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史

유럽사127. 서쪽행 오스만 ft.음양오행

didasko 2019. 1. 6. 14:57

在《漢書·藝文志》分別指:儒家道家陰陽家法家名家墨家縱橫家雜家農家。九流十家,是九流以外加上小說家

 

이전에 삼교구류. 구류십가.를 썰했는데. 제자백가.란것은 근대이후에 작명한 말이고. 마치 백가지란 다양 화려한 사유가 있는 듯한 사기 기만하는 작명이야 저게. 고대그리스로마의 철학자들이 다양했던 것처럼 동양빠닥도 같았다 이 대는거걸랑. 

 

藝文志》始見於班固漢書》,刪定劉歆七略》而成,為後代正史「藝文志」之始祖。是史傳書籍中開創「九流十家」之祖,「九流十家」一詞便出自《漢書藝文志略序

 

예문지.란 것은 반고.가 한서.를 편집할때. 유흠.의 칠략.을 편집했다는겨. 중국 정사들마다 예문지가있어. 이게 그 예문지들의 시조님이란겨. 구류십가.라는 말이 여기서 나와. 이걸 더 확대해서 제자 백가 하는거고 후대에.

 

劉歆(?前50年-23年)

班固(東漢光武帝建武十(公元32)年-東漢和帝永元四(公元92)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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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당인 이땅바닥이 쓰는 사주팔자에 궁합이니. 풍수 . 하는게 이게 그 바닥이 머냐면. 오행.이야. 이건 저 구류.에서. 음양가.가 주인이야. 여기에 유가. 도가. 가 아주 잡종으로 서로 쓰면서 교묘하게 얽혀 쓰는겨 이걸.

 

 

邹衍(约公元前305年—公元前240年)是中国战国时期阴阳家学派创始者與代表人物。他是战国末期齐国人,漢族先民[1],相传他的墓地在今章丘相公庄镇郝庄。主要学说是“五德終始說”和“大九州说”,又是稷下学宫著名学者,因他“尽言天事”,当时人们称他“谈天衍”,又称邹子。

 

 

시작은 춘추다음 전국시대. 시황제 통일 직전.에 제나라 사람 추연.이야. 얘가 음양가학파 창시자.에 대표인물. 

 

얘가 만든 사유.가 오덕종시설.과 대구주설.

五德終始說[编辑]

鄒衍認為「五德」指五行木、火、土、金、水所代表的五種德性。「終始」指「五德」的週而復始的循環運轉。鄒衍常常以這個學說來為歷史變遷、皇朝興衰作解釋。後來,自明太祖朱元璋始的皇朝最高統治者常常自稱「奉天承運皇帝」,當中所謂「承運」就是意味著五德終始說的「德」運。 从开天辟地开始,社会按照五德转移的次序进行循环,一个朝代以一德为主,每一德都盛衰有时。德盛,朝代兴旺;德衰,朝代灭亡。所以人类社会的历史是按照五行相生相克的规律循环向前的。

大九州說[编辑]

在空间认识方面,邹衍创立了“大九州”说。他认为,“以儒者所谓中国者于天下乃八十一分居其一分耳”。“赤县神州内自有九州之序九州是也”。“中国外如赤县神州者九乃所谓九州也。在此九州之外,又有如此九州者九”[2]

 

오덕종시설. 오덕.이 끝이고 시작이야. 종시.는 가리킨다. 오덕.이 돌고 다시 시작하는 순환운전. 걍 우주는 오덕으로 되어있는겨. 우주가 곧 만물이야. 이게 인간의 마음이고. 우주론이 심성론이야. 

 

목화토금수. 이 다섯개.를 선정하고. 여기에. 덕성을 부여한겨. 덕.이란게 다른게 아니라. 목화토금수 각각의 성질. 내용. 의미. 가치.를 얘가 규정을 하고. 상호간의 작용을 이분이 정해주신겨. 한무당들이 말하는 목이란 머고 화란 어떤 이고 등등에.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하고. 또 돌잖냐. 수생목.하고 이게 계속 도는겨. 목이란게 나무라서 여기서 불이 나오는겨. 땔감팍팍 넣으면 불이티나와. 등등의 얘기를 추연.이 이전 상서.란 책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리 얘가 제대로 정립을 해서리. 얘부터 이게 교본이 돼.

 

 

대구주설. 이전 구정.썰. 하우.가 우순.시절에 12개의 주.를 아홉개의 주.로 세팅하고 우순.이 되어서리 하나라 시작하면서 아홉.이란 숫자로 스킴을 짜는겨. 아홉주.에서 모음 쇳물.로 그릇을 만들어서 구정.이고 이게 조정 코트.의 상징. 정체성이 되는겨. 이게 흔들려서리 춘추시대가 막을 내리고 전국시대가 온거고. 그러다 사라졌어. 

 

추연.이 이 세상은. 以儒者所谓中国者于天下乃八十一分居其一分耳., 유자들이 중국이라고 말하는데 지금. 이 중국.이라고 가운데 땅 하지만. 천하의 81분의 하나.일 뿐이다. 하우.가 시작한 구주.란 것은 적현신주.라는 곳.에 진짜 구주.란 것의 처음.일 뿐이다. 

 

저게 먼말이냐면. 저것도 얼핏 번역한걸 한글봣는데. 조오온나게 개판이걸랑. 저런걸 책팔이하는듯한데. 아 증말 한문 번역조차 . 구주. 구정.이란 말의 시작을 몰라서 그래. 저따위 개판 번역은. 해서 추연이 저기 구주. 하우의 구주.이게 먼말인지 몰라. 막막 지들 의역하는겨 ㅋㅋㅋ. 

 

천하가. 구주.로 되어있어. 그 각각의 단위가 적현신주.인거야. 적현신주.가 아홉개야 천하에. 유자들이 말하는 중국.은 하우.가 구주.로 나눴지만. 저 하우.의 구주.는 적현신주의 엔분의 일.이란거야 저게. 적현신주 하나가. 구주.로 되어있어 아홉개의 주로. 하우의 구주.인 중국.이란건. 적현신주의 아홉개 주. 중의 9분의 1.이란거야. 땅크기가. 하우의 구주. 크기가. 여덟개 더있는겨. 하나의 적현신주.에는. 이런 적현신주.가 아홉개 있는겨 천하에. 해서 유자들이 말하는 중국.이라는 하우의 9주.는 총 81분의 1. 이란거야 저게. 

 

 

중국사에서 이름박힌 최고의 상상가.야 이 추연이라는 는.

 

아주 완벽한 공상가야 얜 ㅋㅋㅋ. 저 오행을 정의한 책이 방대한겨. 더하여 지 맘대로 천하를 상상한거야. 저 천하가 얘가 보는 우주 크기야.

 

 

 

  • 鄒衍以“大九州說”和“五德終始說”。
    • 「五行」最早見於《尚書·洪範》:「五行:一曰水,二曰火,三曰木,四曰金,五曰土。」戰國時五行說相當流行,有相生相克即“木生火、火生土、土生金、金生水、水生木”和“水克火、火克金、金克木、木克土、土克水”的觀點。陰陽家以五行為五德,認為歷史朝代的嬗變即遵守五行相生相克之道,是為‘五德終始說’。
  • 稷下學派中的黃老派管仲派等又有新發展。
  • 接著呂不韋及其所主編的《呂氏春秋》從陰陽氣數與天象、五行與物候和人事、世界圖式的和步整合等方面予以完善。
  • 最後是劉安及其主編的《淮南子》,再將道分陰陽的宇畝圖式與五行生剋的社會體系進行整合,這樣陰陽家才正式確立。
  • 司馬遷稱鄒衍“稱引天地剖判以來,五德轉移,治各有宜,而符應若茲”(《史記·孟子荀卿列傳》)。
  • 以五行相克的迴圈變化決定歷史朝代的更替,如三代之變,就是金(商)克木(夏)、火(周)克金(商),統治者均以此為自己統治的合理性尋找根據,對後世特別是漢代有很大影響。
  • 漢書·藝文志》云:「陰陽家者流,蓋出於羲和之官,敬順昊天,曆象日月星辰,敬授民時,此其所長也。」

 

 

이 제나라 추연.이란 인간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거야 이 극동빠닥에서. 저걸 이후로. 대구주론.도 우주론으로 받아쓰는겨 뒤 애들이. 저 오행.을 또 더 풀면서 막막 서로 덧대는겨. 

 

여불위의 여씨춘추. 유안.의 회남자. 이 회남자.도 마치 비서처럼 보는건데 이것도 재밌는 책이야 걍 소설로 보믄. 우리네 달여기서 나와 그 월하노인 월하여인 등등. 저 유방의 한나라때말야. 사마천이 욕처먹는게 뒤 유자들한테서. 사기의 한나라 고조본기에서 한무제유철 등등 보믄 완전한 신선놀이야 저게. 저게 먼 역사서인지 애들 무당놀이하는것도 아니고 말야. 얘들이 저런 오행. 음양에 절고 절어. 

 

 

 

陰陽家學派在以後已不復存在。《漢書·藝文志》著錄陰陽家著作「二十一家,三百六十九篇」,都沒有流傳下來。但是從董仲舒的《春秋繁露》還可以看到一些關於陰陽家的學說內容。

阴阳家的“阴阳”和“五行”等思想在战国时期与道家方仙道思想合并形成黄帝学派,在汉朝时融合老子的学说形成黄老道,后逐渐演变成现在的道教

而陰陽家在中國思想發展的重要性,則是具體化了自然世界對於人事的影響。這種想法,還可以在現在的黃曆或是農書農民曆裏看到。

今日部分傳統民俗療法風水師堪輿師中醫、相命者等強調「五行(金木水火土)相生、五行相剋」來養生、定命的說法也是陰陽家的餘留

 

더 웃긴건 말이지. 추연의 음양가.가 오행놀이를 하는데. 저게 웃기게도. 유가.가 이걸 자기들도 써먹는거야. 

 

한나라.는 유가.를 채택한거야. 유학.이 전쟁 후 나라 쎄팅하고 민들을 후려잡는데 최고의 칼.이걸랑. 이 유학 유교는 어마무시한겨 이게. 지금 이 조선빠닥에서 유교에 미친들을 보면 알어 그 무시무시함을. 저 북조선이 완벽한 유교국가야 저게. 쟤들을 보면 조선왕조 5백년.을 상상할 수가 잇어 ㅋㅋㅋ. 웃긴겨 이게. 해서. 이땅바닥에 민족놀이 하는 들이. 유교이념을 디리대면서 소인배놀이 적폐놀이 고대로 하면서, 북조선에 환장하는겨. 김정은이 위인이라는둥 개하는 이유가 있는겨 그게. 재들은 그게 진심이야. 북조선이 진짜 사람사는 곳이야 쟤들은. 모두 평등 평화롭게 잘 사는 곳이 북조선인데 양키때메 저리 가난하게 살뿐인겨 쟤들 사고방식은. 무식이 사람들을 죽이는겨

 

 

이 유가.들이. 저걸 지들이 가져다 쓰는겨 오행.을. 음양.을 오행의 바탕은 음양.이야. 그게 태극이야. 먼 태극기의 태극무니가 이땅바닥의 음청 독보적인 상징인줄 하는데. 그 음양 태극도 저기서 나오는겨. 추연의 음양가 에서. 

 

추연의 오행.이야기를 바로 받아서리 써먹는애가 저기 동중서.의 춘추번로.란 책이야

 

董仲舒(前179年-前104年),西汉思想家广川(今河北枣强,一说景县[1]人。董仲舒是一個西漢的儒生。专治《春秋公羊传》,為今文经大师,與古文孔安國齊名,曾指導司馬遷經學之說。

 

이 동중서.가 한나라에서 유교를 아주 확실하게 쎄팅한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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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음양가.의 오행.이 왜 유가와 도가.가 같이 써먹으면서. 그야말로 동양빠닥이 무당들이 득실득실 지금도 여전한 나라가 되었냐면

 

陰陽家,是中國东周戰國中期主要學派之一。以提倡陰陽五行學說為宗旨,故名陰陽家,又稱“陰陽五行家”或“五行家”。司馬談論六家要旨》列「陰陽家」為六大學派之首。《漢書·藝文志》列為“九流”之一。主要代表人物有東周戰國末期齊國鄒衍。陰陽本指事物兩種相互對立的方面,「一陰一陽之謂道」(《周易·繫辭傳》),莊子將之定義為氣所包含的矛盾對立要素,「陰陽,氣之大者也」(《莊子·則陽》)。陰陽家則把陰陽矛盾作用引起的變化推演至神秘化,「深觀陰陽消息,而作怪迂之變」(司馬遷史記·孟子荀卿列傳》)。

 

추연.이 시작한 음양가.를 음양오행가. 혹 오행가.라고 하는데. 주역.에도 일음일양지위도. 하고. 장자 에도 음양 기지대자야. 음양이란것이 기.가 큰거다. 하걸랑. 도가.는 원조가 노자.와 장자.야. 나머진 다 사이비고. 

 

「五行」最早見於《尚書·洪範》:「五行:一曰水,二曰火,三曰木,四曰金,五曰土。」戰國時五行說相當流行,有相生相克即“木生火、火生土、土生金、金生水、水生木”和“水克火、火克金、金克木、木克土、土克水”的觀點。

 

오행. 하면서. 수화목금토. 가 상서.의 홍범.에 나와. 여기에 처음 나오는겨. 

 

헌데 이 상서.란 책이 문제가 많은 책인데. 대체 원 저자도 모르겠고 편집이 막 덧대지걸랑 후대에 와서

 

書経』(しょきょう)は中国古代の歴史書で、伝説の聖人であるから王朝までの天子や諸侯の政治上の心構えや訓戒・戦いに臨んでの檄文などが記載されている[1]。 『尚書』または単に『』とも呼ばれ、儒教の重要な経典である五経の一つでもある

尚書》,原稱為《》,為先秦時代政事文獻的彙編[1],內容以上古及的君王重臣進行宣示佈告的講話記錄為主[2][3]。《尚書》為中國文學散文創作之祖,文風質樸。不過對後人來說,由於其年代極其久遠,其用語「詰屈聱牙」,頗為難讀[4][5]

 

 

이걸 우리가 부르는 서경. 이란 책이야. 가장 오래된 역사책으로 이걸쳐. 이걸 헤로도토스.의 히스토리아.에 견주는데. 그러면 안된다 니덜 진짜.

 

하튼 저게 고문상서. 금문상서. 해서 구분을 하고. 하튼 몰라 누가 쓴건지. 공자가 편찬했다는 설도 있고. 시작은 춘추말로 일단 봐 저작시기는. 뒤에 가짜로도 발견되는게 있고. 넘어가 이건 말길어지니. 여하튼 누구.가 언제. 쓴건지 몰라. 걍 전설의 고향인 듯 한겨. 

 

春秋时期(公元前770年-公元前476年/公元前403年)

 

여하튼 여기에 처음으로. 오행.이란 단어와. 다섯개 목화토금수.가 보이는겨. 그리고서리. 춘추 다음. 전국시대에. 목생화. 목극토. 하는 생.과 극. 낳고 죽이는. 상호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유행했다는거야. 이런걸 종합해서. 시황제가 통일직전인 제나라 추연이. 오행.이 종이자 시이자 계속 도는거고. 각각은 이러저런 성질이 있고. 저당시 유행하는 상생상극 이야기를 얘가 글자로 정리를 한거야. 당근 여기에 음양 이야기도 넣은거고.

 

음양.은 유가.의 주제에 도가.의 주제걸랑. 상서.라는 서경.은 공자가 편집했다는둥 인용이 보이고. 당근 유자들이 나중 오경에 13경에 편집하는 책이걸랑. 아 저기에 오행이 나오걸랑. 이 오행 이야기를 제대로 모아서 정리한 분이 추연.이라는 음양가 학파야. 

 

저걸 쟤들이 다 갖고가서 쓰는거야. 

 

五经博士中国古代的学官名。

先秦即有博士官,掌理文學秦朝有博士七十人(诸子、诗赋等博士),掌管全國古今史事以及書籍典章。

西汉建元五年(前136年),汉武帝为《易经》和《儀禮》增置博士,与汉文帝汉景帝时所立的《书经》、《诗经》、《春秋》博士合为五经博士

 

해서 오경 박사.라고 나오는건. 다섯 오.야. 이건 한무제가 만든겨. 동중서.가 얘 전에 사람이야. 얘가 유교로 기틀 다 잡고. 다음 한무제.가 이전.에 서경 시경 춘추.에 역경.과 의례.를 더해서 오경박사.라는 다섯.을 취하는겨. 오행.을 받아서리. 오경.이란건 이때부터야. 기원전 136년. 해서 공자가 오경을 어쩌고 저쩌고.는 개소리야. 

 

十三經是十三部儒家經書的合稱,是儒學的核心文獻,《周易》、《尚書》、《诗经》、《周礼》、《仪礼》、《礼记》、《左传》(附《春秋》)、《公羊传》、《穀梁传》、《孝经》、《论语》、《尔雅》、《孟子》。“十三經”的整體性概念成熟於明朝(1368-1644),以萬曆十二年(西元1584年)神宗頒佈詔令欽定《十三經注疏》為完全確立的標誌;是從漢武帝(前156-前87在位)確立五經博士開始,學術潮流與政治權力不斷調整儒家經書名目的共同成果,是儒家經書的最近一次結集。[1]

 

 

13경.는 명나라때 쌔팅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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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가 음양가.의 오행을 받는 바닥은 역경이야. 

 

易经》是中国漢族最古老的文獻之一[1],並被儒家尊為「五經」之始;一般说上古三大奇书包括《黄帝內经》、《易经》、《山海经》,但它们成书都较晚。《易经》以一套符号系统來描述状态的简易、变易、不易,表現了中国古典文化的哲学和宇宙观。它的中心思想,是以演譯自然運行的內在特徵與規律,解讀阴阳的交替变化描述世间万物。《易经》最初用於占卜和預報天氣,但它的影响遍及中国的哲学宗教政治經濟医学天文算术文学音乐艺术军事武术等各方面,是一部無所不包的巨著。在四庫全書中為經部,十三經中未經秦始皇焚書之害,它是最早哲學書。自從十七世紀開始,《易經》也被介绍到西方。

《易》原有三種版本:《连山》、《归藏》和《周易》[2],《连山》和《归藏》已经失传,一般所称《易經》即源於《周易》发展而來。

不过1993年湖北江陵荆州镇(现荆州市郢城镇)出土的王家台秦简《易占》与辑本《归藏》相符,被认为《归藏》古文再现。

[來源請求]

《易經》分为两部分,一部分是经,一部分是传。经包括卦、卦辞、爻辞,是殷周之际的作品[3]。传包括《彖辞》、《象辞》、《系辞》、《文言》、《序卦》、《说卦》、《杂卦》等篇,其中《彖辞》、《象辞》、《系辞》各分上下,统共十篇,旧称《十翼》,也可称为《易传》。传是解释经的作品。

 

 

역경. 주역. 이라고 하는. 이건 말야. 오행과 전혀 상관이 없어. 오직 음과 양.이야. 이 기괴한 음양. 괘 놀이하는 주역과 추연의 오덕시종이 교미를 해서. 골때리게 된겨 이게. 

 

저 동중서.와 한무제를 거치면서. 이후 중국역사 2천년은 유학이 바닥에서 거대한 괴물이 되는거걸랑. 이게 바로 조선반도로 넘어온겨. 기원직전후에 보여 죽간이 평양에서. 바로 왔어 얜. 이게 삼국시대엔 걍 엔분의 일로 쓰였다가. 고려때 송나라 되는 후주의 쌍기.가 영입되면서. 고려가 망하는겨 결국 어찌보면. 시안하게 말이지. 유가 애들은 딴 생각은 소인배고 적폐걸랑. 그리고 말이지. 그러면서 죽여 상대를. 조선때부터 완벽한 유가 세상이 된거야. 이건 급작스럽게 된게 아니야. 쌍기부터 바닥을 다진겨. 

 

 

역경.이 중국 삼대 최고문헌. 가장 오래되면서 최고로 치는겨. 산해경. 황제내경.과 함께.

 

산해경.이 신화놀이로 사람들에게 여러 판본으로 계속 읽히걸랑 이게. 헌데 이건 말야. 여기엔 스토리가 없어. 오직 캐릭터들의 나열이야. 어떤 모양의 무엇이 어디에 있다. 그 무엇은 어떤 양식으로 살다. 이게 다야. 의미 없어 이건.

 

어쨌거나 말야. 저 역경.은 기원전 백년 이전 부터 5경에 들어가는거야 이게. 일단 중국로 태어나면. 무조껀 유가.의 학문은 기본적으로 알아야해. 그 중에서도 박사.를 중앙관직으로 만든 다섯과목은 필독서야. 2천년간. 중간에 분열해서 잠시 숨통은 터지지만. 

 

 

애들이 2천년간 무당놀이를 하는겨. 중무당 놀이를. 이 조선왕조바닥은 7백년째 한무당 놀이를 하는거고.

 

저게 도가.에도 스며. 이 도가.는 노자.가 기본 텍스트에. 장자.는 부교재야. 여기에서 신선놀이하는 벼라별 잡서들이 다껴. 이 도가.라고 불리는 애들의 글들 보면. 대부분 말야. 불교에서 다 갖고 온겨 프레임과 단어들을. 이땅바닥 민족종교가 또한 여기 부류야. 

 

얘들이 불교에 더하여 저 음양가.를 갖고 오고. 유가의 주역놀이를 더하는거야. 이 도가애들은 기본적으로 무식해. 애들은 경전 자체가 허섭해. 유가처럼 머 공자란 아이가 있어서리 먼가 글놀이 한것도 아니고, 이걸 그 공가애들이 모아서 편집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걍 멍하니 신선놀이에 주문놀이를 하는게 이 도가.야 해서 몽골 칭기스칸의 손자 몽케가 종교대토론.을 빙자해서 저 도교를 걍 날려버리걸랑. 중국사에서 도교는 저때 확 엎어진겨. 몽골애들이 그나마 잘한겨 저걸. 

 

조선 실록 보믄. 주역.이니 역경이니 해서 검색해봐. 걍 이 개들이말야. 오백년 내내 코트 조정에서 저 을 하는겨 저게.

 

周易》或稱《易經》,在幾種較早期的文獻中(例如《論語》、《莊子》、《左傳》等)稱之為《易》。

「周易」之名最早見於《周禮》(原稱《周官》,約成書在戰國時代)。

周易的成書時間歷來颇多爭論。傳說遠古的伏羲創八卦、夏禹將其擴充為六十四卦,六十四卦被記載在《連山》一書,《連山》以「艮」為第一卦。到了商朝,六十四卦的次序被重新排列,被記載在《歸藏》一書,以「」為第一卦。

依據司馬遷史記》的記「囚羑里,蓋益易之八卦為六十四卦。」,後人因此認為《周易》是朝末年、西周之初的時候確立,是周文王奠定了《周易》以「」為第一卦,並為每一卦寫下「卦辭」(卦象的解釋)。周文王之子、周武王之弟周公旦則被認為是「爻辭」(每一爻的解釋)的創立者。卦辭和爻辭的內容不單影響周朝的歷史,也影響到「詩經」的文學風格。

《周易》起源相當早,相傳「文王拘而演周易」,所以坊間認為西周初年由文王所著,因此較春秋時代的哲學著作(老子和孔子的論語)為早。

 

十翼》,亦稱為《易傳》(汉语拼音yì zhuàn),是包括《彖傳》、《象傳》、《繫辭傳》、《說卦傳》、《序卦傳》、《雜卦傳》及《文言傳》等文篇,因《彖辞》、《象辞》、《系辞》各分上下两篇,所以统共为十篇,旧称《十翼》[1]。传是对经的解释。
古人說的《易經》,常把“易傳”也涵括在內。根據史書,孔子作《十翼》,但也有學者認為不完全出自同一人,部份篇章也可能是集體創作的成果

 

 

저게 먼 대단한듯 보이면서 신비하는데. 와꾸가 별개 아냐. 크게는 주역.과 십익.으로 되어있어 구분이.

 

주역.에서 괘.를 만드는겨. 양.을 상징하는 긴짝대기. 음.을 상징하는 뚫린 짝대기. 이 두개.를 갖고서리. 삼층으로 쌓는겨. 중복되지 않게. 그럼 8개를 만들수 있어 산술적으로. 짝대기 하나를 효. 삼층 하나를 괘. 여덟개라 8괘. 

 

저걸로 삼층을 육층으로 쌓는겨. 팔팔의 64 해서 64괘가 나와. 

 

여기까지를 설명한게 주역. 이고. 왜 저리 해야하는가를 썰하면서 작명을 하는거고.

 

그 다음 저 64개의 괘.에 대해서 또 각각 이름을 붙이고. 그 각각은 무슨 뜻이냐.를 설명한게 십익.해서 주역과 십익.을 합해서 역경. 하는겨.

 

 

하늘 천.이란 보편적인 신.이 세상 돌아가는 법.을 저리 표현한 잣대.야. 저게 Law 인겨. 하늘 천. 이 놓은 Lay 놓여진 잣대야. 저게 도.야 저기에 맞게 사는게 의.야. 저 잣대가. 성. 이야. 저 잣대를 저리 눈에 띄게 괘를 만들어서 정의를 한게 리.야. 

 

 

저거에 맞춰서 살으라는겨. 해독을 잘하고. 

 

 

저게 액시엄 axiom 공리야. 증명할 수 없는 명제야. 제로가 있다. 영은 있다. 점이란게 잇어. 묻지마 걍 점은 있는겨. 이론상은 존재할 수 없어도. 점과 점을 잇는 가장짧은 직선을 그을 수가 있어. 왜? 묻지마.

 

저게 저런 공리야. ㅋㅋㅋ. 근거? 묻지마. 

 

해서 저걸. 막 지들끼리. 풍수에 써먹고. 지리에 써먹고. 점치는데 써먹는겨 . 저 을 조정에서 하는겨 개 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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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합.이란건 조선어야. 중국이 사전 보면 웃겨. 궁합. 하고 한글 머 한국어도 아냐. 조선어. ㅋㅋㅋ

 

宮合》(朝鮮語:궁합 Gong Hap英语:The Princess and The Matchmarker) 是2013年賣座大片《觀相》片商策劃的「易學三部曲」(《觀相》《宮合》《風水》)

 

궁합이란 영화가 있었나보네. 아 하튼 조선어래 궁합.이란 글자는.

 

쟤들도 한국이란거 몰라. 조선이야 저 중국이들한테도 ㅋㅋㅋ. 한국어가 아냐.

 

合婚,中国民俗,婚前男女双方见面约谈,以卜门户、门第是否相配,谓之合婚。经过互相查访,双方主婚人均无异议,再过"八字贴"。男女双方各用一顺红纸的折子,写上出生年、月、日、时,请"星命家"测看男女双方"八字",叫合婚

 

쟤들은 합혼. 이라해. 정식명칭이 팔자합혼.이야. 팔자점.을 보는겨. 

 

사람의 생 년월일시.가 십이간지로 여덟글자가 나오걸랑. 각각이 기둥.주 해서 사주.에 여덟글자 8자. 즉 저 여덟글자.를 보는 팔자점이야. 팔자합혼. 

 

저건. 저 중국이들도. 저기 구류든 십가든 안 처넣어. 저따위는 가.의 경 에 안 넣어. 얘들은 저걸. 술. 해. 걍 도술 잡술 할때 술이야. 기본적으로 유가가 찐하게 깔린겨 바닥에 일단. 

 

 

 

五术中國傳統文化中极为重要的组成部分,並影響到漢字文化圈其他地區,是对庞大复杂的道術前稱方術])系统的最主要的分类,一般认为包括山()、五类,後三術又歸類於術數。五术的「山、醫、命、卜、相」基本构成,都是源自易經,易经涵盖时空,宇宙的万事万物,都是陰陽相互对立又能相互转化,如冬去春来,夏去秋来,月升日落,老死少生等等。

 

오술. 다섯개의 술. 여기에 신선놀이하는 산(선). 의. 명. 점복.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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就是利用其含概靈修養生靜坐武學食療築基玄典符咒等方術來修練肉體與精神,以培養完滿人生的精神為主的占術,研究人的身心雙方面的發展。因為多半在山中修業,所以稱為「山」道亦稱『仙道』。第一階段為玄典,接是養生,最後是修密。物心兩面的修養、鍛煉心身的術法。由修煉肉體和精神,加強心身為主的術法。

  • 養生:是利用「天丹、人丹、地丹」的方法,以造成強身健體的階段。天丹法又叫「築基法」;人丹法又叫「房中術」;地丹法又叫「食餌法」。簡言之,以靜坐呼吸實行的方法為「築基法」;與異性交接而實行的方法為「房中術」;以膳食或漢方藥物的方法為「食餌法」。
  • 食餌:餌是利用補藥酒及日常飲食以增進體能,治療疾病的一種食療方法。
  • 辟穀:是道士用來修身的一種方法,通常在辟穀期間,不吃用火烹制的食物,只喝水和吃一些天然的食物,如桑椹,黃精等。
  • 築基:築基是利用禪、靜坐法以控制精、氣、神,進而增進體力的一方法。
  • 玄典:玄典就是研讀《老子》、《莊子》、《列子》之思想,進以清淨自己的心段的精神而達修身養性的一種方法。
  • 拳法:拳法就是習練各種武術以增強體魄。
  • 符咒:符咒就是掌握人心,避邪鎮煞,以達保安心思給予人類心靈上的寄托與治療。
  • 丹鼎:利用靜座與呼吸法及食餌法的天地人三法,謀求身心雙方面之化的方術。
  • 修密:藉著意念(是統一精神的行法)或符咒法術,以增強身心的能力階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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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可分為三大類,《鍼灸》《方劑》《靈治》等三種方法,以達保持健康、治療疾病的一種學問,是以治療疾病為主體的術法。「醫」就是治病、保護的方術。這裡所謂的「醫」是指「中醫漢醫」,「醫療」是保護人類的健康、治病的術語。

  • 方劑:是使用藥劑治病的術法,又叫做湯藥,以漢方獨特之診斷法四診,是據「實虛、熱寒」等証來治療疾病的一種方術。以求治療人的疾病的治療方劑,又應用易卦去整理藥劑的處方。
  • 鍼灸:鍼灸就是利用人的脈絡、氣血循環的原理以鍼和灸來治病。以診斷法四診,而決定証應六十四卦及十二支以鍼灸治病的醫術。
  • 靈治:靈治就是利用掌握人的靈體氣脤,因氣行靈體不順導致生病,用大自然來靈治的醫術。如:「收驚」。另一種現代方術稱為「催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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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的占術是卜算「人」的事體,因此須以人的「以生年月日時」為基本探求人之命運。其論命方式以紫微斗數、子平八字推命術、星平會海等方式來瞭解人生,以窮達自然法則,進而改善人命運的一種學問 「斷易推命」、「六壬推命」、「奇門推命」、「太乙推命」這些只能說是占術的運用,並不是「命」的主流。「命」是以推定人的命運,進而達到趨吉避凶的一種學問。

  • 紫微斗數:是運用「虛星與天干地支」的占術,由宋朝陳希夷仙人根據「河圖」「洛書」所創的占術。斗數派別可分為兩大主流:一是以《星系為主》;另一則以《四化為主》。《星系為主》以十四主星所組成六十星系,彼此互相干涉所產吉凶互應,經整理成《紫微星訣》為論理依據。《四化為主》以紫微星辰為經,飛星四化為緯,相互對待,互生體用,其論理依據《斗數秘儀》。
  • 子平八字推命術:八字推命是運用「天干與地支」八字五行生剋刑沖推衍吉凶的占術。相傳於戰國鬼谷子用《前定命數》取其年干、時干為人論命,由唐朝李虛中整理《李虛中命書》以年為主為人推命,再經宋朝徐子平《淵海子平評註》改以日為人推命依據,後經明朝劉明溫《滴天髓》加以闡微。以生年、月、日、時為基礎,推出十干配合季節論其五行生克,占卜人之吉凶成敗禍壽夭。
  • 星平會海:星平會海就是利用人之八字,以月亮、太陽為中心,來推人之命運的一種占術。
  • 果老星宗:是運用「實星、虛星與天干、地支」的占術,不但需要天文學的知識使用實星,同時也用到虛星,算法極為複雜,其論斷先觀主曜,次察身星,當以二十八宿為本,十一曜為用,尊莫尊乎日月,美莫美於官福,貴賤定格,貧富論財,賢愚識其高卑,壽夭究其元氣,此先天之大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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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謂「卜」包括占卜、選吉、測局三種,其目的在於預測及處理事情,其中占卜的種類又可分為「周易占卜(文王卦)」及「六壬神課」。「卜」是以一種藉「事情發生的時間」、「占卜的時間」以及事情發生地點的「方位」,來推算事物的演變及判斷處置方式的一種學問。「卜」以事件為主的占術,是以某一時間與方位為基本,以研究事件發展的趨勢,以物體之狀態為主之占術。

代人流行觀察天象,用來推測國運和個人吉凶,並且出現了很多相關著作。這類著作叫做術數或數術。著名的有《漢書‧藝文誌》內《數術略》,為七略之一,包括了110種著作,2558卷。《數術略》又分為天文、歷譜、五行蓍龜雜占、形法六類。

  • 占卜:包括斷易及六壬神課。斷易是以占得之六十四卦配合變爻加上日辰及月建來斷占卜事物吉凶的一種方術;「六壬神課」是以占卜時間的十二支、占卜月的季節、占卜日的干支時辰及其衍生之「虛星」來斷某種事物成敗吉凶的一種方術。
  • 選吉:一般可用奇門遁甲:是以十天干及十二地支構成占術,以方位為生,來預測事物成敗吉凶之一種方式。
  • 測局:一般可以太乙神數為之,來預測團體所為之事物吉凶成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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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謂「相」一般言包括:印相、名相、人相、宅相、墓相等五種,是觀察存在於現象界形象的一種法術。

  • 印相:就是依使用目的來推算印章上,文字吉凶的一種學問。
  • 名相:就是一般所謂的『姓名學』是依姓名的字、音、形、五行,來推算姓名的吉凶方術。
  • 人相:包括面相手相二種,面相是以面為中心,以十二地支及星球所構成之理論來推算吉凶。手相是以掌為中心,以十天干和星球間之關係理論來推算吉凶。
  • 宅相:宅相就是陽宅,是以十天干及十二地支之理論來推算房屋之吉凶。
  • 墓相:墓相就是陰宅,是以十天干,十二地支及易學之理論來推算墓向及位置之吉凶。

陽宅和陰宅兩項合起來就是「風水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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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에 대똥녕님들이 풍수가 안좋으셔서 말년이 안좋고 나라가 안좋아진다는 그따위 풍수.는 오술.의 마지막 상. 에 해당하는겨. 이게 관상보는 인상.에 집의 택상. 묘자리 묘상. 하는겨. 

 

저런 오술.의 기본 원리들로 갖고 오는게. 추연이 만들어준 오행.에 유가들이 비전모시는듯 역경.이야 저게. 

 

 

저걸 말야. 치자들이 저런걸로 인간사에 적용하는건. 정말 개미친 개미개한 짓이야.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의 것으로. 신놀이 하는건 신놀이하는애들에게만 하는겨. 이게 유럽사가 문명을 압도하는 이유야. 교황이 점점 짜지던 역사여. 중세 천년의 정점은 로마약탈.이야. 중세천년.의 마지막.은 카를5세 이후 부터는 대관식하러 교황한테 굽신 안하는겨. 페르리난트1세부턴 혼자 써 황제관을. 교황은 투명인간이여 저때부터. 

 

주희.라는 주자도. 지 제자들한테 공무원하지 마라한겨. 떨어지는 애들한테 축하한다 했어.

 

저따위 귀신놀이 하는 애들은. 걍 지들 하늘 천.만 모셔야 해. 산속에 처박히던 어디서 처박히던. 어드래 저따위 짓을 2천년과 오백년동안 위선 속에서 저따위 개을 코트에서 해대냐.

 

 

그러니 동양 빠닥이 똥천지 가 되고. 그 나라 사람들이 남들의 노예생활 을 하는겨. 하기사 니덜 노예나 남덜 노예나. 머가 나을라나. 남덜 노예가 낫다 하면 또 적폐니 머니. 

 

 

조오오온나게 한심한겨 저게. 

 

 

헌데 저따위을 말야. 지금 도 여전 히 사회 구석구석에서 하는겨 저따위 오술.을. 저걸로 을매나 사람들이 피를 보냐 지금도 여전히. 저 개무시칸 짓덜때메. 괜한 공리 어거지 공리로 괜히 그 사람은 별 쓰잘덱없는 운명론에서 평생을 허비하고 말야. 

 

 

더 한심한건 말이지. 저따위 을. 미디어에서 연일 퍼뜨리고

 

더 한심한건. 국가 리더 들이. 저 을 하는겨 저걸.

 

풍수가 안좋아서 옮겨야 해유. 근거가 뭐죠? 근거는 많아유.

 

할때의 근거.는 저 추연의 오덕종시설.과 역경의 저 뜻풀이 놀이야. 

 

 

참 조오오오온나게 한심한 땅이야 진짜.

 

 

중국이들은 저걸 깨달았어. 저런 때메 망한걸 알았어. 해서 저런 을 안해. 다 엎었어 문묘를. 그래도 그 바닥은 여전하지만. 지식인들이 나섰어 근대화때. 유교 도교 다 버립시다. 인의예지 네글자가 사람들 죽입니다 죽였습니다. 우리네는 저것때메 양놈들 일본들한테 이리 당하는겁니다.

 

지식인들이 나섰어. 

 

 

헌데 이 땅바닥은 말야. 조온나게 기괴한겨. 대체 먼놈의 땅바닥이 이따위 의 땅바닥이 있냐말이지.

 

 

 

 

 

黄帝内经》在主流社會認為是现存最早中医理论著作,對後世中醫學理論的奠定有深遠的影響。此书相傳是黃帝岐伯雷公、伯高、俞跗、少師、鬼臾區、少俞等多位大臣討論醫學的記述,在四庫全書中為子部醫家類。

 

西漢汉成帝时,刘向等人曾大规模校理古籍,李柱国则负责校理方伎,原书目先载于刘向《别录》,后载于其子刘歆七略》,今二书已佚,但其目錄內容被东汉班固引录于《汉书》〈艺文志〉中,後世仍可以推見其原貌。《漢書·藝文志·方技略》載有醫經、經方神仙房中四種中醫典籍。其中醫經有:

  • 《黃帝內經》十八卷,《外經》三十七卷;
  • 扁鵲內經》九卷,《外經》十二卷;
  • 《白氏內經》三十八卷,《外經》三十六卷,《旁篇》二十五卷。
劉向(前77年-前6年),子政,原名更生漢朝宗室
 
難經》是中國古代醫學著作《黃帝八十一難經》的簡稱,共三卷(亦有分五卷的)。《難經》書名的含義,有二種解釋:以難字作為問難,另以難字做為難易來解讀。難,讀音為“ㄋㄢˋ(nàn)”。《難經》是闡發《黃帝內經》的疑難和要旨的第一部書。后世将其列为中醫四大經典之一。
 
神农本草经》,简称《本经》,是现存最早的中药学专著,作者不詳,约成书于时期。書內記載的藥物凡365種,分上品、中品和下品三品。原书早已佚失。南朝陶弘景为《神農本草經》做注,并补充《名醫別錄》,編定《本草經集注》共七卷,把藥物的品種數目增加至七百三十多種。清朝孫星衍将《神农本草经》考订辑复,成为现在通行本
 
傷寒雜病論》,又作《傷寒卒病論》,為東漢張仲景所著,是中國第一部理法方藥皆備、理論聯繫實際的中醫臨床著作。此書被認為是漢醫學之內科學經典,奠定了中醫學的基礎。在四庫全書中為子部醫家類。

 

 

 

중의학.이 기본 텍스트.가 황제내경.하고 상한론. 이야. 상한론은 원제목이 상한잡병론.

 

더하여 난경.과 신의본초경. 진수의 삼국지.를 보면. 이게 정사.라지만. 제일 황당한게 화타열전이야. 화타가 치료하는 이야기. 그게 삼국지연의.의 주작이 아냐. 진짜 정사에 써진 이야기야 그게. 저런 개소리를 정사에 쓰는겨. 

 

저런건 맞아도 아니야. 증명되지 않는 이야기는. 인간사에 아무런 도움이 안돼. 그 절차와 방법이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건 의미가 없어 인간 문명 발전에. 

 

저것들도 그 내용들 디리다 보면. 저게 음양에 오행이야. 저게 추연의 음양가와 역경의 만남이 별 시안하게 지들 멋대로의 공리로 적용을 해서 사람 몸치료에 적용을 하는겨. 

 

 

 

한심한 세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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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man I or Osman Gazi (Ottoman Turkishعثمان غازى‎, 

translit. 

ʿOsmān ĠāzīTurkishBirinci Osman or Osman Gazi; died 1323/4).  possibly in 1254/5,

 

Ertugrul (Ottoman Turkish: ارطغرل‎, Turkish: Ertuğrul Gazi, Erṭoġrıl; often with the title Gazi) (died c. 1280[2])

 

Genghis Khan[note 3] (born Temüjin,[note 4] c. 1162 – August 18, 1227,

 

오스만.의 생년을 대략 1255년.으로 보면. 칭기스칸.이 콰리즘 샤.에 쳐들어와서 코라산 이란땅가는게 1221년.이야. 이때 피해가는건 오스만.의 할아버지야. 터키땅가서 아빠 에르투룰.이 베이.가 되서 죽은해가 1280년. 이때 오스만.이 나이 20대 중반에 베이.가 된거야. 그리고 20년 후인 1299년.에 오스만.을 창업해. 40대 중반에.

 

칭기스칸.보다 두세대 아래야. 90년 정도 어려. 이때 중국은 쿠빌라이 죽고. 손자 테무르.가 승계해. 

 

오스만이 들어설때. 오른쪽은 다 몽골애들이야. 그 망하는걸 보면.

 

The Ilkhanate, also spelled Il-khanate 

1256–1335/1353

The Golden Horde 

1240s–1502

The Chagatai Khanate 

1225 – 1340s (Whole) 1340s–1370 (Western) 1340s–1680s (Eastern)

골든호르드.는 칭기스칸의 장남 조치의 장남이 세우고. 차가타이.는 조치 동생.이 세우고. 일칸국 세운 훌라구.는 칭기스칸의 넷째 툴루이.의 자식들이고. 훌라구의 형들이 몽케.와 쿠빌라이.인데.

저 연도를 보면. 일칸국이랑 차가타이.랑 비슷하게 망해. 차가타이는 이때 쪼개지다가 오른쪽 차가타이가 제일 오래 버티고. 이 차가타이.는 바이칼을 꺼꾸로 뒤집은 모양인 발하슈호. 아래부근이야. 카자흐스탄 아래 지금 중앙아시부 북쪽. 

저때 일칸국 차가타이칸국이 망하고 분열되는게. 가장 큰게. 흑사병이야. 

The Black Death, also known as the Great Plague, the Black Plague, or simply the Plague, was one of the most devastating pandemics in human history, resulting in the deaths of an estimated 75 to 200 million people in Eurasia and peaking in Europe from 1347 to 1351

 

유럽에 14세기 중반. 유럽에 피크 4년간 확 퍼져서. 인구의 삼분의 일이 죽었다는. 많게는 2억명이. 유라시아와 유럽에서. 

 

1347년에 카스피해를 지나서 유럽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걸로 보이는데. 저 흑사병의 쥐들이 시작한곳이. 저당시 원나라.의 중국땅으로 봐.

 

 Nestorian graves dating to 1338–1339 near Issyk-Kul in Kyrgyzstan have inscriptions referring to plague and are thought by many epidemiologists to mark the outbreak of the epidemic, from which it could easily have spread to China and India.[13] In October 2010, medical geneticists suggested that all three of the great waves of the plague originated in China.[14]

The 13th-century Mongol conquest of China caused a decline in farming and trading. However, economic recovery had been observed at the beginning of the fourteenth century. In the 1330s, a large number of natural disasters and plagues led to widespread famine, starting in 1331, with a deadly plague arriving soon after.[15] Epidemics that may have included plague killed an estimated 25 million Chinese and other Asians during the fifteen years before it reached Constantinople in 1347.[16][17]

 

유적의 기록을 보니. 저 십년 이전에. 이식쿨 호수. 발하슈호 아래 호수야 키르기스스탄 북동쪽에. 여기에 흑사병으로 많이 죽은게 언급이 돼. 서기2010년에 유전학적으로 추적해 보니까. 중국에서 시작한걸로 보인다는거지. 

 

역사는. 나중에야. 나중에야 아는겨. 사건이나. 해석도 마찬가지야. 나중에야 이해가 더 잘되고 나중에야 그나마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어. 당시대의 사람은. 웬만하면 당시대에 대한 옳고 그름을 해선 안돼. 자기는 자기를 못봐. 그 시대는 그 시대를 못읽어. 역사는 백년후에 평가하는게 아냐. 오백년 후에 평가하는겨. 

 

 

지금 인간들이 정의 요 해대는 그 들이. 오백년 후엔. 악마중에 악마.인게 대부분인거지. 

 

아이들은 말야. 정치로 밥처먹을 생각이 전혀 없으면. 절대 이념놀이에 관심도 갖지 말아. 나중에 조오온나게 쪽팔려져 그게. 조오온나게 의미없는 짓이여. 걍 딸딸이나 쳐 차라리. 추태도 저런 추태가 없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할 짓이 없어서 남들 선동놀이하며 밥처먹고 사는거에 휘둘리며 니덜 귀한 시간을 다 쓰냐 . 저들은 구데기 들이야 저게.

 

중국 본토가 원나라 침입기엔 굶주렸다가 회복을 했다가 서기 1330년대에 자연적인 병으로 무수히 죽은겨. 저당시야. 그리고 이 쥐들이 몽골애들이 드나들던 길들로 같이 움직인겨. 해서 이게 십년후에 카스피해와 레반트를 지나서 아나톨리아와 흑해위의 동유럽으로 퍼졌는데. 저때부터 사오년간의 경로를 보면. 터키땅을 지나서리 발칸과 이탈리아와 갈리아로 퍼지고 이게 이베리아와 북유럽으로 퍼지고 이게 다시 돌아서 동유럽으로 간거야. 즉 동유럽은 오히려 늦어 오는게. 

 

일칸국.과 차가타이.는 저때 흑사병으로 크게 흔들리고, 여기에 특히나 일칸국은 오스만의 오른쪽인 아나톨리아들의 자잘한 베일리크들로 나뉜 베이들이 하미지를 했다가 힘이쎄져서리 반란을 하는겨. 통제가 안돼. 다 투르크야 얘들. 거기에 일칸국은 수도가 카스피해 서남부야. 여기 위가 코카서스.고 조지아 킹덤이걸랑 하미지 한. 헌데 오히려 조지아.도 얘들에게 대들어. 하미지하던 스텝애들이 반란하면서 없어지는겨 이 일칸국은. 흑사병에 이어서리. 마지막 칸은 다 쪼개진상태서 힘없이 버티다가 암살당해 죽어. 그 위 일칸국.이 내려와서 도와주는척 수도땅을 점령하지만 안줘 지들이 갖고.

 

결국 여긴 흑사병이 지나가면서 걍 자잘하게 흩어진겨. 연도는 1353년 망. 하지만. 이미 십여년 전에 망.한겨. 오스만의 오른쪽이 다 춘추전국시대가 된거야. 이걸 점령한게 티무르.야

 

The 

Timurid Empire 

1370–1507
이삼십년동안 중구난방이었어 레반트와 오른쪽이. 여길 차가타이.의 귀족핏줄.인 티무르.가 차가타이에서 나와서리. 아래로 해서 서쪽으로 다 먹는겨. 얘도 칭기스칸쪽 몽골 핏줄이야. 해서 130년.후에 사파비까지 있는거고.
흑해 카스피해 위의 골든호르드. 킵차크칸국.은 티무르 망할때즈음 까지 계속 버텼던거야. 

Ivan I Daniilovich Kalita (Russian: Ива́н I Даниилович Калита; 1288 – 31 March 1340 or 1341[1]) was Grand Duke of Moscow from 1325 and Vladimir from 1332

 

러시아 시작인 모스크바.는 다니엘. 다니일.이 수도원 만들면서 저게 지금 모스크바가 되었잖오. 이 자식잉 이반1세.가 모스크바.와 블라드미르.의 칸.이 되는겨. 나중에야 그랜드 듀크.해주는거고. 저때 하미지를 하는 상대는 골든호르드.야 몽골애들의 그랜드 덧치인겨 저게. 

Ivan II Ivanovich the Fair (Russian: Иван II Иванович Красный) (30 March 1326 – 13 November 1359) was the Grand Prince of Moscow and Grand Prince of Vladimir in 1353. Until that date, he had ruled the towns of Ruza and Zvenigorod. He was the second son of Ivan Kalita, and succeeded his brother Simeon the Proud, who died of the Black Death.

 

이반1세 아들이 다음다음 칸인 이반 2세야. 얘때부터 몽골에 대들기 시작하는겨. 모스크바.는 원래 몽골애들 영역이 아니었어. 이걸 멀리서 바쌀로 얘들을 임명한겨 더 넓힐라고 몽골애들이. 그러다 바로 반격하는거지 자식대부터. 이 골든호르드.도 저러다가 저때 흑사병이 역시 지나가고 나서. 또한 얘들역시나 문명을 오래 유지할 사유.가 없는거야. 생각이 없어. 중앙통제가 안돼. 얘들도 칸들이 각각 티나오면서 쪼개지는겨 저 넓은 스텝에서. 이반2세 이후 백여년후에. 그리고 왼쪽엔 폴란드 리투아니아. 위 러시아도 점점 쎄져. 스텝애들도 서로 싸워. 스텝의 칸에게 먹히는겨.

 

Crimean Tatars or Crimeans (Crimean Tatar: Qırımtatarlar, qırımlar; Turkish: Kırım Tatarları, kırımlar; Russian: Крымские Татары, крымцы; Ukrainian: Кримськi Татари, кримцi) are a Turkic ethnic group that formed in the Crimean Peninsuladuring the 13th–17th centuries,

 

골든호르드.의 250년을 마무리시키는게 크림반도 타타르족이야. 투르크야. 이름만 타타르야. 이 크림 타타르라는 흑해 북쪽 접한 투르크 스텝이.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러시아 사이에서 핵심 용병집단이야 이게. 이들이 저 둘 사이에서 폴리에 들어가서 내전하고 나오고 러시아에도 용병으로 쓰이다가 지금 러시아에 드간겨.

 

 

할때. 오스만제국.의 오스만 과 그 자식들은 말야. 동쪽으로 안가. 서쪽으로 가. 

 

일단 저 동쪽은. 갈 이유가 없어. 저기 볼게 없어 당장. 레반트 먹을 이유도 없고 프랑크 십자군 애들처럼. 어차피 칼리프.라는 이슬람 교황아래 같은 무슬림이야 종족은 달라도 서로. 그리고 저 보믄 이제 다 스텝 투르크들 자잘자잘 쪼개져서. 살벌해 쟤들. 빤히 서로 아는애들이 더 버거운겨. 애들도 살벌하고. 차라리 왼쪽으로 가는겨. 비잔틴 천년 이라지만 아무것도 아닌게 눈에 보이걸랑. 저 발칸으로 가는거야 동쪽은 걍 두고. 게르만이 중세천년 익힌 저 유럽을 먹는게 더 남는겨. 애들 오는 거 보니 먹고살만해 보였걸랑 십자군때.  이슬람이란 종교를 저땅에 심자.는 부차적 이유고. 진짜는 더 잘 먹고 잘 살자걸랑. 

 

 

해서. 동쪽이 저리 춘추전국에 스텝들끼리 서로들 전투질할때. 오스만과 아이들은 바다를건넌거야. 

 

Türbe (tomb) of Osman Gazi in Bursa. 오스만.의 무덤. 부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