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중국사8, 진섭세가 ft.한문 파자 해석의 무식질
이땅바닥 한심한거거든 이 무식함은.
더 웃긴건, 이땅바닥의 사유의 중심은 이 한문이걸랑. 하기사 한문 쓰지말라 한글만 쓰라 하는게 진보라 카니. 웃긴건데.
세종대왕이 1446년 9월에 훈민정음 반포하고 어지 내리시고 정인지가 글쓰면서도. 한글 만든 제 일의 목적이 한문 제대로 이해하자. 라고 했걸랑.
세종 세종 하민서리. 한글 어저꾸. 정작 만든 인간의 취지는 쌩까지. 웃긴데 이땅바닥.
요즘 모든 서점의 글도 한문이 없어. 한문 쓰면 클나나봐. 일제시대의 소설글들이 그나마 재밌걸랑. 헌데 그 글들조차 . 당시 글은 다 한문 혼용이걸랑. 한글만 써대서 당췌 먼 뜻인지 몰라
한글만 쓰믄 그게 먼뜻인지 아니. 걍 껍데기만 익히는겨 그거.
아래 한심하다 의 한심.의 뜻이 갑골문의 그 글 뜻을 정확하게 우리가 현재 지금 쓰는겨. 날은 추운데 풀 덮어서 자는겨 집안에서 벌벌 떨면서.
저걸 사전에서 정의 한거 봐라. 웃긴건다 저거.
모든 사전 정의가 다 그래 이땅바닥 국어사전이.
이땅바닥은 사전이 없어 사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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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바닥에 제일 많이 팔린 소설이 이문열의 삼국지고 그 다음다음이 아마 김진명의 글들인데. 천년의 금서.니 글자전쟁.이니 그따위꺼 유치한겨 그게.
걔 글 보믄 심심하믄 송. 宋. 갓 쓴 나무.랴. 갓 관 나무 목. 해서리. 이땅바닥 고대에서 부터 그래서 천하대장군 막막 장승 그게 저 송.이란 거고. 이땅바닥이 중국 송.나라의 어쩌고 저쩌고 시작일수 있어 하는 환상을 주고파.
동이 이. 夷. 저걸 풀면 큰 대. 더하기 활 궁. 활을 잘 쏜 사람들. 해서 동이족. 동쪽의 활 잘 쏜 이들.
한씨 성 어쩌고 韓 이 한.이 어쩌고 저쩌고. 대한민국 한.이 중국과 다른 차원의 엄청난 문명이었다 저쩌고.
아 증말 한심한건데.
저 대한국 고종이 할때. 저건 삼한에서 따왔다고 실록에서 그랬고 말이다. 저 삼한에서 따와서리 정한론. 한게 고종이 대한제국 이전 25년전에 쪽빠리네 사이고 다카모리. 애들이 정조론. 하믄 지들 조정 친다 오해할까봐. 아 일본서기에 조선 이전에 삼한이 있었어 정한론. 하자 해서리 한 이란 저 글자를 쪽빠리네가 먼저 썼어.
그 한은 한나라 한. 韓 할때 한은. 유방의 한 말고. 저 한은 이미 유방때 장자방.장량 이 진나라가 없애기 전에 장량네가 저기 한나라 대신이었고. 주나라 때 분봉한 성이며 영지이름이고. 짱게이들의 왕조명들은 삼황오제의 오제 시작 황제때 부터 영지 주면서 그 씨와 성을 하사하는것을 후대에 유방 한나라의 한. 이니 위나라 촉한나라 오나라. 사마염의 진나라. 수나라 송나라 오대십국의 그 나라명 들 다 저 예전 고대이름들 회복하는 것일 뿐이고.
여진의 금나라 거란의 요나라 는 자기들 땅에서 금.이란 쇠또는 진짜 금이 많이 나서리 금 한거고. 요나라는 요.라는 쇠가 나와서리 상징삼아 요 한거고. 명나라 명은 주원장이랑 유자애들이랑 서로 변죽이 맞은거걸랑. 주원장의 명교 마니교 그 명.이 유자애들의 밝음의 명.이란 글자가 자기들의 사상의 핵과 다를게 없다 쓰자 해서 쓴거고.
청이니 원이니 하는건 그 말의 추상명사의 의지를 반영한 것일꺼고.
송.
송나라 송.이란 글자는. 집안 뜰 중앙에 심는 나무. 집이 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심는 신적인 나무. 어떤 이는 걍 집을 떠받치는 기둥나무나 중도리 같은거.
그이상 아니다. 저따위 파자.는 나중에 생긴 장난 질이고
저. 이.란 글자는. 사람을 잡아서리 포승줄로 묶은거야. 저때 사람은 외방인. 오랑캐란 거지 중원애들 입장에서.
저따위 지랄을 파자. 라 해.
拆字,又称“测字”、“破字”、“相字”等,是中国古代的一种推测吉凶的方式,主要做法是以汉字加减笔画,拆开偏旁,打乱字体结构进行推断。现代社会中拆字成为一种有趣的游戏,在古代拆字属于玄学
탁자. 측자. 파자. 상자.
우리네는 파자. 라는 말을 주로 쓰고.
한문이란게 갑골이 기원전 천오백년에서 보이믄. 그 글자들이 그냥 모양을 만든거고 그림을 그린건데. 저따위 파자놀이를 그당시에 했겠니 안했겠니. 언제부터 했겠니.
진시황때. 기원전 2백년 전에 전서.로 글자들을 통일해. 대전 소전. 이 글자 모양을 참조해서 한글을 만들었다고 세종이 한글창제 한다는 그날에 또한 세종어지와 정인지의 글에 쓰고 .
저게 글자 모양이 자리잡고. 시황제때 나오겠니 저말이. 예서체가 자리 잡는 후한때에야 나오는겨 저게
隶书為秦書八體之一[1],是汉字中常见的一种庄重的字体风格,书写效果略微宽扁,横画长而直画短,呈長方形狀,讲究「蚕头雁尾」、「一波三折」。隶书起源于秦朝,相传由程邈整理而成,在东汉时期达到顶峰,书法界有「汉隶唐楷」之称。
진.친서부터를 기원으로 보지만. 동한.후한때에야 예서가 자리잡다.
《后汉书·蔡茂传》载:“(茂)梦坐大殿,极上有三穗禾,茂跳取之,得其中穗,辄复失之。以问主薄郭贺,郭贺离席庆曰:‘大殿者,官府之形象也。极而有禾,人臣之上,禄也。取中穗,是中台之位也。于字失禾为秩,虽曰失之,乃所以得禄秩也。’”
후한서 채무전.에 보여.
《후한서》(後漢書)는 중국 이십사사 중의 하나로 후한의 역사를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범엽(398년 ~ 445년)이 정리한 책이다. 한글 위키.
꿈해석 해주는겨. 겁.하믄 방석같은거 보믄 되겄나. 대전에서. 그 위에 벼이삭 세개가 있는겨. 무.가 막 가서리 그걸 취했어. 세개중에 가운데 것을. 그러다 갑자기 그 취한게 손에서인지 없어진겨. 먼 꿈이냐고 주부.직책의 곽하.라는 인간에게 묻는겨. 곽하 왈. 대전.이란건 관부의 형상이고. 그 방석위에 벼가 있다는건 인신지상. 신하의 윗자리요. 녹. 봉급이다. 가운데것을 취하다는것은 가운데 벼슬자리를 받는거고. 벼를 잃다.라는 글자. 잃을 실. 벼 화. 는 붙여써보면. 질. 失禾为秩. 벼슬질. 이되니. 잃은 것이라는 건 다시말해서. 녹질. 禄秩. 벼슬자리를 얻은 것이다.
저렇게 실 과 화. 를 더한 벼슬 질. 하는 파자놀이. 는 저 예서체가 쎄팅되고 나서 저때 5세기에나 쓰는 겨 저거.
삼국지 보믄 동탁이가 죽기전에 동요를 불러. 이것도 후한서에 나와.
《后汉书》载:“献帝初,童谣云:‘千里草,何青青,十日卜,不得生。’”这条隐语,暗示董卓专权事。《三国演义》对此有精彩的描写。
파자놀이 하믄 이걸 제 일로 쳐야 해. 인간들이 삼국지를 제일 많이 알걸랑. 이때부터 특히 파자놀이를 하는겨 더하여. 명나라 청나라때 파자놀이 하는겨 그래서.
천리초가 언제까지 청청 푸를까. 십일을 못넘기겄네. 저 천리초 라는 한문들을 더하면 동. 십일복을 더하면 탁. “千里草”实为“董”,“十日卜”为“卓”,
동탁이가 곧 죽는다는 거걸랑.
삼국지에서. 楊脩. 양수. 楊 修(よう しゅう、175年[1] - 219年)は、中国後漢末期の政治家
아마 중국의 천재들 중에 다섯 손가락에 들 수 있을 텐데. 사람이 눈치가 없는거지.
조조가 양수.를 죽이고. 예형.을 죽이는 이유는 현재 사가들이 해석하는 그따위가 아냐. 주원장의 사성소인.과 똑같은겨.
조조.가 소.라는 우유를 얹은 자리에 글자를 써 놓아.
又一日,塞北送酥一盒至。操自写“一合酥”三字于盒上,置之案头。修入见之,竟取匙与众分食讫。操问其故,修答曰:“盒上明书一人一口酥,岂敢违丞相之命乎?”操虽喜笑,而心恶之
일합소. 一合酥. 라고 써놓은거지. 사람들이 이게 먼가 보는겨 먼말인지 몰라서. 양수가 보고는 사람들 불러서리 같이 막막 먹는겨. 조조가 너 왜 그러냐? 물으니 양수. 왈. 合 이란 글자는 파자 하면 一人一口 일인일구. 지요. 조승상께서 한사람 한입 퍼먹으라 해서리 사람들 불러서리 퍼먹은 겁니다. 조조가 웃었지만 마음은 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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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파자놀이는 나중에 쓰는겨.
저따위 파자로 한문들을 기원전의 시대를 취해서 글질하고 인간들에게 뽕질하고. 또 저따위 말글들에 환장질 하지.
왜냐믄, 이땅바닥에 사유가 없걸랑. 조선은 과거 조선 이전 이야기를 다 태웠지. 그 태종실록 세종실록 세조실록 예종실록 봐라. 목 짤린다 참서라 딱지 붙인 책 등. 이 등 이란 말이 무서운겨 이거. 웬만하믄 다 태워없애야 하걸랑.
해서 저따위 뽕질에 인간들이 환장 하는거지. 아~ 우리가 저런 위대한 민족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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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서론 기네.
진섭세가.는 공자세가 다음에 편집을 했어.
진섭. 진승오광의 난 할때 진승.이야 진승의 자.가 섭.
우리네는 이걸 진승오광의 난. 이따위로 해석하는데. 이 역사도 말이지.
짱께이들은 저리 안써
大澤鄉起義,簡稱大澤起義,又稱大澤之變、陳勝吳廣起義、陳勝吳廣起事或陈胜吴广之乱,是公元前209年陳勝與吳廣發動的反秦起事,亦是秦末民变的一部分。起义沉重打擊了秦朝政權,揭开了秦末农民起义的序幕,也是中國歷史上第一次有记录的大規模的平民起義
대택향기의. 대택기의. 대택지변. 진승오광기의. 지승오광기사 혹 진승오광지난.
긍정적으로 쟤들은 써 이걸. 저 난.이란 명칭은 맨 뒤에나 저리 쓸까.
왜 이땅바닥은 저걸 진승오광의 난. 이라 할까
왜긴 왜겄니
陳勝・呉広の乱(ちんしょう・ごこうのらん、 中国語:陳勝吳廣起義; Chén Shèng Wú Guǎng Qǐyì)は、中国秦末期に陳勝と呉広が起こした、史上初の農民反乱。
쪽빠리 들이 저걸 진승오광노난. 하시걸랑.
우리네는 중국사.를 쪽빠리가 지침을 하고 그걸 배우는겨.
한심한겨 이거. 이땅바닥 지식인을 짐은 경멸 멸시 혐오 무시 하는데.
저것도 어디 글들보믄 인류 최초의 민란. 어쩌고 저쩌고 또.
그리스 아테네가 말야. 참주란 타이런트. tyrant 인 히피아스.를 시민들이 쫓아낸게 기원전 510년이야. 얘가 페르시아로 튀고 십년후에 그리스 페르시아전쟁할때 페르시아 편으로 참전을 또한 하지만.
그러지좀 말자 좀.
그래도 저 진승.이 중국사 최초걸랑. 민이 난을 일으켜서리 왕을 한겨. 얼마 안했지만.
陳勝自起兵稱王到最後被殺,總共有六個月。
진승이 거병하고 왕 칭하고 죽을때까지 총6개월.
헌데 이 진승.이 있었기 때문에. 항우 유방이 있었어. 진승이 바람을 먼저 일으켰걸랑. 다들 눈치보고 있었걸랑. 먼저 일어선거지. 이건 인정해줘야해. 이거 쉬운게 아니걸랑. 해서 유방이든 항우든 진승에 무조건 굽신했어.
저 농민중에 제일 하치리걸랑. 소작도 아냐 걍 인부야. 저 진승이 왕 칭하고 조나라땅으로 장이 진여. 보내고. 위나라 땅으로 주불 보내고. 니덜이 예전 왕들 모셔서리 옛땅 회복하라우 하고. 그 옛 대신들은 그 명 따라서리 그걸 명분으로다가 회복을 하는겨.
저 진섭세가. 도 그 원문을 보면 말야.
乃行卜。卜者知其指意,曰:「足下事皆成,有功。然足下卜之鬼乎!」陳勝、吳廣喜,念鬼,曰:「此教我先威眾耳。」
진승이 오광을 꼬셔. 이대로 가믄 어차피 우린 죽는다 기일 어겨서리. 오광아 우리가 부소 항연 행세하자 천하가 우릴 따를거라. 오광이 그러자 하고. 점치러 가는겨. 점쟁이가 그 속내를 알고서리 말하길. 족하. 경칭이야 고대에 상대에 대한. 그대들의 일은 모두 이루어질거다. 이룰 공이 있다. 그런데 그대들 점쳐보니 결과가 귀. 귀신 귀다.
저걸 해석을 귀신에게 물어봐라 한다. 라 다들 해석을 해. 제발 그러지좀 말아라 좀. 이땅바닥 해석은 한문도 개판이야.
「事業は成功するが、貴方達自身についての占いの結果は『鬼』と出た」
결과.가 귀신 귀 가 나왔단겨. 쪽빠리들도 이리 해석을 해.
이말을 듣고 진승 오광이 기뻐하고는 귀신 귀를 궁리하는거야 이게 뭔말일까 하고. 그리곤 왈. 아~ 나에게 먼저 사람들을 위압하라 위엄을 떨게 하란 거구나~
하고는 비단에 진승왕.글자 쓰고 물고기 배속에 넣어서리 수졸들이 보게 하고. 여우소리 내서리 大楚興,陳勝王. 대초가 흥하고 진승이 왕이된다 라고 들리게 하는겨.
나중에 하자. 서론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