타.는 이전의 쟤들 모럴이 스민거고. 더하여 쟤들 소위 인권선언이라는게 명예혁명 네덜란드 오렌지 윌리엄이 오면서 영국 코트에서 윌리엄 이라는 촌노믜 킹한테. 야 이 크게 소리내어서 읽을테니까 잘 들어처먹어. 하는게 저 헌장이야. 저런거에서 인권선언문이 나온거야 저기서 미국 독립선언서.가 나오는거야. 저런 이야기가 다 이해되어야 저 문장들이 이해가 되는겨.

 

 

저런게 하나없이. 걍 뚝딱 쟤들의 단어들만 겉으로 카피해서 조합한겨 우리네들의 선언문들은.

 

저게 얼마나 유치한 수준인건지를. 몰라. 조선의 천재들이 저따위 문장을 만들었슴둥! 

 

참 끔찍한겨 저 조선 오백년은. 

 

 

일본들도 한심한겨. 저 음양가.가 저들도 조정의 중앙관직이야 저게. 쟤들 지금 소설바닥도 저놈의 음양사야. 저들은 저걸. 내전하면서 조오온나게 죽이고 탈출하고 지금은 저 음양가를 걍 갖고 노는거고. 저 일본들이 똑같이 유학에 절고 절은 들이걸랑 저게. 저 잔재가 지금 여전한거고. 

 

 

일본덜 찬양은 니덜이나 해. 

 

일본덜이 그나마 저리 사는건. 자기들이 또한 후졌음을 자각을 한겨. 단지 그차이야. 그걸 깜빡 잊은게 2차대전이야. 갑자기 지덜이 대단한 들인줄 알어. 동양빠닥이 다 걸랑. 그 문명에서 자기들이 대단하게 느껴봤자 지 그게. 

 

그리곤 다시 깨갱 하는겨. 양키네 대리점이나 하겄슈. 그리곤 뱃속에서 칼가는겨 저들이. 

 

저걸 진짜루다가. 일본가 양키들 대리점으로 인정하고 사는 허섭한 애들인걸로 희희낙낙 하는겨. 

 

 

서기 1300년 즈음의 아나톨리아.

 

오스만.이 소위트 부근.에 있어. 오른쪽에 큰 로마셀주쿠인 럼셀주크.가 있고. 그 오른쪽엔 훌라구의 일칸국. 이때 럼 셀주크.는 일칸국에 하미지 하는거고. 왼쪽에 자잘자잘한 베일리크.들이 있는겨. 유럽식 카운티. 마그레이브 같은 백작령 후작령들이야. 아직 흑사병이 돌아서 일칸국이 망하기 전이야. 럼셀주크.는 바로 망하는겨 서기 1308년. 그 주위 자잘한 베일리크.들의 베이.들 한테. 일칸국은 그후 이삼십년 후에 흑사병에 더하여 럼 망하듯 스텝애들에게 망하는거고. 그러다 오른쪽에서 오는 차가타이.에서 나온 티무르.의 제국이 서는거야.

 

저 지도상에서. 오스만과 접하는 비잔틴.이 이즈미트. 이즈니크. 라는 니코메데이아.와 니카이아.는 아직 비잔틴땅이야. 그리고 터키땅 서남부.에 투르크들 사이에서 비잔틴 땅이 있고. 해변의 섬들 저 karasi 카라시.라는 베일리크옆의 섬이 가장 커. 레스보스. 외워. 맨 아래 Mentese 멘테세.의 섬 로도스. 등 해변 섬들은 비잔틴.에 베네치아에 제노바가 있는겨. 크레테 섬과. 저 깊숙한 키프러스.섬은 베네치아꺼야. 

 

낯설은 이름 트레비존드 제국. Trebizond 

 

The Empire of Trebizond or the Trapezuntine Empire was a monarchy and successor state of the Byzantine Empirethat flourished during the 13th through 15th centuries, consisting of the far northeastern corner of Anatolia (the Pontus) and the southern Crimea. The empire was formed in 1204 after the Georgian expedition in Chaldia,[5] commanded by Alexios Komnenos a few weeks before the sack of Constantinople. Alexios later declared himself Emperor and established himself in Trebizond (modern day Trabzon, Turkey). Alexios and David Komnenos, grandsons and last male descendants of deposed Emperor Andronikos I Komnenos, pressed their claims as "Roman Emperors" against Byzantine Emperor Alexios V Doukas.

 

Trabzon (

Turkish pronunciation: 

[ˈtɾabzon]), historically known as Trebizond, is a city on the Black Sea coast of northeastern Turkey and the capital of Trabzon Province

 

트레비존드. 지금 터키 도시 트라브존.의 옛 이름이야. 폰투스 오른쪽 흑해 해변아래 있는 도시여. 십자군 4차 베네치아 통령 90된 할배 엔리코 단돌로 형이 와서리 콘스탄티노플을 먹걸랑. 이전 콤네노이 왕조 다음에 안겔로스 왕조걸랑 비잔틴은. 안겔로스 시작이 이삭2세.여. 이사람의 아버지와 형이 독립운동하고 얜 걍 도망안다니고 있다가 이전 황제가 수도 비운 사이에 황제가 되어서리 안겔로스 조.를 세워. 도망다녔던 형.이 와서 감투 쓰지만 열받아. 동생 이삭2세를 감금해 눈깔 빼고. 얘가 알렉시오스 3세. 큰삼촌 피해서 도망간 이삭2세의 아들.이 십자군 가던 애들을 비잔틴으로 방향을 틀어. 해서 골든 혼.이란 윗 바다를 통해서리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겨. 해서 황제 오른게 저 아들 알렉시오스4세. 헌데 준다는 돈을 안줘. 비잔틴은 맛이 갔고. 이걸 아예 십자군 4차군들이 먹어. 해서 비잔틴을 나눠갖어

 

The Frankokratia (GreekΦραγκοκρατίαFrankokratíaanglicized as Francocracy

lit.

'rule of the Franks'), also known as Latinokratia (GreekΛατινοκρατίαLatinokratía, 'rule of the Latins') and, for the Venetian domains, Venetocracy (GreekΒενετοκρατίαVenetokratía or Ενετοκρατία, Enetokratia)

 

이게 프랑코크라티아(라티노크라티아). 그리고 베네토 크라티아. 즉 프랑크애들이랑 베네치아가 나눠 먹은겨.
이걸 라틴 제국. 또는 로마니아 제국. 해 
비잔틴 콘스탄티노플.에는 황제.로 플랑드르 의 에노백작.이 하는거고 이어 끊겨서 카페의 쿠트네.가 하고. 여기 바쌀들로 아래 텟살로니카.는 킹덤. 해서 몬테페라토 후작들이 킹.하고 아래 모레아 반도는 아카이아 군주령.으로 프랑스 기사들이 갖고 가다가 나폴리의 카페앙주네가 이어받고. 아테네 덧치는 따라온 아라곤.애들이 먹어. 에게해의 섬들은 베네치아가 점령하는거고.

그리고서는. 비잔틴에서 쫓겨난 왕족과 귀족들이. 아나톨리아 땅으로 튀는겨. 서기 1200년대 초야. 이때 아나톨리아는 셀주크.는 망하고 럼셀주크.가 있을 때걸랑.

셀주크 친척 럼셀주크.는 시작이 오스만이랑 비슷해. 니코메데이아. 니카이아. 이 서쪽에서 시작한겨 비잔틴을 저때 잠시 내 쫓고. 이게 서기 1070년대야. 얘들이 여기서 동쪽으로 확장 통일하는겨. 해서 수도가 처음엔 니카이아.에서 남쪽 코냐 Konya 동쪽 Sivas 스.로 옮기는겨. 그러면서 오히려 서쪽이 헐렁헐렁 해진겨. 쫓겨난 비잔틴애들이 니카이아를 회복하면서 여기서 버티는거야. 이게 니카이아 제국.이야. 여기서 50여년 버티다가. 다시 바다건너 비잔틴을 회복하면서 텟살로니카 킹덤 까지는 먹는겨 얘들이.
텟살로니카.는 바로 비잔틴이 갖고와. 에게해 바다 섬들은 베네치아가 버티는겨 메메드2세 나온 후부터 더 피터지는거고. 아테네 더치와 그 아래 모레아(필로폰네소스 반도)는. 이 모레아는 위 아테네의 바쌀로 들어가. 아테네 덧치는 나폴리의 카페 앙주가 갖고 가고. 모레아.는 아라곤이 가져갔지만 이게 카페앙주의 관할이 되다가. 막판에 비잔틴이 이걸 먹어. 이들이 콘스탄티노플 함락당하는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들이야. 이 형제가 지배하다가 콘스탄티노플 점령당하고 형은 도망가서 내가 비잔틴의 마지막 핏줄이여 해대다 죽고. 동생은 메메드2세의 수하로 들어가서리 수도사 하다 죽고.
할때 말야

The Palaiologos (pl. Palaiologoi; GreekΠαλαιολόγος

pl.

 Παλαιολόγοι), also found in English-language literature as Palaeologus or Palaeologue, was the name of a Byzantine Greek[1] family, which rose to nobility and ultimately produced the last ruling dynasty of the Byzantine Empire

 

니카이아 제국.에서 비잔틴을 다시 회복하는 왕조.가 팔라이올로고스. 왕조야. 얘들이 2백년 가까이 한겨 메메드2세 오기까지. 막판엔 콘스탄티노플과 모레아땅 과 에피루스 땅이었을때 모레아.는 직전에야 자기들께 된거였었는데. 

 

 

비잔틴.제국이란게. 왕조가 20여개야. 자세히 세보지 않았는데. 

 

The Macedonian dynasty ruled the Byzantine Empire from 867 to 1056, following the Amorian dynasty.

 

팔라이올로고스. 보다 쪼금 모자란 게 마케도니아 조.야. 얘들 두 왕조가 비잔틴에서 190여년 씩 한게 제일 길고. 다 자잘한 왕조들이 천년을 한겨. 즉 혼란스러운 동네였어 저 비잔틴이. 말로만 천년의 제국 이지만. 걍 로마의 향내를 즐긴거야. 


왕조.라는 다이너스티.가 킹덤.과 동의어가 아냐. 고대 로마.가 공화정이전에 킹덤이야. 이 킹덤이 다이너스티.라는 조.를 이루지 않았어. 권력의 집중으로 저런개념은 나누는건데 넘어가고.
왕조가 오래가는 이유는. 이전에 포르투갈 아르마다 이야기할때. 인도에

Kingdom of Cochin (also known as Perumpadappu Swaroopam, Mada-rajyam, or Kuru Swaroopam; Kocci or Perumpaṭappu)

 

코친 킹덤. 

6th century AD–1949. 이 킹덤이 1300년 동안 있었던겨 이게. 인도 서남부에서. 1300년 동안. 저기서 걍 야만스런 동네로 걍 살은겨. 오래 있었다고 대단한것도 아냐 이게. 저긴 힌두 킹덤이야. 이 힌두교 불교.가 또한 지배하기 좋은 도구야. 


이 문명이 수준 차이나는게 사람들 문제인가 종교의 문제인가. 그리스도와 불교 이슬람 힌두교 도교 의 문제인가.
태국이 불교국가야. 지금 태국 후져. 윗대갈 만나면 바닥을 기어야 해. 아주 예의가 바른 거지 유자들이 제일 부러워 할꺼야 저 태국을. 걍 야 저긴. 저런애들이 소위 차별을 더 해. 지들 보다 못나보이는애들은 아예 인간 취급을 안하는 애들이 이 태국이야. 

사람들을 이념으로 철저하게 길들이면. 저리 천년 이상을 갈 수가 있는거야. 저긴 완벽한 독재 군주 국가야 코친이란 킹덤은.

저게 조선이야 조선. 조선왕조 오백년. 아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념 통제의 땅이자 공안왕조야. 헨리 세비지 랜더의 말이야 그게. 사대문에서 폴리스들이 민들이랑 비슷 복장에 돌아다니면서 이상한 말하면 잡아가는겨. 폴리스가 옷을 구별해서 입는게 아니라. 탐정질하면서 난언놀이를 잡는겨. 저게 기찰 이란거고. 조선은 이 기찰이 만든거고, 사람들이 난언을 고발하면 공무원에 땅에 여자를 받으면서 살아가는겨. 고발 고소의 땅이야. 해서 반기조차 들 수 없는겨 오백년을. 엄~청난 애들이야 얘들이. 저따위 들을 위대한 문명이라고 지폐와 동전으로 떠받드는 민족애들은 엄~청난 거지 더. 고려민족 은 죽은겨 이땅에서. 삼국시대 민족은 죽은겨. 고려를 싸그리 죽인 조선의 민족의 땅인겨 여전히. 서기 1100년 전의 민족은 죽은겨. 

저렇게 오래가는 왕조.가 그 땅을 죽이면서도 버티는 왕조가 있는 반면에.
잉글랜드는 1066년 부터의 윌리엄 핏줄이야. 프랑스는 찰스의 아들들이야. 똑같이 오랜 다이너스티들이 있지만 근대를 만드는 애들이 있는거지.

여하튼 그나마. 팔라이올로고스.라는 마지막 조.는 오래 버틴겨. 쟤들은 안겔로스 이전의 콤네노이 조.의 먼 핏줄로 봐. 


저들이 니카이아.로 옮겨서 있을때. 이때 비잔틴.의 정체성으로 같이 있던 곳이. 저 트레비존드. 제국이야.

아 드뎌 나온겨 다시 저 단어가.
쉼. 

야 이거 제목 쓰고 정작 본론은 하나도 못하고.

The Despotate of Epirus (GreekΔεσποτάτο της Ηπείρου) was one of the Greek successor states of the Byzantine Empireestablished in the aftermath of the Fourth Crusade in 1204 by a branch of the Angelos dynasty

1205 – 1337/40a 1356–1479b

 

The Empire of Trebizond or the Trapezuntine Empire 

1204–1461

십자군 4차가 라틴제국을 세울때. 비잔틴 구왕족과 귀족들이 바다 건너 니카이아 제국.을 세우고. 다른 애들은 아드리아해변에 에피루스 데스포테이트.를 세워. 그리고 다른 하나가 트레비존드 제국.이야. 트라브존.에 있는

데스포테이트.는 당시 비잔틴 행정단위고. 나중 아카이아에서 모레아.를 직전에 갖고올때 여기도 데스포테이트.야
트레비존드.는 십자군 4차 오기직전에. 흑해 동쪽해변의 조지아땅에 출정을 하러 간겨 비잔틴애들이. 이 흑해 동남부와 그림반도를 얘들이 이때 진출을 해. 그런데 자기들 본거지가 동시에 점령당한겨 수도가. 해서 걍 여기 온 애들이 내가 황제요 하며 따로 간거야. 
에피루스.는 예전 퓌루스. 피루스. 하는 애가 있던 곳이고. 에피루스도 이후 다시 비잔틴으로 들어가고. 모레아.도 직전 비잔틴으로 들어가고. 트레비존드.는 따로 독립해서 지들제국 하다가. 모두 오스만의 메메드2세에게 먹히는겨 콘스탄티노플 먹히면서.
.

The Byzantine Empire, also referred to as the Eastern Roman Empire and Byzantium 

395–1453
천년 제국 비잔틴. 하지만 말야. 콘스탄티누스 대제.부터 보걸랑. 죽고서 수도가 이사람이 세운도시.가 되는거고. 이전 썰.
이후 20여개 왕조가 들어서고. 2백년 못가는 핏줄인 마케도니아.와 마지막 팔라이올로고스 조.만 길 뿐 다들 자잘자잘에 내전도 심하걸랑. 서로마 망할때 선거라 게르만에 훈족에 다음엔 슬라브에 아바르 라는 스텝이 위에서 치고 올라오고. 오른쪽은 파르티아.는 이전에 망하고. 사산.이 점령하면서 오른쪽을 점점 뺏기다가. 슬람이가 또 치고 올라오면서 얘들이 사산.을 처먹고. 그러다가 투르크.가 티나오면서리 셀주크.가 레반트까지 가고 아나톨리아는 럼셀주크가 들어오면서 이쪽은 다 뺏겨가는 와중이걸랑.

오스만.이 저때 등장하는겨. 럼셀주크가 섰던 곳 오른쪽에서. 

Original dioceses of the Roman Empire, created by emperor Diocletian (284-305)


위기의 3세기.를 마무리하는 디오클레티아누스.때인 서기 300년 전후의 지도. 이사람이 부하 막시미아누스.와 이분할 사분할로 땅을 나누걸랑. 해서 서쪽은 막시미아누스.에게 주고. 자기는 동쪽을 맡아. 여기 수도가 니코메데이아. 해변이야. 이즈미트. 왼쪽은 수도가 메디올라눔.이라는 밀라노. pars 파르스. 라는건 part. 파트.야 판노니아까지 서쪽파트. 이 오른쪽이 동쪽 파트. 
교구.라는 다이오시스. Diocese는 

Origin

Middle English: from Old French diocise, from late Latin diocesis, from Latin dioecesis ‘governor's jurisdiction, diocese’, from Greek dioikēsis ‘administration, diocese’, from dioikein ‘keep house, administer’.

 

저때 나온말이야. 그리스어 디오이케시스. 관리. 집 지키는겨. 행정. 저 지역명을 눈여겨 봐.

 

Dioceses of the Roman Empire around 400 AD

서로마 망하기 직전.인 서기 400년. 저 지도.가 재밌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네개로 나눌때의 네개.가 로마 망하기 직전까지는 이름을 유지해. 이 단위가 프라이토리언 프라이펙트.

 

The praetorian prefect (Latinpraefectus praetorioGreekἔπαρχος/ὕπαρχος τῶν πραιτωρίων) was a high office in the Roman Empire

 

지금 프레픽트.라는 종속 행정단위.야. 군대에서 쓰는 용어고. 프라이토르.가 관리하는 지역이자 지위. 

praefectura praetorio 

. 저 지도에 보이는 네개야. 서쪽에 갈리아.와 이탈리아. 동쪽에 일뤼리쿰.과 오리엔트. 오리엔트가 발칸 동쪽인 트라키아 부터 아나톨리아에 레반트. 이탈리아는 아래 아프리카 북쪽까지 맡는거지. 
 
디오이케시스.라는 다이오시스.보다 큰 덩어리가 프라이토르.의 프라이펙투스.인거야. 여기의 짱이 프라이토르. Praetor. 
 
이걸 법무관.이라고 일본애들이 번역한걸 쓰는거고. 고대로마때 선거해서 뽑은. 콘술 다음의 자리야. 프라이토르.가 저길 나눠 맡는겨 각각. 
 
이전엔 걍 프라이펙투스.였걸랑. 프라이펙트. 이전 빌라도.라는 폰티우스 필라테. 가 유대.의 프라이펙투스. 라고 아예 써있는겨. 이때도 프라이펙투스.라는 자리가 있었어. 이게 네개 땅으로 나누면서 프라이토르.의 프라이펙트.로 커진거야 저때는. 
.
 
독립적인 행정단위가 짙은 빨강이. 카르타고. 아카이아. 터키땅 서남부해변 아시아. 

 

Provincia proconsularis 

 

여긴 단위가 프로빈키아. 인겨. 프라빈스 Province. 여기 책임자가 프로콘술. Proconsul . 즉 콘술.임기 끝나고 프로빈키아.를 맡는거야. 여긴 콘술 했던 사람이 하는 자리야. 

 

카이사르.가 술라.에게 도망다닐때 바다건너 참모했던 곳이 테르무스.가 있던 터키 서남부 저 아시아.라는 프로빈키아.인겨. 여기 해변 큰섬이 레스보스.여 여기 내란이 나서리. 테르무스.가 카이사르 시켜서 비튀니아 니코메데스 한테 가서 배랑 병력좀 갖고 와라 심부름 보냈다가 게이소문날때. 테르무스.가 전직 프라이토르.야. 저때는 프라이토르.와 콘술이 퇴직하고 맡던 자리였었어. 

The Roman magistrates were elected officials in Ancient Rome.

 

저런 자리를. 마기스트라투스. magistratus 라는 마기스트레이트. 해. 이건 기본적으로 사법 행정 군사 권력이 있는자리야. 이걸 크기에 따라서. 콘술부터. 프라이토르.에서 콰이스토르. 라는 회계관 도 나름 이게 있어. 

 

 

저기서 지명을 보면. 갈리아 땅에. augusta treverorum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 이게 지금 트리어 Trier. 그 아래 왼쪽 바다 칼날 접한곳이 Burdigala 부르디갈라. 지금 보르도. Bordeaux. 여기에 가론.강이 지나면서 중세에 가스코뉴.란 지명으로 나누고. 일리뤼쿰.에 있는 Simium 시미움. 저 위경계는 도나우강. 다뉴브강.이야. 이 강이 뚝 떨어져서 접한 강변의 도시 시미움.이 지금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주변인거고. 이게 쭉 흑해로 흘러서 아래 Serdica 세르디카.가 지금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인겨. 베오그라드.로 떨어지기전에 위에서 기역자로 끊기는 모퉁이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야 

 

 

저런 도시들이 다 쟤들 로마애들이 다 만든겨. 

 

프로빈키아.라는 프라빈스.는 전직 콘술이 저때 책임자야. 이 프로빈키아.는 

 

popular etymology is from Latin pro- ("on behalf of") and vincere ("to triumph" or "to take control of"). Thus a "province" would be a territory or function that a Roman magistrate held control of on behalf of his government. In fact, the word province is an ancient term from public law, which means: "office belonging to a magistrate". This agrees with the Latin term's earlier usage as a generic term for a jurisdiction under Roman law.

 

 

프로.와 빈케레. 인데. 굳이 풀면. 로마의 이익을 위해서 완전히 장악하는겨. 고대 로마.는 자치권을 인정했어. 각 지역별로. 즉. 중요한건 법.이야. 로마법은 로마시민들이 대상이야. 그 지역은 해당지역이 갖고 쓰던 법을 따르는겨. 로마 시민권자는 로마법에 따라야 해. 해서 사도 바울.이 레반트에서 굳이 로마로 압송을 한겨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걸랑.
유대땅은 서기 6년에 아우구스투스.에 의해서 프로빈키아.가 된거야. 즉 지저스. 있을때는 프로빈키아야. 빌라도.라는 필라테.는 유대의 프라이펙트.야. 로마법. 대로 판결을 하는겨.
프로빈키아.는 로마법.을 따라. 그 땅의 소위 관습법을 적용을 안해. 이건 그 땅의 법.을 못믿는겨. 즉 바닥은 후지다.라는 걸 전제하는겨 이게. 그래서 직접 로마가 다스리겠다는 거야. 로마법으로. 해서 이걸 식민지.란 단어로 쓴거야. 
지저스의 수난.일때의 유대.는 당시 프로빈키아. 로마법.을 적용해서 빌라도 필라테.가 적용하는데. 자기가 보기엔 죄가 없어. 해서 갈릴리땅으로 보낸겨 거기 사람이니 그 갈릴리에서 재판하라고. 여긴 킹덤이야. 자치구야 로마법이 아냐. 헤롯 안티파스.가 자기들법으로 세례자요한을 죽인겨. 지저스도 여기온겨. 헌데 얜 걍 보내. 사건은 유대에서 벌어졌는데 왜 내가 재판을 해야하냐는겨. 필라테.는 그 분위기를 통제할 수 없어서 어찌할 수 없이 죽인거야.  

 

똑같이. 세례 요한을 목잘라서리 살로메가 쟁반으로 받아서 엄마에게 줄때. 이때 킹은 갈릴리의 헤롯 안티파스.잖아. 이때 갈릴리는 킹덤이야. 즉 자기들 법으로 사형을 시키는겨.
다음 제버디의 야코브.(야고보)가 죽다 사도행전.에서는 헤롯 아그리파.야. 재임 서기 41년에서 44년. 이때 유대.는 칼리굴라.가 프로빈키아. 딱지를 뗀거야 여기서. 얜 자기땅 법으로 죽인겨. 그리곤 다시 프로빈키아.로 들어와. 로마법.이야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이야. 로마시민은 항소권이 있어. 로마법으로 프로빈키아.의 민들을 다스리지만. 적용하는 잣대가 달라 로마시민은. 항소심은 로마에 가서 하는겨 그래서. 로마에서 죽어. 화재로 죽었는지 어드래 죽었는지 몰라. 

The themes or themata (Greekθέματαthémata

singular:

 θέμα, théma) were the main military/administrative divisions of the middle Byzantine Empire

 

비잔틴.은. 서로마 망하고. 자기들 땅을 뒤에 행정단위를 바꿔. 벼라별 이민족들이 사방에서 다 난리야. 네분할 쪼갰듯이 얘들도 쪼개서 책임지라는겨. 테마다. 테마. 들. 영어 띰즈. 여기 테마. 중에 하나가 마케도니아. 이고 저기 출신인 조.가 190여년 간거야.

 

 

서기 1045년의 비잔틴 테마.들 이야. 아랍 압바스애들에게 다 뺏기고 아나톨리아는 그래도 보존할때에 발칸에 이탈리아 남부가 테마 들로 나뉜거고. 저것도 점점 사방에서 다들 오면서 저 행정단위도 의미가 없어질때에.

오스만이 오시는거야. 

 

 

아 이거 저 제목 단어 하나라도 풀수 있으까 몰겄네 이거.

 

 

Area of the Ottoman Beylik during the reign of Osman I.

 

오스만.이 시작 1299년 해서 1324 에 죽을때 까지. 쇠위트.에서 쪼금 간겨. 부르사. 니카이아. 니코메데이아.는 아직 비잔틴꺼야. 그리고 사방은 다른 투르크들의 베일리크들의 베이.들이 있는겨. 오스만은 쇠위트.에서 도마니스.란 찔끔 지역에서 아레 에스키셰히르.와 위로 쪼금 간것 뿐이야. 저 위로 니카이아와 니코메데이아. 부르사. 까지 해서 비잔틴을 아나톨리아에서 내몬건 오스만의 아들. 오르한.때 한거야. 

 

According to Ottoman tradition, Osman's father Ertuğrul led the Turkic Kayı tribe west from Central Asia into Anatolia, fleeing the Mongol onslaught. He then pledged allegiance to the Sultan of the Anatolian Seljuks, who granted him dominion over the town of Söğüt on the Byzantine frontier.[13] This connection between Ertuğrul and the Seljuks, however, was largely invented by court chroniclers a century later, and the true origins of the Ottomans thus remain obscure.[14]

 

오스만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몇 개 안돼. 생년도 잘 몰라. 하튼 시작은 별거 없어. 어찌보면 아빠 에르투룰.이 그 아빠가 칭기스칸 오고서리 걍 럼셀주크에 하미지한거에. 베이. 라지만 걍 촌장 부락민들 우두머리 정도여 저게. 

 

Osman became chief, or bey, upon his father’s death in 

c.

 1280.[13] Nothing is known for certain about Osman's early activities, except that he controlled the region around the town of Söğüt and from there launched raids against the neighboring Byzantine Empire. The first datable event in Osman's life is the Battle of Bapheus in 1301 or 1302, in which he defeated a Byzantine force sent to counter him.[15]

 

추장 아빠가 주고 그 자리를 받았어. 베이. 라 하지만 거창한것도 아냐. 헌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 이게 바페우스. 전투야. 이전 한번 언급. 여기가 니카이아.와 니코메데이아.의 중간정도야. 저기 가기 전이야. 이겼지만 저 두도시를 점령 못해. 

 

 

이 비잔틴.이 천년 제국 하지만. 사방의 이민족에 더하여. 천년간의 내전을 하면서 안으로 밖으러 다 곪은겨 

This is a list of civil wars or other internal civil conflicts fought during the history of the Eastern Roman or Byzantine Empire (330–1453). The definition of organized civil unrest is any conflict that was fought within the borders of the Byzantine Empire, with at least one opposition leader against the ruling government. For external conflicts see the list of Byzantine wars.

 

저 목록을 보면. 내부의 리볼트. 리벨리온. 들에. 자기들 왕족들끼리도 전쟁이야 권력싸움. 머 헌데 이런거는 다들 하는 거걸랑. 유럽애들은 이런걸 피터지게 하면서 더하여 사유가 터지는겨. 리포메이션.이라는 종교개혁이 나오고 반 종교개혁이라는 카톨릭 종교개혁이 나왔어. 그 직전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란 것이 나오고. 이게 더하여 유럽 전반에 르네상스를 만들어. 그러면서 산업혁명으로 가는거야. 얘들은 종교개혁 이란 이름으로 근대. 를 시작했어. 

 

헌데. 똑같은 일들이 벌어졌던 비잔틴.은 저러다가 걍 망한거야. 

 

 

저게 중요한겨. 저기서 질문이 나와야해. 송곳같은 질문이. 왜? 서로마가 망한 이탈리아와 그 너머의 서유럽은 저리 근대.를 만들었는데. 중세 천년을 거쳐서. 헌데 똑같은 중세 천년.의 비잔틴은 왜 근대를 못만들고 망했는가?

 

 

저 비잔틴.만 이야기 하는 들은. 찬란한 비잔틴. 위대한 비잔틴. 하는 개들이 있걸랑. 넘어가고.

 

 

저 질문을 하고. 답을 해야해. 똑같은 질문을 동양빠닥 이슬람빠닥 중남미빠닥에 똑같이 들이대야해. 

 

저 질문과 답이 지금도 똑같은겨 그 내용이. 앞으로의 미래가. 

 

아, 참, 헌데 말야. 위대한 조선을 사쿠라들이 어찌 압니까? 하는 그 인식 수준의 대갈들에겐 머 이건 할말이 없어. 똑같어. 위대한 조선을 양키들이 어찌 압니까? 위대한 조선을 게르만들이 어찌 압니까? 오직 전쟁만 할줄 아는 어쩌고 저쩌고. 넘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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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페우스 전투가 오스만 베일리크.가 비잔틴이랑 전투한겨. 오스만이 지휘를 하고. 이걸 오스만이 이겨. 니카이아. 니코메데이아.가 간당간당 해진겨. 저게 서기 1301년 또는 1302년.

 

 

비잔틴.이 부르는게 카탈란 용병.이라는 카탈란 컴퍼니.

 

비잔틴은 소아시아.라는 아나톨리아땅이 비튀니아.라는 오스만있는 땅들과 그 아래 서쪽은 해변부터 해서리 비잔틴꺼였어. 헌데 여기 투르크들의 베일리크들이 점령하면서 이 서쪽도 다 먹혀가는거야. 하물며 니카이아 까지 온거고 전략적 요충지 위 니코메데이아 가 먹히면 바로 콘스탄티노플이야. 

 

The Sicilian Vespers (Italian: Vespri siciliani; Sicilian: Vespiri siciliani) was a successful rebellion on the island of Sicily that broke out at Easter 1282 against the rule of the French-born king Charles I, who had ruled the Kingdom of Sicily since 1266. Within six weeks, three thousand French men and women were slain by the rebels, and the government of King Charles lost control of the island. It was the beginning of the War of the Sicilian Vespers.

 

시칠리아.의 만종. 이라는 저녁기도 사건이 서기 1282년.이야. 30 March – 28 April 1282
아라곤과 카페앙주가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나누기 전에. 노르망디의 오트빌.가문이 백여년전쟁하고 세운 시칠리아 킹.은 나폴리까지 겸하는겨. 이게 마지막 여자가 호헨슈타우펜 하인리히 6.와 결혼하면서 아들 프리드리히2세.가 시칠리아 킹.으로 이탈리아 남부까지 다 먹고. 황제가 되다가. 교황이 이인간을 싫어하걸랑. 십자군 안간다고. 그러다가 간 사이에 나폴리를 교황이 먹어. 예루살렘 다녀와서 아예 이탈리아를 다 먹으려해. 롬바르디아 동맹 나오고. 괼피 기벨리니 나뉘고. 이때 교황이 카페 앙주 샤를을 불르걸랑. 그러면서 호헨슈타우펜이 다 뺏긴겨. 얘들이 시칠리아까지 먹어. 헌데 시칠리아는. 프리드리히2세가 자유의 인간이걸랑. 살라딘 조카랑도 예루살렘에서 놀았어. 자기 수하애들이 이슬람을 믿어. 시칠리아는 이전 무슬림들이 지배하던 땅이야. 이걸 다 인정해. 얜 아랍어도 알아. 헌데 깝깝한 카페 샤를.은 이런 분위기가 괴상한겨. 여기서 저녁기도 때. 시칠리아인들이 저 프랑스 인들 삼천명을 죽이면서. 얘들을 내몬겨. 

The War of the Sicilian Vespers or just War of the Vespers was a conflict that started with the insurrection of the Sicilian Vespers against Charles of Anjou in 1282 and ended in 1302 with the Peace of Caltabellotta. 

 

그리곤. 20년이 전쟁인거야. 저건 아라곤.과 카페 앙주 샤를의 전쟁인겨. 

 

Peter III of Aragon (1239–11 November 1285),[1] known as Peter the Great, was King of Aragon, King of Valencia (as Peter I), and Count of Barcelona (as Peter II) from 1276 to his death, (this union of kingdoms was called the Crown of Aragon). At the invitation of some rebels, he conquered the Kingdom of Sicily and became King of Sicily in 1282, pressing the claim of his wife, Constance II of Sicily, uniting the kingdom to the crown. He was one of the greatest of medieval Aragonese monarchs

 

아라곤의 피터3세.의 부인이 시칠리아.야. 호헨슈타우펜 여자야. 프리드리히2세 손녀야. 이때 아라곤은 바르셀로나 가문이고. 

 

프리드리히2세의 첫부인이 아라곤여자야. 이 둘에서 나온 아들은 일찍 죽어. 아라곤에 시집가는 여자는 안적법 만프레트.의 딸이야. 이 만프레트.가 마지막을 버틴겨. 이여자가 아라곤 신랑을 꼬시는겨. 시칠리아.를 우리가 지켜주자고. 앙주 샤를이 자기 아빠를 죽인겨. 복수해야해. 때마침 베스퍼즈 사건이 터졌어. 

 

교황은 카페 앙주 샤를 편이야 당근. 자기가 불른거야. 아라곤의 피터3세가 북아프리카 가는척 몰래 오는겨 여길. 그러면서 민들에게 그러는겨. 고대 그리스에서 카르타고의 그 시칠리아를 내가 다시 만들겠다고 도와달라고. 하면서 여기서 20년을 카페 앙주와 전쟁하는겨. 이때 여기 온 이들이 카탈란 용병. 이라는 카탈란 컴퍼니야. 카탈로니아. 

 

이 유럽중세가. 이전 고대와 동시대 다른 문명과 다른게 이 컴퍼니.라는 용병이야. 이전 썰했지만. 더 풀어야하는데. 넘어가.

 

아라곤의 피터3세. 다음이 아라곤의 알폰소3세. 다음이 제임스2세. 둘다 이사람 아들이야. 얘들까지 간겨 일찍 죽고. 헌데 저 전쟁 끝나는 1302년 까지 시칠리아에서 온. 부인이자 두 킹의 엄마.는 살아있는겨. 엄마 등쌀에 끝까지 간거야. 저해에 시칠리아 엄마가 죽어. 
그러면서. 여기서 임무완수한 카탈란 용병들이. 바페우스 전투에서 오스만.에게 패한 비잔틴.에게 콜 당하는겨. 해서 이들이 바로 에게해를 넘어서 비잔틴에 가는거야.

The Great Catalan Company departed from Messina with 36 ships (including 18 galleys) transporting about 8,000 men (1,500 cavalry, 4,000 almogavar foot soldiers and an indeterminate number of servants and auxiliary personnel). The exact figures are a matter of dispute, for although the numbers provided by Ramon Muntanerare trusted by later historians Francisco de Moncada and George Paquimeres, the contemporary Byzantine historian Nicephorus Gregoras gives a total number of only 1,000 men.[1]

After a brief stop at Monemvasia, the company arrived at Constantinople in January 1303,

 

메시나. 이탈리아 반도 발가락 마주보는 곳이야. 여기서 36척 배와. 8천명.에 기사들이 1500명. 알모가바르.라는 보병대인데. 경무장한 날쌘돌이들이야. 기사들 못지않은 최고전투집단이야. 설이 분분하지만 총 수가. 저기에 짐꾼들을 합한거걸랑. 이들이 서기 1303년에 콘스탄티노플.에 도착을 해

 

Erdek (formerly Artàke, Greek: Αρτάκη) is a town and district of Balıkesir Province in the Marmara region of Turkey. 

 

이들이 배를 타고 아나톨리아땅에 가는 곳은. 마르마라 해의 남쪽으로 가서리 에르데크.란 곳이야. 고대의 아르타케. 여기에. 오스만의 훨 왼쪽이야. 여긴 다른 투르크 베일리크가 인접한 곳이여. 삐죽이 곳이 섬 비슷한게 있어.

 

After two years of victorious campaigns against the Turks the indiscipline and the character of a foreign army in the heart of the Empire were seen as a growing danger, and on April 30 1305 the emperor's son (Michael IX Palaiologos) ordered mercenary Alans to murder Roger de Flor and exterminate the Company in Adrianópolis (modern Edirne) while they attended a banquet organised by the Emperor. About 100 cavalry men and 1,000 infantrymen perished.[15]

 

저기서 부터. 아래로 쭉쭉 내려가면서 투르크 들이랑 싸우는겨. 즉 이들은 오스만.이랑 전쟁하는게 아냐. 오스만은 저짝 위에고. 얘들은 아나톨리아 서쪽해변과 내륙을 수복하러 가는겨. 아래 카리아 까지 가는거야. 여기 아래가 로도스 섬이야. 2년 동안 엄청난겨 저들이. 대부분 다 이기고 투르크의 자잘한 베이들을 쫓아낸거야. 

 

 

비잔틴 황제들이. 좋아할 수가 없는겨. 쟤들이 우리도 처먹는거 아녀?

 

저 용병대장과 수하들.을 아드리나폴리스. 지금 에디르네. 로 초대해서 고생했다고 부페주면서. 기사 100명. 알모가바르 천명을 걍 술취한애들을 몰아서리 다 죽이는겨.

 

 

남은 이들이 그리스로 넘어가서. 아래 프랑스 귀족애들이 공작하고 있는 아테네 덧치에 쳐 들어가 거기서 그나마 자리를 잡아서 아라곤으로 이걸 갖고 오는거야 이 카탈란 용병은. 

 

저러면서. 비잔틴.은 망하는겨.

 

더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