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dasko 2022. 1. 21. 16:20

Francis Bacon, 1st Viscount St Alban,[a] PC (/ˈbeɪkən/;[5] 22 January 1561 – 9 April 1626), also known as Lord Verulam, was an English philosopher and statesman who served as Attorney General and as Lord Chancellor of England. His works are seen as developing the scientific method and remained influential through the scientific revolution

프란씨쓰 베이컨 이 1561생 이예요. 1626년 65세.
데카르트 가 1596-1650 이고요. 데카르트 가 훨씬 후대고요, 35년 아래예요.

토마스 홉스 가 1588이고요. 데가르트는 홉스를 알아요. 데카르트 는 성찰 메디테이션 을 출판할때 큐앤에이 를 같이 첨부해요. 자기 원고를 당대 인사들에게 먼저 보이고, 7명 입니다. 그들의 의문점들을 받아 답을 담고 그리고서 출판한 것이 성찰 입니다. 책이 두툼한 이유예요. 7명 중 한명이 8년 연상의 토마스 홉스 예요.

데카르트는 베이컨을 몰라요.

데카르트는, 네덜란드 와 이태리 를 다니지만, 잉글랜드는 몰라요. 잉글랜드는 당시 대륙 학계에선 취급을 하지 않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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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 과 데카르트 는 전혀 달라요.

귀납 과 연역 이예요 둘의 차이는.

베이컨 은, 자기작업을 위대한 주춧돌 이라며, 인스타우라티오 마그나, 라고 자칭 했지만,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 의 복사판 일 뿐입니다. 해설판 이여요. 베이컨은 당대의 오컬트 에 지긋지긋 한 반동으로 다시 아리스토텔레스 를 꺼낸겁니다.

아리스토 의 내용 들중 마음에 안드는걸 고친 것일 뿐이예요 베이컨 은.

The Advancement of Learning (full title: Of the Proficience and Advancement of Learning, Divine and Human) is a 1605 book by Francis Bacon.

베이컨의 1605년 44세, 학문의 진보, 일본말, 중국은 학술의 진전. 학문 이니 학술 이니, 안 맞아요 저들 개념에. 신적인것 과 인간적인것 을 배움 의 스킬과 진전 에 대해서. 표지 를 보면, 러닝의 또는 파티션즈 또는 싸이언시즈 의. 저건 영어 예요.

The Novum Organum, fully Novum Organum, sive Indicia Vera de Interpretatione Naturae ("New organon, or true directions concerning the interpretation of nature") or Instaurationis Magnae, Pars II ("Part II of The Great Instauration"), is a philosophical work by Francis Bacon, written in Latin and published in 1620.

그리고 1620년 59세에 새로운 오르가논. 자기딴엔 아리스토의 오르가논 을 고친 오르가논 이라며. 자기가 신이 난겁니다. 라틴어 예요.


데카르트 가 각각, 9세, 24세 때 나온 겁니다.


데카르트 는, 저런 이야긴, 관심이 없어요 전혀.

베이컨은 자기 땅 연금술 과 오컬트 에 강한 반기를 들며 리즈닝 의 아리스토형을 강하게 꺼낸겁니다.

오컬트 와 연금술은, 연역의 세상이예요.

그 연역의 첫 문장을 절대진리 로 전제하고 사는 세상이예요. 공리로. 베이컨은 이걸 강력하게 깨고자 아리스토를 가지고 분위기 전환하고자 하는 겁니다.


데카르트는, 제수이트 칼리지 와 프와티 유니버시티 10년동안 지긋지긋 하게 공부한게 아리스토텔레스 예요.

이, 아리스토텔레스 가, 중세를 지나면서, 재밌는거예요 이 인간에 대한 저당시 의 시선이.

13세기에 파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금지시키거든요. 이단 바람이 불고 카타르 대학살에, 그러다 토마스 아퀴나스 가 아리형을 긍정하고 신학대전이 로마교황정에 하늘이 돼요. 그러고도 금지를 또하고. 저때 로마는 어수선하고, 아리스토 가 이단에서 다시 회복이 돼요. 그리고 스콜라 에 아리스토 가 자리를 잡아요. 얘의 자연과학 내용이 스콜라의 진리가 돼요. 뒤에 코페르니쿠스 나 갈릴레오 는, 아리스토 의 자연과학내용이 로마교황정의 반박무기가 되어서 저들을 내치는 겁니다.

이놈의 아리스토텔레스 란 인간의 입장이 아주 웃긴겁니다 이게. 그래서.

저당시 칼리지 나 유니버시티 는, 말하기 글쓰기 토론하기 를 고대의 그리스로마 의 책들의 라틴어 로 통달하는겁니다.

저들에겐, 싸이언스 가 된 내추럴 필로소피 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오르가논 이 절대적 텍스트예요.

이건, 귀납 입니다.

베이컨 은 아리스토텔레스 의 귀납을 다시 꺼냈을 뿐이예요.

In 1733 Voltaire introduced him to a French audience as the "father" of the scientific method, an understanding which had become widespread by the 1750s.[76] In the 19th century his emphasis on induction was revived and developed by William Whewell, among others. He has been reputed as the "Father of Experimental Philosophy"

Francis Bacon is considered one of the fathers of modern science

베이컨 은, 마던 싸이언스, 싸이언티픽 메또드, 실험적 철학 의 아버지, 경험주의 의 아버지.

역사적으로 가장 대우가 높은 인간 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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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는, 아리스토의 귀납세계 를 거부 해요. 귀납에 의한 진리찾기 를 거부하는거지 저런 로지칼을 거부하는게 아니예요 그렇다고.

데카르트 는, 신적인 건에 대한, 확신이 무너진 상황이예요.

베이컨 은, 절대적 신앙인 이예요. 그 아래에서 귀납의 러닝 을 하자 인거고요.

데카르트 는, 신을 갖고 와야 해요. 신 존재 가 흔들린거요 이사람 내면은. 남들처럼 걍 믿으니 믿자, 이게 안되는 겁니다 이사람은.

그러다가, 생각하는 새, 에 강력한 확신을 얻고, 아 이 새는 신 을 배후로 할 수 밖에 없어! 이건 맹목이 아니라 찐하게 달라붙는 참의 문장 이예요. 데카르트 에겐. 데카르트 는, 나라는 영혼의 불멸성 을 그래서 확신해요. 아니 당연히 영혼이 있고 불멸인데 하물며 신이 없겠어? 하는거요.

베이컨은 데카르트를 전혀 몰라요. 베이컨은 영혼불멸에 윤회는 안믿어요. 아리스토입니다.


Descartes is also widely regarded as one of the founders of modern philosophy and algebraic geometry.

둘이 전혀 달라요. 그런데 데카르트는 마던철학의 파더 예요 역시나. 데카르트 는, 대수기하학 의 파더예요. 데카르트 는 오히려 수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예요. 철학 은 오히려 데카르트 의 내용에선, 양적으로 짝아요 파이가. 그러나 그 내용의 무게 때문 이거든요.

써브젝트 오브젝트 프레임 은, 데카르트 때문에 시작하는거예요. 이 프레임으로 고대그리스 를 또한 보는것이고. 이건 객관주관 객체주체 단어로 바라보면 이해 못합니다. 저 한자 의 각각의 지닌 개념이 우리 유전자에 심어진게 쟤들 저 단어들과 너무나 다른거요. 해석을 절대적으로 방해 괴롭히는 번역단어입니다.


데카르트가 유행시킨 단어가 클리어 앤 디스팅크티브 입니다. 스피노자 칸트 가 그대로 써먹죠.


베이컨의 경험주의 자체가 자연과학이예요. 네이쳐 예요. 네이쳐로 도배되는거요. 아리스토 의 간판단어 예요.

데카르트 는, 네이쳐를, 수학으로 푸는거요. 수학으로 네이처에 접근해요. 데카르트는 확신하거든요. 수학으로 풀수 있다고.

그러나, 데카르트 의 연역의 문장은, 수학 세상이 아니예요. 데카르트의 연역은, 나라는 새, 영혼 의 등장, 출현 에 있어요. 이건 베이컨 애들이 보기엔 오컬트요. 저런 연역은 미신 인거요. 불멸의 탑재된 인네이트 아이디어, 혐오스러운 미신인겁니다 존 로크 로 시작해서. 써브젝트 개념은 인정을 해요. 그러나, 탑재된 아이디어 라는 오브젝트 를 부정하는 거요. 이게 더가서 결국 플라톤 까지 등장할수 밖에 없어요.


플라톤 의 이데아 아이디어 는 오브젝트 세상 이예요. 이건, 연역 이요. 걍 태초에 있는거예요.

저게 그리스도 신 의 자리를 다시 대체하려는거고.

이걸, 귀납의 세상 에서는, 절대 용납을 못하지요 당연히.

경험주의 와 유명론 은 한몸이 되어서, 이건 결국 유물론 으로 갈 수 밖에 없어요. 마르크스 는 나올 수 밖에 없는 역사적 존재물 이예요. 재밌는건, 인문학 하는 대부분의 지식인 은, 마르크스 의 유물론자 로 갈 수 밖에 없어요. 여기부터 지능의 문제가 발생하죠.

자연과학자들 은, 오히려, 버린 신을 갖고 옵니다. 볼 수록 알수록 놀랍거든요.

영국의 경험주의 와 대륙의 아이디얼리즘이 만나요.

대륙의 아이디얼리즘이라는건, 데카르트 의 써브젝트 의 인네이트 아이디어 의 아이디얼리즘 의 연장입니다

관념론 이란건 역시나 써선 안되는 단어예요. 방해해요. 콘셉티브, 인네이트 아이디어, 입장마다 같거나 달라요. 서로 다른 단어들을 같은 단어로 번역해서 써대는건 무식이고 사기예요.

헤겔 의 절대 에서 갈립니다. 앱솔루트 는 정확히 절대 입니다. 앱 솔루트 , 다 풀어헤친 정답지 예요.

영국의 귀납의 경험은 한편으로 유물론으로, 유사 유물론인 논리실증주의 로 갑니다. 럿셀로 대표되고요. 대륙의 프레게 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조지 에드워드 무어 의 논내추럴모럴리얼리즘으로 갑니다. 여긴 플라톤의 연역의 이데아 오브젝트 에요

대륙의 아이디얼리즘은 헤겔에서 유물론으로 가고, 유사 유물론인 생의철학 에 싸르트르 이하의 실존주의 로 갑니다. 귀납의 세상입니다.

실존주의 시작이라는 키에케고 와 도스토예프스키는, 같은 현상에 치중하지만, 이들은 결국 연역의 오브젝트 세상에 닿습니다. 싸르트르 의 실존주의는 저둘의 방법론을 써먹을 뿐, 교주둘의 궁극적 답안지는 혐오합니다.

헤겔 절대 의 다른 부류가 소위 분석철학 입니다. 어낼리틱 이란건, 아나 루오, 파헤쳐서 풀고 느슨하게 하는, 루오 가 솔루트 예요. 이건, 주어 를 파헤치는 겁니다. 주어를 파헤쳐서 정답을 찾아낸다는거요. 실재를 증명한다 해서 실증주의 로 번역을 하게 되지만. 로직컬 포지티비즘, 로고스 를 알지브라 로 대체해서 수학처럼 답찾기 입니다. 로고스 라는 언어를 기호화 해서, 이 기호들의 식들이 로고스 의 배후인 포름 이라며 로지칼 포름 로직 하는거예요. 개념이 이렇게 진전되어요.

이들은, 로직화된 언어 , 다시말해서, 언어 자체에, 연역의 오브젝트들이 있다 는 부류예요.

문법의 디스크립티브 프리스크립티브 의 프리스크립티브 들 입니다. 크라튈로스 들이예요.

포지티비즘. 실정법 하는 포짓 로. 포노, 놓다. 지들이 임의적으로 정답이라고 놓는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이 포지티비즘 세상은 연역의 세상 이예요.

영국의 경험주의가, 대륙의 프레게 가 시작한 저것을 갖고 와요. 이게 럿셀이에요. 귀납세상이 연역세상으로 갈아탄겁니다. 비트겐슈타인 은 엔지니어링 졸업하고, 이때 럿셀의 로직스 를 접하게 되고 배우는 거예요.

저들은, 로직화된 언어를, 로직으로 모두 드러내고자 합니다. 언어에 오브젝트 가 있는거예요. 그 오브젝트를 아나 루오, 애널리틱, 산산히 파들어가는겁니다. 그래서 오브젝트 의 정체를 밝히려는 것이고 가능한겁니다.

여기서 나온게, 우리가 쓰는 컴퓨터 프로그램이고 에이아이 입니다.

럿셀은, 신을 믿지 않아요.철저한 무신론자 예요. 스탈린의 쏘련을 찬양합니다. 정작 가서 본 쏘련은 지옥이라며 우울해 하지만.

귀납이 연역으로 갈아탔지만, 근본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쪽은.

연역의 세상은 헤겔에서 역시나 마르크스로 가고 니체니 생철학이니 싸르트르 실존이니, 모두들 유물론의 사이비 일 뿐이예요. 하이데거 들뢰즈 카타리 라캉 뭔퐁티 모두 다 똑같은 부류입니다. 메를로 퐁티 란 애가 천재적이라 해서 보니, 얜 기본적으로 데카르트 를 전혀 이해못하는 무지능이지요. 이 프랑스 는 1789이후로 역사를 부정해야하고 현재를 중시해야 합니다 얘들이 버틸곳은. 똑같이 소쉬르, 구조주의. 아주 똑같은 논리고 싸르트르 아류고, 너무나 후져버린 지능들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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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라는 단어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가 복귀한 스콜라 의 , 스콜라 철학의 독보적 개념이예요. 토마스 아퀴나스 에 의해 공인되어버린, 무심코. 원래 이건 로마 카톨릭이 받지 못하는 개념입니다. 로마는 아차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상태에서 수아레스 부터는 배제하거든요. 아퀴나스 를 주저 앉히기엔 부담이 되고.

네이처는, 그래서, 일명 자연과학 의 단어예요. 여기의 개념이고. 개념이란건 미닝 의미 입니다.

Nature, in the broadest sense, is the natural, physical, material world or universe. "Nature" can refer to the phenomena of the physical world, and also to life in general.

극동에서, 모든 번역단어가 문제지만, 일본의 메이지까지의 3백년 번역은 모두 수정해야만 합니다. 일본은 이 문제를 알아서 그 작업을 하고 있지만, 우리네는 기본적인 문제인식이 전혀 없지요.

철학이란건, 아니, 서양철학이란건, 동양의 주역 오행같은 말장난의 공허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프랙티칼 한 겁니다.

수학은 서양철학이 만든겁니다
논리 실증주의가 받아서 컴퓨터 에이아이를 백퍼 전적으로 만든겁니다.

서양철학을 공허한 말장난으로 극동에서 바라보는건, 전적으로 번역의 문제에 있고, 지식인들의 태만에 허위에 위선에 사기질에 있습니다.

네이처는 자연 이 아닙니다. 도교 단어 아니예요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끔찍한 문장입니다. 사람들 쳐죽이는.

도 가 스바브하바 입니다. 부디즘 나가르주나는 알수없는 무상의 순야타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그다음은? 세속버리고 말하지말고 산속 처박혀서 결가부좌 틀어서 니르바나 해서 순야타 하라는거지요. 문명이 설 수 없는 구조예요.

명, 이라는 언어, 말, 은 도 라는 스바브하바 를 간직한다는 겁니다 전제는. 저 문장은. 정확히 크라튈로스 에 프리스크립티브 에 럿셀 프레게 생각 이예요.

그러나, 그 다음은 무얼까요

가도, 가명, 해봤자 상도 가 아니다 따라서 상명 도 아니다, 순야타 라는 무상 의 도 에 무상 의 명 이란다.

아무말도 말라, 가만히 있어라.

유불도 라는건, 삼위일체 예요.

얘들 가훈, 가만히 있어라. 인위 는 나쁘다. 자연 스스로 그러하게 냅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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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해석도 가능하지만 마찬가지예요.

도 를 상도, 즉 바이바시카의 스바브하바 인 자성 실유 로 해석할 수도 있어요. 도 란것이 상도 이나 가도 하면 상도 가 아니다. 역시나 이래저래 가도 가명 인위적 짓들은 말라는거예요. 도 가 상도 이든 비상도 이든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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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년 이 지나도 저 세상은 변함이 없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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φῠ́ω • (phúō)

피씨쓰 피직스 란건 푸오, 낳다 예요. 라틴어에 똑같은 낳다 가 나티오 가 있어서 캘키 그대로 갖고 온거예요. 그리스어를 안쓰고.

The concept of nature as a whole, the physical universe, is one of several expansions of the original notion

이 단어는, 플라톤 전집에 카타 퓌시스 라며 우주의법 에 따라, 우주의 법칙 등으로 가볍게 나오는걸, 아리스토 가 간판으로 내건 거예요. 여긴 그래서 인과 가 핵심이예요.

네이처 가 매터 와 포름 을 지배해요. 포름 은 매터의 보이지 않는 배후 예요. 네이처 나 포름 은 신쩍인 존재고요. 포름은 매터 에 한정 시킨 거예요 아리스토 가.

포름 이데아 에도스 퓌시스, 이런 단어를 플라톤 전집에서 같은 의미로 걍 써요.

아리스토 가 이론화 하면서 특히나 단어 와 의미에 민감해져요.

네이쳐는, 단지 저 의미 이고, 이게 그대로 스콜라 에서 똑같이 쓰고, 서양철학 과 문학은 19세기까지, 네이처는 모두 저 의미 로 쓰는 겁니다.

저걸 번역할 단어는, 없어요.

법 본체 본성 본질, 등 쓰면,그와 관련된, 영어는 다른 단어로 써야만 해요. 이게 단어들 개념들이 중복 되면서, 이 인문학판 모든 한글 문장들이 개판이 되는겁니다.

During the advent of modern scientific method in the last several centuries, nature became the passive reality, organized and moved by divine laws.[5][6] With the Industrial revolution, nature increasingly became seen as the part of reality deprived from intentional intervention: it was hence considered as sacred by some traditions (Rousseau, American transcendentalism) or a mere decorum for divine providence or human history (Hegel, Marx). However, a vitalist vision of nature, closer to the presocratic one, got reborn at the same time, especially after Charles Darwin

저기서 마던 오면서 어감의 차이를 말하지만, 차이가 없어요 근본 개념은. 특히나 다윈에 와서 신성이 스며요. 그래서 당대에 찰스 다윈은 구박을 받는겁니다. 유물론 시대에 감히 신성을 끌어들이다니

Within the various uses of the word today, "nature" often refers to geology and wildlife. Nature can refer to the general realm of living plants and animals, and in some cases to the processes associated with inanimate objects—the way that particular types of things exist and change of their own accord, such as the weather and geology of the Earth

네이처가 와일드라이프 의 자연 이 된건, 20세기 후반에서야 들어온 개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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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은, 프레게 럿셀의 로직컬 포지티비즘 으로 시작했으나, 트락타투스 는, 언어에 오브젝트 가 스며있다는 연역 자체를 부정합니다. 트락타투스 에 직접 두 사람을 인용하며 그대로 나오는 문장이예요.

시작부터 아예 부정하는거요.

럿셀은 영문판 서문을 써주지만, 자기를 부정하는 책에 서문을 쓰거든요. 비트겐슈타인 이 그래서 불편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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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은 그래서, 로지칼 포지티비즘 에 못 넣어요.

그렇다고, 포스트 포지티브즘 에도 못 넣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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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은 저 하늘 별에 있을까요 그의 소원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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